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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총점 종이책
이뭣고! (이게 도무지 뭣하자는 소린지 모르겠고)
"이뭣고! (이게 도무지 뭣하자는 소린지 모르겠고)" 내용보기
이뭣꼬! 한국선문의 정통은 간화선(看話禪)이라지요. 그런데 화두(話頭)를 들고 의심을 끌어내어 자기 본래의 마음을 바로 보자는 이 참선공부법에 '이뭣고'가 자주 언급됩니다. '이뭣고'가 간화선의 화두인지 일반적인 참구로서의 화두인지 꼭 알아야할 필요는 없지만 근현대 많은 고승께서 이 화두로 의심을 들어내고 깨달음을 얻었다하니, 뜰앞의 잣나무(庭前栢樹子)나 한줌의 베옷(麻
"이뭣고! (이게 도무지 뭣하자는 소린지 모르겠고)" 내용보기

이뭣꼬! 한국선문의 정통은 간화선(看話禪)이라지요. 그런데 화두(話頭)를 들고 의심을 끌어내어 자기 본래의 마음을 바로 보자는 이 참선공부법에 '이뭣고'가 자주 언급됩니다. '이뭣고'가 간화선의 화두인지 일반적인 참구로서의 화두인지 꼭 알아야할 필요는 없지만 근현대 많은 고승께서 이 화두로 의심을 들어내고 깨달음을 얻었다하니, 뜰앞의 잣나무(庭前栢樹子)나 한줌의 베옷(麻三斤),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祖師西來意)만큼이나 유명한 화두임에 틀림없어 보입니다. 이뭣고! 경상도 발음으로 조금 쎄게 말하면 이뭣꼬!가 되지요. 경상도 언어의 특성 중 하나가 말의 의미를 여러 가지로 축약하여 쓴다는 겁니다. '이뭣고'를 요즘말로 풀어쓰면 '이것이 무엇인가(나는 누구인가)'라는 철학적 사색, 즉 깊은 사유와 통찰을 통해 깨달음을 얻어가는 화두가 되지만, 조금 격하게 말하면 '이거 뭣하는 짓거리인가'란 뜻도 있답니다. 불만의 항의이지요. 최근 몇몇 스님들이 보여준 일탈에 관한 어느 기사를 보니 '화두(話頭)대신 화투(花鬪)'를 들었다더군요. 그 못된 사이비들에게 한마디 하고픕니다. 이 뭣꼬!


오늘은 불기(佛滅紀元) 2556년 음력으로 사월 초파일 '부처님 오신 날' 입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평등, 그리고 인간에게 유한한 삶이 아닌 영원히 살 수 있는 길이 있음을 일깨워주신 부처님을 생각하며 불교관련 서적을 한 권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이 정말 '까칠'하네요. <이게 도무지 뭣하자는 소린지 모르겠고 : 한국 불교, 이것이 문제다>란 제목을 유심히 보면 이뭣고의 풍자 삼행시입니다. 지적 충만해 보이는 한 정치학 교수께서 불교공부를 한 2년 정도 해보니 현 한국불교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가 보이더라는 겁니다. 핵심은 불교적 가르침이 정비되어 있지않아 간결하지도 논리적이지도 않다는 거지요. 들어도 보아도 무슨 말이지 모르겠다는 법문과 경전에 대하여 학자답게 불교의 요체를 짚어가며 논리정연하게 의문점과 아쉬움을 꼼꼼하게 지적하고 있네요. 사실 불교에 꽤 애증을 가지고 있는 저로서는 저자의 비판적 주장에 많이 공감을 했습니다. 하지만 무조건 공감만 한게 아니라 약간 씁쓰레하게 웃기도 했답니다. 왜 그 있잖습니까!  유홍준 교수의 책 때문에 유명해진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 바로 교수가 알고 있는 만큼의 수준에서 쓴 책이란 생각이 들었거든요.


'초보자에게 불친절한 종교', '중생구제에 관심 없는 한국 불교'란 쓴 소리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인이 누가 있을까요? 아마 유력한 다른 종교를 향해 이런 멘트를 날린다면 몰매 당할 만큼 시끄럽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봅니다. 하지만 불교계는 아마 큰 불만을 내세우기 힘들 겁니다. 그만큼 근래에 자성해야 할 일이 많았고 내실보다는 외형에 치우친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입니다. 불교의 기초 원리를 간단명료하게 요약 설명한 책이 없다는 것, 그래서 역사가 100여년 밖에 안된 영어입문서보다 못하다는 비판에 접하면 그저 부끄러움이지요. 핵심기초 내용이 명료해야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말을 '원래 불교는 심오한 거야'라는 말로 대충 넘어가기엔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적어도 아이들에게 쉽게 이해시킬 수준의 확실한 입문서는 이번 기회에 정비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불현듯 소동파의 시가 떠오릅니다. 밤사이 들었던 팔만사천 게송을 다른 날 어떻게 사람들에게 보여주나(夜來八萬四千偈 他日如何擧似人)하는 내용이었지요. 그동안 불교계가 사부대중을 위해 보여준 노력이 적지 않다고 하겠지만 좀 더 짜임 있는 교육적 투자가 있어야 할 거라 저도 생각합니다. 지금의 불교는 상구보리(上求菩提)만 추구할 뿐 하화중생(下化衆生)은 무늬만 느껴지니까요. 


이런 공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은근하게 '지적 허영'의 언저리에 놓여있음을 느낍니다. 저자는 그렇지 않다고 항변할지 몰라도 몸에 배인 학자적 탐구심과 지적 오만(자신이 생각하는게 맞다는...)은 경전의 문장이나 자구에 얽매이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알다시피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입니다. 믿음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성찰의 끝을 보고자 하는 종교이니만큼 자신의 그릇만큼 느끼고 수용하게 되는 거지요. 저자가 재주 있음은 분명하지만 가슴으로 깨닫지 않고 머리로 이해하려하니 이런 책이 나오는 거지요. 부처님의 가르침을 개신교적 교육법과 대비시키니 답답하게 보이는 겁니다. 뭐 그런 면에선 적극적 전도로 교리를 전파해 나가는 기독교에 비해 그 교육 교재나 지원체제가 몇 수 떨어지는게 사실이지요. 단박에 깨달음에 들 수 없는 이상 그 인근까지 갈 수 있는 표준 매뉴얼이 있었으면 한다는 바램은 일견 당연한 주장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우주와 인생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에 대한 접근은 1+1=2 처럼 누구나 다 똑같은 무게로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게 아니기 때문이죠.


저자는 이론적 불교공부를 통하여 내가 지금 이 정도이니 너희들 지금까지 방식 별로다, 너희들 가진거 다 펼쳐놓아보라고 투정합니다. 지적유희도 이 정도 유려하면 확실히 예사롭지 않은 거지만 사실은 그냥 빙그레 웃을 정도 입니다. 우리가 학창시절 배움의 시간이 같아도 수용의 차이는 각기 다를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불교적 여백과 여유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하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자신이 가진 그릇 크기 딱 그만큼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담하고 느긋하게 담아 마음의 여유를 찾으면 되는게 불교라 생각합니다. 사성제(四聖諦)와 팔정도(八正道), 중도(中道)와 십이연기(十二緣起)를 모두 꿰어 찰 필요가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단 한가지의 가르침으로도 대오 각성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종교니까요. 어떻게 아느냐고요? 어렵게 고승을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불심 깊은 고향집 노모의 생활실천과 말씀에서 너무나 쉬운 삶의 진리(지혜를 넘어 선)를 배우니까요. 사찰 부설유치원에 다니는 아이의 충만함에서도 따스한 불심을 찾을 수 있는데 정작 이론적 접근을 한 배움이는 많은 갈증을 느끼나 봅니다. 자신의 잣대에 어느 정도 자신감 충만한 것은 좋으나 그 잣대가 모든 이들에게 표준이 아니라는걸 감히 말해 봅니다.


