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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은 불편한 일이다. 물론 내가 남성이어서 그런 면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그런 주제로 말로써 엮이거나 혹 입장을 말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지 않도록 피한다. 그저 말하지 않고 무시하는 것이 마음 편하다. 그렇다고 내가 페미니즘에 대해서 반대를 하거나 가부장적 세계관에 함몰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문제가 무엇인지는 알고 있고, 또 왜 페미니즘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공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들려오는 소리들은 쓴웃음을 짓게 만든다. 논리는 비약하고 이성은 간곳없다. 거기에 대응하는 논리 또한 마찬가지이다. 감정만이 난무하는 것을 보면서 불편한 마음만이 가득해진다. 당연히 페미니즘을 다루는 책에도 관심이 없다. 제목에 ‘페’자만 들어가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책을 끝까지 읽었던 것은 ‘이 책은 진보적 노선의 페미니즘을 반대하지 않지만 타집단의 배척을 일으킬 정도의 과격한 페미니즘을 지양한다’는 말 때문이었다. 페미니즘이라면 무조건 옳다고 말하거나, 입에 거품을 물고 반대하는 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대부분 이러한 책들은 양비론으로 흐르거나 어쩌면 양쪽 모두에게서 비난을 받을지도 모르는데 저자는 어떤 생각으로 이 책을 썼을까 하는 호기심이 들기도 해서다. 페미니즘에 대한 나의 생각은 간단하다. 차이와 차별을 구분하면 되는 것이란 생각을 하고 있다. 나부터, 내 주위부터,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인정하고 차별하지 않는 것, 그리고 이를 실천해 나가는 것, 그것이 답이고 방법이란 생각이 든다. 물론 그렇게 해서 언제 차별이 없어지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렇지만 혁명이 아닌 다음에야 한꺼번에 모든 것을 이루는 방법은 없다. 더욱이 모든 사람이 공감하지도 않는다면 말이다. 과격하다고 해서 진보가 아니다. 타집단의 반발을 일으키는 운동은 예로부터 성공한 적이 없다. 저자는 이 책에서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진화심리학적으로 분석하고, 워마드로 대표되는 래디컬 페미니즘에 대해 비판하며, 올바른 페미니즘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쓰고 있다. 그는 래디컬 페미니즘이 남성과 여성의 성대결로 몰아가고 있으며 이익집단화 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그래서 그는 페미니즘이 더 설득력 있는 운동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찌해야 하는지를 말하고 있다. ‘페미니즘은 선택을 해야 한다. 분노를 억누르고 모두와 연대할 것인가, 아니면 고립될 것인가? 워마드에 대한 반대 서명은 같은 여성동지를 잃는 것이 아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다.’라는 말은 그래서 공감이 간다. 페미니즘이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가 분명 이 사회를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라면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옳다고 믿는 가치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의 페미니즘을 바라보면 우선은 불편함부터 떠오른다. 우리사회가 가지고 있는 모순에 대한 불편함이 아니라 차이와 차별을 구분하지 못하고, 다른 차별에 대해선 침묵하고, 심지어 거기에 한 발 걸치고 자신의 이익을 보태려는 불순함마저 엿보이는 것 같아서다. 그래서 워마드는 뭐라 떠들던 무시해버리고 페미니즘은 불편 해진다. 흔히 우리사회에서 남녀의 성차를 얘기할 때 나오는 이야기가 ‘유리천장’이나 ‘기울어진 운동장’과 같은 말이다. 그러나 그런 현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비단 남녀의 성차에서만 일어나는 일만도 아니다. 누가 그것을 없애자고 해서 사라지는 것은 더욱 아니다. 그것은 우리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구조적인 문제를 타파하지 않는다면 여전히 그런 사회가 될 것이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선 사회 모든 이들의 공감과 연대가 필요하다. 그렇게 볼 때 남성과 여성으로 편가르는 페미니즘이 아무리 분노하고 과격해진다고 해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물론 우리사회에는 아직도 가부장제의 영향이 강력하게 남아 있고, 그래서 페미니즘은 남성위주의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에 대한 반발에서 나온 운동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들의 운동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차이와 차별, 비판과 비난을 구별하고, 또 다른 차별을 받는 많은 사람들과 연대할 때 그들이 말하는 운동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기폭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저자는 ‘기존사회가 가지고 있는 폐단을 없애는 과정은 힘들고 어렵기 마련이다. (…) 그렇기 때문에 페미니즘은 불편해야 한다. 기존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그냥 넘어가지 않는 불편함을 느껴야 하며, 이는 끊임없이 저항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차별이 사라져 조금 더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선 불편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고 강조한다. 내가 느끼는 불편함이 저자가 말하는 불편함이 되기를 생각해본다. 물론 나자신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페미니즘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지 싶다. 이 책이 그러한 앎과 이해, 그리고 공감의 단초가 되었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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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적으로 페미니즘은 불편할 수밖에 없는 운동이다. 