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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크리 번역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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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크리> 번역본 출간에 붙여 몇 자 적는다.  53년 전 나온 책을 공동번역에 중역을 했음에도 13만원을 책정한 것은 납본제도를 악용한 것이다. 천부만 해도 1억3천만원, 1만부면 13억원이다. 사악한 짓이다!4인 공역으로 작 라깡의 <글모음>이 <에크리>라는 이름으로 53년 만에 한국어로 등장했다. 이 번역본이 나타나기 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다. 역자들에게 큰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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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크리번역본 출간에 붙여 몇 자 적는다.

 

53년 전 나온 책을 공동번역에 중역을 했음에도 13만원을 책정한 것은 납본제도를 악용한 것이다. 천부만 해도 1억3천만원, 1만부면 13억원이다. 사악한 짓이다!


4인 공역으로 작 라깡의 글모음에크리라는 이름으로 53년 만에 한국어로 등장했다. 이 번역본이 나타나기 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다. 역자들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난 라깡을 알지도 못하며, 에크리를 구매한 이후 200여 쪽을 것이 전부다. 난 읽지 않았다. 아니 못 읽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프로윗(프로이트)의 독일어 개념부터 사실 아는 것이 별로 없다. 따라서 읽지도 못하고 그저 일부를 보기만 하는 사람이 리뷰를 작성한다는 것은 반어다


0. 여기서 나는 출판행태와 관련해 몇 마디 적고자 한다. 특히, 중역의 흔적과 고유명사에 대해 몇 가지를 지적하고자 한다. 전자는 양심의 문제이며 후자는 그 나라의 인문학 수준을 알 수 있는 척도 가운데 하나다


1. 먼저 번역본 일러두기를 보자일러두기 1본 역서는 1966년판을 기준으로 번역했다. 각 페이지의 난외 페이지는 이 1966년판 페이지를 가리킨다. 목차와 색인 등 본서 안의 모든 페이지는 이 난외 페이지를가리킨다.”고 했다. 1모음집을 열며는 원서 9, 번역서 13쪽에 해당한다. <차례는 그저 13쪽이라고 표기한다. 1-7부 모든 글의 차례는 번역서 기준이다. 일러두기는 목차로 실제 목차는 차례로 적고 있는 것도 문제다. 메이예르송은 색인에 86(원서기준)쪽이라고 되어 있지만, 실제는 87(번역서 107)쪽이다. 사소한 실수라고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출판문화의 수준을 알려주는 대목이다.

 

2. 번역서 13(원서 9쪽에 해당)에는 익살스러운 bouffonants”이 있다. 하지만 원서는 부포낭(bouffonnants)”이라고 되어 있다. , -n-이 두 개가 겹쳐있으며, 동사 부포네(bouffonner)의 분사형이다. 이는 본래 이딸랴어 붓파(buffa)에서 파생한 붓포네(buffone)에서 기원한 차용어다. 117천원의 거액을 투입하고 만난 첫 페이지에 이런 오류가 있다.

 

3. 17(원서 11)에 인용된 독일어 구절이 있다. 번역서는 조 진트 거당컨(So sind Gedanken)”이라고 적었다. 두 가지가 문제다. 첫째, 원서 및 영역서에는 조 진트 애쓰 거당컨(So sind es Gedanken)”이다. 둘째, 이 곳 뿐 아니라 대부분 라깡이 인용한 싯구 같은 것의 마지막 행에서는 마침표(.)>를 생략하는 것이다. 원서 및 영역서에서는 물론 마침표가 표기되어 있다. 21(14)에는 “Un destin si funeste,”가 있다. 원서에는 마지막 구두점이 없고 “Un dessein si funeste”라고 되어 있다. 원서의 데쌩(dessein)이 데쓰땡(destin)으로 둔갑했다.

 

4. 영역본을 통한 중역의 흔적이 너무 노골적으로 보인다. 19(원서 12)에는 미장쌘(mis-en-scene)이 있지만, 원서는 미장쌘(mis en scene)이다. , 연결선이 없다. 이는 영역본을 따른 것이다. 27(원서 19)322(원서 275)에는 이야기 discourse”가 등장한다. 하지만 원서는 디쓰꾸르(Discours)일 뿐이다. 28(20)유대적 농담이 있다. 원문 이쓰똬르 쥐브(histoire juive)”를 영역본에서 주이쉬 조욱(Jewish joke)”이라고 한 것을 중역하다보니 유대적 농담까지 왔다. 623(522)에는 기본적으로 elemaentaire”가 있다. 내가 아는 저런 현대 프랑스어는 없다. 원서에는 델레망때르(d’elementaire)”로 되어 있다. 같은 곳에 시니피앙의 요소 element”이 있다. 하지만 원서는 레젤레망(Les elements)이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언론에 정직하게 영역본을 통한 중역이라고 해야 옳았다. 하지만 여러 번역본을 참고 했다고만 했다. 학문과 출판활동은 정직해야 한다.

