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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젼을 통해 '앨리슨 래퍼'의 다큐를 본 적이 있다. 구족화가로 유명한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듣던 '불구'를 이겨낸 의지의 표상이다. 나면서부터 중증 장애인으로 판정됐고, 모든 사람에게 ‘괴물’로 인식된 그녀는 취재중에 장애의 그늘은 커녕 잘 웃고 낙천적인 모습을 보이며 입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 뿐이 아니라 없는 다리로 운전하는 모습을 자못 경이롭게 보았던 기억이다.그러나 그녀의 고백을 통해 가장 큰 고통은 신체적인 불편함과 시설의 폭력이 아닌 바로 스스로의 ‘차이’의 인식이었다는 것이다. 자라면서 또래들과 다르다는 차이를 알게 되었을 때 ,아무리 노력하고 똑같이 옷을 입어도 장애가 없는 또래 아이들처럼 될 수 없다는 사실에 좌절도 잠시 그녀는 그 다름의 차이를 인정하고 나서야 자신을 인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태어나면서 장애와 싸워야 했던 그녀는 어머니와 남편에게 버림받고 임신을 하지만, 의사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만류에도 아이를 낳았다. 스펀지를 단 막대를 입에 물고 아이를 씻기고, 어깨로 유모차를 밀고, 발로 기저귀를 갈지만 그녀는 누구보다 아이를 사랑하는 똑같은 엄마이다. 오래 전 이 다큐를 보면서 장애는 그저 다름의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 같다. “자기 몸을 사랑하지 않고는 진정한 예술을 할 수 없다” 며 자신의 팔 다리 없는 모습이 아름답지 않냐며 카메라를 통해 밝게 웃던 그녀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녀를 통해 비장애인의 몸과 마찬가지로 장애도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진출처: 장애인 신문에서 발췌>
전형과 기형 그리고 이형 사이에서
저자는 들어가는 말에서 우리가 '전형'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예측 불가능하고 흠없이 완벽하다고 하는 전형을 통해 진정으로 포착할 수 있는 세계보다 더 무궁무진한 자연의 세계가 있다고 한다. 훨씬 더 무궁무진한 자연을 통해 언제나 예외가 있으며 전형적인 것을 위태롭게 하며 자연의 불완전한 것을 통해 완전을 이루어야 한다는 진리를 깨닫게 해주는 것이 바로 비정상적이거나 기형인 생명체들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 책은 우리가 '전형'으로 알고 있는 생물체가 아닌 '이형'과 '기형'이라는 다양성에 초점을 맞추어 탐구하는데 목적이 있다. 책에서 '이형’은 발생과 진화의 비밀을 풀어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로 보았는데 그 이유는 이형들은 개체와 집단 그리고 신체와 행동 속에 감춰진 발생의 가능성과 그 과정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이형은 라틴어로 ‘자연의 농담Iusus natura’이라 불렸는데, 이 말은 이형을 괴물로 인식하는 현대의 관점과는 다른 느낌이다. 그 말은 전형과 마찬가지로 '이형' 역시 자연의 일부라는 뜻을 담지하고 있다. 이형은 그 생김새가 복잡하고 놀라워서 색다르게 보이기도 하고 가끔은 우스꽝스럽기도 하지만 과학적 영감과 진보를 가로막는 틀에 박힌 사고방식을 바로잡는 존재들이다. 어쩌다 보니 더 두드러지게 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특별한 존재로 자리매김했을 뿐이다.(P11)
괴물들은 자연의 농담이 아니다. 그들의 조직에는 엄격하게 결정된 법칙과 규칙이 적용된다. 그리고 이는 동물계를 규정짓는 규칙, 법칙과 동일하다. 한마디로 괴물 역시 정상적인 존재다. 오히려 세상에 괴물이란 없다. 자연은 하나의 큰 전체를 이룬다. -p34 ![]()
사지가 달린 파충류로부터 수백만 년에 걸쳐 등뼈의 통상적인 구성이 변형되면서 몸이 늘어나고 목뼈가 갈비뼈와 연계된 다수의 흉추로 변형되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앞다리가 사라지고 이어 뒷다리가 사라져 오늘날의 뱀이 되었다. 저자는 비단뱀의 몸을 자세히 보면 뒷다리의 흔적이 있으며, 비단뱀보다 더 진화한 코브라나 북살모사 같은 종에서는 이런 뒷다리의 흔적이 전혀 없다고 한다. 그 진화의 차이를 밝히기 위해 저자는 발생 자체에 놓인 핵심 원리들을 몸의 형태와 기능의 용어를 통해서, 또 그것들을 만든 발생적 메커니즘의 용어를 통해서 밝혀낸다. 이어서 ‘기형’과 ‘괴물’들의 역사적 중요성과 발생적, 진화적 관점 사이에서 이들이 갖는 역사적으로 견고한 관계를 이야기한다. 마지막장 <성에는 언제나 모호함이 존재한다>에서는 성적 기이함을 진화적인 우아함으로 끌어올린 자연의 사례( 은연어, 아마존몰리, 점박이하이에나 등등)을 통해 우리가 '이형'이라 생각했던 것들과 '기형'적인 모든 종들을 자연의 일부분으로서 끌어안아야 하는 이유를 명징하게 깨우쳐 준다.
이렇게 이 책은 진화와 발생이라는 측면에서 다양한 종류의 이형을 통해 다윈의 진화론과는 차별되는 접근을 하였다. 기존에 환경이든 유전적인 이유이든 '이형'과 '기형'을 차별된 시각으로 보았다면, 아마도 이 책은 그런 차별을 '차이'로 바꾸어 놓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저자는 과거 자연의 실수로 인식하거나 정상적인 것과는 다르게 보는 시선을 거두고 자연의 일부로서 공존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해주며 결국 '이형'과 '기형'은 우리가 끌어안고 가야할 자연의 위대한 산물임을 이 책을 통해 증명해준다. 구족 화가 '앨리슨 래퍼' 를 통해 삶의 위대함을 깨닫는 것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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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바람개비처럼 팔랑거리며 뛰어간다. 얘, 하고 불러 세우니 착한 아이는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로 초록 하나를 내민다. 아, 네잎클로버. 나는 아이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네고 책 사이에 끼워두면 잘 마른다는 얘기를 한 마디 보태고는 돌려보낸다. 이렇게 식물의 경우에는 이형이 오히려 새로움으로 각광을 받는 예가 많다. 토마토를 박스째 사면 한 두 개쯤은 붙어 있는 경우가 다반사고, 나무와 나무가 가지째 붙어 자라면 연리지라는 예쁜 이름을 지어주고 즐거운 마음으로 축복까지 한다. 동물의 경우라도 이렇게 축복과 각광을 받을 수 있을까? 이 책의 목적은 자연 속에 존재하는 별난 존재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다양성을 탐구하는데 있다고 한다. 처음 그림을 훑어보다가 깜짝 놀랐다. 외눈증 아이와 반인반수, 배에 다른 사람이 들어있는 모습들이 너무나 기괴하고 끔찍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의 내용은 그림이 주는 느낌보다 훨씬 더 순화되고 부드러워 자연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기형들에 대한 정보를 차분히 들을 수 있었고, 자연의 눈으로 보면 기형과 전형의 구분이 무의미하다는 것도 차츰 알게 되었다. [애꾸눈 나라에 가면 두 눈가진 사람이 장애인이다]라는 말이 있다. 우리가 다르게 보는 많은 이형과 기형의 모습은 소수자이기 때문에 부당한 대접을 받거나 놀라움을 주기도 한다. 고대로 갈수록 기형으로 태어난 사람들에게 괴물이라는 낙인을 찍어 다른 사람의 볼거리로 전락시키는 경우가 많았다. 18세기 후반, 과학자 이시도르는 기형학이라는 이름으로 이 분야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괴물들은 자연의 농담이 아니다. 그들의 조직에는 엄격하게 결정된 법칙과 규칙이 적용된다. 그리고 이는 동물계를 규정짓는 규칙, 법칙과 동일하다. 한마디로 괴물 역시 정상적인 존재다. 