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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의 일기를 읽어보게 되었다. 존 웨슬리(요한 웨슬레 라고 배웠었다.)에 대해서는 감리교의 창시자이고 형제가 많았다는 것 정도인데 15번째 아들이었다니 놀랄 일이다. 존 웨슬리의 어머니의 자녀교육에 대하여도 신앙교육을 철저히 했다고 알고 있다. 일기에 보면 어머니에 대한 부분이 나온다. 어머니인 스잔나 웨슬리 여사의 '규칙'들은 현대를 사는 우리들이 지금 실행하여도 좋을 것 같다. 1. 누구든지 잘못하였다고 생각될 때 그것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다시는 안하기로 약속하면 때리지 않는다. 2. 거짓말이나 훔치는 일이나 교회안에서 장난치는 일이나 주일날 장난치는 일이나 복종을 안하는 일이나 싸우거나 하는 등등의 죄가 되는 일을 했을 때에는 꼭 벌을 준다. 3. 똑같은 잘못을 두번 혼내지 않는다. 4. 스스로 생각해서 순종하는 모습을 보였을 때에는 항상 칭찬해주고 자주 상도 준다. 5. 순종하거나 남을 기쁘게 하려고 마음먹고 행동했을 때는 제대로 되지 않아도 잘 받아들여 준다. 6. 예의범절을 바르게 하고 남의 물건이면 비록 그 값어치가 일전짜리 핀 하나라도 침해하지 말고 주인의 허락이나 동의 없이는 만지지도 말아야한다. 이 법칙은 아이들에게 아무리 가르쳐도 모자람이 없다, 선생이나 부모들이 마땅히 이렇게 해야 할 텐데 막상 실천을 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보는 것 같이 부끄럽게도 정의를 무시하는 일들이 생겨난다. 7. 약속을 하면 엄격히 지켜야 한다. 선물은 일단 주었으면 준 사람으로부터 권리는 옮겨 간다. 8. 글을 잘 읽게 될 때가지는 여자에게 일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 그 다음에는 같은 원리로 일을 가르친다. 스잔나 웨슬리의 '규칙' 웨슬리의 일기를 통해서 우리는 열정적인 신앙의 생애의 한 표본을 볼 수 있다. 사람이 하나님에게 사로잡혀 그의 일생을 온전히 바칠 때, 하나님이 그를 얼마나 잘 쓰실 수 있는지 존 웨슬리는 여실히 보여준다. 매년 평균 8천 마일 이상 말을 타고 다니면서, 1년에 1,000번 이상 설교를 하였다. 강인한 체력, 끊임없는 열정, 그 매력적인 인격과 경건은 그 누구도 따르지 못할 정도였다. 우리는 위대했던 하나님의 사람의 일기를 통해, 그가 겪은 인간적인 고뇌와 갈등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큰 영향력을 남겨 놓았는지 생생하게 알 수 있다. 8세기 영국을 그의 복음전도 활동을 통하여 피의 혁명으로부터 구원해 냈다는 역사가들의 평가를 받을 만큼 위해한 신앙의 역사를 만들어 낸 존 웨슬리의 일기를 한장한장 읽다보면 열정적인 신앙의 생애를 만나게 된다. 담담하게 기록한 하루하루의 기록에서 존 웨슬리의 속사람과 하나님께로 향한 그의 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사람이 하나님에게 사로잡혀 그의 일생을 온전히 바칠 때, 하나님이 그를 얼마나 잘 쓰실 수 있는지 존 웨슬리는 여실히 보여준다. 26권으로 제본되어 남아있는 존 웨슬리의 일기를 통해 인류구원의 역사에 위대한 족적을 남긴 존 웨슬리를 만날 수 있다. 자녀를 키우는 엄마로서, 신앙인이라고 자부하는 한 크리스찬으로서 많이 본받고 배워나가고 싶은 신앙의 선배의 모습을 좀 더 세밀하게 만나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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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감리교회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 목사의 일기를 선별하여 번역한 책이다. 존 웨슬리 목사가 남긴 신앙일기는 4권 분량으로, 퍼시 리빙스턴 파커에 의해 선별되어 압축된 1권 분량의 일기를 담고 있다. 책의 내용과 구성은, 존 웨슬리 목사가 1735년 북아메리카 조지아로 선교활동을 떠날 때부터 1790년 80대 후반의 노구를 이끌면서도 왕성한 목회활동을 벌이는 생애 말년의 시기까지 시간을 따라 가며, 존 웨슬리 목사가 기록한 일상 생활과 신앙에 관한 고백과 여정, 목회 활동과 관련되어 일어나는 가지 각색의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다. 1703년에 태어나 18세기를 관통하는 시기를 살았던 웨슬리 목사는 30대 초반 영국의 식민지였던 북아메리카(미국)의 조지아 주로 선교 활동을 떠났다가 독일인 목사를 만나 자신의 신앙에 대해 각성을 하게 된다. 영국으로 돌아온 웨슬리 목사는 독일 교회의 방문에서 영향을 받아, ‘하나님의 은총으로 영혼이 힘을 얻고 믿음의 능력을 생활 속에서 찾아 나갈 수 있다’는 새로운 기독교 신앙을 깨닫게 되고, 소위 ‘감리회’라고 불리는 새로운 교회 운동을 펼쳐 나가게 된다. 18세기 당시 영국의 성공회와 북아메리카의 칼빈주의 개신교회, 양쪽 진영으로부터 ‘이단’이라는 공격과 비난을 끊임없이 받고, 대중들로부터도 터무니없는 비방과 모욕을 받을 때도 있지만, 웨슬리 목사는 대부분의 경우 적극적인 대응을 피하는 대신, 일부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강력한 대처를 하여 감리회의 유지와 확장을 선도하는 리더십을 발휘하게 된다. 당시 다양한 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펼쳤던 웨슬리 목사는 다양한 기독교 종파의 지도자들과도 논쟁을 벌이기도 하고, 설교나 목회 중에 방해 받는 싸움이나 소란을 겪기도 하고 말에서 떨어지거나 마차가 뒤집어지기도 하는 등의 다양한 사건과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인상 깊은 점은, 웨슬리 목사가 어느 지역에서 공개 설교를 하든지 간에,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청중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는 것이다. 