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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호필_3.1운동을 세계에 알린 스코필드 박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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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3학년이 된 별찌가 사회를 배우면서 여러 위인들을 읽어보면 좋을꺼같더라구요 오늘은 이름만 보면 우리나라사람이거 같지만 스코필드 박사이야기를 읽어봤답니다차례도 한번 살펴보구요~조선을 너무 사랑했던 스코필드 박사님!이름은 스코필드가 아닌 석호필!3.1운동을 세계에 알리고자 쓰신 원고를 다리에 묵어서 일본 눈을 피해 귀국해서 세계에 알리셨던....이야기는 끝이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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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3학년이 된 별찌가 사회를 배우면서

여러 위인들을 읽어보면 좋을꺼같더라구요

오늘은 이름만 보면 우리나라사람이거 같지만 스코필드 박사이야기를 읽어봤답니다

차례도 한번 살펴보구요~

조선을 너무 사랑했던 스코필드 박사님!

이름은 스코필드가 아닌 석호필!

3.1운동을 세계에 알리고자 쓰신 원고를 다리에 묵어서 일본 눈을 피해

귀국해서 세계에 알리셨던....

이야기는 끝이 나지만 스코필드 박사의 1920년이후 활동들과

석호필 박사 연표로 한눈에 년도별로 잘 정리되어있어요

그리고 사진도 있어서 다시한번 아이들이 눈으로 기억할수 있게 좋았던거같아요

역사 이야기가 어린친구들한테 너무 어려운 이야기이지만

석호필과 같은 책을 통해 아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많지도 적지도 않은 글밥으로 부담스럽지 않게 읽기 좋은 책이였던거 같다.

 

 

 

 

 

1*****2 2019.04.1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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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호필 3.1 운동을 세계에 알린 스코필드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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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호필 3.1 운동을 세계에 알린 스코필드 박사 그 어떤 한국인보다 한국을 사랑했던 스코필드 박사의 이야기에 대한 감동이 아직도 남아 있네요. 사실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어떤 일을 했는지 잘 알지 못했답니다. 드라마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접했을 때에 혹시 스코필드 박사가 아닐까 생각하고 호기심이 많이 생겼었는데 한국을 사랑했던 마음을 한껏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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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호필 3.1 운동을 세계에 알린 스코필드 박사


그 어떤 한국인보다 한국을 사랑했던 스코필드 박사의 이야기에 대한 감동이 아직도 남아 있네요.

사실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어떤 일을 했는지 잘 알지 못했답니다.

드라마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접했을 때에 혹시 스코필드 박사가 아닐까 생각하고 호기심이 많이 생겼었는데

한국을 사랑했던 마음을 한껏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아서 가슴이 뭉클했던 책입니다.

큰애는 다행히 스코필드 박사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있더라구요.

자세히는 알지 못하지만 조금씩 책으로 접한 이야기들을 설명해주는 모습이 기특했어요.

그런 다음 이 책을 읽으니 더욱 뿌듯함이 몰려왔던 것 같아요.





9살 때에 조선이라는 나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스코필드 박사.

그의 아버지는 영국의 한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쳤으며 그곳에는 동양 유학생들이 몇 명 수업을 듣기도 했어요.

이병헌이라는 조선에서 온 학생이 있었는데 스코필드 박사는 그를 통해 조선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1916년 조선의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의 교장으로 있던 에이비슨 박사를 통해 조선으로 오게 되었어요.

캐나다에서 조선으로 오는 길은 멀고도 험했습니다.

무려 두 달이나 걸렸다는 사실!

스코필드 박사는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에서 아버지의 제자였던 여병현 씨도 만나게 되었고

배움의 열기에 가득 찬 학생들을 가르치며 목원홍 선생님에 의해 '석호필'이라는 조선의 이름을 갖게 되었어요.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조선은 엄청난 차별과 탄압을 받고 있는 암울한 시대.

스코필드 박사는 일본이나 캐나다를 식민지로 가지고 있는 영국이 얼마나 끔찍한 일을 하고 있는지 자신들은 못한다고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스코필드 박사는 일본에 의한 조선의 차별과 탄압을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가르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시작했답니다.





일본과 영국의 동맹관계 때문에 그나마 스코필드 박사에게는 호의적이었던 일본 관리들.

