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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가 십만양병설을 주장했다는 사실. 김성일이 간신었다는 사실. 김천일이 진주성 2차전의 주인공이었다는 사실. 호남의 의병들이 진주성에 들어와서 2차전을 이끌었다는 사실. 2차전 성주 서예원이 겁쟁이였다는 사실. 모두가 사실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진실은?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 역사소설을 읽을때면 항상 되새기게 되는 말이다.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되어져 있는 서예원에 관한 사실이 거짓이란 말일까?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어왔던 역사적 기록이 거짓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이 책을 읽게 만들었다.
"나약한 소리 하지 마라. 수가 문제가 아니다. 월왕 구천은 겨우 오천의 군사로 오나라의 칠십만 대군과 맞서 싸워 이겼느니라. 황산벌의 계백 장군은 군사가 많아서 신라의 오만 대군을 네 차례나 물리쳤겠느냐? 죽기로 덤벼든다면 일만이 아니라 십만, 백만이라도 둘려울 게 무엇이냐!" (p.80) 전투 도중 성을 버리고 도망을 쳤다던 서예원이 천명이 넘는 김해성 군민들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웠고 지원을 나와야 할 창원의 우병사도 조대곤은 마땅히 해야할 소임을 외면했다는 것이다. 한순간의 잘못된 선택으로 그는 영웅이 될수있는 길을 버리고 비겁자가 되버린다.
서예원: 조선 중기의 무신이다. 김해부사로 있던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군과 공방전을 벌이다가 성을 버리고 도주하였다. 이 일로 삭탈관직당했으나 의병장 김면과 협력하여 왜적과 싸웠다. 1593년 진주목사가 되었으며 제2차 진주성싸움에서 순국하였다.
소설은 밀양성 성곽 축조 현장에 가 있는 평촌 마을의 최억술이란 사람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성곽 축조란 처음부터 끝까지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지는 것이기에 최억술 또한 부역을 나와있는 처지였다. 임진년 전란의 막은 올랐고 최억술은 피난을 서예원은 전투태세에 들어간다. 저자는 처음 김해성에서 도망친 그(서예원)은 비겁했으나 나중 진주성 2차전을 책임 질 당시의 그는 분명 영웅이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왜 역사가 그를 비겁자로 기록했는가 하는 의문에 '진주성 2차전을 기록한 사람들이 서예원의 반대 당파인 서인들이었기 때문'이란 말로 답한다.
당파싸움으로 나라가 약해졌고 전란에 있어 나라를 위해 하나가 되기보다 당을 먼저 생각했던 당시의 권력층들은 진주성 전투의 주역이었던 그를 비겁자로 만들어버렸고 같은 당파인 김천일, 최경회, 황진 등을 그 자리에 내세운다. 진주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논개다. 일본군 장수 게야무라 로구스케를 끌어안고 남강으로 뛰어든 여인. 논개에 대해서도 다양한 설이 있다. 기생이라거나 양민으로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최경회(崔慶會)의 후처였으며 최경회에 대한 복수를 위해 기생으로 위장했다는 설이다. 과연 어느것이 사실일까?
