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0%
  • 리뷰 총점8 10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8.0
리뷰 총점 종이책
무의식이 그 자신을 실현한 역사
"무의식이 그 자신을 실현한 역사" 내용보기
솔직해지자. 자서전은 위선과 선택적 망각이 양념에 해당한다. 그럼 주재료는 무얼까? 추억과 판타지다. 독자들은 그걸 감안하면서 이런저런 자서전을 읽는다. 일반적으로 자서전보단 평전이 더 객관적이고 공평한 평가를 담고 있다고 여긴다. 그런데 정말 자서전보다 평전이 더 객관적일까? 물론 평전이 더 오랜 기간 동안 수집한 각종 자료들을 토대로 객관적인 초상화를 그려낸다. 하
"무의식이 그 자신을 실현한 역사" 내용보기

솔직해지자. 자서전은 위선과 선택적 망각이 양념에 해당한다. 그럼 주재료는 무얼까? 추억과 판타지다. 독자들은 그걸 감안하면서 이런저런 자서전을 읽는다. 일반적으로 자서전보단 평전이 더 객관적이고 공평한 평가를 담고 있다고 여긴다. 그런데 정말 자서전보다 평전이 더 객관적일까? 물론 평전이 더 오랜 기간 동안 수집한 각종 자료들을 토대로 객관적인 초상화를 그려낸다. 하지만 그런 객관적인 초상과 평가가 한 인물의 역사적 정체성이나 그가 품어온 사상의 특징을 현저하게 부각시키는 데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다소 주관적이고 환상과 왜곡이 있는 자전적 초상이 더 감동적이다. 솔직히 지금껏 읽은 평전 중에 특별히 남에게 강추하고 싶은 것은 없다. 무척 드물다. 

초등학생도 알만한 널리 알려진 세계 4대 자서전이 있다. 그리고 여기에 속하지 않지만 베스트 자서전 '다섯 번째'에 포함시킬 만한 고전들이 있다. 평생동안 인류의 영혼과 그 신비를 꾸준히 탐구한 개척자들이 후보자 명단에 포함될 것이다. 외부적인 사건의 연대기적 나열이 아니라 내면 심령의 영토를 탐색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아니엘라 야훼가 엮은 융의 자서전이야말로 '제5 정전'이 될만하다고 본다. 저자가 융이 아니라 그의 비서인데 이 책『회상 꿈 그리고 사상』(집문당, 2012)이 자서전에 해당하는가? 그렇다. 분명 융의 자서전이다.

 

이 책은 융의 제자이며 여비서였던 아니엘라 야훼 여사가 융의 나이 82세가 된 1957년부터 5년 가까이 그와 대담을 나눈 결과 엮어진 자서전으로, 이미 분석심리학의 중요한 고전으로 손꼽힌다. 융이 한 문장 한 문장 손을 보았다고 전해지는데 가장 신뢰할 만한 이야기가 담겨 있고, 학술적인 측면에서도 깊이가 있는 책이다. 이 책에서 융의 심리적 체험과 정신과의사로서의 지견, 그의 주변에서 그와 교류했던 지인들의 이야기 등이 전개된다. 한가지 흠을 잡자면, 국역본은 편집에 좀더 신경을 기울여야 했다.
 
"나의 생애는 무의식이 그 자신을 실현한 역사이다. 무의식에 있는 모든 것은 사건이 되고 밖의 현상으로 나타나며, 인격 또한 그 무의식적인 여러 조건에 근거하여 발전하며 스스로를 전체로써 체험하게 된다. 이러한 형성의 과정을 묘사함에 있어 나는 과학적인 언어를 사용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나는 나 자신을 과학의 문제로서 경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17쪽)
 
오, 대단한 서두다. 자서전의 첫장을 여는 이 발언은 융의 '자기선언'이 아닐 수 없다. 융의 주관적인 체험정신을 잘 대변해 주는 첫머리다. 학자로서 융은 경험론자였다. 앞서 "과학적인 언어를 사용할 수 없다"고 말하는데, 융이 강조한 "과학적인 언어"는 다름 아닌 기계론적 인간관과 행태주의에 기반한 객관적인 언어를 뜻한다. 그러나 융이 강조하는 경험론은 그런 허울좋은 객관적인 경험론이 아니라 주관적인 경험론이다. 융은 외적인 현상과 사건이 내적인 체험과 심리적 사건을 대신할 수 없다고 믿었다. 그리고 적극적 명상(active imagination)을 주관적인 체험을 다루는 실험기법으로 간주했다.
 
"나는 인생이 자신의 뿌리를 통해서 살아가는 식물과 같다고 생각해왔다. 식물 고유의 삶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것은 뿌리에 숨어 있다. 땅 위에서 보이는 것은 오직 여름 동안만 지탱한다. 그리고는 말라 버린다. 하루살이 같은 현상이다. 우리가 우리의 삶과 문화의 끝없는 생성과 소멸을 생각하면 전적으로 공허한 인상을 얻게 된다. 그러나 나는 영원한 변환 속에서도 살아서 지속되는 어떤 것이 있다는 느낌을 한 번도 잃은 적이 없다. 우리가 보는 것은 꽃이다. 꽃은 사라진다. 그러나 뿌리는 계속된다."(18쪽)
 
융은 내향형과 사고형의 인물이라서 본래 자신의 삶을 외부에 노출시키는 것을 꺼려했다. 그래서 이 자서전에서도 딸과 아들 등을 비롯해 가정생활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융 자신의 내면세계가 겪은 주관적인 다양성은 그대로 적나라하게 노출시키고 있다. 1958년 4월, 융은 소년시절, 학창시절, 대학시절 등 '나의 생의 초기 사건들'이라고 명명한 세 개의 장을 마무리지었다.
 
"나에 관한 책은 언제나 하나의 숙명적인 사건이다. 거기에는 무언가 예기치 않은 것이 있다. 나는 아무것도 나에게 어떻게 쓰도록 지시하거나 미리 계획할 수가 없다. 자서전은 이미 내가 처음 예상한 것과는 다른 길을 취하고 있다. 내가 나의 어린 시절의 추억을 적어내려가는 것은 나에게는 필요불가결의 것이 되었다. 하루라도 내가 그것을 중단하면 금세 불쾌한 신체증상이 생긴다. 내가 그것에 관해 일하기 시작하자마자 그런 증상은 없어지고 머리가 맑아진다."(8쪽)

 

 

z***a 2014.03.05.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