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날 당신이 내게 말을 걸어서>라는 설레는 제목을 가진 이 책은 어떻게 세상 구경을 하게 되었을까? 책에서 만난 문장들, 곁에 놓여 있던 사물과 풍경들이 자신에게 걸었던 말들에 대한 대답들을 시인의 언어로 새롭게 정의하는 방향으로 엮어보자는 시도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이 책 속의 문장들이 독자에게도 말을 걸기를 바란다는 그녀의 바람대로 난 귀를 기울였고, 나만의 언어로 되새겼으며, 나에게 말을 걸어준 시인에게 감사해 하고 있다. 우리 글과 말 중에서는 어감에서 뿐만 아니라 가지고 있는 뜻 또한 참 아름다운 글들이 많다. 시인의 눈으로 본 단어들의 아름다움에 한번 빠져 보자. 요즘 즐겨보는 드라마가 있는데, 월요일 분에서 그런 장면이 나왔다. 정인의 무릎에 살짝 눕는 장면. 평소같으면 그냥 넘겼을 장면이었지만 이 책에서 읽었던 문장 때문이었을까? 그들의 애잔하고도 안도하는 마음이 느껴졌었다. 무릎의 포근함도 ·····
무릎
지름이 한 5센티미터나 될까요. 내가 두 발로 서기도 전, 세상을 탐사하러 나갔던 최초의 발바닥. 중력에 맞서서 이 아름다운 푸른 별과 맞닿았던 동그란 접지면.
몇 번이나 빨간 약을 발랐을까요. 하지만 그 흉터들을 얻고서야 혼자 자전거를 탔습니다. 마당을 나서 골목 너머 좀 도 먼 곳까지 가보았습니다.
내가 제 발로 걷게 된 후, 가장 많이 다쳐 돌아왔던 곳. 어둡게 빛나는 내 상처의 퇴적층.
이제는 자기 존재의 무게를 감당하며 삶의 하중을, 살아온 시간을 받아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생의 계단에서 먼저 닳아버리고, 먼 데서 오는 비의 기척을 먼저 느끼는 육신의 시린 촉수.
한때 당신은 사랑을 얻기 위해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대었습니다. 한때 당신은 그를 무릎에 누이고 머리칼을 쓰다듬어주었습니다. 훗날, 당신은 '내 작은 어린 삶'을 거기 앉혀두고 슬하, 라는 말을 비로소 마음으로 쓸어볼는지도 모릅니다.
사랑을 위해서만 기꺼이 내어주고 싶은 자리, 무릎은 그런 곳입니다.
나라도 나를 안아주어야 할 때 우리는 무릎을 껴안습니다. 내 눈물을 내가 받아주어야 할 때 무릎 위에 얼굴을 묻습니다. 무릎은 그런 곳. 무릎은 그렇게만 쓰였으면 좋겠습니다.
나을만 하면 딱지를 떼서 피 내기를 반복했던 어린 시절의 추억, 나이 들어감으로써 무릎의 중요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아지는 요즘이기에 많은 공감을 불러 일으키는 이 글이 얼마나 마음에 와 닿았는지 모른다. 혼자 있을때 가만히 무릎을 감싸안고 있는 동안의 편안함을 느껴본 나로서는 그게 바로 나 자신에 대한 위로였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탐닉
"길거리에서 이 조그만 책을 열어본 후 겨우 그 처음 몇 줄을 읽다말고는 다시 접어 가슴에 꼭 껴안은 채 마침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정신없이 읽기 위하여 나의 방에까지 한걸음에 달려가던 그날 저녁으로 나는 되돌아가고 싶다."
너무나 유명한 서문이죠. 장 그르니에의 [섬]에 붙인 카뮈의 글. 서문은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나는 아무런 회한도 없이, 부러워한다. 오늘 처음으로 이 [섬]을 열어보게 되는 저 낯 모르는 젊은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 한다."
이런 종류의 설렘과 두근거림이 있죠. 너무나 좋아하는 뮤지션의 새 노래를 듣고 싶어서 그게 차 안이든 내 방이든, 혼자만의 공간으로 달려갈 때, 기다리던 작가의 새 작품이 궁금해서 택배가 오기만 기다릴 때.
요즘엔 '덕질'이라고 부르죠. 그게 연예인이든 책이든, 또는 연필 한 자루가 됐든 어딘가에 꽂혀서 열정과 시간을 쓸 수 있는 것. 그런 대상을 갖는 일은 한편, 행운인 것 같습니다.
순수하게 탐닉할 수 있는 한 가지쯤 갖고 살 것! 생존에 꼭 필요하지 않더라도 '향유'할 수 있는 무언가가 많을수록 삶은 풍요로워지니까요. 오늘 처음 뭔가를 열어보게 되는 누군가를 저 또한 부러워합니다.
시인은 얼마나 많은 작품들을 만나고 있는걸까? 그녀가 적재적소에 인용하고 있는 문학작품 속 글들은 독서력이 따라주지 않으면 가능하지 않을 것이었다. 장 그르니에의 [섬]을 처음 읽었던 때가 떠올랐다. 내가 읽었던 작품 속에서 만났던 문장들, 혹여나 놓쳤던 문장들로 인해 그 작품 속으로 잠깐 들어가는 경험들을 할 수 있었다. 그녀로 인해 다시 읽어보고 싶은 책들의 목록이 더 늘었다. 순수하게 탐닉할 수 있는 한 가지를 난 가지고 있을까? 너무나 뻔한 답일지도 모르지만 책을 들 수 있겠다. 누군가가 보기에는 시간 낭비일 수도 있는 것이지만,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에는 틀림이 없으니 오늘도 내일도 나의 책읽기는 계속될 터이다.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일일지라도 누군가에게는 마음의 위로가 되고 행복을 일으키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겸허한 마음 한 자락도 가져본다.
멍하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그것이 가끔 세상의 균형을 유지시켜준다 어떤 중요한 것이 저울의 빈 접시에 올라감으로써."
항상 가득 채울려고 조바심을 낸다. 시간을 쪼개서 쓰려고 하고, 무언가 하고 있지 않으면 불안해하고......이 글을 읽으니 '멍하니'의 중요성을 알듯했다. 빠듯하게 쪼개 쓰는 시간 사이에는 틈이 없다. 억지로 채우려 하지 않고 조금은 비워 둔다면 내가 알지 못하는 행복이 스스로 조용히 찾아오지 않을까? 꼭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여유라는 선물은 받을 수 있는 것 아닐까?
처음 만나는 이 시인의 에세이(?)를 통해 우리말의 아름다움, 시인들이 언어를 가지고 노는 모습에 경외심이 들었다. 하나의 단어에 어찌 이리 많은 감정들을 부여하고, 사람의 마음 구석 구석을 들여다볼 수 있는지 시인이란 다른 세계의 사람인듯했다. 에세이를 통해 시가 마구 읽고 싶어지는 느낌을 가지게 되다니. 처음 만나는 작가의 시집 <나는 잠깐 설웁다>가 너무 너무 궁금해져버렸다.
함께
아름다운 것들은 나누고 싶어지지요.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은 것을 , 같이 느낀다는 것. 이 삶에서 결코 포기하고 싶지 않은 즐거움입니다.
