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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불가역(不可逆)의 큰 물줄기
"역사는 불가역(不可逆)의 큰 물줄기" 내용보기
저자는 자신 남편의 외고조부이자 동학농민군 최바우, 외증조부 최사인, 조모 최인경, 조부 한진규, 아버지 한민주까지 이어지는 가족의 비극사를 알게 된 것을 계기로 100년을 뛰어넘는 민중의 역사를 소설로 옮겨보려는 시도를 현실로 만든다. 소설의 부제인 “3.1혁명부터 촛불혁명까지”를 통해서도 파악할 수 있듯이, 1919년 3.1운동이 어떻게 그간 광화문에서 일어났던 촛불시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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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자신 남편의 외고조부이자 동학농민군 최바우, 외증조부 최사인, 조모 최인경, 조부 한진규, 아버지 한민주까지 이어지는 가족의 비극사를 알게 된 것을 계기로 100년을 뛰어넘는 민중의 역사를 소설로 옮겨보려는 시도를 현실로 만든다. 소설의 부제인 “3.1혁명부터 촛불혁명까지를 통해서도 파악할 수 있듯이, 19193.1운동이 어떻게 그간 광화문에서 일어났던 촛불시위로, 그 꺼지지 않는 민중의 촛불로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고증을 거친 역사적 팩트로 연결하며 이는 작가의 첫 번째 메시지인 것으로 보인다. 소설에 등장하는 대부분 인물과 사건이 사실과 약간의 허구로만 이어지는 소설은 아마 필자가 읽어 본 소설 중에서는 이 소설이 유일한 것 같다. 소설을 읽다 처음 눈물을 흘리게 했던 영초언니도 등장인물의 사실성과 서사의 진실성이 높은 작품이지만 그 서사가 한 시대에 한정되어 있고 등장인물이 일부 가명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 100년 촛불과는 그 의미적 강도에 있어 차이가 있다.

 

큰 역사적 사건으로 따지자면 1894년 동학농민운동을 시작으로, 1895년 을미사변, 1905년 을사늑약, 1910년 한일병탄조약, 19193.1운동, 임시정부의 수립, 19266.10만세 운동, 의병 활동, 항일투쟁 등을 지나 1945년 해방, 1948년 단독정부의 수립, 1950년 한국전쟁, 19604.19혁명, 19615.16군사쿠데타, 197910.26 유신의 몰락, 198012.12 군사 반란, 19805.18광주항쟁, 19876.10항쟁과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정부, 그리고 박근혜의 탄핵을 이끈 촛불시위까지의 역사가 실존 인물, 사건과 함께 서술된다.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새삼 강조하지만, 모든 사실과 등장인물의 실제 사건이 저자의 방대한 독서량과 역사 탐구, 고증으로 생생하게 다가온다는 점이다. 역사책의 각 페이지에만 한정되어 있던 단편적 사건, 인물들이 3차원 입체적 현실로 다가서게 만든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등장인물은 포털 인물 검색에서 쉽게 찾을 수 있으며 등장하는 선언문, 소설, 어록 등도 현대 역사가들의 검증을 거친 글들이다. 그러하기에 이 글의 서사는 섣부른 애국주의로 감성을 팔지 않으며 그 담백한 서사의 배경에는 숨길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 존재한다.

 

작가가 이 소설에서 전달하려는 두 번째 메시지는 영화 명량(2014)에서, 말 그대로 개고생해서 명량해전에서 승리한 후, 두 백성이 나눈 대화에서 발견할 수 있다. 실제 소설에서도 그 대사가 인용되기도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개고생한 걸 후손들이 알랑가?” “아따 모르면 ○○○○들이지!”라는 대화를 통해 작가는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역사적 각성을 촉구한다. 당신의 시민으로서의 자유,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 지금 누리는 경제성장의 원동력은 우연히 주어진 것이 아니고, 소수 독재자, 위정자, 기회주의자들의 자기 포장에 가까운 위선에 기인한 것도 아니며, 일말의 보상조차 바라지도 않았던 의로운 선인(先人) 민중들의 고결한 희생 덕분이라는 사실을 자각할 것을 촉구한다. 그 역사를 알려고 노력하고 그들과 공감하기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부르짖는다.

 