민족대표 33인 중에 한 사람이었던 이갑성 선생은 3.1 만세 운동을 세계의 다른 나라에 알려주기를 스코필드 박사에게 부탁하였고

3.1 만세 운동뿐만 아니라 제암리 학살 현장 등을 사진으로 기록하여 세상에 알리는데 힘쓴 스코필드 박사.

3.1 만세 운동으로 감옥에 가야 했던 많은 조선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도 이 책에 가득 묻어납니다.

그리고 3.1 만세 운동하면 생각 나는 유관순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더라구요.

스코필드 박사 아니 석호필 박사가 남긴 일제강점기의 처절함 속에서도 조선을 사랑했던 마음이 가득 느껴졌답니다.





1920년 캐나다로 떠났지만 3.1 만세 운동과 제암리 사건을 캐나다와 미국에 알리며 우리나라에 대한 사랑을 이어 갔던 석호필 박사.

한국에서 살기로 결심했고 한국의 인권 신장과 민주화에 대한 강연 등 우리나라를 위해 많은 일을 했다고 합니다.

외국인 최초로 현충원 국립묘지 애국지사 묘역에 안장되어 있다고 해서 다시 한 번 놀랐어요.

올해는 3.1 운동 100주년 되는 해라고 해라고 합니다.

더불어 의미 있는 책들을 선택해서 읽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한국을 사랑했던 스코필드 박사 이야기를 전하며 3.1 만세 운동과 제암리 사건 등을 알려줄 수 있어서 뜻깊은 시간이었어요. 



 

o*****2 2019.04.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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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숲] 석호필 - 3.1운동을 세계에 알린 스코필드 박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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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을 세계에 알린 스코필드 박사 이야기 석호필   34번째 민족대표로 불리며, 3.1 운동을 후원하고 제암리 사건을 세계에 알린 석호필, 스코필드 박사 이야기   올해는 3.1운동이 일어난지 100년이 되는 아주 뜻깊은 한해이죠   그래서 그런지 3.1운동에 관한 책들이 많이 나오는것 같아요 우리 아이들에게는 너무 반가운 일이죠!!   우리나라 역사를 바로 아는 것 그게 역사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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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을 세계에 알린 스코필드 박사 이야기

석호필

 

34번째 민족대표로 불리며, 3.1 운동을 후원하고

제암리 사건을 세계에 알린 석호필, 스코필드 박사 이야기

 

올해는 3.1운동이 일어난지 100년이 되는

아주 뜻깊은 한해이죠

 

그래서 그런지 3.1운동에 관한 책들이 많이 나오는것 같아요

우리 아이들에게는 너무 반가운 일이죠!!

 

우리나라 역사를 바로 아는 것

그게 역사공부의 시작인것 같아요

 

우리나라 사람인데도 일본의 편에 서서

독립운동을 방해하고 악랄하게 같은 민족을

괴롭히는 사람이 있는가 반면

 

이렇게 외국인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를 위해

애쓰신 분들이 있으시네요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하는 분들이시죠

 

 

스코필드는 안정된 대학교수와 편안한 삶을 버리고

머나먼 아시아의 작은 땅 조선으로 향했어요

 

정말 대단하지 않나요?!

 

그는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에서 세균학과 위생학을 가르쳤답니다

 

목원홍 선생님은 그에게 석호필이라는 조선 이름을 지어 주셨어요

석은 바위란 뜻이고

호는 호랑이란 뜻이였지요

 

 

석호필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이 조선의 지도자가 될 거라

믿었으며, 이 학생들이 지금 조선에서 벌어지고 있는

탄압과 차별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석호필은 유머까지 있으셨던 분 같아요

 

"고맙습니다"라고 학생들이 말하면

"곰 왔으면 총으로 쏴 잡아야죠"

라고 말했다고 해요

 

ㅋㅋㅋㅋㅋ

 

 

어느날 석호필을 찾아온 이갑성 선생

 

미국 대통령 윌슨이 민족의 문제는 그 민족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는 민족자결주의를 발표했다면서

 

독립을 갈망한다는 독립 선언을 발표하기로 했는데

3.1만세 운동을 기록하고 해외에 알리는

일을 부탁하였어요

 

석호필은 흔쾌히 그 일을 맡았지요

 

 

그리고 그는 1919년 4월 15일 제암리에서 벌어진

학살 사건 현장을 방문하고

그 현장을 기록한 보고서를 캐나다 선교 본부에 제출하였어요

 

제암리 사건 정말 너무 끔찍한 사건이죠

치가 떨리더라고요

 

이완용에게도

"선생님은 그냥 이천만 조선 사람들 앞에

머리 숙여 진심으로 사죄하면 됩니다"

라고 말하기까지...