좋은 책을 발견했을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블로그라는 공간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 모여있기에 같이 나누고픈 마음이 드는 곳이다.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문장들, '아하' 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글을 만나는 순간마다 많은 이들이 떠올랐다. 그런 이들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즐거우니, '함께'라는 말이 어찌 소중하지 않을까?
이 리뷰는 출판사 위즈덤하우스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
허은실 시인은 '나는 잠깐 설웁다' 라는 시집으로 처음 만났다 서평단 모집 소개글을 읽고 아 이건 내가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책을 받고 휘리릭 훑어봤을 때는 그저 그런 책이 아닌가 싶어 실망스러웠는데 한장 한장 넘길 수록 나의 첫 느낌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다 읽기 전에는 그 책에 대해 말하지 말자라는 생각, 잘 모르면서 일부만 겨우 알면서 무엇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오만이라는 것을 느끼게 해 준 책!
사랑, 관계, 태도, 발견, 시간 5부로 나누어 그것과 관련된 것에 대해 세심하게 발설하는 책
남의 말을 다 들어보지 않고 무언가를 단정해버리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크게 소리지르지 않고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조용하지만 단호하고 단호하지만 부드럽게 말하는 사람, 자기 속에 든 말을 다 하지 않고 여지를 남기는 사람, 자기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골똘하게 생각하는 사람, 자기의 품을 다 쓰지 않고 틈을 남겨 다른 이를 위해 쓰는 그런 사람이 좋다.
허은실 시인이 그런 사람이다. 그가 건네는 말은 다정하고 부드럽고 넉넉하다. 내가 반복적으로 쓰는 말들이지만 아 그랬구나! 감탄사를 하게 만든다. 사랑과 관계의 통역사, 태도와 발견과 시간의 해설사가 되어주는 그의 앓음다운 책을 곁에 두고 내내 품에 안을 것이다. 문득 9월이면! 찬바람이 불면! 새싹새싹하는 봄이 오면! 덜컥 외로움에 빠지는 사람에게 들려줄 것이다. 전화를 걸어, 편지를 써서, 그의 눈을 보면서, 보고싶다고! 사랑한다고! 너를 잃고 싶지 않다고! 너랑 친해지고 싶다고! 고백할 것이다.
1. 사랑은 언어를 발명한다
사랑은 말은 거는 것 떨리는 마음을 수줍게 건네보는 것에서 시작하지 않았던가요. 그날 당신이 내게 말을 걸어서 어쩌면 가난한 사랑에 생을 걸고 목숨을 걸어서.
사랑은 곁이 되는 것 없으면 사무치면서도 닿도록 가까우면 탈이 나는 곁을 주고 곁을 떠나는 것 어쩌면 이 단순한 경로가 사랑의 행로일 것입니다
2. 당신이 있어 가능한 관계
아름다움은 남의 아픔까지 앓을 수 있는 능력 타인의 고통을 상상해보고 슬픔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 남의 아픔까지를 앓을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일 것입니다 "문학은 우리가 아닌, 우리의 것이 아닌 사람들을 위해 슬퍼할 능력을 길러줍니다"(수전 손택)
타인 : 생을 다 써도 제대로 이해하기 힘든 미지 인간은 열 길 물속이고, 타인은 언제나 미지여서 진실은 종종 다른 얼굴을 하고 나타나죠 언제나 그걸 생각합니다 틀릴 수 있다는 것, 그게 아닐 수 있다는 것, 나의 잘못 앎이 타인에게 치명적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것.
3. 살아가면서 몸에 배었으면 하는 태도
불시착 : 노을 쪽으로 문득 차를 돌리는 일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 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자유롭다는 것을"(김중식, 이탈한 자가 문득 - 황금빛 모서리 시집) 자기가 자기를 답습하다가 스스로가 지겨워질 때 그래서 스스로가 폐곡선이 되어 있을 때 문득 핸들을 꺾는 어떤 저녁, 가을날 한번쯤은 그렇게 어느 강변에라도 앉아봐야 할 텐데요
4. 가을이면 말을 걸어오는 발견
연필 : 우리를 미세하게 다른 존재로 이행시키는 단순하고 간결한 사물 몸길이 대략 19센티미터, 지름 7밀리미터, 이 몸으로 한평생 갈 수 있는 길은 56킬로미터 정도라고 합니다 지하에서 캐낸 광물과 지상에서 자란 식물의 단단한 결합 이 길쭉하니 외로우면서도 단호한 사물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5. 지금 붉지 않다 하여도 시간
초여름 : 잠깐 빛나는, '아직'과 '풋'의 시간 나뭇잎 사이로 비쳐드는 햇살은 맑고 윤기 흐르는 잎들은 반짝입니다 바람은 적당히 부드럽고 적당히 산뜻해서 미풍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계절 잎들은 아직 완전히 자라 진초록에 이르지 않았고 눅눅한 장마도 찌는 더위도 아직은 시작되기 전,
발소리 : 어두운 길 걸을 때 가장 의지와 위안이 되는 종이위에 글을 쓰는 소리는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발소리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고요한 밤에 그 문장들이 내게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를 듣습니다. 그건 마치 싸락눈 소리처럼 작고 미약하지요 하지만 홀로 깨어 쓸쓸한 어떤 사람에겐 위안과 설렘이 되기도 하지 않을까요? 윤기 흐르는 잎들은 반짝입니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 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
그날 당신이 내게 말을 걸어서 허은실 위즈덤하우스/2019.2.14. sanbaram
<그날 당신이 내게 말을 걸어서>는 일상의 단어를 사랑, 관계, 태도, 발견, 시간을 주제로 시인의 언어로 새롭게 정의한 책이다. 시인의 말이라 하여 다르지 않겠지만 저자는 청각과 후각, 미각이 예민하여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시의 리듬이 느껴지는 섬세한 언어 사용으로 독자들의 감성과 공감을 끌어내는 특별함이 있다. 시인이자, 팟캐스트로 <이동진의 빨간 책방>의 작가다. 에세이 <나는 당신에게만 열리는 책>, 시집 <나는 잠깐 설웁다>를 펴냈다.
허은실 시인은 단어 하나의 사용에서도 설렘을 느끼게 한다. “설렘은 또 누군가를 마중 나가 있는 마음 같은 것은 아닐까요./ 그가 탄 버스가 모퉁이를 돌아올 때나/좋아하는 작가의 책을 주문해놓고 기다릴 때처럼 말입니다.(p.17)” 이처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경험을 바탕으로 단어가 쓰이는 상황을 이야기 하고 있다. ‘말을 걸다’는 말을 설명하는 글에서도 그의 감성을 느낄 수 있다. “잎사귀가 흔들리는 건/ 바람이 나무에게 말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햇살은 무뚝뚝한 창문에게 말을 걸고/ 나무의 바람과 햇빛과 창문./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가 거실 바닥에 그림자로 어룽댑니다.(p.18)” 이렇게 지나치기 쉬운 장면을 마음으로 잡아내는 섬세함이 글 곳곳에서 나타나 있다.
‘타인’을 설명할 때도 “한 사람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가는 삶이란 또 얼마나 가난한 것일까 싶습니다. 그 가난만은 모면해보려고 타인의 모카신을 신어보는 것. 그게 문학을 읽는 일이 아닐까요. 책을 통해 우리는 다른 이의 삶을 상상하고 거기에 자신을 대입해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p.81)” 이와 같이 낱말 하나를 표현하는 것에도 온 정성을 다하여 다양한 생각을 엮어서 하나의 장면을 만들어 내는 설명으로 읽는 사람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말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게 된다.