한편 죽을 자리에서 죽지못하고 비겁하게 도망쳐 살아남은 서예원은? 예원과 한동네에서 자랐다는 이순신, 유성룡, 한석봉, 그중 이순신의 가족이 외가가 있는 아산으로 이사하며 그들은 헤어졌다. 정읍현감으로 있던 이순신은 어떻게 전라좌수사라는 품계에 오르게 되었을까? 유성룡의 추천을 받아 그리된것이라는데, 도망치다 잡혀와 삭탈관직을 당하는 수모를 당하는 서예원. 피난길에 오른 최억술을 만나 잠시 도움을 얻으며 인연을 맺는다. 똑똑한 사내같던 억술도 피난길에서 조맹칠과 박아전에게 사기를 당해 전재산을 빼앗기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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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이 소설의 초반부 전개가 내가 알고 있던 역사적인 사실과는 달라서 놀라웠으면서도 흥미로웠다. 임진왜란 하면 아무 준비도 없이 있다가 처음부터 그냥 당하기만 한 줄 알았는데 의외로 조선은 나름대로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작가는 서술하고 있다. 동래성, 김해성, 밀양의 작원관 등지에 지원군들이 신속하게 모여든 것을 작가는 그 증거로 들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보면 교통수단이 불편했던 그 당시에 전쟁이 터지자마자 먼 길을 오로지 도보로만 그렇게 빨리 갈 수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준비가 잘되었다는 말이 틀린 것이 아닌 것 같다. 특히 진주의 경상 감사 김수가 밀양까지 갔었다는 기록이 있다는 것을 읽었을 때는 그 당시에도 헬리콥터가 있었나 할 만큼 착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엄청난 왜군의 기세에 눌려 모두들 패배하고 말지만 초반의 조선군의 대응은 손 놓고 아무것도 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은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작원관에서 김시민과 유숭인 손잡고 활약했다는 장면 또한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소설의 흐름은 크게 두 가지이다. 김해성 성주였다가 진주성 2차전의 성주가 되어 가족과 함께 순국하는 서예원과 밀양의 농부 최억술이다. 최억술은 작가가 서예원의 행적을 따라가면서 대비시키기 위해 만들어놓은 허구인물인 것 같다. 서예원은 김해성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왜군과 맞서 처음에는 잘 싸운다. “몸을 숙여라. 그러나 겁먹지 마라. 소리만 요란할 뿐 별것 아니다. 정신 차리고 모두들 발사 준비를 해라.” 총탄이 쏟아지는 가운데도 예원은 적정을 예리하게 살피며 명령을 내리고 있었다. 방패막을 형성하고 있는 조총부대에 편전을 발사해봐야 큰 타격을 주지 못한다고 판단한 그는 적이 해자를 건너는 순간을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마지막에 가서 도망치고 만다. 서예원이 도망친 것은 비겁했고 사형을 당해도 변명할 여지가 없었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지만 다행히 이때 서예원은 사형만은 면하고 삭탈관직을 당하게 된다. 임진왜란 초반에 대부분 순식간에 무너지고 말았지만 만 하루 동안 막아낸 성은 김해성이 유일했다고 쓰여 있다. 최억술은 주변 산에 숨으러 가는 동네 사람들과는 달리 가진 것이 좀 있어서 점쟁이의 말대로 두 아들과 천치인 칠득이를 데리고 멀리 서쪽으로 달아난다. “어디로 가라고 정해주는 데 있습디꺼?” “딱 어데 정해준 데는 없었지만 니는 서쪽으로 가면 살 끼라 카더라.” “서쪽이요?” “그래. 서쪽이라 카면 우리 고향 수산서 강 건너가지고 계속 가면 될 거 아이가. 끝에 가면 전라도가 나올 끼고.” 최억술은 피난 도중에 우연히 서예원과 서로 만나게 되어 잠깐 동안 만의 인연을 맺는다. 이후 서예원은 경상도에서 의병활동을 하며 공을 세우다가 진주성 1차전을 얼마 앞두고 김시민을 만나서 함께 작전을 펼치기도 하다가 용인으로 파견된다. 최억술은 함안과 의령등지에서 피난생활을 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조맹칠과 그의 친구인 박 아전에게 사기를 당해서는 왜 들어가는지도 모르고 진주성으로 들어가서 피치 못해 왜군과 싸우게 된다. 최억술이 진주성에 들어가서 그가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으로 상권은 끝나게 되고 하권에서는 진주성 1차전과 2차전이 본격적으로 전개 된다. 1차전에서 김시민 장군이 대승을 거둔 것은 뿌듯했지만 2차전에서 수많은 백성들이 죄도 없이 죽어가는 장면에서 가슴이 아팠다. 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후퇴를 하면서도 그리고 강화회담을 하면서도 진주성을 공격해야 했을까? 선조는 왜 또 억지로 싸워라고 지시를 내렸을까? 명나라는 왜 가만 보고 있었고 주변의 조선군들도 꼼짝하지 않고 있었을까?