오랫동안 세상에 통용되었던 남성 중심적인 습속에 대해 대항하여, 이를 남녀평등의 면모로 바꾸고자 하는 운동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페미니즘을 표방하는 사람들도 각자 남성 중심적인 기득권을 어떻게 고쳐나갈지에 대한 지향이 같을 수 없기에, 생각이나 행동의 양태도 서로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이른바 급진적인 페미니즘 운동의 한 부류라 할 수 있는 ‘워마드’에 대한 저자의 ‘불편한’ 태도가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그럼에도 ‘페미니즘은 해야’ 한다는 저자의 생각에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서 저자가 역설하고 있듯이 페미니즘은 결코 단일한 이론이나 운동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남성인 저자는 페미니즘에 대해 공감하는 입장에 서 있지만, 모든 남성을 적으로 돌리는 급진적 페미니즘에 대해서는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다. 남성인 나 역시 때로는 급진적 주장조차도 공감되는 바가 없지 않지만, 현재 사회의 모든 제도를 단순하게 ‘남성/여성’의 이분법으로 재단하여 타도의 대상으로 삼는 논의에는 선뜻 동의하기가 쉽지 않다. 우리의 역사에서 오랫동안 통용되어온 불평등의 구조를 일순간에 뒤바꾸는 것은 결코 쉽지 않기에, 지속적인 ‘운동’을 통해서 여성차별적인 요소를 줄여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그리하여 저자는 페미니즘을 휴머니즘의 관점에서 바라볼 것을 제안하고 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그것이 지나치게 이상적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최근 페미니즘에 대해 ‘불편함’을 드러내는 남성들이 적지 않다. 저자는 이러한 원인 중의 하나로 급진적 페미니즘 단체인 ‘워마드’에 주목하여, 페미니즘의 실천과 지향에는 결코 그들의 방식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온도차를 좁히고 사회적 담론을 형성해야’ 하며, ‘남성/여성’으로 구분하는 ‘성 대립’을 강조하면서 ‘남성 혐오’와 ‘사회 갈등’을 조장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 시점에서 페미니즘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광범위한 공감을 얻기 위해서, 저자는 여성이란 성별 집단을 넘어서 페미니즘에 공감하는 남성들과의 연대를 넓혀 나갈 필요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과거와는 달리 페미니즘을 표방한 다양한 상품들이 출시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페미니즘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물론 지나친 상업화에 대해서는 충분히 경계해야 하겠지만, 페미니즘이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것도 과거에 비해 큰 변화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성차별적인 행동들에 대해 거울에 반사된 것처럼 똑같이 따라하는 이른바 ‘미러링’이 최근 페미니즘 운동의 하나로 자리를 잡고 있다. 그동안 여성이나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비하적 발언이 무비판적으로 통용되었다면, 최근에는 그러한 표현에 담긴 의미를 지적하고 그 말을 들은 누군가는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것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특히 1950년대 이래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철저하게 소외되었던 여성의 사회적 위치를 점검하면서, 얼마나 오랫동안 굳건하게 자리를 잡게 되었는지를 살핀 내용도 대단히 유용하다고 생각되었다.
저자는 남녀의 불평등한 소득 구조의 문제를 ‘유리천장’과 ‘경력 단절’ 그리고 ‘직업군 선호 차이’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결국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구조적으로 고착화되었음을 인지하고, 이를 바꾸려는 노력이 사회의 각 분야에서 선행되어야만 할 것이다. 물론 저자가 제시하는 남성의 ‘일과 가정의 양립’이라는 하나의 대안이 여성들이 보기에는 지나치게 순진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당수의 남성들은 남녀차별이라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그동안의 학습과 경험으로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때문에 가장 먼저 ‘남녀차별’의 습속들은 하나씩 지적하면서, 궁극적으로 ‘남녀평등’이라는 현실로 나아가기 위해 인식의 변화와 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시킬 필요가 있다 할 것이다.
페미니즘 역시 ‘여성 차별’을 줄이고, 끝내는 끝내는 없애기 위한 운동이기에 기득권을 누려온 남성들에게는 불편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차별을 차별로 느끼지 않고 살아온 사람들에게, 그것을 고치려는 시도는 때로는 불편하고 거부감을 느끼는 요인이 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기존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그냥 넘어가지 않고 많은 이들이 그것을 불편함으로 인식하고, 이에 끊임없이 저항해야 하기 때문에 페미니즘은 불편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혐오라는 형태로 표출된다면 자칫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기 힘들다. 때문에 페미니즘 운동의 공감대를 넓히기 위해서는 결국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혐오에 반대를 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차니)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음.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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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마드는 불편하지만 페미니즘은 해야 해 김지우 인간사랑/2019.2.10. sanbaram
요즘 뉴스에 페미니즘에 관련된 내용이 자주 나온다. 아울러 워마드와 일베 이야기가 심심찮게 거론되기도 한다. 워마드가 여성의 편에서 가부장적인 남성중심사회를 강하게 비판하고 남성을 적대시하는 단체라면 일베는 그 반대편에서 여성을 폄하 하는데 선봉을 선 단체라 할 수 있다. 이런 극단적인 대립은 SNS에서 더욱 첨예하게 맞서고 있어 자칫 성대결양상으로 번지거나 사회의 분열로 치달을 수 있는 위기적 상황에까지 내몰리고 있다. 이런 문제를 되짚어보고 바람직한 페미니즘 운동을 해야 한다는 <워마드는 불편하지만 페미니즘은 해야 해>의 저자는 연세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졸업, 사서 겹 작가로 책과 가까이 살고 있다. 저서로 개인의 잣대를 키우기 위해선 교육과 놀이를 융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는 ‘잣대봐라’가 있으며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를 다음 책으로 쓰고 있다.
