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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사회적 책무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가 오간다. 자본주의의 기본원리로만 따진다면 기업은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생산성을 높여야 하는 게 원래 기업의 모습이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생산비용을 절감해야 하고 기술개발에 투자해야 한다. 그 중 생산비용 절감 부분. 기업체에 근무해본 적이 없어서 자세하고 생생한 구조적인 문제는 잘 모르지만 주변의 이야기(주로 남편)나 텍스트들을 통해 얻는 정보에 의하면 납품업체에 단가를 낮추게 압력을 행사 한다던가 직원들의 임금을 조절하는 경우가 많다. 파견근로니 비정규직이니 하는 행태들도 포함하여 일한 것에 비해 낮은 임금을 지불함으로써 생산비용을 낮추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대기업 위주의 성장을 해오다보니 봐주기 관행들이 굳어져 비정상적인 경제구조로 기업 간 양극화도 심각해 보인다. 대규모 자본과 설비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대기업과 대기업의 하청으로 수지를 맞추어 가고 있는 중소기업 간의 극심한 불균형은 '상생'이니 '동반성장'이니 하는 구호들을 무색하게 만든다. 그 중 “삼성”에 대한 양극단의 평가는 눈여겨 볼만하다.
삼성의 이미지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세계 일류의 기업, 무노조 신화를 이루는데 밑바탕이 된 최고 연봉의 직장, ‘대한민국은 삼성공화국’이라는 수식어가 있을 정도의 막강한 힘을 자랑하는 우리나라 굴지의 1위 기업이다. 삼성에 대한 나쁜 평가는 언론도, 정치인도, 일반 국민들도 입을 다문다. 어떻게 해야 무노조 신화를 이룰 수 있고 어떻게 해야 대한민국을 쥐락펴락 할 수 있는지 삼성의 어두운 면을 굳이 보려하지 않는 분위기도 팽배하다. 삼성이라는 브랜드 가치만 내걸면 국민들의 가슴에 새겨지는 '신뢰' 그리고 최고의 '서비스'라는 인식에서 벗어나기 힘들어 보인다. 특히 『삼성을 말한다』를 쓴 전 삼성구조본부장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도 잠시 반짝하는 호들갑이 있었을 뿐 금세 잠잠해졌다. 삼성이 경제성장에 기여한 부분까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도 아닌데 삼성의 문제점을 조금이라도 들출라치면 삼성이 망하면 대한민국이 망하는 마냥 온 나라가 떠들썩하니 제대로 된 비판과 양심의 목소리가 뻗어나가는 것도 한계가 있어보인다. 감히 삼성을 상대로 싸울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혹시 싸우기라도 하면 금세 지쳐 나가떨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길 수 없는 싸움에 도전한 사람들이 있다. 바로 삼성반도체 노동자들의 백혈병 진실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다. 이 사건이 불거진 것은 2007년 정도였다. 삼성 반도체 기흥공장에서 근무했던 노동자들의 잇따른 암 진단과 투병, 그리고 사망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개인의 질병이라 여기며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했었다. 아무도 '왜'라는 질문조차 달지 못하고 어쩌다 재수 없게 걸린 병이라고 넘어갔던 것이다. 그런데 황상기씨는 이상했다.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딸 유미씨가 백혈병이란 진단을 받았는데 뭔가 걸리는 것이 많았다.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삼성에 들어갔던 딸. 삼성에 취직했다고 하면 본인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어깨에 힘을 주고 친구들과 이웃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우리나라 아닌가. 그런 자랑스러운 딸이 입사한지 3년 만에 백혈병이 걸렸다니 이런 날벼락이 어디 있었겠는가. 유미가 일했던 공장 내부의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어쨌든 일하다가 백혈병에 걸렸으니 산재 처리를 하고 싶었던 황상기씨. 그러다 우연히 같은 라인에서 근무하던 사람들 중 비슷한 혈액 관련 암에 걸린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중 딸 유미씨와 같은 라인의 짝이었던 동료도 암으로 저세상으로 떠난 사실을 알게 된다. 이상한 것은 그 뿐만이 아니었다. 기흥공장 관리 책임자가 집까지 찾아 와서 백지 사직서를 내민다. 황상기씨는 산재처리를 해달라고 했지만 그 김과장이라는 사람은 삼성을 상대로 싸워 이길 자신이 있냐는 말부터 꺼내며 병원비는 모두 도와 줄테니 백지 사직서에 서명을 하라고 한다. 그렇게 철썩 같이 삼성을 믿었던 황상기씨.