그가 찾아간 곳은 런던 같은 대도시뿐만 아니라 섬이나 스코틀랜드 지역의 탄광촌이나 도서 산간 벽지를 가리지 않고 다양했지만, 청중의 규모나 설교를 듣고 난 후의 반응이 거의 비슷한 것이 신기한데, 아마도 웨슬리 목사가 가진 매력 중에 한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18세기 중반 이후 영국의 산업 혁명으로 산업 시대와 자본주의 시대로 접어들게 되면서, 웨슬리 목사가 목격하면서 개탄을 금치 못했던 당시 만연했던 개인의 타락과 개인과 개인 사이의 끊임없이 발생하는 분쟁의 모습은 지금과 비교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도 놀랍게 느껴진다. 감리회의 출발이 신앙의 자각과 선교 활동의 일환으로 선교 조직을 구성한 데서 비롯되었다는 역사도 새삼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엄청나게 벌어진 사단을 감정적인 소회 없이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 정도로 매우 담담하게 기술하는 웨슬리 목사의 태도는 접할수록 인격의 깊이를 느끼게 해준다. 위대한 설교자이자 목사였던 존 웨슬리의 생애를 통해 감리교회의 역사와 18세기 영국의 종교와 사회상을 파악할 수 있는 책이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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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회의 창시자이자 신실하고 능력있는 복음 전도사역자로 역사에 기록된 존 웨슬리의 일기이다. 존 웨슬리의 신앙과 경건한 생활, 구령의 열정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 저기서 익히 전해 들어왔지만, 그의 아내가 악처에 가까웠는지는 전혀 몰랐는데..책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그런 가정의 시련, 관계 속에서도 사역에 힘쓰고 신실함을 지켰다는 것에 더 감동이 되었다. 어떤 날짜는 1-2줄, 3-4줄의 간단한 행적을 기록한 글이기도 하지만, 대부분 사역에 관련된 기록이기 때문에 은혜롭게 읽을 수 있다. 모든 상황 가운데 하나님께 감사하고 의지하며 신뢰하는 신앙을 배울 수 있었다.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추구하고, 자신의 영혼 상태와 신앙 모습에 고민하며 회개하고 선을 행하는 일에 집중하는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의 4가지 결의 사항 중에는 "계속해서 진지하게 노력하며 잠시라도 경박한 행동이나 웃음거리를 즐기는 일에 빠지지 않는다."라는 구절이 있었는데.. 예능 프로를 보며 자주 낄낄대는 내 모습과 비교가 되었다.ㅜㅜ 또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않는 말은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결의도 있었다. 나의 입술의 말과 생각은 그에 비하면 얼마나 비뚤어지고 잘못되어 있는지 반성하게 만들었다. 온 세계를 교구로 삼았고, 세계 어느 곳에 가서 있을지라도 구원의 기쁜 소식을 기꺼이 들으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일이 온당하고 정당하며 나에게 허락된 의무라고 생각했던 사역자 존 웨슬리.. 오직 하나님의 뜻과 영광을 추구하며, 복음 전파와 거룩한 경건함, 선을 행하는 일에 집중했던 일생을 배울 수 있는 책이다. 나는 그의 삶의 모습과 자세를 본받을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이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부르며 동행할 수 있는 신자라는 사실에.. 존 웨슬리와 같은 사람과 동일한 구원의 은혜와 복음 전파의 사명을 받은 자라는 것에..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드릴 뿐이다. 나 역시 존 웨슬리처럼, 하나님의 영광과 뜻을 위하여 거룩하고 경건하며, 온전하고 흠없이 전부 쓰임받을 수 있는 삶이 되기를 소망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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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웨슬리는 온 세상은 나의 교구다라는 말과 홀리 클럽으로 유명하다. 홀리 클럽을 통해서 타락한 영국의 변화와 부흥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예나 지금이나 사회는 타락해 간다. 오늘 이 사회를 보더라도 상상하지 못할만한 추악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개혁을 원하고,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기를 원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변화를 원하면서도 변화의 사람이 되기는 원하지 않는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 사회가 어떻다고 이야기는 하지만 그것을 바꾸고자 하는 개혁의 사람, 변화의 사람이 되려고는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러나 변화는 그것을 시작하는 사람을 통해서 시작된다. 변화를 원한다면 변화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존 웨슬리의 생애이고, 그의 일기이다.
