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인은 삼국사와 고려사를 좋아하지만 조선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게다가 그나마 좋아한다는 삼국사나 고려사에 있어서도 제대로 된 지식은 없이 우스울 정도로 얕은 정보와 사견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관심이 있는 분야라도 그러하니, 조선시대에 대해서 얼마나 무지하며 얼마나 무관심했는지는 굳이 이러한 책을 읽지 않아도 자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문제는 고치지 않았던 점일 것이다. 흔히 쓰는 말의 제대로 된 뜻을 알지 못하고 대충 대충 쓰는 실상과 비슷한 것일까, 실제로 상스럽게 쓰는 욕의 어원과 그 본래의 뜻을 알고 쓰는 사람이 극히 드물 것이라는 얘기에 동감이 가듯, 우리들 사이에 그렇게도 흔하게 퍼져있고, 또한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는 이 양반이라는 말이 어떠한 의미였는지 이와 같은 책을 읽기 전에는 본인을 포함한 다수의 사람들이 있었을 거라고 추측해도 좋지 않을까. 익숙하지만 그 익숙한 만큼 그것을 본질적으로 아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정확하게 규정지어진 것이 아닌 그나마 억지로 가지를 쳐서 줄여낸 이러한 기준을 아는 것이 오늘에서야 가능할 줄이야, 역사에 대한 무지라기보다는 무관심의 위력이 어떠한 것인지 새삼 알게 되었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의 구별에 따른 양반과 비양반의 기준은 주관적이며 상대적인 것이었지만, 그것은 쉽게 단정 짓기 어려울 정도로 넓은 사회적인 인식 속에서 나름대로의 역사적인 맥락을 가지고 지워진 것이다. 하지만 양반과 비양반의 기준을 정했다고 해서 양반이 어떤 것인지 알기란 쉽지 않다. 책에서는 우리의 생활 구석구석까지 침투한 유교의 흔적과, 농업사라든가 양반들의 족보나 일기와 같은 고문헌들을 사례로 들어가며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외국인, 일본인의 입장에서 바라본 한국의 역사라는 것은 분명 우리들 스스로가 알고 있고,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다소 다르지만, 본인은 딱히 어느 쪽이 맞다고도 틀리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다를 뿐이고, 그 다른 관점들은 어딘가에서 서로 통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어려운 예시들은 적당히 생략을 해 가면서 그럭저럭 편하게 읽을 수 있었다. 한국은 확실히 유교 중심의 사회다. 정확히는 조선 초/중기 이후부터는 확실히 유교중심의 사회가 되었다고 해야 맞는 말일 것이다. 신분을 나누고 그것에 대해 어떠한 계층에는 특권을 주고, 어떠한 계층은 소위 인간 이하의 노예와 같은 취급을 받는 것은 그 이전에도 있었지만, 사농공상의 구분이라거나 문관과 무관에 있어서의 가치에 차이를 두는 것, 관직과 가문의 위업에 따라 족보를 만드는 것, 남녀의 불평등적인 요소는 유교문화 덕분에 생겨난 것이다. 유교가 지배하는 조선은 분명 우리의 전통사회이지만, 우리의 전통사회가 유교가 지배하는 조선사회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호주제 폐지와 전통성 파괴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일까. 본인이 신분제도에 있어서 특별히 주목한 것은 양반과 비양반이라기보다는 양반과 노비의 관계였다. 고대에도 중세에도, 주인이 종을 부리고, 그 종을 거의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았듯, 양반도 노비를 사고 팔거나 죽음에 이르지 않을 정도로만 체벌하는 것은 가능했고, 어떠한 법적인 제제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천부인권과 인간평등이 상식과도 같이 자리한 지금으로서는 그러한 것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이지만, 당시의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본인은 노비의 인권을 운운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재미있는 것이 노비는 종모(從母), 즉, 어머니의 혈통을 잇는다는 것이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 조금 생각해 보았다. 부계 혈통을 당연시하는 유교적 사회에서 노비만이 유독 모계혈통을 따졌던 것은 어째서일까. 그야 태어난 자식도 노비가 되면 주인의 입장에서는 좋은 것이 당연하다. 