세 번째 메시지는 촛불의 힘은 곧 민중의 힘이라는 것이다. “촛불은 자기 몸을 태워 주위를 밝히기에 헌신을, 어둠을 이겨내는 빛이기에 소망을, 한 놈 하나라면 바람에 쉽게 꺼지기에 힘없는 무지렁이 민중을, 하지만 여러 한 놈이 들면 불의 강물을 이루기에 숫진(순박하고 인정이 두터운) 민중의 힘을 상징한다고 저자를 강조한다. 그러하기에 촛불은 대한민국 100년을 흘러온 피의 강, 불의 강인 것이다. 소소 손병희의 아내 산월은 인사동에서 청동 촛대 2개를 사서 하나는 친구 자혜에게 다른 하나는 손병희의 3.1운동을 취재하러 나온 기자 한민주에게 전한다. 자혜의 촛대는 베이징까지 그녀와 동행한다. 그 후 자혜는 단재 신채호와 결혼하고 아들 수범을 낳지만, 신채호는 옥사하고 둘째 두범은 병으로 잃고 그녀마저 안타깝고 고독한 최후를 남루한 단칸방에서 맞는다. 산월은 나중에서야 인사동에서 자혜의 집주인이 내다 판 그 청동 촛대를 만나고 슬픔에 잠긴다. 자혜의 촛대는 민중의 애환과 처절한 삶의 여정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민중의 힘은 그렇게 맥없이 꺼져 사라지지 않고 다른 청동 촛대의 소유자인 기자 한민주로 넘겨져 그가 목격한 4.19혁명, 한일회담반대 투쟁, 서울의 봄, 광주항쟁, 6.10항쟁, 광화문의 촛불시위로 그 도도한 민중의 힘을 과시한다단순한 역사소설로의 가치뿐 아니라 이 소설 속에 군데군데 등장하는 참 아름다운 우리말은 독자에게 자신의 우리말에 대한 무지를 자각하게 만든다. 그로인해 우리말의 가치를 새롭게 인식하게끔 만들며 이는 이 소설의 멋진 덤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언급하고 싶은 것은 항일 독립운동에 이념적 잣대를 두지 않는 시도를 들 수 있다. 그간 금기시됐던 사회주의, 공산주의 계열의 독립운동마저도 우리의 것으로 저자는 포함한다. 박헌영, 여운형, 심지어 이현상마저도 항일의 한 전선을 지킨 인물로 등장시킨다. 특히 단재, 약산을 새롭게 부각한 점도 눈에 띈다. 독립운동에 헌신한 이들의 노고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동학혁명에서 비롯된 민중 운동의 역사를 일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의 신군부,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의 정치·경제적 실정, 신자유주의 이명박 정부, 무능으로 대변되는 박근혜 정부에 저항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기술하였으며 독립운동에서부터 민주애국운동, 여성운동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통해 역사의 진보를 느낄 수 있게 만드는, 청소년뿐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좋은 근대사 교육용 도서라 감히 말할 수 있다.

 
d*****e 2022.02.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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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수레] 100년 촛불
"[다섯수레] 100년 촛불" 내용보기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몰랐던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소설로 만나다「100년 촛불」역사에 해박한 지식이 없는 나로썬 역사 소설이 무척이나 반갑다. 지루하다는 편견을 버리고 정말 내용 자체를 즐기며(?) 볼 수 있기에 최근 자주 읽곤 하지만, 읽을 때 마다 느끼게 되는건 나의 배경지식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당시 상황들을 머리에 그려볼 수 없다는 것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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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몰랐던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를 소설로 만나다


100년 촛불

역사에 해박한 지식이 없는 나로썬 역사 소설이 무척이나 반갑다. 지루하다는 편견을 버리고 정말 내용 자체를 즐기며(?) 볼 수 있기에 최근 자주 읽곤 하지만, 읽을 때 마다 느끼게 되는건 나의 배경지식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당시 상황들을 머리에 그려볼 수 없다는 것이 아니라 소설의 내용이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알아 챌 수 없어 때론 답답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책을 읽다보면 이내 책에 흠뻑 빠져버려 어떤것이 사실이고 어떤것이 허구인지 중요하지 않게 된다.


모르는게 너무 많아 역사 소설을 읽은 후엔 꼭 그와 관련된 배경지식을 찾아보게 됐다. 찾아보다보면 얼마 알지도 못하는 역사 조차도 내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들이 무척 많다는 걸 알게되곤 한다. 이 책의 시작은 천도교의 청동촛불 촛대가 켜지며 시작된다. 소소(의암 손병희 선생님) 의 부인인 산월은 그의 벗인 박자혜와 동동주를 마시며 앞으로 벌어질 일에대해 넌지시 독자들에게 알리는 듯 했다. 소소가 준비중인 조선을 뒤흔들 일에 대해... 이것이 1919년 3월 1일 벌어질 엄청난 일이라는 걸 알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이 책은 총 3부로 나뉘어있다. 1부는 의암 손병희 선생님, 2부는 단재 신채호 선생님, 3부는 청암 송건호 선생님이 주인공이라 보면 될 듯 하다. (물론 이 외에도 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교과서에서 접했던 두루뭉술하게 훑고 넘어갔던 지식들과는 달리 책을 통해 알게되는 선생님들의 일상과 행적들은 마치 내가 옆에서 그를 딸 다니듯 실감났다.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내 눈가에 주름이 자글자글 잡히게 되곤 하는데, 나도 모르게 억울한 상황들을 보며 인상이 써지곤 했기 때문이었다. 가슴 뭉클함을 느끼며 눈물을  참기도 하고, 답답함에 한숨을 크게 쉬기도 하며 700여 페이지에 가까운 책이 끝나버렸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기생이라는 이미지는 몸을 팔고 웃음을 파는 그저그런 여자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노래가 뛰어나고 춤이 뛰어나도 기생이기에 그저 그런 사람들보다 못한 여인들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독립운동을 함에 있어 그녀들은 아무에게나 웃음을 팔았던 것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당시 명월관이란 곳은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겐 안식처가 되어 주었고, 일본순사의 눈을 피해 담합을 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해 주었다. 또한 그곳으로 놀러오는 조선 청년들의 가슴에 독립사상을 심어 주었다. 소소의 부인인 산월 역시 기생이었고, 소소의 뒷바라지며 병수발을 지극 정성으로 한 여인이었다. 그냥 평범한 여인들도 감당하기 힘들었던 독립투사의 부인이었으며, 그 누구보다 지조있고 마음이 바른 그런 여인이었다.