 

5. 아주 유명한 구절을 보자. 많은 이들이 이 부분을 먼저 찾아봤을 것이다. 모두 618(517)에 있다. 한국어 번역본을 미리 보자. “나는 내가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하며, 따라서 내가 생각하지 않는 곳에 존재한다.” 이 부분의 원문은 이렇다. “je pense ou je ne suis pas, donc je suis ou je ne pense pas.”) 좋은 번역이다. 그런데 이어지는 곳에서 내가 나의 생각의 노리개인 곳에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내가 생각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나인 것 ce que ju suis에 대해 생각한다.”가 있다. 일단 프랑스어 ju가 아니다. (je)가 옳다. 이 부분의 원문은 이렇다. “je ne suis pas, la ou je suis le jouet de ma pensee ; je pense a ce que je suis, la ou je ne pense pas penser.” 뒷 부분은 난 내가 생각함을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내가 존재함을 생각한다.” 정도로 옮길 수 있다. “나인 것은 틀린 번역은 아니지만, 이는 해석일 뿐, 한국어에 없는 말이다.

 

6. 라깡이 부분관사를 말하는 부분이 나온다. 원서에서는 부분관사를 강조(흘림체)했지만, 한국어 번역본에 오면 엉뚱한 곳을 강조한다. 33(24)일정한 의도 de l’intention”가 있다. 하지만 원서는 드 랭땅쑝(de l’intention)”이라고 해서 부분관사 드 르(de l(’))를 강조한다. 심지어 같은 곳에 있는 어떤 애정 plus d’amour”에서는 부분관사가 아닌 부분을 강조한다. 원서는 쁠뤼 다무르(plus d’amour)”에 있는 부분관사 드(d(’))를 분명히 강조한다. 이는 오타가 아니라, 부분관사에 대한 이해부족이다.

 

7. 속임수가 있다. 우리는 위에서 중역의 흔적을 얘기했다. 322(275)을 보자. “우리로서는 언어와 말에 대해 매서먼식으로 이야기 discourse 하는 과학자보다는.......”이 있다. 원서는 이렇다. “nous (paraitrait preferable) a celle du savant qui tient sur le langage et la parole un pareil discours.” 영역본 227쪽을 보자. “I (would prefer to .......), rather than a scientist who discourses on language and speech as Masserman does.” 주어는 가 아닌 우리로 해서 원서를 봤다는 것을 표기했다. 하지만 나머지는 원문에서는 직접 인용하지 않는 인명 매서먼(Masserman)까지 포함한 영역을 통해 중역했다. 그러나 원서에서 직접번역이라는 거짓을 가리기 위해 원어를 노출한답시고 얼떨결에 영어 디쓰꺼쓰(discourse)를 번역본에도 인용하고 말았다. 매서먼은 원서에 1, 영역본에 2회 등장한다. 물론 한국어본도 2회 등장한다.

 

8. 한국어 번역에 대해 한 마디 덧붙인다. 322(275)에는 한 개의 돌, 두 채의 집, 세 곳의 폐허.......”가 있다. 원문은 une pierre, deux maisons, trois ruines.......”이다. 그냥 돌 하나, 집 둘, 폐허 셋하면 될 일이다. “한 잔의 술은 박인환으로 족하다. 한국어에 없는 말을 동원해가면서까지 창조번역을 할 필요는 없다.

 

9. 프랑스어 표기에 대해 한 마디 한다. 773(660-1)메흐드르 merdre”메흐드르 Meirdre”가 등장한다. -r-에 대응시키는 것은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안정적인 한국어 표기를 위해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음성학이 아닌 음운론에 바탕을 둬야 한다.

 

10. 고유명사 몇 개를 본다. 28(20)에는 렘베르크가 나온다. 이는 우끄라이나 서부의 중심지인 르비우(또는 리비우)의 독일어 표기를 라띤어로 읽는 것이다. 106쪽의 메이예르송은 매얘르쏜이 옳다. 베르그송과 배륵쏜의 관계와 같다. 141(118)폰 덴 슈타이넨 Van den Steinen”이 있지만, Van이 아니라 Von이다. 305(261)의 레츠(Retz)가 옳다. 821쪽에 레이몽 크노가 있다. 프랑스어에 있는 흔한 이름은 래몽(Raymond)이다. 851쪽 포어스텔룽 Vorstellung포아쉬탤룽이 옳다. 874쪽의 에스나르 Hesnard애나르가 옳다. 같은 곳의 소콜니카 Sokolnicka는 쏘꼴니쯔까가 옳다.

