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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운현궁 로맨스라는 국악뮤지컬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나약한 고종을 휘어잡는 권력있는 아버지 흥선대원군의 못습을 본 기억이 뚜렷하네요 딸아이도 뮤직컬을 보고 와서 그런지 흥선대원군의 이름이 적힌 책에 대해 거부감 없이 선뜻 집어 읽기 시작했답니다. 역사책에서 흔히 보는 쇄국정책을 펼친 흥선대원군 딸아이가 이책을 읽기 전에 흥선대원군에 대한 느낌은 엄격하고 고지식한 느낌이라고 했었는데 이책을 읽은 후 흥선 대원군 또한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중에 한 사람이었다고 말을 하더군요 박규수는 실학사상을 일찍 깨우칠수 있는 집안에서 자라나 나라의 정치역시 외국의 좋은점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는 개화사상을 가지고 있었으니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을 얼마나 답답해 했을까요? 그리하여 흥선대원군이 피고가되고 개화정책을 펼치던 박규수가 원고가 되어 법정싸움을 하게 되는 이책에서는 흥선대원군이 쇄국정책만을 펼지며 우리나라를 외국으로부터 완벽하게 차단하려 했다는 내용으로 시작을 하지만 흥선대원군도 천주교인 아내를 두고 안동김씨 일문을 내보내고 새로운 내라를 만들고자 열심히 노력한 사람이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강화도 조약, 제너럴셔먼호 침몰, 서원철폐, 등을 설명하면서 역사속에서 인물들이 왜 그래야만 했는지를 잘 알려주고 있답니다. 이책을 통하여 아무리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여도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 뜻대로만 한다면 나쁜 결과를 얻을수 있다는 것을 알게해줍니다. 흥선대원군 뿐만아니라 박규수 또한 서로 나라사랑하는 마음을 적절하게 화합하였다면 우리의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역사를 다시한번 생각해볼수 있는 재미있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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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법정 / 역사공화국 / 왜 흥선대원군은 쇄국 정책을 펼쳤을까? / 자음과 모음
쇄국정책을 펼쳐 문호 개방의 기회를 놓치고, 결국 조성 왕조가 멸망하게 하게 되었다며 실학자 박지원의 손자 박규수가 흥선대원군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렇다면.. 흥선대원군은 왜 쇄국정책을 펼쳤을까요
제2차 산업 혁명을 거쳐 19세기 말 세계는 큰 변화를 겪었답니다. 상품의 원료를 얻고, 상품을 팔고, 자본을 투자할 새로운 시장이 필요했는데, 그들은 해외 여러 나라에 자국의 식민지를 만들기 위해 경쟁적으로 뻗어나갔지요.
일본이 네덜란드로부터 문물을 받아 들여 근대화에 성공하고 강한 줄만 알았던 청나라가 영국과의 전쟁에서 져 불평등조약을 체결했어요. 12살 고종을 대신해 섭정을 하게 된 흥선대원군은 세도정치를 몰아내고, 당쟁의 근거지인 서원을 철폐하고, 의정부의 기능을 정상화 시키는 등 여러 가지 개혁정책을 펼쳤답니다.
왕권의 위엄을 세우기 위해 폐허가 된 경복궁을 재건하는 무리한 개혁을 추진하고 유림의 반발을 막으려는 정치적 이유로 천주교인들을 대대적으로 탄압하기도 했지요.
제너럴셔먼호 침략사건, 오페르트의 남연군 묘 도굴 사건, 병인양요, 신미양요와 같은 서양의 무력도발은 흥선대원군으로 하여금 쇄국정책과 국방력 강화 후 문호를 개방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답니다.
쇄국정책으로 조선이 개화의 흐름에 대비하지 못해 멸망하고 일제 강점기, 남북분단, 한국전쟁과 같은 비극을 겪어야 했던 것에는 흥선대원군이 일말의 책임이 있다고 말할 수가 있을 듯 한데요,
하지만... 요즘에도 FTA 협정에 대해서도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고, 내정이 정비되지 않은 상태로 문호를 개방했을 때의 부작용과 폐해 역시 상당할 거라는 걸 짐작은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조선을 강한 나라로 세우고자 했던 마음은 같았지만 방법이 달랐던 두 사람의 주장을 통해 그 당시의 세계정세와 조선의 내부사정 그리고 세계사와 한국사가 어떻게 맡 물려 돌아가는지를 알 수 있었던 아주 유익한 시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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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
쇄국정책을 추진한 분이지요, 왜 펼쳤는지에 대한 재판이 흥미진진하게 진행되고 있는 책이랍니다.