순 한국어를 알아가는 재미도 있고, 어떤 인물이 실제 존재했던 인물인지, 어떤 인물이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해 만들어진 허구의 인물인지 알아가는 재미또한 있었다. (나의 무식함은 이를 구별하는 것이 무척이나 힘든 과정이었다 ㅠ_ㅠ) 그렇기에 역사적 사실들을 다시한번 검색해 보는 과정은 나에겐 반드시 필요한 과정중 하나가 되어 버렸다. 덕분에 새롭게 알게되는 것들 또한 많기에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이런 과정들이 무척 재미있게 느껴진다. 오랜 시간이 걸림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다.


여전히 난 역사를 아는 부분보다 모르는 부분들이 많다. 하지만 이렇게 한번 읽게 된 책들은 나에게 모르는 부분들을 채워주는 과정이기에 오랜 시간이 걸려도 지루하지 않다. 혹여나 나처럼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교과서에 등장하는 내용들 보다는 소설을 통해 먼저 역사와 친해지라 권해주고 싶다. 그 과정들 속에서 역사를 제대로 알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게 될 것이고 이런저런 정보들을 찾아보게 될 것이다. 역사를 알아가는 재미를 느끼게 될 것이며,  내가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좀더 깊이있게 알게 될 것이다.

 

 

d******5 2019.03.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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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 기념으로 읽어봤어요
"3.1운동 100주년 기념으로 읽어봤어요" 내용보기
요즘 '버닝썬'과 '장자연' 사건 뉴스의 댓글을 보면 다수가 불신을 담고 있다.경찰도 못 믿고, 검찰도 못 믿겠다. 급기야 대통령까지 언급되고 있으니 말이다.관심없던 나도 연일 보도되는 바람에 알게 되는 상황들은 불쾌감만 주었다.이런 와중에 읽어서일까.. 소설 <100년 촛불>은 인상 깊게 다가왔다.100년의 역사 속, 촛불처럼 자신의 몸을 헌신했던 수많은 사람이 등장한다.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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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버닝썬'과 '장자연' 사건 뉴스의 댓글을 보면 다수가 불신을 담고 있다.

경찰도 못 믿고, 검찰도 못 믿겠다. 급기야 대통령까지 언급되고 있으니 말이다.

관심없던 나도 연일 보도되는 바람에 알게 되는 상황들은 불쾌감만 주었다.

이런 와중에 읽어서일까.. 소설 <100년 촛불>은 인상 깊게 다가왔다.


100년의 역사 속, 촛불처럼 자신의 몸을 헌신했던 수많은 사람이 등장한다.

1부, 녹두의 아우는 천도교의 손병희를 사랑한 기생 산월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독립운동을 앞둔 상황에서도 아름답게 피어난 사랑 이야기라고 할까..

숭고한 이미지로 미화한 느낌이 들기도 했지만 소설답게 아련하고 짠했다.


신념이라는 촛불을 가슴에 품은 이들의 이야기는 2부, 한놈의 선언

일제시대와 해방을 거쳐 3부, 촛불의 향기 최초 탄핵으로 물러난 박근혜 시절까지 이어진다.

유명한 의인과 열사를 포함하여 그동안 몰랐던 투사들,

언론조작과 탄압 등 암울했던 시대적 상황을 숨 가쁘게 풀어낸다.

중반쯤 되니 책을 놓기가 힘들었다. 그만큼 내가 몰랐던 이야기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친일파의 후손에 대한 시선은 절대 곱지 않다.

숨기고 사는 사람도 꽤 많으리라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조계를 비롯한 정치권과

기업에서 뿌리를 뽑을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책에 나온 모든 사실을 무작정 믿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흐름 속에서 등장하는

친일파 인물들의 과거사는 결코 쉬이 넘겨지지 않았다.

수많은 고문 속에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자신을 희생했던 분들이 지키고자 했던

대한민국은 지금 어떤 모습인가.. 진중하게 생각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이 책과 동시에 <메이드 인 강남>을 읽고 있었는데

같은 대한민국이라고 보기엔 괴리감이 상당해서, 또 다른 충격으로 다가왔다.


<100년 촛불> 본문에도 언급된

영화 <명랑>의 대사가 속 깊이 와닿았다.


 

"아따 우덜 후손들이 우리가 요로코롬 개고생 한 걸 알랑가?"


"그걸 모르면 호로새끼들이지!"


 

 

두툼한 분량이지만 가독성이 좋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내 나라 대한민국의 100년을 돌아보며

일제의 만행에 울컥한 심정이 리뷰를 쓰는 이 순간에도 사라지지 않는다.

앞으로 많은 것을 돌아보며 다시금 생각하는 계기가 될 듯하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한 뜻깊은 시점에 추천해본다.

i***o 2019.03.1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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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0년의 촛불. 앞으론 어떤 촛불이?
"지난 100년의 촛불. 앞으론 어떤 촛불이?" 내용보기
‘소설을 쓰네, 소설을 써’ 보통은 약간 빈정거리는 말투로 이런 말을 한다.   현실에서는 그렇지만, 반대로 소설일 경우에는‘이거 얼마나 실제 이야기일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그냥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실제 역사적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럴 듯한 이야기로 들리기 때문이다.   소설과 현실의 경계는 점점 흐릿해져가는 오늘이다. 박근혜 탄핵과 촛불, 최근 버닝썬+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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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쓰네, 소설을 써’

보통은 약간 빈정거리는 말투로 이런 말을 한다.

 

현실에서는 그렇지만,

반대로 소설일 경우에는

‘이거 얼마나 실제 이야기일까?’ 싶은 생각도 든다.