 

11. 프랑스어 형용사 프르몌(premier)는 명사 앞과 뒤에서 번역을 달리 해야 하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초지일관 최초()”로 옮기는 것은 무슨 연유인가.


12. 번역은 가능한 원문에서 직접 번역하는 것이 최상이며, 필요할 경우 중역을 할 수 있다. 문제는 중역했다는 말을 고백하지 않는 데에 있다.

c**********1 2019.06.05. 신고 공감 2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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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크리 번역판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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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가자.1. 역서 463 (390) 역서 각주 8 (원서 각주 1)에 불어 “데자 라꽁떼(deja raconte)”가 있는데 “떼”에 있는 악센트부호가 사라졌다. 그럼 불어문장이 아니다.   2. 역서 459 (395)에 “자아 심리학”이 있다. 원서에는 강조로 “ego psychology”라고 되어 있다. 왜 그랬을까? 정답은 영역본에서는 강조가 없으니까!   3. 역서 471 (397)에 “범죄의 구성사실 corpus 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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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가자.


1. 역서 463 (390) 역서 각주 8 (원서 각주 1)에 불어 데자 라꽁떼(deja raconte)”가 있는데 에 있는 악센트부호가 사라졌다. 그럼 불어문장이 아니다.

 

2. 역서 459 (395)자아 심리학이 있다. 원서에는 강조로 ego psychology라고 되어 있다. 왜 그랬을까? 정답은 영역본에서는 강조가 없으니까!

 

3. 역서 471 (397)범죄의 구성사실 corpus delicti가 있다. 원서에는 강조도 없이 “le corps du delit”이다. 이 부분을 영역자는 영어권 전통에 따라 라틴어구로 옮겨서 강조했다. 이것을 한국어 번역자가 얼른 물었다. 난 이제야 알았다. 영역본을 참조했다고 한 말을. 하지만 이것은 참조가 아니라 복제. 원서에서 강조한 부분은 지나가고, 영역자가 강조한 부분은 살려 복제한다. 이것이 대한민국이다.

 

4. 역서 471 (397)을 보면 번역자들이 얼마나 독자를 우롱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원서에 대화부분이 강조없이 나온다. 번역서에는 줄을 달리해서 인용한다. 그런데 한국어 번역서 해당 부분 끝에 교묘하게 처리해야 한다. savoir s’y prendre. engineered가 있다. 난 으아했다. 불어도 강조도 아니고 특별한 용어도 아닌데 왜 있지? 또 영어는 흘림체 강조는 뭐지? 이 부분 영역본은 “....... had to be engineered”. 영역본을 보다 해당부분을 불어로 찾아 옮기다 저런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5. 참고로 영역본은 위 471 (397) 부분에 있는 Je traduis ainsi : engineering, parce que je pense qu'il fait echo au celebre how to americain, mettons, si ce n'est pas ca: question de planification.을 번역하지 않았다. 한국어본은 번역했다. 상당히 혼란스런 부분이다.

 

6. 역서 473 (399)에는 원서에서 강조한 “action out”을 그냥 처리했다. 왜냐고? 영역본에서 강조하지 않았으니까.

 

(여기까지가 대충 400쪽까지다.  이제 더 이상 번역과 편집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다시 번역이니 개역이니 하지 말고 그냥 환불해라!)

c**********1 2019.07.03. 신고 공감 1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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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크리 번역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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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쓴다.   1. 편집의 화려함을 보자. 13만원이라는 거금으로 277쪽은 보너스로 두 번 찍힌다. 다음 사진을 보라. 226쪽 옆이 277쪽이다. 그리고 276쪽 다음에 277쪽이 또 나온다. 아니다 11만 7천원이었지.2. 역서 249 (원서 215) (女)블류마 불펍너 지이가르닉(Блюма Вульфовна ЗЕЙГАРНИК: 1900-1988)은 럐뚜바계 여후다족이다. 쉽게 말해 리투아니아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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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쓴다.

 

1. 편집의 화려함을 보자. 13만원이라는 거금으로 277쪽은 보너스로 두 번 찍힌다. 다음 사진을 보라. 226쪽 옆이 277쪽이다. 그리고 276쪽 다음에 277쪽이 또 나온다. 아니다 117천원이었지.



