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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의 두 얼굴
자본주의 사회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놀라울 정도의 활력과 창의성에서 비롯된 풍요(豊饒)다. “가장 강력한 자본 소유주들은 엄청난 금융 수단을 한곳으로 집중시키고 인재를 최대한 끌어 모음으로써, 또한 투지와 경쟁을 조장함으로써 전자와 정보, 약학과 의학, 에너지, 항공학, 천문학, 재료공학 등 최대한 다양한 분야에서의 과학적, 기술적 연구를 통제하고 관리”[p. 20]함으로써 “역사상 처음으로 인류는 물자의 풍족함을 누리고 있어. (이는) 사용 가능한 물자의 양이 인류에게 꼭 필요한 만큼을 훨씬 뛰어넘는다” [p. 21]는 것을 의미한다. 다른 하나는 가난[貧困]이다. “세계에서 10억 명 가량은 자유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산다고 봐야 해. 이런 사람들에게는 하루하루 살아남는 것만이 유일한 관심사란다. 즉 이들이 저개발로 인한 배고픔과 목마름, 전염병, 전쟁 같은 폐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되는 거야. 이 문제로 해마다 목숨을 잃는 남녀노소의 수가 6년에 걸친 제2차 세계대전이 야기한 사망자 수보다도 많단다. (다시 말하면) 자본주의는 지구상에 일종의 ‘식인 풍습’을 만들어냈단다. 극히 적은 소수를 위한 풍요와 대다수를 위한 살인적인 궁핍이 식인 풍습”[pp. 18~19]이 아니고 무엇이겠냐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두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저자의 주장에는 공감하지만, 자본주의가 ‘식인 풍습’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하는 것은 동의하기 어려운 얘기다. 왜냐하면 같은 논리를 적용하면, 고대 노예제 사회, 중세 봉건제 사회, 근대 자본주의 사회, 자칭 ‘공산주의’ 사회 모두 소수의 풍요와 다수의 궁핍 상황을 탈피하지 못했으니 모두 ‘식인풍습’을 만들어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유재산권 보장, 불평등의 원인
저자에 따르면 세계의 가난이 사라지지 않는 원인은 ‘자본주의’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유재산의 절대적인 보호는 집단의 이익을 희생할 뿐 아니라 문제의 핵심이자 흉물스럽기 그지없는 자본주의의 원천” [p. 55]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개인의 이익을 보장하지 않는, 사유재산의 부정은 소비에트의 실험에서 알 수 있듯이 창의성과 적극성을 거세시켜 버린다. 그렇다면 사유재산권을 어디까지 보장해야 문제가 없을까? 어쩌면 사민주의의 길을 걷고 있는 국가들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는 누구도 쉽게 답을 내놓을 수가 없을 것이다.
한 인간으로서 해야 할 일
“사람들은 전 세계적으로 빈곤이 줄어들고 있으며, 중산층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고들 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엔 아직도 정기적으로 식수를 조달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20억 명이나 됩니다. 4분마다 1명이 비타민A 결핍으로 시력을 잃습니다. 지난 시대의 전염병들이 해마다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갑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세계에서 제일 부자인 45명의 수입은 작년 한 해 동안 41퍼센트 증가한 반면, 같은 기간 동안 47억 명의 수입은 28퍼센트 감소했습니다. 내가 고발하는 자본주의는 전 세계에서 5초 만에 1명씩 어린 생명이 죽어나가게 만드는 치명적인 스캔들과도 같습니다. 이건 반(反)인류 범죄에 해당됩니다. 자본주의가 인간에게 치명적인 위험인 것은 명백해요.” [pp. 193~194]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저자는 우리가 새로운 역사적 주체로 부상하고 잇는 ‘지구촌 시민사회’의 일원으로서 이렇게 부당하고 불평등한 현실에서 눈을 돌리지 말고, 이에 저항하는 사회운동에 합류하기를 촉구한다. “지구촌 시민사회라는 화두는 지극히 다양한 문화, 사회 계층, 연령대에 속하는 수백만 명의 남녀를 한데 모으는 구심점 역할을 하지. 이들에게는 오직 하나의 동기만 있을 뿐이야. “나는 타인이고 타인은 나다.” 중앙 위원회나 정당 노선 따위는 더 이상 필요가 없어. 지구촌 시민사회는 오늘날 5대륙에서, 가장 예상을 뛰어넘는 장소에서, 식인적인 세계의 질서에 맞서는 수많은 저항 전선으로 구성되어 있단다. 더 이상 다양할 수 없는 사회 운동이 이를 대표하고 있지. 국내와 해외를 막론하고 수천 수만의 크고 작은 사회적, 반자본주의적 운동들이 활동하고 있어. 이들이 모두 한데 모이면 신비한 형제애가 형성되고, 이러한 연대감은 하루가 다르게 점점 더 강력한 힘이 되어 자본주의라는 야만에 맞서 투쟁하게 되는 거지. 현재 지구상에는 이렇듯 각성한 사람들이 수억 명에 이른단다.” [pp. 178~179]