 

그냥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실제 역사적 인물들이 등장하고, 그럴 듯한 이야기로 들리기 때문이다.

 

소설과 현실의 경계는 점점 흐릿해져가는 오늘이다.

박근혜 탄핵과 촛불, 최근 버닝썬+승리 사건을 보면 더욱 그렇다.

 

* 요즘 인기 있는 강사 ‘설민석’씨가 한 때 논란이 됐다.

3.1절 민족대표들은 오늘날 룸살롱에서 낮술한 거고,

대부분 친일로 변절했다는 주장이었다.

 

아마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는데,

역사적 사실에 토대했다며 별 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다.

(적어도 손병희 대표 후손들이 한 부분에 대해선 없고,

대부분 변절했다는 부분에 대해선 책임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아무튼,

이 책을 보면, 그게 얼마나 아름답고 그럴 듯 하게 들리는지 모르겠다.

 

당시 기생은 술과 웃음만 파는 사람들이 아니라,

민족의 혼을 일깨우며 전도했던 이들이라니!

 

손병희가 술집에 들락날락 거린 건 일제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서라니!

 

굳이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을 한 것은,

시위가 혼란해질 것을 피하고,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선언하게 함이었다니!

 

얼마나 사실에 부합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찾아보니, 실제 손병희는 기생? 술집에서 일했던 이와 결혼했단다.

아주 허황된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다.

그럴 듯 한 사실을 잘 꾸며서 한데 어우러지게 만든다.

 

저자의 글솜씨가 탁월하다.

전작 <디어 맑스>를 읽으면서도 느꼈다.

그냥 엥겔스처럼 썼다.

이 책도 마찬가지.

‘저자’의 느낌은 일부러 남기지 않는다.

 

흥미로운 건 저자가 언론인이라는 점.

소위 말해 ‘팩트’를 잘 다루어야 하는 특성이 있다.

 

근데 소설을 쓴다.

기사를 소설 쓰듯이 쓴다면?

 

건조하고 알아듣기 쉬운 말로만 쓰는 것도 아니다.

잘 못 들어본 우리말을 참 많이 쓴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는 것도 좀 된다.

 

민중의 촛불 혁명을 누구보다도

원하고 지지하는 저자다.

 

이 책을 통해, 소설이지만, 아니 소설의 형식을 빌려

저자가 역사를 정리한 느낌이 든다.

 

누가 뭐래도, 저자는 이렇게 세상을 바라보는 게 아닐까 싶다.

 

손석춘 선생의 활동을 늘 응원하고, 주목해서 보는 나에게는

단순히 소설로서의 재미 뿐 아니라,

역사에 대한 재구성도 흥미로웠다.

 

손병희, 신채호, 안중근, 전태일 등 우리 시대의 인물들을

삶의 이야기로 새롭게 만날 수 있다.

 

책이 두껍다. 꽤.

하지만 역시 소설책이다.

딱딱한 책들보다 훨씬 쉬이 읽힌다.

 

그의 다음 책을 기대해본다.

소설 말고, 현실에 관한 책도 좀 더 내주길...

f*****s 2019.03.1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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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촛불, 기꺼이 스스로의 몸을 태워 어둠을 밝히는 촛불이 되다
"100년 촛불, 기꺼이 스스로의 몸을 태워 어둠을 밝히는 촛불이 되다" 내용보기
어렸을 때, 내가 살던 아파트 뒷산에 산불이 난 적이 있다. 처음엔 산 중턱 한곳에서 작은 불씨가 일렁이더니 어느새 그 불씨는 무서운 속도로 마을 가까운 곳까지 번져 내려오기 시작했다. 때는 깜깜한 밤이었지만 온 산을 휘덮은 불 때문인지 주변은 대낮같이 환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점점 더 크게, 점점 더 무서운 기세로 내려오는 불덩어리들을 보면서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100년 촛불, 기꺼이 스스로의 몸을 태워 어둠을 밝히는 촛불이 되다" 내용보기

 어렸을 때, 내가 살던 아파트 뒷산에 산불이 난 적이 있다. 처음엔 산 중턱 한곳에서 작은 불씨가 일렁이더니 어느새 그 불씨는 무서운 속도로 마을 가까운 곳까지 번져 내려오기 시작했다. 때는 깜깜한 밤이었지만 온 산을 휘덮은 불 때문인지 주변은 대낮같이 환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점점 더 크게, 점점 더 무서운 기세로 내려오는 불덩어리들을 보면서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두려움을 느꼈다. 그때 느꼈던 그 공포, 죽음에 대한 공포마저 잊게 만들었던 그 공포감은 그 이후 어디에서도 느껴본 적이 없었다.


