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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의 눈으로 3·1운동을 보다/ 이기훈 기획 (강경석, 김진호, 김학재, 백영서, 오제연, 이기훈, 장영은 지음)
2019년 3월 1일, 어디나 할 것 없이 대대적인 3·1절 100주년 기념행사가 진행되었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도 예외 없이 기념행사가 열려 행사장에 다녀왔는데, 그다지 특별하지 않은 특별한 행사라는 생각이 든 것은 어쩐 일인지 모르겠다. 전국적으로 이런 행사가 열렸을 것이고, 실지로 행사장에서 돌아와 보니 가족들은 비슷한 내용의 100주년 기념행사를 TV로 시청하고 있었다.
이 책 ≪촛불의 눈으로 3·1운동을 보다≫는 연세대학교 사학과 교수이며,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이기훈 교수의 기획으로, 3·1운동을 바라보는 시각이 전혀 다른 여섯 명의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역사학, 사회학, 종교학 등 각자의 분야에서 연구한 지식들을 바탕으로 좌담을 하는 것으로 시작되며, 각자 연구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 챕터씩 맡아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을,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틀을 자연스럽게 마련해 준다.
그날의 함성들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각자의 생각이나 연구해 온 방향이 다른 만큼, 3·1운동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모두 다르다. 그동안 3·1운동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막연하게만 생각해 왔는데, 역사에 대한 지식이 너무 없었음을 자각하게 되고, 3·1운동을 되새겨보고 나름대로 판단도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하긴, 아주 어렸을 적에는 3·1운동이 우리나라를 해방으로 이끌었다고 생각했었던 적도 있었다. 자주 독립을 기원한 철부지의 소망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의 민주화 운동과 ‘3·1운동 기억‘〉에서는 4·19혁명에서 6월 항쟁까지, 각 정권에서 3·1운동이 각자의 필요에 의해 소환된 배경을 자세하게 설명하며, 촛불혁명 후 ’3·1운동 기억’의 재구성을 위하여 우리가 해야 할 역할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3·1절과 ‘태극기 집회’〉에서는 잃어버린 민중의 기억을 이야기하며, 다양한 민중의 목소리, 억압받은 자의 목소리를 한국 개신교가 지나온 발자취를 예로 들며 신앙에서 탐색을 시도한다.
또한〈3·1운동과 감옥에 갇힌 여성 지식인들〉에서는 여성이 목소리를 낸 첫 번째 경험으로 평가하며, 독립운동의 의미를 넘어 여성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으로 평가한다.
세계 여성의 날(3월 8일)인 오늘, 그들의 투쟁을 되새겨 보니 감회가 새롭다.
3·1절 100주년을 맞이하여 성대한 기념행사를 치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점점 우리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가고 있는, 그날의 절실했던 마음과 함성들을 제대로 알고 기억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것만이 촛불로 이루어낸 오늘을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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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카는 역사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했다.역사는 단순히 기록에만 남아 있는 과거가 아니라 우리에게 교훈과 의미를 주는 대상이다.또 역사는 근본적으로 인간의 기억과 관련되어 있다.근래의 심리학 연구에서 밝혀졌다시피 인간의 기억은 보고 들은 것을 순수하게 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과거와 현재에 영향을 받는다.또 그것이 정치적, 사회적으로 중요한 사건일 경우 정치권력과 이념까지 그 기억을 자신들의 뜻에 맞게 바꾸려고 손을 뻗는다.3.1운동이 현재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으며 3.1운동에 대한 기억은 지난 100년 동안 어떻게 변해왔는가.이 책은 그 질문에 대한 좋은 대답이다.
3.1운동은 나라의 주인이 백성이라는 것 그리고 독립은 조선왕조의 부활이 아니라는 것을 만천하에 알렸다는 중요한 의미가 있다.독립은 한민족의 나라를 세우겠다는 것이었다.민주주의, 공화주의, 민족주의의 정신이 잘 드러난다.나라의 주인이 국민이라는 민주주의, 나라가 개인의 것이 아니라는 공화주의, 같은 언어와 역사를 가진 사람들과의 관계를 강조하는 민족주의 이 3가지는 지난 촛불시위에서도 보여진 사상들이다.3.1운동 100주년이 더 특별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평화적인 정치적 항의가 성공한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이다.그것이 3.1운동이 가지는 의미의 현재성이다.