존 웨슬리의 일기는 감리교의 창시자로 18세기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웨슬리의 생애 가운데, 그가 썼던 일기를 모아 놓은 책이다. 이 책 안에는 1735년 조지아 선교사로서의 웨슬리의 일기를 시작으로 1790년 웨슬리의 마지막 순간들에 대한 일기의 내용들이 담겨져 있다. 존 웨슬리의 일기는 그의 삶을 볼 수 있게 해 준다. 18세기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던 웨슬리의 생애를 그의 일기를 통해서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일기 내용을 통해서 그의 사상과 그가 어떤 삶을 추구하였는지를 보게 된다. 그가 가는 곳곳마다 날짜별로 되어 있는 짤막한 일기에서부터 그곳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을 통해서 오늘 이 시대의 독자들에게 그의 삶을 통하여 도전하고 있다. 존 웨슬리의 일기에는 그가 경험했던 이야기들이 참 많다. 자신의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짐을 느꼈다거나, 온 세계를 자신의 교구로 여겼던 고백이라든지, 자신의 삶에서 결단했던 부분들이나 자신이 행동한 것과 오랬동안 지켜왔던 성격과 조화시켜 볼 수 없었다는 고백들은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생생한 그의 감정과 그의 마음 그리고 결단을 읽을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그는 영국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온 세상을 자신의 교구로 생각하고 살아간 그의 삶의 이야기는 우리의 생각의 지평을 넓혀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의 시각을 다시 설정할 수 있도록 도전하고 있다. 웨슬리의 일기는 18세기를 살았던 웨슬리의 사상과 열정적인 신앙의 모습, 고뇌와 갈등이 담겨져 있지만 그의 삶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생각과 마음을 깨울 뿐만 아니라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하게 만들어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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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압니까?" 나는 잠시 멈추었다가 "나는 그분이 세상의 구세주이심을 압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는 대답하였다. "나는 그분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을 압니까?" 나는 대답하였다. "나는 그분이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죽으셨을 것으로 희망합니다." 그는 다만 이렇게 덧붙였다. "당신 자신을 압니까?" 나는 "압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빈말 같아서 두려웠다"(43).
선한목자교회 유기성 목사님이 하시는 '영성일기 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동참하고 있습니다. 영성일기 쓰기는 24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며 예수님과 동행하는 날들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교회마다 한 사람을 예수님의 제자로 세우기 위해 각종 훈련 프로그램들이 있습니다. 문제는 훈련을 받으면 그때는 뜨겁다가 일상으로 돌아가면 다시 마음 안에 갈급함이 생기고, 그러다 보면 또 다른 훈련 프로그램을 기웃거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프로그램이든 제자 훈련에는 유효 기간이 있고, 그 유효 기간이 짧다는 것이 공통된 고백이기도 합니다.
그러다 성경의 시편도 다윗의 영성 일기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우구스티누스, 조나단 에드워드, 잔느 귀용, 아펜젤러, 짐 엘리엇, 허드슨 테일러 등 수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일기'를 썼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한 일상을 기록으로 남긴 것입니다. 감리교의 창시자로 영국 전체를 누비며 18세기 영성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가장 위대한 그리스도인들 중 한 인물로 손꼽히는 존 웨슬리도 성실하게 일기를 기록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CH북스에서 세계기독교고전 시리즈로 발간한 <존 웨슬리의 일기>는 "아직도 26권으로 제본되어 보존되고 있는 웨슬리의 신앙일기"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부분"을 선별하여 4분의 1로 축약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만한 분량은 아닙니다. <존 웨슬리의 일기>는 한마디로 일상에 뿌리박은 신앙의 여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 그 사람의 진면목을 알려면 가족들과 생활하는 모습을 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존 웨슬리의 일기>는 그보다 더 날 것 그대로의 존 웨슬리의 민낯을 보여줍니다. '위대함' 뒤에 숨은 연약함, 두려움까지 그가 직접 고백하는 목소리로 들을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일기>는 그 어떤 위대한 설교가가 남길 수 있는 명설교보다 더 위대한 명설교라는 생각마저 듭니다.
