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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동네와 예스24가 함께하는 글쓰기교실에서 김용택시인님을 처음 만나 시인님의 글쓰기에 관한 삶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http://blog.yes24.com/document/6462046). 시인께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시를 시작하셨다는 임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남원에서 만 4년을 근무한 적이 있습니다. 남원을 가려면 임실을 지나기 마련인데 가끔은 이곳 어딘가에 김시인께서 사신다더라는 이야기를 떠올리곤 했습니다.
딱히나 그런 인연 때문만은 아니리라고 생각합니다만 글쓰기교실에서 시인께서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풀어놓으시는 이야기들이나 <김용택의 어머니>에 담으신 이야기들은 마치 제가 적어놓은 저의 어릴 적 이야기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때 군산으로 이사를 가기 전까지는 옥구군 대야벌판 가운데 있는 광산마을에서 살았습니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는 농번기나 겨울방학이 되면 할머니댁이나 외갓댁에 맡겨져야만 했습니다. 추수할 때 새참을 내가시는 할머니를 따라나서 이삭을 줍거나 우렁이를 잡아 바가지에 담아오면 할머니께서 된장국에 넣어 구수하게 끓여주시곤 했습니다. 초여름에는 매뚜기를 잡으러 벌판을 쏘다니고 벼이삭이 팰 무렵에는 벼멸구 애벌레를 잡아서 벼이삭을 훑어낸 끝에 묶어서 송사리를 낚는 재미를 즐기기도 하고 벌판은 그대로 자연을 배우는 교과서였습니다.
선친께서 교편을 잡고 계실 때에는 시인께서 말씀하신대로 홍루몽, 열국지, 헤밍웨이 등 전집류를 사들이시곤 했습니다. 초등학교를 마칠 무렵부터 그런 책들을 읽고, 중학교 2학년 무렵 일기쓰기를 시작해서 대학다닐 무렵까지 꽤나 오랫동안 이었는데도 시가 되지 않더라는 제 경험을 비춰보면 역시 글쓰기는 타고나는 비중이 꽤나 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시인께서는 <김용택의 어머니>를 쓰시게 된 것이 임실에 자주 놀러오시던 사진작가 황헌만선생이 어느날 오랫동안 자당님을 앵글에 담아 보았다며 내놓은 사진들이 계기가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언듯 보면 우리네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애로운 시골어머니 모습입니다만, 사진들을 조금만 자세히 뜯어보아도 포스가 예사롭지 않다는 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자당께서 카메라를 의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찍은 스냅사진도 있지만, 앵글을 의식하시고 포즈를 취하신 듯한 사진들도 적지 않습니다. 역시 전문가가 사진에 담은 분위기에 꼭 맞추어 풀어낸 김작가님의 글솜씨가 어우러져 더 이상 이룰 것이 없어 보입니다. 사계절을 따라 사진을 찍었기 때문인지 글도 계절 따라 달라지는 시골풍경을 고스란히 그려내고 있습니다.
시인께서도 자당께서 하시는 말씀을 고대로 받아 적으면 시가 되고 글이 되더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만, 책을 읽다보면 ‘그래 그때는 꼭 그랬어!’하는 말이 입에서 절로 나오기 마련입니다. 자당께서는 밥을 잘하는 도사였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밥이 많아 물의 양을 잘 조절해야 할뿐더러 불을 어떻게 때느냐에 따라 그날의 밥이 잘될지 못될지 판가름 난다. 그러니 불을 때는 데 혼신의 힘과 기술이 필요했던 것이다.(131쪽)”고 적었습니다. 김시인님께 숙제로 제출했다가 뽑혀서 격려와 보완할 점을 챙겨주셨던 글(당신의 기억이 쇠하셨나 걱정입니다; http://blog.yes24.com/document/6435098)에서는 귀띰만 했습니다만,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도 어머님께서 아침을 지으시면서 깨우면 일어나 아궁이에 불을 때서 밥을 지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솔가지, 볏짚, 장작, 나락껍질 등등 다양한 연료를 사용해서 가마솥밥을 짓곤 했습니다. 저의 오랜 경험에 비추어보면 밥물을 맞추는 것도 중요하지만 화력을 어떻게 유지하는가 하는 것하고 언제 불때기를 중단할 것인가 그리고 솥을 찬물수건으로 닦아주면서 뜸을 들이고 나서 다시 은근하게 불을 지펴 마무리를 하는 것이 밥을 고슬고슬하게 짓는 비결이었던 것 같습니다. 밥을 태워본 적은 없었던 것을 보면 말입니다.
감나무가 잘 부러진다는 것은 알았습니다만, 감을 딸 때 가지가 부러지면 다음해 감이 많이 열게 된다는 것은 처음 알았습니다. 남원에서 어르신들의 치매치료를 잠시 맡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제게 오셨던 할아버지께서 제게 주시려고 감을 따라 감나무에 오르셨다가 떨어지셨다는 말씀을 듣고 크게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감나무가 단단하지만 탄력이 없어 잘 부러지는 것 아닌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완벽한 것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나무가 단단한 장점도 잘 부러지는 단점에 가려지니 말입니다.
가을에서 초겨울로 넘어가면서 김작가께서 무생채 이야기를 여러 번 풀어놓으셨는데, 막 무친 무생채를 좋아하신 듯 한 김작가님과는 달리 저는 무생채가 잘 익어 양념이 무에 완전히 배어들면 뜨거운 쌀밥에 익은 무생채를 듬뿍 올리고 쓱쓱 비비면 다른 반찬 없이 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던 것입니다. 제가 학교에 다닐 무렵에는 학교에서 도시락검사를 할 정도로 잡곡혼식이 강제된 적이 있습니다. 그래도 어머님께서는 밥에 잡곡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일제치하를 거치고 한국동란을 건너오면서 모질게 고생하셨던 기억이 떠오르는 것 같아 싫으시다는 것이었습니다.