다시 이뭣꼬!로 돌아가 봅니다. 화두는 자신의 불성과 우주의 진리를 깨닫고 자비를 실천하게 하는 비밀문 열쇠와 같습니다. 저자의 경륜이나 사회적 지위로 볼 때 제가 뭐라고 하기 어렵습니다만, 저자는 이제 머리로 깨닫는 불교에서 한 단계 더 올라가 마음으로 느끼고 실천하는 세계로 방향을 틀어야할 시점에 와있다고 보입니다. '배워 깨달음'과 '쌓아 깨달음'은 충만할지라도 아직 '번개 깨달음'의 인연이 없었지 않나 싶습니다. 이 '번개 깨달음'은 흔히 큰스님들의 오도송(悟道頌)에서 그 진수를 느낍니다만 사실은 자신이 직접 체험해 보기 전에는 뭐라 하기 힘들겠지요. 염화시중의 미소(拈華微笑)는 분명 '이게 도무지 뭣하자는 소린지 모르겠고'보다는 몇 수 위의 깨달음이라 여겨집니다.
십우도(十牛圖, 尋牛圖)라고 자신의 본성을 찾아가는 선 수행의 과정을 소와 주인의 관계를 비유하여 설명한 그림이 있습니다. 관념에서 벗어나 본성에 이르는 과정을 10단계로 표현한 그림인데 이 책은 소를 본 (見牛) 즈음의 책이라 여겨집니다. 불교는 어렵게 접근할 수도 있고 쉽게 접근할 수도 있는 열린 종교입니다. 이 책의 취지와 의도가 또다른 화두이기도 하겠지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마음을 비우고 집착을 버리고 번뇌를 털고 자비를 베푸는 행복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자는 이 책의 결말에 매우 공감합니다. 불교의 이름으로 남을 박해하거나 침략하거나 전쟁을 일으킨 적이 없음을 다시 상기해 봅니다. 종교의 우월을 떠나 어찌됐든 불교가 가장 평화롭고 행복한 길을 중시하는 종교임에는 틀림없으니까요. 작금의 종교적 다툼은 신의 의지라기보다 인간의 욕심에 의한 곡해가 아닐까 살짝 생각해 봅니다. 부처님 오신 날, 이런 책이 우리들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증오와 분노를 털어낼 수 있는 작은 울림이 되길, 또한 한국불교가 좀 더 겸허하고 신심 깊은 대중불교로 거듭나는 디딤돌이 되길 염원하면서 두서없는 이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리뷰 총점 종이책
대중으로 파고들어야 뭔소린지 알아듣지요.
"대중으로 파고들어야 뭔소린지 알아듣지요." 내용보기
우연히 본 불교방송에서 성철스님이 나왔었다. 화질도 좋지 않고 전문 촬영기사의 손을 거치지 않은 듯 내내 흔들리는 화면이 계속 됐다. 성철스님은 절 경내와 계곡, 산을 돌아다니며 가르침을 쏟아 냈다. 흔히 알고 있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정도의 가르침이 아니라 나로서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어려운 단어와 어휘가 가득했다. 경상도 사투리에 성철스님의 말투
"대중으로 파고들어야 뭔소린지 알아듣지요." 내용보기

우연히 본 불교방송에서 성철스님이 나왔었다. 화질도 좋지 않고 전문 촬영기사의 손을 거치지 않은 듯 내내 흔들리는 화면이 계속 됐다. 성철스님은 절 경내와 계곡, 산을 돌아다니며 가르침을 쏟아 냈다. 흔히 알고 있는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정도의 가르침이 아니라 나로서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어려운 단어와 어휘가 가득했다. 경상도 사투리에 성철스님의 말투가 워낙 빨라 자막을 따라 읽으면서도 버거웠다.

일반인들에게 하는 가르침이 아니라 자신을 따르는 행려승들에게 하는 가르침 같았다. 기본적인 지식과 공부가 없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내용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 「이게 도무지 뭣하자는 소린지 모르겠고」의 저자 김영명씨도 여기에서 출발했다. 우연히 들른 절에서 금강경 강의를 신청하게 되고 그 강의를 들으면 들을수록 불교에 대해 더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더 애매모호해지고 불교에 대한 이해가 어려워 진 것이다.

 

 

“불교학자나 승려들이 쉬운 현대 한국어에 익숙지 않은 것도 큰 역할을 하는 것 같다.” (p.19)

“한국 불교는 한문에 갇혀서 발전을 못하고 있다.” (p.29)

“한국 불교가 대중이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지나치게 고답적이고 신비화된 데는 한문이 큰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p.32)

 

 

 

[한글문화연대] 대표를 맡고 있는 저자에게 불교 경전과 그것을 강해하는 스님들의 가르침은 한글의 발전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것이었다. 쉽게 풀이할 수 있는 한글이 존재함에도 이해하기 어렵고 현학적인 한문으로 가득한 것에 대해 비판한다. 오히려 영어로 번역된 책이 더 이해하기 쉽다고도 한다. 동양에서 태동한 종교인 불교의 경전이 불과 100여년의 역사밖에 안된 서구의 언어로 더 이해하기 쉽다는 것이 대단히 잘못된 것이라고도 한다.

공감이 가는 지적이었다. 그리고 불교 경전이라는 것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되었다.

 

대학 때 호기심으로 읽었던 김용옥 교수의 [금강경 강해]가 내가 본 유일한 불교 경전이었는데, 무수히 많다는 것에 적잖이 놀랐다.

저자는 많은 불교 경전이 더군다나 이해하기 어렵고 접근하기 어려운 한문 일색으로 되어 있으며 이것을 쉬운 한글로 풀어내지 않는 것은 불교가 대중 속으로 더 깊이 넓게 들어가지 못하는 가장 큰 한계라고 지적했다.

 

 

“체계적이고 간단명료하게 ‘불교는 이것이다’라고 정리해놓은 것을 찾기 어려웠다.” (p.15)

“언어뿐 아니라 모든 면에서 불교는 좀 더 대중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p.56)

 

 

거기에 더해 일반 불교 신자나 불교 입문자가 쉽게 찾아 읽을 수 있는 불교입문서가 없다는 것도 여러 번 지적한다.

혹 종단에서나 불교 학자 중 불교 입문서를 출간한다 해도 대게 어렵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또한 입문서임에도 상당히 어렵다고 한다.

 

 

“설명이라는 것들이 대부분 하나마나한 소리들의 반복이다. 자아가 왜 없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고, 그저 자아가 없다는 선언이 있을 뿐이다.” (p.153)

 

 

현학적이고 고답적인 질문과 대답의 반복은 불교를 하나의 신비한 동양사상이나 현세의 복을 빌기 위한 기복신앙 정도로 한계 지어버리는 결정적인 요인이라 지적한다.

앞서 얘기한 성철스님의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전 국민이 알고 있는 법문도 저자는 ‘그래서 뭐요?’ 라고 접근한다. 생각해 보니 저자의 지적도 옳은 듯하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인 것을 누구나 알고 있는데 큰 스님이었던 성철스님이 한 말이라 신비화된 것뿐이라고 한다.