 

석호필은 다친 사람들을 걱정해주고 도와주었어요

 

?

 

일본은 사건을 축소하고 왜곡하여

제암리 사건을 덮을 생각이였어요

 

석호필은

'내가 제암리에 들린 것도 우연이 아니었어

주님의 뜻이야"

하면서 종이를 꺼내 들었어요

 

제암리, 꺼지지 않는 불꽃

 

사람들은 이리저리 흩어져 멍석과 짚 위에 앉아 있었고

몇몇 사람들은 가까이 있는 언덕배기에 지은 작은 움막에서

자신들의 행복했던 집이 무너진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고 있엇다

마을 사람들이 무엇을 했기에 이처럼 잔인한 심판이 닥친것일까?

왜 갑자기 남편과 부모를 잃어야 하는가?

분명 무언가 잘못되었다

 

스코필드 박사는 3.1운동 정신과 제암리 사건과

일제의 만행을 세계에 알리는 활동을 하였어요

 

일본은 그를 가만히 보고 있지 않았고

압박을 가해왔어요

계약기간이 다 끝나가고

그는 더이상 조선에 머물 수 없었어요

 

제암리 사건의 기록 <끌 수 없는 불꽃>의 필사본을 만들어

세브란스 병원 지하실 바닥에 숨겨 놓고

원본은 자신의 바지에 감추었어요

 

"꼭 돌아오겠습니다"

그렇게 그는 조선 땅을 떠나 캐나다로 돌아갔어요

 

조선에 관한 것은 무조건 좋았고

늘 조선 사람들에 대한 소식에 목 말랐던 스코필드 박사

 

시간이 걸리더라도 나는 조선으로 돌아갈 것이다

사랑하는 내 나라, 조선으로

 

?너무 뭉클했네요

 

? 

 

 

책 본문 뒤에는 1920년 이후 캐나다로 돌아가서

3.1운동과 제암리 사건을 알리기 위해 한 책을 내고

세계 언론에 글을 쓰는 활동과 스코필드 박사 연보

사진 등의 정보를 담았어요

 

"나는 강하고 굿센 호랑이와 같은 마음으로

조선 사람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겠다"

 

그는 34번째 민족대표로 불리고 있으며

1968년에 건국공로훈장을 받았고

외국인으로는 최초로 국립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안장되었답니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석호필,스코필드 박사

그의 이름을 결코 잊어서는 안될것 같아요

 

 

스코필드 박사님에게 편지를 쓴 딸램이네요!!

우리 어린이들도 감사의 편지 보내보는 건 어떨까요?!

 

s****6 2019.03.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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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호필-3.1운동을 세계에 알린 스코필드 박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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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호필3.1운동을 세계에 알린스코필드 박사 이야기<도토리숲>3.1만세 운동과 제암리 학살 사건을세계에 알린 석호필, 스코필드 박사 얼마전 3.1일날저녁에 kbs에서 퀴즈쇼를 아이들과 함께 시청했어요.서경석 개그맨과 최태성쌤이 문제를 내고설명을 해주셨었는데그 날. 석호필. 스코필드 박사님을 처음 알게 되었답니다.최태성쌤께서 그 날. "스코필드 박사는 민족 대표 33인 외에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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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호필

3.1운동을 세계에 알린

스코필드 박사 이야기

<도토리숲>


3.1만세 운동과 제암리 학살 사건을

세계에 알린 석호필, 스코필드 박사





얼마전 3.1일날

저녁에 kbs에서 퀴즈쇼를 아이들과 함께 시청했어요.


서경석 개그맨과 최태성쌤이 문제를 내고

설명을 해주셨었는데


그 날. 석호필. 스코필드 박사님을 처음 알게 되었답니다.


최태성쌤께서 그 날.

"스코필드 박사는 민족 대표 33인 외에 34번째 민족 대표이세요."라는

말씀에 온 몸에 전율이..

참 감동이었답니다.

 


목차에요.


제가 지금 <석호필> 서평을 쓰는 모습을 본 큰아이가

"<석호필>진짜 재미있어요. 감동스럽고."

