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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노래 노래책 노래책시렁 170 《아무튼 씨 미안해요》 김중일 창비 2012.4.25. 모든 사람이 두세 가지를, 서너 가지를, 열스무 가지를, 온 가지를 다 잘 해낸다면 어떠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누구나 무엇이든 다 잘 해내어도 멋진 터전이 될 만합니다. 누구나 무엇이든 썩 잘 해내지 못할 적에도, 그러니까 한 사람이 고작 한 가지만 잘 해내어도 즐거운 터전이 될 만해요. 어느 사람은 한 가지조차 못 하는구나 싶어도 사랑스러운 터전이 될 테고요. 아기를 잘 돌볼 줄 몰라도 됩니다. 아기를 사랑하면 돼요. 글을 잘 쓸 줄 몰라도 좋습니다. 글을 사랑하면 돼요. 풀꽃나무나 숲이 어떤 마음인가 읽지 못해도 좋지요. 그저 풀꽃나무하고 숲을 사랑하면 넉넉합니다. 《아무튼 씨 미안해요》를 쓴 노래님은 왜 꾸벅꾸벅해야 할까요. 누구한테 꾸벅꾸벅하는 몸짓일까요. 고요히 숨을 돌리면서 오늘을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두 손에 두 가지를 다 쥐려고 하기보다는, 두 손이 텅텅 비어도 외려 넉넉할 수 있으니, 손에서 힘을 빼면 좋겠어요. 때로는 힘있게 나아가도 좋을 텐데, 굳이 힘을 넣으려 하지 않아도, 우리가 이 별에서 숨을 쉬며 살아가는 동안에는 늘 힘이 흘러나와요. 부드러이 흘러나오는 힘만으로도 얼마든지 노래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이제 난 이렇게 날개까지 버젓이 달았는데, 수천 개의 초록 혀를 빼문 마로니에 그늘이 작고 깊은 못을 만들고 있다. (황색 날개를 달고 우리는/90쪽) 한국어로 점잖게 표현하자면, ‘아주 근사’하죠. 말해 뭐합니까. 나의 1977년식 파밀리아레. (품/107쪽) ㅅㄴ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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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다 문장의 소리 때문이다'. 조연호 시인이 낭송한 유빙들의 고열이 들렸다. 귄츠-민델 민델-리스 리스-뷔름 뷔름-오늘밤. 멍청하게도 멍청했다. 귄츠-민델 민델-리스 리스-뷔름은 빙하기를 일컫는 말이다. 몰랐다. 그런데 그냥 입밖으로 나오는 소리가 좋아서 '귄츠 민델 민델 리스 리스 뷔름'그리고 오늘밤 오물거렸다. 몰랐다. 귄츠 민델 민델 리스 리스 뷔름과 유빙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유빙들의 고열이라 딱들어맞게는 모르겠지만 또 잘 하는대로 어렴풋하게 무슨 말인지 때려다 맞추고 있었다. 때리지 않으면 맞춰지지 않는다. 뭉툭하다. 정교하지 않다. 세밀하지 않다. 무엇보다 잘지 않고 큼지막하다. 내가 시를 읽는 방법이다.
그 뭉툭한 느낌이 그 가느다란 바늘귀 같은 마음 속으로 쏙 들어가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오해하면서 즐거워하기도 하고, 감격하기도 한다. ' 아, 당신도 이런 거구나. 나도 이랬는데'
그리고 느낌. 귄츠-민델 민델-리스 리스-뷔름 오늘밤의 느낌은 더 이상 찾아보기 어렵구나. 과격하고 꽤나 격렬하다. 뜨거워서 뒈질것 같은 흡사 불에 타고 있는 듯 한 소금기 가득 찐득한 목덜미의 온도가 궁금해져 손바닥 대보다 손보다 훨씬 차가워서 배신당한 몸뚱이에 분노하듯 유빙들의 고열을 느껴본다.
유빙들의 고열-김중일 귄츠-민델 민델-리스 리스-뷔름 뷔름-오늘 저녁 기어이 하늘을 정복한 붉은 유빙들의 시간
하루가 실컷 빨다가 뱉어 놓은 왕사탕같이 끈적거리는 태양이 컨벤션 센터 로비에 뒹굴고 있다 저녁볕에 달라붙어 뒤엉킨 흙먼지처럼 잿빛 정장을 입은 사람들은 밤늦게 창문 속으로 화석처럼 기어 들어가 네 발을 창 쪽으로 가지런히 뻗고 잠든다
창문들은 그 속에 불규칙하게 가는 숨 쉬는 짐승의 화석 하나씩을 오래 품어 왔고 거대한 유빙의 군단처럼 도시 곳곳으로 밀려 들어와 정박해 있다 유구한 증발의 연대기 속에서 제국의 주치의들은 밤마다 고열의 창문에 물수건을 얹는다
식은땀으로 흥건한 내 찬 이마도 어느 멀고 이름 없는 얼음 대륙의 끝머리에서 떨어져 나온 한 조각 유빙
고열의 내 머리맡에서 코카트리케 한 마리가 날 간호하고 있다 야음을 틈타 그리핀이 유빙들을 모조리 와드득 깨물어 먹고 있다 잠결에 내 얼굴을 만지는 찬 손들의 정체, 불안을 가득 산적한 채 서서히 침몰하는 다섯 조각의 유빙이 내 얼굴의 협곡에서 물길을 잃는다
귄츠-민델 민델-리스 리스-뷔름 뷔름-오늘 밤 손톱 속에 박힌 선홍빛 유빙들, 언 손끝으로만 서로 고열의 이마를 짚어 줄 수 있는 시간 나는 유빙 속을 나는 새, 다 녹아 사라지기 직전인 내 두 손은 거대하고 튼튼했던 날개의 명백한 증거 새의 작고 찬 혀가 파도에 떠밀리고 떠밀려 내 입속에서 한 조각 여독으로 녹는다
다시 귄츠-민델 민델-리스 리스-뷔름 뷔름-오늘 지금 이 시간 푸르스름한 고열로 전부 다 녹아 흐르는 시간 서로의 얼굴 이제 그 어디에도 흔적 없는데 이상하게도 아직 나는 이렇게 기적같이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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