하긴 가끔 절에 가보면 스님들이 하는 기도나 염불 같은 것들을 알아들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대승불교에서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신격화하는 경향이 있다. 깨달은 자, 뛰어난 자로 보는 데 만족하지 않고 신과 같은 존재로 부각하는 것이다.” (p.63)

 

 

한국불교는 대승불교인데 석가모니 부처님을 신격화하는 것에도 딴죽을 건다. 깨달음을 얻어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 대승불교의 가장 큰 목적인데, 깨달음을 얻은 자에 불과한 석가모니 부처를 신으로 모시고 경외하는 것이 불편하다는 것이다. 아울러 유일신 사상을 가진 기독교와 이슬람은 물론 동양사상의 거두인 공자와 노자를 대하는 학자나 종교인 일반인들도 적절한 비판과 견제 없이 ‘무조건 좋은 것~!’, ‘비판할 수 없는 것~!’이라 여기고 숭상하는 현상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다.

 

 

“불교의 두 가지 목표는 위로는 진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구제하는 것이다.” (p.217)

“대승불교는 개인의 수행도 중시하지만 중생구제의 자비를 더 중시한다.” (p.85)

 

 

대승불교는 중생구제의 자비를 더 중시함에도 한국불교는 대승불교의 적자라 자칭하면서도 중생의 구제는 물론 사회적 부정의에 대해서도 극도로 소극적이라 비판한다. 대승불교의 간판은 달고 있지만 소승불교의 모습인 개인적 수행과 깨달음, 그리고 자신과 자신의 가정의 복만을 비는 기복적 신앙으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커다란 사회문제에는 눈을 감고 있다가 템플 스테이 예산을 삭감했다고 벌겋게 들고 일어나고 조계종 총무원장을 일개 경찰관이 홀대했다고 흥분할 뿐이다.” (p.237)

“선불교를 중심으로 한 한국 불교에는 사회정의를 위해 싸울 정신적 바탕이 부족해 보인다. 깨달음만 강조하다가 깨닫지도 못하고 중생구제는 아예 뒷전인 한국 불교에 근본적인 개혁이 필요해 보인다.” (p.239)

 

 

절에 들어가 살고 시주를 엄청나게 많이 한 그 어떤 불교 신자보다 한국 불교를 제대로 간파한 사람이다. 하지만 무작정 비판만 하는 것이 아님은 이 책의 곳곳에서 풍겨나는 한국 불교에 대한 저자의 사랑과 애정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좀 더 대중적이고 좀 더 베푸는 제대로 된 한국 불교의 모습을 찾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큰 뉴스였던 스님들의 도박과 주기적으로 계속되는 조계종 내 파벌싸움 들은 그나마 ‘기독교보다는 낫다.’ 라고 생각했던 일반인들에게 ‘불교도 스님들도 똑같구먼!’ 이라는 실망만 안겨 줄 뿐이었다.

 

지난 달 갔었던 대구 동화사에는 높이30m의 거대한 통일약사대불이 있었고 그 뒤로 국제관광선체험관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시설이 잘 되어 있었다. 나오는 길에 공사연혁이 있어 잠시 들여다보니 통일약사대불과 선 체험관을 만드는데 200억 정도의 돈이 들었다고 했다.

그 날이 마침 주말이라 외국인들이 단체로 템플스테이를 하는 것인지 외국인도 굉장히 많았다.

좋은 절이고 팔공산이라는 좋은 산 속에 있어 꼭 교세확장을 위한 것이 아니라 포교와 홍보를 위해서 수백억의 돈을 들여 좋은 것을 만들고 템플스테이를 활성화 한다 변명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나도 저자의 말처럼 중생구제는 뒷전으로 내던진 채 껍데기만 대승불교인 한국 불교에는 반드시 근본적 개혁과 변화가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성직자들만이 향유하는 어려운 책이 아닌 일반 대중의 삶과 마음을 파고드는 가르침이 되도록 공유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제 배만 채우는 욕심을 버리고 대승불교의 가장 큰 가르침인 중생구제에 초점을 맞추어 베푸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한국 불교가 변할 수 있는 길이다.

 



l****h 2012.06.06. 신고 공감 6 댓글 9
리뷰 총점 종이책
거침 없고 논리적이며 권위에 얽매이지 않는 초보 불자의 고언
"거침 없고 논리적이며 권위에 얽매이지 않는 초보 불자의 고언" 내용보기
기독교에 미치지 못하지만 불교도 상당한 세속화의 단계에 접어든 듯 하다. 아니 교리, 보살행 등에서 모두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그들이 보이는 보살행의 미비는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교리면에서의 문제란 최근 들어 교리의 문제점이 집중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교리와 연관된 문제이지만 최근 조계종 승려가 연루된 도박과 성(性) 관련 추문은 불교라는 종교의 근본이 잘못된 것
"거침 없고 논리적이며 권위에 얽매이지 않는 초보 불자의 고언" 내용보기

기독교에 미치지 못하지만 불교도 상당한 세속화의 단계에 접어든 듯 하다. 아니 교리, 보살행 등에서 모두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그들이 보이는 보살행의 미비는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교리면에서의 문제란 최근 들어 교리의 문제점이 집중 부각되기 시작한 것이다. 교리와 연관된 문제이지만 최근 조계종 승려가 연루된 도박과 성(性) 관련 추문은 불교라는 종교의 근본이 잘못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최근의 도박 및 성 관련 추문을 예견이라도 한 듯한 ‘이게 도무지 뭣하자는 소린지 모르겠고’는 불교 교리에 이의 제기를 한 대표적인 저서이다. 물론 최근의 도박 및 성 관련 추문을 예견이라도 한 듯하다는 표현은 지나친 생각이다.

 

평범한 불자가 어떻게 그런 사태를 예견할 수 있었겠는가? 평범한 불자라 했지만 저자는 서울대 출신이다. 내 말은 서울대 출신이 뭐 그리 특별한가, 란 반문을 부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회 곳곳에서 제 역할을 다 하는 그들을 보면 그 특별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불교에 입문한 지 겨우 2년이 된 사람이다. 그런 저자가 한 말 중 심상치 않은 것은 문외한이 더 잘 핵심을 파악할 수 있다는 생각에 만용을 부렸다는 말이지만 내가 보기에 저자가 지닌 명석함과 논리정연함이 낯선 종교에 대한 빠른 파악을 가능하게 했고 그것이 불교 입문 2년만에 문제(?)의 책을 쓰게 된 동인(動因)이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나 역시 예컨대 무아(無我)와 윤회(輪回)의 양립 가능성(무아인데 윤회한다는 견해)을 이상하게 여기고 있는 사람이다.

 

저자와 달리 나는 정식으로 불교에 입문하지 않았지만 저자처럼 나름의 상식과 합리성을 갖춘 문제의식으로 기존의 불교 이론서에 접근하려는 와중에 많은 고민과 모색을 했다. 하지만 기존의 불교계가 말하는 교리에 대한 해명은 논리적으로 수용하기 어려웠다. 그런 해명을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불교란 철학 체계이되 모호하고 혼란스러운 교리를 가진 종교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신비하기까지 한 무아 윤회설을 논리로 해명하려는 시도 자체가 무리이겠지만 교리의 리(理)와 논리의 리(理)가 같은 한자를 쓴다는 사정을 고려하면 적절한 분별은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바로 이 무아를 변하지 않고 영원한 자기는 없다는 뜻이라 간단히 설명했다.(20 페이지)

 