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내 마음 속을 떠나지 않았던 의문이었다. 분명 주인공인 서예원도 무리한 싸움이고 필요도 없는 싸움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싸워야 할 수 밖에 없는 상태였다. 도체찰사 유성룡이 임금의 뜻을 받들어 도원수 김명원에게 전 육군을 몰아 진주성을 도우라고 명령을 내렸고, 이에 각 육군 지휘관들과 의병 지휘관들이 지금 속속 의령 방면으로 집결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 시기에, 또한 보통 사람들은 그 속내를 파악하지 못하고 그저 명군이라면 무조건 조선을 도와주리라고 생각하고 있는 이 시점에, 해당 성주인 그가 임금과 최고 지휘관들에게 공성 의견을 낸다는 것은 나는 비겁자라고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것과 다름 아니었다. 서예원은 안 되는 싸움인줄 알면서도 성을 사수하기로 결정하고 명나라를 끌어 들이려 끝까지 몸부림치지만 실패하고 만다. 결국 이종인과 성수경의 도움을 받아 그리고 죽을 줄 알면서도 진주성에 들어온 최경회, 황진, 김천일등과 함께 서예원은 끝까지 성을 지키다가 장렬히 전사한다. 이때 그의 부인, 장남, 며느리, 딸, 종 모두 할 것 없이 저항하다 죽어간다. 그 당시에 죽은 인구는 지금으로 따져보면 현재의 진주시민들이 다 죽은 것이거나 오히려 더 많았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는데 정치인들이 무능하면 아무리 많은 사람들도 순식간에 죽는다는 생각을 하니 서글펐다. 그리고 서예원은 나중에 비겁자로 몰려 진주성에서 제사도 지내주지 않는다는 장면을 읽었을 때는 해도 너무했다 싶었다. 이 소설을 읽음으로서 그동안 막연히 알고 있었던 임진왜란과 진주성싸움에 대해 조금이나마 이해를 할 수 있게 된 것 같았다.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도 역사 공부에 도움이 될 수 있었을 같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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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에 관련된 비사를 담아넨 이야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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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 비가 (상)-조열태 진주대첩... 많이는 들어봤지만 왠지 생소하기만하다. 생각해보건데 임진왜란 3대 대첩 중 한산도 대첩은 워낙에 유명하지만 행주대첩이나 진주대첩은 어지간히 역사를 좋아하지 않는다면 자세한 내막은 잘 모를것같다. 아니면 내가 무지한가보다. 임진왜란 육상 최대 전투였다고하는데 말이다. 무튼 이 책은 3대 대첩 중 하나인 진주성 전투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많은 인물들의 이름이 거론되지만 주요 등장인물은 김성일, 김시민, 서예원이다. 1차 전투 시 진주성 성주는 많이 알려진 김시민 이였고, 2차 전투 시 성주는 서예원이였다. 하지만 서희의 손자인 서예원에 대하여 많이 알려진 바가 없으니.. 밀양....최억술이라는 인물은 상의 끝에 아들 둘과 칠득만을 데리고 피난길을 떠나게 되고 한편 서예원은 김해성 전투에서 도망친 이유검을 쫒아 사기를 충만한다는 핑계로 그도 성을 버리고 도망을 치고 마는데 억술이 함안으로 피난 가는 중 서예원과 우연히 만나게 된다. 억술은 피난으로 거처를 여러번 옮기다니는 중 믿고 의지 할만한 사람들은 만나게 되지만 또 다시 난리통
속에 피난을 떠나게 되고 그리하여 진주까지 오게 되는 과정을 담았다. 전쟁을 대비하여 성 축조에 백성들이 부역을 하고 군사를 뽑는 과정 중 뇌물이 오가면서 군역을 피하고 전쟁 그 난리통이 생생하게 그려져 그 시대 사람들의 고달픈 삶을 엿 볼 수 있는데 애처롭
기만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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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이긴자의 기록이다' 필자는 서두에서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은 의문점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고 밝힌다
1. 진주성 2차전 전투에서 모두 전멸하였는데 논개는 어떻게 살아 남았을까? 논개의 실체는 사실인가? 2. 이이가 십만양병설을 주장하였는 것이 사실인가? 3. 김성일은 간신인가? 4, 김천일이 진주성 2차전의 주인공인가? 5. 호남의 의병들이 진주성에 들어와서 2차전을 이끌었다는 것이 사실인가? 6. 2차전 성주 서예원이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대로 겁쟁이였는가?