작고 무력해 보이는 이들의 힘이 모여 과거 노예 제도 폐지나 식민지 해방 등이 이루어진 것처럼, 어떤 형태로 이루어질 지는 몰라도 신성불가침한 사유재산제도에 바탕을 둔 자본주의도 무찌를 수 있다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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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이후의 좀 더 심도깊게 들어가는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이다. 장 지글러를 처음 접한 것은 유명한 팟캐스트를 통해서이다. 그것도 무려 공포물로 채택한 캐스터가 해주는 이야기는 정말 그럴법하고 오싹한 것이었다. 자본주의로 먼저 부유해진 권력국에서 제 삼국이나 개발도상국에 어떤 식으로 접근하여 어떻게 거대자본의 노예국으로 만드는가에 대해서 소름끼치게 들었다. 자본의 혜택을 누리는 것에만 집중하고 있는 우리들은 정작 이 체제가 작게는 한 인간에서부터 크게는 세계를 어떻게 지배하고 소비하고 이용하는지에 대해 깊게 생각하려하지 않는다. 식량이 대량생산되는데 어째서 굶어죽는 사람은 줄지 않는지? 어째서 부라는 것은 노동자들과 약자에게 골고루 윤활되지 않는것인지? 자본주의를 괴물이라고 부르지만 거기서 감히 벗어날 생각은 하지 못하는 우리들은. 전작을 읽어봤다고 해도 이 책은 꼭 읽어보는 것이 좋을 거라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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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 선생 책을 읽고 좀 가벼운 마음으로 책을 골랐다. 여러 책 중에서 그나마 가벼이 볼 수 있지않을까 '기대'를 했다. 실제로 두껍지 않다. 페이지수는 전체 197페이지이니 간만에 速讀을 자신했다. 그런데, 이런! 예상이 저만치 빗나갔다. 우선, 저자 주장의 과격함에 놀랐다. 마르크스의 자본론, 공산당선언, 우주 시민사회, 혁명, 체제개혁 등 등장하는 용어들이 예사롭지 않다. 더불어, 저자가 사회학 전공 교수이기에 사용하는 단어 자체가 묵직하다. 초반 책장 넘기는 속도를 상당히 저해하는 이유다. 깊은 사유에 익숙하지 않은 탓에 몇 번이고 제자리에서 맴돌았던 것 같다. 사회학적인 어려운 용어, 과격한 주장이 이 책의 특징이다. 마치 80년대 학생운동하던 시절 몰래 돌려보던 '사회전복 세력'들의 지침서를 읽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래서 인가! 2020년이 내일모레인 지금 이시기에 이런 주장을 하는 학자가 있다는 것이 새삼스러웠다. 그것도 유럽 대표 지성이며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식량특별조사관까지 지낸 학자가. 물론,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이해할려고 노력한다. '원래 사회학자인 저자가 식량특별조사관으로서 세계 빈민국가의 실정을 직접 경험한 결과 그 구조를 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체제전복과 같은 혁명이 답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그만큼 저자는 가장 적나라한 밑바닥 모습까지 목격했을 가능성이 클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여러 제안, 대안을 제시했으나 강대국과 자본에 의해 무시되어지는 천민자본주의의 민낯에 치를 떨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래도 그렇지 이 책은 너무 과격하다. 119페이지에 저자가 언급한 [우리가 그 희생자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오로지 출생의 우연이야. 요행히 살기 좋은 지역에서 태어났다는 점뿐이지]라는 지적에 매우 공감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실망스러운 점은 저자의 과격한 주장 이면에 어떤 모습으로 자본주의를 대체할 것인지 명확한 정의는 없다는 것이다.