 100년 촛불. 불현듯,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잊고 있었던 어릴 적의 기억을 떠올렸다. 시작은 작은 불씨였으나 그것이 모이고 모여서 어마어마하게 큰 불덩어리가 되어 가던 모습. 이는 불의와 부조리에 맞서 거리로 뛰쳐나왔던, 연약했으나 그렇지만 누구보다도 강인했던 우리 대한민국 민중들의 항쟁을 연상케했다. 정의를 부르짖는 커다란 고함소리와 함께 무서운 기세로 거리를 가득 메우며 행진하는 민중의 모습은 누군가에게는 감동으로, 누군가에게는 무시무시한 두려움으로 다가왔으리라. 하나하나는 약할지 모르나 그것들이 뭉치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큰 위력으로 작용하게 됨을 일제도 독재 정권도 잘 알았고 그래서 민중들의 단합을 그 무엇보다 두려워했다. 언론을 조작하여 민심을 선동하고, 체포와 잔학무도한 고문을 일삼고, 사상교육을 하는 등 민중의 단합을 저지하기 위해서 그들은 철저했고 필사적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어두운 암흑 속에서도 그곳에는 어김없이 사랑이 있었고 반드시 항거의 불씨가 피어올랐으며 그 불씨는 지켜보는 이들의 가슴속에도 불을 지피며 또 다른 수많은 촛불을 낳았고 그렇게 모인 촛불들이 세상을 환히 밝히면서 결국은 어둠을 몰아냈다. 자기 자신만 잘 살기 위한 변절과 배신이 난무하는 가운데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고문으로 인한 공포와 고통에 살이 문드러지면서도 오로지 후손들에게만큼은 이 불공정하고 부자유한 세상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로 자신의 몸을 내던진 수많은 촛불들. 우리는 다행히도 기록에 남아 얼굴과 이름이 알려진 분들뿐만 아니라 얼굴도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민중들, 누군가의 아버지 어머니였고, 누군가의 아들딸이었던 그분들 모두를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어둠을 몰아냈지만 아직 그들에게서 진심이 담긴 사과를 받지 못했다. 그들은 여전히 떳떳하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어둠은 우리 곁을 맴돌며 언제든 다시 이 세상을 집어삼키기 위해 혀를 날름 거리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항상 올바른 역사 인식을 지녀야 하며, 기꺼이 스스로 몸을 태워 세상을 밝히고자 했던 저 촛불 정신, 민중들의 정신을 잊지 않아야 슬픈 역사의 반복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100년 촛불≫은 눈물 없이는 읽을 수 없는 책이다. 나는 여러 번 코끝이 찡해지고, 여러 번 눈물을 흘렸으며, 때로는 분노의 한숨을, 때로는 감동의 감탄사를 내뱉으며 몰랐던 역사의 순간을 목격하고, 그날의 그 거리, 그 민중들 속으로 섞여 들어가 함께 행진하고 함께 부르짖기도 하였다. 일제에 맞서, 독재 정권에 맞서, 부조리한 사회에 맞서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되찾고자 투쟁한 우리 민중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고 어찌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있을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만약 어둠이 또다시 이 세상을 잠식하려 든다면 나 역시 기꺼이 스스로 몸을 태우는 촛불이 되리라. 아마 많은 독자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품게 될 것이다. ≪100년 촛불≫. 이 책 또한 하나의 '촛불'이 되어 읽는 사람들의 가슴 가슴에 뜨거운 불씨를 옮겨 놓을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100년 촛불≫은 보기엔 꽤 두꺼워 보이나, 실제 일어난 우리의 역사를 소설 형식을 빌려 '이야기'로 들려주기 때문에 가독성이 굉장히 높아 술술 읽히고, 작중 인물들의 감정과 정신에 쉽게 동화될 수 있었다. 딱딱한 설명체, 암기 위주의 요점정리식 수험서와는 차원이 다르다. 수험서를 통해서는 인물들의 혼을 느낄 수 없다. 당연히 그러한 수험서로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은 그 책에 적혀 있는 내용들이 그저 머릿속에 집어넣어야 할 활자들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내가 그러했다. 그래서 역사는 언제나 어렵고 귀찮은 과목에 불과했다. 학교 수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선생님께서는 시험에 잘 나오는 부분들을 콕 집어 밑줄을 긋게 하셨고, 쉽게 외울 수 있는 전략들을 전수해주셨다. 어떤 역사적 사건에 대한 우리 학생들의 감정이나 감상을 요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이었다. 그러한 교육방식, 철저한 암기만을 요하는 시험문제들은 당연히 학생들을 지치게 했고, 결국 역사에 대한 흥미 자체를 떨어지게 만들어버렸다. 학생들의 역사과목 기피 현상이 심각한 수준인 것은 학생들의 잘못이 아니라 대한민국 교육의 현실이 아이들을 그렇게 몰아간 것이다. 무려 '국가'가 한국사를 필수가 아닌 선택과목으로 지정할 정도였으니 말해 뭐 하겠는가. 딱딱한 수험서 대신 ≪100년 촛불≫과 같은 책을 읽고 서로 감상을 나누는 시간을 갖는다든가, 선생님과 학생들이 역할을 맡아 연극과 같은 형태로 역사적 사건을 재현해보고, 사회경제제도를 직접 체험해보는 식으로 수업을 진행한다면 굳이 힘들게 외우려 하지 않아도 인물들의 이름과 정신, 역사적 사건들이 저절로 내 안으로 스며들 것이며 무엇보다도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정립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역사 시간만큼은 교실 바깥으로 나가 직접 보고, 체험하고, 느껴보는 식으로 수업방식이 바뀌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100년 촛불≫을 읽은 독자들은 모두, 한 명도 예외 없이 이 책의 특징 하나를 발견할 것이다. 바로 순우리말의 적극적인 사용이다. 지금은 우리 주변에서 종적을 감춰버린 순우리말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온다. 비록 그 뜻을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사전을 찾아볼 필요가 있었지만 생김새도 발음도 참 예쁘고 귀여운 순우리말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었던 것도 이 책의 묘미 중 하나였다. 이렇게 아름다운 순우리말들이 어째서 지금은 사라지게 된 것일까?  순우리말들이 다시 활발하게 쓰이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흔히 3.1운동이라 하면 유관순 열사만을 떠올리는데, 이 소설을 읽고 나면 분명 3월 1일이 찾아올 때마다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져 있을 것이다. 우리가 몰랐던 사실들을 많이 알고 배울 수 있는 책이다. 특히 3.1혁명의 불을 더욱 뜨겁게 지핀 사람 중에 기생들이 있었다는 점을 알고 굉장히 놀랐다. 지금까지 기생이라 하면 그저 몸과 예를 파는 천한 계급의 하나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3.1혁명을 주도하며 횃불을 들고 거리로 나선 기생들과 끝까지 소소 손병희 선생의 독립운동을 곁에서 지지하고 북돋아 준 산월을 지켜보며 이에 대한 선입견이 확 사라지게 되었다. 스스로의 몸을 태워 기꺼이 촛불이 되고자 한 모든 이들, 거리로 나와 부조리한 세상과 맞서 싸운 모든 이들. 그 거대한 불덩어리 속에는 남녀도 계급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나의 마음만이 뜨겁게 타오르고 있을 뿐이었다.