이러면서 지나가네요.


스코필드 박사님이 우리 나라를 위해 어떤 일을 하셨는지..

'제암리에서 벌어진 일'은 도대체 어떤 일인지...

한 번 알아볼까요?



목원홍 선생님께서 지어준 이름. 석호필.

석은 바위란 뜻이다.

바위처럼 단단하고 강한 내 의지를 드러내준다.

호는 호랑이라는 뜻이다.

필은 남을 도와준다는 뜻이다.

목원홍 선생님은 '필'이라는 한자를 골라 주면서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남을 돕는다?

글쎄, 나는 그저 내가 옳다고 여기는 일을 할 뿐이었다.

일본인들이 저지르는 부당한 행위가 나를 가만 있지 못하게 할 뿐이었다.


-본문 16~17페이지-


1919년 4월 15일. 새벽에 일어난 일이란 걸 저도

얼마전 tv퀴즈쇼를 보고야 알게 되었답니다.

"제암리사건"


수원 발안 장날 만세 시위에 대한 보복으로 아리타 도시오 일본 육군 중위는

무리의 군인을 이끌고 마을에 왔습니다.

지난 장날 만세 시위 때 무리하게 진압한 것에 대해 사과하겠다면서

사람들을 교회에 모이게 합니다.

그러고는 빠진 사람이 없는지 출서까지 부른 후, 교회 문을 닫고 불을 질릅니다.

창을 통해 탈출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총을 쏘며,

마을에 불이 난 것을 보고 놀라 달려운 여인까지 모두 죽인 후

마을을 모조리 불태웠고 합니다.

이때 교회당 안에서 죽은 사람이 23명,

뜰에서 죽은 사람이 6명이었다고 해요.


화가나고 안타까운 역사적 사실이지요.

분노해야하고 잊지말아야하는 역사적 사실이지요.


조선인이 아닌 스코필드 박사님덕분에 일본인의 만행이

세계에 알려질 수가 있었는데

조선인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과 한패가 되어

조선인에게 총을 겨눈 사람들도 있다니 안타까울뿐이에요.


스코필드 박사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해요.


"1919년 당시의 젊은이와 늙은이들에게 진 커다란 빚을 잊지 마십시오.

이 몇 마디는 내가 오늘의 한국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입니다."


"엄마, 이 책을 읽고 나서..

독립운동가들 말고도.. 이렇게 나라를 위해 애쓰신 분들이 많다는 걸 알게되었어요.

그분들이 계셨기에 지금 제가 한국인으로 있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이 책을 읽기 전에는 몰랐는데.. 읽고 나서 알게된게 많아요."


<우리아이책카페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쓴 후기입니다.>

 

이달의 사락 w*****2 2019.03.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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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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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운동을 세계에 알린 스코필드 박사 이야기 올해로 3.1운동이 100주년이 되었다.3.1운동은 우리가 배운 것보다 훨씬 더 가치 있고 의미가 큰 독립 운동이다. 국내의 수많은 독립 운동의 불씨를 키우고 일제의 탄압에 시들어가던 정신을 깨우는 데서 그치지 않고 국외의 식민지배하에 고통받던 여러 나라들의 독립운동에도 영향을 미친 위대한 독립 운동이다. <석호필>은 일제하에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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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운동을 세계에 알린 스코필드 박사 이야기

 

올해로 3.1운동이 100주년이 되었다.

3.1운동은 우리가 배운 것보다 훨씬 더 가치 있고 의미가 큰 독립 운동이다.

국내의 수많은 독립 운동의 불씨를 키우고 일제의 탄압에 시들어가던 정신을 깨우는 데서 그치지 않고 국외의 식민지배하에 고통받던 여러 나라들의 독립운동에도 영향을 미친 위대한 독립 운동이다.

 

<석호필>은 일제하에 고통받던 조선의 독립을 위해 애쓰고 3.1운동의 진정한 의미를 세계에 알리고자 노력한 푸른 눈의 조선인 스코필드 박사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책이다.

 

책은 석호필 박사가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는 방법으로 전개된다. 그래서 더욱 몰입되고 당시의 모습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조선의 독립을 위해 많은 분들의 희생이 있었다. 우리가 아주 잘 아는 분들 말고도 독립을 위해 애쓰신 많은 분들에 대한 이야기가 단행본이든 전집이든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석호필>은 매우 반가운 책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내 조국도 아닌 나라를 위해 내 삶을 바친다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인류애를 넘어 진정으로 조선과 조선인을 사랑했던 석호필 박사.