3.1운동과 관련해서 특기할 일은 매체와 관련된 일이 아닐까.사실 3.1운동이라고 하면 당연히 태극기를 들고 시위하는 것을 생각했을텐데 태극기 사용은 그 시기와 지역에 따라 편차가 있다.서울에서는 운동지도부가 태극기를 제국적이라 하여 사용하지 않았다.태극기 없는 3.1운동을 생각하면 어색하지만 고정관념이 아닌 역사적 사실을 채택하자면 그렇다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정치적 집회가 열리려면 사실을 전달하고 태초에는 어느정도의 정치적 조직화가 필요하다.그러려면 미디어를 이용해야 하는데 당시에는 깃발과 신문이 그 역할을 했다.지금은 뉴스와 sns가 그 역할을 맡고 있다.
얼마 전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된 논란이 있었다.보수정당 내 일부 인사들이 5.18을 왜곡하고 유공자들에 대해 모욕적인 말을 했다는 것이다.비교적 가까운 40년 전의 일에 대해서도 시대와 입장에 따라 기억과 해석이 바뀌며 논쟁이 일어나는데 100년 전의 일은 오죽할까.파란만장한 한국 근현대사에서 3.1운동에 대한 해석도 때때로 바뀌었다.역사의 변곡점마다 3.1운동은 항쟁의 상징으로 대표되었다.
3.1운동에 참여한 여성을 생각하면 유관순 열사를 떠올리기 쉽다.유관순 열사는 존경받을만한 인물이 맞지만, 그 이면에는 여성 운동과 많은 의식 있는 여성들이 있었다는 것도 기억하면 좋을 것이다.유관순 열사가 다녔던 이화학당은 물론 각종 여학교의 학생들은 여성도 역사의 흐름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애썼다.시위에 참여하는 것은 물론 시위에 참여한 여성들을 기록했고, 시위와 그 시대를 여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글로 남겼다.
또 3.1운동은 종교와도 관련이 깊다.3.1운동 당시의 민족대표들은 종교적 대표성을 가지고 있었고, 독립선언서 역시 그들의 서명을 받았다.천도교, 기독교, 불교, 유교(유교는 종교가 아니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편의상 일단 종교로 보자) 등 다양한 종교의 모음이었다.그중 개신교가 3.1운동에 대해 가지는 입장은 정치와 시대의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그 이야기 역시 읽어볼 가치가 있다.
서정주를 중심으로 한 문학과 3.1운동의 관계는 물론 세계사와 장기적 관점을 고려한 이야기도 들어가 있다.그 당시의 세계사적 맥락은 물론 다른나라의 반제국주의적 항거와도 비교해보면 더 넓은 시야에서 객관적으로 3.1운동을 돌아볼 수 있다.
평화와 통일을 지향하며, 내부적 균열을 치유하고, 주변국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 아직도 우리에게는 과제로 남아 있다.지난 100년 동안 다 이루지 못한 과제다.3.1운동은 평등, 평화, 통합이라는 메시지를 지금의 우리에게도 주고 있다.그 메시지를 잘 흡수하고 지난 역사를 발판 삼아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그것은 우리에게 달린 문제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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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3.1운동이 일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이다. 3.1절을 전후로 많은 행사와 티비 프로그램으로 많은 이들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삼일절에 나는 유관순열사의 영화를 혼자 보러갔었는데 삼일절이 어느 새 10일이 지났고 언제 그런행사를 했었냐는듯 잊어버린 체 또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촛불의 눈을 3.1운동을 보다>는 역사학, 문학, 종교학에 이르는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분들의 3.1운동을 바라보는 자신들의 관점의 글들의 묶음이다. 연구자분들의 좌담을 시작으로 이 분들의 글이 차례대로 실려있다. 삼일절에 대해 제대로 잘 알고 싶어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책장을 넘기면서 조금은 어려움을 느꼈다. 아니 오히려 어려움속에서 3.1운동에 대해 좀 더 제대로 보게되었다는 것이 맞을테다.
3.1운동의 학술적인 의미와 정치적인 의미에서의 대담자들의 논쟁은 뜨거웠다. 아직은 논쟁에 끼일 만한 능력이 되지 못해서 제대로 논쟁의 의미를 확인하지 못했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3.1운동의 과제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의미의 3.1운동과 깃발, 한국의 민주와운동, 옥사에 갇힌 여성 지식인들, 미당서정주, 세계사적인 3.1운동의 관점과 과제. 촛불시위, 에서 현대관점에서 보는 민중운동등 현대지식인으로서의 3.1운동이 지닌 역사적 의미의 글들을 읽으면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선조들의 애씀이 자랑스럽고 존경스럽다.
학교다닐때는 태극기를 그리고, 독후감을 쓰고 그냥 끝내버렸던 삼일절, 올해는 처음으로 기미독립선언서 원문을 찾아보기도 했다. 삼일운동의 100주년 기념인 올해, 의미있고 뜻 깊은 독서를 한 것 같아서 뿌듯하다.