<존 웨슬리의 일기>는 자연계에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있듯이, 우리 영혼, 우리 영성에도 사계절이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복음 안에서 살아간다고 해서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님을, 매일 믿음의 씨름을 한다고 하면서도 "아직도 어설픈 종교생활을 하고 있다"는 깨달음 앞에 좌절하기도 하는, 그리스도인들 중 가장 위대한 인물로 꼽히는 그에게도 "위험이 가까이 있지 않는 동안은 나 자신을 믿고"(62) 살았다고 탄식할 만큼 연약한 순간들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기도 합니다. 그 고군분투와 오늘의 나의 믿음의 씨름이 겹쳐질 때, 믿음 안에 산다고 하면서도 왜 나의 믿음은 이리도 연약한지, 쓰러지고 넘어질 때마다 자책했던 마음이 말할 수 없는 위로를 받기도 합니다.
"나는 온 세계를 나의 교구로 생각합니다. 이 말의 의미는 내가 세계 어느 곳에 가서 있을지라도 구원의 기쁜 소식을 기꺼이 들으려는 모든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일이 온당하고 정당하며 나에게 허락된 의무라고 생각한다는 말입니다. 이 일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셔서 내게 맡기신 일이라는 것을 나는 확신합니다"(86-87).
<존 웨슬리의 일기>는 "온 세계는 나의 교구"라고 외쳤던, 존 웨슬리의 그 유명한 말의 의미가 정확하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소리 없이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 어떤 해설이나 주석보다 그의 목소리로 직접 들을 수 있어 그 감동이 배가 됩니다. <존 웨슬리의 일기>는 자신의 생애를 직접 증언하는 전기처럼 읽어도 좋지만, 묵상집처럼 되새김질을 하며 읽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천천히 읽어가다 보면, 예수님과 교제를 나누듯 웨슬리와 교제를 나누는 듯한 분위기에 사로잡힐 때도 있습니다. <존 웨슬리의 일기>를 읽으며, 하루하루 주님과 동행했던 그 힘찬 발걸음 위로 나의 발걸음도 겹쳐지기를 기도해봅니다. 존 웨슬리를 제대로 알려면 그의 일기를 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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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한 그룹의 개신교 목회자들이 생전에 존 웨슬리 목사가 설교하던 영국의 모 교회를 방문했다. 목회자들 중 한분이 일행을 안내하는 현지 가이드에게 물었다. "존 웨슬리 목사님 생전 그의 성공적인 목회와 복음 사역의 비결은 무엇입니까?" 현지 가이드가 답했다. "목사님! 그 비결을 알고 싶으십니까? 그럼 알려드리겠습니다. 자! 강단으로 올라오십시요! 그리고 존 웨슬리 목사님처럼 강대에 무릎을 꿇으십시요!" 라고 말했고, 질문을 던진 한국인 목사님은 현지 가이드가 시키는 대로 따라했다. 존 웨슬리가 평소에 무릎을 꿇었던 동일한 장소에 동일한 모습으로 무릎을 꿇은 한국인 목사님에게 현지 가이드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잘 하셨습니다. 자! 이제는 우십시요!"
이 짧막한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개신교 교단 중 감리교의 창시자인 18세기 영국의 위대한 복음전도자이며 목회자인 '존 웨슬리' 의 그 구령의 열정 중 한 토막을 엿볼 수 있다. 그의 기도의 모습까지는 따라할 수 있지만 잃어버린 수 많은 영혼들에 대한 그 단장의 고통과 함께 흘리는 눈물의 기도는 결코 쉽게 모방할 수 없었다는 일화는 그가 얼마나 복음과 영혼에 대한 사랑, 하나님을 향한 깊은 경외함을 가진 복음 전도자였는지를 일깨워준다.
본서는 이렇게 1703년 18세기 초에 태어나 1791년 세기말까지 살면서 거의 18세기 전체를 복음 전파 하나만을 일생일대 삶의 목표로 여기며 살아내었던 위대한 영적 거인의 발자취가 기록된 저작이다. 존 웨슬리 본인의 일기를 후에 편집자인 '퍼시 파커'가 축약하여 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존 웨슬리의 일생을 가장 집약적으로 알려주고 있기에 현대의 신자들에게 있어서 감리교를 처음 시작한 존 웨슬리의 일대기를 이보다 더 상세하게 알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은 드물 것이다.
