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줄 한줄 읽어내려갈 때의 그 알수 없는 설레임..오직 백성을 위해 살았고 오직 백성을 위해 마지막까지 헌신했던 도산 정약용선생..참 많은 것을 일깨워준 책이었다. 부정부패를 일삼던 그때에.. 곧은 선비정신으로..백성편에 서서 탐관오리들의 부정부패를 탄핵하고..그들을 일깨우기위해 쓰신 책...정말이지 요즘 우리들의 꼭 한번을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많은 교훈과 많은 지식과 감동..5권을 읽으면서 한권한권 임하는 자세가 남달랐던 책이다. 솔직히 1권은 약간 지루한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1권의 중반부에 접어들면서 한시도 뗄수 없었다. 주목할점은 정약용 뿐만 아니라 그분의 형인 정약전의 일생도 서술해놔서 더더욱 볼만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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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고있었던 정약용이란 인물은? 조선시대사람이다. 위인이다. 훌륭한 사람이다. 이정도였다.!!! 장장5권이나 하는 책을 읽으면서 정약용이란 인물에대해서 이제 조금 알거같다. 남들이 물어보면 몇자 적을수 있을정도로. 청렴한 생활을 하면서 관직에서도, 그리고 유배지에서도 깨끗하고 본받을만한 행동을 한 위인이라는것, 그리고 놀랍게도(전혀 몰랐었기때문에)그가 기독교교인이었다는것, 그로 인해서 박해를 받았다는것등등 5권 유배지에서의 생활과 그의 죽음까지를 쓰고 있다.
이책을 통해서 얻을수 있는 내용은 단지 정약용의 생애만은 아닌듯하다. 일단 그시대의 생활상을 조금은 엿볼수 있을테고, 어느시대에나 존재했었던 정치비리(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듯 하다),그리고 그시대의 관직등 읽어보면 도움이 될만한 책이라 적극 추천하고 싶다. 책을 처음 샀을때는 베스트셀러 목록에도 들어있었던 책이다. [인상깊은구절] 육십 풍상의 세월 눈 깜박할 사이에 흘러가 복숭아꽃 활짝 피던 봄 혼인하던 그해같네. 생이별 사이별이 우리 늙음 가져오나 슬픔 짧고 즐거움 길었으니 임금님 은혜 감사하여라. 오늘밤 목란사는 소리 더욱 다정하고 그 옛날 붉은 치마에 유묵 아직 남아있네. 갈라졌다 다시 합한것 그게 바로 내 일생 한쌍의 표주박 남겨 자손들에게 남겨주노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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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오래된 책을 다시 읽었다. 인터넷 서점에 가서 검색을 해보니 이 소설이 다른 출판사를 통해서 3권으로 나온 것이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목차를 보니 그리 달라진 것 같지 않았다. 주인공 정약용은 파란만장한 인생을 사신 분이고 존경할 만 한 분이다. 그분에게는 좋은 이야기가 아닐지라도 귀양을 간 것이 우리에게는 좋은 것을 남겨 주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는 얼마 전에 정조 드라마에서 인기를 끌었던 홍국영에 대한 이야기가 1권에 길게 나온다. 거병범궐만 하지 않는다면 모든 죄를 용서하고 서로 돕기로 약조를 했지만 결국에는 과욕을 부리다가 33세라는 젊은 나이에 죽고 만다. 이런 현실에서 홍국영의 잘못도 많겠지만 어쩌면 정조의 잘못도 있다고 본다. 아니면 이용했을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든다.
2권에서는 비극의 전말이라는 제목으로 길게 사도세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아무리 소설이라고 해도 역사의 고증이 잘못된 점이 많은 것 같다. 사실 사도세자는 권력투쟁의 피해자라 해야 하지 않나 싶다. 권력을 위해 그 아버지인 영조도 아들을 죽이고 싶지 않았나 싶다. 그 당시 노론과 소론은 원수보다 더한 사이가 아니었던가.
그리고 소설가가 여자 분이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혜경궁 홍씨에 대해서 너무 후하다는 생각이 든다. 혜경궁 홍씨가 노론의 편에 서 있었고 사도세자가 소론의 편에 서 있었다는 역사적인 사실로 보아 이 소설에서 그 진실성은 좀 떨어져 보인다. 하긴 소설이고 감성적인 호소라는 점에서는 넘어갈 수도 있는 일일 것이다.
정약용이 많은 책을 쓸 수 있는 것에는 아마도 외가의 덕을 많이 본 것 같다. 외가에는 책이 많이 있었고 그 책을 많이 빌려 보았기 때문이다. 공자도 술이부작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이는 저술한 것이지 창작한 것이 아니라는 말로 저술에 대한 겸양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정약용이 외가가 있는 해남에 가까운 곳으로 유배를 간 것은 어떻게 보면 행운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이란 무엇이라는 질문에 대해 논어 521장 중 인에 관한 장이 58개며 108자가 나온다고 한다. 그럼에도 인을 밝히기는 어렵다고 한다. 공자는 평소에 그처럼 많은 인을 이야기했지만 결코 인의 본질에 대해서는 설한 적이 없고 다만 인의 실천 방안만을 설명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정약용은 인이란 남에 대한 사랑이라고 한다.
18년이란 유배생활을 보내면서 참고 지내는 주인공의 인내심도 대단하다. 그런 어려움 가운데서도 많은 책을 읽고 썼다는 점은 더욱 빛나는 점이다. 사람이 어려우면 쉽게 포기하기가 쉬운데 중앙에서 임금의 사랑을 받던 그가 하루아침에 유배의 길을 떠나 살면서도 나름대로 인생에 최선을 다하여 많은 걸작을 남겨 준데 대해 깊이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주)이 리뷰는 1,2,3,4,5권 전체에 관한 내용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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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과 형 약전은 형제이면서도 서로를 존경하며 학문을 공유하고 깊은 정을 나눈 형제이자 학문의 동반자이자 보호자이기도 했다. 약전은 흑산도에서 자산어보를 써서 유명한 사람이다. 자산은 현재의 흑산도이며 그곳에 귀양가 머무르면서 어류 백과라 할 수 있는 자산어보를 집필한 것이다. 자산은 흑산도에 머무르면서도 백성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바다를 사이에 놓고 약용과 약전은 편지를 교류하며 약전은 약용의 책들을 감수해 주었다. 귀양이 해배(귀양이 풀림) 될 것이라는 풍문이 들리자 약용은 약전에게 편지를 써 해배되는대로 형님을 찾아가겠다 굳은 약속을 하지만 결국 해배되지는 않고 약전은 흑산도에서 쓸쓸히 숨을 거두고야 만다.
약용은 다산에서 방대한 집필을 하고 후학을 가르쳐 더욱 큰 명망을 얻게 된다. 그리고 목민관의 자세를 이른 책 명저 목민심서와 형법을 다룬 책 흠흠신서를 완성한 것이다.
결국 약용의 귀양은 해배되고 약용은 꿈에도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생을 마친다. 큰 학자 정약용이 진 것이다.
약용은 죽음을 앞두고 묘지(풍수)에 대한 사람들의 애착을 비웃듯, 당대의 실학자답게 묏자리로 고민하지 마라 이른다. "지사에게 내 묘지를 물어보지 마라"한 것이다.
약용의 사후 74년후 순종대왕은 약용의 업적을 인정하고 문도공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