아, 새로운 세상이 눈앞에 펼쳐지는 구나. 힘으로 억누르는 시대가 각, 도의가 이루어지는 시대가 오는구나. 지난 수천 년 갈고 닦으며 길러온 인도적 정신이 이제 새로운 문명의 밝아오는 빛을 인류 역사에 비추기 시작하는구나. 새봄이 온 세상에 다가와 모든 생명을 다시 살려 내는구나. 꼭꽁 언 얼음과 차디찬 눈보라에 숨 막혔던 한 시대가 가고, 부드러운 바람과 따뜻한 볕에 기운이 돋는 새 시대가 오는구나. <쉽고 바르게 읽는 3.1 독립선언서 중에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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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1운동과 촛불, 『촛불의 눈으로 3.1운동을 보다』 ♡
『하나, 책과 마주하다』 올해는 꼭 3.1운동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100주년이였던만큼 대한민국 국민들 모두가 독립운동가들에게 애도하고 감사함을 표했다. 3.1운동이라고 하면 "대한독립만세"가 자연스레 떠오를텐데 대부분 전·후 역사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는 않다. 3.1운동은 독립을 위해 일본으로부터 대항한 민족적 항일운동으로 3.1운동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어서 민족적 항일운동 뿐만 아니라 공화정을 추구한 민주주의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이전부터 3.1운동에 대한 명칭을 바꿔야 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대개 우리는 3.1운동이라 지칭하고 있는데 학계에서는 3.1혁명으로 바꿀 것을 제안하고 있다. 운동과 혁명은 뜻하고 있는 바가 하늘과 땅 차이다. 식민지배를 받았던 조선인들이 오롯이 '대한독립'을 목표로 만세시위를 벌인 것인데 이 사건으로 인해 목표에 달성했다면 혹은 달성하지 않았더라도 역사적으로 대전환이 일어났기에 '혁명'으로 부를 수 있는 것이다. 또 일각에서는 정치적 변혁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혁명이란 용어를 쓰기에는 한계가 있어 '운동'이 적합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 문제는 앞으로 국민 모두가 유심히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3.1운동이 일어나던 시점에 태극기를 만들고 배포하는 일이 쉽지 않아 '태극기의 물결'은 자주 등장하지 못했다고 한다. 밤새 만든 깃발이 고작 100여 개의 불과했고 실제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마구 뿌려질 정도로 양이 많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서울에서 내려온 [독립선언서]는 그만큼 귀하고 귀했다. 2월 10일 선천에서 열린 평북노회 마지막 날, 3월 1일 전국적으로 동일하게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배포하여 만세시위를 벌이자는 지침이 전달되었다. 학생과 신도들이 모여 태극기를 만드는 일까지 진행되었으나 정작 선언서가 돡하지 않아 2월 28일 의주양실학교에 20여명의 주동자들이 모여 시위에 대한 준비사항을 점검하던 중 선언서 문제가 나오게 되었다. 그렇게 누군가 다른 곳에서 발표된 선언서를 내놓게 되었고 그 선언서가 바로 「2.8 독립선언서」였다. 실제 오후까지 선언서가 도착하지 못하자 미리 준비한 「2.8 독립선언서」 등사본을 배포하였다. (이후 200장의 선언서가 도착하였다.) 이후 독립을 외치며 만세를 부르는 인식이 확산되자 「독립선언서」의 중요성이 점차 감소하게 된다. 당시 국민 모두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들고 일어난 운동이지만 3.1운동은 여성들의 활동 또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다. 학창 시절 근현대사를 배울 당시 기생들에 관한 내용은 배운 적이 없었다. 이후 대학생이 되어 역사책을 이것저것 보던 와중에 기생들 또한 만세를 외치며 독립운동을 했다는 몇 줄을 볼 수 있었다. 3.1운동은 유관순 뿐만 아니라 다른 여성 열사들의 순국 또한 기억해야 한다. 최은희는 애국부인회사건을 3.1운동의 일부로 파악하고 만세운동의 연속선상에서 『근역의 방향』을 집필했다. 『근역의 방향』 첫 면에는 "삼일 동지 중 대구 감옥생활 삼년간 같이한 친구들"이라는 제목과 함께 김마리아, 김영순, 백신영, 신의경, 이정숙, 이혜경, 유인경, 장선희, 황애덕 아홉 사람의 사진과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