소설의 시작은 1591년 밀양성 축성 현장에서 최억술이란 사람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곧 임진왜란이 발생하고 김해부사이자 성주인 서예원이 등장한다.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지위와 위치에 있지만, 글의 진행 가운데 비교의 모습을 그리며 전개된다.
김해성에서 왜군으로부터 사면초과, 악전고투의 상황 등으로 인해 서예원이 선택한 것은 도망이었다. 살고자 한 인간본연의 모습과 갈등을 필자는 그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하권으로 넘어가면 이 서예원은 그의 마지막 순간까지 '네이놈들' 이라고 외치며, 피를 토하고 작렬히 전사하는 진주성 2차전의 영웅으로 거듭난다.
어떻게 보면, 전쟁에서 장수가 도망을 치고 삭탈관직을 당하는 것 만큼 불명예는 없을 것이다. 또한, 불명예를 당한 장수로서는 기회가 된다면 반드시 그 불명예를 극복하고 싶었을 것이다. 이것이 더 인간적이고 사실적이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왜 일까? 이는 필자가 말한 '역사는 이긴자의 기록이다'라는 서두의 말을 다시금 마음에 새기게 된다.
지금까지의 역사기록은 마치 권선징악의 소설 전개처럼 처음에 겁쟁이였던 사람은 끝까지 겁쟁이였고, 반면, 영웅은 무엇이든지 잘하는 팔방미인이었다는 점이다. 필자는 이 단순한 역사 전개의식에 찬물을 끼 얹고 새로운 진실을 발견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의미에서 비록 허구성을 내포하고 있는 소설일지라도, '서예원'이라는 사람에 대해 다시금 역사학자들의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진주성비가'라는 이 소설은 다른 역사 속에서도 '이긴 자'라 하여 지나치게 미화되거나, '진 자'라 하여 실패자나 패배자로 치부되지는 않았는지.. 역사인식에 있어 새로운 시야를 재발견하게 하는 고마운 책이라 말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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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의 3대첩 중 하나인 진주성 대첩하면 떠오르는 인물은 논개이다. 왜의 침략으로 진주성이 위험에 처하자 기생의 신분임에도 나라를 위해 왜의 적장을 유인해 남강에 함께 뛰어든 의기로 많은 감동을 받은 인물이었다. 역사 속 뛰어난 인물 대부분이 남자들인데 반해 여자라는 신분은 사회적 제약이 많았던 시절이었기에 역사책에 이름이 올라왔다는것만으로 대단해보였다. 그런데 논개란 인물이 사람들이 만들어 낸 허구의 인물일 수도 있다니..
이 책의 저자는 영어교사임에도 역사에 관심이 높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가 승리자에 의해 씌여졌기에 잘못된 기록들이 요즘 속속 알려지고 있는데 임진왜란 3대첩 중 하나인 진주성 대첩에도 잘못 알려진 역사적 기록이 있다는 걸 알고 역사적 사료를 바탕으로 진주성 2차 대첩의 영웅이었던 서예원에 대해 역사소설을 쓰게 되었다.