<워마드는 불편하지만 페미니즘은 해야 해>에서는 진보적 노선의 페미니즘을 반대하지 않지만 타집단의 배척을 일으킬 정도의 과격한 페미니즘은 지양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워마드의 과격한 행동을 반대하는 글이며, 페미니즘이 여성집단만이 아니라 남성, 성소수자들과 연대하는 운동이 되길 주장한다. 전체 내용을 7개의 장으로 나누어 기술하고 있다. “페미니즘을 성대립의 문제로 다루는 것은 이 운동의 잠재성을 제한시키는 일이다. 페미니즘은 성대립 이라는 패러다임에서 벗어났을 때 더 성장할 수 있다.(p.37)”고 말하며, 페미니즘은 여성에게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에 이득을 준다는 것을 주장하여 보다 많은 사람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본적으로 ‘휴머니즘적’인 성격은 지속적으로 강조되어야 한다. 그것이 여성차별을 없애는 방안들을 실천하는데 더 도움이 되고 궁극적으로 행복한 사회를 만드는 데 효율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은 선택을 해야 한다. 분노를 억누르고 모두와 연대할 것인가, 아니면 고립될 것인가? 워마드에 대한 반대서명은 같은 여성동지를 잃는 행동이 아니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앞으로 나아갈 길이다.(p.50)” 여성이란 성별 집단을 넘어서 다른 집단 간의 연대를 이루지 못하면 결국 페미니즘은 그들만의 잔치가 되고 만다. 다수가 인정하지 않은 갈등 해소란 결국 반대쪽의 의견을 묵살한 폭력일 뿐이다. 페미니즘이 워마드를 포기하고 모두와 연대하는 것은 더 큰 이득이 된다는 것이다.
“당신이 다양한 페미니즘 책을 비교하며 읽었으면 좋겠다. (중략) 어느 한 권을 읽어서는 파악이 되지 않지만 서로 다른 책을 여러 권 읽다보면 왜 서로 다른 이야기로 갈등을 하는지 이해된다. 한 쪽에 쏠려있는 페미니즘 책을 읽으면 확증편향만 생길 뿐이다. 다양한 책을 묶어서 읽는 것이 종합적인 사고에 도움이 될 것이다.(p.199)” 다양한 책읽기는 페미니즘 분야가 아니더라도 추천하는 독서방식이다.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다. 자신의 입맛에만 맞춘 식사는 편식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양쪽의 페미니즘 도서를 함께 읽어야 한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시도는 갈등에서 화합으로 나아가는 첫 단계이기 때문이다.
“페미니즘 단체들은 워마드와 선을 그어야 한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불편함은 감수해야겠지만 이유 없는 불편함은 거부해야 한다. 혐오는 군중을 선동해 ‘내 편’으로 만들기엔 좋은 수단이지만 장기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만 만들뿐이다.(p.214)” 페미니즘과 워마드의 결별은 앞으로 페미니즘이 양적 성장이 아닌 질적 성장에 주력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이 페미니즘을 더 오래 지속하는 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 하지만 흔들린다고 모두 꽃을 피우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흔들림으로 지금껏 쌓아올린 성이 무너질 수도 있다. 성소수자나 다문화 여성에 대한 차별 등 많은 이야기를 다루지 못하고, 부족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어 출판한 까닭은 혐오가 가득한 최근 페미니즘에 대하여 자정작용을 촉구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워마드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떠드는 말들은 혐오의 부산물이다. 남녀분리주의를 외치며 미러링을 정당화하는 그들의 페미니즘이 페미니즘의 전부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극단적인 남녀에 대한 혐오를 나타내는 상황에서는 질적인 성장과 진정한 화해를 할 수 없게 되며, 나아가 원하는 바를 이를 수도 없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를 이해하고 서로의 입장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진정성을 갖고 접근했을 때 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변화를 이끌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워마드를 추종하는 사람이든 일베를 두둔하는 사람이든 모두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 사회를 균형 잡힌 시선으로 보고 밝은 내일을 준비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 리뷰는 예스24를 통해 인간사랑출판사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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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단체들은 워마드와 선을 그어야 한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불편함은 감수해야겠지만 이유 없는 불편함은 거부해야 한다. 혐오는 군중을 선동해 ‘내 편’으로 만들기엔 좋은 수단이지만 장기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만 만들뿐이다. 페미니즘과 워마드의 결별은 앞으로 페미니즘이 양적 성장이 아닌 질적 성장에 주력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것이 페미니즘을 더 오래 지속하는 길이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 하지만 흔들린다고 모두 꽃을 피우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흔들림으로 지금껏 쌓아올린 성이 무너질지도 모른다. p.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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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한 번 듣기만 하면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정작 그 실체에 대하여 제대로 알고 있는 경우가 드문 것 중 하나가 바로 페미니즘이 아닌가 생각된다. 페미니즘에 대한 무관심 또는 외면이 바로 그 이유가 될 수 있지만, 저자는 과감하게 페미니즘에 대한 진지한 성찰 및 토론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이유를 페미니즘을 성대립의 문제로 가져가는 래디컬 페미니즘만 접하였기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저자는 워마드의 극단적인 성격과 활동으로 인하여 '페미니즘'을 생각할 때 워마드만 떠올리게 되는 작금의 상황을 확실히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남녀 성대결 및 혐오가 도를 넘는 상황 속에서 [워마드는 불편하지만 페미니즘은 해야 해]을 통하여 논리적으로 워마드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면서 페미니즘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모색해보려는 저자의 의도는 그래서 눈길을 끌게 된다.