3.1운동과 촛불혁명은 꽤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혁명 이후 사회에서 억압받았던 사람들이 목소리를 냈다는 점이다. 3.1운동은 우리 민족에게 굉장히 큰 사건이다. 우리의 역사이기에 자세히 알아야하며 당시 독립운동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쳤던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가져야한다. 더 나아가 남과 북이 함께 겪었던 일인만큼 3.1운동을 발판 삼아 단단하고 강한 한반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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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학문과의 조화를 통해 3.1 운동을 바라본다. 우리가 역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고 생각한다. 독립운동가를 잊지 말고 우리나라가 여기까지 오게 된 많은 노력들을 알아야된다. 그저 당연하다는듯이 사는 것은 '하루살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역사에서 중요한 것들은 많지만 민족성을 기르기 위해 그리고 나라를 배반하는 사태가 반복되지 않기 위해 교육이 중요하다. 우리가 바꿔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허례허식들을 비판하고 자신의 주관을 일정하게 잘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OECD국가 중에서 자살률이 우리나라가 높다. 한 생명 생명들이 아깝게 사라지고 있다. 우리가 후손들을 생각하고 선조들을 생각한다면 잘못된 것들을 하나씩 뽑아내야 한다. 비관적으로 생각하지 말고 낙관적으로 생각하도록 가치관을 가꿔나가야 한다. 물론, 비관적인 것도 상황에 따라서 좋을 수도 있지만 낙관적인 것은 포기하지 않게끔 만들어주기 때문에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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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의 눈으로 3·1운동을 보다 기획 이기훈 출판사 창비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한다는 특별한 뜻은 아니었다. 나의 역사관은 초, 중, 고 그리고 대학교 때의 교양과목과 사회에 나와서 찾아들은 시민단체의 교육과 만나본 사람들에 의해 생긴 정도였다. 교과서적인 설명이거나 개연성 없이 토막 난 지식이나 생각들이다. 작년 자연스러운 끌림으로 헌법에 관한 책을 읽었고, 한 나라의 주권자인 ‘나’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대학생 때 영화와 책으로 만난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을 만화 태일이(고래가그랬어 기획)로 아이와 함께 읽기도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한국의 역사 ‘나’를 찾고 ‘나’를 완성해 가는 우리의 역사를 다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두 딸의 질문에 멍하니 ‘책을 찾아 읽어봐~’ 라는 대답만으로 끝내는 엄마는 되고 싶지 않았다. <촛불의 눈으로 3·1운동을 보다> 2017년 12월 마지막 주 아직 어린 두 아이들을 남편에게 맡기고 친구들과 함께 광화문으로 향했다. 친구들 덕분에 나 역시 역사의 한 페이지에 점 하나 찍을 수 있었음을 지금도 감사하고, 소중히 생각한다. 집회 현장을 나름 많이 찾아 다녀본 나였지만 그날 광화문은 달랐다. 평화롭고, 즐거웠고, 따뜻했다. 스피커로 나오는 노래도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이 단상에 올라 자기의 생각을 조근 조근 말하고 듣는 이 또한 그들의 말에 열심히 박수쳐주는 손 안에는 촛불 하나 손 밖에는 온기 가득 너무 너무 신이 났다. 가슴 가득 벅차올랐다. 그 날의 기억으로 미세 먼지 가득하고 불편한 기사들이 나날이 장식하는 오늘을 희망을 걸고 살고 있다. 책을 만났을 때 그날이 떠올랐다. 책 제목을 보고는 ‘이 시각으로라면 3.1운동이 나와는 동 떨어진 글에만 나와 있는 역사는 아닐거야’ 하는 생각이 스쳤다. 8인의 직업도 전공도 다른 인사들이 모여 3.1운동과 촛불 운동에 대해 이야기했다. 1919년과 2019년 두 운동의 마주보기 과거와 현재의 대화가 아닌 과거와 미래의 대화 바람직할 미래를 만들어 가기 위해 3.1운동과 촛불 운동을 생각해보고, 정리해보고 나가야 하겠다는 의도로 계획된 프로젝트였다. 『촛불 시위의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선언과 3·1운동의 ‘내가 대표다’라는 선언 사이에 100년의 차이가 있지만, 3·1운동은 공화와 주체의 자각이라는 측면에서 시초였고, 3·1운동은 그 정치원리의 구현이라 정의라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p60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3.1운동을 다양한 관점과 시각으로 바라본 점이었다. , 교과서나 위인전에서 다룬 남다른 인물, 특별한 인물, 주목된 인물이 아닌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의 움직임에 주목했다. 만세 시위의 미디어로서의 깃발(태극기) 『서울 지역의 조직적 시위에서는 태극기가 그렇게 많이 사용되지 않는다. 3월 1일의 시위에는 깃발을 목격했다는 기록이 거의 없고, 3월 5일 남대문역 앞 시위, 3월 22일의 노동자 대화나 4월의 국민대회에서도 태극기보다는 ‘조선독립’이나 ‘공화만세’등의 구호가 적힌 깃발이 더 중요한 시위의 수단이 된다. 