2. 역서 249 (원서 215) ()블류마 불펍너 지이가르닉(Блюма Вульфовна ЗЕЙГАРНИК: 1900-1988)은 럐뚜바계 여후다족이다. 쉽게 말해 리투아니아계 유태인이다. 브고쯔끼(비고츠키가 아니다!)학파이자 배아린실험심리학파 회원이다. 제이가르닉도 아니고 자이가르닉은 더더욱 아니다. 자이가르닉이라고 한 것은 루씨어 성을 라틴자로 전자해서 Zeigarnik이라고 본인이 사용한 것이다. 현대 그것을 정확히 영어식으로 옮기면 Zeygarnik이 될 것이다. 독일어로 활동을 했다고 해서 독어로 읽을 것 같으면 짜이가아닉이라고 해야 한다. 블류마는 라씨여제국에서 태어나 싸련에서 죽었다. 차이코프스키가 치이꼽쓰끼이듯이 자이가르닉이 아니라 지이가르닉이다.

 

3. 역서 251 (217) 호모 사이콜로지쿠스 Homo Psychologicus. 이런 라틴어도 영어 사이코 운운하다니. 그냥 사이콜로지컬 맨이라고 해라.

 

4. 역서 266(229)교육분석 psychanalyse didactique”가 있는데, 분석이 아니라 정신분석이다.

 

5. 역서 269(231-2)비교주의 esoterisme”가 등장하는데, 대부분 독자에게 에조떼리씀은 잘 모르는 단어다. “비교(秘敎)”라고 한자를 표기했어야 하지 않을까.

 

6. 역서 282(241)동일화할 idenfier”이 있지만, 저런 프랑스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당띠폐(identifier)가 옳다.

 

7. 역서 322(275)정반대로 e contrario”가 있지만, “아 꼰뜨라리오(a contrario)”가 옳다.

 

8. 역서 301(257) 주석 11오류 bevu”가 있다. 불어 베뷔는 여성형 명사[bevue]. 저런 단어는 불어에 없다.

 

9. 역서 327 (279)운세 le dessin de sa destine”가 있다. 하지만 “le dessin de sa destinee(운명도)”가 옳다. (sa)가 나오는 순간 여성형을 대기해야 한다.

 

10. 에로티즘(에로티슴)과 나르시즘(나르시슴) 하면 될 것을 에로티시즘 나르시시즘하니 불편하다. 단순히 불어와 영어차이가 아니다. 저 겹치는 영어음절은 미닝리쓰할 뿐이다. 로망티즘()도 마찬가지다. 로맨티시즘하면 얼마나 불쾌한가.

 

11. 역서 358 (306)죄의식 mauvaise conscience”가 있다. 영역본[guilty conscience]을 그대로 옮겼다. 불어 형용사 모배는 나쁜이라는 뜻 외에, 무능한 이란 뜻도 있다. 여기서는 적합할지 모르나 모배즈 꽁썅쓰자격지심이라는 뜻이 있다.

 

12. 역서 390 (332)핵심 fin mot”이 있다. 불어 팽모는 진상(眞相)”에 가깝다.

 

13. 역서 407 (347)환영 prestiges”가 있다. 영역본 illusions [prestiges]을 그대로 가져왔다. 불어 프레쓰띠쥬는 위엄, 위신, 위광이라는 뜻이다. 영역자가 이것을 의역한 것이다. 문맥을 보면 안다.

 

14. 역서 409 (349)에는 환영 prestiges”이 또다시 두 번이나 등장한다. 원서에는 강조가 없다. 영역자도 고심했는지 두 번이나 영역과 원어를 노출했다. illusions [prestiges] 영역은 참고대상이지, 복제대상이 아니다.


15. 신이시여 영어가 없었으면, 한국의 이식번역은 어찌 가능했겠습니까 


Pobre Corea, tan lejos del sujeto y tan cerca de los Estados Unidos

(가엾은 ()조선, 주체는 그토록 멀고 합중국은 그토록 가깝구나.)

 

c**********1 2019.07.03. 신고 공감 1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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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크리 번역판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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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서 430면 (365): 벤베니스트는 뱅배니스트(뱅베니씃)이다. 철자가 국제음성기호인가    2. 역서 433 (367)에 “pied plat”은 정확히는 원서에 있듯이 “뻬쁠라(pied-plat)”다. 편집이 개판이다.   3. 역서 445 (377) 프로이트가 본문에 불어로 썼다는 부분이 있다. 한국어본을 보자.Vous vous contresuggestionnez! 하지만 원문은 contre-suggestionnez! 편집이 개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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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서 430(365): 벤베니스트는 뱅배니스트(뱅베니씃)이다. 철자가 국제음성기호인가 

 

2. 역서 433 (367)“pied plat”은 정확히는 원서에 있듯이 뻬쁠라(pied-plat)”. 편집이 개판이다.