d********4 2019.03.12.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100년 촛불 - 손석춘
"100년 촛불 - 손석춘" 내용보기
인상깊은 구절무릇 직필은 어렵다. 권력이나 자본이 가만두지 않는다. 직필은 '사주'라고 불리는 언론자본과 고위간부들이 통제하며 때로는 이해당사자들이 덤벼들고 '몽매한 세론의 비난'까지 따른다. 반면에 곡필은 쓰기 쉽다.권력과 자본이 비호해준다. 권력이 제안하는 고위 관직이나 자본이 제공하는 고액 연봉 자리로 언제든지 옮겨갈 수 있다. 그래서다. 송건호는 힘주어 썼다. "
"100년 촛불 - 손석춘" 내용보기

인상깊은 구절

무릇 직필은 어렵다. 

권력이나 자본이 가만두지 않는다. 

직필은 '사주'라고 불리는 언론자본과 고위간부들이 통제하며 때로는 이해당사자들이 덤벼들고 '몽매한 세론의 비난'까지 따른다. 

반면에 곡필은 쓰기 쉽다.

권력과 자본이 비호해준다. 권력이 제안하는 고위 관직이나 자본이 제공하는 고액 연봉 자리로 언제든지 옮겨갈 수 있다. 

그래서다. 송건호는 힘주어 썼다. "곡필은 하늘이 죽이고 직립은 사람이 죽인다." (pg 510)



'손석춘'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대학 시절이 생각난다.

'신문읽기의 혁명'이라는 책을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며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게 되었다. 

이후에 '유령의 사랑'이라는 소설을 통해 그의 문학 작품에도 발을 들였었다.

읽은지 오래 되기도 했고, 그때는 책을 읽고 서평을 남기는 버릇을 들이기도 전이라 '마르크스 이야기'라는 것 외에는 

기억이 전혀 나진 않지만 여하간 그의 비소설보다는 크게 인상적이지 않았다는 느낌이었다.

그래도 오랜만에 그의 이름을 들으니 다시 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는 욕심이 불쑥 생겨났다.


100년 촛불.

단순한 제목이지만 심오한 뜻을 담고 있는 제목이다.

왜 하필 지금 시점에서의 100년인가?

3.1혁명이 1919년 3월 1일에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왜 하필 촛불인가?

지금 이 정부를 만든 힘이 촛불로 상징되기 때문이다. 


약 700페이지 정도로 처음 받아보면 '어우, 두꺼운데?'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3부로 나눠져 있어서 부제를 읽고 처음에는 대충 1부가 3.1운동(읽기 전엔 운동이라고 생각했으니), 

2부가 4.19혁명, 3부가 촛불혁명 이야기인가보다 정도로 예상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하게 이야기를 배치하고 있지도 않았고, 오히려 혁명적인 사건 그 자체 보다는 100년이라는 시간의 흐름 속을 

치열하게 살았던 개개인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다. 


1부는 의암 손병희 선생, 2부는 단재 신채호 선생, 3부는 청암 송건호 선생의 이야기가 핵심이다.

특이하게도 세대를 이어가며 위 세 인물의 주변에서 역사의 흐름을 함께하는 가상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의암의 곁에는 최바우가, 단재의 곁에는 최사인이, 청암의 곁에는 한민주라는 인물이 있다. 

최바우의 아들이 최사인이고 그의 외증손자가 한민주이다. 

역사적 팩트를 크게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이 가상의 인물들이 걸출한 세 명의 위인을 곁에서 관찰하는 형식을 띄고 있다. 


처음에는 이 인물들이 굳이 등장할 필요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다. 

100년의 역사를 한 책에 묶으려다보니 아무래도 의암, 단재, 청암을 제외한 다른 인물들의 설명은 간략히 넘어가는 측면이 많은데다 

엄연한 역사적 사실 속에 픽션을 넣어야 하니 가상의 인물들이 큰 업적을 세우는 역할로는 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들을 집어넣은 이유가 무엇일까를 나름대로 유추해보았다. 

작가는 그 100년이라는 시간동안 걸출한 업적을 남겨 후대에 길이길이 이름을 남겼던 위인들 말고도 

이들을 따르며 함께했던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이 가상의 인물들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또한 걸출한 위인이라 할지라도 특별한 계층이나 훌륭한 집안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평범한 이들이 살다보니 어떤 계기를 접하게 

되고 그 계기를 통해 자신의 인생은 물론, 역사를 바꾸는 흐름에 동참하게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이처럼 허구의 인물이 실제의 인물 속에 섞여있다보니 읽으면서 검색할 일이 꽤 많다.