이 책은 진보적 노선의 페미니즘을 반대하지 않지만 타집단의 배척을 일으킬 정도의 과격한 페미니즘은 지양한다. 이러한 의미에서워마드의 과격한 행동을 반대하는 글이며, 페미니즘이 여성집단만이 아니라 남성, 소수자들과 연대하는 운동이 되길 주장한다. - p. 18 中에서 - 이 책의 주된 집필 이유를 밝히고 있는 이 부분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수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마드를 바라보는 시각은 온도차가 확실하다는 점에서 많은 생각이 필요하다. 워마드에 대하여 부정적인 사람은 물론이고 무관심한 사람들조차 언론에 언급되는 그들의 활동은 상당히 불편하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애초에 여성에 대한 혐오에 대하여 혐오로 대항하는 미러링을 통하여 차별에 대한 저항을 이끌면서 남성 및 성소주자 배척을 통하여 여성연대를 공고히 한 점은 언뜻 효과를 거둔 것처럼 보이는 이들의 활동은 이제는 그 정도를 넘어서면서 효과라고 생각된 부분들마저 흔들리는 상황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워마드에 대하여 저자는 크게 두 가지의 관점에서 문제로 보고 있다. 바로 이들의 활동이 성대립을 극대화한다는점과 이익집단으로서의 모습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2018년에 일어난 '헤화역 시위'는 언뜻 '불법촬영'과 '편파수사'에 반대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저자는 시위 참여자는 오로지 여성으로만 한정하면서 그러한 불법적인 행위를 규탄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생물학적 여성'이란 조건을 내세우면서 당한 '여성'에만 분노하는 데 집중한 점을 언급한다. 개인적으로 시위의 초점이 불밥적인 행위에 대한 반대 또는 피해자가 '여성'이라는 것에 대한 분노에 맞춰진 것에 대해서는 딱히 문제라 할 수 없지만, 나 역시 그 시위에 무조건 남성을 배제한 부분은 확실히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것을 페미니즘의 활동을 집단 이기주의적 활동으로 격하시키는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이를 통하여 얻을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그들만의 잔치로 만들었음을 문제로 보고 있는 것이다.
페미니즘이 이익집단의 형태를 띠거나, 급진적인 운동을 지향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여성끼리의 연대도, 혐오에 강하게 반발하는 것도 옳다. 하지만 이들의 경우 그 정도를 넘어섰다. 이것은 타집단을 배척하고 자기들끼리의 페미니즘을 주장하기 때문이다. - p. 31 中에서 - 저자의 이러한 생각은 확실히 현재 우리가 마주하는 페미니즘과 워마드의 관계를 곱씹어 볼 수 있게끔 한다. 이 짧은 문장은 제목처럼 저자의 생각을 응축하여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기존의 페니니즘의 활동과 그 미미한 효과를 감안한다면 분명 워마드는 페미니즘의 동력으로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그들이 추진한 초기의 미러링이라든지 적극적으로 기존의 차별과 부당함에 대응하는 모습은 대중들에게 페미니즘의 존재를 어느 정도는 인식할 수 있도록 기여하였으니 말이다. 그래서, 저자 역시 이익집단의 형태와 급진적인 운동 방향에 대하여 무조건 반대를 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정도를 넘어서고 또한 여성 이외의 타집단에 대한 무조건적인 배척과 혐오로 이어지고 있음은 확실하게 문제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워마드의 방법론에 대한 지적도 흥미롭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혐오에 대하여 혐오로 대응한다는 그들의 미러링 역시 살펴볼 부분이다. 전략적 승리를 위하여 다양한 전술이 존재하는 것처럼 미러링 역시 초기에는 그들이 취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전술이었다. 그러나, 이제 미러링은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변질되고 있으며, 더구나 대상을 명확히 하지 않음으로써 이제 또 다른 형태의 폭력에 대한 면죄부로 전락하고 있다. 물론 한국 사회가 빚어낸 기형적인 극단의 소통이 미러링이기에 단순히 이를 사용하는 워마드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그러한 환경을 함께 개선하기보다는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그들의 행위는 더이상 용납될 수 없는 상황이다. "남성은 적이 아니므로 우리 대 구도를 가져선 안 된다."라는 미투 운동의 창시자인 타라나 버크의 발언이 왜 나왔는지 진지하게 생각해 볼 시점이다.
여기에 더하여 '차별'과 '차이'에 대한 저자의 구분 역시 많은 대중들이 공감하는 부분이다. 차별에 대해 반대하기 위해 남성과 여성은 다르지 않다고 역설하지만, 성별에 따라 발생하는 특수성에 대해서는 유리한 대로 해석하면서 문제가 발생되고 있기 때문이다. 남녀는 다르다. 그리고 남녀의 '차이'를 설명하는 것은 '차별'을 정당화하는 것과 관련이 없다. 차이를 아는 것은 다르의 인정을 통해 서로 상대방에 대해 깊게 이해하고, 더 배려하고, 더 존중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기 위함이다. - p. 78 ~ 79 中에서 최근 각종 분야에 대한 여성 할당제가 도입되면서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심지어 고위직에도 여성에 대한 할당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분명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그동안 차별받던 여성에 대한 배려 차원이라고는 하지만, 저자의 '차이'와 '차별'에 대한 구분을 한다면 과연 그것이 올바른 정책인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애초 여성들이 활동하기 어려운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이지만, 이러한 것들이 분야를 막론하고 무조건적으로 적용되는 것은 또 다른 차별을 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들은 분명 페미니즘이 극복해야 할 부분이다. 오로지 여성들에 의해서만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있다는 워마드의 생각은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페미니즘 운동의 동력으로 워마드를 계속 활용한다면 거꾸로 페미니즘이 워마드에 의하여 종속됨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더구나 평등의 과정에서 발생하고 있는 각종 진통이 워마드의 부정적인 행태와 연계되는 순간 그러한 과정 자체 역시 부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이수역 주점 사건만 보더라도 사건의 진위와는 상관없이 집단적인 혐오 배출에만 소비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보면서 그러한 문제점을 우리는 어렵지 않게 마주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자기 검열 없이 집단 내 의견을 재생산하여 잘못된 확증 편향을 낳고 있는 그러한 부정적인 상황은 분명 극복되어야 한다.