그런데 같은 3월 1일의 시위라도 평양이나 선천, 신창, 진남표 대구에서는 태극기를 사전에 다수 제작하여 사용한다.』 P87 영화와 드라마에서 보면 대결국면으로 일제 측은 총을, 우리는 모두 태극기를 손에 들고 마주선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 서울에서의 분위기와 지방에서의 운동을 위한 네트워크 방식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촛불집회에서처럼 개인이나 단체가 스스로의 신념과 결의를 내세운 깃발을 제작했다는 점도 놀라웠다. 『이 자리에서 양봉식은 자신이 “군민을 대표하여 이 소요를 감행하려 하니 여러분은 내 얼굴을 읽혀두거나 혹은 사진을 촬영하라”라고 소리쳐 그 자리의 군중들이 더욱 환호하며 격렬한 시위를 이어갔다. 이는 정치적 주권의식의 대중적 확살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이런 의식들은 임시정부의 구성은 물론이거니와, 민족운동의 이념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대표는 민중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것이다.』 P102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3.1운동의 기억 정권이 교체할 때 마다 3.1운동이 어떤 식으로 소환되고, 정권의 취지(?)와 구미에 맞게 어떻게 변형되어 이용되는지 목격헀던 장이다. 앞으로 진보와 보수, 정권이 교체할 때 주목해서 지켜보아야 할 대목이었다. 3.1운동과 감옥에 갇힌 여성 지식인들 이 책을 선택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이 이 장 때문이었다. 부끄럽지만 여성 독립운동가 하면 유관순 열사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다른 여성들을 알고 싶었고, 그녀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게 된 배경에 대해 알고 싶었다. 『수는 몇 명 되지 않지만 여자들이 학교를 가기 시작했는데, 그러면 이 여자들은 어떻게 됐을까? 1919년은 여성으로서 처음 학교에 간 세대가 일정 정도 고등교육을 마치고 사회에 진출할 즈음과 시기적으로 일치합니다. 1890년대생부터 1900년대 초반생까지 이제 막 교육받기 시작한 여성들이 3·1운동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보면 이들은 민족자결이나 공화보다는 ‘우리도 주인동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왔다’라는 생각을 굉장히 강하게 한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이들이 중점을 둔 것은 민족자결이나 공화보다는 여성들이 조선독립에 확실하게 참여해서 공헌한데 있었다는 것이죠.』 P56 <촛불의 눈으로 3·1운동을 보다>는 다양한 시각과 관점으로 3.1 운동과 촛불 운동을 다룬 책이다. 남과 북의 공동의 키워드가 될 수 있는 기억 3.1운동. 그리고 촛불 운동에서 사람들의 마음에 3.1운동이 있었을지 과연 100년의 간극을 둔 두 운동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지는 학계인사들조차 의견이 분분했다. 하지만 3.1운동의 의미와 자세와 마음가짐 촛불운동을 지켜보고 현장에 나갔던 사람들에게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생각의 확장, 실천의 포문을 열어준 책인 거 같다. 안주하지 않고 깨어있는 사람이 되어 싶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의미 있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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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책과의 만남 올해는 3·1운동이 100주년 되는 해이다. 3·1운동이란 1919년 3월 1일, 한민족이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하여 한국의 독립 의사를 세계에 알린 운동으로, 식민 지배를 받다가 국가의 주권을 되찾은 대한민국에겐 실로 놀라울 만큼 큰 영향력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3월 1일은 태극기를 게양하고, 순국선열의 고귀한 헌신과 희생에 묵념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고백을 하나 하자면, 나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3·1운동을 멀고도 낯설게만 생각하고 있었다. 한국사 교과서와 문제집을 통해 배우는 3·1운동은 딱딱하기만 한 정의 그 자체였다. "이건 당연히 알고 있어야겠지?"라며 종이에 친 별표는, 그 자체로 무조건 외워야만 할 개념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3·1절을 아예 안 챙겼던 것은 아니지만, 진심이 담기지 않은 태극기 게양은 단지 형식적인 차례일 뿐이었다.