서예원이란 인물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진주성 2차 전투에서 임금의 명을 받고 홀로 성을 지켜내기 위해 고군분투했음에도 온 가족이 목숨을 잃고 말았다. 결코 작은 싸움이 아닌데도 서예원이란 이름을 역사기록에서 찾을수 없었던 이유가 뭘까? 김시민, 권율, 이순신은 영웅으로 후세까지 존경받는 인물인데 왜군으로부터 진주성을 지켜내기 죽음까지 불사했던 서예원에 대해 기록이 남아있지 않았던 이유를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이 책의 시대적 배경은 조선 선조때로 진주성 2차전 성주 서예원과 밀양인 최억술을 중심인물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김해성 성주로 있던 서예원은 왜군과 맞서 싸우다 두려움에 성을 버리고 진주로 도망간다. 최억술 또한 어머니의 성화에 못이겨 두아들과 바보 칠득이를 데리고 함안으로 피난가는 도중 서예원을 만나게 된다. 그 당시에는 김해성 성주인줄도 모르고 굶주린 서예원에게 따뜻한 밥 한끼를 대접한다. 두사람이 어떤 연관성이 있을 줄 알았는데 1편에서는 각자의 삶이 그려진다. 최억술은 함안에 정착하여 군민으로 언제 동원될지 몰라 불안한 피난생활을 하고 있고, 진주로 도망간 서예원은 관직박탈을 당하고 의병으로 활동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1편에서는 저자가 그리고자 했던 서예원에 대한 특별한 활약이 그려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무관임에도 백성을 버리고 도망간 성주로 그려지면서 독자들에게 서예원이란 인물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게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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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성 悲歌 조열태 지음 이북이십사
임진왜란 3대 대첩인 한산도대첩(1592년 7월), 행주대첩(1593년 2월)과 진주성대첩(1592년 10월-1차, 1593년 6월-2차) 중에서 진주성에서 왜군과 격전을 벌인 2차례의 전투를 말한다. 진주성 비가 두 권 중에서 일단 상권에서는 2차 진주성 전투를 이끈 서예원을 중심으로 한 축과 가상인물로 여겨지는 최억술을 집중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진주대첩하면 김시민을 떠올리는데, 진주대첩은 1592년 10월에 1차 싸움에서 김시민이 전사했고, 1593년 6월의 2차 싸움을 이끈 인물을 서예원인데, 김해 부사인 서예원이 김해성전투 중 초계 군수 이유검이 지원 요청을 보낸 창원에서 아무런 대응이 없는 것을 빌미로 창원에 구원요청을 하겠다며 성에서 탈출한 것을 틈타 이유검을 잡겠다고 도망친 사고로 백의종군하게 된 사연을 다루고 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부산진성, 경상 좌병사 이각, 울산 군수 이언성, 양산 군수 조영규, 동래 부사 송상현, 밀양 부사 박진이 함께한 동래성 전투, 작원관, 김해성 전투, 최초의 승리로 기록된 5월 24일의 정암진 전투, 거창에서의 우두령 전투와 지례 전투에 이르기까지 진주성 전투에 이르는 역사적인 사건들을 통해 진주성 전투의 의의와 배경을 집중적으로 탐구하고 있다. 소설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역사 공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1차 1592년 10월 진주성에서 왜군을 격퇴한 싸움. 나가오카 휘하의 왜군 3만여 명은 전라도로 진격하기 위해 진주성을 포위공격했다. 수천 개의 대나무 사다리를 만들어 공격하는 왜군을 맞아 10월 6일부터 진주성에서는 김시민이 지휘하는 조선군 3천여 명이 혈전을 벌였다. 10월 9일에는 왜군의 총공격을 격퇴했으며, 곽재우·최강·이달 등의 의병부대는 성 밖에 진을 치고 왜군의 배후를 위협했다. 6일간에 걸친 대접전 끝에 조선군은 왜군을 격퇴했으나 전투를 지휘한 김시민은 적의 총탄을 맞고 전사했다. 이 싸움의 결과로 조선군은 경상우도를 보존하고 왜군의 전라도 진출을 저지할 수 있었다. 2차 1593년 6월에 벌어진 왜군과의 혈전. 93년 4월 서울에서 철수한 왜군은 부산을 중심으로 한 동남해안에 집결했다. 왜군은 강화회담을 추진하는 한편, 1차 진주성 전투의 패전을 설욕하고 전라도로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하기 위해 진주성에 대한 총공격을 감행했다. 이 전투에서는 가토·고니시·구로다 등 왜장과 귀갑차(龜甲車) 등 왜군의 신무기가 총동원되었으며 왜군의 선봉만도 5만여 명에 달했다. 이에 맞서 싸운 조선군은 황진·최경회 휘하의 관군과 김천일이 지휘하는 의병을 합해 3천여 명에 불과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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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을 아시나요?? 임진왜란은 임진년 일본의 침략으로 인해 발발한 전쟁이다. 당시 일본은 명나라를 정벌하러 가고자 우리나라 부산에 상륙을 하고 명나라로 가는 길 좀 빌려달라는 명분을 내세워 우리 나라를 침략 하게 된다. 조선 시대 당시 누구도 왜군이 조선을 침략 할 것이라고 믿지 않았고 , 쳐들어 온다 한들 별 볼일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10만이 넘는 대군을 이끌고 온 왜군에 조선은 침략을 당하고 만다.