[워마드는 불편하지만 페미니즘은 해야 해]는 개인적으로 페미니즘과 관련된 책을 많이 읽지 않은 입장에서 꽤 균형감이 느껴진다. 더구나 초반부에 오늘날 대한민국의 워마드와 페미니즘에 대한 생각을 분명하게 밝히면서, 자신의 책 역시 비판적으로 읽고 수용할 필요성을 지적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실 이 점은 나 역시 공감하게 된다. 저자의 이 책도 말 그대로 저자의 생각과 의견에 기반한 것이기에 그러한 여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유리천장 철폐에 대한 대책으로 빈부격차의 감소가 필요하다는 부분은 논리적으로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특정 계층의 승진에 앞서 대다수의 빈부격차가 감소한다면 그것이 큰 문제가 될 수 없다는 생각에 그러한 논리를 보인 것인지는 모르지만, 문제 제기와 그에 대한 해결책이 별다른 연관이 없어 보인다. 또한 "그나마 경제가 호황일 때는 여성의 경력단절을 남성이 책임질 수 있었다." 역시 페미니즘을 지향하는 사람들에게는 오해의 소지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대목이다. 경제의 상태에 따라서 남녀의 평등 개념이 가변적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오늘날 페미니즘과 워마드의 활동을 젠더학뿐만 아니라 진화론과 사회학은 물론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를 점검하고 있다는 점에서 균형적인 시각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은 눈에 띄는 부분이다. 더구나 대한민국 현대사와 연관지어 남녀의 상황에 따른 변화에 대한 의견 역시 참고할 수 있는 부분이다. 무엇보다 워마드의 잘못된 부분을 논리적으로 지적하면서 아울러 페미니즘이 나아갈 방향을 당당하게 개진하고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저자의 이러한 생각은 공감 또는 반박의 여지가 있겠지만, 그러한 반박이 논리적으로 이루어진다면야 무슨 문제가 될 수 있겠는가? 워마드의 자극적인 행위보다는 오히려 이러한 책들이 중장기적으로 페미니즘을 이해하는 과정에 더욱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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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마드가 아니어도 페미니즘은 불편하다.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은 페미니즘이 여성들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듯 이기적으로 들리는 데다 여성들의 주장 자체가 남성중심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낯설기 때문이다. 우리의 무의식은 낯선 것을 본능적으로 경계하고 혐오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인류의 진보는 무의식을 의식화하여 낯설지만 이로운 것을 수용하고 익숙하지만 잘못된 악습을 없애는 데 달려있다. 페미니즘이 불편해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알아야 하는 이유다.
저자는 "이 책은 페미니즘에 관심이 있지만 워마드가 불편한 사람들을 위한 글"이라고 전제한다. 워마드가 페미니즘의 전부가 아니며 페미니즘은 모두를 위해 필요하다는 점, 진화심리학이 종종 악용돼 성 차이가 성 차별로 이어지는 문제, 가치관이 세대별로 혼재된 오늘날 페미니즘이 마주한 잉여 남성의 문제와 함께 그밖에 더 생각할 문제들을 논의한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성차별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이기에 기본적으로 페미니즘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남성혐오와 성 대립을 부추기며 이익집단화하는 워마드는 페미니즘 운동을 확산시키는 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페미니즘이 남성을 비롯한 대중들로부터 멀어지도록 한다고 비판한다. 워마드처럼 "페미니즘을 성대립의 문제로 다루는 것은 이 운동의 잠재성을 제한시키는 일"이며 "우리 사회에 있는 성 차별적인 문제점을 찾아서 그 문제점을 분석하고(사실문제), 사회구성원들에게 이러이러한 기준에 의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설득해야 한다(가치문제)"는 것이다. 따라서 여성단체는 워마드와 선을 긋고 다른 진보적 단체들과 연대할 것을 주장한다.
다음으로 저자는 우리 사회에서 일부 남성 우월주의자들에 의해 진화심리학이 악용되고 있음을 지적한다. 단지 진화의 결과일 뿐 무조건 옳은 것이 아닌 '본능'이 잘못했거나 타당성 없는 일을 정당화하는 데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인간 문명은 자연상태의 거부이고, 인간의 역사는 본능을 거스른 기록"임을 상기하며 진화심리학에 접근할 때는 남녀의 성 차이가 생기는 원인을 설명하는 사실문제뿐 아니라 가치문제가 중요함을 강조한다. 예를 들어, "남성이 여성에 비해서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것은 진화에 의한 사실문제지만 그렇다고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래서 "남성은 여성보다 더 신경 써서 육아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는 것이 부부중심 사회의 자녀양육에서 요구되는 가치다.
또 현재의 페미니즘이 효과적으로 운동하지 못하고 남성혐오와 갈등을 부르는 데는 2010년 이후에 등장한 '잉여남성'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비판한다. 잉여남성이란 "IMF이후 사회에 진출하면서 고학력 잉여 인력이 되어버린 세대"로 "대표적인 갈등이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된 세대다. 비혼제도와 1인가구가 등장한 이유는 단순히 개인주의와 서구식 가치관의 유입 때문만이 아니라 생존하기도 버거워 '소확행'으로 만족해야 하기 때문이라 한다.