이후부터 외로운 싸움이 시작되었다. 백지 사직서를 받아간 회사에선 묵묵부답이었고 약속한 치료비조차 지급되지 않았다. 황상기씨는 삼성을 상대로 하나씩 캐가기 시작했다. 기흥 공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으로 사망한 사례들이 더 있었던 것이다. 서서히 베일이 벗겨졌다. 황상기씨는 처음에 언론이나 지역 유력 정당의 당사에 찾아가서 도움을 청했지만 모두들 상대가 삼성이라는 소리만 들으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때 진보월간지에서 황상기씨 사연을 듣고 이 사건을 기사화한다. 이 기사가 나가자 더 많은 사례들이 제보되고 심지어 익명으로 공장 내부 상황을 제보해주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시민단체와 함께 싸웠다. 하지만 삼성이라는 기업의 벽은 너무 높았다. 삼성이 쥐고 있는 것은 언론, 정치, 법조계, 학계 등 뻗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나마 SNS를 타고 그들의 작은 목소리가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고 여기에 부담을 느낀 삼성과 근로복지공단은 공장 내부를 공개하여 역학조사까지 응해준다. 그러나 그 역학조사라는 것이 이미 3,4년이 지난 후라 노후된 1,2,3라인은 모두 사라진 상태였고 거기에 예정된 날짜에 정부와 삼성 측에서 추천한 역학조사자들이 삼성 측에서 제공한 자료를 가지고 조사하는 꼴이니 그 조사 결과는 불 보듯 뻔한 것이었다. 내가 가장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은 근로복지공단의 행태였다. 근로복지공단에서 산업재해 승인을 해주는데 역학조사 과정도 분명 문제가 있어 보이지만 그들의 역할과 목적이 무엇인지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산재보험은 개인이 더 이상 노동력을 제공할 수 없는 상황일 때 국가가 회사의 책임을 대신하는 제도”(125p)라는데 복지공단이 2010년부터 1조 이상의 흑자를 보고 있다는 사실이 뭔가 앞뒤가 맞지 않다.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해주고 복지를 위하여 일하는 공단이 수익률부터 따지며 마치 민간 기업처럼 영리를 추구하는 듯한 모양새가 불편하다. 워낙 공기업이나 공단의 비효율성이 문제가 되어 왔던 터라 이런 식으로 전환된 것 같다. 그러나 비판의 초점은 투명한 산재처리를 하라는 것이었지 산재처리 과정을 어렵게 하여 승인보다 불승인 처리를 많이 하여 흑자를 보라 것은 아니다. 더욱 기가 찬 것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시민단체가 행정소송을 했는데 삼성전자(주)를 보조 참가인으로 참여하게 하여 대응한 사실이다.
삼성반도체 기흥 공장 노동자들의 죽음은 두 권의 책으로 만들어졌다. [사람냄새]는 황상기씨의 진술을 토대로 황상기씨와 시민단체가 싸워나가는 과정을 유미씨의 죽음을 중심으로 구성되었고 만화가 김수박이 담당했다. [먼지 없는 방]은 기흥공장에서 11년 근무한 정애정씨의 진술을 토대로 공장 내부의 비밀에 초점을 맞추어 만화로 구성한 책이다. 이것은 만화가 김성희가 맡았다. [사람냄새]는 아무래도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담아서 쉽게 잘 읽히는 반면 [먼지 없는 방]은 공장 내부 시스템에 대한 논리적 접근을 하다 보니 전문 용어가 많이 나오고 공장 시스템 전반에 대한 이해가 요구되기 때문에 읽는데 좀 어려움을 겪었다. [사람냄새]가 독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책이라면 [먼지 없는 방]은 이성을 자극하여 이 두 권의 책을 읽음으로써 감성과 이성의 논리적 결합을 하게 해준다. 오늘 아침 뉴스가 더욱 귀에 들어온다. 정부 자산을 100대 기업의 자산이 머지않아 추월할 것이라는. 그 중 5대 기업이 차지하는 자산 총액이 100대 기업 자산의 절반이라는 것. 그 중 삼성이 차지하는 것이 또 절반 가까이 되는 약 300조원. 순환출자구조 때문에 에버랜드 지분만으로도 삼성 그룹 전체의 경영권을 쥐고 있는 이건희 일가. 한국의 대표기업이라 더 관심의 대상이 되고 비판도 많이 쏟아진다. 제왕적 지배구조로부터 시작되는 문제점이 삼성 전체의 문제로 비화되는 것은 경계해야한다. 삼성이 미운 것이 아니라 삼성의 경영권을 쥐고 그 힘을 바탕으로 나라 전체를 쥐락펴락 하는 것, 그리고 황상기씨 말처럼 무슨 일이 일어나면 돈으로 무마하려하거나 해결하려는 것, 즉 ‘사람 냄새’가 없는 기업의 이미지가 미운 것이다.