1735년 조지아 선교사로서의 행보부터 시작되는 그의 일기는 그가 숨을 거두기 직전 해인 1790년까지의 기록으로 남겨져 있다. 옥스퍼드 대학 시절 존 웨슬리는 '신성 클럽(Holy Club)' 을 조직하여 찬송가 작사가로도 잘 알려져 있는 자신의 동생 찰스 웨슬리와 자신 못지 않은 위대한 영적 거인 조지 휫필드 등과 같은 경건한 믿음의 친구들과 함께 성경을 공부하고 기도하며 어려운 이웃을 구제하는 등의 신앙운동을 통해서 젊은 시절부터 이미 복음 사역자의 초석을 놓기 시작했다. 이후 웨슬리는 동생 찰스 웨슬리와 함께 미국 조지아로 가는 배에 오르는데 그 배에는 한무리의 독일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타고 있었다. 원만할 것만 같았던 그들의 뱃길은 이윽고 배를 한번에 산산조각 내버릴 것만 같은 무시무시한 폭풍을 만나게 되고 배에 탄 많은 승객들은 죽음의 공포 앞에 두려워 떨기 시작한다. 하지만 웨슬리는 이러한 순간에 믿기지 않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그것은 이제 곧 배를 삼킬 듯 달려드는 폭풍우 속에서 한치의 요동함도 없이 조용히 시편을 낭독하는 한무리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이러한 믿기지 않는 장면에 대해 웨슬리는 그의 일기에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1736년 1월 25일 주일 (중략) 예배가 시작되면서 시편이 낭송되고 있는데 파도가 덮쳐서 큰 돛대가 산산 조각이 나고 배를 뒤덮어 갑판과 갑판 사이로 쏟아져 내렸다. 마치 큰 바다 깊은물이 우리를 다 삼켜 버릴 것 같았다. 영국 사람 사이에서는 귀를 찢을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독일 사람들은 조용히 계속하여 시편을 낭송하였다. 나는 후에 그들 중 한 사람에게 물었다. "당신은 두렵지 않았습니까?" 그러자 그는 "아니오,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입니다" 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나는 다시 물었다. "그렇지만 당신네의 부인들과 어린이들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부드럽게 대답하였다. "아니오, 우리네 부인들과 어린이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일기에는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개신교 선교 역사 속에서 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의 사람들이 바로 독일 경건주의의 대표적 아이콘인 모라비안 교도들이라고 소개되고 있고, 이때 이들의 이러한 죽음을 초월한 깊은 경건함은 이후 존 웨슬리가 평생토록 복음 사역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매우 큰 영감과 더불어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전한다.
본서는 일기 형식으로 기록되었기에 내용이 매우 스피드하게 전개된다. 대부분 존 웨슬리가 영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는 이야기가 시간과 장소를 따라가며 기록되어지고 있는데 이를 통해서 독자는 교통수단이나 통신수단도 변변치 않았던 지금으로부터 300여년 전의 그 위대한 복음 사역의 한 현장을 함께 동행하며 직관하는 듯한 현장성을 실감나게 맛볼 수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다. 연평균 8000마일을 말을 타고 다니면서 연 1000회가 넘는 설교를 했다. 교구 목회자가 아닌 순회 복음 전도자였기에 그의 대부분의 설교 장소는 야외였으며 그렇기에 어느 곳이든 그가 발을 딛고 서는 곳은 그의 교회였고, 지나가다 멈춰서 그의 설교를 듣게 되는 모든 이들은 그의 회중들이었다.