나 역시 저자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 저자에 의하면 불교는 상당히 합리적인 종교이다.(31 페이지) 하지만 한국 불교는 창의성과 과학성과 표준성이 부족하다.(41 페이지) 또한 중국의 달마, 혜능 등의 선불교 선구자들의 말이나 행동들을 만고의 진리처럼 떠받들고 있다.(52 페이지) 그리고 신비화와 기복 신앙이라는 양 극단에 빠져 있다.(53 페이지) 절대 동감하는 부분이다. 평소 내 생각이지만 우리의 불교계는 차원 높은 아니 차원이 높아서인지 모르지만 교리를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추종하는 듯하다. 이를 저자의 논리로 말하면 아리송하게 얼렁뚱땅 넘어가는 것이 된다.(35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불교는 사람이 그대로 부처라 해놓고 부처가 되느니 마느니란 소리를 하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인다. 사람은 그대로 부처라 해놓고 염불이니 참선이니 1000배니 하는 것으로 부처가 된 사람이 있다면 말해보라고 하는 것이다. 지난 20여년 전 ‘베짜는 하나님’이란 책에서 홍정수 교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새로운 유형의 인간들이 태어난다면 기독교는 메시지를 잃은 것인가, 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저자의 논지를 대하며 이 구절을 떠올리는 이유는 부처님의 4성제 중 하나인 인생은 괴로운 것이라는 메시지에 반(反)하는 생각을 하는 것은 불교도가 아닌가, 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일사분란을 의도해서이겠지만 석가모니 부처의 논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은 그의 가르침을 화석화하는 것이 아닐까? 예컨대 “불교는 젊은 사람도 노병사(老病死) 때문에 괴로워하라고 부추기는 것 같다.”는 저자의 말은 내 문제의식과 상통한다. 우리 나라의 대승불교계는 보살도를 외면하고 어려운 철학적 이론에 빠져 있다. 급기야 저자는 소승 대승을 나누는 핵심 요소는 자리(自利) - 이타(利他)가 아니라 교리 발전상의 편가름이 아닌가 싶다는 말을 한다. 차라리 대승 불교는 후기 불교라 불리는 것이 타당할 것 같다는 것이다.(98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소승불교의 내용이 분명하다면 대승불교의 내용은 서술이 화려하고 방대하기만 할 뿐 실제 내용은 구체적이지도 않고 충분하지도 않다.(138 페이지)

 

다시 저자에 의하면 한국 불교계는 무아를 외치면서 참 나를 찾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무아란 상식적으로 고정, 불변하는 실체는 없다는 것인데 한국 불교계는 고정, 불변하는이라는 문구보다 실체는 없다는 문구에 더 큰 무게를 둔다. 무아설과 윤회설이 조화롭게 어울린다고 주장하는 불교계 인사들은 자아라는 실체가 돌고 도는 것이 아니라 업(業)이 돈다는 말을 한다.(158 페이지) 하지만 저자도 지적했듯 이는 억지스러울 뿐이다. 아니 너무 관념적이고 무책임하다. 물론 저자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무아를 고정, 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의미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일치한다. 바른 무아설의 메시지는 눈에 보이는 나라는 존재가 없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저자의 논지는 탄탄하고 합리적이다. 세상사가 마음 먹기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하면서도 세상이 마음이 만들어낸 헛것이라 말하지 않은 것은 인상적이다. 세상이 마음이 만들어낸 헛것이 아님은 당연하다. 하지만 세상이 마음이 만들어낸 헛것이 아니라는 선언을 하지 않는 사람은 어느 정도는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리라. 어떻든 나는 기존의 불교계가 실체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 드는 자동차의 비유가 지닌 모순을 파헤친 저자의 논리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기존 불교계는 자동차는 엔진, 브레이크, 바퀴 등 즉 자동차 전체보다 작은 단위의 실체들이 일시적으로 만나 이루어진 것이기에 자동차라는 실체는 없다고 주장하는데 문제는 자동차의 실체를 부정하기 위해 그 부품들의 실체는 인정한다는 것이다.(163 페이지)

 

이는 기독교 성경에 나오는 크레타인의 역설을 연상하게 할 만큼 치밀한 논리가 빛을 발하는 부분이다. 이 밖에 나는 저자가 밝힌 중도, 공, 무아, 무상 등에 대한 설명이 정통 불교의 해설보다 훨씬 간명하고 설득력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는 저자와 많은 부분에서 생각이 일치하는 것을 알았다. 나는 깨달음이란 신비하거나 오묘한 것이 아닌 무상, 무아, 연기법 등을 알아차리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저자가 같은 말을 한 것을 통해 그런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저자에 의하면 무상은 이 세상에 영원한 실체가 없다는 뜻(실체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이고 무아는 나에 갇힌 자신을 벗어나는 것이며 연기법은 세상 만물의 상호연관성을 밝히는 법(196 페이지)이며 탐진치 3독을 극복한 모습으로 깨달은 사람의 특징이 나타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고 저자의 생각이며 부처님이 깨달은 내용이다.

 

저자가 말했듯 중생 구제를 기치로 내건 대승불교조차 구체적 실천 계획 및 실천 자체에 등한하거나 무력하다. 저자가 불교의 핵심이라 꼽은 것은 몇 된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중도(中道)가 아닐까 싶다. 내가 모두(冒頭)에서 말한 세속화한 불교의 모습이란 바로 중도에서 벗어나 부정적인 가치관에 집착하고 사로잡힌 상태를 말한다. 이해하기 쉽지만 실천하기 어려운 중도의 가치관을 실천하고 따라야 할 것이다. 물론 수행승들은 불교의 근본과 존립 가치를 재삼 음미해야 한다. 거침 없고 논리적이며 권위에 얽매이지 않은 한 저자 덕에 귀중한 가치들을 음미하게 되었음을 감사드린다.

이달의 사락 m******1 2012.05.24.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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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에 쫄지말고 닥치고 사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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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전체적인 감상부터 말하자면 속이 시원했다. 나는 기독교를 믿고 이 책의 지은이 김영명은 불교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만 평신도로서 그동안 내가 기독교(정확히는 한국 기독교 교회라고 해야겠다)에서 가지고 있었던 불만이나 교리와 설교만으로는 채워지지 않았던 호기심을 모조리 대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종교가 다른데도 이러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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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전체적인 감상부터 말하자면 속이 시원했다. 나는 기독교를 믿고 이 책의 지은이 김영명은 불교에 대해서 말하고 있지만 평신도로서 그동안 내가 기독교(정확히는 한국 기독교 교회라고 해야겠다)에서 가지고 있었던 불만이나 교리와 설교만으로는 채워지지 않았던 호기심을 모조리 대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종교가 다른데도 이러한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을 보면 초심자 혹은 평신도가 자신의 종교에 대해서 느끼는 불만이나 부족한 부분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이게 도무지 뭣하자는 소린지 모르겠고' 제목 부터가 도전적인 이 책의 부제는 더더욱 도전적으로 '한국 불교, 이것이 문제다'이다. 부제만 놓고 보자면 지은이가 불교에 상당히 조예가 있는 사람으로 여기기 쉽겠지만 천만에 그는 스스로도 밝히지만 이제 겨우 불교에 입문한 초심자에 불과하다. 이처럼 종교 경험이 일천한데도 감히 한국 불교의 문제에 대해서 들고 나온 것은 그저 상식적인 견지에서 아무리 따지고 보아도 한국 불교가 도통 무슨 말을 하는지 또 정말은 무엇을 중생들에게 주고자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범인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너무나 고담준론이라 수양이 깊지 못한 미천한 존재들이라 그런지 그저 뜬구름 잡기 식의 허황된 담론으로 밖에는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지은이 김영명은 그걸 이해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자신도 서울대학교를 나오고 뉴욕주립대학에서 정치학 박사까지 받은 소위 먹물을 먹을만큼 먹은 인사(人士)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불교의 이론이 심오하다해도 그래도 이정도 가방끈이면 수박 껍질에 그려진 줄들의 개수 정도는 헤아릴 수 있어야 되는 거 아닌가? 하지만 그 개수마저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말들은 한문 투성이고 논리는 비약과 과장으로 범벅이 되어 있으며 강해하는 자들조차 이해할 수 없는 추상적인 이론으로 가득하니 절망하기도 전에 분노부터 이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비록 불교의 내공은 깊지 못하나 "이게 도무지 뭣하자는 소린지 모르겠고'라고 벽력뇌성으로 일갈하며 오직 그의 무기라곤 그동안 닦은 학자적 수련과 상식 밖에는 없지만 '불교'라는 비약과 허장성세 그리고 고담준론들의 춘추전국과도 같은 강호로 나선 것이다. 그렇게 그는 초심자들의 의문과 답답함을 제대로 풀어주겠다는 일념으로 전체 11장에 걸쳐 불교라는 난적들을 하나하나 제거해 나간다. 거기에는 어려운 한문만 고집하며 불교의 가장 기본적 개념 조차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지 못하는 한국 불교계 뿐만아니라 흔히들 소승불교는 개인 수양 대승불교는 세상에 대한 자비 실천을 주 이념으로 하나 제대로 둘 다 살펴보니 정작 대승불교와 소승불교는 그리 다르지 않는데 굳이 그러는 것은 그냥 자신들을 구분지으려고 억지로 그러한 것들을 갖다 붙인 것은 아닌가 하며 대승불교를 논박하고 거기다 아예 석가모니에게까지 나아가 그가 정말 사람들이 말한는 겸손과 자비의 인물인가를 논하며 아울러 불교의 가장 근본이 되는 고해와 그것을 벗어나는 경지인 해탈과 열반이 사실 제대로 된 개념인지마저 검증한다.