 

 

스코필드와 비슷한 소리의 석호필. 미드로 유명한 석호필이 사실 스코필드 박사의 진짜 조선 이름이었다니. 목원홍 선생님께서 직접 지어주신 이름이라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스코필드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반대했다는 조선행..

안정이 보장된 삶을 버리고 식민치하의 힘없는 작은 나라 조선으로 가겠다는 결심을 나라면 할 수 있었을까. 아이와 함께 얘기해보았는데 아이는 못할 것 같다고 했다.

거기에 스코필드 박사가 소아마비를 앓아 몸이 불편했다는 것도 처음 안 사실이다.

 

 

 

3.1운동의 현장의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애쓰는 스코필드 박사

일본군 진압에 끌려가는 조선인을 수단방법 안 가리고 구해내려는 스코필드 박사의 모습

 

 

일본의 만행에 비판적인 일본 신문에 글을 싣기도 했다.

"일본은 합병을 통해 물질적으로 조선에 많은 혜택을 주었다고 하지만, 어디 그것이 조선 사람을 위한 것이었을까? 정부는 국민을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 진정한 의무다. 국민이 행복해야 정부가 옳게 일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본 정부는 왜 지금 조선 사람들이 동요하고 어리석을 정도로 용감하게 궐기하는지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 지금 조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결코 물질적인 것이 아니고 정신적 자유라는 점을 충분이 고려해야 한다."

 

 

아는 사람도 많지 않고 일본은 철저하게 덮으려했던 제암리 사건을 알리는 것을 자신의 소명으로 여겼던 스코필드 박사. 외국의 여러 신문사에 제안 했으나 매번 자국의 이권 때문에 받아주지 않았음에도 포기하지 않고 애썼던 스코필드 박사.

 

캐나다로 돌아온 후에 스코필드 박사의 활동은 따로 제시되어 있다.

항상 조선을 잊지 않고 해방된 조선의 교회에 대한 쓴소리도 서슴치 않았던 진정으로 조선을 사랑했던 분이다.

 

스코필드 박사의 연표가 제시되어 있다.

 

v******2 2019.03.2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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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을 세계에 알린 스코필드 박사 이야기 석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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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만세 운동과 제암리 학살 사건을세계에 알린 석호필, 스코필드 박사지난 3월 1일은 3.1 운동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의미가 있었던 날이었습니다.3.1 운동은 3월 1일부터 5월 말까지 약 세 달에 걸쳐 일제에 항거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일어난 독립 운동으로 우리 대한민국이 건국하는 데 기초가 된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그런 3*1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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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만세 운동과 제암리 학살 사건을

세계에 알린 석호필, 스코필드 박사


지난 31일은 3.1 운동이 일어난 지 100주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의미가 있었던 날이었습니다.

3.1 운동은 31일부터 5월 말까지 약 세 달에 걸쳐 일제에 항거하기 위해

전국적으로 일어난 독립 운동으로 우리 대한민국이 건국하는 데

기초가 된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런 3*1만세 운동과 제암리 학살 사건을 세계에 알린 분이 계셨습니다.

바로 석호필, 스코필드 박사님입니다.


스코필드 박사는 일제강점기 때인 1916년 선교사로 우리나라에 와서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석호필이라는 우리 이름도 지었습니다.

우리나라를 얼마나 좋아했으면, 석호필이라는 한국 이름까지 가지고 있었습니다.

석호필이란 이름의 발음이 스코필드와 비슷할 뿐 아니라,

칠석같은 굳은 의지를 나타내는 돌석, 호랑이 같은 무서운 사람임을 나타내는 호랑이 호,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것을 의미하는 도울 필자가 자신이 살고자 하는

삶의 이상을 잘 나타내고 있었기에 석호필이란 그 이름을 좋아했습니다.

스코필드 박사는 1919년 3*1만세 운동과 제암리 사건을 목격하고, 그 뒤로

우리나라의 독립운동과 3*1운동 정신, 제암리 사건을 세계에 알리는 데 힘을 쏟았습니다.

스코필드 박사는 3.1만세 운동 첫날부터 사진을 찍고 기록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1919년 4월 15일에 일어난 제암리 교회 방화 학살 사건 현장에도 직접 찾아가

제암리와 수촌리에서 있었던 일제의 만행에 관한 보고서를 남겼습니다.