그가 영국 국교회의 배경속에 있었지만 감리교라는 새로운 교단의 시작은 분명 당시 시대와 종교적 배경 속에서 쉽사리 받아들여질 수 없는 일이었기에 존 웨슬리의 복음 사역은 환영을 받기보다는 감리교를 이단으로 여기는 사람들의 비난과 천대 심지어는 집회를 방해하는 폭력배와 부랑자들로부터의 갖은 폭력과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만드는 칼부림과 같은 고난과 핍박의 시간들이 더 많았음을 본서를 통해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웨슬리 그가 자주 애용했던 주 교통수단인 말에서 떨어지는 일은 다반사였고, 말을 타고 가다가 수렁과 물에 빠지는 일과 타고 가던 마차가 뒤집어지고, 배가 파선될 것 같은 폭풍우를 만나는 등의 자연적인 위협들 또한 존 웨슬리의 복음 사역에 있어서 크나큰 위험 요소로 빈번하게 상존했다. 더군다나 가정적으로는 남편의 서류들과 편지들을 몰래 훔쳐 내용을 변개하여 적수들과 신문사에 넘겨주어 남편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웨슬리가 전도 여행을 가면 질투와 의심에 사로잡혀 100마일 씩 말을 달려 남편을 쫓아가고, 남편에게 난폭하게 손찌검을 하며 남편의 머리털을 한줌씩 잡아 뽑는 등의 악행을 일삼았던 3대 악처 중 하나인 아내를 두었다는 사실은 위대한 복음 전도자의 삶에 있어서 매우 아이러니컬한 사실이면서 동시에 그의 지난한 인생의 모습을 고스란히 반영해준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롬8:35,38~39)
나는 존 웨슬리의 이러한 고난과 핍박의 상황 속에서도 오직 잃어버린 영혼과 하나님을 향한 그 끊을 수 없는 사랑과 열정을 목도하며 사도 바울의 위와 같은 고백을 떠올린다. 위험천만한 삶의 정황들과 자연의 위협, 수 많은 대적자들의 비난과 방해, 무지한 백성들과 폭력배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칼 앞에서도 결코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자신이 끊어지지 않을 것임을 굳게 믿고 신뢰한 한명의 위대한 영적 거인의 삶을 통해 잃어버려졌던 수 많은 영혼들이 지옥으로부터 영생을 얻게 되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이 감격의 장면들을 본서를 통해 직접 확인해보라! 그리스도의 사랑과 구원의 복된 소식을 전하는데 있어서 웨슬리에게는 이러한 모든 장애들은 그저 한낱 작은 고민거리도 되지 않았다. 이러한 그의 불굴의 의지와 복음과 구령의 열정을 가로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오직 그의 마음 속에는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불타는 듯한 갈급함만이 있을 뿐이었고, 그것은 '온 세상이 나의 교구다' 라는 그의 외침 속에 아주 잘 녹아있다.
88세의 일기로 그가 그토록 사모했던 하나님의 품에 안겨 영원한 안식을 누릴 때까지 결코 진정한 쉼이 없었던 이 위대한 전도자의 삶을 바라보며 나는 오늘 또 다시 겸손히 나의 영혼의 옷깃을 여민다. 한번 왔다가는 인생을 누구는 이렇게 영혼의 주인되신 분을 위해 자신의 삶을 아낌없이 불사르는 삶을 살다갔는데 또 다른 누구는 오늘도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고민하며 연약한 믿음의 한계성을 습관처럼 내밷고 살아가니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나는 개인적으로 존 웨슬리가 시작한 감리교의 근간을 이루는 알미니안 신학에는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진리에 대한 견해가 조금은 다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임을 알기에 존 웨슬리의 일기를 통해 다시 한번 그의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영혼에 대한 불붙는 듯한 열정에 진심어린 박수와 함께 존경의 고개를 숙인다. 거인의 발자취! 배우고 싶고, 따르고 싶어 눈물이 나는 아침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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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의 삶은 간결하고, 진실되고, 헌신적이여야 한다고 한다. 내가 비기독교인으로 교회 밖을 서성일떄 교회 안으로 이끌었던건 하나님의 말씀을 진심으로 믿고 기독교인의 삶을 몸소 실천하는 선교사님들 덕분이었다. 이러한 삶을 앞서 실천하고 위기에 빠진 영국교회에 구원의 영향을 미친 존 웨슬리. <존웨슬리의 일기>는 1735년 10월 14일부터 1790년 10월 24일까지 그가 직접 하루하루를 기록해 놓은 일기이다. 그동안 기독교인이지만 어렴풋하게 알았던 존 웨슬리. 그는 유한한 수명을 가진 한 인간이 할 수 있는 범위에서는 최고 수준의 영향력을 18세기 전체에 걸쳐 미쳤던 아주 강인한 하나님의 사람이었다고 한다. 감리교의 창시자로 18세기에 엄청난 영향을 끼친 존 웨슬리의 생애를 <존웨슬리의 일기>를 통해 자세히 알수 있었다.