책 어디를 펼치고 읽어도 책을 읽는 독자가 제 연배 근처라면 누구라도 낯익은 풍경이다 싶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장면에 대한 추억을 풀어내도 바로 리뷰가 될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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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어느 날 동네 형한테 얻어맞고 울며 집에 들어왔다 우리 어머니 부엌에서 부지깽이 들고 나오며 사내새끼가 밖에서 한 일 집 안으로 끌고 들어온다며 부지깽이로 나를 때렸다 맞은 자리 손으로 만지며 자운영꽃 핀 텃논 논두렁으로 도망갔다 그 뒤로 울 일 있으면 대문 밖에서 다 울고 집에 들어갔다
봄에 자운영 꽃만 보아도 그리운 어머니 일 것 같다. 나도 모르게 어느 날 시를 쓰고 있었다고 하는 김용택시인 제목이 어머니란 말에 잡는 순간 책이 술술 잘 읽어 나갔다. 저자의 어려웠던 과거속의 어머니 그 분을 생각하면서 쓴 글이라 더욱 가슴에 와 닿는다. 혹독한 시집 사리하신 어머니, 아버지께서 일찍 돌아 가셨다. 그렇기에 자식 키우는데 얼마나 힘드셨을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파온다. 저자는 그런 어머니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아려 올 것이다. <어머니>는 어머니에 대한 일기문도 들어가고 시도 들어가 있다. 거기에 편지, 인터뷰, 글들을 하나씩 읽노라면 어머니의 지혜에 고개를 숙여지게 만든다. 생각해보면 저자가 시인이 된 게 어머니의 영향력이 큰 것 같다. 어머니의 가르침 말 한마디가 다 시 같은 생각이 든다. 제1부, 봄-봄처녀, 섬진강에 시집오셨네 제2부, 여름-그 뜨겁고도 환한 시절 제3부, 가을-어머니의 열매 제4부, 겨울-마른나무처럼, 어머니 늙어가시네 목차가 이리 나온다. 여기에 여러 가지 이야기가 전개되어 나간다. 시집오면서 아버지에 반한 내용하며, 시집살이 저자가 오리를 키우던 이야기도 나온다. 오리 키우기에 실패하고 섬진강을 벗어나 무작정 상경하는 날 가시덤불 같은 손으로 2천원을 쥐어주시며 어머님은 눈물 바람으로 “용택아, 어디 가든지 밥 잘 먹고 건강혀야 헌다. 꼭 편지하고, 알았쟈”하셨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자식 손에 2천원 쥐어주는 어머니 마음 얼마나 아프랴, 거기에 2천원 받아 떠나는 저자 마음 또한 아팠을 것이다. 눈물범벅이 되어 무작정 달리던 저자의 얼굴이 떠오른다. 무작정 달리다가 뒤돌아 바라본 어머니는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간다. 지금은 잘되어서 다행이라 생각이 든다. 봄에 시골서 일어나는 일들이 아름답게 전개가 된다. 어머니의 생각이 너무 훌륭하시다.
여름하면 물에 수영하던 추억이 떠오를 것이다. 나도 그런 추억들이 눈에 선하다. 그리고 잡았던 다슬기 파란 다슬기 국물이 지금도 생각난다. 책에 다슬기가 소개되니 은근히 고향인 양촌이 그립다. 저자만큼이나 나도 고향에서 다슬기를 잡아 국도 해먹고 수제비도 해먹던 어린 시절이 떠오른다. 반찬거리가 없으면 금방 물에 가서 잡아먹던 다슬기, 그 다슬기가 우리 건강을 유지해 준 것 같다. 아버지께서 다슬기를 좋아하셔서 돌아가시기 전 8년 동안 다슬기 국을 끓이셨다고 한다. 대단한 정성이자 사랑이었다. 바쁜 여름 시골서 생활을 보면 알 것이다. 특별히 무엇을 챙겨주고 할 시간이 없다. 이렇게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안쓰럽다. 도시에서는 병원도 가까운데 말이다. 어머님의 농사 지혜가 많이 나온다. 콩 수확이 늘어난 이유, 거기에 양봉하여 꿀을 수확, 먹을 것이 부족하던 시절 감자, 고구마, 무를 이용해서 밥을 만든 이야기에서 뭉클해온다. 지금 어머니 손을 보면 얼마나 고단한 삶을 살았을까하고 느낀다. 저자 어머니나 우리 어머니나 비슷하신 손이라 더욱 애처롭다. 그렇지만 이런 어머니가 계시기에 행복한 어린 시절이었던 것 같다. 피난이야기, 어머니의 친구는 과연 누구였을까 하고 저자는 생각해 본다. 어머니도 시집살이에 여러 가지 힘든 점, 자식 키우면서 의문, 고통을 누군가와 이야기 하셨을 건데? 이 질문에 나도 의문이 생긴다. 과연 우리 어머니 친구는 누구셨을까? 친정에 가면 어머니에게 물어볼 생각이다. 이렇게 자식을 위해 열심히 살아주시는 어머니 너무 감사하다.
가을, 겨울 내용을 읽으면서 우리 시골과 저자의 시골의 정서가 비슷하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책속에 사진들이 이리 아름다울 수가 없다. 한편의 자연을 보는 것 같고, 어머니의 자서전을 보는듯한 그런 느낌도 든다. 저자의 집은 마을한가운데 길목에 있다. 그래서 어릴 때부터 동네 사람들이 지나가는 길이다. 먹을 것이 있으면 들어와서 드시고 특히 밥 먹는 시간에는 밥을 더 여유 있게 하셨다는 것이다. 지나가시다가 목마르시면 냉장고에 시원한 물을 넣어놓으셔서 어른들이 드시고, 고기구우면 고기 드시고, 부침하면 부침 드시고 아무래도 저자 어머니의 동네 어머니이신 것 같다. 시골에 가을 정서가 많이 들어간 사진들이 내 가슴속에도 쏙 들어오면서 너무 그리워지게 만든다. 연세가 많으시니 이제 건강이 최고로 걱정된다. 사시면 얼마나 사시겠나하는 생각이 든다. 살아계실 때 더 잘해 드려야하는데 항상 자식은 효도를 해도 부족한 것 같다. 아마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부족이 최고 많을 것이다. 아프지 마시고 오랫동안 건강하게 사시길 바란다.
