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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성철스님(큰스님)을 가까이서 모신 원택스님이 정리한 것이다. 이미 2001년에 출간된 《성철스님 시봉 이야기》1, 2권을 작년(2012) 큰스님 탄신 100주년을 맞아 재간되었다.
원택스님은 큰스님을 모시면서 겪은 애환 외에도 행자로서 받은 첫 소임, 부엌일, 공양주, 나무울력 등에 대해서도 소상히 들려준다.
1. 우리 시대의 부처, 열반에 들다 큰스님은 1936년 3월 출가하여 1993년 11월 3일 입적하시니 이 때가 법랍 58세, 세수 82세였다. 7일장을 마친 10일 다비식이 있었다. 식이 끝난 후 100여 과의 사리가 나왔다고 한다.
성철스님의 열반송은 다음과 같았다. 일생 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 채로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 갈래나 되는데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사실 나는 득도하면 모든 것에 여유로와지는 줄 알았다. 하지만 성철스님은 별명 '가야산 호랑이'에서 보듯이 성격이 급하고 격했다. 큰스님이 찾는다 하면 숟가락을 입에 넣었더라도 그 밥을 다시 뱉어놓고 얼른 달려가야했다. "성철스님은 아주 성한 살에 상처를 내 소금을 뿌리는 격"이었다고 한다.
"야, 이 곰 새끼야." "밥 도둑놈, 밥값 내놔라." 성철스님은 화가 나면 벼락같은 목소리로 '새끼'니 '놈'이니 하는 말을 예사로 했다. 물론 모두가 수행이 부족한 스님들을 일깨우는 사자후다. 그렇지만 출가 후 20년간 스님을 모신 상좌 생활은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
2. 성철 스님과 나, 원택 화두란 선을 수행하는 스승과 제자 사이에 주고받는 문답 가운데 하나를 말한다. 흔히 스승이 제자에게 참선 공부거리로 던지는 '문제'가 화두다. 선불교 전통에선 1,000여 년간 큰스님들이 전진 대표적 질문들을 모아 공안이라고 통칭한다. 공안이 곧 화두인 셈인데, 대표적인 것이 1,700가지다. '이 뭐꼬?'나 '무(無)'가 우리나라 선승들이 가장 많이 붙잡는 화두다. 원택스님이 성철스님에게서 받은 화두는 '삼서근[麻三斤]'이었다.
이렇게 화두를 정해 수행하는 것을 흔히 '화두를 든다' 또는 한자어로 '참구參究(참선하며 연구한다)'라고 한다. 큰스님이 입버릇처럼 물었던 "화두는 잘되나"라는 질문은 곧 참선 수행의 진전이 있느냐는 뜻이다.
하지만 참선의 첫 단계에서 지난 시절의 기억들이 영화 필름처럼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 집중이 되지 않는다. 불가에서는 이를 '산란심'이라고 한다. 또한 "화두는 잘되나"라는 질문을 자주 받게 되면 그러면 그럴수록 머리가 슬슬 아파오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상기병이라고 한다. 게다가 참선한다고 좌복 위에만 앉으면 무조건 조는 '수마'가 오기도 한다. 다 이기고 나면 마지막으로 나타나는 것이 '무기병'이다.
"무기병에 떨어지면 헤어나기 힘들데이. 너그도 조심해야 된다. 화두는 들리지 않지만 마음이 전과 비교하여 그렇게 편할 수가 없고, 그래서 자기는 깨쳤다는 착각에 빠지거든. 착각하고 나면 거기서 벗어나기가 정말 어렵지."(153쪽)
이 단계에서 더 정진하면 '일여(一如)' 단계에 이른다. '일여' 단계도 여러가지가 있다. 하루 중 바쁘고 바쁠 때에도 화두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경지를 '동정일여(動靜一如)'라고 하고, 깨어 있을 때는 물론 꿈속에서도 화두가 밝고 밝아 항시 한결같은 경지를 '몽중일여(夢中一如)', 잠이 아주 깊이 들어서도 화두가 밝으면 '숙면일여(熟眠一如)'가 된다.
3부 영원한 대자연인, 성철스님 여기서는 성철스님이 출가 전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지리산 자락 인근에선 제법 큰 부잣집 맏아들이었던 그는《증도가證道歌》와《서장書狀》을 보고 지금까지 세속의 학문을 통해 접했던 진리와는 전혀 다른 정신 세계가 존재함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한다.
큰스님은 1936년 3월 동산스님의 권유로 출가하였다. 동산스님은 3·1 독립선언에 서명한 민족지도자 33인에 포함된 용성스님의 제자. 이렇게 해서 용성-동산-성철로 이어지는 선불교의 맥이 완성된 것이다.
성철스님은 출가할 때 당시 심경을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하늘 넘친 큰 일들은 붉은 화롯불에 한 점의 눈송이요 바다를 덮는 큰 기틀이라도 밝은 햇볕에 한 방울 이슬일세. 그 누가 잠깐의 꿈속에 꿈을 꾸며 살다가 죽어가랴 만고의 진리를 향해 초연히 나 홀로 걸어가노라.
한편 성철스님은 이후《불교》라는 잡지를 보면서 화두를 선택했다. 바로 '무자화두(無字話頭)', 선종 발달사에서 가장 유명한 화두라고 한다.