오히려 세상에 괴물이란 없다. 자연은 하나의 큰 전체를 이룬다. 34쪽 자연의 관점에서 보자면 모든 개체가 개별적으로 전형이면서 이형이다. 생명체가 드문 우주 안에서 생명체로 살아가고 있는 모든 생명들은 그 하나하나가 소중한 전형이면서 자세히 살펴보면 조금씩 다른 점이 깃든 이형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형들을 처음부터 자신과는 다른 존재라고 쉽게 단정지어버린다. 과학자 찰스 스토커드는 장기간 반복된 알코올중독이 기니피그 자손에게 심한 기형을 일으키고 그 다음 세대로 전해질수도 있다고 보고 환경적 요인으로 유전자 활성이나 변형의 효과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알코올이 우생학적 방식으로 이용된다면 그들의 출생을 예방함으로써 나쁜 개체들을 제거할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런 그의 이론은 독일의 나찌가 정신병 환자를 학살하는데 빌미를 제공해주었다. 그러나 레이먼드 펄은 닭 실험을 통해 건강한 난자와 정자는 알코올의 영향을 받지 않으므로 오히려 알코올 노출로 열등한 배아는 제거되고 튼튼한 개체만 생존한다고 주장했다. 실험기형학의 창설자 케네유 다레스트는 병아리 배아의 부화환경을 조작했더니 심각한 기형이 생긴다는 것을 발견했다. 기형적 발생과 정상적 발생의 관계는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고 기형을 조작하는 일은 놀라울 정도로 간단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전형이 되는 것과 이형이 되는 것은 순간의 시간들이 어떻게 작용하는가에 따라서 결정된다. 선택이 아니고 결정이 되어버린 기형과 이형 혹은 전형의 여러 모습을 보고 과연 누가 함부로 말할 수 있을까. 현재 쌍둥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듯이 두머리증을 자연스럽게 볼 날도 있을지 모른다. 이형과 전형의 차이는 종이 한 장 만큼이나 얇다. ********************* 동물의 움직임은 몸, 두뇌, 경험의 삼박자가 고도로 어우러지는 후성유전학적이며 개체의 개성이 드러나는 작용을 반영한다. 모든 이형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동질감을 느끼게 만드는 이론이다. 기형은 새로운 조건 아래서 발생한다. 팔다리를 잃고나서도 두뇌는 대부분 팔다리가 여전히 붙어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환상지(절단된 팔 다리 부위에서 통증을 느끼는 것)라는 현상이 나타난다. 그러나 태어날 때부터 팔이 없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나머지 신체를 이용해 살아간다. 오히려 보철기구를 했을 때 불구라는 느낌이 든다. 발생에 대해 적응대신 기계를 사용하려 했기 때문이다. 오늘날 선천적 사지 기형인 아이들에게 보철기구를 채우려는 움직임이 늘고 있는데 아이의 발달에 변형을 가하려는 이런 시도는 심사숙고해야 한다. 두뇌의 새로운 조직화와 여기에 연관된 행동적 적응을 포함한 특별한 발생경로를 존중해줄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 책에서는 우리 눈에 기괴해 보이는 많은 이형과 기형들의 발생이 전형들과 멀지 않고 아주 가까운 조건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래서 우리가 그들을 다르게 보고 있는 시선이 자연의 입장에서 보면 아주 우스운 일에 지나지 않는 거라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을 통해 전형과 이형의 차이는 다수와 소수의 차이에 지나지 않고, 기형과 전형의 모습 역시 찰나의 시간에 의해 결정지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비록 전형의 모습에 가깝게 살고 있다고 해도 자랑스러워 할 것도, 다행이라고 안도의 한 숨을 쉴 것도 아니다. 혹은 이형의 모습으로 살아간다고 해도 움추려 들거나 부끄러워 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자연의 입장에서는 모두다 개별성을 지닌 존귀한 존재들이고, 그 존재에 맞게 프로그램된 두뇌를 가지고 살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외국인의 시선으로 보자면 우리나라는 별나게 장애인이 없는 거리를 갖고 있다고 한다. 축복이라고 말하지만 실은 우리나라 거리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편하게 걸을 수 없기 때문에 그분들의 모습이 드물다. 차이를 인정하는 일에 인색한 우리에게 이 책은 눈에 보이는 모습을 가지고 오래 왈가왈부하기 이전에 모든 존재의 개별성을 인정하고 서로 존중하며 살아가는 열린 마음을 가지라고 말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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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좋은 점이자 나쁜 점, 모든 생각들을 너무 한쪽으로 몰아가려는 경향 그리고 보통이라는 기준이 너무 강하여, 다른 것을 잘 인정하지 못한다. 또한 획일적 교육으로 다양한 생각과 행동을 하지 못한다. 한마디로 우리는 너무 표준화 되어있다. 그래서 대한민국은 가장 빨리 성장한 국가의 하나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지금이야 조금 나아졌지만, 그래도 개성이라는 것, 다름이라는 것이 존중 받기 시작한지도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우리는 항상 보통, 평범을 강요 받았고, 그러기 위해서 평범을 벗어나지 않기 위해서 노력을 했다. 그래서 이런 기준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민족적으로 보면 백의민족이니 단일한 순수한 민족이니 이런 것들을 강조하는 바람에 내재된 외국인 차별 거기에다 백인들의 문화의 영향으로 피부가 좀 검은 편의 사람들을 무시하는 태도와 장애아, 정상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에게 느끼는 이상한 차별의식이 존재한다. 그래서 우리와 다른 소수자들은 차별의 그늘아래서 살아가며 신음하고 있다. 다르다는 것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안겨주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영화 “X맨” 속에 등장하는 뮤탄트(변이종)들, 미래에 태어나는 돌연변이들, 특이한 능력을 소유하지만, 뭔지 모를 결함이 있는 존재들, 그들 앞에 우리는 정상이라는 이름으로 이들을 내친다. 공존하지 못하는 인간들의 배척에 그들은 뭉쳐서 인간에게 대항하여 인류를 멸종의 위험에 빠뜨린다. 진화의 역사는 뮤탄트와 적응의 산물인지도 모른다. 변이는 다양성을 만들어내는 어머니이며, 다양성은 인간의 미래를 더욱 밝게 만들어 줄 것이다. 이 책은 쉬운 책은 아니다. 우리에게 친근하지 못한(?) 과학 그 중에 생물 분야이면서 특히 생소한 발생학적 관점을 가지고 접근하기에 쉽게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쉽게 이해시키기 위해서 가볍게 설명한다. 분명한 것은 우리에게 다르다는 것, 자연과 변이, 기형에 대한 가르침을 주려는 글이다. 이 글을 읽고 스스로 많이 달라져야 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완벽 현실세계와 충돌로 기형은 우리가 가진 과도한 환상과 완벽함에 대한 왜곡된 개념이다. 이 책은 별난 존재와 다양성을 탐구해 나간다. 자세히 보면 우리 모두는 유별나며, 특이하고, 기묘한 존재이다. 획일화 속의 다양성, 우리는 우리와 같은 사람을 본적이 없다. 종들은 불연속적이고, 변이 역시 불연속적이다. 발생적 이형이 내포한 생물학적 중요성을 탐구할 “이형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것이 자연의 실수가 아니라 과학적 영감과 진보를 가로막는 우리의 틀에 박힌 사고방식을 바로잡는 존재임을 알 수 있다.” 필요가 있다. 