박규수는 흥선대원군에 의해 문호 개방의 기회를 놓쳐 결국 조선 왕조가 멸망하게 되었다는 것을 말하며 흥선대원군에게 쇄국 정책의 책임을 묻고 공식적인 사과를 요구하는 재판입니다. 박규수는 일찍이 외국과 문물을 교류하는 개화의 필요성을 깨달아 개화파 사상가들을 키워낸 개화파의 시조예요. 하지만 흥선대원군은 당시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고 세계 정세에 발빠르게 대응하지 못하였지요. 게다가 흥선대원군은 병인박해를 일으켜 희생자를 내고 병인양요까지 이어져요. 흥선대원군도 이 부분을 인정하기는 하나 외세는 순수하게 들어온 선교자들조차 조선의 문을 열고 들어와 삼키는 기회로 삼으려고 하였기에 무작정 문호를 개방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며 반박하였어요.
흥선대원군은 오히려 그럴수록 조선을 강한 나라로 세우고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지켜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서구 열강뿐만 아니라 가까운 나라 일본 또한 조선을 삼키기 위해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으므로 조선을 지키기 위해 나라의 문을 닫아둘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원고측 변호사는 쇄국정책이 조선 왕조에 얼마나 나쁜 영향을 끼쳤는지 밝히면서 우물안의 개구리처럼 세상을 모르게 하는 정책을 펼친 흥선대원군은 조선이 멸망의 길로 가는 장본인을 만들었다고 말하였고, 피고측 변호사는 흥선대원군이 처음부터 쇄국정책을 펼친게 아니었고 제너럴셔먼호 침략사건, 오페르트의 남연군 묘 도굴 사건, 병인양요, 신미양요와 같은 서양 세력의 무력 도발을 겪은 후 서양 오랑캐를 무찌르기 위해서는 조선의 국방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였기에 신무기를 개발하는 데 투자하고 조선의 국력을 먼저 키운 후 외국에 문호를 열 생각이었던 것이라고 옹호하였어요.
이에 판사는 원고 박규수의 청구 내용을 부분적으로 인정해요. 흥선대원군이 추진했던 쇄국정책으로 인해 조선의 역사는 후퇴되었고, 일찍이 자주적인 통상개화를 추진했다면 조선이 멸망하고 일제강점기, 남북분단, 한국전쟁 같은 비극을 겪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에서 원고측 주장을 타당하다고 하지요. 하지만 역사에서는 가정법이 적용되지 않으니 오늘날의 시각이 아닌 당시의 시각으로 쇄국 정책을 바라볼 필요도 있다는 점에서 원고의 주장은 모두 받아들일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는 게 판결 내용이에요.
정말 '만약 이러일 했다면....'이라는 가정법이 역사에서 통한다면, 흥선대원군이 쇄국 정책을 추진하지 않았다면 우리나라의 발전이 지금보다 더 빨랐을까요? 이에 대한 답변은 어디까지나 상상적 사고에 맡길 수밖에 없어서 안타까울 뿐이네요. 이 판결을 통해 넓은 시야를 갖지 못한 꽉 막힌 정치적 성향의 소유자로만 여겼던 흥선대원군에 대한 나의 판단이 어느 정도 유연하게 열리게 된 계기가 되었어요. 당시의 역사적 상황에서 흥선대원군이 아닌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그 역시 흥선대원군과 같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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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흥선대원군은 쇄국 정책을 펼쳤을까? 이정범 글 / 조환철 그림 (주)자음과 모음 펴냄
흥선대원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은 명성황후 입니다.. 시아버지의 쇄국 정책때문에 가장 힘들어 했던 인물... 그리고 가장 본받고 싶고 가슴 아픈 인물이기도 합니다.
흥선대원군은 쇄국정책으로 유명합니다. 흥선대원군이 집권할 무렵 우리나라는 안팎으로 격변을 겪고 있었습니다. 조선에서는 60년 동안 안동 김씨, 풍양 조씨의 세동 정치로 백성들이 힘들어 했습니다.
뇌물을 받고 벼슬을 팔고 백성들을 착취 하는등 백성들이 가장 힘든 시기였습니다. 그때 농민들은 이제는 안되겠다 싶어서 전국 각지에서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본 흥선대원군은 일부러 허름한 옷차림을 하고 다니면서 술에 취해 살았고 높은 사람집에가서 쌀을 꾸어 생계를 이어 살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높은 사람들의 힘이 워낙에 컸기에 그 들의 눈밖에 나면 좋지 않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철종이 서른 두살로 세상을 떠나자 둘째 아들 고종을 왕위에 앉히고 자신은 그 뒤에서 조정을 하면서 조선의 권력을 쥐게 됩니다...
행정 조직 개편, 경복궁 증건, 서원 철폐, 인재등용등 다양한 방법으로 개혁 정치를 합니다. 수십 년간 이어진 세도 정치를 무너뜨리고 왕권을 강화 하려고 합니다.