울지 말아요 울지 말아요, 라는 말은 좀 이상합니다. 하지 말아요, 먹지 말아요, 웃지 말아요…… 이런 말들과는 확실히 다르지요.
울지 말아요, 라는 말은 참 이상합니다. 우는 이를 향해 누군가 울지 말아요, 라고 하면 괜히 더 울고 싶어지니까요. 어쩐지 그 말에, 울고 있는 나 자신이 더 서럽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흠씬, 울고 나면 훨씬, 괜찮아집니다.
슬픔이 어서 그치기를 바란다는 마음, 당신이 우니까 내 마음이 아프다는 뜻, 당신의 슬픔을 알 것 같아요, 라는 공감, 내가 있으니 이제는 울지 않아도 된다는 말.
<울지 말아요>라는 노래가 그렇게나 많은 건 그래서일까요. 슬픔이나 고통 옆에 놓을 수 있는 인간의 말이란 겨우 그 정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울지 말아요. 아프지 말아요.(pp.88-89)
‘울지 말아요’라는 말을 이렇게 맛나게 풀어서 설명하면 누군들 공감하지 않겠어요. 같은 말이라도 하는 사람에 따라, 말소리의 높낮이와 상항에 따라 달라지는 게 우리네 말의 감정인데, 이렇게 상황을 정리하고 보면 누구나 쉽게 이해되는 감정의 전달이 되리라 생각한다.
수줍음 숲에 들어 문득 하늘을 올려다보다 나무들이 하늘을 나눠 쓰고 있는 걸 본 적 있으신가요.
한 나무의 잎들이 다른 나무와 겹쳐지지 않아서 일부러 금을 그어놓은 것처럼 영역이 나뉘어 있는 모습. 그걸 과학자들은 Crown Shyness, 그러니까 ‘수줍은 꼭대기’혹은 ‘꼭대기의 수줍은’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식물학 용어로는 ‘수관기피’ 또는 ‘수관쌍방양보’라고 합니다. 서로의 수관(樹冠), 그러니까 머리 부분을 건드리지 않는 현상이죠. 주로 참나뭇과, 소나뭇과 등 몇몇 종에서 볼 수 있는데 나무가 이렇게 일정한 경계를 두고 서로 접촉하지 않는 이유가 궁금해지죠. 정확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햇빛을 골고루 나누어 가지기 위해서거나 바람에 가지끼리 부딪혀 부러지는 걸 막기 위한 게 아닐까, 추정한다고 합니다.
이유가 뭐든, 종의 생존을 위한 진화의 결과겠지만 ‘꼭대기의 수줍음’이라는 이 문학적인 말은 여러 가지 시사점을 줍니다. 더 높이 자라기 위해 경쟁하면서도 간격을 유지하고, 가까이 있지만 서로의 공간을 침범하지 않는 태도 같은 것 말이죠.
생각해보세요. 서로 잎이 닿으면 ‘아, 실례했습니다.’하고 물러서면서 ‘먼저 쓰세요’라며 하늘을 양보하는 나무들. 그런 수줍은 배려를 상상해보면 절로 웃음이 납니다. 사람의 숲에서야말로, 이런 수줍음을 잃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닐까요.(pp.90-91)
햇빛을 차지하기 위해 밤낮없이 애쓰는 식물이 서로 공존하기 위해 양보하는 미덕을 보이는데, 사람은 왜 그렇지 못하냐고 질책을 하는 듯하다. 물론 살아남는 것도 중요하지만 혼자 살수 없다는 것을 서로 인정하면 좀 더 따뜻한 눈길로 양보하고 서로의 앞길을 축복해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연결’을 설명하는 말에서 ‘점과 점을 이어서 점자를 읽는 것처럼/ 별과별을 연결해서 별자리를 만드는 것처럼/ 낯선 타인들의 연결이 만들어내는 무늬, 그게 ‘시’인지도 모릅니다.’ 와 같은 설명이라 든가. ‘다음’을 설명할 때는 “붓글씨를 쓸 때 한 획(劃)의 실수는 그다음 획으로 감싸고, 한 자(字)의 실수는 그다음 자 또는 다음다음 잘 보완합니다. 마찬가지로 한 행(行)의 결함은 다음 행의 배려로 고칩니다. 이렇게 하여 얻어진 한 폭의 서예 작품은 실수와 보상과 결함과 사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신영복 선생이 말씀하신 ‘서도 관계론’의 내용을 인용하여 깔끔한 정리를 하고 있다.
때로는 한자의 자형을 이용하여 낱말의 뜻을 표현하기도 한다. ‘기억’이 그 예다. “추억이나 기억이라는 말에 쓰이는 한자 생각할 억(憶)에는 마음 심(心)이 두 개나 들어 있습니다. 소리 음(音)을 가운데 두고 마음이 옆에서, 그리고 아래에서 감싸고 있는 모습이죠. 그렇게 마음으로 감싸인 소리를 그저 ‘따라가’보는 게 추억이라면, 그 소리를 마음에 다시 힘주어 ‘쓰는’ 행위가 기억일 겁니다.(.278)” 뿐만 아니라 다음의 ‘춘화현상’과 같이 적절한 예화를 통해 독자의 이해를 촉진하기도 한다.
춘화현상 “엄마, 튤립은 따뜻한 걸 좋아하는데 왜 지금처럼 추울 때 심어요?” “튤립한테 겨울을 확실히 가르쳐주지 않으면 봄이 와도 모를 수 있잖아. (…) 지금부터 심어서 땅속에서 겨울을 나야 예쁜 튤립이 핀단다.”
핀란드의 대표적 동화 작가 토베 얀손의 그림동화 <무민의 단짝 친구>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춘화현상’이라고 한다죠. 일정 기간 4도 이항의 저온을 거쳐야만 식물이 꽃을 피우거나 결실을 맺는 것. 튤립이나 히아신스 같은 알뿌리식물. 그리고 목련이나 개나리 같은 이른 봄의 꽃들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겨울잠을 자기 시작한 목련을 바로 온실로 옮겨서 봄과 같은 조건을 만들어줘도 꽃을 피우지 않는다고 합니다. 겨울 추위를 겪고 난 뒤, 기온이 10도 이상 될 때라야 비로소 천천히 잠을 깬다고 하네요. 호랑나비도 얇은 키틴질 번데기 속에서 혹한을 난 뒤에 날개를 펴고 부화를 하죠.
그런데 춘화현상의 ‘춘화’라는 말 봄꽃이란 뜻이겠지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봄 춘(春), 될 화(化), 그러니까 ‘봄이 되는’ 현상.
봄은 어떻게 되는가, 무엇이 봄이 되게 하는가. 그런 생각을 하면 우리의 겨울도 조금은 견딜 만해질지 모르겠습니다.(pp.288-289)
이렇게 126단어를 설명하고 있다. 설명 자체가 한 편의 시를 읽는 것처럼 울림을 주는 정의다. 이렇게 엮어진 책이기에 시를 공부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바쁜 일상에 지쳐 잠시 휴식이 필요한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라 생각되어 적극 추천한다.