1738년 5월 24일 올더스게이트가의 한 모임에서 마르틴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론이 낭독될때 그는 회심의 경험을 가지게 되고 그가 선언한 목표"할수 있는 한 생동적이고 실제적인 신앙을 고양시키고, 하나님의 은혜로 사람들의 영혼속에 하나님의 생명을 낳고 보존하고 성장시키는것"으로 일생을 사역에 바쳤다. 교회들이 그에게 등을 돌리는 순간에도 오히려 교회 밖으로 나와 광부들을 만나고 보다 더 활발하게 선교활동을 하게 되고 이를 조직화 하게 되었다고 한다. 웨슬리의 일기는 1735년 10윌 14일자로 처음 시작된다. 책에는 웨슬리가 기록한 일기의 일부분을 소제목으로 달아두어 보다 쉽게 따라갈 수 있게 하여서 훨씬더 그의 삶을 따라가 보았던 것 같다. 일기속에서 웨슬리가 받은 은혜와 또 그속에서의 인간적인 고뇌 또한 느낄수 있었다. "숨 쉬는 동안 나를 지으신 이를 찬양하라 또한 내 목소리가 죽음 속으로 사라지는 때에도, 나의 숭고한 힘을 다하여 찬양하리. 생명과 생각과 존재가 계속되는 한, 영원히 죽지 않는 시간 속에서도 내 찬양의 날은 끝나지 않으리니" 마지막 순간까지, 잠잠히 생의 끝을 놓고 하나님나라 가는 순간까지 하나님의 사람이었던 존 웨슬리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뜨거워진다 . 존 웨슬리의 삶이 감동적인 것은 그의 삶자체가 진실하고 성경적이였기 때문이다. 그의 말년에 웨슬리와 함꼐 생활하였던 헨리무어는 그는 정확성과 시간을 엄수함으로 엄청난 일을 안정된 상태에서 다 해냈다고 한다. 평생을 살아있는 설교와 종교적인 실천으로 하나님의 제자의 삶을 살아간 웨슬리! 하나님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간을 사용하시려고 하실때 엄청난 능력을 부어주심을 .. 깨닫게 되는 대목이었다. 평생을 그리스도인으로 전심으로 살았던 그의 이야기를 읽으며 흐트러진 내모습을 진심으로 회개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던 시간이었다. * 도서만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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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웨슬리’ 목사란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 그런데 기억을 해보니 어렸을 때부터 감리교회를 다녔었는데, 항상 공과에 등장하던 한 인물이 생각나게 되었다. 바로 ‘요한 웨슬리’라는 인물이었는데, 내가 다녔던 감리교회에서는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매년 내용을 더 해가며 이 ‘요한 웨슬리’라는 인물에 대해 가르쳐주곤 했었다. ‘요한 웨슬리’를 교회를 믿는 사람도 누구지할까 의아해할 수 있지만, 감리교에서 가르친다는 것을 보고 느낌이 오는 사람도 있을 수 있듯이 감리교를 창시한 인물이다.
‘루터’와 ‘칼뱅’의 종교개혁으로부터 개신교의 역사가 시작된 것으로부터 다시금 ‘요한 웨슬리’ 그러니까 ‘존 웨슬리’(이하 이것으로 지칭)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은 어쩌면 역사의 반복적인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루터’와 ‘칼뱅’의 다양한 모습보다 ‘존 웨슬리’가 남긴 일기는 신앙적인 영성의 지도자였던 그의 모습과 그의 생각들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고 더욱 더 후세대로 하여금 고민하고 따라가는데 좋은 지침서가 되어준다.
그러나 안타까운 점도 있다. 이 책의 전체가 ‘존 웨슬리’가 남긴 전체의 일기가 아닌 의도적으로 가장 주목할 부분만을 뽑아서 번역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 부분이 오히려 우리에게 이 책을 반드시 읽어야 되는 이유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일기를 돌아보았을 때 항상 즐겁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일기를 돌아보았을 때 우리가 느끼는 것들이 바로 내 인생에도 즐거운 날, 슬픈 날 달리 말하면 날씨가 맑은 날, 비온 날, 흐린 날, 눈 내린 날들처럼 다양한 것이 있었다는 것이다. 목회자로서 매번 은혜 충만한 순간들만 있었을 것 같지만, ‘존 웨슬리’의 일기에는 그러한 가운데 고민하고 나아가는 일들에 대해 우리가 인간으로서 어떻게 주님을 믿는데 더욱 노력해야하는지 생각하게 만들어준다. 그래서 이 책은 신앙인으로서 성경과 다른 또 하나의 좋은 지침서라고 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을 정도로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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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이라면 존 웨슬리(요한 웨슬리)라는 이름은 한 번 이상 들어봤을 것이다. 아니 세계사에서도 등장하는 인물이기에, 아마 누구나 한 번은 들어봤을 이름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가 정동교회인데, 그 교회가 감리교회이다. 그 감리교를 만든 사람이 바로 존 웨슬리다.
성경, 신앙서적 또는 유명한 목회자들의 설교집 등을 읽다 보면 늘 드는 생각들이 있다. 정말 유명하고 대단한 사람인 것 같지만 그들도 우리와 성정이 같은 인간이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그 안에 존경스럽거나 신앙의 본이 되는 모습이 많이 있긴 하지만, 그들 또한 신이 아닌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곳곳에서 만나게 된다.
존 웨슬리 역시 참 어려운 시기를 보내며 전도와 설교를 했던 훌륭한 목회자였다. 지금은 자동차와 비행기 등 교통수단이 상당히 발달함에도 불구하고 설교를 하러 간다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그 당시는 교통수단이 말이나 마차밖에 없었을 때인데도, 8000마일(약 12,874.752km)을 말을 타고 다니면서 1000번 이상의 설교를 했다는 것은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만큼 헌신된 목회자였다는 것은 정말 어떤 말로도 표현하기 힘든 사실이다.