 

3. 역서 445 (377) 프로이트가 본문에 불어로 썼다는 부분이 있다. 한국어본을 보자.

Vous vous contresuggestionnez! 하지만 원문은 contre-suggestionnez! 편집이 개판이다.

 

4. 역서 446 (378) 역서 각주 5SE(지그문트프로이트 심리학전작 표준판) 5, <pp.517-518>이라고 했지만 이는 영역본을 복제한 것일 뿐, 원서에는 <p.517>이라고 했다. 이는 영역본을 나눠서 번역하고 강조부분만 불어 확인해서 노출했다는 증거다. 이는 <21세기 자본과 같은 추악한 방식이다. 나중에 알겠지만 이 번역서는 라깡이 강조한 부분은 쌩까고 영역자가 강조한 부분은 살리는 사대주의 중역의 최고봉이다.

 

5. 역서 449 (380) 역서 각주 8에 이폴리트의 구술논평이 879(이것은 불어원서 면수)에 있다고 했다. 옳다! 영역본을 따르다 보니 정작 원서에는 881면이라고 한 오류가 자동으로 수정되었다


<21세기 자본번역에서도 유사한 일이 있었다. 원서에 있는 ‘underdevelopped’는 오타이며, 영역본에 있는 ‘underdeveloped’이 옳은 표기다. 한국어 번역자는 영역을 추종한 덕택에 오류가 자동으로 수정된 것이다.

 

6. 역서 458 (386) 각주 5 (원서 각주 3)을 보자. 라깡은 독일어 패아배아풍(Verwerfung)을 논문 발표 당시였던 1954년에는 르트랑쉬망(retranchement)을 번역어로 제안했지만, 추후에 포르끌뤼죵(forclusion)이 우세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영역자는 라깡이 제안하고 추후에 바꾼 포르끌뤼죵을 포클러우져(foreclosure)로 영역했다. 이것을 한국어 번역자는 날름 물었던 것이다. 더더욱 영역본에는 포르끌뤼죵으로 선택한 시기를 구체적으로 1966년으로 밝혔는데 이 역시 한국어본은 복제했다. 정말 대단한 한국이다. 13만원 값어치다!

 

7. 역서 460 (389)에 프로이트의 독일어 문장이 등장한다.

“Es ist, wie man sieht, wieder eine Frage des Aussen und Innen."

그런데 한국어본에서는 데스(des)가 데아(der)로 되어 있다. 영역본은 정상적으로 처리되었다. 영역본을 따라갔으면 좋았을텐데.

c**********1 2019.07.03. 신고 공감 9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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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크리 번역판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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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방식으로 쓴다1. 번역서 105면 (원서 85)에 progressivement이 있다. 번역자 홍준기는 "발전적으로"로 옮겼다.이는 프로그레(progres)를 "진보"라고 하니까 그 부사형으로  발전적으로로 옮겼으리라. 하지만 프로그레씹망은 "점진적으로"라는 뜻이다.2. 역서 115(94)에 미라쥬(mirage)가 있는데 역자는 "착각"이라고 옮겼다. 하지만 그것은 신기루, 환영이란 뜻이다. 프랑스에서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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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방식으로 쓴다


1. 번역서 105면 (원서 85)에 progressivement이 있다. 번역자 홍준기는 "발전적으로"로 옮겼다.

이는 프로그레(progres)를 "진보"라고 하니까 그 부사형으로  발전적으로로 옮겼으리라. 하지만 프로그레씹망은 "점진적으로"라는 뜻이다.


2. 역서 115(94)에 미라쥬(mirage)가 있는데 역자는 "착각"이라고 옮겼다. 하지만 그것은 신기루, 환영이란 뜻이다. 프랑스에서 판매하는 전투기 미라쥬가 "착각"이라고 하면 누가 구매하겠는가? 기초를 닦자.착각은 통상 불어로 일뤼죵(illusion)이라고 한다.


3. 역서139면 (115)에 "몇몇 상상적 인물 certaines personae imaginaires"이 있는데 여기서 라전어 personae는 소유격이 아니라 주격 복수형이다. 따라서 "인물들"로 분명하게 해야 한다.


4. 이 번역서가 얼마나 형편없는가를 알리는 곳이 여기다. 141 (118)면을 보자.

그 유명한 "나는 타자다 Je est un autre"를 번역서에는 Je suis un autre 라고 되어 있다. 이는 반란이다. 어찌보면 이 한마디로 라깡이 대중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번역하기 급급해서 라깡의 요체를 모르고 책장사에 나섰다. 데까르뜨의 코기토에 대한 반발을....,,, 그저 부끄러울 뿐이다.