삼성 반도체에서 근무하다가 백혈병이나 암 등으로 사망한 사람이 현재까지 제보된 수만 서른 명 정도다. 삼성은 이 수치 앞에서 자꾸만 개인의 질병으로 몰아가는 것을 그만하고 사업장에서 쓰이는 독극물이나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정보 공개를 해야 한다. 일명 ‘먼지 없는 방’(클린룸)이 필요한 이유가 반도체 칩(웨이퍼)을 클린하게 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그 안에서 일하는 당사의 직원들부터 클린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고 업무에 쓰이는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 공개 등을 통해 직원들 본인이 일하는 곳에 대한 알권리를 충족시켜줘야 한다. “알권리를 법으로 보장한 이유는 자신이 어떤 위험에 놓여 있는지,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인데 그런 정보의 확인은 30년 동안 보장되어 있어요. 암이 발병하는 데까지 30년이 걸릴 수도 있기 때문이죠” (아만다 허즈 변호사, [먼지 없는 방] 143p) 이 말을 한 아만다 허즈 변호사는 미국의 IBM사가 직원들에게 화학물질 사용에 대한 위험을 알리지 않아서 직원들이 병에 걸렸다는 것을 인정한 사례를 삼성의 사건과 같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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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도 분명 한 걸음 한 걸음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단지 속도가 더디거나 가끔 후진하기도 하지만 전체적인 방향은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삼성의 이 문제도 마찬가지다. 비단 삼성 반도체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닐 것이다. 현장 노동자들의 안전에 대한 기업의 책임이 절실한 곳이 어디 이곳뿐이겠는가. 삼성이 대한민국의 대표 기업이다 보니 더 큰 매를 맞는다고 생각을 한다. 그만큼 국민들이 삼성 제품을 많이 사주고 그래서 삼성도 이만큼 큰 것이 아닌가. 국민들이 기대하는 수준의 삼성의 모습은 분명 아니다. 감추려고 하지 말고 드러내어 고칠 건 고쳐나갔으면 좋겠다. 계속 싸우고 있는 반올림#1)의 승전보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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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 삼성을 비롯한 반도체 기업들이 은폐하고 있는 반도체 직업병 문제를 밝혀 산업 노동자들의 노동건강권을 확대하자는 목표로 모인 사회-인권단체들의 연대체. 이것은 삼성 반도체 백혈병 문제에 대한 이야기이다. 몇 년 전에 방영된 인상적인 다큐멘터리를 놓친 사람이라면 이 문제에 대해 잘 모를 수도 있겠다. 일부 방송국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프로그램, 보도자료 제작을 시도했으나 상부 지시로 중단되었다고 한다. 삼성의 언론장악 때문에 이 문제는 그 심각성만큼 크게 다뤄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20704092604§ion=03&t1=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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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백혈병의 진실 세트. 영화로도 알려진 반도체 노동자의 산업재해 소송의 배경을 다룬다. 이 책을 통해 반올림이란 단체를 알게 되었다. 1. 사람냄새. 고 황유미씨의 이야기를 다룬다. 한편의 영화같다.고 표현하는 것은 실례겠지만 정말 극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피해자 및 가족들의 정서적인 면, 삼성의 비열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회유. 주로 이 사건의 사회적 맥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중간중간 고인의 사진이나 손글씨도 등장한다. 2. 먼지없는 방. 고 황민웅씨(의 부인 정애정씨)의 이야기를 다룬다. 반도체 생산과정, 작업환경, 직장문화 등 반도체 산업을 보다 깊이있게 설명한다. 부록으로 해외사례, 반도체 공정 용어 등을 실었다. 3. 이 만화가 출간될 당시는 1심 승소 판결이 선고되었을 때였는데, 2014. 8. 21. 근로복지공단의 항소가 기각되어 승소확정되었다. 최초의 승소사례였고 그 후로 계속하여 비슷한 피해자들의 소송이 계속되고 있거나 예상되고 있다. 4. 두 권을 세트로 읽을 필요가 있다. 처음엔 두 권이 중복이다 싶었고, 사람냄새와 달리 먼지 없는 방은 꽤 복잡한 이야기가 나와 대충봤다. 