그 시절 세계 여러 나라들은 무역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식민지로 개발하거나 문호를 개방하려고 합니다. 중국, 일본도 강제로 문호를 열었고 조선도 강력하게 이야기 하자 병인박해를 일으키면서 프랑스, 미국, 독일등의 압박을 철저히 물리치면서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세우게 됩니다.
만약 흥선대원군이 그때 쇄국정책을 펼치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나라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요?
불과 몇백년 차이 나지 않지만 그 시절과 너무나도 다르게 살고 있는 지금...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 책을 읽을때면 늘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또 그 시절에 살고 있는 것 마냥..착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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쇄국정책하면 흥선 대원군을 떠올리게 만듭니다. 무리하게 개혁을 추진하다가 지배 계층이었던 유림의 반발을 사게 되었고, 쇄국을 결심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고 합니다. 외국에 문호를 열어 주고 조선의 사상과 문물, 제도를 새롭게 뜯어고쳐 근대 국가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문호 개방의 기회를 놓쳐 결국 조선 왕조가 멸망하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실학자 박지원의 손자인 박규수는 흥선 대원군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게 이릅니다. 왜 흥선 대원군이 쇄국 정책을 펼쳤는지 한국사 법정에서 자세하게 알아보기로 합니다.
이미 정조 임금 시대부터 조선에는 변화와 개혁을 주장하는 실학사상이 활발히 연구되고 있었습니다. 정조 임금이 죽고 열한 살의 어린 나이로 순조 임금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순조 임금의 할머니인 정순 왕후가 섭정을 했고, 안동 김씨들이 조정을 완전히 장악하였고, 순조 임금마저 일찍 죽었고, 아들인 효명 세자도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헌종 임금이 겨우 여덟 살 때 왕위에 올라 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를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헌종 임금마저 왕자를 낳지 못하고 일찍 죽었고, 강화도에 유배되어 살던 이원범을 데려와서 왕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가 철종입니다. 철종이 왕위에 있는 동안 흥선군은 방탕하게 지내고 꾀죄죄한 모습으로 돌아다니면서 안동 김씨의 감시를 벗어났습니다. 철종이 신정 왕후를 찾아가 둘째 아들인 재황을 다음 왕위에 앉히게 됩니다. 고종 임금의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수렴청정을 해야 했고, 신정 왕후의 명으로 흥선군이 섭정을 하게 되었습니다.
흥선군은 천주교를 박해하고, 쇄국 정책을 펼친 것이 단지 정권을 유지하고 유림 세력의 지지를 받으려는 목적 때문이었다고 하지만, 한 나라의 최고 책임자이면서도 세계정세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하지 못한 채 정권에 연연해 대외 정책을 결정했다는 말이 되는것입니다. 흥선군은 어떻게든 책임을 져야 할까요? 흥선 대원군이 쇄국 정책을 펼친것에는 그만의 생각이 있었겠지요. 흥선 대원군이 조선의 역사를 후퇴 시켰다는 박규수의 주장과 조선을 강한 나라로 세우고 싶었다는 흥선 대원군의 주장은 어떻게 결론지어질지 한국사 법정에서 만나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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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 모르는 사람이 없을만한 사람 이하응..
그가 법정에 섰다.. 박규수와 대결구도로..
사실.. 왜 흥선대원군은 쇄국 정책을 펼쳤을까.. 란 제목만으로도 많은 생각이 들었던 책이다.
교과서 속에서 시험문제로 많이 나온 인물이라 이름도 알고 그의 직위도 알고, 그와 연관되어 쇄국정책도 알고 명성황후에 관계된 이야기 속에서 그녀와 대립구조를 이룬 인물인것도 알고, 경복궁 을 재건하면서 오류를 범한 것도 알지만.. 왜... 쇄국정책을 폈을까..란 질문으로 생각을 해본적은 없는듯.. 그저 암기만 했을뿐..
왜.. 라는 질문이 가미되자.. 책도 재미가 있어졌고, 역사적으로 이유를 찾다보니, 그 당시 인물이 살았던 시대상과 정치적인 이유, 상황, 그리고 주변정세, 주변 인물, 있었던 사실 등등이 다 배경으로 깔리면서 역사가 재미가 있어졌다.
이 책이 노리는게 바로 그게 아닐지..
쇄국정책의 대표적 인물이란걸 알았지만 그가 쇄국정책을 처음부터 펼려던 건 아니었고, 정치적으로 세도 정치를 몰아내고 왕권 강화를 제 일순위 목표로 세우면서, 유림의 지지를 받고자 부인까지 믿는 천주교를 탄압하고, 그 과정에서 쇄국정책을 밀고 나갔고.. 그 역시 나라의 국권이 강해지면 어쩌면 쇄국 정책에서 전환해서 개방을 했을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박규수는 흥선대원군만큼 유명하지만, 그에 대해 아는건 더 적었는데.. 이 기회로 그가 개화사상가의 중심이고, 개화하도록 열심히 노력했지만 정작 개화를 해야하는 건 알았지만, 외교통상과 수교회담을 위해 아무런 공부나 준비를 하지 않아 불평등 조약을 맺게 되었다는 책임도 약간 있지 않을까.. 란 생각도 들었다.