책을 읽으면서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나서 시골집에 전화를 드려 보았다. 아버지께서 전화를 받으신다. 나: 막내딸이에요 아버지: 그래 애들은 학교 잘 다니지 나: 예, 개학해서 학교 잘 다녀요. 방학 때 가려고 했는데 못가서 죄송해요. 아버지: 바쁜데 애들 공부하느라 힘드니 애들 잘해줘라 나: 엄마는 괜찮으셔요 아버지: 이제니 엄마도 80이 가까워지는데 힘들지 머...그나저나 니 엄마 나 때문에 더 고생한다. 내가 건강이 안 좋아서.. 나: 에고 건강하셔야지요. 저희 집은 걱정 마세요. 애들 다 잘 자라고 잘 지내요. 이렇게 전화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비가 많이 내린 줄 알고 드린 전화인데 다행히 친정집은 피해가 없단다. 오래전에 집에 회오리바람이 불어서 반절이 날아간 기억이 난다. 제발 피해 없고 건강하게 오래 사시길 기도해 본다. <어머니>를 읽고 가슴이 뭉클하고 아프지만 그래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줘서 너무 감사하다. 어릴 적 추억도 생각나게 하고 더욱 부모님께 잘해야 지하는 생각도 하게 만들었다. 어머니, 아버지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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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일 저녁 7시 40분, 정독도서관 3층 시청각실은 중고생부터 머릿결 희끗희끗한 성인까지 발디딜 틈없는 인파로 꽉 찼다. 인터넷 서점 알라딘과 문학동네에서 공동으로 준비한 김용택님의 ‘어머니’ 강연회를 보기 위해 모인 인파다. 중간쯤 자리잡고 앉은 나와 아내는 단상에 수수하고 털털한 김용택 선생님이 올라오시자마자 이내 그의 마법에 빠져들고 말았다. 섬진강 시인, 교사, 시골을 사랑하면서 특이하게 두 아이를 미국유학 보내고 여전히 아내와는 신혼처럼 사랑하는, 그를 사람되게 키우신 그 어머니의 아들, 김용택님이 내뿜는 마법에는 사람의 향기가 났다. 그리고 그는 그 매력이, 그의 시상이 바로 자신의 어머니에서 비롯되었음을 토로한다.
집에 돌아와 책을 펼치니 한 시간 넘게 들었던 그 강연내용이 고스란히 책안에 들어와 있었다. 봉제공장에 징용까지 가서도 일처리가 야무져 ‘양글이’로 통했던 어머니, 그녀가 아꼈다 아꼈다 하는 말은 시인의 가슴으로 날아가 곧바로 시가 되었고, 그녀의 뚝심은 시인을 언제나 자연을 사랑하고 낮은 곳에 머물며 보듬게 하는 뚝심있는 환경주의자로 만들었다.
전체에 걸쳐 김용택님의 맛깔스런 문장으로 그를 키운 어머니의 정서와 지혜를 만날 수 있고, 사진작가 황헌만님의 앵글로 잡은 시골 사계의 풍경과 그 안에 자리하신 청순한 노모의 수줍은 일상모습을 만날 수 있다. 후딱 사진만 훑어보아도 고향생각이 아련하여 가슴이 짜릿한 책이다.
고부간의 갈등이 생기는 원인을 그는 나름대로 추측한다. “시어머니가 칼을 쓰고 여기다가 놓아두었는데, 며느리가 칼을 쓰고 다른 장소에 놓아둔다. 시어머니가 칼 쓸 일 있어 자기가 칼 둔 곳에 가서 칼을 찾는데, 칼이 없다. 이런? 이것이? 그렇고 그런 사소한 일들이 겹치고 쌓이고, 그러다보면 앙금이 생길 것이 아닌가.” 저절로 웃음이 번지고 손뼉이 쳐지는 대사다. 이런? 이것이?
자식사랑의 끈끈함과 생활인의 지혜를 보여주는 어머니의 콩이야기는 어머니의 무릎뿐만 아니라 ‘그래, 그렇지!’하고 독자들의 무릎도 치게 만든다. 원인모를 병으로 시름시름 아픈 아들 김용택을 위해 100여종이 넘는 약초를 캐러 들로 나선 어머니는 자꾸 셈하다 얼마까지 세었는지 까먹게 된다. 그러자 무릎을 치며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콩! “ 어머님은 집에서 콩 100개를 세어서 주머니에 넣고 다시 산으로 가셨다. 그리고 풀 한 줌 베어 넣고 콩 하나 꺼내 주고, 이런 식으로 어머님은 우리 동네와 산에 있는 풀을 모두 베어 100가지도 더 넘는 백초 효소를 만드신 것이다... 그 약을 먹고 김용택님의 몸은 몇 해를 두고 서서히 회복되셨다 한다.
육성회비가 없어 집으로 돌려보내진 아들 앞에서 어머니가 보여주신 비장한 강단은 그 시절 자식하나위해 온몸 바쳤던 우리 모두의 어머니를 떠올리게 한다. “머리에 쓴 수건을 벗더니, 땀을 닦고 옷의 먼지를 툴툴 털면서 ‘가자!’하며 앞서 밭을 걸어나갔다.“ 그 걸음에 닭들을 장에 내다팔고 그 돈을 아들 손에 쥐어주시며 당신은 차비가 없어 먼지속에 이십 리 길을 걸어오시는 모습, 그녀의 피붙이아들만 눈물 흘릴 장면은 아닐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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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이 글을 올리려 했다가 서버 이상으로 몇 번이고 실패한 끝에, 이 책에 대해서만 리뷰를 몇 번을 쓰는 지 모르겠다. 그런데, 쓸 때마다 조금씩 다르다. 분명히 같은 책인데도.