(이 리뷰는 예스24를 통해 위즈덤하우스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
사전 속에 갇힌 말을 잠시나마 자유롭게 해주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말(word)은 곧 세계(world)이기에, 말을 다르게 사유하는 것은 나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넓히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대상을 새롭게 불러보고, 다른 표현을 발명해보는 일. 그것은 말과 그 말이 지시하는 대상에 대한 사랑 때문에 간신히 가능해지는 일이란 것을 언제나 새로 깨닫습니다. - p. 4 中에서 - 글을 쓰다가 그 상황에 알맞는 표현이 무엇인지 종종 고민하는 나로서는 허은실 작가의 이러한 집필 의도는 색다른 울림으로 다가온다. 보통 말 또는 어휘는 그 사전적인 의미를 통하여 나름의 존재성을 갖고 있다라고 생각하였는데, 저자는 그러한 경계를 무너뜨리려고 하고 있으니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과연 사전적 의미를 넘어선 또 다른 정의가 누구라도 납득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마저 들었지만, [그날 당신이 내게 말을 걸어서]를 읽으면서 금세 그녀의 그러한 생각에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나의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보통 다양한 말들을 조합하여 우리는 고유의 생각과 느낌을 전달하고자 애쓰게 된다. 하지만 허은실 작가는 그러한 말들 하나하나에 대한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기존의 사전적 의미에 대하여 더이상 갇혀 있을 필요가 없음을 일깨워 준다. "나는 너를 사랑한다." 영어 수업 도중, 학생은 I love you를 이렇게 번역합니다. 그러자 영어 선생님이 정정해줍니다.
"'달이 아름답네요.'정도로 옮겨두게. 그걸로도 전해질 걸세." - p. 32 中에서 - 작가가 소개한 나쓰메 소세키의 이 일화를 통하여 우리는 love에 대한 고정적인 관념을 타파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소세키는 '달이 아름답네요'라 표현하고 있지만, 또 다른 작가는 이를 '죽어도 좋아'라는 표현으로, 알랭 드 보통은 '나는 너를 마시멜로 해(I Marshmallow you.)'라고 말한다. 우리가 love를 사랑으로만 알고 있었지만, 이와 같은 다양한 사랑의 언어를 접하면서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어렵지 않게 깨닫게 된다. [미스터 션샤인]이라는 드라마에서 애신이 유진에게 love의 사전적인 의미를 알았다면 결코 그에게 'love하자'라는 말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붓글씨를 쓸 때 한 획(劃)의 실수는 그다음 획으로 감싸고, 한 자(字)의 실수는 그다음 자 또는 다음다음 자로 보완합니다. 마찬가지로 한 행(行)의 결함은 다음 행의 배려로 고칩니다. 이렇게 하여 얻어진 한 폭의 서예 작품은 실수와 보상과 결함과 사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 p. 168 中에서 - 저자가 인용한 신영복 선생의 '서도 관계론'의 내용을 읽으면서 우리는 어렵지 않게 신영복 선생의 글이 쓰여지는 도(道)에 대하여 공감하게 된다. 그런데, 저자는 정작 이 부분에서 또 다른 것에 주목하고, 그것을 통하여 '다음'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이끌어 낸다. 첫 획을 망쳐도 보완할 수 있는 삶의 미학으로 말이다. 신영복 선생의 글쓰기에 대한 방법에 등장하는 '그다음'은 차례상 바로 뒤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실수나 결함을 보상과 사과를 통하여 바로잡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다음'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우리는 깨닫게 되고, 그 깨달음을 통하여 '~해도 괜찮다'라는 식의 위로를 자연스럽게 터득하게 된다.
'수첩'이라는 말과 그 어감처럼 손안에 쏙 들어와 꼭 쥐어지는 맛. 문장이 되지 못한 생각들, 사소한 정보와 약속 들만을 전담하는 수첩이라는 사물.
수첩에는 '쓰다'보단 '적다'란 표현이 더 어울립니다. '쓰다'보다는 열린, 가능태에 가까운 말이죠. 오늘 수첩에적어두었던 것들이 한 편의 작품으로 쓰이는 날이 꼭 오길 바랍니다. - p. 267 中에서 - 보통 회의에 참석하여 필요한 내용들을 작성하던 수첩에 대한 이러한 저자의 시선이 참으로 부럽게 느껴진다. 수첩에 대하여 '문장이 되지 못한 생각들이 작품이 되기를 기다리는 장소'라는 또다른 의미를 부여하기 위하여 저자는 얼마나 많은 생각에 잠겨 있던 것일까? 아니 이제는 그러한 생각하는 과정 자체가 참으로 부러울 뿐이다. 생각 자체도 하지 않고, 그저 정해진 사전적 의미만을 좇는 삶을 살아왔으니까. 이렇게 놓고 보니 비로소 저자의 의도가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한다. 단어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은 결국 자신의 삶에 또 하나의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으로 보여지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가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기 위하여 기를 쓰고 살아가고 있는 상황 속에서 저자는 유(有)에서 또다른 유(有)를 창조하고 있음은 정말 배워보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이다. 정해져 있는 것을 그대로만 받아들이는 것보다는 그것에 또 다른 의미를 부여하여 그 안에서 삶의 지혜와 일깨움을 얼마든지 이끌어낼 수 있으니 말이다. (중략) 이 라곰(Lagom)에서 중요한 가치는 '최고', '최선'이 아니라 '최적'이라고 합니다.. 최고나 최적은 단일한 기준을 상정하지만 최적의 상태라는 건 개인마다 다르죠.
우리가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건 대부분 자신만의 최적을 외면하고 타인의 최선, 세상의 최고를 쫓기 때문이 아닐까요. - p. 144中에서 - 음향 용어인 '이퀄라이징'을 통하여 '최고'와 '최선'만을 강조하는 우리 사회에서 '최적'을 통한 개인의 삶의 중요성을 이끌어내는 모습은 그러한 깨달음의 과정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날 당신이 내게 말을 걸어서]의 제목처럼 말이 거꾸로 우리에게 말을 건다면 우리는 어떠한 대답을 줄 수 있을까? 그들에 담긴 사전적 의미에 급급한 우리로서는 대답하기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는다면 그러한 나름의 의미 부여는 물론 그러한 의미를 만들어내기 위한 생각하는 과정이 어쩌면 더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비록 서툴 수는 있겠지만, 그러한 말걺에 대하여 이제는 마냥 뿌리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렇기에 아래와 같은 저자의 바램이 가식이 아닌 진심으로 나에게 새로운 울림으로 다가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 말걺이 당신이 쓰고 싶은 글에, 당신이 시작한 사랑에, 그리고 당신의 삶에 영감을 준다면, 기쁘겠습니다. 기뻐서 어쩌면 기쁨에 관한 글을 또 쓸 것입니다.
( 이 리뷰는 출판사 위즈덤하우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
|
1. 스치듯 말을 거는 작가의 이야기가 살짝 내 마음으로 걸어들어기 시작했다.
2. 잎사귀가 흔들리는 건 바람이 나무에게 말을 걸었기 때문입니다. 햇살은 무뚝뚝한 창문에게 말을 걸고 나무의 발마과 햇빛의 창문, 그들이 주고받는 대화가 거실 바닥에 그림자로 아롱댑니다.