괴물이라는 고정관념과 자연의 농담 lusus natura이라는 표현, 무엇보다 자연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변이는 진화의 필수적 현상이고, 진화 발생생물학(Evo Devo)은 근대적 종합의 한계를 해결하려는 하나의 대답이다. 변이는 생존을 위한 진화적 투쟁에서 평범하게 실패한 결과일 뿐이다. 발생계이론, 유전자가 상호작용하는 복잡한 발생학적 동역학의 일부일 뿐 “성체에 수술로 개입한다 해도 발생 과정에서는 그토록 손쉬운 각 부분간의 완벽한 통합을 보장할 수 없다.”, 다른 동물에게는 있는 재생성, 하지만, 인간은 살아가는 동안 뼈를 형성하고 재형성하지만 어렸을 때 만큼 극적이지는 않다. 그래서 우리의 대체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기형이라는 생물학적 개념을 받아들이는 것은 사회의 문화의 단면을 잘 보여주는 것 같다. 각 국가나 사회에서 화장실에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는 가는 유전자나 성염색체의 문제가 아닌 문화와 교육의 문제이다. 발생 메커니즘, 이런 변이나 기형은 어떻게 발생할까? 전성설과 후성설로 대별된다. 생물의 배발생기 중 낭배형성기에 조작하면, 일정한 시점에 손상을 야기하면 변형된다. 과연 유전자 대 환경, 유전적 요소와 비유전적 요소, 어떤 것이 더 영향을 미칠까? 시간 축(흐름)을 따라 연쇄적으로 상호작용하는 네트워크를 통해 발생한다. 또 파충류의 일부 종(악어, 거북이 등)에서는 성호르몬을 부화온도로 대체 가능하다. 이런 발생환경조절로 변이를 야기할 수 있다. 돌연변이를 유발하는 사이클로파민 cyclopamine은 단백질 소닉헤지호그(sonic hedgehog, Shh)의 기능을 방해, 이 단백질은 소닉 헤지호그유전자(Shh)의 발현으로 생성된다. Shh 돌연변이가 하나라도 일어나면 뇌와 얼굴에 매우 다양한 기형을 초래한다. 그래서 Shh는 마스터 유전자 역할을 하지 않을까 추측한다. 진화란 배수진을 치고 벌이는 전쟁과 같다. “두머리증은 후성적 과정으로 일어난 변동을 통해 놀랍게도 쉽게 생겨난다. 머리 하나를 생성하는 가능성을 진화시키는 과정에서 우연히 머리 두 개를 생성하는 가능성이 진화한 것이다. 이제는 두머리증을 자연스럽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움직임. 생물계에서는 다양한 움직임과 그에 적합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환경에 어떻게 적응하였는가를 알려준다. 우리 인간의 특징은 나머지 손가락과 마주 볼 수 있는 엄지손가락(도구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 털이 없는 피부, 상대적으로 큰 두뇌, 언어를 발달시킨 특별한 능력 그리고 두 다리로 똑바로 서서 걸을 수 있는 능력 등이다. 우리는 두발로 걷는 동물, 우리는 두발로 걷으면서 두 손이 해방되어, 도구 등을 다룰 수 있게 되었다. 과학은 단순성, 가능한 한 많은 사실을 설명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대답을 찾는 것이다. 쉽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움직이는 것도 쉽지는 않다. 다리가 움직이는 순서와 타이밍은 힘을 낭비하지 않으면서 몸의 안정성을 유지하도록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힘을 효율적 사용하는 것도 중요한 능력이다. 인류의 장거리를 달리는 능력, 인류 진화에 결정적으로 중요(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빠르지 못하다. 하지만, 이런 장거리 능력을 바탕으로 동물들을 지칠 때까지 따라가서 사냥을 할 수 있었다.)했다. 삶의 단계마다 자신에게 가장 적절한 방법을 스스로 발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서로 구별되는 개체 집단에서 진화적으로 중요한 형질이 어떻게 유전적 메커니즘의 중개 없이 다음 세대로 대물림 되는 것은 대가와 이익이 존재하는 복잡한 상호작용의 네트워크이다. 팔, 다리는 인간을 지금에 이르게 한 중요한 기관. 세상에 많은 어려움과 위험 그 속에서 기관(팔, 다리 등)을 상실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우리에게 상실의 현대화는 획득의 현대화가 되었다. 다른 대체수단을 만들어 나아간다. 보족기나 인공팔과 그리고 최근에 주목 받기 시작한 줄기세포를 이요한 재생의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 발생에 대한 적응이 생물의 능력이 아닐까? 돌연변이 중에서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는 개체는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질 것이다. 양서류의 사지싹은 어디에 이식되던 다시 자라날 능력이 있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이런 기능이 없다. 아니 사라져 버렸다. 아마 사지싹의 자율성과 지연된 발생이 재생의 열쇠일 것 같다. 이런 비밀을 알게 된다면, 인간의 사회는 어떤 변화를 거칠까? 성. 성은 인간 종의 보존과 영속이라는 측면에서 아주 중요하다. 그러기에 인간의 입장에서 성은 이분법적인 범주에 속한다. 남성 아니면 여성, 하지만, 간혹 간성도 존재한다. 하지만, 간성을 인간의 특징이라고 여기지는 않는다.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엇이 잘못되었는가를 물으면 뭐라고 답할 수 있을까? “누구도 자신이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행동할지 본능적으로 알지 못한다. 우리는 타인과의 상호작용이나 비교 및 자기 탐색을 통해 자신에 대해 배워나간다. 그리고 사회는 한 개인의 생식기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그 사람의 정체성과 행동을 파악하는 출발점으로 삼는다.” 운명적인 선고, 구분을 모호하게 하지 않으려고 무엇에는 선을 긋는 것은 법률가들의 본성일 뿐 자연의 본성은 아니다. 자연에서는 성은 그렇게 고정된 개념도 아니고, 성전환이 흔한 일(?)이다. 간혹 뉴스에서나 보는 성전환이나 성별재지정, 과연 어떤 기준을 가지고 판단할 것인가? 성적발달을 조작하려는 시도에 보다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특히 유아의 성별재지정은 더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할 문제인 것 같다. 물론 성적 각인과 성적 끌림은 DNA에 부호화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수많은 부분과 과정의 총합이며 생식기의 성장을 촉진하고 두뇌의 기능을 조절하는 유전자와 생식선, 호르몬분비 간 연쇄효과의 산물이다. 이 모든 요소가 협력해 거울 앞에 보이는 우리 자신을 만든다.” 모호함은 해악을 낳는다? 분명 성은, 호르몬 등+성염색체의 작용으로 결정된다. 인간에게 문제가 되는 간성, 하지만 자연에서는 다양한 성의 형태가 펼쳐진다. 성적 기이함을 진화적인 우아함으로 한 단계 끌어올렸다. “아마존몰리들은 수컷 DNA가 필요하지 않도록 진화했음에도 수컷의 정자는 필요하다.”, 아마존 몰리들은 왜 이런 행동을 할까? 그것은 인간의 궁금 점이며, 구분 지으려는 우리의 경향이 문제이다. 모든 것은 자연의 산물이라는 것, 있는 그대로 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일까? 우리는 노틀담의 꼽추, 서커스단의 난장이 뉴스 속의 썀쌍둥이, 일상 속의 장애인들 등을 보면서 어떤 느낌을 느낄까? 그들과 우리는 다르다. 그들은 우리의 동정을 받아야 할 존재 등 다양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비정상적이라는 느낌이 가장 강할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르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다름보다 그들보다 더 우월하다는 생각을 가지는 것 아닐까? 나는 정상이고 너희들은 소위 병신들이라는 삐뚤어진 우월감이 아닐까? 그리고 사회의 소수자들을 차별하는 우리의 마음 깊은 곳의 우월함과 박해하려는 마음, 이런 것들은 문화를 통해서 체계화 되어왔다. 이제는 변해야 한다. 바야흐로 다양성의 시대, 피부의 색깔, 성적 취향, 생김새 등으로 차별 받아서는 안 된다. 