김용택 시인의 글을 읽을 때는 정서감이 확대된다. 그러다가 우연히 본 방송에서의 남편의 모습으로 보인 시인은 선생님의 모습과는 달리 자신감 1000%인 모습에서 진짜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 연세에도 꾸밈없이 밝을 수 있고, 지나친 자신감으로 상대방을 대할 수 있다는 것이. 그런데, 그게 무례하거나 거슬리지 않는 것. 진짜 고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어머니 혹은 엄마의 돌풍이 4년전에 시작해서 2년 전까지 광풍처럼 왔던 때의 어머니의 모습과는 조금 느낌이 다르다. 서술자가 남성인 것도 있을 수 있다. 보통 여성이 느끼는 어머니에 대한 감성이 직접적인 것을 조금 멀찍이 떨어뜨려 본 것이라면, 이 책의 어머니는 객관화된 시선인데 조금은 가까운 느낌이다. 계절에 따라 어머니 또한 소녀였고, 아름다웠던 젊은 날이 있었다는 것. 그런데, 어느 순간 딸래미를 학교에 보낼 수 없는 무한한 미안함에 고개를 먼 산으로 돌리는 모습이 문득, 애처롭다는 생각으로 다가온다. 그 시대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왠지 모를 고마움과 서운함이 교차하는 것은 어머니에 대한 양가 감정을 시를 통해 표현해 주었기 때문일 수 있다.
게다가 에세이라는 형식이지만, 중간중간 담긴 시들이 말하는 것은 꽉 찬 에세이보다 마음을 더 흔들고, 사진 속에 있는 주름진 얼굴의 모습은 한 때는 까르르 웃었을 미소는 사라진 채, 굳은 주름만 붙잡고 있는 현재를 시골풍경과 함께 보여주어 과거와 현재 어딘가에서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은 채 놓지 않는다.
그렇다고 우울하거나 미안함만 있지 않다. 중간중간 김용택 시인 특유의 해학이 깔려 있어서 가끔은 미소를, 이따금 파안대소를 끌어낸다. 무더운 여름 날, 우리 속에 어머니를 위한 자리 한 칸, 괜찮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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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40대 후반이고 어머니 세대는 대략 1920년대부터 1930년대에 태어나신 분들일 것이다.일제 강점기 중.후반에 태어나시고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엔 한국 전쟁의 폭풍이 한바탕 휩쓸고 가면서 국토의 거개가 쑥대밭으로 변하면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먹고 사는 문제'였다고 생각한다.경제력이 있는 가족 구성원들은 자고 일어나면 논과 밭으로 일을 나가야 하고 부모들은 생기는 데로 아이들을 낳았으니 바로 '베이비 붐'세대가 우리 세대가 아닐까 싶다.
우리 세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오로지 가족들을 위해 죽도록 일만 했을 뿐 호사다운 호사는 누리지도 못한 채 자식들이 성인이 되고 결혼을 하여 훌쩍 떠나고부터는 시골 농촌은 나이 드신 노인들만 집을 지키고 주인 잃은 논과 밭은 풀만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게 요즘의 농촌 현실이다.어쩌다 성묘차 본가를 지나칠라면 젊디 젊었던 이웃집 아주머니는 완연한 할머니로 변하고 인사라고 하면 너무 반가운 나머지 투박한 양손으로 반겨 맞아주기도 한다.시간과 세월이 많이 변해 어린 시절과 현재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격세지감과 세월의 무상이 온몸을 '쏴'하게 훑고 지나간다.
어린 시절의 나는 부모님이 객지에 나가 '양은 그릇'장사를 하시느라 할아버지,할머니의 훈육이 컸다고 생각된다.그러한 가정 환경 속에서 우리 형제자매는 할아버지,할머니의 잔소리를 듣고 그 분들의 일상을회고하니 '그런 날이 있었지'라고 상념에 잠기게 되는데,조부모님 두 분 모두 바지런하셔서 한시도 몸을 놀리지 않으셨다.할아버지는 초저녁 잠이 많으셔서 꼭두새벽에 일어나셔서 논물을 대고 잡초를 뽑고 밭일도 잠깐 하시다 아침밥을 드시러 귀가하고 할머니께서는 정지(부엌의 사투리)에 앉아 불을 때시고 아침밥과 상추,배추 등을 겉절이 하여 상에 올리면 어린 우리들은 맛있게 먹고 학교를 향해 힘차게 달려 가던 시절은 동쪽에서 떠오른 아침해와 동무 삼던 정겹고 순수했다고 생각된다.
묘포장이 있고 밭이 있으며 산과 들에 피어난 온갖 잡초가 인간생명의 근원이고 식재료였기에 할머니는 때가 되면 산과 들로 온갖 식재료를 찾으러 대바구니와 호미,백반(산에 뱀이라도 나타나면 백반을 뱀 앞에 놓는다) 등을 준비하고 머리엔 흰 수건을 두르고 가벼운 브라우스와 몸빼 바지차림으로 보무도 당당하게 산과 들로 향한다.해가 중천에 뜨고 점심 무렵이 되면 할머니는 대바구니에 고사리,취 등을 마루에 내려 놓으며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을 손등으로 훑어 내리신다.
김용택시인의 어머니의 모습은 시종여일 내 어머니,할머니의 모습이었고 시인의 고향에서 멀지 않은 곳이기에 시인이 사용하는 말투도 정겨움과 친근감이 새록새록 다가왔다.시인의 어머니의 일상이 봄부터 겨울까지 빼곡하게 일기장에 적어 놓은 어머니에 대한 '고백담'과도 같고 사모곡과도 같다.어머니를 예찬하려는 의도보다는 어머니의 본모습이 무엇이고 자식과 가족을 위해 헌신과 희생을 마다하지 않으신 소탈하고 강인한 생명력이 살아 있음을 제대로 보여 주기에 잊혀져 가는 어머니의 모습과 진실이 제대로 살아나는거 같다.