역사 전공이 아니라면 장담컨데 평소 독립운동가를 잘 안다고 자부했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모르는 인물이 꽤 많이 등장할 것이다.

그래서 이 인물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검색해보게 되는데, 실제 인물이라면 바로 사진이 뜨니 읽어가면서 생동감을 더해주기도 한다. 

물론 실제의 인물이기 때문에 어떤 여성 독립운동가를 검색하면 '누구의 배우자'라고 뜨는 등 의도치않은 스포(?!)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 


허구의 인물들 역시 재미있는 것이 있는데, 이 소설 3부에 등장하는 한민주나 2부에서 악질 친일경찰로 등장하는 박병도라는 인물은 작가의 다른 소설에 등장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그 작품들에서도 한민주는 기자로, 박병도는 친일 경찰로 등장한다. 

(요즘 말로 표현하면 손석춘 유니버스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작가의 소설은 모두 이렇게 역사에 허구를 가미해서 만들어졌다고 하던데 모든 작품들에 동일하게 등장하는 현상이라면 이를 찾아보는 
것도 소소한 재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책 자체가 조금 두껍기도 하고 생소한 인물들이 많이 등장해서 금새 읽을 수 있는 책은 분명 아니었다. 

또한 손석춘 책의 공통점이기도 하지만, 등장하는 수많은 역사 속 인물들 외에도 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 순 한국어가 많이 등장해서 휴대폰을 곁에 두지 않고서는 진도가 잘 안나가는 책이기도 하다. 

일례로 '부부'라는 말 대신 '가시버시'라는 단어가 자주 나온다. 평소에 잘 쓰이지 않는 말이므로 찾아서 알고 넘어가야 한다. 

이런 점들이 진입장벽이 될 수 있어서 누구에게나 흔쾌히 추천해 주고픈 책은 아니었다. 


하지만 역사 속 인물들을 생동감있게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었다. 

예를 들어 김상옥 선생에 대한 자료를 검색해보면 보통은 아래와 같이 사실들만 무미건조하게 나열된다.


일제 경찰력의 중심부이자 독립운동가 검거와 탄압의 상징이었던 종로경찰서 투탄 의거를 거행하였고, 수백 명의 일경과 홀로 대치한 상황 속에서 자결 순국을 택하였다.

(출처: 네이버캐스트,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3571062&cid=59011&categoryId=59011)


위에 등장하는 사건을 소설에서는 아래처럼 표현하고 있다. 

김상옥도 총을 여러 발 맞았다. 최선을 다해 싸워 총알이 하나 남았다. 
문득 어머니가 눈에 선했지만 결연히 마음을 다진 김상옥은 벽에 기댄 채 총을 머리에 대고 겹겹이 포위한 일경들이 
모두 들을 만큼 큰 소리로 외쳤다. 
"조선독립만세! 조선독립만세! 조선독립만세!"
방아쇠를 당겼다. 담벼락 아래로 붉은 피가 쏟아졌다. 
쓰러진 김상옥의 두 손은 권총을 꼭 쥐고 있었기에 멀리서 이를 발견한 일본 경찰은 행여 살아있을까 싶어 누구도 감히 다가가지 못했다.
일제 경찰은 야비했다. 끌고 온 김상옥의 어머니를 보내 생사를 확인했다. 
휘청거리면서도 서둘러 다가간 어머니는 쓰러지듯 털썩 주저얹아 피투성이 아들의 몸을 품에 꼭 안고 오열했다. (pg 315)

장면들이 눈앞에 떠오르는 듯 하면서 순간 울컥 하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요즘은 검색만 하면 독립운동가들의 사진이 바로 뜨기 때문에 더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이처럼 100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목숨을 바쳐 투쟁했던 독립운동가, 민주화운동가들의 사례가 많이 등장한다. 
주된 스토리는 위에서 소개한 3명의 위인들을 중심으로 진행되지만 최근 100년사를 정리하면서 빠뜨릴 수 없는 업적을 남긴 유관순, 
윤봉길, 전태일 등 수많은 위인들의 업적도 짧지만 강한 인상으로 서술하고 있다.  
또한 이들을 가혹하게 도륙한 친일 및 반민주, 군부독재 세력들의 악행도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책을 보면서 이런 의문이 생겼다. 
왜 작가는 이렇게도 많은 인물들 가운데 의암 손병희 선생, 단재 신채호 선생, 청암 송건호 선생에 특히 주목했던 것일까?
내 나름대로 내린 답은 작가가 쓴 아래 문단들에 숨어 있다고 보았다. 

민중은 단순히 일본제국주의를 몰아낼 주체가 아니다. 자유, 평등, 평화로운 사회를 구현해갈 주체이다. 

최사인은 소소와 단재 모두 정치적 주체성뿐 아니라 문화적 주체성을 중시했고 그 사상적 귀결점이 민중 직접혁명이라고 이해했으며,

조선혁명이 담당한 세계사적 과제는 자본주의의 상공인 계급 지배도 공산주의의 공산당 지배도 넘어선 새로운 혁명이라고 확신했다. 

(pg 384)


해방공간에서 청년 송건호는 정치의식이 없었다. 훗날 그때를 회고하며 부끄러워했다. 