자연이라는 우리가 다 이해하고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기 그리고 모든 곳에 괴물이 존재한다. 이들은 모두 지상에서 펼쳐지는 하나의 드라마 속에서 적대자가 아닌 주인공들이다.” *조금 이상한 것들 p. 54페이지 10번째 줄 모두 일일이 배선될(?) p. 69 밑에서 3줄 미생물germ속에 존재하는-> 미생물이 germ(?), 83페이지 9줄 배형질(germ-plasm)로 p. 85 5줄 Veratrum californucum -> Veratrum californucum 이태릭체로 p. 86, 88-89 86 3줄 Shh시스템에, 8줄 동일한 Shh돌연변이(->Shh)가 아닌지. Shh는 소닉헤지호그(단백질, sonic hedgehog)이고, Shh는 소닉 헤지호그유전자. Shh와 Shh 사용을 확인 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p. 224, 5줄 암컷과 성적으로 교섭하려는-> 교접하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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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단순한 편이지만 어린 시절에는 좀더 단순한 편이었던 것 같다. 사회나 시사 문제에 대해서는 상당히 냉소적인 경향이 있었지만 그 외의 분야에 대해서는 대체로 수용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특히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는 기본 성향인지 학습된 것인지 주어진 지식에 크게 반항하는 편은 아니었다. 논리적인 모순이 느껴지지 않으면 별다른 의심없는 수용을 보이는 편이었다고 할까? 그러다보니 학창 시절에 배웠던 내용을 바탕으로 사고했고 책이나 대중매체를 통해 접하는 내용은 진실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었다.
또한 지금도 그렇듯 평범함을 좋아하진 않지만 지나치게 눈에 띄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의 영향도 있어 나 자신이 정상의 범주 안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학창 시절에 교사들의 눈에 띄긴 하되 특별히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는 학생으로 시간을 보냈다. 특별히 규칙을 어기지도 않으며 특별히 관리해줄 필요도 없었으니 교사의 입장에서는 편한 학생이었지 않았을까? 스스로는 주연이라 여기지 않았기에 더욱 무난하게 보냈다. 평범하지 않고 조금 특이하되 괴짜와 같이 튀어나온 못은 아니었던 것이다.
몸이 조금 약한 편이긴 하지만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에 자신을 정상의 범주로 분류해 왔었다. 그런데 정상과 비정상의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 한때는 내가 정상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육체적인 면에서는 정상이라고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매일같이 눈에 들어오는 나의 손금은 아무리 해석하려 해도 의미를 분석할 수 없다. 오른손도 왼손도 손금 관련 책자에 나오는 손금의 모습을 모두 가지고 있지도 않고 선도 깔끔하게 분류되어 있지 않다. 정상이라고 생각해온 나의 신체는 전형적인 모습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가 생각해온 정상이라는 것은 이런 전형일 뿐인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가 만나는 대다수의 모습은 전형이 아닌 '이형'과 '기형'의 모습이다. 인간의 무지는 이런 전형에서 벗어난 현상에 대해 냉정한 배척과 공포를 가지게 만들었다. 과거 전형적인 모습에서 벗어나는 형태로 태어난 인물에 대해 인간이 가졌던 공포는 여러 기록과 논문을 통해 당시 사람들의 인식이 어떠했는지 그러낸다. 이들 중 괴이한 형태를 가진 인물들은 괴물로 분류되어 서커스의 구경거리가 되기도 했으니 그들에게 괴물로 태어난 인물의 인권이라는 것은 없었음이다. 하지만 글쓴이는 이러한 이형과 기형이야 말로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 줄 수 있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때로는 자연적으로 전형의 모습에 비견해 부족할 바 없는 완전한 구성을 취하고 있기도 하다.
타고난 신체가 전형적으로 완벽하지 못한 경우에도 생물의 삶은 이어진다. 때로는 이런 생물의 유전적 문제가 심각한 질병으로 이어질 수도 있지만 신체의 일부가 없는 상태로 태어난 생물의 경우 신체의 일부가 없어도 신체의 나머지 부분을 적절히 활용할 줄 아는 삶의 방법을 터득해 오히려 후천적으로 신체의 일부를 잃어버린 경우보다 경제적인 움직임을 취할 줄 안다. 정신적으로도 더 건강함은 물론이다. 오히려 기형적인 존재가 더 건강할 수 있고 그들이 더 효과적인 움직임을 알 수도 있다는 점은 우리가 생각해 왔던 전형이 하나의 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자연 속 여러 종을 살펴보면 같은 유사 유전자를 가졌지만 진화 과정의 어느 과정에서 그 궤도를 달리해 현재의 다른 종이 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그리고 그들이 모두 현재 자연 속에서 나름의 효율적인 동작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가 접하는 기형과 이형도 또다른 효율을 만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일 뿐이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는 자연의 농담이 아니라 자연의 축복일 지도 모른다. 기존의 우리가 알고 있던 진화론적 관점과는 다르지만 자연의 농담을 바로보는 이런 시각도 자연과 삶에서 꼭 필요한 것은 아닐까?
그동안 여러 책과 사례들을 접하며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게 관대하고 포용적이며 더 많은 기회를 부여하는 외국의 모습이 부러웠다. 우리 사회에 전형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해 다른 사회에 비해 더 엄격한 잣대를 가지고 있었기에 그로 인해 받게 되는 장애를 가진 사람들과 그 가족들에게 많은 상처를 주어 왔다는 것을 알기에 더 부러워 했음이다. 하지만 결국 나 역시 전형을 긍정하고 전형이 아닌 그들을 동정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이제 그들을 보는 시각을 바꾸어 볼까 한다. 유쾌한 자연의 농담을 가진 그들은 나보다 더 효율적인 메카니즘을 가진 이들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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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적이지 않은(정상적이라는 표현이 잘못됐을 수도 있겠다) 생물체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와 사회적인 이슈를 제기하는 흥미로운 주제의 책이었다. <자연의 농담>이라는 책 제목만 보았을 때는 어떤 내용일지 잘 이해가 가지는 않지만 ‘기형과 괴물의 역사적 고찰’이라는 문구를 보았을 때 대략 짐작은 할 수 있었다. 이 책은 다양한 종류의 발생적 이형이 내포한 생물학적 중요성은 탐구하고 이를 통해 ‘발생의 진화적 결과와 진화의 발생적 결과’를 조명한다. 즉 진화론적 관점과 유전학이나 발생학적인 관점에서 왜 이러한 이형들이 만들어지게 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사실 생물학적인 여러 가지 이론들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처음 들어본 용어들과 이론들에 대한 소개들이 제시되고 있는데 그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전반적인 내용을 이해하는데 큰 무리는 없다.