내 머릿속에 3·1운동이 본래의 숭고한 의미를 되찾은 것은 대학에서 들은 교양 수업 덕분이었다. 고등학교 때 배운 한국사 기초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것, 무난한 시간표, 플러스만 붙여준다는 관대함 등으로 학교 내에서는 나름 '꿀강'이라는 소문이 있었기에 신청한 것이었는데, 참 얻을 게 많은 수업이었다. 특히나 그 중심에는 3·1운동이 있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조국을 배신한 친일파들 사이에서 당당히 대한 독립을 외치며, 그 와중에도 조국의 발전을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한 무수한 독립운동가들을 진심을 다해 생각해볼 수 있던 귀중한 시간이었다. 동시에 3·1운동과 겹쳐지는 또 하나의 '사건'에 대해 심도 있는 생각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었다. 바로 '촛불 운동'이다. 수업을 들으면서 나라의 주인인 국민을 모략하고 음습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던 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해 저마다 촛불을 들고 나선 촛불 운동이야말로 3·1운동의 명맥을 잇는 운동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었다. 만약 3·1운동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국민들이 적극적으로 나선 운동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1. 오늘날 바라본 3·1운동의 모습 오랜 시간 고민해 왔던 물음에 진정으로 답을 구해오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촛불의 눈으로 3·1운동을 보다'라는 책 제목에서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정확히 '3·1 운동'과 '촛불 운동'이었다. 촛불이라는 오늘날의 눈으로, 3·1운동이라는 당시의 모습을 살펴본다는 것만으로도 재밌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촛불의 눈으로 본 3·1운동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오늘날의 시점에서 살펴본 3·1운동은 어떤 광경일까? 1. 오늘날 바라본 3·1운동의 모습 『촛불의 눈으로 3·1운동을 보다』는 세교연구소와 출판사 창비가 함께 기획해서 만든 책으로,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해 역사학뿐만 아니라 문학, 종교학, 사회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이 모여 3·1운동의 현재적 의미를 모색한다. 또한 3·1운동을 둘러싼 논쟁적인 이슈들을 균형 잡힌 시선으로 바라보기 위해서 참고하기 좋은 책이기도 하다. 목차는 0에서부터 6까지 총 일곱 개로 구성되어 있다. 0단원은 좌담 '3·1운동 100주년이 말하는 것들'이다. 3·1운동 100주년이 우리에게 시사하고 있는 점들에 대해, 책을 만드는 데 참여한 일곱 분이 열띤 토론을 나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3·1운동의 명칭에 관한 논의였다. 최근 학계와 정치계에서까지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 바로 '3·1혁명론'이다. 3·1운동이 지닌 위상과 그 성격을 살펴봤을 때, 그 명칭을 '운동'이 아닌 '혁명'으로 승격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 3·1운동에 담긴 의미가 남다르다고 생각하기에 일리가 있는 주장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각 연구자들의 시점에서 본 3·1혁명론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을 읽으며 비판적 사고를 기를 수 있었다. 특히나 3·1운동 100주년과 이어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의 정체성을 연결해 '3·1혁명론'이 어떤 문제점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각자가 이야기하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먼저 준 정부 여당이 추구하는 기념사업의 문제점에 대해 거론한다. 이에 대해 연구자들은 지난 정권과의 차별성을 두기 위함이라는 근거를 제시하는데, 지난 정권에 존재했던 건국절 논란을 의식하여 다른 방식의 정치화를 꾀한다는 것이 상당히 의미심장했다. 분명 지난 정권에서 건국절이라는 말도 안 되는 논란을 일으킨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정권과 대한민국사의 정당성을 일치하고자 한다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또한 임시정부에 대한 평가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당시의 객관적이며 세계사적인 정세를 살펴봤을 때, 과연 임시정부가 국가의 기원이라고 볼 수 있을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임시정부 수립이 가능했던 역사적인 조건들과, 급박한 위기 상황 속 어려워지는 역사적 맥락에서 움츠러드는 임시정부를 본다면 그저 정통성과 법통성을 부여하기 위함이라는 측면도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3·1운동의 세계사적 의미, 3·1운동이 남과 북의 공유자원이 될 수 있을까 등 여러 소주제에 대한 토론이 이어진다. 0단원을 넘기면 1단원부터 6단원은 각 연구자들이 자신의 학문과 연관된 3·1운동의 모습을 연구한 유익한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들키지 않기 위해 어둠 속에 숨은 독립운동가들이 직접 쓰고 그린 격문과 태극기들이 3·1운동에서 어떤 힘으로 작용한지에 대한 연구, 3·1운동에 대한 '기억'이 한국의 민주화운동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에 대한 연구, 오늘날 변질된 '태극기'와 '3·1운동'에 대한 의미가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는 태극기 집회에 대한 연구까지. 