"이들은 남성이란 이유만으로 권력자나 잠재적 성폭행자 취급을 받고 있는 걸 억울해한다. '남성=권력자'라는 구시대적 패러다임은 남아있지만 남녀 성차를 느끼기에 취업도 안 되고 소득도 많지 않다. 가족을 이루지 못하니 시대를 착오하면서 가부장으로 살 수도 없다. 권리가 없으니 이전과 달리 성별에 따른 책임 부여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구시대적 남자들이 봤을 땐 이들은 감히 '남자답지' 못하게 직장 내에서 남성이라고 차 운전을 담당해야하고 짐을 나르는 것에 대해 '역차별'이라고 성을 낸다." (141p)
그밖에도 저자는 불평등 소득구조를 개선하는 문제에서 유리천장, 경력단절, 직업군 선호의 문제를 거론한다. 여성의 승진을 가로막는 유리천장 문제는 소수 여성의 승진보다 더 근본적인 소득불평등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함을 주장한다. 또 여성의 경력 단절은 맞벌이가 보편화된 사회에서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 가정의 소득문제로서 육아 참여와 함께 남성이 해결에 동참해야 함을 강조한다. 직업군 선호문제는 남녀가 선호하는 직업군에 따라 평균 연봉에 차이가 있는데 (여성들은) "공장이나 3D 직종엔 남성들이 가득하지만 이는 차별로 보지 않고 고소득 직종에 몰려 있는 남자들만 가리키며 이를 차별이라고 소리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탈코르셋, 페미니즘과 남성, 성차와 성차별을 더 생각해본다. 이 가운데 '페미니즘과 남성'에서 저자는 페미니즘에서 타자인 남성들이 분명 한계가 있지만 페미니즘 책을 읽지 않는 이유는 페미니즘 책이 다수의 남성들로부터 공감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이러한 원인을 남성혐오가 가득한 페미니즘 도서와 남성을 배척하는 지식인들 때문이라 비판한다. 과연 그러한가? 함께 생각해보길 바라며 일부를 옮긴다.
"최근 페미니즘 도서를 읽으면 모든 걸 성대립 문제로 가져가는 극단적인 성분리주의적 페미니즘 말고는 페미니즘이 없는 듯하다. 이러한 글들이 많은 이유는 그러한 글들이 쓰기가 쉽기 때문이다." (196p)
"가장 화가 나는 부분은 소위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이 앞장서서 이러한 상황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세상을 참 쉽게도 남성과 여성 둘로 나누어 '남성=권력자', '여성=약자'라는 프레임을 씌워버리고 여성을 향한 찬양과 남성에 대한 비판으로 문제 해결이 아닌 성별 대립만 만든다. 그리고 그런 글들은 여성으로부터 비판을 피할 수 있고 출판시장에서 잘 팔린다." (19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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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리천장 철폐를 외치며 단순하게 몇몇 여성의 고위직 진출에만 관심을 가진다면 다수의 여성들의 삶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평균에 속하는 다수에게 천장을 가리키는 건 당장 앞에 문제를 감추기 위한 교묘한 선동이라고 생각한다. 고개를 들면 바로 앞의 문제가 보이지 않는다. 유리천장 철폐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빈부격차의 감소이다. 남성과 여성은 갈등할 때가 아니라 서로 힘을 합쳐야 한다. - p.156
나도 잠정적 가해자가 되는 건 아닐까 싶어 페미니즘을 피하고 본능적으로 여성이 있는 곳은 피하게 된다. 사람이 붐비는 지하철에서는 손을 최대한 위쪽으로 들기도 한다. 본능적으로 가해자로 오해받지 않기 위해서 방어적으로 취하느 행동이다. 엘리베이터를 탈 때도 여성이 혼자 타 있는 곳은 본능적으로 피하곤 한다. 나를 잠정적 가해자로 취급하는 페미니즘을 피하기 위해서, 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해왔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페미니즘은 피해야 하는 것이 아니었다.. 물론, 나는 여전히 잠정적 가해자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여전히 조심해야 할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페미니즘을 피해야 할 이유는 아니다. 진정한 페미니즘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거부감 없이 동참할 수 있고, 동참해야 할 인류의 숙제이자 과제인 것이다.
2. 모든 남성이 범죄자가 아닌 이상 여성인권 향상은 남성집단에 피해가 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남성은 페미니즘을 할 수 있다. 잘못된 차별에 반대하는 것이 공익에 증진이 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직업을 선택할 때 성별에 차별을 없애는 것은, 그 자리에 더 적합한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면서 사회 성장가능성을 높이는 일이다. 이것은 여성 집단만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이득이 되는 일이다. - pp.36~37
페미니즘이 사회의 성장가능성을 높이는 일이라면, 워마드는 남성혐오와 차별을 부추김으로서 사회의 성장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사과와 귤이 다르다고 해서 사과가 귤보다 열등하지는 않다. 남녀의 '다름'으로 어느 한 쪽이 '열등'하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 잘못이지, 둘의 다름을 구분하는 것은 차별로 이어지지 않는다. - p.78
단순히,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는다면 또한, 열등하다고 주장한다면 그건 혐오다. 다름이 차별을 받지 않으려면 그저, 사과와 귤이 다를 뿐이다, 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한 과제가 된다. 페미니즘은 차별을 받아들이자는 운동이 아니고, 남성을 혐오하자는 운동이 아니다. 불합리하게 여성이 차별받았던 제도와 사회적 모순들을 바로잡아나가자는 운동이다. 그저, 여성이 단순히 남성보다 열등하게 인식되었던 다양한 사례들을 고쳐나가자는 운동이다. 워마다는 여성우월주의, 남성혐오 등으로 대표된다면, 페미니즘이 주장하는 것은 혐오가 아닌 합리적인 평등이다.
워마드라는 뾰족 튀어나온 페미니즘을 경험한 사람들이 그 끝에 찔린 것이 아프다고 전체 페미니즘을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워마드의 뾰족함을 마치 낭중치추로 여겨 이를 페미니즘의 금과옥조로 수용하는 것 역시 막아야 한다. - p.149
3.