- p,.18 (말을 걸다)
할 수만 있다면,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 그저, 작가가 주는 하나하나의 대사들을 그저 가슴에 고이 간직하고 마음에 담아둔 채로, 나만의 정서여행을 떠나고 싶다. 아무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그냥 흐르는 감정에 나를 내맡긴 채로,온전히 문장 하나하나에 집중하면서, 천천히 천천히 나만의 세계로 떠나고 싶다.
3. "동양의 이제는 망해버린 민족의, 이제는 죽어버린 말로는, 반딧불은 사라지는, 사라지는 불이라고합니다."
일본 작가 이노우에 야스시의 「반딧불」이라는 시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사라지는 불, 반딧불이는 1~2년의 유충 생활에서 깨어난 뒤 고작 열흘, 길어야 보름을 산다고 합니다. 그 보름 동안 그들이 하는 일이란 사랑을 나누는 일.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시의 구절처럼 사랑하다가 죽어버리는 것이죠. 사랑하다가 사라지는 불, 반딧불이의 삶입니다. - p.54 (반딧불이)
나의 삶도 점점 더 나아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하루하루를 의미없게 보내면서, 내 인생 언제 펴지게 해 줄 거냐고 하나님을 원망하기만 하던 떄가 있었는데, 이제는 나의 앞날에 이미 길을 펴놓고 기다리고 계시는 하나님이심을 믿는다. 반딧불이의 삶처럼, 나의 삶도 사랑하다가 사라지는 불이 되겠지만, 그 불은 의미없는 불이 아니라고, 아주 엄청 큰 의미를 지닌다고 이제는 말할 수 있겠다.
4. 고흐의 빈 의자 그림들이 우리에게 각별한 느낌을 주는 이유는 뭘까요? 그에게 의지는 또 다른 자화상아지 초상화이기 때문일 겁니다.
덴마크 사람들은 첫 월급을 받으면 의자를 산다고 합니다. 우리가 부모님께 빨간 내의를 사드렸던 것처럼요. 우리의 경우 그건 경제적으로 자립하기까지 돌봐주신 데 대한 감사의 뜻이죠. 그런데 그들한테는 왜 의자일까요?
의자를 단순한 가구라기보다 소중한 '장소'로 여기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삶의 질이라든가 생활의 여유를 상징하는 그런 장소인 거겠죠.
- p.236 (의자)
나도 의자가 필요하다. 내 삶을 안정적으로 그리고 내 몸을 안정적을 지탱해줄 의자. 그 의자에 앉으면 편안한 느낌이 들 것이다. 우리가 가는 곳곳에 의자가 있고 그 의자는 우리의 삶을 여유롭게 해주는 효과가 있다.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밥을 먹기도 하고, 일을 하기도 한다. 나는 내 삶을 지탱해줄 의자가 필요하다!
5. 『그날 당신이 내게 말을 걸어서』는 이렇게 내게 실제 말을 걸듯, 조곤조곤 속삭인다. 그 속삭임에 나의 마음은 편안해지기도 하고, 향수에 빠지고 하고, 상념에 빠지기도 하고, 한없는 그리움에 빠지기도 한다. 어느 날 갑자기, 내게 말을 걸어왔던 책. 나는 오늘 책에게 살짝 말을 건다.
"너, 언제부터 내 곁에 있었니? 네가 있어서 행복했고, 앞으로도 행복할 것 같아. 네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가 없어. 앞으로도 내 곁에 있어줄 거지?"
바로 오늘, 그 책이 내 곁으로 왔다.
- 이 리뷰는 위즈덤하우스에서 받은 도서로 작성하였습니다-
|
|
속상한 일이 있을 때 밖으로 꺼내놓지 못하는 말들이 고인다. 녹아서 사라지면 좋을 텐데, 고인 말들이 켜켜이 쌓여 날카로운 송곳으로 변할 때가 있다. 그런 내게 누군가 건넨 말 한마디가 송곳을 뭉툭하게 만든다. 그는 정작 내 맘을 알지도 못하는데 나를 부드럽게 매만진다. 말이라는 게, 글이라는 게 그런 힘을 지녔다. 그리고 나는 그 힘을 사랑하고 갈구한다. 어쩌면 시인의 말이라서 더욱 끌렸을지도 모른다. 『나는 잠깐 설웁다』(문학동네)에서 만난 그녀의 시, 그녀의 언어, 그녀의 마음, 그녀의 몸짓을 다시 마주하고 싶었기에.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안다고 말하고 싶은 충동이라고 할까.
‘시인이 감성으로 새롭게 발견한 다정한 말들’이라는 부제는 틀리지 않았다. 속삭이는 것처럼,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좋은 이와의 대화처럼 그렇게 다가와 안기는 글들이었다. 나만 알고 싶은 문장도 있었고, 공감하는 문장도 있었고, 상큼한 캔디의 맛도 있었고 두 번, 세 번 읽게 되는 문장도 있었다. 그리고 한편으로 떠오르는 책이 있었다. 김소연의 『마음사전』, 『한 글자 사전』이다. 아마 나뿐이 아닐 것이다. 유려하고 아름다운 책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건 독자에게 즐거운 일이니까. 그래도 비교가 되는 건 사실이다. 그건 그렇고, 나를 반하게 하는 말들은 왜 이리 많은 걸까. 마치 나의 기분을 알아주고 손을 내밀어 주는 친구 같은 문장이 한 권의 책으로 나를 기다리니 반갑고 기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말들이 더 좋고 어떤 말들이 덜 좋고 하는 건 의미 가 없는 일이다. 그저 지금의 내게 안기는 말들과 포옹을 하면 그만이다.