 

  이렇게 그의 칼날은 거침이 없고 위 아래를 따로 두지 않는다. 마치 제대로 살풀이를 하려는 듯 이참에 그는 평신도로서 가지고 있었던 모든 의문점들을 다 해소하려는 것이다. 윗 분들의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불교라는 것이 도대체 뭣 하는 소리인지 모르겠으니 스스로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제대로 한 번 단단히 마음먹고 파악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결국 그는 제천대성 손오공이 세상 끝까지 날아가 부처님 손가락에다 자신이 세상의 끝까지 도달했노라 남기듯 그가 찾은 불교의 핵심을 책 마지막에 새겨 둔다. 그가 이해한 불교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불교의 핵심은 수행을 통한 나와 남의 괴로움 제거이다.(P.274)

 

 대단한 것도 아니고 어려운 것도 아니다. 하지만 초심자이자 평신도인 그가 오래도록 고군분투 끝에 도달했어야 할 만큼 한국 불교는 이 단순한 진리를 어렵게 말하고 배배 꼬이고 또한 잔뜩 부풀려 놓았던 것이다. 그리고선 이해를 못하면 친절히 가르쳐 주기는 커녕 믿음이 부족하다는 둥 수양이 덜 되었다는 둥 오히려 못하는 자를 타박할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강조한다.

 

  그들이 아무리 많이 알고 수양이 높더라도 무턱대고 그들의 말에 기대지 말 것을. 아무리 믿음이 강조되는 종교라 하더라도 그 모든 이론과 교리에 관해 자신의 이성을 가지고 맞는지 아닌지 제대로 사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한 마디로 그들의 권위에 쫄지마라는 것이다. 종교의 이론이나 교리가 아무리 어려워도 모든 건 다 똑같은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니 스스로 찾고 구하고 노력하면 얼마든지 그 대답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그것을 실증하기 위해 지은이 김영명은 이 책을 통해 몸소 시전해 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또한 그것은 나 역시 기독교 생활을 해 오면서 생각했던 것이었고 그래서 이 속내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지은이에게 적잖이 감명을 받았다. 애초에 내가 불교에 대한 책을 읽기로 한 것은 현재 한국 기독교가 정말로 문제가 많아서였다. 바로 그것을 불교나 여타 다른 종교들을 배워 봄으로써 그 상대적 입장에서 바라보고 싶었다. 지금의 한국 기독교란 한 마디로 딱 장사아치에 불과하다.(물론 여전히 소명을 가지고 일하시는 목사님들이 많다. 하지만 그분들의 노고보다 더 많이 드러나는 건 돈 밖에는 중심에 두지 않는 한국 기독교의 모습이다.) 이렇게 된 데는 무엇보다 성경이 정말 하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전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성경의 진의를 왜곡하여 설교한 목사들의 책임이 크다. 그리고 기복신앙에만 빠져 무분별하게 목사들의 말을 맹종했던 신도들의 책임 또한 크다. 다행히 지금은 헌금이나 십일조에 대해서 비성경적임을 강조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고 그렇게 스스로 자정하려는 노력들을 보이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기독교가 진정으로 기독교다워지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험란한 고비들이 많다. 이 고비들을 제대로 넘기 위해서라도 이제 일반 신도가 깨어나야 할 때라고 많은 분들이 목소리를 모아 말한다. 더 이상 예전처럼 목사의 말이라고 무분별하게 수용하지 말고 늘 깨어서 스스로 그것이 참인지 아닌지 정말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고 말이다. 이것은 또한 그대로 이 책의 주제와 상통하는 바이기도 하다.

 

 즉 불교나 기독교나, 그 종교가 제대로 자기답기 위해서는 일반 신도가 깨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더 이상 설교나 강론에 있어 그저 듣기만 하는 객체가 아니라 스스로 참여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역사적으로 진리를 앎이 귄위있는 소수에게만 허락되었을 때는 항상 부패와 타락이 뒤따랐다. 혹세무민은 늘 남의 생각을 무비판적으로 따르는 그렇게 스스로는 생각할 줄 모르는 다수가 있을 때 일어났다. 말들은 언제나 참여하는 자들이 많으면 많을 수록 보다 더 정확해지고 제대로 된 의미를 찾게 되는 법이다. 바로 집단 지성이 그 오염된 말을 정화시키기 때문이다. 흔히들 종교는 믿음이라며 그래서 따지기 보다는 그냥 믿는 것이 진정한 신앙이다라는 말을 한다. 물론 헛소리다. 교부철학의 아우구스티누스나 스콜라 철학의 토마서 아퀴나스, 종교개혁을 가져온 루터나 지금의 개신교를 낳게 한 칼뱅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어디 그저 믿기만 햇던가 제대로 따지고 들었기 때문에 바로 오늘의 기독교가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보다 많은 이들이 권위에 주눅들지 말고 자신 역시도 당당히 하나의 대등한 참여자라는 생각으로 핵심, 이론 그리고 교리에 대해 사유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그것이 불교와 기독교 아니 모든 종교를 본래의 모습 그대로 지켜줄 것이다. 그러니 믿음이 무슨 마법의 지팡이라도 되는 양 얼버무리지 말고 아무리 알 수 없는 것이나 모호한 것이라 해도 끝까지 따지고 의미와 이유를 추구하고 사유할 필요가 있다. 불교에 갓 입문한 초심자인 김영명이 이 책에서 제대로 보여준 것 처럼 말이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이제와 생각하면 이 말은 단순히 믿음, 기도에만 해당되는 말이 아니었다. 바로 종교의 모든 것을 그대로 믿지말고 스스로 사유할 것을 요청하는 말이기도 했다. 즉 진리는 그저 다가오지 않는다. 스스로 나서서 찾고 두드리지 않는 한... 

 



l****1 2012.05.28. 신고 공감 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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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도무지 뭣하자는 소린지 모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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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기에 불교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 마음으로 이 책을 들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불교의 기본 교리에 대해 많은 내용을 습득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불교의 핵심은, 수행을 통한 나와 남의 괴로움의 제거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부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더 많은 행복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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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기에 불교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 마음으로 이 책을 들었다.. 그리고 이 책을 통해 불교의 기본 교리에 대해 많은 내용을 습득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이야기하는 불교의 핵심은, 수행을 통한 나와 남의 괴로움의 제거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부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더 많은 행복감을 느낀다고 한다..