그렇지만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가 노비였을 때 태어난 자식이 어머니의 혈통을 따른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어떻게 생각하면 모성애의 승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고, 양반의 입장에서 본다면 노동력은 남자 노비가 보충하니 여자 노비에게는 자식을 낳는, 즉 더 많은 자식을 낳아 노비를 늘리는 정도의 필요성이라도 있어야 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리고 또 한가지, 재미있었던 것은, 임진왜란 이후 양반이 쇠퇴한 것이 아닌, 중산층이 양반의 신분을 얻게 되면서 오히려 양반의 입지가 강화되었다는 점을 들은 것이다. 본인에게는 그것이 꽤 신선했다. 상위계층, 특권계층의 규모가 작으면 그 힘이 약해지고 영향력을 잃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너무 비대해지면 특권계층으로서의 이득을 많이 소실하는 것도 사실이다. 전쟁 후 양반의 수가 비대해지면서 양반계층은 과연 몰락한 것이었는가, 아니면 그간 부족했던 영향력을 좀 더 강화하고 기반을 다질 수 있는 긍정적인 조건을 마련해 주었는가. 본인이 중, 고등학교 시절에 배운 것으로는 나라에 부족한 예산을 충당하기 위해 일정한 액수를 내면 관직을 주는 것이라든가, 꼭 나라에서 주관하는 공공적인 것이 아니고서도, 일반적으로도 양반이 자신의 신분을 돈을 받고 파는 것을 어느 정도 묵인했다는 점을 부정적인 요소로 보면서, 그것을 양반이라는 특권계층이 몰락해가는 과정이라고 교과서는 설명하고 있었다. 교과서의 왜곡이라거나 편협한 치우친 시각에 대한 자각은 몇 번이나 했었지만, 그것을 부정한다고 하더라도 과연 어떻게 볼 수 있을지 꽤 고민했었는데, 고전적인 교과서를 거치지 않은 외국 학자의 객관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이렇게 간단히 바뀔 수도 있는 거였구나 - 라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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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학자가 쓴 조선시대 개설서. 일본인 학자라고는 하지만 필자는 이미 국내 강단에서 강의를 한지 10년이 되어가고 현재는 성균관대에서 강의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개설서라고 하기엔 소재와 시대가 한정되있지만 조선시대를 이해하는 중요한 코드가 양반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이 책이 쉽게 쉽게 읽힌다는 점에서 개설서라고 해도 무난할 듯 하다.
부제에서도 드러나듯이 대한민국 사람이면 '양반'을 모를리 없지만 그 개념에 대해서는 거의 무지하거나 모호하게 알고 있는 것이 대부분. 그만큼 양반의 실체는 그리 명확한 것이 아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라는 홍길동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양반은 태생적인 면에서 영향을 크게 받기도 하지만 사회 구성원들이 '인정'하는 관습적인 면도 크게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주로 16~18세기, 그 중에서도 18세기 양반의 형성에 주목을 하고 있다. 필자의 견해에 따르면 양반가라는 동족집단은 생물학적인 집단이라기 보다는 사회적 집단이며 그 집단이 다른 권위 있는 집단들과 혼인으로 연결되어 범위를 확장하면서 그 세를 자랑했던 전기와는 달리 후기로 갈 수록 동족집단이 폐쇄적으로 변화했다라는 것인데 그 변화의 중요한 코드가 '경제력의 약화'라는 것이다. 기존 연구(물론 이 책이 96년에 나온 책임을 감안하고)에서 주자학의 영향으로 폐쇄화가 되어갔다고 해석하는 것과는 달리 '경제력'을 중요 요소로 꼽고 있는 것이다. 그 영향으로 족보의 형태가 변화하였고, 상속제의 구조도 변화했으며 문중조직도 강화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주목해야할 부분은 조선 후기 신분상승 시도에 대한 해석이다.
이상에서 보아왔듯이 재지양반층과 출신 모체가 같은 향리층은 자신들의 지위를 향상시키기 위해 양반 신분에 참여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 여러가지 활동을 펴왔다. 이러한 움직임은 한편으로는 재지 양반층의 지방 지배 체제에 도전하는 것이었으나, 다른 편에서는 재지양반적인 사고 방식, 생활 방식이 향리층에게까지 침투해간 것을 의미한다. 향손 유업자의 증가나 향리 가문의 족보 입록 등은 그 단적인 모습이었다. 그러므로 향리층의 대두가 곧 양반 지배 체제의 동요를 의미했다고 간단히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지배층의 사고 양식, 생활 방식이 하위 계층까지 침투함으로써 지배 체제가 오히려 안정화된 면도 있었음을 놓쳐서는 안된다.