5. 역서 157 (132) 어떤 양태의 인격 modal personality 가 있다. 원서에는 personnalite modale 이라고 되어 있다. 영역에 따른 중역을 그대로 노출한 것이다. 술먹고 번역하지 않는 한 이런 노출된 구라는 있을 수 없다.


6. 역서 161 (136) au stade infans 역자는 "유아기 infans 단계에서"라고 옮겼지만, 기와 단계는 같다. 그냥 "유아기에서"하면 족하다.


7. 본문 162 (137)에 에나르 A.Hesnard, 874(748)에 에스나르 Angelo Hesnard가 있다. 고유명사 색인에는 "에스나르, 안젤로"로 되어있다. 이런 색인을 누가 보겠는가?


8. 편집의 허술함이 그대로 노출된다. 144 (120)에 tres peu <<realise>>가 있다. 그런데 번역서는 <거의 '실현되고 있지 않다 realise는'>이라고 했다. <거의 '실현되'고 있지 않다>로 수정해야 한다.


9. 역서 166 (140)에 "지식학 gnoseologie"가 있다. 이는 본래 바움가아튼이 "인식의 인식"을 가리키기 위해 도입한 단어다. 어원적으로 그노시스(알다)와 로고스(학)가 합성되었다 해도 지식학이라고는 아무도 하지 않는다. 적어도 "인식론(에피스테몰로지)"으로 해야 한다.


10. 역서 196 (167)에 "난센스 l'insense"가 있다. 하지만 불어 앵쌍쎄는 무분별한 또는 엉뚱한 이란 뜻이지 무의미한 이란 뜻은 아니다. 실제로 난센스란 단어가 불어에도 농쌍쓰(non-sense)라고 있다. 


11. 역서 208 (177)에 "다른 상태 etat second"이 있다. 여기서 쓰공은 이차적, 부차적이란 뜻이지, 다른 이란 뜻이 아니다.


* 정말 부끄러운 현실이다.

c**********1 2019.07.02. 신고 공감 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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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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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의미 작용 너머에 있는 앞의 시니피앙의 대답은 이렇다. "내가 너의 욕망을 짜는 끈들의 운직이는 대로 너를 흔들 때 너는 네가 행동한다고 믿는다.그렇게 욕망은 힘이 컵지고 욕마의 대상은 증식되어 갈가리 찢긴 유아기의 분열 상태로 너를 되돌릴 것이다. 그래. 그것은 너의 향연이 될 것이다. 네가 나를 불러낸 이상 너에게 목석 같은 손님이 되어 내가 돌아갈 때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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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의미 작용 너머에 있는 앞의 시니피앙의 대답은 이렇다.

"내가 너의 욕망을 짜는 끈들의 운직이는 대로 너를 흔들 때 너는 네가 행동한다고 믿는다.그렇게 욕망은 힘이 컵지고 욕마의 대상은 증식되어 갈가리 찢긴 유아기의 분열 상태로 너를 되돌릴 것이다. 그래. 그것은 너의 향연이 될 것이다. 네가 나를 불러낸 이상 너에게 목석 같은 손님이 되어 내가 돌아갈 때까지." (-53-)

실제로 프로이트는 아버지 살해 이후 형제들까리 경쟁하는 상황 속에 기입되는 갈등을 중화시켜줄 참여의 필요성이 부성적 토템과의 동일화의 기초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오디푸스적 동일화는 주체가 최초의 주체적 개인화를 구성하는공격성을 초월할 수 있도록 해주는 동일화이다. 나는 다른 곳에서 이 거리를 설정함에서 이 동일화가 한 걸음을 구성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를 통해 존경심과 비슷한 감정에 의해 이웃을 전체적으로 정서적으로 받아들이는 일이 실현된다. (-141-)

1) 검은색 둘을 바라보고 자기가 흔색임을 안다.