우리가 흔히 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전형과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이형 사이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관점은 다양성이라고 주장한다. 즉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과 우리가 어디선가 발견할지도 모르는 생명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바로 다양성이다(p.26). 생각해 보면 사람의 생김새가 쌍둥이라 할지라도 다른 부분이 있으며, 얼굴말의 얼굴무늬가 서로 다르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다양성에 대한 이해가 가고도 남았다. 하지만 사람의 생김새라든가 얼굴말의 무니가 다른 점은 각 개체사이의 자연적인 변이라고 한다면 좀더 극단적인 변이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변이들을 바라보는 시각을 어떻게 가져야 할지 고민스럽기도 하다. 또한 왜 그러한 변이들이 생겨나고 있는지 과학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이러한 극단적인 변이들이 비교적 최근의 일은 아닐 것이다. 꽤 오래전에는 이러한 변이들이 태어났을 때 죽임을 당하거나 또는 그 반대로 신처럼 대우를 받았던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사실 머리가 둘인 쌍둥이 하나만 보더라도 이런 존재가 바로 내 옆에 앉아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소름끼칠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것도 한밤중이라면. 하지만 우리는 이들로부터 하나의 사실을 깨닫게 된다. 바로 자연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이다(p.36).
이 자연의 불완전성과 다양성이라는 이슈를 던짐으로서 ‘기형’ 또는 ‘괴물’이라는 이형들의 존재감이 전형들 못지 않게 공평한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이형이 됐건 전형이 됐건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로서 다양성을 보장하고 서로 적대하는 것이 아닌 서로 공존하며 서로를 주인공으로 여기는 삶의 자세를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있다.
책 중간중간에 흥미로운 과학적 사실들을 던져주고 있다. 사람이 어떤 과정에서 직립보행을 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직립보행을 하는 동물은 이세상이 사람 밖에 없는지, 머리가 두 개인 쌍둥이나 남성인지 여성인이 애매한 양성인간의 출생 비율이라든가. 다소 끔찍한 상상일 수는 있겠지만 지구상에 존재하는, 함께 어울려야 할 다양한 존재들의 하나라는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그리 끔찍하고 멀리해야 할 존재는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장애인 복지에 대해 관심을 갖고 그들이 정보기술을 이용해 좀더 편리한 생활을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자료를 모으는 과정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장애인 보다 더 장애인’이라고 할 수 있는 ‘기형’과 ‘괴물’들에 대한 영역으로 넘어가다보니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존재가 너무나도 다양하다는 깨우침을 얻게 되었다.
번역자가 생물을 전공해서인지 생물학적 용어들이 대한 역주가 적절히 제시되었고 문장들이 아주 어렵지는 않은 수준에서 깔끔한 번역이 돋보였다. 내용 자체는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으나 역시 유전이나 발생 등 생명공학 관련 용어들을 마주했을 때는 독서의 브레이크가 걸리는 상황이 많이 발생했던 것이 아쉽다면 아쉬운 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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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괴물은 필연인가 우연인가
이 책에서 말하는 자연의 ‘농담’은 단도직입적으로 ‘기형’이고 ‘괴물’을 말한다. 라틴어로 두 다리가 없는 염소로 태어났지만 그런대로 걷게 된 동물을 루수스 나투라(lusus natura), 자연의 농담이라고 불렀다. 괴물이라는 단어도 라틴어로 ‘경고하다’라는 뜻인 모네레(monere)에서 파생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그렇다면 농담 중에서도 가장 뼈있는 자연의 농담은 경고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으므로 인간에 경고하는 신호라 보아도 좋을듯하다. 그래서인지 일반인에게 기형은 불행이고 비극으로 인식된다. 하지만 과학자에게 기형은 ‘선물’인 듯하다. 왜냐하면 자연 안에서 존재하는 유별난 대상에 초점을 맞추어 생명의 다양성을 탐구할 수 있는 행운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과학자가 말하는 농담이 모두의 불행이 아닌 행운의 기회가 되길 바라는 책이다. 사전적 의미로 전형(典型)은 모범이 되는 본보기이며 이형(異型)은 보통과 다른 모양이고, 기형(畸形)은 보통과 다르면서 비정상적인 모양이다. 그러므로 전형과 기형 사이에 이형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저자의 주장은 어떠한 변이를 일으켜 이형이 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비정상이라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다르게 생겨먹은 것이 오답인 이유는 전형이 정답이라는 편견 때문이다. 오히려 이형이야 말로 진화를 위한 새로운 선택을 의미하지 않느냐 질문한다. 전형이라는 고정관념이 완성과 미완성을 가르는 기준이 되어 선택의 편견을 낳게 되는 건 아닌지 정상과 비정상의 이분법적인 시각을 고착화하는 것은 아닌지 제고해보라는 것이다. 저자는 만약 괴물을 만드는 발생적 메커니즘이 있다면 그것을 증명해서 다양한 종류의 발생적 이형이 왜 다양한 괴물의 발생을 말하는 것이 아닌지를 밝히고자 하였다. 우리는 그동안 기형이 유전적인 돌연변이에 의해 생기는 것이라는 믿음이 강했다. 그 바탕에는 진화와 DNA에 대한 절대적 신뢰가 자리잡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일찍이 위대한 유전학자 테오도시우스 도브잔스키는 “진화의 개념을 통하지 않고서는 생물학의 그 무엇도 의미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젠 다윈의 진화론은 생물학의 범주를 넘어 다른 많은 학문 영역들은 물론 우리 일상생활에도 폭넓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이제 감히 이렇게 말하련다. “진화의 개념을 통하지 않고서는 우리 삶의 그 무엇도 의미가 없다.”고.” - p. 20, 최재천 <다윈지능> 中에서 저자도 언급했지만 우리는 자연이 완벽하며 더불어 진화론도 완벽한 체계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유전자는 설계와 조절 및 통제능력을 갖고 있어 동물이 조립되어 가는 설계도를 담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DNA를 잘 계획된 프로그램이나 조리법, 청사진 등으로 은유하고 발생적 이형은 돌연변이에 의해 갑자기 나타나는 급작스런 사건으로 치부한다. 통섭학자 최재천은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때문에 가치관과 인생관, 세계관이 하루아침에 바뀌었다고 말한다. <이기적 유전자>는 유전자의 관점에서 모든 세상을 바라보게 하는 책이다. 보잘 것 없는 DNA라는 화학물질이 단세포생물을 거쳐 오늘날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에 살아남아 그 역사를 이어가고 있으니 생명은 영속가능성을 지니며 내 생명의 주인은 꼭 나만 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 리처드 도킨스의 주장이다. 도킨스는 끊임없이 그 명맥을 이어온 DNA를 불멸의 나선(immortal coil), 생존기계(survival machine)라 부른다. 이 완벽해 보이는 이론은 최재천 교수가 주장하듯이 공존, 공생의 개념을 떠올리는데 유용하다. 하지만 모든 생명체를 유전자의 관점에서만 재해석한다면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바로 이형의 발생, 이어지는 기형이라는 판단의 소용돌이이다.