임진왜란은 곧 이순신?? 맞다. 모든 사람들이 임진왜란을 생각하면 "내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라는 말을 남시긴 이순신을 먼저 생각 할 것이다. 그만큼 유능하고 많은 승리를 이끈 장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군 만큼이나 유명한 대첩이 있으니 ,바로 진주 대첩이다.
진수성 悲歌 이 소설은 진주 대첩과 진주성 함락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이 소설의 중심에는 서예원이라는 성주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진주 대첩은 김시민 장군이 4천명도 되지 않는 병사로 3만에 달하는 왜군을 무찌를 이야기이고 서예원은 진주성이 함락될 당시의 성주 이다. 그럼 왜 승리로 이꾼 김시민이 아닌 서예원이 중심이 되었을까?? 로 서예원에 대한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고자 함이 이 소설의 요지인 것이다.
서예원은 김해성의 부사였다. 왜군의 침략으로 모든 성이 순식간에 함락될 때 서예원은 김해성을 버리고 도주를 하게 된다. 만 , 명이 길어 참수 당하지 않고 삭탈 관직을 당해 끈질긴 명을 이어가게 된다. 하지만, 왜군의 진격은 끝이 없고 유능한 장군이 필요하게 된 조선은 서예원을 다시 한번 전쟁의 중심에 세우고, 서예원은 예 회복이라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왜군과 맞써 싸워 이기게 된다. 진주 대첩 당시 승리로 이끈 김시민 장군의 군의 소총에 맞아 명을 달리하고 비어 있던 성에 서예원이 성주로 앉게 된다.
왜군에 의한 평양성 함락 후 조선은 명의 도움으로 조.명 연합군을 앞에서 왜군을 몰아내고 위기에 몰린 왜군은 명에 약을 하자고 제안을 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강화협약인 것이다. 하지만, 왜군은 진수성에서 대패한 치욕감을 잊지 못하고 과 조선에 진수성을 함락시키러 간다는 엄포를 놓게 된다. 그것도 10만 대군을 이끌고.....
하지만 무능한 조선의 임금때문이었던가.... 왜군은 진주성은 잠시 비워 우리가 진수정을 함락 시킨 것처럼 하면 피를 보지 않고 두가 좋게 끝날 수 있다고 말을 하지만 조선 임금은 3천도 되지 않은 병사들을 가지고 10만 대군과 싸워 이기라고 명을 내린다. 싸워 봤자 뻔한 결과... 하지만 서예원은 왜군에 한치의 물러남도 없이 장렬히 싸우다 전사를 하고 그의 가족 또한 진주성에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이후 서예원에 대한 조선의 평가는 겁쟁이라는 기록을 남기게 되고 , 당시 동인과 서인으로 나뉜 당파에 의해 철저히 그의 업적은 무시당하게 된다.
하지만 끝까지 살아 남은 그의 혈육들이 조선에 탄원을 하게 되고 뒤 늦게 그 의 업적이 인정받게 된다.