나는 할머니께서 어떻게 자라셨는지는 모르지만 일상에서 '욕'을 참 많이 하셨던거 같다.특히 할아머지도 마찬가지인데 일제 강점기때 일본인이 조선인에 대한 무차별적이고 경멸하는 말투가 암암리에 세뇌되었던 탓이 아닐까 싶다.너무 말을 듣지 않으면 '육시할 놈,염병할 놈' 등의 욕이 많았던거 같고 예의범절에 관한 훈육이 많았다.반면 어머니는 자식들에게 표현을 잘 하지 않은 과묵한 형(型)이었고 속으로 삼키고 인내하는 분이셨으며 욕은 거의 하지 않으신 양반 기질을 갖으셨던거 같은데 지금은 홀로 되어 외로움과 고독 사이에서 여생을 살아가신다.
제 어머니도 일이라면 한 몫 하신다.동네에선 여장부라 칭했을 정도로 힘이 세서 등짐도 남자 못지 않게 서너다발을 너끈하게 이고 오시며 묘포장에서 같은 일을 하더라도 남보다 빨리 정확하게 하시기에 묘포장 주인은 간죠(일당 계산)하는 날엔 덤으로 더 춰 주시고 집에 오시면 남보다 더 받으신 탓인지 얼굴 표정은 밝으시고 자부심마저 있었던거 같다.논과 밭,품앗이,종가 며느리로서 온갖 애경사 등을 챙기시는 것도 모자라 늘그막에 아버지께서 중풍으로 쓰러지시고 11년간을 병수발을 하시던 어머니는 이제 혼자가 되셨다.
며느리 눈치 보기 싫고 자유롭게 사는 것이 좋다며 한사코 본가에 혼자 계신다.장독대가 있고 약간의 남새밭이 있어 소일거리를 하신다.심심하면 이웃 사촌 동생을 만나시고 계모임이 있는 날이면 참석도 하면서 사람과의 만남을 좋아하신다.가끔 뵈러 가는 날이면 며느리보다 내가 좋아하는 가재미 탕과 갓김치를 손수 준비해 놓으시고 "차 몰고 오느라 힘들었을텐데 많이 먹어라"고 주섬주섬 가깝게 내놓으신다.고맙게만 생각이 든다.이러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안계시면 내가 좋아하는 음식맛을 누구에게서 찾을 수가 있을까 혼자 생각해 보기도 하는데 헤어질 시간이 되면 늘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드시고 그 자리에 우뚝 서계시는 모습이 애잔하게만 전해져 온다.나도 늙으면 어떠한 모습으로 자식들에게 내 모습이 남겨질지 손가락질 당하지 않는 당당한 아버지의 모습을 전해 주고 싶은데 시절은 참 어렵기만 하다.
김용택시인의 어머니와 내 어머니는 본질적으로 다르지만 천상 시골의 일꾼으로 살아오고 살아가는 분같다.손과 발이 머슴과 같고 마음은 자애롭고 인정 많으시니 고맙고 못해 드려 미안한 마음도 든다.할머니,어머니로부터 내려 받은 좋은 심성과 인간적인 면모는 잊지 않고 자식들에게 그대로 물려주고 싶다.이것은 돈과 물질이 팽배한 시대에서 매우 소중하고 귀한 정신적 유산이기 때문이다.대대손손 정신적 유산은 말없이 물 흐르듯 내와 강을 거쳐 크고 넓은 바다로 흘러가리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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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장 위대하면서도 가장 눈물겨운 이름이지 않을까 한다. 나 또한 두 아이의 어머니이지만 아직은 그런 '어머니' 라는 단어보다는 '엄마' 가장 먼저 녀석들이 부르는 이름일 듯 한데 내게도 이년전에 홀로 되신 친정엄마가 저자의 어머니와 연세가 비슷하신듯 하고 시골에서 농사일을 하시며 사시기에 얼른 읽고 싶었다. 친정엄마는 아버지가 두어해전에 먼저 가셨기에 아직은 아버지의 빈자리가 낯설고 혼자 그 농사를 다 지으신다는 것은 무리다. 허리와 다리가 안좋으셔서 구부정한 정말 쪼그라들어서 더 작아지셨지만 그래도 쫑쫑거리시면서 동네를 휘젓고 다니시는 것을 보면 눈물겹다. 어쩌면 작가는 우리네 어머니들을 대표해서 당신의 어머니의 모습과 일생을 담담하게 담아 냈는지 모른다. 어머니의 일생 속에서 또한 작가의 모습 또한 엿볼 수 있음이 좋았다. 숨김없이 토속적인 이야기들이 내가 살아온 이야기처럼 왜 그리 먹먹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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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연로하시면 마음의 준비를 한두번쯤은 해야한다. 아버지를 암으로 보내 드리게 되었을 때 정말 청천벽력과 같았다. '왜 내게 이런일이..' 하지만 어쩔 수 없는것이 인간의 길인듯 하다. 태어나는 길은 그렇다해도 가는 길은 정말 순서 없다고 받아 들여야 하지만 그것이 내게 일어난 일이나 더욱 크고 감당이 되지 않았다. 큰 병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 아버지 앞에서 담담하게 말하고 웃어야 하는,아무일도 아닌것처럼 대해야 한다는 것이 믿을 수 없었고 이해가 안되었지만 사시는 동안 웃는 얼굴을 더 많이 보여드리자고 생각하며 늘 입술을 깨물듯 웃었더니 그래도 그것이 연기라고 아버지 앞에서는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지금은 친정엄마 앞에서 '아버지'라는 단어만 나와도 눈물이 솟아난다. 어쩔 수 없는 감정인가보다. 그동안 울지 못하고 담아 두었던 눈물이 솟아 나는 것인지.그런 친정엄마가 혼자 농사일을 하시면서 시골에 계시니 신경이 쓰이면서 생각만큼 잘하고 살질 못하는게 또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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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어머님 또한 어린 나이에 신랑의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시집을 오셨다. 