예를 들어 남녀가 각기 다른 자세로 소변을 보는 것은 본능인가 유전인가 학습인가. 신체적 형태가 달라 다른 행동이 나타나는 차이는 유전적 행동이 아니다. 지속적이고 평범한 외부요소의 상호 영향일 뿐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두뇌에 유전적으로 배선된, 계획적으로 특성화된 행동 유전자와 연결 짓고 싶어 한다. 발가락이 네 개로 태어났다면 그 아이는 발가락 네 개 유전자로 기형이 된 것이 아니다. 발가락 갯수는 사지가 처음 자라나는 뿌리인 사지싹의 발생과정과 크기와 관련이 있다. 괴물 같은 팔다리 기형이 가장 빈번한 동물은 양서류인데 이들은 유전적 돌연변이 때문에 팔다리 기형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투과성이 용이한 피부특질과 표피 없는 알의 특성 때문에 배아가 이루어 질 때 환경적 요소가 보다 쉽게 침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로 팔다리 없는 양서류가 많이 출현한다면 환경의 오염도가 증가했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딱정벌레의 경우도 뿔이 크면 혼자서 공급하는 똥이 많기 때문에 유충이 더 잘 자라게 도움을 준다. 결과적으로 몸집이 큰 아비 밑에 큰 새끼가 자라나게 된다. 이는 유전적 요소가 진화를 이끈 것이 아니라 발생을 특징짓는 상호작용의 속성이 다음 세대로 대물림 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무조건 유전과 DNA에서 답을 찾으려 한다. 후세에 더 좋은 쪽으로 진화한 것도 유전이요, 더 나쁜 쪽으로 대물림 된 것도 유전이라는 식이다.
저자는 DNA를 모든 발생을 위해 원료제공을 돕는 분자 정도로 인식해야지 통제 가능한 만능 프로그램으로 인식하지 말라 충고한다. 이 책은 불완전한 자연과 그 속에서의 진화보다는 발생의 중요성에 무게를 두었다. 전통적인 다윈주의와는 다른 관점을 제시하며 유전자 중심적의 사고방식을 경계한다. 유전적으로 예정된 산물보다 발생적인 과정에 더 집중하는 후성설을 자기 이론의 근거로 사용한다. 과학적인 평가는 전문영역이겠지만 DNA 만능이론에 안주하던 독자들에겐 의미 있는 반론인 듯하다. 무엇보다 기형이 유전이 아닌 발생의 문제라면 괴물은 하늘이 내리는 천벌 이라기보다는 우리가 공동으로 인식해야 할 인재일수 있으며, 어쩌면 괴물이 괴물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괴물은 미리 정해진 것이 아니고 어쩌다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그 괴물은 그다지 운명적이지도 필연적이지도 않다. 그렇다면 우린 괴물을 그다지 두려워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2. 괴물은 인간인가 초능력자인가 개인적으로 나는 산모였던 적이 있어서 그런지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많이 떠오른 이미지는 흉측한 기형아의 모습이 많았다. 고대 로마인들은 기형아들을 티베르강에 익사시켰다고 한다. 산모는 한번쯤 자신의 태아가 기형아인 꿈을 꾼다고 한다. 만약 태아가 기형이라는 결과를 받았다면 충분히 낙태를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정상이 아닌 것을 혐오하고 공포스러워 하는 심경은 이해가지만 정상이 아닌 이유가 곧 죽거나 불행해야 할 조건인가는 이 책을 읽으며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저자가 알려준 외눈증의 사례를 살펴보면 우리가 말하는 정상의 경우는 외눈증과 두얼굴 증의 연속적인 스펙트럼의 중간에 위치한 경우의 수 일 뿐이다. 새로운 형태라고 무조건 돌연변이라 규정해야 하는 것일까 싶어진다. 정상인 얼굴이 더 완성된 것이고 더 완벽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해보면 대답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 에 손을 들고 싶다. 외눈증이 비정상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기형이라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저 전형의 관점에서 다르게 생긴 이형일 뿐이다. 이러한 발생적 이형은 배아 초기에 가해진 어떤 원인에 의해 드러난 복잡한 발생의 연쇄적 산물일 뿐 신적인 유기체가 있어 유전적으로 미리 결정된 계시에 의해 생겨난 것이 아닌 것이다. 저자는 머리 하나를 생성하는 가능성을 진화시키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우연히 머리 두 개의 가능성이 진화한 것이라 부연한다. 머리가 하나일 확률이 많아지면 마찬가지로 머리가 두 개일 확률도 많아진다는 것이 진화론에 입각한 논리 일 것이다. - 외눈증에서 정상적 형태를 거쳐 두얼굴증에 이르는 와일더의 전체 '코스모비아'계열.
이 시점은 “무언가 중요한 발생학적 단계가 빠르게 진행 중이거나 빠른 변화로 막 진입할 예정이어서 특정한 부분의 발생이 다른 부분들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일어나기” 때문이다. -p 80 역으로 이 시점에 수많은 환경적 조작을 가함으로서 다양한 기형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정확한 시점에 환경적 손상을 입히면 어떤 특정 기관의 발생도 괴물스럽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소름끼쳤다. 병아리 배아단계에서 온도나 화학처리 같은 부화환경을 조작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 한다. 어떤 종은 온도를 달리할 경우 성별이 달라지는 것도 있다. 따라서 진화와 발생은 분리 될 수 없으며 어떤 기형도 유전이나 환경 하나의 요인만으로는 완벽히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발생 메커니즘을 알면 진화가 전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고 무엇도 정해진 발생은 없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는 것. 이는 곧 괴물로 정해질 운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괴물일수 있었다는 뜻이다. 아니 괴물의 입장에서 보자면 발생에서의 실패자일 뿐이다. 무차별적인 괴물의 가능성은 누구에게나 공평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운 좋게(?) 괴물이 된 후엔 어떻게 생이 달라질까.
두 다리가 없이 태어난 아이는 두 팔로도 걷기를 배우고 다리를 두 개만 가지고 태어난 염소는 절룩거리며 두 다리로만 걷기를 습득한다. 기형이 된 다음에도 얼마든지 정상은 가능하다. 태어날 때부터 다리가 없는 채로 태어난 아이는 우리가 보기에는 불구이지만 생애초기부터 두뇌는 새롭게 조직화되고 사지가 없는 신체에 연관된 행동적 적응을 포함한 특별한 발생 경로를 겪기 때문에 외려 특별한 능력을 갖게 된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두 팔로도 잘 걸어 다니고 세심한 동작을 해낼 수 있다. 선천적 시각장애인은 두뇌의 조직화를 통해 다른 감각이 더 발달하게 되는 보상작용이 이루어진다.(장님이지만 청각이나 촉각, 후각이 정상인 보다 더 발달한 이유가 대뇌피질의 재조직화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달리기나 수영하기 같은 움직이는 능력도 마찬가지다. 이는 타고난 능력이 아니고 신체 각 부분 발생적 대화와 상호작용에 의한 결과이다. 생명체에 있어 발생의 각 단계는 여러 선택의 나열로 구성될 뿐 최후의 완성된 목적을 가지고 이루어지는 의도적 과정이 아닌 것이다. 이는 삶의 단계마다 자신에게 가장 적절한 방법을 스스로 발견한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절대로 미리 짜여진 각본대로 유전적으로 조절되는 본능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이제 괴물도 우리와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같은 종류의 인간임을 이해해야 하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부족한 조건으로도 자기 발전을 이루었으니 우리보다 더 대단한 능력을 가진 초능력자인 것은 아닐까.
