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에 드라큘라 관련 글을 쓸 때 자료를 찾아 보니, 뱀파이어 관련 연구의 대가는 바로 이 책의 저자인 장 마리니였다. 그래서 이 저자분을 더 파고 싶었건만 당시 국내에는 시공사 시리즈 한 권만 나와 있어 아쉬웠는데, 때마침 이 책이 출간되어 반갑게 읽었다.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이후 현대의 신화가 되어버린 뱀파이어. 이 뱀파이어를 연구하는 '뱀파이어학Vampirologue'이 있을 정도로 서구에서는 전설, 문학, 영화, 오페라 등을 통해 엄청난 분량의 뱀파이어 관련 이야기들이 생산되었다. 중세도 아닌데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21세기인 현재에도 <트와일라잇>시리즈의 예를 통해 알 수 있듯 뱀파이어의 이야기들은 여전히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의 저자 장 마리니는 50개의 질문과 대답을 통해 뱀파이어에 대한 모든 것을 쉽고 재미있게 들려 준다. 또한 만화나 게임등을 통해 현대적, 대중적으로 변용된 뱀파이어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왜 뱀파이어에 열광하는지, 이 열광에 우리 사회와 시대의 어떤 모습이 반영되어 있는지도 알려 준다. 이는 계몽주의 시대의 뱀파이어 이야기는 유럽 주변 미개한 문명에 대한 비판으로 사용되었으나 현대에 올수록 소수자, 약자에 대한 함의를 담고 있는 이야기로 사용되는 예로 보아 단적으로 알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뱀파이어가 불사의 존재가 아니라, 뱀파이어를 보는 우리의 정서 자체가 영생불멸인 것.
일단 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가 찾고 소화해낸 방대한 자료에 감탄하게 된다. 또 신화와 역사, 문학과 대중 예술, 구비문학과 문헌을 넘나드는 저자의 깊고 넓은 지식에도 입을 딱 벌리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을 때엔 입에 파리 들어가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또 책 뒤에 관련 자료 목록이 첨부되어 있어 이 분야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필독서가 될만한 책이다. 소장하고 두고두고 꺼내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
저자는 8번 질문에서 동부, 중부 유럽에 뱀파이어에 대한 믿음이 다른 지역보다 더 강했던 이유를 묻는데, 여기에 대해 주로 카톨릭 전통이 강했던 서남부 유럽의 종교 재판소의 영향이 서남부 유럽의 흡혈귀 관련 미신의 전파를 막은 반면, 미신적 요소를 인정했던 동방정교 교회와 가까웠던 중동부 유럽은 그렇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뻔한 견해인 유럽 합리주의 계몽주의의 영향을 답으로 한다. 그런데 난 동유럽, 발칸반도의 예전 오스만 투르크 지배 지역 뱀파이어 전설이 주로 서유럽권에 퍼진 과정을 통해 과거 기독세력과 이슬람 세력의 역사적 대립관계에서 풀어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 관련 근거가 될만한 내용은 이 책에 없어서 아쉬웠다.
그외, 독일에 대한 적대감이 극에 달했던 양차 세계 대전 사이에 미국에서 나온 대중 문학속의 뱀파이어들은 거의 슬라브계나 독일계 이름으로 등장했다거나,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실존인물 블라드 드라큘라의 동상을 여러 곳에 세웠다는 등등 앞으로 인용할 만한 흥미로운 역사적 사실들을 수집하게 되어 좋았다.
(4월말인가 5월초에 한겨레 신문 토요판 책 특집 기사에서 이 책의 출간 기사를 읽자마자 사 읽은 책인데 리뷰는 이제 남긴다. 뱀파이어학의 대가 장 마리니의 새 책,,, 이라는 소개글을 읽는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지고 심장이 터질듯 뛰기 시작했다. 예스에 주문한다면 도저히 책이 오는 동안 기다릴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홈 드레스 차림으로 당장 지갑만 들고 껌정 슬리퍼에 발을 꿰고 허겁지겁 가까운 동네 서점에 뛰어가서 손을 부르르 떨며 이 책을 집어 들어 계산하고는 바로 그 자리에 주저 앉아 읽었다. 아, 이러다가 내가 내 성질을 못이겨 제 명에 못 살지, 싶다. ㅠ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