무엇인 진실인가? 김해성을 버린 서예원. 그에 대한 평가는 무엇인 진실일까?? 성을 버리고 도주한 겁쟁이로 보아야 하는 것일까? 아니면 진주성을 끝까지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 진정한 조선의 충신으로 봐야 할 것일까? 내가 생각하기에 서예원은 충신으로 보인다. 무능한 조선 임금 아래 말도 안되는 어명으로 인해 5만에 가까운 백성이 눈앞에 죽었음에도 , 끝까지 조선이라는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과 더불어 가족의 목숨까지 바친 서예원은 진정한 충신으로 대접받을만 하다. 만약 그 당시 상황의 우리가 서예원이라고 한다면 과연 어떻게 했을까??? 우리는 아마 충신도 아닌 백성도 아닌 나약한 인간에 불과하지 않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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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우리나라와는 질기고 질긴 악연을 가진 나라중 하나인것은 누구도 부인할수 없다. 아무리 과거를 새롭게 조명하고 두나라가 같이 나아갈 바를 지양한다 하더라도 올바른 역사교육을 공유하지 않고 자신들의 과오를 정당 화 하는 그르친 교육을 한다면 절대로 미래는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갈수가 없다는 것은 명확하다.
이책은 임진왜란 당시 왜놈이 진주성을 2차례에 걸쳐 공격하여 진주성에 있던 사람들을 거의 전몰시킨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진주성을 지키기 위한 관군과 의병, 민초들의 삶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나 실제적인 관점은 진주성 을 지키고 있던 실질적인 주인이었던 서예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는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서예원에 대한 기록이 터무니없이 왜곡되어 있는것에 주목햇다. 그 기록내용은 서예원은 전투 중에 질질 울면서 돌아다닌 겁쟁이로 묘사되어 있다는 것이다. 정작 전투의 주역은 김천일로 되어 있는데, 아마도 서예원의 반대파인 서인들이 그 기록을 담당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역사의 기록을 더듬어 저자는 진주성 2차전의 성주였던 서예원의 발자취를 찾아갔으며 그가 동인으로서 임진왜란이 끝난뒤 정권을 잡고 기록했던 반대파 서인들의 기록으로 왜곡된 진실이 있음을 이 책을 통해 밝혔다.
원래 서예원은 김해성의 성주였다. 임진왜란이 발생하고 부산진성과 동래성은 순식간에 왜놈의 진격으로 어이없이 무너지고 만다. 김해성을 목숨을 걸고 지키고 있었으나 서예원은 그만 성을 버리고 도망을 치게 되고 백의종군하여 의병 활동을 하며 김해성을 버린 죄를 만회하려한다. 그와중에 왜군은 진주성 1차공격을 시도하지만 그당시 성주였던 김시민의 노력으로 왜군은 진주성을 함락은 실패하고 말지만 김시민장군은 조총을 맞고 몇일만에 사망하고 만다. 공성이 된 진주성의 성주는 그동안 자신의 죄를 만회하려 노력한 공으로 서예원이 발탁된다. 조선에서 거의 절반의 군사를 잃은 왜군은 명과의 강화협상을 통해 철수할것을 예상했지만, 진주성1차 공격에서 자존심을 구긴 왜군은 마지막 총공세로 진주성을 공격 하기로 한다. 선조는 진주성을 끝까지 지켜낼것을 명하고, 다른쪽에서는 공을 비워 백성들을 구할것을 조언한다. 결국 서예원은 왜군과의 결전을 다짐하고 김해성에서의 비굴했던 잘못을 만회하기 위해 노력하고 아내와 자식들까지 성으로 불러들인다. 10만여명에 달하는 왜군과 1만여명이 안되는 군사로 맞선 진주성 싸움은 진주성의 함락으로 끝이나고 많은 백성이 죽고 일본으로 포로로 잡혀간다. 서예원은 장렬히 전사하고 아내와 식구들은 촉성루에서 자결을 한다. 일본으로 포로로 끌려갔던 서예원의 작은 아들은 13년의 포로생활을 마치고 돌아오고 반대파에의해 왜곡된 서예원의 진주성에서의 공적을 인정해줄것을 상소하여 그와 식구들의 공을 인정받기에 이른다. 