이처럼 오늘날의 눈으로 본 3·1운동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으며, 현재와 함께 미래에도 그 의미가 작용할 것임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2. '여성들이 조직화되고 적극적으로 역사에 제 목소리를 낸 첫 경험', 3·1운동 우수한 연구들이 가득하다 못해 넘치는 『촛불의 눈으로 3·1운동을 보다』지만,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로 추천하고 싶은 단원이 있다면 그건 바로 책의 3단원인 '3·1운동과 감옥에 갇힌 여성 지식인들: 최은희의 자기 서사와 여성사 쓰기'이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무엇 하나 자유로울 수 없었던 시절, '우리도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는 것을 깨닫고 독립운동에 뛰어든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당시는 한국 역사상 처음으로 여자가 학교를 간 시기였다고 한다. '배움', '학문', '글'이라는 것은 오로지 남성들만의 전유물이었던 시절. '여자가 학교를 가서 뭘 하려고 그래?'라는 핀잔이 아무렇지 않게 날아오던 시절. 그 시절을 이겨내고 비로소 참된 배움을 실천하고자 독립운동에 뛰어든 여성들의 모습은 어땠을까? 2. '여성들이 조직화되고 적극적으로 역사에 제 목소리를 낸 첫 경험', 3·1운동 3단원에서 중심이 되는 소재는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우리가 '여성 독립운동가'라고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인물은 아마 유관순 열사일 것이다. 3·1운동의 한 가운데서 당당히 만세를 외친 인물이자, 자신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조국의 독립만을 생각했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성 독립운동가에는 유관순 열사만 있는 것이 아니다. 3단원의 중심인물인 최은희 선생님을 비롯하여, 차미리사 선생님, 김마리아 선생님 등 이름이 알려진 독립운동가 외에도 알려지지 않은 독립운동가들이 훨씬 많다. 그중에서도 3단원에서는 최은희 선생님을 중심으로 여성 독립운동가와 3·1운동의 연결성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최은희 선생님은 혼란한 역사의 가운데에서 기록에 앞장선 분이며, 특히 여성인 본인이 직접 여성 독립운동사를 완성하고자 노력했다. 해방 직후 다시 사회활동을 시작한 선생님은 이번엔 정치계로 발을 돌려, '여성입각운동'을 펼쳤다. 맨 처음엔 임영신을 지지했으며, 임영신이 부통령 선거에 낙선하자 다음으로 박순천을 등용해달라는 진정서를 제출한다. 3·1운동에 참여하여 사회 참여에 대한 자신감을 얻게 된 여성들의 영향력이 더욱 커지기를 바랐던 최은희 선생님의 뜻대로 박순천은 대한부인회 소속으로 1950년 종로갑구에서 민의원으로 출마해 당선된다. 하지만 여성에게 내각의 벽은 여전히 높았고, 최은희 선생님은 1960년 11월 5일 『조선일보』 '부인시론'에 「여성도 대폭 등용하라: 장내각에 충고한다」를 발표했다. 선생님의 삶은 굴곡졌다. 바라는 대로 되는 적은 한두 번이었으며, 그 외에는 선생님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는 게 맞다. 경성여고보의 학생으로 3·1운동의 한복판에서 만세를 불렀으며, 조선일보 기자직으로 독립운동에 힘쓰고 있는 여성들의 역사가 잊히지 못하도록 여성 독립운동사를 써 냈다. 허나 건강 문제로 은둔 생활을 하다 해방 이후 사회에 나왔을 땐 이미 여성들이 힘을 펼칠 수 있는 사회가 아니었다. 정치에 힘을 쓸 수 있는 것도, 여성운동도 뭐 하나 뜻대로 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은희 선생님의 삶과 선생님이 쓴 글을 '실패'라고 단정할 수 없는 것은, 선생님의 삶은 그 누구보다 자신을 위해 살아왔기 때문이다.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를 곧게 뻗어 나가기 위해 글을 쓰고 삶을 살았다. 선생님의 삶을 감히 평가할 수는 없지만, 그 누구보다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3. 우리가 3·1운동을 '계속' 기억해야 하는 이유 3·1운동은 과거가 아니다. 4·19혁명과 같은 민주화 운동에서부터, 가장 최근에 있었던 촛불 운동까지. 우리가 자유와 평화를 얻기 위해 한데 모여 광장으로 나섰던 것은 모두 우리 몸에 '3·1운동의 피'가 서려 있기 때문이다. 조국의 자유를 위해, 무궁한 평화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행동으로 나섰던 순국선열의 얼을 이어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3·1운동을 '계속' 기억해야만 한다. 오늘이 삼일절이라는 이유로, 100주년이라는 이유만으로 '아, 그렇구나'하는 식으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 이곳 대한민국을 지켜낸 사람이 누구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3·1운동을 계속 기억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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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의 3.1절은 100주년답게 여러 기념식이 거행되었다. 1919년 남녀노소, 신분귀천을 막론하고 모든 민족이 일어나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쳤던 3.1운동.. 그리고 촛불혁명을 거쳐 지금의 정권을 창출해 낸 촛불혁명을 거친 우리 국민들의 시선에서 3.1운동을 바라보는 관점이 어떻게 조명되는지를 그려낸 『촛불의 눈으로 3.1운동을 보다』는 그동안 우리가 단순하게만 생각해왔던 독립운동을 문학,종교학, 사회학,역사학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가 3.1운동의 현재적 의미를 연구한 책이다.