나라도 나를 안아주어야 할 때 우리는 무릎을 껴안습니다. 내 눈물을 내가 받아주어야 할 때 무릎 위에 얼굴을 묻습니다. 무릎은 그런 곳. 무릎은, 그렇게만 쓰였으면 좋겠습니다. (「무릎」중에서) 맡, 사랑이 끝내 떠나지 못하는 자리. 당신이 아플 때 당신의 머리맡을 지니는 사람이 당신을 아파하는 사람입니다. (「맡」중에서) 혼자 울음을 삼키던 밤, 잠들지 못하는 밤에 만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니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나는 나의 무릎을 더 사랑한다. 더 많이 어루만지고 더 많이 안아주고 넘어지지 않게 조심할 것이다. 지금 곁에 없어라도 내 머리맡을 지키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충분히 행복하다. 온전히 나를 달래는 나의 사람이 머무는 나의 무릎과 당신이 언제라도 달려와 지킬 머리맡의 온기를 느낀다. 슬픈 것과 아픈 것이 밖에서 내게로 오는 것이라면 슬퍼하는 것, 아파하는 것은 슬픔과 아픔 쪽으로 내가 걸어가는 것. 삶에서 아끼지 말아야 할 동사들입니다. ( 「슬퍼하다, 아파하다」중에서) 너무 빨라서 숨차지 않게 그래서 중간에 포기하지 않게 심자의 보폭에 맞춰 걸어가보는 일. 사람이 사람에게 가는 길, 누군가를 사귀는 일도 산책과 같으면 좋을 것입니다. ( 「산책」중에서) 우리는 자주 말하지 않아도 안다고 실수한다. 행동할 때를 놓치기도 한다. 슬픔을 나누는 일, 기쁨을 더하는 일에 말과 행동은 중요하다. 점점 무미건조한 일상에 익숙한 우리에게 삶에게 아끼지 말아야 할 동사는 절실하게 필요하다. 공감능력을 키우는 일도 이런 글을 많이 읽고 접하는 게 아닐까. 이해하기 쉽게 풀어놓은 말은 누구에게나 좋은 보석이 된다. 그러니 우리는 이 한 권의 책으로 수많은 보석을 거저 얻은 것이다. 얼굴은 수많은 근육들로 표정을 지어내지만 등은 그런 종류의 지어냄, ‘꾸밈’이나 ‘가장’과는 거리가 멀죠 아무런 장식적인 것이 없는 우리 몸의 가장 넓은 여백. 그래서 나의 이면을 정식하게 누설하는 것은 자주, 뒷모습입니다. (「뒷모습」중에서) 설명할 수 없는 말들을 다 끌어안아주는 말, 그냥의 헐렁함, 그냥의 너그러움, 그냥의 싱거움, 그냥의 무의미. 그러니까 그냥 읽는 책, 그냥 재미로 하는 일. 그리고 그냥 통하는 사람. 우리에겐 좀 더 많은 ‘그냥’이 필요합니다. ( 「그냥」중에서) 일상에서 지친 당신에게 필요한 말들이 이 책에 있다. 공기에 따라 기분이 달라질 때, 당신을 지배하는 감정으로 힘들 때, 마주한 문장을 천천히 읽어보면 어떨까. 신기하게도 마음이 누그러지고 기운이 날지도 모른다. 짜증을 날려버리고 다친 마음을 처방하는 말, 살며시 머리카락을 날리는 상쾌한 바람 같은 말이 그곳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당신을 아끼는 마음을 발견했다면, 당신은 괜찮아졌을 것이다.
|
|
#그 날 당신이 내게 말을 걸어서.. @책 속의 문자들이 거는 말 들에 답할 수 있을 감성이란 무엇일까를 한참이나 생각해 봤다. 삶의 사사로운 것들에 끌려다니며 감정 속 찌꺼기들을 재소모하느라 좌불안석인 하루, 그속에서 이루어지는 삶이 거는 말들과 그 마음이 내는 소리들에대해 그 순간을 잊어버리거나 놓치고 싶지않은 저자의 치열한 감성적 시간들이 문장 사이사이에 들이워저 있는듯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랑도 말을 거는 것에서 부터라는 그 말을 의지해 보잘것 없는 현실을 생을 걸고 버틸 수 있었다"는 그 부분에서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런 저자의 감성적인 권유가 삶들이 밀어내는 관성적인 루틴들을 다시 감성쪽으로 밀어질수 있을까? 살아가다보면 감동이란 크고 거장한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작고 소소한 1~2초의 시간으로도 충분함에 자주 놀란다. 그동안의 노고나 아품, 애씀들을 비슷비슷한 삶으로 알수 있기에 눈물이 글성여 혹여 누가 알기라도 할까 주변을 두리번 거리게 된다. 본문의 저자도 커피를 사러가다 돌아보닌 미소에, 지하철 계단을 오르며 마주한 구겨진 양복아래의 닳은 구두 뒷축, 영화의 입술을 다물며 눈물짖는 순간의 한장면 등 저자의 표현처럼 삶은 기쁨과 슬품의 양팔로 이루어진 저울이라는 표현에 공감이 절로 간다. 그렇게 책장을 넘기면서 페이지 페이지마다 저자가 숨겨놓은 단어들중에 꼭 하나씩이 눈에 들어 왔다. 스침, 설렘, 그리움, 심장, 곁, 온다 등 한 페이지에 오직 하나의 단어들을 건저내며 저자가 행간 틈세에 가슴을 담아 시간을 표현했던 흔적들을 찾아가는 과정들이 의미있게 다가왔다. @저자에게 거는 말의 저항에 대하여 복선으로 다른 이들의 말에 빛졌다는 저자의 말들로 삶속에서 시를 계속하게하는 원동력은 아니었을까. 저자와 시인과 독자인 개인적 무딘 강성적 교집합은 아닐지라도 마치 파블로 네루다의 시가 내게로 왔다는 의미를 어스름하게라도 느꼈고 기형도 시인의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에게 작별을 고하듯 했던 말들이 감성으로 다가왔다. "더 많은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때로는 거짓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속으로 기꺼이 입장하는 낭만을 잃지 않을 때 우리는 더 자주 삶에 감탄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시인 특유의 감성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글과 글사이의 행간에서 읽는 이들로하여금 삶의 하중을 가득 실어 들여주는 살아가는 시간들이 여유롭다. 그리고 환하게 빛내는 말들의 연민들이 사믓 걸어오는 말로 인해 진지해졌다. 내가 지금까지 타인들을 향해 했던 말들과 그 말들에 반사헤 돌아온 빚들에대해 생각해봤다. 제대로 듣고 있는지..., 제대로 하고 있는지..., 제대로 읽고 있는지...,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단어가주는 의미의 진정성은 어떤 형태로든 임펙트로 그 가슴에 새겨저야한다는 의미를 살면서 배우는게 인생같다는 생각을 해요. 즐거움이든 슬품이든 상처든 아품이든 추억이든, 고통이든... 그러고보니 저자가 시인이라 그런지 글과 글이 부드럽군요. 보는것만으로 위안이 되는 느낌... 오늘 발견한 저자의 이 글, 더 많은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때로는 거짓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 속으로 기꺼이 입장하는 낭만을 잃지 않을 때 우리는 더 자주 삶에 감탄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를 응원합니다 ![]() ![]() ![]() ![]() |
|
