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 『사랑한다고 했다가 죽이겠다고 했다가』 에는 문명과 자연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한 작가 '악셀 린덴 Axel Linden' 이 경험한 3년간의 목축업자의 삶과 생각들을 담고 있다. ![]() "어쩌면 나는 이렇게 문명과 자연 사이의 어딘가에 머물고 싶은 것뿐인지도 모른다." p 176 ㅡ 6월 5일 ㅡ 그리고 또 여름 "단순한 세계가 오히려 다채롭고 다산다난하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을 알고 있는 독자라면 목가적인 분위기를 연상 또는 기대할 수도 있겠지만, 양과 씨름하며 사는 초보 목장인의 일상이 가감없이 묘사됨으로써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읽을 수 있었다. 특히, 풍자적이고 자조적인 표현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현대인이 라면 누구나 한번쯤 가져봄직한 다양한 삶의 모순과 고민들을 재치있게 전달함과 동시에 섣부르게 정형화된 해답을 단정하지 않으려 노력한 점이 좋았다. ============================== ㅡ 8월 30일 오늘은 어린 수컷들이 있는 방목장에 가 보지 못했다. 오늘도 털 뭉치처럼 굴러다녔겠지. 대신 암컷들이 먹는 물을 체크했다. 그러고는 방목장에 들어가 암컷들 사이에 한참 서 있었다. 양들이 인간의 존재를 자연스레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자 양들과 관계를 맺는 방법이다. 인생이라는 사업과 마찬가지로 목축 사업에서도 '신뢰' 라는 상품은 유통기한이 짧다. p 032 여름 "내가 양의 주인이 아니라 양이 나의 주인인 느낌이랄까." ============================== ㅡ 9월 5일 목축민의 마음을 조금씩 이해하고 있다. 예컨대 날씨를 비롯한 여러 변화를 더 이상 감각의 대상으로 보지 않게 됐다. '오늘은 날씨가 좋군.', '오늘은 날씨가 고약한걸.'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그날의 날씨에 대처할 방법을 찾는다. 추워지면 물이 얼지 않게 수도관을 살핀다. 바람이 불면 축사 문짝이 떨어져 나가지 않게 손본다. 비가 오면 우비를 챙긴다. 풀잎 색깔이 변하면 슬슬 겨울용 사료를 준빈한다. 이런 모든 것 속에 근원적인 아름다움이 존재하리라 믿으면서. p 037 가을 "우리가 살면서 하는 일이 전부 합리적일 수는 없지 않는가." ============================== ㅡ 2월 2일 양 말고 다른 동물을 키우는 사람은 어떤지 모르겠다. 예컨대 개를 키우는 사람은 개 한 마리 한 마리에게 애책을 느끼는 것 같은데 양을 키우는 나는 그렇지 않다. 일이라는 생각으로 계획을 세우고 시간을 정해서 하는 게 아니라 그냥 한다. 양을 키우는 생활은 항상 양에 신경써야 한다는 점에서 취미 생활과 다르다. 1년 365일 양에게 해 줘야 할 일이 있고, 만약에 대비해 하루 24시간 양들 가까이에 있어야 한다. 헌신이라면 헌신인데 헌신의 대가가 뭐냐고 물으면 잘 모르겠다. 양고기? 양털? 그보다는 헌신하는 삶 그 자체가 대가라고 하는 편이 맞겠다. 어떻게 하면 충만한 삶을 살 수 있을까 같은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삶을 꽉꽉 채워 주는 녀석들이 200미터 앞 방목장에 살고 있다. 되새김질에 여념이 없는 녀석들, 꽉 찬 게 뭐고 덜 찬 게 뭔지 전혀 모르는 녀석들이다. p 091, 092 겨울 "계획을 세우고 시간을 정해서 하는 게 아니라 그냥 한다." ![]() ============================== ㅡ 2월 9일 기후가 변하면서 지구상에 생명체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희박해지고 있다는 기사를 읽는 중이다. 그냥 이렇게 끝나는 걸까? 양들도 이런 걱정을 하는지 잘 모르겠다. 어쨌든 양들과 함께하는 삶이 지속 가능한 삶인 것 같기는 하다. 옛날에는 양만 있으면 충분했다. 양을 가지면 먹을 음식, 추위를 막아 주는 온기, 입을 옷, 장난감 등을 다 가진 것과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거의 모든 것을 중국에서 수입한다. p 094 겨울 "계획을 세우고 시간을 정해서 하는 게 아니라 그냥 한다." ============================== ㅡ 4월 10일 엄마 두 마리가 계속 새끼를 밀쳐 내며 젖을 못 먹게 하고 있다. (우리 목장에서는 출산한 양을 엄마라고 부른다) 우리는 이런 엄마들을 하루에도 몇 번씩 붙들고 있어야 한다. 처음에는 그런 엄마들에게 화가 치밀었지만 나중에는 엄마도 그저 양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양에게 인간의 모습을 투영할 순 없다. 양과 인간은 전혀 다른 동물이다. p 104 봄 "보살펴 주어야 하지만 끼어들어선 안 된다." ============================== ㅡ 10월 19일 도축이라는 게 말로는 설명이 안 된다. 너무 끔찍한 장면이라서일 수도 있고, 삶과 죽음의 경계를 인식한다는 게 원래 불가능한 일이라서일 수도 있다. 살아 있거나 죽어 있거나 둘 중 하나다. 