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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미록』은 임진왜란 때 양반 오희문(吳希文, 1539~1613)의 눈으로 본 당대 생활상이 낱낱이 담겨 있다.『쇄미록』은 유성룡의『징비록(懲毖錄)』, 이순신의 『난중일기(亂中日記)』등과 함께 임진왜란과 조선중기 사회를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아 1991년에 보물 제1096호로 지정되었다.
각 일기의 제목은 그해의 간지에 ‘일록(日錄)’을 붙인 형태로 통일되어 있다. 다만 1책의 경우 <임진남행일록(壬辰南行日錄)>으로 되어 있다. 1591년 11월 27일부터 이듬해 6월 28일까지의 기록은 다른 일록처럼 그날그날 쓴 일기가 아니고 추후에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맨 첫 문장을 통해서 유추할 수 있다. 1592년 7월 1일부터는 날짜를 쓴 일기 형식의 글이 시작되어 7책까지 계속된다.
“나는 지난 신묘년(1591, 선조24) 동짓달 스무이렛날 새벽에 한양을 출발해 용인에 있는 이경여(李敬輿, 저자의 처남)의 서당에서 묵고, 이튿날 양산(陽山, 안산) 시골집으로 가면서 먹을 양식을 마련했다.”
‘쇄미록’이라는 제목은 《시경》 〈패풍(○風)·모구(○丘)〉장의 한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자잘하며 자잘한 이, 유리(流離)하는 사람이로다[○兮尾兮 流離之子].
오희문 자신이 임진왜란을 맞아 유리하는 모습을 《시경》에 나오는 여(黎)나라의 군신(君臣)이 유리하는 것에 빗대어 제목을 붙인 것이다.
“이후로는 종이도 다 되어 그만 쓰기로 했다. 또 한양에 도착해서 이리저리 떠돌아다니지 않았기 때문이다.”
『쇄미록』은 종래 정사(正史)의 사료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생생한 생활기록이 담겨 있는 일기 자료라는 측면에서 특히 전란 중의 일기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아왔다. 사회경제사, 생활사 등 각 부문별 연구 성과는 물론이고 주제별로도 봉제사(奉祭祀), 접빈객(接賓客)의 일상생활, 상업 행위, 질병 치료, 음식 문화, 처가 부양, 사노비, 일본 인식, 꿈의 의미에 대한 연구가 이어졌다.
특히 전란 일기인 만큼 의병에 대한 평가와 명군의 횡포에 대한 서술도 냉정하게 담고 있다. 전쟁으로 인한 백성의 피해와 인간성을 잃은 참상도 빠짐없이 전해진다. 가령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사람들은 홀로 지나가는 사람을 죽여 잡아먹고, 심지어는 가까운 친척을 살해하여 잡아먹기까지 했다.
이번 한글 번역작업은 국립진주박물관에서 2017년 ‘임진왜란자료 국역사업’을 기획하면서 그 첫 대상으로 《쇄미록》을 선정해 이루어졌다. 추탄공파 종중은 1998년 《쇄미록》 원본을 국립진주박물관에 장기 대여한 바 있다. 번역과 교감·표점 사업은 전주대학교 한국고전학연구소에서 2년(2017~2018) 동안 맡아 완성했다. 《쇄미록》 한글본 세트는 한글본 6권과 한문 표점본 2권 등 총 8권으로 구성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