비혼도 무자녀도 개인의 선택이며 마찬가지로 가정을 이루는 삶 또한 개인의 선택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사회란 비혼을 택해도 주변에서 외롭고 쓸쓸하게 보지 않고, 자녀와 가정을 택해도 족쇄가 되지 않도록 하는 사회다. 경력단절이 생긴다고 가족을 욕하기보다 경력단절이 생기지 않도록 일·가정 양립 제도를 바로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 p.164
세상은 이분법으로 보면 편하다. 여성은 약자이고 남자는 강자이다. 여성은 피해자이고 남성은 가해자이다. 대표집단으로 여성과 남성을 나누게 되면 이는 옳은 말이지만 과연 여성이 약자고 남성이 강자라는 것이 어디까지 통용되는 말일까? - p.196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보면 편하긴 해도, 그것이 바로 차별의 출발점이다. 이 차별이란 용어는 페미니즘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종 차별, 개인적인 차별, 직장 내 차별 등등. 차별은 어디에서나 존재한다. 세상을 이분법적으로만 볼 때, 그 차별은 공공연히 자행된다. 한 사람에게는 좋은 면, 안 좋은, 면, 싫은 면, 또 배울 점 등. 다양한 면이 존재한다. 그 사람이 나에게 한때 좀 못 되게 굴었더라도, 그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규정할 수는 없는 것처럼, 이분법이 아닌 다양한 관점에서의 사고가 건설적인 사회를 만들어간다.
4. 페미니즘은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권장해야 하며,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한다. 남성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워마드지, 페미니즘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도 이젠 알겠다. 페미니즘이 불편한 게 아니라, 워마드가 불편했었다는 것을. 『워마드는 불편하지만 페미니즘은 해야 해』라는 제목처럼, 페미니즘은 해야 한다. 불편했던 페미니즘이 오늘은, 편안함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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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다양한 페미니즘 책을 비교하며 읽었으면 좋겠다. 책을 쓰는 동안 다양한 페미니즘 책을 읽었다. 모든 책들에 대해 수긍하는 부분도,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어느 한 권을 읽어서는 파악이 되지 않지만 서로 다른 책을 여러 권 읽다보면 왜 서로 다른 이야기로 갈등을 하는지 이해된다. 한 쪽에 쏠려있는 페미니즘 책을 읽으면 확증편향만 생길 뿐이다. 다양한 책을 묶어서 읽는 것이 종합적인 사고에 도움이 될 것이다. p.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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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김지우 씨는 대학에서 문헌정보학을 전공하고 사서로 일하면서 틈틈이 사회학 관련 책을 쓰고 있다. 이 책은 혐오가 가득한 최근 페미니즘 추세에 대하여 (상호) 자제할 것을 촉구한다.
“페미니즘 단체들은 워마드와 선을 그어야 한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불편함을 감수해야겠지만 이유 없는 불편함은 거부해야 한다. 혐오는 군중을 선동해 ‘내 편’으로 만들기엔 좋은 수단이지만 장기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만 만들 뿐이다. (중략)
위의 말이 논리적으로 맞을지 몰라도 현실적으로 맞다는 보장은 없다. 요즘 사람들은 플라톤의 《국가》나 공맹 사상에 대해서도 자기 의견을 갖고 있다.
"페미니즘 독서모임에서 만난 사람이 있었다. 진보적인 여성으로 일베와 워마드에 극렬히 반대하던 분인데, 시간이 지나니 워마드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였었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해결하기 위해선 보다 거칠어질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였다." (55쪽)
물론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몇 가지 유용한 정보를 얻었다. 우선 최근 페미니즘을 둘러싼 남녀간 입장 차이나 갈등 구조를 알 수 있었고, 워마드가 어떻게 나타났는지에 대한 계보와 이유를 파악할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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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중-남고를 나와서 남자가 7대 3정도 되던 법학과를 나와 대졸 신입사원 中 80%정도가 남자인 전자부품회사를 다닌다. 내 고향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경북 북부 지역이다. 페미니즘은 어찌 보면 나랑 먼 이야기 일 수 있는 평범한 회사원이다.
매년 연말은 대기업 인사시즌이다. 인사시즌마다 심심찮게 나오는 이야기로 대기업 여성 비율이 많아야 3%, 어떤 기업은 1명도 없는 곳이 수두룩하다. 유리천장이라고 한다. 우리 회사도 올해 창사 이래(45년이 됐다) 최초의 여성임원이 탄생했다. 물론 내가 몸담고 있는 회사를 변명하자면 지금 임원이 되는 90년대 후반 입사한 여직원이 매우 적었기 때문이다(93년 이전에는 우리나라에 여직원 공채조차 없었다, 한국에서 여직원 공채를 처음 실시한 곳은 삼성그룹이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유니폼을 입고 근무를 시작했다, 아직 갈길이 멀기는 하지만 우리사회는 25년 동안 많은 진일보를 이룬 것도 맞다)
최근 한국사회는 금수저, 흙수저 계급론적인 빈부대립, 여전한 지역갈등, 남녀 대결, 노소대결, 보수-진보 등의 대립이 점점 심화된다. 그런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차별'과 대립을 떨쳐버리고 한 발짝 더 나아가야 한다. 이런 대립 아니라도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가 너무나도 많은데 안그래도 남과 북으로 갈려 불과 인구 5천만의 작은 땅 남한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갈라져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이 책은 페미니즘에 대해 알고 싶지만 워마드를 비롯한 강경한 일부 때문에 꺼림칙한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남녀 분리주의를 주장하는 래디컬 페미니즘에 대항하여 혐오를 포기해야 단순한 이익집단에서 벗어나 더 설득력 있는 운동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페미니즘과 워마드의 관계, 진화심리학에서 말하는 성차, 수저계급론과 혐오 등 다양한 개념을 쉬운 언어로 풀어 페미니즘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나 저같은 사회생활을 오래하면서 이런 운동에 무관심해진 가슴이 차가워진 일반인들도 읽어야 할 책이다. ![]() 저자는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워마드와 같은 급진적 단체에 의해 변질되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페미니즘에서 휴머니즘을 분리해서 독자적인 노선을 가도 좋다고 이야기 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이 존재하는 이상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포기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이야기한다. 기본적으로 '휴머니즘적'인 성격이 지속적으로 강조되어야 한다. 이 책은 남녀의 페미니즘 문제의 화해 할 수 없을까?란 질문에서 시작한다.