좋은 결론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저자의 이야기를 통해 괴로움, 무상, 무아, 깨달음 등의 불교의 이야기를 알 수 있었고, 저자의 학구적인 면으로 불교라는 종교를 일반인들에게 쉽게 이야기 해 준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이 책을 읽고 느낀 또 다른 면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자..

 

[1장 초심자의 의문과 답답함], [2장 한국 불교 이것이 문제다]를 읽으며 참 신선했다.. 기존에 갖고 있던 불교에 대한 이미지와는 다른 이야기들을 많이 하고 있다.. 왜 한국 불교는 불친절하게 사람들에게 접근하는지에 대해 매우 강한 어조로 이야기 하고 있다.. 마치 카톨릭의 문제들로 인해 프로테스탄트가 발생한 것처럼 불교가 좀 더 사람들에게 친절한 종교로 변해가야 할 필요를 이야기 하면서 불교에 대해 문제라고 생각하는 점들을 학자의 관점으로 조목조목 따져가며 대안까지도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런 글의 분위기가 중간 부분의 불교의 교리에 관련된 내용에서도 계속 이어지는데.. 처음에는 신선하게 생각했던 면들이 과연 저자가 하나의 종교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해도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강하게 이어져 좀 심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저자는 불교 신자로써 비판을 통해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 싶은 마음으로 글을 이어나갔을 것이다.. 대학교수로서, 사회 지도층으로서 많은 이들에게 불교의 진실에 대해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강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종교의 교리에 대해 이건 이래야 하지 않냐라고 이야기 하는 방식은 불교 신자가 아닌 제3자의 눈으로 보아도 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선생으로써 이건 이런거야 라고 알려 주는 사람처럼.. 그러나 가르침은 그런 한쪽의 일방적인 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상의하고 토론함으로써 답을 찾는 방식도 있는 것이다.. 저자의 이야기는 제안이라기 보다는 지시나 반박에 가깝게 느껴졌다.. 저자는 불교를 이끄는 종교인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이 공부한 내용에 대해 설명을 할 때는 좀 더 다른 방법을 사용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다 읽고 나니 과연 이 책의 제작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이 책은 불교의 기초 교리에 대한 기본 해설서인가? 그렇게 보기에는 내용의 체계적인 정리가 조금 미약하고 저자의 주장이 좀 강한 편이다.. 불교 입문자들이 이 책을 읽고 불교에 대해 배우는 것은 그렇게 좋게 느껴지진 않는다.. 불교에 대한 문제점을 정리한 진단서라고 저자는 이야기 했는데 그저 자신의 학식을 알리고 싶은 이유가 크지 않았을까? 정치학 교수로서 불교에 대한 많은 책들을 살펴보고 학자처럼 정리를 해서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형태로 이야기를 하는데 과연 종교에 대해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인지 하는 생각이 많이 든다.. 불교를 이끄는 많은 신앙인들(스님들)과 이야기를 하고 글을 쓴 것인지 하는 생각들..

 

저자는 나름대로 불교에 대한 문제점들과 그에 대한 자신의 해법들 그리고 본인이 생각하는 불교의 핵심까지도 명쾌하게 정리해 준다.. 그렇지만 명쾌하게 그 모든 것은 저자만의 생각이다..

 

저자의 다른 책들을 읽어보고 싶다..



k*******1 2012.05.29. 신고 공감 3 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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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도무지 뭣하자는 소린지 모르겠고], 김영명, 개마고원, 2012.
"[이게 도무지 뭣하자는 소린지 모르겠고], 김영명, 개마고원, 2012." 내용보기
크리스찬이지만 평소에 타종교 이해에 대한 욕구는 많았다고 생각한다. 대학 시절 불교나 이슬람교 등 주요 종교에 대한 서적을 도서관에서 자주 빌려보았고 절이나 이슬람 사원에도 몇 번 가 보았다. 하지만 역시 교회의 타성에 젖어서 그런지 좀체로 전반적인 교리에 대한 이해를 하기 어려웠다.   이 책은 불교를 처음 믿게 된 저자가 불교를 믿으면서 의문을 가졌던 점과 그 의문을
"[이게 도무지 뭣하자는 소린지 모르겠고], 김영명, 개마고원, 2012." 내용보기

크리스찬이지만 평소에 타종교 이해에 대한 욕구는 많았다고 생각한다. 대학 시절 불교나 이슬람교 등 주요 종교에 대한 서적을 도서관에서 자주 빌려보았고 절이나 이슬람 사원에도 몇 번 가 보았다. 하지만 역시 교회의 타성에 젖어서 그런지 좀체로 전반적인 교리에 대한 이해를 하기 어려웠다.

 

이 책은 불교를 처음 믿게 된 저자가 불교를 믿으면서 의문을 가졌던 점과 그 의문을 풀어나가는 과정에 대해서 설명한 책이다. 개신교를 처음 믿으면서 겪었던 경험들을 묶어서 꽤 오래전에 발간되었던 <막쪄낸 찐빵>과 비교되었다. 저자가 처음 불교를 믿으면서 가졌던 의문은 바로 나의 의문과 비슷했다. 첫 번째 공감했던 의문은 도대체 불교의 경전은 무엇이냐는 것이다. 기독교나 이슬람교의 경우 성경이나 꾸란이라는 대표적인 경전이 있지만 불교에는 워낙 경전들이 많고, 또 경전과 경전이 아닌 것을 구분하기도 초심자 입장에서는 힘들다는 점이다. 너무 공감이 갔다.

 

책의 서론에 해당하는 1장과 2장은 이와 같이 불교 초심자가 가질 수 있었던 의문을 제시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 국내 불교 서적들이 뭔가 심오한 종교철학을 제시하고는 있지만 초심자 입장에서는 영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러한 문제들을 한국 불교의 문제점으로 확대해석한다. 서양의 불교 문헌들은 비교적 난해한 부분을 쉽게 해석해 주는데 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우리나라 불교계에서는 이해하기 쉬운 책들이 나오고 있지 않다는 점을 지적한다.

 

초반부에 지적했던 문제점 중에 한문의 멍에를 벗어야 한다는 지적도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한문으로 씌어진 난해한 용어들이 오해를 불러 일으키며 좀더 대중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해하기 쉬운 한글로 표현을 하는 등의 대안을 제시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문은 3장부터 시작되는 내용이 아닐까 싶다. 본문에서 처음으로 제시한 문제점은 석가모니 부처님은 겸손하지 않았냐 하는 점이다. 태어나자마자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선언한 점을 들어 과연 겸손 여부에 대해 의문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불교 초심자 수준도 아닌 상황이라 저자가 책이서 이야기하는 지적과 비판들이 대부분 공감이 가는 부분이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문제제기는 상당히 많이 하고 있지만 해답이 명쾌하지 않다는 점이다. 저자 나름대로 이해하고 터득한 내용들이 일부 설명되고 있지만 문제만 출제하고 정답이 없는 책과도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추후 저자가 이 책에서 제기한 의문점과 비판들에 대한 해답을 찾게 되면 새로운 책으로 만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k******1 2012.05.30.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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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에 대한 설명과 개선해야될점을 다룬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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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게 되면서 불교의 가장 기본적인 용어의 뜻을 알게 되고 불교의 철학적 접근을 통한 불교의 교리를 알게 되어 유익했습니다. 궁금했던 용어 중에 해탈그리고 열반은 "번뇌에서 벗어남"(물론 약간의 뉘앙스가 다르지만)을 뜻, 무상은 본질이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뜻, 그래서 실제적으로 변하지 않는 자아가 없다는 무아, 그리고 깨달음이란 결국 해탈과 열반과 비슷한 개념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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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게 되면서 불교의 가장 기본적인 용어의 뜻을 알게 되고 불교의 철학적 접근을 통한 불교의 교리를 알게 되어 유익했습니다. 궁금했던 용어 중에 해탈그리고 열반은 "번뇌에서 벗어남"(물론 약간의 뉘앙스가 다르지만)을 뜻, 무상은 본질이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뜻, 그래서 실제적으로 변하지 않는 자아가 없다는 무아, 그리고 깨달음이란 결국 해탈과 열반과 비슷한 개념이라는 내용을 잘 설명해 주었습니다.  결국 불교가진 철학은 모든 종류의 집착을 버리고 중도에 서서 괴로움(번뇌)를 벗어버리고 다른 사람들(중생)에게도 이 방법을 알려주어 괴로움을 벗게 하여 행복하게 하자라는 중심사상이라는 것도 처음 알게 되고 좋았습니다.


