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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매우 풍족하고 편리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계절에 관계없이 사시사철 푸릇푸릇한 채소와 과일을 먹을 수 있고, 24시간 편의점이 있어 어느 시간이라도 나가서 나의 필요를 채울 수가 있다. 예배 역시 마찬가지이다. 대형 교회들이 생겨나면서 일주일 7일간 끊임없이 예배가 있고, 주일날은 몇 차례의 예배가 있어서 언제든지 편리한 시간에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예배의 중요성과 열정이 절실함이 사그라지고 있다. 또한 왜 예배를 드리는지에 대한 본질마저 흐려지고 있다. 《천상의 예배》는 이러한 시대의 예배 행위에 대해 경종을 울리고 있다.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과 그분의 부활의 능력을 알기 위해 그리고 그분께 나의 사랑을 표현하기 위함이다. 예배는 언제나 우리의 믿음을 반영해야하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대가 없이 주신 은혜에 우리 자신을 집중해야 한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예배를 드렸던 다윗에게는 스물네 개의 예배 팀이 있었고 그들은 한 시간씩 예배를 드림으로 24시간 예배가 그치지 않았다. 스물네 개의 예배 팀은 하나님 앞에 서는 시간을 기대하며 기다렸다. 그들은 흥분되어 있었고, 준비되어 있었으며, 자신들의 차례가 돌아오기를 열망했다. 자신들의 예배 시간이 되면 온 마음을 다해 예배했다. 《천상의 예배》는 예배를 드리고 있는 지금 우리의 모습이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가지고 나아가고 있는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는지 돌아보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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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이라면 누구나 주님께 예배를 드린다. 그러나 과연 우리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를 드리고 있는것인지 그저 종교적인 형식을 따라 내가 예배하고 있다고 믿는것인지 알수없을때가 많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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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예배를 드릴때 하나님이 이 예배를 받고 계실까 하는 의문이 생길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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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천상의 예배”를 갈망한다. 주님과의 교제를 통하여 주님을 더욱 알아갈수록 계시되어지는 그 분의 속성과 임재를 잠시 엿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오직 한 분을 예배하게 된다.
천상의 예배에 필요한 것은 ‘희생제물’과 ‘믿음’ 그리고 ‘하나님과의 교제’이다. 요즘처럼 음향기술이 발달하고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음악적 기술이 발달했다고 했더라도 예배의 본질이 없다면 아무리 화려하고, 편안함과 안락함과 기쁨을 준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훌륭한 음악’ 또는 그저 마음을 달래주는 ‘어떤 것’이지 예배가 될 수는 없다. 그러나 음악은 우리가 쌓아놓은 장벽을 무너뜨려 하나님을 바라보게 한다. 진정한 예배는 이러한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시작되는 우리의 반응이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예배드릴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이 찾으시는 깨어지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믿음을 더하여 보좌 앞으로 날아올라야 한다. 하늘의 소리가 우리를 붙잡고 우리는 천국의 소리로 노래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타오르는 열정으로 끊임 없는 예배를 올려드릴 때,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소유하고 중보기도로 예배를 올려드릴 때, 우리가 하나님이 응답하시는 예배를 드릴 때, 우리가 영적전쟁으로 하나님으로 예배를 드릴 때, 우리가 진실로 ‘할랄’, ‘나바’, ‘토다’, ‘야다’, ‘자마르’, ‘테힐라’, ‘샤바흐’를 할 때 하나님은 또한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올 것이다.
진정, 이 책은 ‘하나님을 찾는 우리’에게 새로운 차원으로 도약할 우리의 예배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이미 일어나고 있는 이러한 예배의 모습들에 대한 이해는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큰 도움을 준다. ◈크리스챤으로서 살면서도 우리는 가끔 주일이기 때문에 교회로 발걸음을 향한다. 어떤 정해진 순서에 따라 드리는 예배가 삶에서 드리는 예배의 전부가 되어버릴 때도 있다. 머리는 신학적 지식으로 충만하지만, 마음은 소중한 무엇인가를 잃어버리고 있다. 잃어버린 무엇인가를 회복하고 싶기는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문제는, 역시 “예배”이다. 설교 전의 필수적으로 들어간 찬양 1,2곡이 아니라 삶 가운데 하나님과의 교제를 놓치지 않으며 그 분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것이다. 더불어 예배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부르심이다. 예배를 빼놓은 그리스도인을 생각할 수 있는가?
“천상의 예배”는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예배에 대하여 초점을 맞춘다. 저자들은 우리가 잃어버린 “예배의 본질”에 대해서, 그리고 요한계시록에서 계시하는 ‘천상’에서 드려지는 “예배의 모습”에 대해서 설명하며 은근히 격려하고 독려한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하여 “천상의 예배”의 모습을 조금씩 엿보고 알아가게 된다. ‘천상의 예배’가 포함하는 ‘역동성’, ‘지속성’, ‘즉흥성’, ‘예언’, 그리고 ‘중보기도’ 등이 말씀 안에서 풀어지고 분명히 계시되어 자연스럽게 하나님만을 볼 수 있는 압도적인 예배를 갈망하게 된다.
우리는 이 책을 읽으면서 다윗이 언약궤를 옮기며 저질렀던 실수와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 동참하기도 하며,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서의 왕과 제사장의 역할을 이해하고 그 두 역할을 능숙하게 감당했던 예배자로서의 다윗의 영성에 동참하기도 한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장막이 찢어져 하나님의 임재로 나아가는 길을 재발견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좌에 앉으실 수 있도록 반드시 예배자로서 소명도 찾게 된다.
책을 덮을 무렵, 우리는 더 이상 잃어버린 것으로 고민하지 않게 될 것이다. 도리어 우리는 가정과 사회 모든 영역에서 주님의 나라를 풀어놓을 예배를 시작하게 될 것이다.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자마자, 하나님은 나에게 친밀함을 부어주시고 교제를 허락하셨다.
골방에서 그 분과의 교제는 달콤했으며, 계시적이었으며, 강한 사랑이 넘치는 시간들이었다. 내가 사랑을 고백하면 그 분은 회답했으며 내가 은밀한 것들을 고백하면, 그 분은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시고, 능력을 부어주셨다. 나는 골방에서 마음껏 그분을 예배했다. 이러한 시간들이 어느 정도 지나자 하나님은 서서히 나를 골방에서 끌어내기 시작했다.
나는 나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성격인데다 친화적인 성격도 아니어서 처음에는 이해가 되질 않았으나,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기름부음이 임하기 시작했다. 나의 분명한 경험은, 저자 중 한명이 아가서의 말씀으로 풀어낸 경험과 놀랍도록 일치한다.
"예배“는 드리는 우리의 방식이 아닌 받으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가 분명히 존재한다. 아가서의 말씀에 따라 신랑의 인도하심을 따라 골방에서 나와 신랑을 따르는 신부처럼 교회는 골방에서 나와 새롭게 신랑을 따라나서야 할 때임이 분명해 보인다. 우리 모두는 ‘새노래’로, 그리고 하나님이 이루실 일을 ‘예언적’으로 선포하고, 영과 진리를 합하여 그 분께 합당한 최고의 예배를 드려야 한다. 우리는 만물과 모든 피조물 중에 그 분의 영광을 찬양하고 예배하기 위하여 존재한다. 이 책은 그 거룩한 부르심에 압도당하도록 우리의 중심에 도전한다. 함께 구원받은 자로서, 저자들을 뛰어넘는 천상의 예배를 이 땅 가운데 펼쳐내기를 소원한다. 골방에서 나와, 천상으로 날아오를 시간이 도래했음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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