지금 서예원의 후손이 살고 있는 밀양과 횡성에는 충절과 공로를 인정하여 육절각과 육절려가 세워져 전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도 진주성내 '진주촉석정충단비명'에는 '진주목사 서예원은 본디 겁쟁이인데다가 병법을 알지 못하는지라..' 하는 왜곡된 비문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역사의 기록은 붓을 쥔 자들의 몫이다. 그들의 잘못된, 왜곡된 기록은 다시 진실이 되어 조명되기 힘들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서예원의 공적은 잘못된 기록의 좋은 예라 할수 있겠다. 또, 진주성에서 적장을 끌어안고 강으로 뛰어든 논개라는 관기는 그 실체가 알수가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 어디에도 논개의 기록은 없어서 잘못된 구전이 아닌가 저자는 견해를 밝힌다. 역사는 수레바퀴와 같이 돈다고 말한다. 제대로 된 우리의 역사를 바로 알아야 미래를 대비하는 초석이 된다는 믿음을 다시한번 심어주는 재미있는 역사책이라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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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수학여행때 진주의 촉석루를 간적이 있다. 가파른 낭떠러지 같은 곳에서 논개가 적장을 안고 뛰어 들었다는 그곳 충절을 기른다는 의미로 수학여행의 한곳으로 지정되었던 촉석루 그속에 담겨진 역사적 사실은 그저 교과서에 실러있던 이야기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속에 담겨진 민초들과 여러 조상들이 겪어야했던 전쟁의 잔상들은 직접 겪지 않아던 후손들에게는 단순한 역사속의 사실로만 남겨있기에 <진주성 비가>는 그 민초들과 그당시 여러 군사와 가족들이 겪어야 했던 슬픈 역사속의 사실들을 소설로서 각색했던 이야기이다.
어릴적 역사책속에 들어 있는 모든 이야기들은 다 사실이라고 생각했었다. 일의 전개되는 과정과는 상관없이 거의 대부분이 일이 발생한 이유와 결과만이 중요했었으니까 하지만 언젠가부터 그런 역사적 사실이 너무나 많은 왜곡이 섞여 있다는 사실에 뭐를 믿어야할지 난감할때가 많다. 역사라는 것은 살아있는사람들의 기록이고 자신의 이익과 관련이 많기에 이런 역사적 사실의 오점을 파헤치는 것이 우리 후손들이 역사를 대하는 진정한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새삼 했었다.
역사적 이야기를 접하면서 참 재미있었기때문에 역사를 배우는 것을 좋아 했었다. 나 또한 교과서에 등장하는 인물과 이야기만 믿었기만 이렇게 새로운 관점에서 새로운 인물들의 자세한 이야기들을 보면 너무 모르고 있고 우물안 개구리 같은 느낌이 든다. 이 책속의 주인공인 서예원과 일반 민초의 삶을 이야기하는 억술일가의 모습은 역사드라마에 등장하는 조연들의 모습을 상기하게 만든다. 임진왜란이 발생하면서 피난을 떠나던 억술과 아이들, 왜와 전쟁통에 죽음을 생각하면서 도망을 쳤다가 억술과 그 일행을 통해 다시 되돌아 가 백의종군했던 서예원 그의 죽음은 그동안 고생만 했기에 더욱더 안타까웠는지 모른다. 자신보다는 일반 민초들을 이해했던 그 그리고 그런 서예원의 마지막 유지를 끝까지 받들면서 절개와 기개를 지켰던 서예원의 처와 남은 가족들의 모습은 그들에 대하여 너무나 모르고 있는 나자신의 죄송하게만 느껴진다.나중에라도 그들의 유지를 알아갈 수 있다는게 너무 다행 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양반들만을 위한 정치라는 것이 현재나 그때나 마찬가지임이 새삼 느껴진다. 현재 부자들만을 위한 정치나 그때의 양반들을 위해 희생했던 우리조상들의 모습에 있어서 우리가 바꿔나가야 할 부분이 아닐까 그리고 숨겨진 역사적 사실들을 파혜쳐나가야 후손들의 게으름을 다시한번 꾸짖는 느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