하지만 읽다보니, 불교의 대한 지식만을 설명하는 것이 아닌, 불교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으로도 책에 지면을 꽤 많이 할애한 책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상하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책의 부제가 "한국 불교, 이것이 문제다" 이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은 초심자가 궁금한 것들을 설명하고 이해를 시켜주는 것을 하지만, 그 양에 못지않게 불교에 대한 강한 충고, 제안 등을 다루어 책 읽을 때 조금 정신없었습니다.


그리고 충고, 제안등을 말하시는 것은 좋으나 그 말을 하는 방식이 저랑 잘 안 맞았습니다.

저는 조금 감정은 내려놓고 조금 냉철한 문체로 글을 써놓고 최대한 글을 압축하고 필요없는 말을 뺀 글을 선호하는 반면, 이 책의 저자는 대학 교양과목 강의하듯이 원고 없이 토론하는 느낌으로, 감정이 들어간 상태에서 열변을 토하다가 냉철해졌다가하는 서술방식으로 저에겐 조금 산만한 책으로 느껴졌고요, 가끔 필요 없는 말을 툭툭 던지는 부분도 좀 아쉬웠습니다.


그리고 책에서 조금 앞뒤가 안 맞는 부분이 있어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지 모르겠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저저는 처음부분에 기복신앙 같은 것은 없어져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수능시험을 잘 칠 수 있게 해달라고 비는 것 등은 점집을 다니는 것과 비슷한 것이어서 기복신앙에서 벗어나 합리적이고 건강한 신앙생활(p.54)을 해야 한다고 말했고요. 그런데 뒤에 와서 아픈 사람을 위로하는 방법으로 조금 종교적일 

필요가 있다면서

"관세음보살의 원력으로, 또는 약서여래의 보살핌으로 당신의 병은 나을 것이니 희망을 가지고 위로한다."(p.233) 라는 말을 하자고 제안하시고 있습니다. 앞과 뒤가 안 맞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런 부분은 좀 더 명확하게 어떻게 다른지 설명해주셨으면 더 좋았을 듯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정리하자면, 불교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와 더불어 불교의 안타까운 점들, 고쳐야 한 점들을 상세히 다룬 책이고, 전반적으로 글이 약간 덜 다듬어진 책으로 (저 개인적으로는)느껴지는 책입니다.

조금만 더 다듬고 필요 없는 개인적인 덧붙임 의견이나 느낌을 빼면 더 좋은 책이 될 수 있을 듯합니다.


g*********s 2012.05.30.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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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로 이해했던 불교가 가슴으로 담겨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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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절묘한 타이밍의 도서였다. 부처님 오신 날에 겹쳐서 읽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이 주장하는 바는 불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종교와 삶이 더욱 큰 괴리감을 느끼게 되고, 비교인을 향한 배척(개신교가 가장 심한 편이다)은 오늘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불교의 경우는, 좀 낯설고도 멀게만 느껴진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내부적으로 쇄신의 과정을 거치고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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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도 절묘한 타이밍의 도서였다.

부처님 오신 날에 겹쳐서 읽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이 주장하는 바는 불교만의 문제가 아니다.

종교와 삶이 더욱 큰 괴리감을 느끼게 되고,

비교인을 향한 배척(개신교가 가장 심한 편이다)은

오늘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리고 불교의 경우는, 좀 낯설고도 멀게만 느껴진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내부적으로 쇄신의 과정을 거치고 고민의 바탕을 견고히 다진 결과

템플스테이라고 하는 거대한 유산을 만들어낸 것도 사실이다.

 

초보 불자가 느끼는 불교에 대한 문제점들.

이는 살을 도려내는 쓴소리인 반면,

더욱 중생들과 가까이 할 수 있는 반면교사일 수도 있다.

 

좋은 것은 아껴서 더욱 발전시키고,

잘못된 점은 칼로 도려내는 아픔을 느끼더라도

째내야지만 곪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최근 불교계도 쇄신을 위해 대대적인

내부 반성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

 

타이밍이 절묘함을 두 번째 느낀다.

YES마니아 : 로얄 i********s 2012.05.29.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이게 뭣하자는 소린지 도무지 모르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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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종교는 다 종교요, 다른 나라들 처럼 서로의 종교가 맞다고 맞서 싸우는 일이 없는 그야말로 서양인들이 보기엔 신기할 정도로 서로간의 종교에 대해 불간섭, 존경의 마음을 갖고 있다. (이것이 아직 터지지 않는 화산의 일부로 보일지라도 말이다. )   이 책은 불교, 다시말해서 한국불교가 갖고 있는 문제점과 더불어서 불교가 갖고있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에서부터 불교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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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종교는 다 종교요, 다른 나라들 처럼 서로의 종교가 맞다고 맞서 싸우는 일이 없는 그야말로 서양인들이 보기엔 신기할 정도로 서로간의 종교에 대해 불간섭, 존경의 마음을 갖고 있다. (이것이 아직 터지지 않는 화산의 일부로 보일지라도 말이다. )

 

이 책은 불교, 다시말해서 한국불교가 갖고 있는 문제점과 더불어서 불교가 갖고있는 석가모니의 가르침에서부터 불교용어에 대한 여러가지 의문점과 불편스런 이야기,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갖고 있던 저자가 풀어놓은 이야기다.

 

여기서 이야기라함은 논리적인 딱딱한 문체가 아닌 실제로 자신이 겪으면서 의문을 갖고 있었던 것에 대해서 풀어쓴 이야기체라서 붙인 이름이다.

 

그런만큼 불교란 용어에 대해서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쉽게 다가설 수있는 이점이 있다.

 

저자는 3 년전 우연히도 집 근처에 있는 삼성동 봉은사에서 행한 금강경 강의를 한다는 공고를 보고 불교에 입문하게 되면서 공부를 시작한 학자이다.

 

정작 자신은 대학교수이자 한글 운동권의 일선에서 활약중이다.

 

그런 자신이 불교 공부를 하면서 보니 정작 모르는 용어나 물음이 생겼을 시 알아듣기 쉽게 풀이한 용어 해설이나 풀이들이 모두 수행승들 위주로 이루어진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한다.

 

물론 불교라는 종교자체가 인도에셔 발생해서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로 들어 온 역사를 볼 때에는 당연시 한자권과 불교경전 용어상의 차용에서 오는 어려운 용어가 있을 수 있겠으나 시대는 변화고 또 변하고 있기에 종교상에서 요구하는 기본 교리는 유지하되 신자들이 좀 더 쉽게 다가설 수있고 쉽게 공부할 수있는 용어풀이 해설이 필요함을 주장할 때는 나도 수긍이 간다.

 

기독교에서의 루터가 성경책에 대한 개혁을 시도해서 모든 신자들이 어려운 라틴에서 해방되 누구나 자신의 모국어로 성경의 말씀을 쉽게 다가설 수있게 된 예시는 지금도 우리나라의 일부 한글로 된 금강경이나 화엄경의 내용이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어려운 한문과 선승들의 선문답 식 물음과 화두는 아직까지는 일반 신도들이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교리가 아닌가 싶단 생각이 들게한 이 책의 주장엔 일말의 일리가 있다.