먼 길을 꽃가마 타고. 그렇게 오셔서 갖은 고생을 하시며 진메의 사람이 되어 가셨고 지금 또한 꼿꼿하게 사시는 모습을 보니 친정엄마 생각이 나서 몇 번이나 눈물을 흘렸다. 에고 나도 이럴 때 있었는데 하며 공감하는 부분들이 나 또한 시골에서 자라서일까. 나 또한 중학교를 한시간여 넘게 걸어 다녔다. 정말 산넘고 산 넘어 다녔다. 그러다 고등학교를 멀리 외지로 나가게 되었는데 원서를 써주시지 않는다고 부모님을 모셔 오란다.집까지 걸어가는 것도 한나절인데 다시 부모님을 모셔가는 것이 문제였다. 농사철이라 어디에 가서 찾는단 말인가. 밭이며 밭이란 다 돌아다녀 보고 들에 가서 또한 논마다 다 돌아다녀도 보이지 않던 부모님을 간신히 찾았는데 바쁘셔서 가실 수가 없단다. 농사일 하다가 학교에 간다는 것이. 다시 학교로 혼자 불나게 걸아가서 부모님이 바쁘셔서 못 오신다고 그냥 원서를 써달라고 부모님이 책임진다고 했더니 겨우 써 주셨던 기억이 난다. 그래도 그 때의 부모님은 젊으셨고 강단이 있으셨다. 지금처럼 허리도 굽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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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풀어낸 이야기 속에 육성회비를 내지 못해서 학교에서 돌려 보낸 이야기를 읽다보니 나의 옛기억이 떠올라 먹먹했다. 아들의 손에 닭을 팔아 장만한 차비와 육성회비를 손에 꼭 쥐어 주고 당신은 먼 길을 걸어 가셨을 어머니,우리네 어머니들이 그렇게 다 강하시다. 한시도 손에서 일을 놓으시지 않으시면서 오로지 식구들을 위해서만 자신의 몸을 혹사시킨다. 우렁이처럼.작가의 아버님이 아프실 때 8년 동안 다슬기국을 끓여 내셨다는 이야기를 읽고 뭉클했다. 어머니에겐 아버님이 하늘이고 이 세상 전부였을 것이다. 하루라도 더 함께 살기 위하여 어머님이 한겨울 얼음속도 마다하지 않으시면서 다슬기를 잡으셨을 생각을 하니.울 친정엄마 또한 아버지가 기운이 다해 가시는 통에도 늘 하시는 말씀이 있으셧다. '니 아버지, 지금 이대로 내가 살동안 함께 살았으면 좋겠다.' 그랬다.큰 병이라도 더이상 진행이 안되고 나이가 있으니 아픈 것은 당연하다고 하시면서 그 상태 그대로 두분이서 가는 날까지 함께 하고 싶으셨는데 아버지가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어머니들은 다시 남겨진 자식들 때문에 살아가신다.바지런하게 손을 놀리시고 당신 몸이 부서져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렇게 호미를 들고 일을 하시고 푸성귀 하나 더 자식에게 주기 위해 새벽에 밭에 나가시기도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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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기억이 풀어낸 이야기를 따라 가다보면 어머니의 일생 속에 '여자의 일생' 이 있고 저자의 일생이 또한 어미의 몸을 파먹고 나온 우렁이들처럼 그렇게 맑은 물 속 바위에 붙어 있는 다슬기처럼 바라 보고 있다. 굳건한 생명력은 아마도 어머니의 강인함에서 나오지 않았을까.어미닭처럼 자식도 품고 손자 손녀도 품고 보금자리를 따듯하게 만들어 모두가 모일 수 있는 둥지를 만들어 놓으셨다. 결혼한 여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면 소설 몇 권은 나온다는 농담을 자주 한다.그만큼 된고추보다 진하다는 시집살이도 이겨내고 없는 살림에 가난까지 이겨내며 자식농사 집안농사 말로도 다 풀어낼 수 없는 사연들이 정말 구구절절 많다.그런 이야기들이 아들을 통하여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한 권의 책으로 엮여진 것을 보면 어쩌면 그의 어머니는 행복하신 것이다. 작가 개인의 어머니를 벗어나 이젠 모두의 어머니로 거듭나셨다고 볼 수 있다. 나 또한 아버지 살아계시던 칠순에 칠십편의 연작시를 써서 칠순선물로 시집을 만들어 드렸다. 너무 좋아하시는 아버지, 그 책을 들고 돋보기 안경을 쓰시고는 앉아서 조용하게 읽으시던 아버지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누군가는 기억해주어야 할 부모님의 일생이지만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등한시하기 쉬운데 그럴때일수록 더 챙겨보고 챙겨 드려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 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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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가 문득 얼마전 친구의 연로하신 어머님이 수술하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 살기 바쁘다고 깜빡했다.어떠신지 문자를 넣었더니 아직도 병원에 계시단다. 