결국 향리층의 족보 입록 등의 움직임이 기존 질서로의 '모범적인 편입'이었던 만큼 그것이 사회질서를 뒤흔드는 개혁적인 성격을 가진 사회 동요가 되기는 힘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탁월한 견해에도 몇가지 드는 의문점이 있다. 그 중에 한가지만 언급하자면, 필자의 말대로 폐쇄적이 되어가던 양반동족이 향리를 비롯한 타 계층의 족보내 진입을 묵과했다는 것은 모순이 아닐까? 경제력을 가진 계층이 가문으로 편입되는 것이 결국엔 이익이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어쨌거나 쉽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몇가지 중요한 문제를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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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한국 사회에 있어서 양반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일반적으로 양반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인식이 존재하는 것 같다. 조선시대의 수구보수 세력으로 농민들의 희생을 통해 안락한 삶을 영위했다는 계급적 인식과 양반들의 선비 사상과 학문적 기풍을 강조하는 전통주의적 인식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 우리는 더 이상 갓을 쓰지도 않고, 학교에서 유교 경전을 읽지도 않는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 답하기 위해, 우리는 양반에 대한 도덕적 평가나 이상화보다는, 양반이 존재했던 사회, 문화적 조건들을 통해 그 역사적 실체를 파악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아마 아직까지도 남아있는 양반 문화의 영향은 제사일 것이다. 현대에는 제사를 안 지내는 집이 거의 없을 정도로 양반 문화는 일반 대중에게까지 파급되었다. 미야지마 히로시는 유교문화가 기층으로 전해지는 데에 있어서 재지(在地)양반, 또는 향반(鄕班)의 역할을 강조한다. 재경(在京)양반이 고위 관직을 차지하며 서울에 자리를 잡았다면, 재지양반은 지방에 농지를 개간하여 경제적 기반을 넓히고 향약과 서원을 통해 지방 사회에 대한 영향력을 확대시켜 나갔다. 미야지마는, 18세기 이후의 사회 변동 과정에서, 사회 전체의 양반 지향화, 즉 양반적 가치관, 생활 이념의 하층 침투를 핵심적인 것으로 결론짓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19세기에 들어와 본격화되었는데, 사회의 유동성이 증가한 근대에 들어와 사회 전체의 양반 지향은 한층 더 가속화된 것으로 보인다.
다시 현대의 한국 사회를 돌이켜보자. 우리에게 있어서 양반 문화는 단지 집안 문갑 속에 있는 족보나 명절 때 지내는 제사처럼, 새로운 의미를 갖지 않는 과거의 잔재로만 남아 있는 것일까? 우리는 근대식 교육을 통해, 양반에 대해 무엇을 비판해야 하고 무엇을 전통으로 계승해야 할 지를 분별하도록 배워왔다. 하지만 양반을 통해 보급되었다는 유교 문화는 현대 사회에서 여전히 새롭게 재구성되고 있으며, 한국인의 정체성을 설정하는 데에 중요한 문제로 남아있다. 어떤 이는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고 말하고, 또 어떤 이는 '공자가 살아야 나라가 산다'고 주장한다. 최근에는 서구 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자성적 대안으로 '아시아적 가치', 혹은 '유교적 가치'가 강조되고 있으며, 이러한 현상은 서구적 근대화를 추진해온 한국 사회에게 새로운 논쟁점을 던져주기도 한다. 양반을 통해 보급된 유교 문화는 여전히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고민하는 데에 중요한 고민 거리로 남아 있다. [인상깊은구절] 일본은 유학은 받아들였지만 유교는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다...베트남의 유교 수용도 일본과 비슷한 점이 많아서 일상 생활에서는 불교의 영향이 지배적이다. 이와 반대로 한국은 유교의 가르침이 일상 생활 구석구석에까지 깊숙이 침투하여 오늘날까지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 |