삶과 죽음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다. 무(無). 보이드. 안티매터. 스톡홀름에 자리한 유원지 그뢰나룬드1 에는 프리트팔2 이라는 놀이기구가 있다. 온몸이 싫다고 비명을 지르고 모든 반사 신경이 거부 반응을 일으키지만, 일단 올라탄 이상 중간에서 내릴 수 없다. 그리고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한다. 다만 도축에는 짜릿함도 없고 끝났다는 안도감도 없다. 감정이라면, 다 이루었다는 처참한 감정이 있을 뿐이다. 양치기의 한 해는 도축이 끝나야 비로소 끝이 난다. 양치기의 삶은 도축이 끝나야 비로소 한 편의 대서사시로 완성된다. 1) 그뢰나룬드 : 유원지 이름으로 '푸른 초원' 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2) 프리트팔 : 자이로드롭과 비슷한 형태의 놀이기구. '자유의지로 타란'이라는 뜻 p 128, 129 또 가을 "눈부신 장면도 없고 신바람 나는 순간도 없다." ============================== ㅡ 5월 3일 다들 느끼고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지속 불가능하다. 이 세상에 지속 가능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세상이 지속 가능했던 적도 없다. 그런데 다들 별일 아닌 척한다. 좋은 생각이 있는 척, 바꿀 수 있는 척한다. 왜들 그러는지 잘 모르겠다. 내가 임업에 약간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유산으로 물려받은 숲이 조금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p 166 또 봄 "아무 생각 없이 할 수 있게 되기까지 몇 년이 걸린다." ============================== ㅡ 6월 5일 내가 하는 말이 조금 뻔하다는 것은 나도 알고 있다. 어쩌면 틀린 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이런 말뿐이다. 어쩌면 나는 양들과의 관계 속에 내 과거를 투영하고 있는지 모른다. 어쩌면 나는 지금 양의 텅 빈 눈 속에서 내 어린 시절을 찾고 있는지 모른다. 어쩌면 나는 이렇게 문명과 자연 사이의 어딘가에 머물고 싶은 것뿐인지도 모른다. … p 176 그리고 또 여름 "단순한 세계가 오히려 다채롭고 다산다난하다." ============================== ㅡ 6월 25일 나는 채식주의자다. 그래도 우리가 키운 양의 고기는 먹는다. 윤리라는 게 참 까다롭다. 나는 판매용 고기를 생산하는 육류 산업이 얼마나 잔혹한지를 깨달으면서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동물도 신경계가 있고 감정과 기분이 있는 존재라는 사실에도 눈뜨게 되었다. 고기는 죽은 생명체의 잔여물, 곧 도막 난 시체다. 한때는 육식에 대한 거부감이 식인에 대한 거부감만큼 컸다. 그러다 양들이 생겼다. 애들도 생겼다. 사는 게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다. 그러면서 다시 고기를 먹었다. 단, 고기를 먹더라도 옛날처럼 아무 고기나 먹지 않고 내 손으로 죽인 동물의 고기만 먹었다. 윤리적으로 최선의 태도를 계산해 내기란 불가능하다.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옳고 그름을 계산하다 보면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우수리가 항상 생기기 마련이다. 왜 누군가를 사랑하는지를 정확하게, 철저하게 설명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럴 수 있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투자일 것이다. p 186, 187 그리고 또 여름 "단순한 세계가 오히려 다채롭고 다산다난하다." ============================== ㅡ 6월 27일 자기 삶을 해명해야 하는 번잡함을 피하려면 정상적인 일자리를 얻고 정상적인 가정을 꾸리고 정상적인 친구들과 어울리며 정상적으로 살아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가장 문제적인 삶이 바로 그런 정상적인 삶이다. 생태계의 관점에서 보면 말살 체제일 수밖에 없고 세계 인구의 절반에게는 그야말로 아파르트헤이트 체제일 수밖에 없는 이 전 지구적 정치·경제 체제에서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이 체제의 공범자이면서 동시에 터무니없는 부당 수혜자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런 사람 중에 상당수, 아니 절대다수는 얼마나 염치가 좋은지 위험 지역과 빈곤 지역에서 탈출해 온 사람들을 이 나라에 몇 명이나 들어오게 할 것인가 상한선을 정하기까지 한다. 우리가 누리는 풍요가 우리만 누려야 할 타고난 권리라도 된다는 듯이. p 191, 192 그리고 또 여름 "단순한 세계가 오히려 다채롭고 다산다난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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