3. 괴물은 친구인가 적인가
마지막으로 저자는 선과 악, 유전자와 환경, 진보와 보수 등 이분법의 구분이 익숙한 사람들이 견디기 힘들어하는 성적 모호함의 사례들을 보여준다.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정의를 다시 생각하자는 것이다. 단성unisexual, 간성, 다중성multisexual에 대한 개방성을 강조했다. 세상에 성별이 남성과 여성만 존재해야 한다는 시각은 자연이 어떠해야 한다는 인간이 만든 선입관에 불과하다는 것. (나는 이 부분에서 '동성결혼' 찬성의 입장을 밝힌후 지지율이 하락했다는 오바마를 떠올렸다. 등을 돌린건 우파 여성이었다. 젠더에 대한 고정관념이 어느 성별에서 더 강하게 작용하는지 새삼 궁금하다) 환경에 따라 성전환이 가능한 열대어의 사례는 충격적이기 보다 부러웠달까. 저자는 인간과 동물계에 존재하는 가지각색의 성적 다양성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주장한다. 예를 들어 모호한 생식기를 가지고 태어난 아기에게 부모나 사회의 관점으로 일방적인 수술을 하기 보다는 아이의 성정체성과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러 사례에서 보았듯이 태어난 직후 시행한 성 재지정 시술의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성정체성의 결정에 더 이성적이고 더 겸손해져야 한다는 충고가 선뜻 와 닿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도 오랜 세월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을 덮고 나니 이형이나 기형이 그 전과는 다른 존재로 다가온다. 후성유전학적인 관점으로 발생기간에 형태와 기능이 상호작용한다는 인식은 신선하고도 인상적이다. 기형에 대한 동질감까지는 아직 이지만 적어도 혐오나 공포감은 많이 사그라든 느낌이다. 자연은 완벽하진 않지만 그 불완전함 때문에 인간을 놀라게 한다. 인간이 만들 수 있는 창조물이라는 것이 ‘결코 자연이 이미 만들어 놓은 것보다 더 놀라울 수 없다’는 저자의 깨달음이 새삼 자연 앞에 숙연해지는 시간을 제공한다. 자연은 괴물을 만든 적이 없지만 인간만이 인간을 괴물이라 부른다. 인간이 괴물을 창조한 것도 아니면서 말이다. 그런데 막상 우리는 거울을 보며 스스로 괴물이 아닌 것에 감사한 적이 있을까. 살아가면서 실은 괴물이 아니었던 사람이 더 괴물이 되어가는 경우가 많은 것은 아닐까. 신체가 멀쩡하다고 해서 꼭 정신도 같이 정상이라는 법은 없다. 대개 정신적 괴물은 신체가 정상인 사람에게 더 빈번한 후천적 발생과정인 듯하다. 그렇게 보자면 어차피 괴물은 서로에게 적대자가 아니라 친구일 수밖에 없으며 누가 누구의 조연이 아닌 각자가 주인공일 수밖에 없다. 앞으로는 거울을 보며 거울 속 우리 자신이 나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진 결과물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겠다.
우리는 수많은 부분과 과정의 총합이며 생식기의 성장을 촉진하고 두뇌의 기능을 조절하는 유전자와 생식선, 호르몬분비 간 연쇄효과의 산물이다. 이 모든 요소가 협력해 거울 앞에 보이는 우리 자신을 만든다. 게다가 우리가 자신을 어떻게 지각하는지, 궁극적으로는 가족과 문화 안에서, 시대 속 개인으로서 우리가 누구인지를 정의하는 타인과의 수많은 상호작용을 통해서도 우리 자신을 만들어간다. 거울에는 단 한 명의 모습만 보이겠지만 사실 우리는 혼자가 아닌 셈이다. -p 212
우리는 지금 나 아닌 괴물, 그리고 옛날에 나 일수도 있었던 괴물, 앞으로 나 일지도 모를 괴물과의 수많은 상호작용을 통해 자아를 형성한 존재이다. 괴물은 곧 나이고 당신이고 우리의 또 다른 모습이다. 우리는 모두 각기 다른 괴물의 가능성을 가지고 태어난 같은 인간이니까. 그러므로 괴물이 아니라 좋아할 것도 괴물이라고 슬퍼할 것도 없다. 괴물이 아니라면 괴물을 친구로 받아들이고 괴물이라면 인간을 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된다. 그것이 공평하다. 농담은 아마 우리 모두가 괴물이기도 하고 또 모두가 괴물이 아니기도 하다는 괴물 같지만 괴담은 아닌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린 지금 잠시 어떤 이유로 괴물이 된 인간을 손가락질 할 자격도 없다. 인간은 괴물이 될 가능성과 괴물로 변할 잠재력을 이 세상 어느 존재보다 많이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괴물이 되지 못한 인간만이 괴물이 된 인간을 손가락질하기 때문이다. 거울을 보고 한번만 손가락질을 해보자. 우리가 가리키는 방향이 의심할 수 없는 괴물을 향한 것이라면 그 방향은 아마도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새로운 괴물의 얼굴은 아닐까. 그때라면 지금처럼 웃으며 농담이라 말할 순 없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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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형과 괴물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탐구하고 고찰하는 책 자연의 농담입니다. 실제 생물학을 전공한 번역가라 그런지 매끄럽고 재밌게 해설되어 있는거 같습니다. 지구 생물들의 아름다운 공존을 위해서 이형적인 존재들을 더욱 자세하게 탐구해서 고정관념을 탈피하고자 하는 작가의 마음이 돋보입니다. 과학 카테고리로 분류되어 있지만 인류를 위한 철학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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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나름의 전형과 기준을 정해놓고 살아간다. ‘옳음, 선, 아름다움’ 등의 기준을 통해 그것을 따르며 선호한다. 그럼과 동시에 그 질서에서 벗어난 혼란, 일탈, 예외의 것은 배척하고 외면한다. 저자는 이들 중의 하나인 자연의 농담에 관해 주목한다. 이는 라틴어로 ‘루수스나투라’ 라고 하는 이 말은 자연적인 질서를 벗어난 머리가 둘 달린 사람, 눈이 하나인 사람, 다리가 둘뿐인 염소 등의 기형들을 가리킨다.
외눈증과 두얼굴증, 팔다리와 같은 사지가 있고 없음, 성의 모호함 등의 개별적 사례를 통한 과학적 실험과 연구로 그러한 이형을 만드는 발생 메커니즘을 밝힌다. 이 발생 매커니즘에 관한 학문인 발생학은 배아 초기 수정란의 시기를 기형을 유발하는 중심으로 이 시기의 조건과 변수에 따라 형태적 변이를 밝히는 학문이다. 책을 읽다보면 이 같은 찰나의 시기에 이형을 발생시키는 변수들은 정말 미세한 것들이라 극적인 느낌조차 든다.
이러한 결과는 이른바 우리가 부르는 이른바 정상과 이형을 구분 짓는 힘없는 벽을 쉽게 허물어뜨린다. 이러한 논리는 남녀의 구분의 차이를 성적 차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대로 노출된 외부에서 수정란 시기를 갖는 어류나 파충류 등의 종에서는 이런 성별의 구별이 더욱 유동적이며 모호하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자웅동체라는 두 가지 성을 지닌 생물도 있을뿐더러 시기에 따라 성별이 달라지고 그러한 역할을 하는 종들도 많다. 하지만 포유류에서는 남자의 생식기를 한 여자 또는 여자의 생식기를 한 남자 등의 성적 모호함은 분명한 이형으로 본다. 특히 사회와 질서라는 틀에 집착하는 인간은 이런 불분명함을 쉽게 인정하지 못한다. 책은 하나의 성을 규정짓기 위한 강압과 그릇된 편견이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 그 실례들을 보여준다.