하지만 언론의 본성에 성실한 언론인으로 살아오며 성숙한 민주주의 의식을 체화해왔고 

마침내 '참된 힘은 민중의 힘'이라는 깔끔한 결론에 이르렀다. (pg 590)

 
손석춘은 대의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거나 특정한 업적을 남기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민중이 스스로의 역사를 개척해나가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들에게 주목했던 것이다. 
 
고통스러웠던 일제시대 이후 친일 잔재를 소탕하지 못한 것이나, 근대화 과정에서 겪은 오랜 군부 독재 등 
분명 한국의 최근 100년사는 그리 아름다운 역사로 기억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민중'이 희망이며 '민중'이 역사의 주체라는 손석춘의 시각에서는 충분히 아름다운 역사일 수 있었다. 

책을 덮은 지금 생각해 보면, 쉬운 책은 아니었지만 의미있는 책이었다고 기억될 것 같다. 충분히 재미도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단재 신채호의 이야기부터 몰입감이 올라가서 끝부분부터는 거의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고 읽었다. 
특히 역사적 인물의 이름을 잘 외우지 못하는 나에게는 스토리가 부여되며 이름을 외울 수 있는 좋은 책이었다. 

심금을 울리는 문장들도 많아 다소 길지만 꼭 발췌해두고 싶어서 아래에 정리해 두었다. 


국호는 대한민국, 정체는 민주공화국으로 결정했다. 임시헌장 10개조를 발표했다. 

독립선언문에 이어 왕정 체제를 거부한다는 뜻을 분명히 밝힘으로써 조선왕조의 끝자락에 위치한 허수아비 대한제국에 더는 미련을 두지 않고 대한민국, 곧 민중의 나라를 세우겠다는 민족적 결의를 천명했다. 

바로 그래서 '3.1 운동'이 아니다. 3.1혁명이 적확하고 객관적인 역사적 평가다. 

조선의 기나긴 역사에 획기적 전환점을 마련한 사건이었다. (pg 197)


삶은 만남이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인생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으로 어떤 부모, 어떤 자녀, 어떤 이성, 어떤 배우자, 어떤 스승을 만느느냐가 중요하다.

다만 그 만남엔 전제가 있다. 일정한 사회적 조건이 그것이다. 

사람과의 어떤 만남도 사회를 떠나 이루어질 수 없으며, 사회 또한 다른 사회와의 만남으로 역사를 형성한다. (pg 206)


우리 민중은 알았다. 깨달았다. 저들 야수들이 아무리 악을 쓴들, 아무리 요망을 피운들, 이미 모든 것을 부인한, 

모든 것을 파괴하려는 대계를 울리는 혁명의 북소리가 어찌 자연히 까닭 없이 멎을소냐.

벌써 구석구석 부분 부분이, 우리 민중과 저들 야수가 진형을 대치하여 표화를 개시하였다. 

옳다. 되었다. (pg 396)


소수가 다수에게 지는 것이 원칙이라 하면, 왜 최대 대수의 민중이 최소수인 야수적 강도들에게 피를 빨리고 고기를 찢기느냐? -중략-

저들의 군대 까닭일까? 경찰 까닭일까? 군함, 비행기, 대포, 장총, 장갑차, 독가스 등 흉칙한 무기 까닭일까?

아니다. 이는 그 결과요, 원인이 아니다. 저들은 역사적으로 발달 성장하여온 누천년이나 묵은 괴동물들이다. 

이 괴조물들이 맨 처음에 교활하게 자유, 평등의 사회에서 사는 우리 민중을 속이어 지배자의 지위를 얻어 가지고, 

그 약탈 행위를 조직적으로 대낮에 행하려는 소위 정치를 만들며, 약탈의 소득을 분배하려는 곧 '인육을 분장하는 곳'인 소위 정부를 두며,

그리고 영원 무궁히 그 지위를 누리려 하여 반항하려는 민중을 제재하는 소위 법률, 형법 등 부어터진 조문을 제정하며, 

민중의 노예적 복종을 시키려는 소위 명분, 윤리 등 상어같은 도덕률을 조작하였다. (pg 395)


자연스레 건호의 마음에 저항감이 싹텄다. 그때부터 건호는 일본말 쓰기를 꺼렸다. 

자신이 다니는 학급에서 민족의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친구들을 꼽아보니 많이 잡아도 예닐곱 정도였는데, 

적극적인 친일 학우도 일고여덞 명 정도였고 대부분은 침묵을 지켰다. 

송건호의 회고는 현실의 단면을 보여준다.

반민족행위자와 독립운동 사이에 대다수는 침묵하며 살았다.

송건호는 그 시절을 버티고 살아가며 침묵하는 사람들은 잘 순종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고 회상한다. (pg 474)


심훈은 일찍이 박헌영과 주세죽의 사랑을 담아 <동방의 애인>을 썼다. 

두 주인공은 소설 창작 시점에 그 누구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비극적 최후를 맞았다. 

더구나 그들이 각각 죽음을 맞은 도시는 평양과 모스크바로 두 사람이 평생을 공헌한 공산당이 통치하는 공산주의 국가였다.

주세죽은 유배 내내 언젠가 역사가 평가해주리라 믿었다. 

하지만 단야에 이어 박헌영마저 '미제의 간첩'으로 살해당하는 현실은 너무 잔혹했다. 

작가 심훈이 그 참극을 목격하지 않고 요절한 사실을 다행이라 위안 삼아야 할까. 

아니면 실제 삶이야말로 언제나 소설보다 더 소설답다며 소설을 써야 할까. (pg 489)

j******o 2019.03.18.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