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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현대사에서 사상가 부버와 정치가 벤구리온이 유명하다. 둘 모두 시오니즘 운동에 적극 투신한 인물들인데 그 노선이 사뭇 다르다. 부버는 이스라엘과 아랍의 평화를 추구했고 문화적 시오니즘을 내세워 헤르츨에서 벤구리온에 이르는 정치적 시오니즘을 비판했다. 부버에게 유토피아는 유대인과 아랍인이 공존하는 팔레스타인이었다. 하지만 시오니즘 운동의 결말은 부버의 이상적인 구상과는 엇갈렸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이스라엘의 재건을 위한 유토피아적 노력은 팔레스타인 땅에 디스토피아적 현실을 불렀다. 지금 팔레스타인은 폭도의 땅, 분쟁의 땅이 되어버렸다. 아랍인도 유대인도 모두 광기어린 폭도가 되었다.
이런 참극을 불러온 대표적인 정치적 시오니즘의 대표가 이스라엘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우는 벤구리온이다. 벤구리온은 1949년 3월 이스라엘 임시정부의 초대 수상이 되는데 국가 숭배와 현실주의 정치를 표방하여 팔레스타인인을 억압하고 배제한다. 반면에 부버는 정치 과잉에 의한 대립에 반대한다. 부버는 유대와 아랍의 갈등을 정치 과잉에 의한 대립으로 간주하고, 악은 정치 그 자체와는 동거할 수 없지만 정치의 과잉과는 동거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스라엘 출신의 옥스퍼드 대학 교수 아비 슐라임은 《철벽:이스라엘과 아랍세계》(2000)에서 이스라엘이 집단적 정신이상에 걸린 철벽의 나라로 혹평하고, 그렇게 만든 시오니스트 지도자들을 무자비한 인물들로 묘사했다. 또한 시오니즘을 유럽 식민지주의의 하나이며, 역사적·국민적 날조와 종교적 자기기만 위에 선 허위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했다.
부버는 사회주의자였다. 일반적으로 사회주의는 유토피아 사회주의와 과학적 사회주의로 구분되는데 부버는 아나키즘에 가까운 '대화 유토피아 사회주의자'로 평할 수 있다. 부버는 종래의 유토피아 사회주의를 인간 본성에 대한 추상적인 이론에 사로잡혀 절대적 정당성을 지닌 사회질서를 꿈꾸는 도식적인 허구로 간주했다. 반면에 부버는 '작은 사회주의'를 제시하는데 이는 지역을 연방으로 묶는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우호관계와 사회적 자발성을 강조하는 사회주의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키부츠 운동이고, 이에 대한 부버의 공헌은 지대하다. 부버는 작은 사회주의에서는 각자 선택한 동료와 인간적으로 접할 수 있고, 명상과 사색의 시간이 가능하도록 동료와 거리를 둘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부버는 신조에 기반한 헬레니즘 신앙과 신뢰에 기반한 유대적 신앙을 구별하고, 이에 각각 그리스적 바울과 유대적 예수를 대응시킨다. 부버는 예수를 구약의 정신을 계승한 랍비로 보고, 예수의 제자들 특히 사도 바울이 예수를 곡해했다고 비판한다. 바울이 예수를 신격화하여 신과의 직접 만남이라는 신앙을 단절시켰고 개인의 구원과 해방을 추구하면서 정신과 육체의 이원론을 내세웠다고 비판한다. 성서는 원래 신과 인간의 신뢰관계에서 쓰여졌고, 그 책은 신과 인간의 대화의 이야기다. 그러나 바울과 요한에 의해 헬레니즘과 그노시스적인 종말론이 스며들어 성서의 신-인간의 계약적 신뢰관계가 수탁관계로 변질되었다고 설명한다. 마태, 마가, 누가의 복음서는 구약과 함께 히브리 신앙인 에무나(emuna)에 속하고, 반면에 바울과 요한의 신앙은 헬레니즘의 피스티스(pistis)에 속한다고 구별한다. 에무나는 예언자, 예수, 하시디즘에 속하고, 피스티스는 묵시록, 바울, 천주교에 속한다.
부버는 '신은 죽었다'라는 서구의 무신론적 경향을 대표하는 하이데거, 사르트르, 융을 '신의 일식' 이론에 기반해 비판하고 있다. '신의 일식'은 '신은 죽었다'와는 차이점이 있다. 일식이 태양과 지구 사이에 달이 개입하여 빛의 부분을 차단하듯이, 신과 인간 사이에도 어떤 개입물이 있어서 신의 모습이 보이지 않게 만든다는 논리다. 부버는 신의 일식이 신과 인간의 관계만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 인간과 사물의 관계도 단절시켰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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