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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의 여지가 없다, 시대를 잘못 태어났다. 여자는 글을 알아서 안 되는 시대, 글을 안다는 죄 아닌 죄인이 되어야 했던 그녀, 허초희. 이름 대신 아무개의 부인으로 살고 기억되는 시대에, ‘초희’라는 이름으로 살고 그 이름을 남긴 그녀, 그녀에게는 호도 있다. 난설헌(蘭雪軒). 홍길동전을 남긴 허균의 누이…. 그녀가 남긴 작품을 알기 이전에 문학 외적인, 이런 전기적 사실로 더 알려진 이름 허초희. 문학 외적인 사실 말고 그녀의 작품을 제대로 읽어보자는 생각에 이 시집을 읽게 되었다.
이 시집은 한시의 형식별로 편집되어 있다. 오언고시 17편, 칠언고시 9편, 오언율시 5편, 칠언율시 9편, 오언절구 9편, 칠언절구 13편, 그리고 <그밖의 시들> 3편과 <부록> 7편의 글이 있다.
이미 알고 있던 작품도 몇 편 있는데, 그중 한 편, 어린 두 자녀를 여읜 슬픔을 노래한 시 ‘곡자(哭子)’ 외 몇 편을 더 옮겨본다.
지난해에는 사랑하는 딸을 여의고 올해에는 사랑하는 아들까지 잃었네. 슬프디 슬픈 광릉 땅에 두 무덤이 나란히 마주보고 서 있구나. 사시나무 가지에는 쓸쓸히 바람 불고 솔숲에선 도깨비불 반짝이는데, 지전(紙錢)을 날리며 너의 혼을 부르고 네 무덤 앞에다 술잔을 붓는다. 너희들 남매의 가여운 혼은 밤마다 서로 따르며 놀고 있을 테지. 비록 뱃속에 아이가 있다지만 어찌 제대로 자라나기를 바라랴. 하염없이 슬픈 노래를 부르며 피눈물 슬픈 울음을 속으로 삼키네. - ‘곡자’
내게 아름다운 비단 한 필이 있어 먼지를 털어내면 맑은 윤이 났었죠. 봉황새 한 쌍이 마주보게 수 놓여 있어 반짝이는 그 무늬가 정말 눈부셨지요. 여러 해 장롱 속에 간직하다가 오늘 아침 님에게 정표로 드립니다. 님의 바지 짓는 거야 아깝지 않지만 다른 여인 치맛감으론 주지 마세요. - ‘다른 여인에게는 주지 마셔요’ (25쪽)
자줏빛 퉁소 소리에 구름이 흩어지자 발 밖에는 서리가 차가워 앵무새가 우짖네. 밤 깊어져 외로운 촛불이 비단 휘장을 비추고 이따금 드뭇한 별이 은하수를 넘어가네. 똑똑 물시계 소리가 서풍에 메아리치고 이슬지는 오동나무 가지에선 밤벌레가 우네. 명주 손수건에 밤새도록 눈물 적셨으니 내일 보면 점점이 붉은 자국이 남았으리라. - ‘임을 그리며’ (36쪽)
화분에 저녁 이슬 각시방에 어리니 여인의 열 손가락 어여쁘고도 길어라. 대절구에 찧어서 장다리잎으로 말아 귀고리 울리며 등잔 앞에서 동여맸네. 새벽에 일어나 발을 걷다가 보니 반갑게도 붉은 별이 겨울에 비치네. 풀잎을 뜯을 때는 호랑나비 날아온 듯 가야금 탈 때는 복사꽃잎 떨어진 듯. 토닥토닥 분 바르고 큰머리 만질 때면 소상반죽 피눈물의 자국처럼 곱구나. 이따금 붓을 들어 초승달 그리다보면 붉은 빗방울이 눈썹에 스치는 듯하네. - ‘손가락에 봉선화를 물들이고’ (37쪽)
7살 때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을 지을 정도로 천재였지만, 그녀도 범인과 다름없는 감정이 있는 사람이었다.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요, 남편의 사랑을 받고 싶은 아내였다. 그러나 그녀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다. 남편은 과거 공부를 핑계 삼아 집 밖으로 나돌고 기생집 출입도 했으며, 그나마 위안이 될 자녀는 요절했으니, 그 한이 어떠했을까. 시 내용은 평범하지만, 감정을 숨기고 살아야 하는 시대에 감정을 진솔하게 드러냈다는 데 인용 시들의 가치가 있는 것 같다. 이 시집에는 실려있지 않지만, 무정한 남편에 대한 원망을 노래한 ‘규원가’라는 가사작품도 있다. 허초희가 삶 속에서의 진솔한 인간적 감정을 노래한 시는 대부분 ‘고시’ 형식의 시다. 율시나 절구에서는 일상의 삶보다는 천상계의 삶을 노래한 시들이 많다. 현실에서의 삶의 한을 천상계(신선, 선녀)의 삶을 통해 정신적으로 보상받으려 한 게 아닌가 싶다. 이 시편들 가운데에는 관찰을 통한 묘사와 상상력이 뛰어난 작품들이 많다. 다만 이들 시에는 고사(故事)를 알아야만 이해할 수 있는 시가 상당수여서, 역자의 주가 없다면 이해하기 어려운 시도 꽤 많았다. 가령, 20편으로 된 ‘궁녀의 노래’는 궁중 생활과 중국의 역사적 사실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이해가 쉽지 않은 시였다. 무려 87편으로 된 ‘밤마다 부르는 노래’의 경우도 도교에 관한 지식이 없다면 이해하기가 어려운 시였다.