'무'라는 화두의 유래는 이렇다. 중국 당나라 시절 어떤 스님이 조주스님(778~897)에게 물었다. "개에게는 불성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중국 선불교 전통에 큰 획을 그은 조주스님이 대답했다.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구자무불성拘子無佛性(개에게는 불성이 없다)'이라는 화두다. 이 말이 왜 화두가 되는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위로는 과거의 여러 부처님으로부터, 아래로는 저 미물에 이르기까지 일체 중생에게 모두 불성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조주스님은 개에게 불성이 없다고 했다.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바로 그 모순에 대한 의문, 의심이 참선의 출발이다. 성철스님은 이에 대해 "개에게도 불성이 있느냐고 물었는데 어째서 없다고 했는고? 이를 의심하고 의심해가는 것이 무자화두의 참구고, 참선 정진"이라고 설명했다(180~181쪽).
마침내 큰스님은 억겁의 어둠에 싸인 동굴에 촛불을 밝히듯, 일시에 어둠을 몰아내고 무심을 증득하여 오도송을 읊게 된다. 황하수 곤륜산 정상으로 거꾸로 흐르니
해와 달은 빛을 잃고 땅은 꺼지는도다. 문득 한 번 웃고 머리를 돌려 서니 청산은 예대로 흰 구름 속에 섰네.
"시주물은 독화살인 듯 피하고, 부귀와 영화는 원수 보듯 경계하여라." 큰스님은 시주를 마다한 것은 물론, 부처님 법대로만 살아보자고 의기투합한 봉암사 결사 때에도 절에 시주가 들어올만한 행사를 일절 벌이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성철스님은 검소하게 사셨다. 밥상만 해도 쑥갓 대여섯 줄기, 2~3밀리미터 두께로 썬 당근 다섯 조각, 검은콩 자반 한 숟가락 반이 전부다. 감자와 당근을 채 썰어 끓이는 국과 어린아이 밥공기만 한 그릇에 담은 밥이 큰스님 한 끼 공양이다. 아침 공양은 밥 대신 흰죽 반그릇으로 대신했다. 덧신도 손수 기워 신으셨다.
가야산 호랑이라고 불리던 성철스님도 아이들을 좋아하여 언제나 짓궂은 장난으로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주셨다.
큰스님은 장서가이자 독서광이었다. 하지만 그는 평생 참선에 전념해 온 성츨스님이 참선 수행과 관련해 강조하는 확고한 원칙 중에 글을 읽지 말라는 것이었다. 책을 보는 것이 오히려 참석 수행에 방해가 된다는 뜻이리라. 하지만 그는 장경각이라는 서재에 불교서적을 무려 6,000권이나 소장하고 있었다.
4. 우리 곁에 왔던 부처 4부는 성철스님의 도반(함께 출가한 스님)에 대한 소개, 10·27 법난(1980) 그리고 조계종 제7대 종정 취임(1981)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10·27 법난은 25개 본사를 비롯한 규모 있는 사찰에 군병력이 들이닥쳐 일대 수색에 들어가 주지 이하 소임자들을 무조건 연행해 간 사건을 말한다. 5공 정권 출범 초기에 벌어진 일로 불교계에 잊을 수없는 깊은 상처를 안겨주었다고 한다.
스님은 1981년 1월 조계종의 최고 지도자인 종정에 추대되었다. 종정 취임후 맞이한 부처님 오신날에 큰스님이 내린 법어는 다음과 같았다. 모든 생명을 부처님과 같이 존경합시다. 만법의 참모습은 둥근 햇빛보다 더 밝고 푸른 허공보다 더 깨끗하여 항상 때묻지 않습니다. 악하다 천하다함은 겉보기뿐, 그 참모습은 거룩한 부처님과 추호도 다름이 없어서 일체가 장엄하며 일체가 숭고합니다.
나는 이 책을 통해서 성철스님의 법력에 대해서도 잘 알 수 있었지만, 불교와 불경에 대한 지식도 많이 얻을 수 있었다. 가령 육조단경은 '육조 혜능'이 남긴 것인데 원래 '경'이란 부처님의 말씀이란 뜻인데,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면서 경이라 불리는 것은《육조단경》뿐이라고 한다. 육조는 여섯 번째 조상이란 뜻의 '육조'로, 중국 선불교의 문을 연 달마대사를 첫 번째 조상으로 따졌을 때 그 법통을 이은 여섯 번째 스님이 혜능대사(638~713)였다.
성철스님은 육조대사의 가르침을 매우 중시했는데, 이는 큰스님의 돈오돈수 사상이 육조대사의 가르침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원택스님은 성철스님이 입적하시기 불과 한달 반여를 앞둔 1993년 9월 21일 큰스님의 사상을 총정리하는《성철스님 법어집》11권과《선림고경총서》37권 출판 작업을 착수한 지 10년 만에 마무리지었다. 대단한 분이 아닐 수 없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대목은 원택스님이 배추 울력을 잘못했을때 큰스님이 호통쳤던 부분이다.
"니 해논 거 하고, 이거 하고 한번 비교해봐라. 뭐가 틀리는지. 세상에 이런 멍청이가 어디 있나? 우리 집에 앞으로 도인 났다 하면 이 멍청이 원택이가 될 끼다. 우째 이래 모르노!"(122쪽)
결국 이 호통도 애정이 잔뜩 깃든 것이 아닐 수 없다. '도인'이 된다고 칭찬(?)하지 않았는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