이것은 바로 운동에 토대를 제공하는 논리적 배제다. 이런 논리적 배제가 운동에 선행한다는 것, 그리고 주체가 이 논리적 배제를 검은색 셋의 조합을 금하는 문제의 소여와 더불어 획득한다는 것은, 그 소여의 알림은 단지 안내말로 국한시키는 드라마적 우연성과 무관한 것이다. 이것이 검은색 둘: 흰색 하나라는 형식으로 표현될 때, 우리는 그 명백성의 즉각적 가치를 본다. 그리고 전광석화와 같은 그 시간은, 이처럼 말할 수 있다면, 제로와 동등할 것이다. (-237-)

하지만 프로이트가 환자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해준 설명들은 우리에게는 통속적으로 보일 정도로 극히 근사치적인 성격을 갖고 있지만 우리에게 교훈을 주기에 충분하다. 즉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학설이나 학설화라기보다는 말이라는 상징적 선물로 , 이 선물은 그것이 포합하고 있는 상상적 분유라는 맥락에서 비밀 협약을 품고 있으며 그것의 효력 은 후에 이 주체가 [한편으로는] 쥐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분석가에 보수로 주는 플로린 은화들 사이에 마음 속으로 설정하는 상징적 등가 [관계] 속에서 드러난다. (-341-)

한 시인이 재기 넘치게 너무나 정확하게 지적하듯이, 거울은 우리 이미지를 우리에게 되돌려 보내기 전에 좀 더 반영하면 좋은 것이다. 주체는 그러한 순간에는 아직 아무것도 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일한 포획이 그와 비슷한 사람 중의 하나, 예를 들러 공증인 코앞에서 재형되도록 한다면 그러한 법률 전문가가 습관적으로 코를 들이미는 장소들로 미루어 볼 때 그러한 주체가 코에 의해 어디로 끌려갈지는 신만 알 것이다. (-508-)

왜냐하면 언어 Language 라는 거인이 의미작용이라는 걸리버를 묶는 밧줄로부터 갑자기 풀려나와 다시 벌떡 일어나게 되는 조합술 말고는 여러분에게 있는 어떤 것도 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꿈이 그러한 일에 보다 적절할 수 있는 것은 여러분의 게임이 재생산하는 가공의 꿈의 전개 속에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오직 꿈의 가공만이 관심이 있다"라고 프로이트는 말하며, 나아가 "꿈은 수수께끼 그림"이라고도 말한다. 우리가 꿈으로부터 영혼의 말을 기대하지 않도록 최소한의 의미만 갖고 있으며, 그것이 주는 잼, 즉 그것을 푸는 데서 갖게 되는 재미는 그와 같은 그림의 이미지에서 분명하게 나타나는 의미작용이 부서지기 쉬우며 거기에 은폐되어 있는 시니피앙을 들려주는 효력만 갖고 있는 데서 유래하는 것이 아닐까? (-562-)

물론 자신을 이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가장 생각될 만한 것을 생각하려는 생각이, 일어날 수 있는 이 경쟁을 항상 관용할 수 없었음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이 혐오는 다음과 같을 때 완전히 명백해진다. 이 다른 곳과, 모두에게 존재하지만 누구에게나 닫힌 장소, 그것에 대해 생각함이 없이 그래서 누구도 그것에 대해 어떤 타자보다 발견한 장소가 여태껏 누구도 생각한 적이 없는 개념적 결합을 이룰 때 말이다. (-653-)

하지만 우선, 개인적 의식으로부터 개인덕 세계의 발생을 도출시키려는 지나친 관념론 또는 오직 아이에 대한 관찰에만 근거하려는 정신분석의 현대적 유행에 내재하는 지나친 관념론에 대한 라기쉬의 공격에 동의하는 것은 오류가 아니다. 그러나 또한 그런 편견에서 우리가 벗어났다고 여기는 라가쉬는 낙관론자다. 그는 피아체 씨가 과학적 사고의 범주들까지도 포함시킬 정도로 , 공통적 세계의 발생을 개인적 의식 속에서 탐구하게 우리를 길들인다는 것을 잊고 있는 것일까? (-764-)

내가 말하는 저항은 상상적인 것 속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나는 정신분석에 첫걸음을 내딛으면서 거울 단계 속에서 상상적인 것에 지위를 부여했기 때문에 그 후 상징성에 정확한 자리를 부여할 수 있었다.

상징적인 것 속에서 혼란이 초래되는 것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듯이 상상적인 것 때문이다. 그러나 또한 똑같이 오래된 오류는 상상적인 것이 지배적일 때 혼동을 표상에 대한 비판을 통해 고쳐나가려는 것이다. 존스 또한 그러한 오류에 사로잡혔다. 즉 상징을 구체적인 것에 대한 '관념'으로 정의하면서 상징이 하나의 형상에 불과하다는 데 이미 동의하고 있는 것이다.