그 보고서의 제목이 바로 <꺼지지 않는 불꽃>입니다.

은퇴한 뒤에는 우리나라에서 살면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봉사활동을 하였습니다.

스코필드 박사는 민족 대표 33인 외에 34번째 민족 대표로 불리고 있으며,

1968년에는 건국공로훈장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도 하기 어려운 일들을 해내신 스코필스 박사님,

정말 대단하신 분이죠~
어느 누구보다 우리나라를 사랑하고, 3*1운동을 알리고 후원한 석호필,

스코필드 박사님을 잊지말고 기억해야겠습니다.


 

 

YES마니아 : 로얄 i*****k 2019.03.2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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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번째 민족대표 석호필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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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호필... 사실 이 이름을 듣자마자 미드 '프리즌 브레이크'의 주인공'마이클 스코필드' 를 저혼자만 떠올린걸까요? 그 남주의 이름을 한국식으로 '석호필'로 불러 한때 우리나라에서 엄청 핫했던적이 있었어요.정말 재밌던 봤던 프리즌 브레이크. 암튼 전 그 석호필만 생각났었는데...이 책을 읽어보고선 참 부끄러워지네요.외국인이지만 우리나라 역사적현장에 있었고 한국을 사랑했던
"34번째 민족대표 석호필박사" 내용보기

 

석호필... 사실 이 이름을 듣자마자 미드 '프리즌 브레이크'의 주인공

'마이클 스코필드' 를 저혼자만 떠올린걸까요?

그 남주의 이름을 한국식으로 '석호필'로 불러 한때 우리나라에서 엄청 핫했던적이 있었어요.

정말 재밌던 봤던 프리즌 브레이크. 암튼 전 그 석호필만 생각났었는데...

이 책을 읽어보고선 참 부끄러워지네요.

외국인이지만 우리나라 역사적현장에 있었고 한국을 사랑했던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의 이야기를 다룬 도토리숲의 '석호필' 입니다.  

 

 

 

석호필(석-바위, 호-호랑이,필-남을 돕는다)박사는

1916년말부터 1920년까지 수의학박사학위를 가진 선교사로

한국에 머물며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영국에서의 어린시절, 한국유학생인 여병현을 만나 한국에 대해 듣곤 했다고 하는데

 석호필박사가 처음 한국에 발을 딛었을때 마중 나온이중, 노신사가 된 여병현을 발견해서 놀랬다고 하네요.

석호필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던 목원홍선생의 요청에 의해 일본의 만행과 한국의 독립갈망을

외국에 알리기위해 많은 사진을 찍으면서 한국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3.1운동이라는 역사적사건 현장에도 있었고 특히나 제암리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통해

자신이 보고 들은 일을 거짓없이, 진실을 알리기위해 글을 쓰기시작하죠.

석호필박사는 우리가 역사책에서나 보던 그런 역사적인물들을 많이 만납니다.

우선 3.1운동으로 서대문형무소에 들어온 유관순.  

 

 

 

 

제암리사건을 취재하러 화성과 서울을 오가면서 탔던 기차에서는 이완용을....

네, 맞습니다. 그 매국노 이완용을 만났다고 합니다. 우와~~~~

이완용과 석호필박사는 과연 무슨 대화를 나눴을까요? ^^

일본의 감시가 심해지고 교수계약기간이 끝나면서 짧게 4년동안 한국에 있었지만

스코필드박사는 떠나면서 내나라 조선을 꼭 다시 오겠다고 다짐했다고 합니다.

 

 

 

 

한국을 떠난 석호필박사는 어떻게 지냈을까 궁금했는데 몇페이지에 걸쳐

그 후의 이야기가 담겨있어서 1970년에 죽었고 현충원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고...

한번쯤 가봐야겠단 생각이 드네요.

한국에 다시 오겠단 약속을 지킨 석호필박사 - 1960년에 들어와 쭉 살았다고 합니다.

사실 역사를 좋아함에도 불끈불끈 화가 치밀고 답답하단 이유로 근현대사는 의식적으로 피했는데

앞으론 근현대사에 대해 좀 더 많이 공부해야겠단 생각이 듭니다.

아이와 함께 보면 정말 좋은 책이네요.

a*****5 2019.03.27.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