책의 말미에 손녀가 동일한 질문을 하지만 저자는 "정해진 프로그램이 없다"(181P)라고 물러서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한참을 "소수 부자들의 양팔을 부러뜨려야만 한다"(176P)고 핏대를 올리지만 이후의 대안이 없다보니 '과격함'만이 남고 만다.그것도 매우 막나가는 듯한. 이 점이 차라리 다른 방식으로 내용을 전개했으면 어땧을까하는 아쉬운 지점이다. 즉, 식량조사관으로서 다양하게 접했을 후진국, 개도국의 구조적 문제를 사례 중심으로 함께 공유하는 내용이었다면 훨씬 현실감있고 독자들의 정서적 동질감도 높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콜롬비아, 과테말라, 콩고의 사례가 잠시 언급되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시선을 끌기엔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은 과격하지만 묵직하면서도 어려운 숙제를 던지고 있는 책이다. 내용 전개의 아쉬움은 있지만 그런 아쉬움으로 커버되지 못하는 전 세계 기아문제, 자본주의 구조적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안겨준다. 솔직히 '혁명'을 꿈꾸진 않는다.자본주의의 종말을 조만간 목도할 것 같지도 않다. 그럼에도, 묵직하게 던져지는 저자의 고민의식은 공감할 수밖에 없다.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이고 흔히 얘기하는 자본주의의 폐해는 실재한다. 다만, 그 극복을 위해 현재 시점에서의 대안을 만들어내는 것은 과제인 것 같다. 왜냐하면 마르크스의 공산당선언과 같은 사회주의 혁명 봉기는 지금 맞지 않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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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보다 풍요로운 세상에 살고 있지만 이런 풍요로운 세상이 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내 어린 시절만 하더라도, 나는 육성회비가 없어 초등학교 칠판에 이름이 올라가 있었고, 우유급식도 먹지 못했다. 언니의 옷을 물려받는 건 당연했고, 도시락 반찬도 김치나 멸치 혹은 계란 정도였다. 옷을 자주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수련회 같은 걸 가려면 돈을 내는 것도 버거웠었다. 그렇게 부모님은 4남매를 키웠고, 우리는 가난함의 힘듦을 조금은 알면서 자랐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그런 힘듦을 아직 알지 못한다. 나도 그렇지만 남편도 아이들에게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으려 노력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 열심히 살고 있다. 열심히 살지만 가끔 아이들은 자신보다 더 잘 사는 아이들을 보며 나름 불평을 늘어 놓았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세상은 우리보다 힘들고 어려운 친구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란 책을 아이들과 읽었었다. 이 책의 작가가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란 책을 냈다. 나 역시도 가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던 사람이고, 부의 분배가 어떻게 해야 조금이라도 공평할지에 대한 생각을 했던 사람이기에 이 책을 읽었다. 세상에는 5초마다 아이 하나가 굶어 죽는다고 한다. 하지만 다른 한 쪽에선 어마어마한 부를 어떻게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 자본주의 이면을 이렇게 쉽게 쓴 작가도 많지 않을 것 같다. 읽는 동안 화가 나고 열 받기도 했지만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는 게 더 짜증난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을 읽는다. 내가 이 사회를 위해, 변화되는 사회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으로. 자본주의가 불러온 재앙이 무엇인지, 수백 년 묵은 투쟁의 역사를 알고, 아이들이 광산으로 떠나는 이야기를 하며, 풍요의 경제 그 이면에 숨은 어둠과 빚더미 위의 검은 아프리카, 그리고 무제한적인 이익을 위한 기업의 광기 등, 그리고 나온 해결책. 사실 책에서는 자본주의를 대체할 사회경제 체제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한다는 다소 무책임한 결론이 나왔다.