존스의 편견은 베이컨적이다. 우리는 학교에서도 그러한 편견의 각인을 받는다.과학의 결정적 토대가 감각기관에 관한 실험에 있다고 가르칠 때가 그렇다. (-844-)

왜냐하면 욕망이 문제인 곳에서 우리는 논리주의적 환원에 양보하기는 커녕 욕망이 요구 denande 로 환원될 수 없다는 사실 속에서 또한 욕망을 요구로 환원시키는 것을 방해하는 것의 원동력 자체를 발경하기 때문이다. 생략해서 말하자면, 욕망이 말로 표현될 수 잇는 것,그것은 다름아니라 욕망이 말해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말하고자하는 바는 이렇다. 즉 욕망에 적합한 담화, 심리학적인 담화가 아니라 윤리학적 담화 속에서 말이다. (-947-)

하지만 프로이트는 그저 이렇게 말할 뿐이지요. "판단 기능의 수행은 단지 부인의 상징을 창조함으로써만 가능해진다."

왜 프로이트는 판단이 기능하는 것은 시인에 의해 가능해진다고 말하지 않을까요?왜냐하면 부인은 파괴 성향으로서가 아니라 ,마찬가지로 판단 형식 내부에서가 아니라 명료하게 제시된 상징성의 기본에 있는 태도로서 해야 할 역할이 있기 때문입니다.

"부인의 상징의 창조가 억압과 억압들, 또한 그것에 의한 쾌락원이의 강압으로부터의 자립의 최초의 단계를 마련해주었다."

제가 머저 파괴 성햐을 쾌락원리와 결부시키지 않았다면 이 문장의 의미는 별다른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을 것입니다. (-1051-)

자크 라캉(Jacques Lacan, Jacques Marie Emile Lacan,1901. 4. 13.~1981. 9. 9.) 의 에크리다. 그는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 5. 6. ~1939. 9. 23.) 와 같은 정신과 의사이며, 자신이 남긴 유일한 책, 에크리가 있다. 에크리를 읽어 보면, 1000페이지 분량의 상당히 두껍고, 인간의 행동 과 정신적인 관념론, 정서적인 병력 기제에 대해서, 분석 요약하고 있었으며, 사람에게 영혼과 무의식의 실체는 상징과 상상에 대해서,의식과 무의식에 대해서, 어떻게 도식화하는지 과학적으로 검증해 나가고 있다.

자크라캉의 『에크리』 에는 프로이트의 이야기가 상당히 많이 나오고 있다. 그에 비해 프로이트의 제자인 심리학자 칼 구스타브 융(Carl Gustav Jung, 1875. 7. 26. ~1961. 6. 6.) 에 대해서는 잠시 언급할 뿐이다.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은 언어와 행동으로 표현되는데,그것에 대해서,프로이트는 임상실험을 통해 다양한한 저서를 써내려 간다. 반면 자크라캉은 같은 정신과 의사 임에도, 세미나를 통한 강연을 주로 하였을 뿐,그가 직접 남긴 책은 에크리가 유일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의 욕망의 근원에 대해 말하고 있으며,말과 언어,행동과 경험으로 그 욕망을 어떻게 정의 하는지 과학적으로 이해하고자 하였던 자크라캉의 평생을 걸쳐 투자한 철학적 가치와 의미는 우리에게 오디디푸 콤플렉스의 근원이 어디에서 시작하고,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바꿔 나가고자 하는 변화를 읽을 수 있다.

자크라캉의 에크리는 상당히 난해하면서,전공자가 아니라면 깊이 들어갈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 단 우리의 어린 시절 보여준 부모님에 대한 반향과 까칠함, 유아기적인 심리 형태는 어떻게 일어나며,그것을 해소하지 못하면, 공격적인 성향 뿐만 아니라 좌절, 우울감과 같은 심리적 기제로 나타나는 이유를 알수 있다. 자크라캉의 에크리를 읽으면, 거울효과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인간과 같은 영장류에 흔히 보여지는 자신을 인식하며,자아라는 개념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어필하고 있었다. 그러한 철학적 요소,심리학적 요소 하나 하나 이해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으며, 자크라캉의 에크리는 그에 관한 다양한 소개서를 통해 먼저 읽은 뒤 그의 철학적 사유에 접근해 나가면, 상당히 효율적인 의미를 내포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의 행동 기재에서, 상당한 공격성에 대해서, 나르시시즘, 억압, 히스테리, 리비도, 퇴행적인 모습,강박증의 원인과 인과관계에 대해 과학적인 매커니즘에 의거해 분석하고자 한다. 이책을 통해 자크라캉의 철학과 심리에 대해 이해하는 것 뿐만 아니라, 자크라캉이 프로이트의 심리학에 대해 어떻게 관찰하며, 자신의 철학적 영감으로 완성하였는지 살펴보는 것을 책을 읽는 목적으로 삼고자 한다.

 

k*******2 2023.03.0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