이책 너무 이쁘다. 난 겉 표지가 두꺼운 도서를 너무 좋아한다. 왠지 모르게 책을 보호해줄수 있는 단단한 보호막같다는 느낌이 들어서일까?? 표지는 두껍지만 표지에 그려진 그림은 어딘지모르게 가냘프다. 그 그림이 뜻하는 바는 안에 숨겨져 있었다. 우리의 언어가 이토록 따뜻한 온기를 품고 있었다니...정말 놀랍고 놀랍다. 시인의 마음속에는 어떤 감성이 있어서 이토록 감성충만한 언어로 변화시킬수 있는 능력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매일 매일 사랑에 빠져서 사는것도 아닐텐데... 사랑가득 머금고 있는 언어를 사용할수 있는걸까? 이도서안에는 외국어로 번역할수 없는 마법의 뜻을 지닌.. 단어들의 향연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단어 하나 하나 만날때마다 마음이 깨끗해지고 맑아지는 느낌이랄까? 묵은때 찌든때 잔뜩 끼고 어지럽힌 현대인들의 마음을 정수시켜줄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정도로 맑고 깨끗하다. 그래서 한페이지 한페이지 넘길때마다 설레였고 평상시에 이런 단어들을 더 많이 사용하고 싶었다. 내가 책을 좋아하지만 아직까지도 가장 읽기 꺼려지는 분야가 시이다. 그이유는 아마도 시의 언어가 담고있는 뜻을 가늠할수 있는 능력이 부족해서인듯하다. 늘 빨리빨리 서두르며 시간에 쫓기듯 살아왔던 나에게 시의 한구절 한구절 읽으며 그시속에 빠져들어 감성에 젖을만한 심적인 여유가 없었기때문일수도 있겠다. 시는 아무나 읽는게 아니다. 시를 받아들일 시간과 마음에 여유를 준비하고 있는자만이 시를 받아들일수 있는 자격을 갖을수 있을것같았다. 그래서 난 이 책을 읽기 시작하는데 일주일의 시간이 걸렸다. 이일 저일 할일이 많다보니 마음가짐을 준비할 여력이 오늘에서야 가능해서 읽을수 있었고 지친 내 마음이 평안해지며 부드러워지기 시작했다. 편한 소파에 앉아 잔잔한 클래식 틀어놓은 분위기와 비슷한것같기도 하다. 잔잔하게 마음을 울릴수 있는 매력을 갖고있는듯 하다. 오는것은, 기다리기 때문에 옵니다. '온다'라고 말할때, 거기에는 기다림이 전제되어 있을 때가 많죠. 기다리기 때문에 온다,라고 표현하고, 기다림 때문에 온다, 라는 말은 완성됩니다.p. 27 (온다, 라는 말) 기다림때문에 온다는말...캬.... 알면서도 시인의 감성을 뒤집어 쓴채 받아들이니 너무 멋지다. 어쩌면 같은말인데도 어떻게 전달하느냐에 따라 이토록 진한 여운과 감동을 전달할수 있는걸까? 오늘 친정에 가던길... 엄마에게 전화가 계속 온다. " 잘 오고 있니?" 엄마는 날 기다리신다는걸 알기에 속력을 조금 높여본다. 이상하게 엄마를 기다리게 하는건 싫다. 날 기다린다는 마음을 알기때문이다. 차라리 내가 기다리는게 좋다. 기다린다는건 기대라는 희망과 애태움이라는 내면이 담긴듯해서 그닥 좋지않다. 우리가 행복함을 느끼지 못하는 건 대부분 자신만의 최적을 외면하고 타인의 최선, 세상의 최고를 쫓기 때문이 아닐까요. P.145(이퀄라이징:자신에게 맞는 최적을 찾는 노력) 이퀄라이징이라는 단어로 이런 연상을 하게 되다니... 나만의 최적이란 뭘까? 오로지 나만의 최적을 바라보며 살았던적이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늘 난 완벽함을 추구하며 타인의 인정을 위해 부단히도 앞만보고 달렸던것만 같아서 위 문구를 읽으며 생각에 잠겨보았다. "길거리에서 이 조그만 책을 열어본 후 겨우 그 처음 몇줄을 읽다 말고는 다시 접어 가슴에 꼭 껴안은 채 마침내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정신없이 읽기 위하며 나의 방에까지 한걸음에 달려가던 그날 저녁으로 나는 되돌아가고 싶다." 순수하게 탐닉할 수 있는 한 가지쯤 갖고 살 것! 생존에 꼭 필요하지 않더라도 '향유'할 수 있는 무언가가 많을수록 삶은 풍요로워지니까요. 오늘 처음 뭔가를 열어보게 되는 누군가를 저 또한 부러워합니다.p. 165(탐닉:어딘가에 꽂혀 열정과 시간을 쓸 수 있는 것)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읽기 위하여... 이 상황의 주인공의 심리상황을 가늠할수 있다. 나도 이런적이 가끔있다. 무언가를 만들때나 그릴때나 읽을때 가끔 겪는 흥분과 같지 않을까? 이토록 행복해하는 즐거워하는 너무나도 원하는 그것들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가끔 ' 시간낭비가 아닐까? 사는데 도움이 되는걸까? 이럴시간에 생산적인 활동이나 해야하는거 아닌가?' 생각해볼때가 있다. 하지만 다시 채찍질한다. 내가 좋아하는거 몇가지는 하면서 살아야 내삶이 행복해지는거니까 이런것까지 타인을 위해 양보하며 포기하고 살진 말자고 다짐하고 다짐한다. 실수한 경험, 실패한 문장, 패배한 경기, 실패한 사랑...... 삶은, 실패들로 짜나가는 아름다운 태피스트리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역사는 승리의 기록이지만, 문학은 끝까지 패배의 편이라는것. 얼마나 위로가 되는 일인지요. P. 219( 실패: 다음번의 더 나은 실패를 위한 영감을 주는 일) 내삶을 되돌아보면 추억거리가 많다. 그런데 한가지 한가지 독립적으로 보면 고생이었고 실패였고 고난의 연속이었던 기억들중 하나이다. 성공거리보단 실패거리가 더 기억속에 오래 자리잡는것같다. 이런 실패를 발판삼아 오르고 오르기에 지금의 내가 여기 있는게 아닐까? 실패가 있기에 작은 성공하나라도 그 소중함과 뿌듯함을 그 누구보다 행복하게 받아들일수 있는게 아닐까? 지금까지도 실패가 두려워 늘 완벽을 꿈꾸며 발버둥치지만 그럴수록 더 실패의 늪에 빠지는것만 같기도 하다. 실패를 너그러이 받아들이는 아량과 배포를 더욱더 기르고싶다. 책을 읽음으로써.... 언어마다 뜻을 만들어 아름다운 의미를 부여해주고 있는 시인의 능력에 감탄에 감탄을 남발하며 많은 단어들에 대해 가슴속까지 파고드는 깊은 울림에 계속해서 가만히 그뜻을 헤아려보고 나의 기억속에서 찾아보려고 애를 썼다. 그러다가 깨달았다. 시의 언어를 이해할수 있게 도와주었던 나의 과거의 기억이나 추억의 상황들 모든곳에 존재하고 있던것은 바로 사랑이였다. 사랑의 위력은 과연 어디까지인가... 시인이란 사랑이란 감정을 글로 기록할수 있는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있는 사람이 아닐까? 내가 사랑으로 인해 설레이던적은 언제였나? 지금 난 무엇으로 하여금 설레이고 있나? 설레인다는것만큼 가슴 뛰고 행복한게 어디또 있을까? 하루하루 설레이는 삶을 사는 사람이야 말로 진정한 행복을 영위하고 있는 사람이 아닐까? 난 오늘도 찾는다.. 내일도...앞으로도.... 날 설레게 할 그 무언가를...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 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
그날 당신이 내게 말을 걸어서
《저자 허은실》 1975년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나 서울시립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했다. 라디오 오락·시사 프로그램의 작가로 10년 넘게 활동했으며 2010년 [실천문학]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했다. 현재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의 작가를 맡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강원도 홍천에서 농부의 딸로 태어났다. 대학 3학년 무렵, 선물 받은 최승자의 시집 『내 무덤, 푸르고』를 읽고 시에 눈뜨게 되었다. 백석, 김수영, 파블로 네루다, 최승자를 시적 스승으로 생각한다. 청각, 후각, 미각이 예민하고,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다. 동음이의어 개그를 자주 구사한다. 청각은 예민하지만 귀가 나빠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다. 에세이 『나는, 당신에게만 열리는 책』과 시집 『나는 잠깐 설웁다』를 펴냈다. 방송 원고가 바깥을 향한 소통이라면, 시를 쓸 때 좀 더 비일상적인 사람이 된다. 지금도 어디에선가 시를 쓰고 있다. 쭈그리고 앉아, 자꾸만 여위어가며, 누군가의 몸에 세 들어서, 한밤중에 무릎 위에 턱을 올려놓고 발톱을 깎으며, 뺨 대신 이마를 가리고 웃으며, 꽃잎을 손톱으로 꾹꾹 누르거나, 볼을 타고 내려오는 뜨듯한 것을 핥으며, 살에 와 녹는 눈송이에 기대, 그림자에 끌려서, 장어탕을 먹고 유리벽에 이마를 찧으며 지금도 시를 쓰고 있다.