이 책의 1장은 왜 남자들이 페미니즘에 무관심한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그 온도차를 좁히는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2장은 얼마전 있었던 혜화역 시위와 워마드 반대 이유에 관해 성대립과 이익집단적인 관점에서 이야기 한다. 혜화역 시위의 목적은 성별에 따른 편파수사를 규탄하고, 판결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다. 이를 통해 2가지를 알 수 있다. 첫째, 이들에게 페미니즘이란 성대립의 문제이다. 불법촬영과 편파수사만이 문제라면 남성과 성소수자의 연대가 무엇이 문제일까? 편파수사를 한 것이 '남성'이고 편파수사를 당한 것이 '여성'이라는 이 성대립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이다. 둘째, 이들의 페미니즘이란 이익집단 활동이라는 점이다. 이익집단은 같은 생각과 이해를 가진 구성원들이 모인 단체다. 불법촬영과 편파수사는 성별을 떠나 사회 구성원이라면 모두가 분노해야 할 문제로 비합법적인 촬영 행위가 없어지고 법집행 또한 공정하게 이루어졌을 때 이는 남녀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다. 단순히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조건을 달면서 불법촬영과 편파수사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 대상이 '여성'이라는 데 집중하였다. 오로지 자신들의 단체가 추구하는 조건에 부합하는 구성원만을 위한 활동이었다.
3장은 페미니즘과 유사페미니즘에 대해서 알아보고 유사페미니즘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일부 지식인, 전문직 사람들이 워마드가 일부 과격 또는 잘못된 점을 인정하지만 워마드에 대해서도 당당하게 지지한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워마드로 인해 결국 제대로 된 페미니즘 자체도 비판받는 것에 대해 우려스러운 시각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 페미니즘 굿즈, 얼마전 이슈가 됐던 한 연예인의 휴대폰 케이스 GCDA(Girls Can Do Anything) 사건, 곰탕집 성추행 사건과 그에 대한 댓글 등 다양한 실제 사례를 들면서 이야기 하고 있다.
4장은 남성과 여성에 강요되는 남성성과 여성성에 대한 의미에 대해서 짚어본다. 차별이 아닌 차이에 대해서 이해하고 진화심리학적인 관점에서 페미니즘을 들여다본다. 추운 지방에 가면 눈과 관련된 단어가 많고, 사막에 가면 모래와 관련된 단어가 많은 것처럼 사람의 성격을 나타내는 5가지 영역의 글자는 크게 개방성(Openness to Experience), 성실성(Conscientiousness), 외향성(Extraversion), 친화성(Agreeableness), 신경성(Neuroticism)의 Ocean모델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심리학적인 관점에서 페미니즘을 들여다본다.
5장은 미스터 인크레더블과 N포세대로 시대별 남녀문제에 대해서 들여다 본다. - 1960년대 : 전후 가난한 나라에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가장 혼자서 모든 것을 책임지는 가장 즉 Mr. Incredible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즉, 지갑에서 나오는 당당한 가부장의 권위에서 오는 여권의 부재를 말한다. - 1970~80년대 : 호황에 가려진 각종 남녀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 1990년대 이후 : 시대 착오적 남성과 여성의 사회진출로 인한 잉여 남성, 그로 인한 자신들의 자리를 빼앗겼다고 생각하는 억울한 남성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6장은 경제, 정치, 문화 많은 면에서 우리사회의 차별의 만연성에 대해 지적한다. 기업체에 유리천장과 남녀간의 급여차이 등으로 인한 빈부격차를 찾고, 일과 가정의 양립이 족쇄가 된 오늘날 맞벌이 가정의 아픔을 이야기 한다. 결국 우리 문화가 올바른 문화로 가야 이 모든 것이 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요즘 이슈가 되는 탈코르셋 운동, 진정한 페미니즘의 나아갈 방향과 그 옆에 있는 남성, 차이와 차별을 넘어선 진정한 공존을 이야기 한다.
우리사회는 유교적인 문화 저변에서 분명 지난 25년간 많은 여권신장이 사회 전반에 걸쳐 이뤄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운동장에 서 있다는 것은 착각이다. 우리는 분명 유리천장, 보이지 않는 차별이 아직 사회 곳곳에 존재하고, 가정에도, 정치에도, 문화에도 존재하는 것이 분명하다. 페미니즘이 아직은 분명 필요하다. 미투 운동을 들여다봐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미래가 더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기 위해 지금의 워마드로 대표되는 극심한 페미니즘 운동이 불러오는 부작용 등에 대해서 제대로 들여다보고 남녀 분리주의를 외치며 미러링을 정당화하는 그들의 잘못된 페미니즘을 뛰어넘어야 한다. 진정한 페미니즘과 이제 그 페미니즘이라는 단어 자체도 사라져 진정한 평등과 공존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나의 엄마도 여자, 와이프도, 귀여운 조카도 모두 여자다. 반대로 나의 아빠도 남자, 나의 오빠도 남자, 나의 남편도, 친구도 남자인 세상이다."
분리와 분열을 넘어 진정한 공동체사회, 사회 모든 차별을 비판한다.
조금은 힘든 이야기 일 수도 있는데 이런 책을 발간해준 저자와 인간사랑에 감사함을 전합니다.
* 이 책은 인간사랑 출판사의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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