먼저 7분의 연구자가 등장하는 대담 부분에서는 3.1운동과 촛불혁명에 대하여 어떻게 명명해야 할 것인지와 과연 이 3.1운동과 촛불혁명이 연관성이 있는 것인지에 대한 대담이 이어진다. 운동과 혁명. 왜 프랑스와 러시아 혁명은 혁명이라 불리지만 3.1운동은 왜 혁명이라 불리지 않는가. 과연 촛불혁명은 혁명이라 불릴 만 하는가에 대한 의미를 심층적으로 분석해낸다. 이 3.1운동을 여성의 시각에서 바라본 장영은 교수님의 글도 흥미로웠지만 내게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바로 오제연 연구자님의 <한국 민주화 역사와 3.1운동의 기억>이였다. 한국의 이승만 정권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4.19 혁명 및 6.9 항쟁 등의 민주화 운동이 어떻게 3.1운동을 전유하고 그 의미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분석한 이 글을 보며 한국 독립운동의 자랑스러운 한 역사적인 사건이 권력층들의 입맛에 맞게 의미가 조작된 일을 자세하게 기술해 주었다. 박정희,전두환의 군부정권이 우리의 역사를 자신의 정권에 맞게 기술하였던 역사는 왜 박근혜 대통령 때 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역사학자들이 반대하였는지 이유를 알 수 있게 해 주는 디딤돌이 되었다.
장영은 교수님의 <3.1운동과 감옥에 갇힌 여성 지식인들>의 글은 여성에 집중한다. 우리가 단순히 알고만 있던 유관순 열사 뿐만 아니라 여성들이 이 역사에 제 목소리를 내게 된 역사적인 사건이 바로 3.1운동이라고 하며 단순한 독립운동의 의미를 넘어 역사의 “지분”을 확보하고자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첫 걸음이 3.1운동이라고 설명한다. 장영은 교수님의 글은 우리가 왜 유관순 열사 한 명에만 집중했는지, 그리고 다양한 여성들이 목소리를 낸 것처럼 촛불혁명때도 많은 학생, 서민들이 앞서 나가 발언하며 제 목소리를 높인 것과 같은 맥락이 연관되어 읽으면서도 많은 놀라움을 주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 역시 편파적으로 3.1운동을 대해왔던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 3.1운동이 중국의 5.4운동에 영향을 주고 인도, 이집트까지 줄지어 독립운동이 발생한 촉진제의 역할을 했음을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내가 대표다 라고 외치며 자신의 이름과 공동체를 건 깃발을 들고 나가 만세를 부른 3.1운동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라며 각자의 깃발과 촛불을 들고 앞서 나간 촛불혁명. 나는 이 촛불혁명을 과연 혁명이라 부를 것인가에 대해서는 미완성인, 진행 중인 혁명이라고 부르고 싶다. 우리는 이 촛불로 인해 정권 창출은 해 냈지만 여전히 국민이 주인인 시대는 아직도 도래하지 않았고 계속해서 촛불을 들고 우리 목소리를 높일 때 우리의 진정한 혁명이 시작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3.1운동으로 시작되어 4.19혁명과 6.9항쟁 그리고 지금의 촛불혁명까지 누적된 성과가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촛불혁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가르치기 위해서 우리는 3.1운동부터 시작되어야 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받게 되었다. 서양의 역사로부터의 민주주의가 아닌 우리나라에서 국민이 자기 목소리를 내며 대표를 내기 시작한 이 첫 걸음을 우리는 너무 단순하게만 가르쳐왔다. 3.1운동을 단지 100주년 형식에 치중하는 게 아닌 촛불혁명을 지나쳐 오고 있는 우리의 눈으로 그리고 진정한 민주주의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우리의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