내 부모님도 챙기게 되지만 나이가 들다보니 점점 친구들 부모님들도 걱정,이젠 모두가 받아들여야 할 나이인데도 그게 힘들다는 것이다.꾸밈없이 소박한 어머님의 사진과 시골사진이 함께 하면서 더욱 편안하게 내 어머니를 생각하며 읽었다. 어머님께는 다른 어떤 선물보다도 큰 선물이 되었을 듯 하면서 나 또한 우리 엄마를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엮어 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며칠전에는 친정에 갔더니 친정엄마가 아버지 사진을 꺼내 놓으시지 않는다. '엄마 왜 아버지 사진 안 꺼내 놓는데 난 아버지 사진 많은데 내가 줄까.' '니는 왜 니 아버지 그 흔 란닝구만 입고 있는 사진만 찍었니... 입성이 사나워서 싫다.' 엄마는 그게 싫으셨던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늘 일만 하시고 고생하시다 가셨는데 좋은 모습으로 기억하고 싶고 남기고 싶으셨는데 그걸 그 때는 말씀하지 않으시다가 아버지가 가시고 나신 후에 말씀 하신다.옆지기가 옆에서 한마디 거든다. '어머님, 그게 더 자연스럽고 좋은거에요.' '그래도 난 싫다' <김용택의 어머니>에서 내 아버지 내 어머니를 만난 듯 하다. 어쩌면 그는 그동안 어머니에게 진 빚을 이 책으로 조금이나마 갚지 않았을까. 흰고무신을 신고 몸빼바지를 입고 계신 어머님이 그렇게 이쁠수가 없다. 정말 건강하시고 꼿꼿하게 오래사시길 바란다.나 또한 친정엄마께 전화라도 자주 드려야겠다.이참에 얼른 전화를 걸어 '엄마 나야,막내..' 하고 반가운 목소리를 들려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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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기가 가꾸고 남이 가꾸어준다. 품위를, 인격을, 인품을 자기가 만들고 남이 알아주어야 한다.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 김용택의 어머니 중에서 - 목요일은 되도록 서평을 쓸려고 합니다. 오늘의 책은 시인 김용택이 1년간 어머니가 사시는 고향에 살면서 쓴 책입니다. 이 책 김용택의 어머니는 티비프로그램 비밀독서단에서 추천한 도서로 알게되었는데요. 저는 읽으면 왠지 어머니보다는 시골에서 사시던 할머니가 생각날 것 같아서 바로 배송주문을 넣었어요. 아니나 다를까 읽는 내내 시골에서 사시던 우리 할머니가 생각이 나서 눈물이 찔끔 나기도하고, 괜히 잊어버렸던 옛날 할머니 모습과 표정과 행동들이 떠오르면서 미소짓기도 했네요. 책 김용택의 어머니를 읽으면서 생각해보니.. 저의 할머니는 이미 고등학교 2학년때 돌아가셔서, 오래전에 제곁에 안계시지만, 어릴때부터 일년에 3개월에서 6개월은 시골에 맡겨져 할머니 손에 크다보니, 할머니와의 추억은 생각보다 많은 편이었어요.
김용택 시인의 어머니 라는 책을 읽으면서, 안에 삽입된 사진들을 보는데.. 전라도 나주의 아직 남겨져 있는 할머니와 함께지냈던 시골집이 떠오르고, 낮밤 구분없이 논일 밭일 하시던 할머니의 손길과 그 움직임. 깊게 패이고, 구부정한 자세와 뒷걸음걸이가 내내 계속 떠올라서.. 책을 읽다가도 잠시 멍.. 회상에 젖어 할머니 생각이 나서 왈칵 울뻔하기도 했네요. 그리고 전라도 나주도 겨울에 한번씩은 폭설만큼 눈이 가득오는 날이 있기에.. 겨울의 이 삽화는 정말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그 옛날 어릴때 겨울의 할머니집이 생각났어요. 김용택 시인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은 이 책에 정말 잘 표현되어 있어요. 출판사 문학동네는 김용택의 어머니라는 책에서 어머니뿐만 아니라 아내에 대한 고마움과 김용택 시인의 두 자녀에 대한 고마움도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시인이 쓴 어머니에 대한 글이지만, 시와 함께 전상서와 일기문과 김용택의 어머니에 대해 풀어써준 글 등. 빠르게 읽혀 나가면서도 큰 감동을 주는 책이었어요.
맘에 드는 구절이 있어서 사진으로 찍어 놨어요. 책은 설 명절에 집에 갔다가 동생이랑 엄마도 읽어보시라고 나두고 왔어요. 좋은 책은 나눔으로 가끔 시골집에 내벼두고(?) 오는데. 읽고싶은 사람이 읽겠지요,... ^^ 아니면 나두고온 책은 제 책 장식장이 따로 현관앞에 있어요. 비어있는 현관 장식장 반칸짜리 가득 미처 제가 버리지 못하고 시골집에 가져다 놓은 책들이랍니다. 가끔 다시 읽고싶으면 시골집에 갔다가 몇권 다시 들고 올라오고, 때론 가져내려간 책과 교환해 오기도 합니다.
김용택의 어머니는 이렇게 솥뚜껑에 밥을 지으신다고 합니다. 저희 할머니가 생각나네요. 가족이 많이 내려와 밥솥에 한끼를 다 못채울 정도가 되면 솥뚜껑에 가득 밥을 하시고, 밥솥은 밥맛이 없다며 솥밥을 준비해서, 식지 않도록 전기밥솥에 밥을 옮겨 주셨답니다. 그리고 나머지 반찬과 국이 준비될동안 밥그릇을 꺼내어 상차릴때쯤 '유리야, 밥퍼라~' 하고 하셨던 기억이 나네요. 시골에는 초등학교 4학년때까지 자주 왕래했던거 같아요. 이사진을 보는데.. 사진 한장에 많은 생각과 추억과 기억들이 떠오르고, 그때 봤던 것들, 그때 먹었던 밥, 할머니가 손으로 쭉 찢어주시는 김치, 밥위에 올려주시던 전라도 깍두기. 제대로 쉬어 지금도 생각만하면 침이 고이는 김치국물에 밥을 척척 비벼 후라이에 김을 싸서 먹던 그 기억과 함께 입맛을 다시고 다시 그 맛을 떠올리고 먹고싶게 만들더라구요.