학문 그 자체는 가치중립적이지만, 그에 대한 지나친 추종과 획일화된 태도는 많은 비극을 야기한다. 저자는 그동안 진화론 위주의 과학에서 약자이며 실패작으로 취급했던 이형태, 괴물을 재조명하였다. 그들은 비록 괴물, 기형으로 불리지만 나름 훌륭하게 적응하여 살아가는 모습에서는 경이가 느낀다. 이렇게 그들의 탄생과 삶 속에서 숨겨졌던 또 다른 자연의 비밀을 캐내본다. 이들을 발생학이라는 또 다른 이름의 학문으로 그들을 포섭하고 규명해보았지만 그것은 그러한 것에 앞서, 스스로 그러한 것인 자연일 것이다. 저자가 이들 괴물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학문으로 규정되면서 동시에 규정되지 못한 것들에 대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그것은 설정된 담벼락 위로 해체되고 재설정되는 끊임없는 소통과 포섭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러한 태도는 학문뿐만이 아닌 우리의 사고 안에서, 사회 속에서 일으킬 수 있는 오류를 피해갈 수 있는 좋은 방법 중에 하나가 분명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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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진화론>에 대해 오해하는 부분이 짜잔~하고 '변신'하는 것이 진화인 줄 착각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창조론>에서 조물주가 사람을 뚝딱 만든 것처럼, 또 <포켓 몬스터>에서 '경험치'를 쌓으면 더욱 괴력을 발휘하는 고급 몬스터로 진화하는 것처럼 말이다. 헌데 '진화'는 굉장히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지는 것이다.
또 단세포에서 다세포로, 어류에서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로 진화하였다고 과학자들이 말하지만,앞서 말했듯이 엄청나게 오랜 시간에 걸쳐 진화가 이루어진 것이며, 그 가운데 두 차례에 걸쳐 <대멸종>을 겪었으며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생존'에 유리한 종만이 살아남는 쪽으로 진화가 이루어졌다는 점을 이해하기 쉽지 않은 모양이다. 그러다 보니 <진화론>하면 '원숭이가 사람으로 진화하였다'는 오해가 더 쉽게, 더 널리 알려져 톡톡히 오해를 받는다.
그나마 오해를 받는 것은 나은 편이다. 요즘엔 <창조론>이 업그레이드한 듯한 <지적설계론>이 등장하여 <진화론>과 팽팽히 맞서고 있는 형국이다. 달리 얘기하면, 그만큼 <진화론>이 완벽한 검증을 거치지 못한, 또 완벽하게 증명하지 못할 정도로 빈틈이 많은 약점을 지녔다는 말이다. 허나 <창조론>이나 <지적설계론>도 만만찮게 헛점이 많다. 과학은 '검증 가능'해야 한데, <창조론>은 '신의 존재'를 증명해내지 못하니 말할 것도 없고, <지적설계론>은 진화론이 완벽하지 못하니 사람과 같이 고도의 설계기술이 필요한 것이 단지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났을리 없다며 간접적으로 '지적설계자(신)'의 존재를 증명해냈다고 주장한다. 이렇다 보니 무엇이 100% 맞는 이론인지 현재로서는 확답을 내릴 수 없는 상황이다. 물론 전문가인 과학자들은 각자의 주장이 맞다고 우기고(?) 있지만 말이다.
그런 상황이라 이 책에서 다룬 <기형과 괴물>도 보는 관점에 따라 달리 보이기 십상이다. <창조론>의 관점으로 보면 신의 미움을 받은 혐오스런 존재일 따름이고, <지적설계론>으로 봐도 지적설계자의 실패작 쯤으로 볼 따름이다. 그렇다면 기형으로 태어나거나 후천적으로 괴기스런 모습으로 변하게 된 괴물(사람)은 '버림받은 존재'일 뿐이다. 그러니 그들을 동정하거나 불쌍히 여기거나, 때론 차별하고 격리시키고 심지어 제거해야만 하는 존재일 뿐이다.
허나 <진화론>으로 바라보면 확연히 다르다. 아무리 정상과 다른 기형이거나 괴물처럼 보일지라도 그건 그냥 '진화의 과정'에서 아주 자연스러운 모습일 따름이다. 그러므로 단지 돌연변이와 같은 일어났을 뿐이고 한 사람으로서 존엄한 인격을 갖추고 태어났으니 불쌍하게 여기거나 없애버려야 할 존재로 볼 까닭이 전혀 없다. 진화론적 관점으로 바라보면 말이다.
물론 정상적인 모습이 보기에도 좋고 <진화론>에서 강조하는 '생존'에도 아주 적합한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러나 '대멸종'과 같은 대변혁의 시기가 찾아오면 모르는 일이다. 이를 테면, 눈과 입 사이에 코가 있어야 정상이지만, 코가 눈과 눈 사이에 있거나, 코가 두 개가 있거나, 또는 아예 얼굴이 두 개인 비정상적인 기형아로 태어났는데, 지구환경이 나빠져서(운석충돌이나 화산폭발과 같은) 정상인들은 숨쉬기가 불리해지고, 다른 기형아들이 숨쉬기가 편해 더 많이 살아남는다면 진화는 이제까지 정상이던 것을 버리고 생존에 더 유리한 형질을 후세에 물려주기 마련이다. 생존에 더 유리하게 말이다.
허나 기형이나 돌연변이가 꼭 생존에 유리한 쪽으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네 다리 짐승이 세 다리거나, 두 다리로 태어났다면 살아남기가 더욱 힘들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진화는 어느 쪽으로 일어나는 것일까? 글쓴이는 조심스럽게 어느 쪽으로도 편향되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놓고 있다.
그동안 <진화론>은 '적자생존'이니 '자연선택'이니 하면서 살아남기에 유리한 쪽으로 진화하였다는 결론에 도출하곤 하였다. 그런데 그걸 증명하기가 꽤나 어려웠다. 왜냐면 물속에서만 살아가는 것보다 물속과 뭍위에 양쪽에서 살아갈 수 있다면 더욱 생존 가능성이 높아지니 분명 그런 과정을 거쳤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런 방식으로 모든 생물에 적용하다보니 오스트랄로 피테쿠스가 어떻게 호모 사피엔스로 진화하였는지 명쾌하게 설명하지 못한다. 또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는 진화의 앞뒤 관계인지, 서로 사촌지간인 것인지 학자들마다 의견이 분분할 따름이다. 왜냐면 그 비밀을 밝혀줄 중간 단계의 증거(화석 따위)를 발견해내기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글쓴이는 <기형과 괴물>을 신에게 버림받은 존재도 아니고 진화 선상에서 당연히 도태되어야 할 존재가 아니라 그저 '정상 모습'을 띠려다가 우연한 계기(유전적 결함이든, 불우한 사고, 그리고 인위적인 조작 등까지 모두 포함한)로 '비정상 모습'을 띠게 된 결과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과학적, 역사적 고찰의 결과물이다. 실제로 기형을 지닌 이들이 겪는 불편함이나 주위 사람들의 비이성적인 관심이 주는 상처는 말로 다 할 수 없도록 크디 큰 것이 현실이다. 허나 기형이 되는 것은 신에게서 버림받은 것도 아니고, 불쌍하게 동정받아야 할 존재도 아닌 자연스런 일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말하였다. 허나 절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머리로는 이해해도 행동으로는 그렇지 못한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외눈박이, 두 머리증, 팔다리가 없거나 더 많은...비록 겉모습은 괴기스러울지 몰라도 그냥 진화상에서 자연스러운 과정일 따름이라는 과학적 견해를 읽어보았다. 현실적으로도 그렇게 냉철하고 이성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