우리가 허초희의 시들을 읽을 수 있게 된 걸 감사해야 한다면, 동생 허균의 역할이 지대하다. 허초희는 27살이라는 꽃다운 나이에 죽음을 앞두고 자기 시를 모두 불살라버렸다고 한다. 그런데도 그녀의 시가 오늘날까지 이렇게 전하는 것은 누이의 시재가 사라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허균이 누이의 시를 기억에 의존해서(허균은 기억력이 정말 뛰어났다고 한다.) 시집을 만든 후 명나라의 유명 문인에게 보여주었고, 그가 허초희의 시를 알려서 그녀의 시가 기록으로 남았으니까. 허초희에게는 세 가지 한이 있었다고 한다. 첫째, 이 넓은 세상에서 하필이면 왜 조선에서 태어났는가. 둘째, 하필이면 왜 여자로 태어났는가. 셋째, 하필이면 수많은 남자 가운데 왜 김성립의 아내가 되었는가.
허초희의 시는 한스러운 삶의 산물인 측면도 많다(그러나 한스러운 삶을 살지 않았더라도 그녀의 시재는 분명히 드러났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그녀가 훨씬 오래 살고 그리하여 훨씬 많은 작품을 남겼을 수도 있을 것이다.). 허초희의 한스러운 삶을 소설화한, 최문희의 장편소설 ‘난설헌’도 읽었는데, 그 소설은 어디까지나 작가의 풍부한 상상력을 동원하여 쓴 허구이다. 그러나 이 시집은 그녀의 삶이 어떠했고, 그녀가 어떤 정신을 지니고 살았는지, 왜 그녀를 천재 시인이라고 하는지를 잘 알게 해준다. 혹 현대어로 번역된 시만 보고 내용이 천재라고 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한시는 정형시다. 운자도 맞춰야 하고 짓기가 만만하지 않다. 이런 점을 헤아리고 본다면, 허초희의 시가 왜 뛰어난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고사와 전고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이해가 쉽지 않은 작품도 있었지만, 이래서 허초희의 시가 살아남았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시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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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여인들은 이름이 없었다. 일생을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살다가 죽는 것이다. 이처럼 비인간적인 시대에 살면서 떳떳하게 이름과 자, 그리고 호까지 지니고 살던 여자가 바로 허초희다. 초희라는 이름과 경번이라는 자, 난설헌이라는 호까지 가졌다. 그러나 다른 여인들이 가지지 못했던 이름을 가졌다는 것이 불행의 시작이었다. 이름을 가졌다는 것 자체가 남들로부터 자기자신을 가려내는 행위이며 스스로가 평범하기를 거부한 것이다" 난설헌. 우리나라에선 무시되었던 오히려 중국과 일본에서 유명했던. 남편은 외면하고 아들과 딸은 죽고 뱃속의 아기도 죽고 스물일곱의 이른 나이에 아깝게 세상을 떠난. 시대와 성별을 잘못 타고난 비운의 천재. 본인의 그 많은 작품을 전부 태워버리라는 유언을 할 만큼 세상에 미련이 없던 아름다운 여자. 눈물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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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라는 시각을 벗어나도 짝사랑이라는 안타깝고 고질병같은 아픈 사랑이 적극적이고 섬세하며 마음에 눈물이 맺히게 하였다가 또 전율이 흐르게 하는 센스가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가장 좋아하는 시는 「새 여인에게는 주지 마셔요」인데 같은 맥락으로 「다른 여인에게는 주지 마셔요」역시 아름답게 느껴진다. 연대기와 그녀의 배경지식을 먼저 읽고 시를 한 편 한 편 넘길수록 이 시를 10년 넘게 누이만 생각하며 외고 또 외었을 허균의 애달픈 마음도 느껴지는 듯해 더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것 같다. 그녀의 시를 읽으면 몽상가 같으면서도 이상을 꿈꾸는 사람같다. 또한 그 시대 여인상과 달리 솔직하고 소심하지 않으며 강단있는 모습 또한 매력적이다. 그녀가 울 때면 나도 눈물이 날 정도로 시에서 그녀의 마음이 한 자 한 자 잘 드러나는 것 같다. 만약 도교든 불교든 환생이 있다면 그녀가 유복한 가정에 다시 태어나 사랑많고 다정한 님도 만나, 일찍이 헤어져야만 했던 아이들과 행복한 꿈같은 삶을 살게 되면 좋겠다고 바라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