| 이 책은 주로 고문서(古文書)를 토대로 조선 초기 재지양반(在地兩班)의 형성 과정과 이들의 경제적 기반의 변화를 통해 조선 향촌사회의 모습을 살펴본 연구서이다. 저자에 따르면, 재지양반층의 경제적 기반은 토지 소유에 바탕한 농업 경영과 소유물의 교환 등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이들은 혼인과 사제(師弟) 관계를 통해 입지를 더욱 공고히 하고, 서원(書院)의 설립으로 결집을 도모하였다. 한편으로는 지방 통치의 일익을 담당하여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조선 중기 이후 재지양반층의 경제적 토대가 약화됨에 따라, 남녀와 차례를 구분하지 않던 상속제도가 변화되고 종가(宗家) 중심주의가 강화되는 경향을 나타내며, 이들의 결속 의식은 더욱 공고해진다. 광범위한 재지양반층의 형성은 양반적 가치관과 이념이 하층으로 침투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되고 동시에 일반민의 양반 사회로의 지향이 강해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조선 후기 사회의 변화, 곧 상속제도와 종가 중심주의 등이 경제력 저하의 산물이며, 주자학의 종법주의는 이를 선도했다기 보다 뒷받침한 것이라고 추측하였다. 저자는 서문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사회에 유교적 전통이 강한 이유를 밝히고자 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의식에 비해 경제적 요소에 대한 고찰에 너무 많은 비중이 할애된 것이 아닌가 한다. 유교적 전통 - 양반 지향성이 근대를 거치면서 더욱 강화되고 일반민의 양반 지향도 뚜렷해진다는 것이 저자의 입장인데, 조선 후기에 나타나는 일반민의 양반 지향은 이러한 전통적 의식의 강화에 따른 것이라기 보다는 양반의 특권을 소유하고자 한 신분 상승 의지라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한다. 일본인 학자 특유의 꼼꼼한 논리 전개가 돋보이는 저서로, 타자(他者)로서 바라본 한국의 전통사회가 우리의 시각과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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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책을 읽기 전 내가 가진 선입관은 이랬다. 양반이라는 제목과 일본인 미야지마 히로시라는 지은이는 어울릴 수가 없었고 -아마도 그가 일본인이었기에 더더욱 그런 반감을 가지지 않았었나 생각이 든다.
이제껏 일본인이 우리에 관해 쓴 책 들이 그러했기에.... 또한 책의 제목과 같은 그 주제만으로도 충분히 고리타분하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책의 서두부터 나는 일본인의 눈으로 본 색다른 우리 사회, 문화를 쉽고 재미있는 소설처럼 접할 수 있었다.
충분한 예시와 스토리 전개가 있는 내용, 자신의 지식을 뒷받침 하는 여러 문서들의 예증들은 준비과정이 나름대로 신중했음을 보여주기에 다른 나라의 사람이, 특히 일본인이, 우리의 오랜 역사와 우리 사회 문화를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불만스러운 점은 없다.
아니 어쩌면 그가 비록 역사 전문가이긴 하지만 우리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그보다 알지 못한다는 점에선 배울 점이 많아 부끄럽다고 해야 할까...
지은이는 이 책의 목적으로 조선시대의 유교 침투 과정을 보여주며 그 속에서 형성 되어온 유교적 전통을 고찰하는 데 있다고 했다. 왜 한국에서 유교를 일본과 베트남보다 더 깊이 수용하였는가를 해명하는 것과 관련이 도며 그것은 바꾸어 말하면 한국의 전통 사회의 특징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책을 읽어 가면 갈수록 처음의 흥미보다는 학회의 보고서라는 느낌이 들어 사실 조금 지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본인이 한국에 거주하면서 쓴 우리나라의 양반.. 서양의 귀족이나 일본의 무사계층과는 다른 여러 의미를 지은이는 이야기 하려 했다. 물론 지은이의 7개월간의 거주로 몇백년동안 몸에 베어온 양반의 유교적 생활들을 완벽하게 서술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
나 역시도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것일까 하는 의문을 가진 부분이 많기 때문이다. 특히나 우리가 몸으로만 알고 있는 아주 익숙한 양반이라는 단어에 대해 일본인은 사전적 분석에서부터 신분적인 부분 나아가서는 조선사회 전반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인상깊은구절] 이상 이 책에서 서술해온 한국의 전통적인 것이 오늘날 크게 변용을 겪게 되었음은 명확하다. 자본주의 경제의 고도화와 도시화가 급속히 진전되는 한국에서는 특히 그러하다. 현재 전통적인 것은 점차 큰 기로에 서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한국이나 북한 사람들이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 나가는 데 어떠한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갈 것인지 똑같은 과제를 안고 있는 우리 일본인도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