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C서양문단을 구경하고 있노라면 많은 철학자나 작가들이 뛰어난 미술비평들을 남겼다. 문학과 미술비평은 마치 형제처럼 보일지경이다. 발레리와 드가,바슐라르와 플로콩,샤르트르와 쟈코메티 등이 그러한데 미셀푸코도 예외는 아니다. 벨기에 출신의 초현실주의 화가인 르네 마그리트의 연작인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에 대한 뛰어난 비평을 남겼다. 푸코나 쟈캉같은 이들의 글을 읽을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무슨 비평서나 이론서를 쓰면서 이렇게 문체에 멋을 부리는지... 내용을 이해하기에 앞서 일단 그 문체에 주눅들곤 한다. 사실 르네 마그리트에 대한 사전지식도 별로 없는데다 푸코도 읽어본 책이 몇편 없어서 이번 독서는 완전 악전고투의 연속이었다. 그나마 이 책의 번역자인 김현씨가 책말미에 푸코 미학에 대한 해석을 덧붙여 놓지 않았다면 완전한 오리무중에 빠졌을 것이다. 하긴 그 김현씨의 글도 절대 만만한 글은 아니다. 김현씨의 글을 인용하면 '푸코의 비술비평은 17C의 순수재현(벨라스케스)과 20C의 순수언표(마그리트)의 대립에 역점을 두고있는 듯이 보인다. 벨라스케스가 그 예를 보여주고 있는 순수재현, 재현의 주체의 사라짐은 마네를 거쳐 마그리트에 이르면서 재현자체의 사라짐,순수 언표와 대립된다. 또다시 여기에서 '벨라스케스'를 만나게 된다. 미술사를 이야기하면서 아무래도 '벨라스케스를 피해갈수는 없는 모양이다. 아무래도 푸코의 다른 책 '말과사물'에 나오는 벨라스케스에 대한 글을 읽고 난 후에야먄 이 안개속을 헤쳐나갈 자그마한 등불이라도 얻을것같다. 玄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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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프가 그려져 있고, 그 아래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라고 씌어져 있다.
언뜻 보면 이미지와 텍스트가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그림 속의 파이프는 과연 진짜 파이프일까? 혹 겉만 파이프 모양을 한, 사실은 물뿌리개인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아래에 위치한 텍스트는 과연 파이프 '아래'에 있는 것일까? 실제로는 '파이프'보다 조금 앞에, 또는 조금 뒤에 배치되어 실제보다 더 크거나 작게 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그림 속 파이프는 파이프를 그린 '그림'일 뿐이지 파이프 그 자체는 아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또한, 그림 속 텍스트도 텍스트가 아니라 텍스트를 그린 '그림'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처럼 간단해 보이는 그림 하나가 수 많은 질문을 가능하게 한다.
푸코(Michel Foucault)는 르네 마그리트(Rene Magritte)의 그림들을 통해 이미지와 텍스트의 관계에 대해 깊이 파고든다.
푸코에 의하면 15~20세기 서양의 그림을 지배하던 두 가지 원칙이 있었다. 첫째, 조형적 재현(이미지)와 언어적 지시(텍스트) 사이의 분리를 단언했다. 둘째, 유사(resemblence)와 확언(affirmation) 사이의 등가성을 제시했다. 예컨대, 사람을 비슷하게 그려 놓으면(유사) 그게 곧 실제 그 사람을 지칭(확언)한다는 것이다. 클레(Paul Klee),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는 이러한 원칙으로부터 탈피하기 시작했고, 마그리트는 그 뒤를 잇고 있다.
이미지와 텍스트 사이의 관계를 끊고, 이 둘이 서로 상대방 도움 없이도 작동하게 하는 한편, 회화에 속하는 것은 남기고 담론에 가까운 것은 버리는 방식이다. 실체가 원본이라면 그림은 원본에 대한 카피라고 할 수 있다. 원본과 카피의 문제는 디지털 시대의 중요한 화두 중 하나다. 이 주제에 관한 푸코의 글은 수십년 전에 쓰여진 것이라 비록 디지털 시대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있지만, 그래도 오늘날 시사점을 적잖이 던져주고 있다.
푸코는 유사(resemblence)에서 상사(similitude)를 분리해낸다.
'유사'에게는 주인, 즉 근원이 되는 요소가 있다. 근원으로부터 출발해 연속적으로 복제가 가능한 것이다. 사본들은 근원으로부터 멀어질 수록 약화된다. 따라서 근원을 중심으로 질서가 생기고 위계화된다.
반면, '상사'는 서로 비슷한 것들이다. 원본과 카피의 관계가 아니다. 여기에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방향성도 없다.
이 책은 마그리트의 그림에 대한 미술비평서이기도 하지만, 이미지와 텍스트 사이의 관계에 대한 고찰이라는 점에서 철학서로 읽어도 좋다.
이 책은 우리 문학비평계의 거목인 故 김현씨가 남긴 번역 원고를 그의 제자 정과리 교수가 정리하여 세상에 빛을 보게 됐다고 한다. 오래전 번역이라 그런지 문장들이 너무 길고, 난해한 한자어들이 필요 이상 많은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프랑스어를 배우지 않은 관계로 원서가 원래 그러한지, 아니면 번역이 잘못된 것인지는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길이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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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이 책은 그 종류를 따져본다면 미술 비평책이다. 하지만 그림에 대해 해부하고 그 주변 얘기를 듣고 미학적 가치를 논하는 미술 비평을 기대한다면 황당할 것 같다.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파이프 그림. 그리고 그 아래 쓰여진 글씨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그 단순한 그림을 놓고 푸코는 그의 비평 여행을 시작한다.
그리고 한편의 철학 사상서를 써내려가듯 단 하나의 그림 안에서 벌어지는 구조와 배경, 그리고 화가의 생각까지 그 나름의 스타일로 그려내고 있다. 또 그 얘기들은 그냥 그림의 얘기가 아니라 철학적인 어떤 사유를 드러내고 있는데.... 불행히도 내 공력이 약한 관계로 그 부분에 대한 정확한 느낌과 개념 정리는 되지 않는다.
역사와 철학, 그리고 문학에까지 광범위하게 펼쳐져있는 푸코의 관심이 미술에서도 나름대로 일가를 이뤘다는걸 발견할 수 있는 책. 푸코라는 비평가에 의해 비평의 대상이 됐던 르네 마그리트라는 사람이 부럽다.
마지막으로 책의 편집. 매 페이지 양쪽 옆에 그려진 작은 파이프 그림과 중간중간 합입된 그림과 도표들. 작은 것이지만 책의 어떤 통일성을 부여하는 섬세함으로 다가와 책에 더욱 애정이 간다. [인상깊은구절] 그는 지표없는 용적과 구도없는 공간의 불안정 속에서 비-확언적인 순수 상사체들과 말이 언표들을 놀이하게 한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라="">는 말하자면, 바로 그 작동 절차의 기본 형식을 제공한다. (중략) 언젠가 이미지 그 자체와 그것이 달고 있는 이름이 함께, 길다란 계열선을 따라 무한히 이동하는 상사에 의해, 탈-동일화되는 날이 올 것이다. 갬벨, 캠벨, 캠벨, 캠벨.이것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