물론 존 웨슬리의 삶 또한 많은 박해와 어려움이 곳곳에 산재해있었다. 크게는 신앙적인 박해나 가정 안에서 아내와의 관계였고, 수시로 삶의 순간에서 나타나는 많은 시험들이 있었다. 하지만 때론 의연하게, 때론 인간적 성정을 나타내면서 문제들 앞에 굴복하지 않았다. 물론 그 중심에는 하나님이 삶의 주인이며, 삶을 인도해가신다는 강한 확신이 있었다.
꽤 장편의 일기지만(실제로는 존 웨슬리의 일기 중 1/4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조금은 지루한 부분도 있었다. 하지만 일기 안을 흐르는 하나님만이 온전히 신뢰할 분이시라는 확신만은 절대 지루하지 않았다.
어느 시대나 박해와 고통은 있게 마련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의 시대 역시 많은 공격들이 있다. 중요한 것은 내 중심이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확신이 사라진 시대 속에서, 내 삶 또한 그분의 영역임을 고백하고 살아갈 때 존 웨슬리가 고백했던 그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임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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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거장들의 삶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이 시대의 축복이다. 시대와 문화가 다르다고 하더라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을 온전히 헌신한 그들의 삶으로 인해 우리가 구원을 받고 평안을 얻게 되었다. 이름도 빛도 없이 순교한 선교사들에 의해 우리의 신앙이 형성되었다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현실에 안주해서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안타깝고 부끄럽기도 하다. 다시금 그 열정과 도전을 덧입고자 존 웨슬리의 일기를 펼쳐본다.
정치의 나라, 종교의 나라가 영국이다. 특히 중세에 가톨릭의 부패로 루터와 캘빈의 영향으로 개신교의 영향력이 커졌고 각종 이단들이 득실거렸다. 그런데 종교개혁이 당시 중산층에게 쏠렸고 귀족계급이나 노동자들이나 농민 등 서민들에게는 영향력이 없었다. 이에 존 웨슬리는 도시와 농촌을 돌아다니며 활동적이며 자립적인 노동자들을 만나 그들에게 설교를 하고 그들을 가르쳤다. 그의 왕성한 활동력이 이를 잘 보여준다. 1년에 8,000마일(약 12,800km)을 말을 타고 달렸다고 한다.
그가 기록한 일기는 사실상 선교 여행 기록이다. 1735년 10월 14일부터 기록하기 시작한 그의 일기는 조지아 선교사로 가기 위해 항구로 가는 과정과 준비, 그리고 여행에서 겪었던 일들과 배에서의 빡빡한 일정들이 상세하게 나와 있다. 그중 일단의 독일 사람들과의 만남이 그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다. 그들은 거센 풍랑 속에서도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굳건한 믿음을 어린아이부터 모든 어린이가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교지에서 겪었던 일들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각종 모함과 배척이 그를 힘들게 했고 결국은 영국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 실패에 낙담하기보다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다. 그리고 그가 기록한 웨슬리의 4가지 결의 사항은 그가 얼마나 경건하게 살고자 했는 지 잘 보여주고 있다. 아마 그는 자주 이것을 되 뇌였던 것 같다. 또한 그가 만나 피터 뵐러라는 사람을 만나는 데 그를 통해 웨슬리 자신이 믿음이 없다는 것을 알고 낙담하여 설교를 더 이상 하지 않고자 할 때 ‘믿음을 갖게 될 때까지는 믿음에 대해서, 믿음이 생기면 그 믿음에 관하여 설교하라’는 멋진 말을 듣게 된다. 신자는 결코 뒤로 물러서지 않아야 함을 배우게 된다. 그는 그 후에도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감추려고 하지 마라. 하나님의 은총에서 멀어지지 마라. 등의 권면을 통해 그를 일으켜 주었다.
그의 일기는 매우 솔직하다. 특히 자신의 허물과 연약함에 대해서 진실하다. 이 글들은 그가 얼마나 강직하고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했는지 잘 보여준다. 그가 독신으로 오랫동안 살았지만 어느 때가 되자 독신보다 결혼하는 것이 하나님께 더 영광이 될 것이라는 주위의 충고를 받아들여 결혼하고자 결단하는 것과 다리를 다쳐 일어설 수 없는 중에도 무릎을 꿇고 안아서라도 설교를 하고 말을 타고 가서 설교를 한다. 그가 말한 것처럼 그는 설교하기 위해서 산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서문에서 그를 위한 글들이 등장한다.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 당시 영국의 사회적 배경과 그의 가족 내력 그리고 결혼 생활 등이 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물론 항상 아쉬움이 있기는 하다. 번역하는 과정에서 자그마한 실수들이 나오고 문장이 매끄럽지 못한 면도 있다. 그러나 인내심을 갖고 읽다 보면 한 신앙의 거장을 내 가슴 안에 담을 수 있다. 이것이 진정한 축복이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