이 글을 읽으면서, 내정하게 부모님께 대하던 저의 행동을 반성하게 되었어요. 설연휴동안 부른배 내밀고 상전 노릇하며 차려주시는 밥먹고, 수다 떨며 어머니랑 지내고 있었지만, 그래도 옆에 있는 어머니가 너무 고맙고 짠하고 눈물나고,, 그간 고생해오셔서 이제 겨우 밥한끼 편하게 먹을 수 있을 정도 되었다 여기시는 어머니를 보고 있자나.. 가만히 누워서 밥상만 받을 수는 없겠더라구요. 그래도 딸이 임신을 해서 7개월이나 된 남산만한 배를 부여잡고 집에 내려왔다고 많이 잘 먹어야 한다며 매끼 다른 메뉴로 식사를 차려주시고, 준비해 놓으시고, 배가 너무 불러 많이 못먹는 저를 보시고는 많이 못먹어 어떻하냐며 안타까워 하시는 모습을 보니, 어머니는 아무리 나이가 많이 드셔도 어머니고, 할머니가 되어서도 나에겐 여전히 우리 어머니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저희 어머니에게 '이책 읽으니, 시골에 할매 생각난다. 우리 박식이 여사.' 라고 얘기하며, 이번 설에는 차례상 옆에 따로 할머니 다과상을 차려 드렸어요. 원래 제사나 차례등은 모두 큰집에서 따로 지내시는 터라, 저희는 제사일에만 큰집에 이동해서 참석하는데, 이번에는 생각난 할머니가 그리워서 옆에 따로 할머니 차례상을 차려 술도 따라 드리고, 어머니랑 동생이랑 함께 준비한 음식위에 젓가락도 올려드렸네요. 이번설에 친정에 내려갈 수 있게 먼저 배려해주신 시어머니께도 너무 감사하더라구요. 올라오는 길에 어머니가 챙겨주신 헤라 화장품 안티에이징 기초세트 하나를 따로 챙겨와서 올라오자마자 바로 시어머니댁에 들려서 선물드렸어요. ^^ 나의 어머니가 소중하고, 우리 아버지의 어머니가 소중하듯, 신랑에겐 신랑의 어머니인 울 시어머니도 제겐 소중하고, 어머니들께 감사를 느끼게 해준 책이었습니다. 두어머니 살아계실때 내가 누릴 해택이나 금전적 여유를 조금더 아끼고 아껴. 두 어머니께 작은 선물이라도 하나더 챙겨드리고, 고마움을 표현하고 해야겠어요. 비밀독서단에서 정말 좋은 책을 추천해 주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네요. 덕분에 책한권 진짜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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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택 시인의 어머니.. 참 재미있고 감동적이다.. 그리고 또 다시 읽어보고싶다.. 고이 간직하고 계속 읽어야지, 김용택 시인 내가 매우 좋아하는 시인이다.. 어머니에 대해서 다시한번 느낄 수 있었다. 김용택 시인의 어머니.. 참 재미있고 감동적이다.. 그리고 또 다시 읽어보고싶다.. 고이 간직하고 계속 읽어야지, 김용택 시인 내가 매우 좋아하는 시인이다.. 어머니에 대해서 다시한번 느낄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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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중학교 때 기성회비 못 내 학교에서 쫓겨 와서 배추 다듬는 어머니 앞에 서서 어무이 돈 줘. 어저께 기성회비 안 냈다고 선생님한테 혼났단 말여. 얼마냐? 3천원 글고, 차비도 줘야 혀. 다 얼마냐? 3천2백원. 3천원뿐이다. 글면 안 된디. 글면 어치고 허것냐? 기성회비 없으면 내일 학교 오지 말랬당게. 돈 없다. 갈라면 가고 말라면 말아라. 어무이. 뭐? 나 학교 안 가고 농사짓고 살라요. 썩을 놈 지랄허고 자빠졌네. 농사는 아무나 짓는 줄 아냐? 어이, 냅둬부러. 지 신세 지가 알아서 허게. 저 안 혀도 자식새끼들 많은디 뭔 걱정이여. 잘 됐다, 돈도 없는디. (44~45p.)
참말로 웃음이 난다.
대화 속 등장 인물 아무도 웃음이 안나겠지만은 대화 밖 듣는 나는 웃음이 난다. 내용이 뭐 그렇게 웃음 날 것도 없건만은 나는 왜 이렇게 웃음이 날까. '글면 안 된디.' 에서 한 번 '글면 어치고 허것냐?' 에서 한 번 '돈 없다. 갈라면 가고 말라면 말아라.' 에서 한 번 '어무이.' 부르는 데서 한 번 '뭐?' 대답에서 한 번 '썩을 놈 지랄허고 자빠졌네.' 에서 빵 터지고 '농사는 아무나 짓는 줄 아냐?' 에서 슬그머니 웃고 '어이, 냅둬부러.' 에서 또 빵 터지고 '지 신세 지가 알아서 허게.' 에서 껄껄 웃고 '저 안혀도 자식새끼들 많은디 뭔 걱정이여.' 에서 큭큭 '잘 됐다, 돈도 없는디.' 에서 두 손 들고 웃고! 그리워서 웃고 아련해서 웃고 좋아서 웃고 기뻐서 웃고 감탄해서 웃고 웃겨서 웃고 껄껄 웃고 깔깔 웃고 두 손 들고 웃는다. 무엇보담도 어무이. 하고 부를 수 있는 어무이가 계셔서 웃을 수 밖에 없다. 그런 책이다. 웃음이 끊이지 않는 책. 앞으로 웃고 싶을 땐 개그 프로그램 말고 『김용택의 어머니』를 읽으면 되겠다. 참 든든하다. 새로 고향을 얻은 기분이다. 참 좋다. 아아아 어머니! 아하하 어머니! 하하하 어머니!
꽃이라도 펴야지요
햇살이 좋다. 어머니와 나란히 마당에 섰다. 앞산에 꽃이 핀다. 산복사꽃이다. 지난겨울 눈도 많이 오고 추워서인지 꽃 색깔이 화사하게 곱다. 자연은 어김이 없다. 나이 드신 어머니 몸에 떨어진 햇살이 좋다. 어머니는 땅을 딛지 않고 날아다니셨다. 길을 걸으면 통통 소리가 났다. 많이 늙으셨다. "어머니, 꽃들이 많이도 피어나네요." "근다이." "어머니, 저기 지금 저 꽃밭 등에 피어나는 것이 산복숭아꽃이지요?" "그런가보다. 오새는 꽃들이 순서가 없이 피고 져분다." "뒤란에 매화꽃도 펴 있어요." "꽃만 저렇게 히야다지면 뭐헌다냐. 꽃도 사람이 있어야 꽃이다." "......근데요 어머니, 꽃이라도 펴야지요." "그렇구나." (72~7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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