 

불교의 핵심은 뭔가?

 

바로 수행을 통한 나와 남의 괴로움 제거다. 소승불교와 대승불교간의 차이점을 두고서도 비교한 대목도 있지만 모두 불교라는 하나의 통일된 교리의 입장에서 보면 같은 뜻을 향한 길임을 , 비록 방법론에 있어서 차이가 있지만 불교의 핵심은 바로 위의 한 가지로 통일이 됨을 알 수가 있다.

 

물론 법구경에서도 좋은 말씀이 가득하고 좋은 글귀를 읽음으로써 내 자신을 다스린단 점에서 타의 종교도 공통된 점을 갖고 있지만 유독 불교가 타 종교보다 세속화가 덜 되고 신자들 간의 단합과 포교활동이 갖고 있는 제한적인 점, 진정으로 중생을 위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행하고 있고 실천 있는가, 또 타 종교처럼 나라를 위해서 행하는 정치적인 활동에도 적극적인가?를 조목조목 물어보는 대목은 실로 한국 불교가 고요한 선사에 묻혀서 오직 벽에 대고 참선만 해서는 보다 나은 중생을 위한 활동과 사회의 활발한 참여를 하는 데에 어느 정도의 개혁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한다.

 

모른는 것을 모른다고 물어봤을 때, 그 중생의 눈 높이에 맞추는 교리의 설명은 참으로 필요하다고 본다.

모르는데, 알 것도 같기도 하고 알 것 같기도 하다가도 몰라서 묻는 말에는 솔직한 화두와 쉬운 설명이 필수적이다.

 

일반 신도들이 스님들처럼 고행과 수행을 통해 깊이있는 경전의 말씀을 따라 갈 수는 없기에 이런 저자의 설득은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앞으로 불교계가 자신들만의 밥 그릇 차지하기위해 논쟁을 벌인다는 인식이 없게 하기위해선 지금보단 활발한 적극적인 방식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다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정치적인 참여활동 부분에선 저자가 지적했듯이 타 종교들은 불교보다 확실히 적극적인 참여를 하고는 있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의 지킬 선은 있어야하지 않나하는 생각이다.

 

또한 책에선 한국이란 나라가 타국에 의해서 위기에 처했을 때 불교계는 거의 활동을 안했단 것처럼 보이는 느낌을 받는 부분이 있었는데, 휴정이나 사명이란 대사도 있었단 점은 간과했던 것 같다.

 

시대가 워낙 먼 옛 역사 속의 인물들이라서 그런진 몰라도 적어도 호국불교란 이름으로 활동한 스님들도 있었단 사실은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랜만에 떠올리게 한 일이다.

 

또 법정스님이나 성철스님의 생김에서 나오는 오래 수행에서 배어있는 듯한 얼굴모습의 표현은 티벳 불교의 달라이라마가 갖고있는 모습과 비교하고 다른 종교인들과 비교한 대목에서 조금은 자기주관에 의한 주장이 강한 구절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이 책이 주는 가장 큰 화두는 한국불교계가 앞으로 변화하고 있는 시대에 맞춰서 그에 맞는 적극적인 포교를 이루기위한 필요한 과정과 책들간의 공통된 의미의 단어 결정, 뜻, 교리해석, 포교활동의 전반적인 적극성 전개, 요즘 방송에서 불명예스런 스님들의 행위를 더 이상은 듣지 않게끔 내속단속과 반성으로 다시금 종교가 갖고있는 이상적인 생각과 그 활로에 맞춰서 신도들과 얼만큼 화합을 이룰 수있는지에 대한 다각적인 방법이 필요함을 느끼게 해 준책이다.

 

조목조목 들어가면서 의문을 제시한 책이기에 저자 자신은 많은 공부를 하지 못한 상태에서 오는 의문과 질문이라고 하지만 책을 내기까지는 여러공부와 자료에 대한 많은 생각과 주장이 담겨있는 책이다.

비단 불교계 뿐만이 아니라 타 종교에도 모두 생각 할 수있는 공통된 점이 있기에 두루 읽힐 수있겠단 점에서 장점이 보이는 책이다.

이달의 사락 m*******n 2012.05.29.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한국 불교의 문제와 미래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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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사람들과 함께 영욕을 한 시간이 종교로만 이야기를 하자면 가장 오랜된 종교일것 같고 현재 세계 3대 종교중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그러한 역사를 자랑을 하고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아도 국교로 신봉이 된 역사가 있는 종교가 현대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부분에서는 미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고 오히려 종교인들만의 종교가 되어가고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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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사람들과 함께 영욕을 한 시간이 종교로만 이야기를 하자면 가장 오랜된 종교일것 같고 현재 세계 3대 종교중에서도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그러한 역사를 자랑을 하고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아도 국교로 신봉이 된 역사가 있는 종교가 현대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부분에서는 미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고 오히려 종교인들만의 종교가 되어가고 있는 현실에서 초보적인 불자들이 알고 싶어하는 일들과 그러한 신자들을 더욱 확실하게 불교에 대하여서 알고자 하는 마음을 해소를 할 수가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는 책인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의 불교 종파는 대승불교로 자신의 해탈을 구하는 것을 중시를 하는 근원불교가 아니고 시간이 흐르면서 새롭게 만들어진 일반대중을 교화를 시키는것을 중요시하는 대승불교인데 그러한 불교의 특징을 버리고 오로지 스님들만이 알고 있고 스님들만이 모든 것을 행하고 있는것과 같은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 현재의 불교의 현실인것 같다는 생각을 저자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같을것 같다.

조용한 마음으로 수행을 하면서 참선을 하고 그러한 참선을 통하여서 깨달음을 얻을수가 있다는 말을 강조를 하면서 더욱 대중들과 멀어지는 역효과가 나오고 있는것 같은데 불교에 대하여서 연구를 하지 않고도 불교가 이루고자 하는 일들이 무엇인지에 대하여서 잘모르고 있는 초보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서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궁금증을 해소를 하기 위하여서 노력을 하는것이 아니라 자신들만의 언어로 대화를 하면서 대중들과 거리감이 있는 곳에서 바라보는 종교지도자의 모습만을 보여주고 있는것이 현실인것 같다.

대중과 일체감이 없는 모습의 모습만을 보이고 있는 불교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과거의 원형을 가지고 있는 불교의 모습에서 찾아보고 그러한 원형만을 유지를 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의 변화가 있는것과 같이 기존의 좋은점은 계속 유지를 하면서도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고 있는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는 길을 제시를 하여야 하는것도 종교가 가지고 있는 진정성을 보여주는 덕목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그러한 진정성을 보여주는 것에 인색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한국의 불교가 지금이라도 새롭게 일신을 하여서 사회가 바라는 모습을 보여주고 과거를 버리고 미래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줄것을 기대를 하고 바라보게 하여주는것 같다.

기존의 가대종교들이 가지고 있는 확실한 유일신은 없지만 그러한 유일신이 없다는 것이 오히려 불교가 계속하여서 발전을 할 수가 있는 기틀이 될 수가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데 과거만을 추억을 하면서 자신들의 사상만을 바라보지 말고 시대의 조류에 맞는 새로운 모습의 교리를 만들고 그러한 모습을 보여불수가 있는 스님들이 많아지는것이 불교를 위하여서 더욱 좋을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어 주었고 그동안에 모르고 있던 불교의 교리들에 대하여서도 다시 한번더 공부를 하는 계기를 만들어 준것 같다.

※ 본 도서는 출판사의 지원을 받은 도서입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k****3 2012.05.28.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