시인의 감성으로 새롭게 발견한 다정한 말들
《 차 례 》 1부 사랑 사랑은 언어를 발명한다 2부 관계 당신이 있어 가능한 3부 태도 살아가면서 몸에 배었으면 하는 4부 발견 기울이면 말을 걸어오는 5부 시간 지금 붉지 않다 하여도
-말을 걸다 : 떨리는 마음을 수줍게 건네보는 것
이렇게 말을 걸어도 될까. 말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본다고 한다. 시인이라서 글이 예쁘다. 단어의 목소리 말들의 울림을 들으러 가볼까 한다. 설렘이라는 말은 나이가 들어도 좋다. 어릴 때 소풍 갈 때 마음일까 도시락을 싸 갈 수 없는데 어디를 간다는 것에 마음이 들 떠 있을때가 있었다.
햇살은 무뚝뚝한 창문에게 말을 걸고, 사랑도 말을 거는 것이라고 한다. 지금 나는 책에게 말을 걸고 있다. 책이 나에게 말을 걸 수도 있다. 언젠가 책이 나에게 말을 걸어와서 지금껏 같이 지내는 것인가보다.
-마중과 배웅 : 먼 길 외로움을 덜어주는, 환대와 동행의 형식
마중과 배웅 우리가 태어날 때 설레며 기다리던 가족들은 나를 마중하고 있던 것 어느 집 상여가 나갈 때 동네 사람들 모두가 나와서 그 상여를 따르던 건 먼길을 함께 배웅하던 이별 의식이었죠. 남자 친구와 헤어짐이 싫어 저만큼 데려다 주고 다시 오고 했던 날을 생각하며 웃음 지어 진다. 어린 딸이 시골 생활을 하다가 부산 집으로 돌아올 때 엄마의 기다림은 마중이다.
-연결 : 별자리와 무늬와 시와 우리가 되는 낯선 것들의 만남
연결이라는 글을 읽으며 지금 이렇게 SNS로 소통하는 것도 연결이라고 생각한다. 낯선 타인들과 소통을 한다. 글 속에서 공감도 하고 위로도 받고 우리는 연결이 되어 있다. 좋은 말이다.
지금도 내 손은 약손이다. 배가 아프면 손을 가만히 갖다 대기만 해도 통증이 덜하거나 아예 안 아프다고 한다. 심리학자들이 트라우마 치유에서 강조하는 방법도 마찬가지. 가까운 이들이 손을 잡아주거나 어깨를 토닥여주는 거라고 한다. 그건 손을 빌어 마음을 쓰다듬기 때문일 것이다. 촉각이 인간에게 먼저 발달한 감각인 것도 그런 이유 아닐까.
-소확행 : 하찮은 기쁨거리가 모여 커다란 불행에 대응하는 힘
“나는 아주 하찮은 일에서 느껴지는 기쁨을 좋아한다. 이것은 어려운 일에 닥쳤을 때 나를 지탱해주는 원천과도 같은 존재이다.” 오스카 와일드
하루를 살아가면서 좋은 일, 즐거운 일, 나쁜 일, 하찮은 기쁨, 이런 소소한 일들이 일상을 지탱하고 인생을 지속하게 해준다. 이게 바로 소확행이다. 일상이 매번 같지만 하루 하루 즐거움을 찾아야겠다.
쓰다. 글을 쓰다라는 말도 있지만 마음을 쓰다도 있다. 애를 쓰고, 신경을 쓰고, 마음도 쓰라고 있는 것, 그렇다면 아끼지 말고 다 쓰고 갈 일이다.
- 뒷모습 : 무방비함으로 더 속 깊은 이야기를 건네오는 이면의 표정
뒷 모습 하면 뭐가 떠오를까. 연로하신 부모님이다. 최근은 아니지만 작년 가을 날 딸이 진료하는 병원으로 오신 친정 아버님은 건강이 안 좋으셔서 입원을 하셨다. 퇴원하고 딸을 보러 온다고 오셨는데, 부축해주는 팔이 뼈만 앙상하고 돌아가는 뒷 모습이 왜 그리 작아 보이든지 지금도 자주 입원을 하시는데 마음이 안쓰럽다.
낯설게 하기 이런 말은 시나 산문에서 자주 등장하는 글이지 나에게는 해당이 안되는 말이었다. 한 달 병원 생활하고 집을 들어서는 데 휠체어로 들어가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처음 방문하는 집 같고 많이 낯설었다. 고작 한 달인데 일년 이었으면 어쩔뻔했나. 택시를 타고 동네를 스쳐 지날 때 간판을 보게 되었다. 없던 게 생겼네 있던게 없어졌나. 한 장면이라도 안 놓치려고 호기심 많은 아이처럼 눈을 떼지 못한 때도 있다.
[그날 당신이 내게 말을 걸어서]를 읽으며 시인이 따라간 발자취를 나는 어땠나 생각하며 읽으면 감성이 충만해지고 힐링이 된다. 이 봄에 힐링 에세이를 만나보세요.
|
|
그날 당신이 내게 말을 걸어서 허은실 지음 시인들은 일상의 모든 단어들 감정들도 허투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모든 단어 감정들에서 미(아름다움)을 찾아낸다. 이 책의 작가이자 시인인 허은실 저자도 말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무심코 지나친 일상 속 단어들과 감정들에 대한 깨달음을 전한다. 이 책의 저자인 허은실 작가는 내가 즐겨 듣는 이동진의 빨간책방의 작가로 우연히 지인의 권유로 듣게 된 빨간책방을 통해 알게 되었다. 봄에 어울리는 설렘과 따스함을 담은 이 시집은 제목부터 나의 눈길을 사로 잡았다. 이 시집을 처음 받았을 때 가장 먼저 김춘추 시인의 '꽃'이 생각났다. 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香氣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우리가 이름을 붙힌 모든 단어들은 어쩌면 우리가 그 이름을 불러주고 단어의 의미, 그 단어를 둘러싼 아름다움을 찾아낼때 비로소 제대로 알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일상 속 딱히 무엇이라 정의하지 못한 관계와 그에 파생된 감정들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있게 생각해볼 수 있었다. 우리가 알고 있었던 그 감정들이 서툴고 어색하지만 그 감정들을 시인의 눈으로 화려한 언변으로 만들어진 말의 얼굴이 아닌 태초의 가장 순수한 있는 그대로의 말의 본 얼굴을 그저 바라볼 수 있다는 생각, 그 깨달음을 이 시집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사실 이 책을 읽게 된 건 빨간책방을 통해 알게 된 허은실 작가님의 이야기가 궁금해서였지만 이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미처 깨닫지 못했던 말의 아름다움을 알 수 있었고 세상과의 소통의 어려움에 대한 깊이있는 반성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피로하고 지친 오늘, 이 책을 통해 위로받고 공감할 수 있어서 정말 지친 감정을 위로 받을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