다시 두권을 읽어보니 상호보완하고 있는 내용이 적지 않았다. 예컨대, 사람냄새는 주로 오퍼레이터(직접 반도체를 만드는 공정), 먼지없는 방은 오퍼레이터에 더해 엔지니어(설비를 유지관리)의 이야기도 나온다. 사람냄새는 정서적, 감정적 정보를 전달한다면, 먼지없는 방은 이성적 정보를 전달한다. 사람냄새가 승소사례라면, 먼지없는 방은 패소사례다. 사람냄새가 부모자식의 이야기라면, 먼지없는 방은 부부의 이야기다. 6. 나처럼 클린 룸이란 반도체를 위한 것임을, 반도체 산업이 결코 청정산업이 아님을 많은 사람이 알게되면 좋겠다. 사업주와 근로복지공단이 노동자의 산업재해를 손익문제로 보기에 앞서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삶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문제임을 심사숙고하기를 희망한다. 고마운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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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입장도 다른 많은 누군가와 마찬가지로 삼성자본을 비판하는 입장이지만, 과연 그것이 얼마만큼의 정당성과 온당함을 가지고 있는지에는 솔직히 자신있게 말하기가 힘들다. 이제는 외국의 번화가에 걸린 삼성의 광고를 보고 자랑스러워하는 천박함에서 벗어나고 한 나라의 시스템을 장악하려는 그들의 파렴치함에 비판의 시선을 가지는 정도는 되었지만, 나 개인은 삼성자본의 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내가 당장 이 글을 작성하고 있는 컴퓨터와 항상 들고다니는 스마트폰안엔 삼성의 반도체가 들어있고 집안에는 삼성가전제품이 있으며, 장보기는 종종 삼성자본의 유통망안에 존재하는 대형마트를 이용한다. 비판의 시선을 가질수록 마음만 불편한 이 현실앞에서 나는 그리고 우리는 삼성자본의 틀을 벗어날 수나 있긴 한걸까? 설령 온전히 벗어난다 해도, 우리는 그 불편함을 감내할 수 있을까? '사람냄새'의 작가 김수박의 말대로 우리의 욕망이 얼마만큼의 악을 묵인하거나 용서할 수 있을까? 이미 현실이 되어 이렇게 책으로까지 쓰여진 두 사람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의 희생앞에 과연 우리는 얼마나 양심적이고 당당할 수 있을까? 삼성자본의 이윤과 우리의 편리함을 위해 소수의 희생은 얼마만큼이나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일까? 두 작가가 그리는 두 사람의 희생은 우리로 하여금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재벌자본 주도의 기술발전이 가져온 편리함과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누리는 우리들에게, 작품은 그들의 희생을 안타깝게만 그리지 않는다. 작품제작을 위해 녹취한 자신의 녹음기가 삼성의 녹음기임을 그림에 그려넣음으로서 어쩔 수 없이 대자본의 틀 속에서 움직여야만 하는 자신의 처지를 묘사하면서, 읽는 독자들로 하여금 욕망과 양심차원의 불편함을 느끼게 한다.
삼성사람이라는 자부심에 속절없이 우쭐하던 순진한 사람들, 자신의 죽어가는 딸을 회사의 책임으로부터 격리시키기 위해 집으로 찾아온 직원에게 송이를 대접하던 순박한 사람들은 과연 삼성의 희생양만 되어왔을까? 작품 속 희생자들의 상징성을 확대해석해보자면 언제나 있어왔던 대자본, 재벌에 대한 힘없는 이들의 희생에 대한 기록의 연속이다. 먼 옛날 산업사회의 초기, 5살 아동노동의 잔인함으로 시작하여 근대 청계천 평화시장 창문없이 시다일하다가 폐병으로 죽어가던 어린 노동자들의 희생으로 이어져 지금 현재, 삼성이라는 대자본에 의해 희생된 이들의 기록까지 오게 된 것이다. 조금 다른 면이 있다면, 이전과는 달리 현재에는 소수의 희생이 자본의 이윤과 다수의 욕망이 딱히 표현할 수 없는 선에서 타협한 결과물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자본, 특히 재벌자본의 구조는 너무도 견고하다. 사회시스템까지 장악해 들어가는 이들의 힘은 희생자들을 위한 싸움을 너무도 어렵게 만든다. 우리의 생활 역시, 그들의 패악을 알면서도 그 틀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그것이 우리의 삶의 필수를 넘어선 편리와 풍요에의 욕망과 연관이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욕망을 위해 얼마만큼의 악을 용인하거나 묵인해야 할 것인가. 의문은 여전히 유효하고 답에 근접조차 할 수 없을 지경으로 우리는 생각하기를 멈추며 살아간다. 의문과 답을 고민할 생각만이라도 하기 위한 방법은 과연, 자본에의 직접적인 희생에의 당사자가 되는 길밖에 없는 것일까? 고민이 여기에까지 미치다보면 우리가 현재를 살아가는 방식은 과연 인간적이고 공존가능한 방식인가 하는 의문까지 닿게된다. 시스템과 자본에 의해 희생당한 이들을 보고 어쩌면 우리가 그런 이들의 입장이 될 수도 있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정말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