적어도 확실한 것은 몰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너의 세대가 자본주의를 무너뜨리기를 희망할 수 없는 건 아니야. 그리고 그런 전망을 하는 내 마음 속엔 하나의 확신이 있지. 개개인의 행동이 중요하다는 믿음 말이다. 나의 소만은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말한 확신을 자양분으로 삼는단다. 꽃들을 모조리 잘라 버릴 수는 있지만 그런다고 한들 절대 봄의 주인이 될 수는 없다. (184)
몇 명의 자본가가 세계의 부를 장악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이런 글이 어떤 해결책을 주는지 모르겠다. 어떤 해결책도 없기 때문에 답답하기만 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자체에 순응하기 보다는 생각하고 변화를 갈구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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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책을 5권을 구입했는데...읽고나니 책값이 아깝다는 생각이든다. 모두 제목만 틀릴뿐 저자가 기본적으로 주창하는 내용은 결국 하나로 모아진다. 모든 서구 나라들은 비판의 대상이 되고 너무 일방적이다. 종교적으로도 너무 편향적이다. 현재 자신들이 믿는 신을 무기로 국민들을 착취하는 중동에서 일어나는 불평등에 대해서는 질문이 없다. 하나 같이 자본주의 비판에만 몰두해 있고 서구 사회의 책임 부재로 인해 세상에 불평등이 존재 할수 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잘 사는 모든 나라에 대해 반대학 분연히 들고 일어나야 한다는 선동은 또 다른 구조적인 문제에 봉착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하옇튼 처음 공감이 가다가 뒤로 갈 수록 너무 일방적인 내용 때문에 반감이 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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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왜 세계의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는 장 지글러가 쓴 책이다. 장 지글러는 이 책을 자본주의를 비판하기 위해 썻다. 자본주의는 삶을 국가의 힘을 키우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대기업과 금융기관등 여러 소수 지배력에게 부가 몰리는 단점이 있다. 그 때문에 가난을 사라지지 않고 있지만, 자본주의를 무너뜨리지는 못한다. 인간은 공산주의를 통해 자본주의를 무너뜨리려고 한적이 있지만, 실패했다. 이 때문에 자본주의는 무너져야 하지만, 결코 쉽게 무너뜨릴 수는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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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초마다 사람들이 죽는다니 안타깝네요 ....생각이 많아지는 책 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소 장 지글러 작가님을 좋아했었는데 신간이 출시되서 구매했습니다 장 지글러 작가님의 책을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 제가 볼땐 빈부격차가 원인이라 생각합니다 !! 기부는 기분 좋게 부자되는 법이라고 알고있습니다 !! 그렇다고 기부를 안한다고 해서 나쁜사람이라곤 생각안합니다 !! 그냥 읽어보시면 답을 아실겁니다 !! 추천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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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그 직후 '누가 집값을 올리는가' 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서로 함께 볼만한 부분이 겹쳐서 리뷰에 추천을 해놓은다. 세상 사람들의 욕망은, 특히 극소수들의 부에 대한 열망은 평범한 사람들로써는 감히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거대한 걸까? 아니면 그들이 추구하는 부가 평범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의 거주지 혹은 인생 그 자체를 파멸시킬 수도 있다는 위험성을 간과하는 걸까. 잘 모르겠다. 나로써는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거대한 탐욕이다. 더 탐구해봐야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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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커가면서 늘 의문이었던 것이 있다. 세계의 빈곤층들이 밥 한끼 제대로 먹지 못할만큼 가난에 허덕이고 있을 때, 소수의 부유층들은 평생 써도 다 쓰지 못할 부를 쌓으며 온갖 부귀영화를 누린다는 점이다. 어딘가에 쌓여 대대손손 써도 모자르지 않을 부를 그들에게 나눠줄 수는 없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전작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를 읽게 했고 자연스레 이번 작품도 읽게 되었다. 작가는 자본주의의 부조리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하지만 '정답'을 알려 주진 않는다. 아마 이 고민에 대한 명쾌한 해답은 영영 나오지 않을 수 있겠지. 다만 같이 고민하고 변화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에 의의를 두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