책을 마무리 짓는 부분에서 한걸음 더 역사논술을 읽으면서 역시 역사는 그저 외우는 게 아니라 현실에 적용해서 과거의 잘못을 답습하지 않는 과목이란 생각이 들었다. 현재 시대의 FTA에 빗대어 논술을 풀어야했으니..
역사를 그저 외우는 과목이 아닌 살아 있게하고, 인물역시 살아있는 인물로 조명해보면서 역사에 재미를 느끼기 좋은 책이었다..^^ 아이가 다시 읽어보고, 다시 읽는 걸 보면서 흐뭇함 또한 느끼게 된.. 고마운 책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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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가정이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만약~~였다면 가정으로 역사를 바꿔 상상해 보는 일은 종종 색다른 즐거움을 주는데 그때, 많이 거론되는 것 중 하나가 만약 흥선대원군이 쇄국정책을 선택하지 않고 일본처럼 개방정책을 폈다면 어땠을까?가 아닐까 합니다. 아마도 흥선대원군의 정책이 달라졌다면 우리의 근현대사도 지금과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을 것입니다. 그만큼 쇄국정책은 중요한 사건 중 하나이기에 왜 흥선대원군이 쇄국정책을 펼쳤을까?는 한 번쯤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역사적 주제일것입니다.
조선 후기의 개화가 박규수는 흥선대원군의 고집이 조선의 암울한 미래에 일조했다고 생각해 재판을 청합니다.그리고 원고측 증인으로 여흥부대부인, 베르뇌주교, 명성황후, 김옥균의 이야길 들으며 피고측 증인으로 고종과 최익현을 불러 이야기를 듣습니다. 역사적 주제를 재판 형식으로 진행하기에 일반 역사책에 비해 깊은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을 수 있을 뿐더러 증인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도 초중 교과서속 인물들에 비해 다양하기에 인물에 대한 공부도 됩니다.
중고등 교과서와의 연계를 잘 보여주고 있으며 맨 앞장에 한국사와 세계사 연표를 비교해 놓아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됩니다. 흥선대원군이 집권했던 시기는 서양 열강이 아시아에 눈을 돌려 일본은 네덜란드에 의해 중국은 영국에 의해 나라의 문을 열었던 시기였습니다. 그랬기에 더욱 흥선대원군의 선택에 많은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후진술을 통해 강한 조선을 세우고 싶어했던 흥선대원군과 조선의 역사를 후퇴시켰다는 박규수의 주장에 대해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기가 선뜻 쉽지 않았던 이 재판은 결국 원고 박규수가 피고 흥선대원군을 상대로 제기한 쇄국정책의 의한 정신적 손해 배상 청구를 부분적으로 인정하면서 이야기는 끝납니다.
이미 교과서 등을 통해 조선말의 어지러운 국내 정세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권력을 잡았던 흥선대원군의 선택, 세계열강의 틈바구니에서 나라를 지키려 나름 노력했던 고종과 명성황후 등의 이야기를 알고 있었으나 그래도 다시 책을 읽다보니 쇄국정책의 배경과 과정 등을 다시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 흥선대원군의 부인이었던 여흥부대부인 민씨와 그 딸도 천주교 신자였음을 또 천주교 탄압과정 속에 숨은 정치적 의도 등도 조금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역사를 다른 시각으로 깊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이 된 재미있는 책이네요^^
책을 다 읽은 아이가 논술 노트에 내용을 정리하고 자신의 생각을 적어 봤습니다.^^
*** 자음과 모음에서는 한국사 시리즈와 연계해 논술 교실을 열고 있는데 논술책이 내용도 좋고 선생님이 잘 설명해 주셔서 많은 도움이 되네요^^ 관심있는 분들은 요기를 클릭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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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 대원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척화비'다. 얼마전에 한국사 법정 44권을 읽었는데, 그 내용이 <왜 천주교 박해가 일어났을까?>였다. 천주교 박해는 천주신앙이 들어온 이후 끊임없이 벌어진 일이었지만, 이 역시 흥선 대원군이 먼저 떠오르는것이 사실이다. 이 역사적 사건들 속에 중심을 잡고 있는 인물 흥선 대원군은 여전히 세도 정치를 무너뜨리고 왕권을 강화한 인물로 보는 측면과 문호 개방을 반대하여 조선의 개화를 늦게 만들었다는 측면으로 찬반양론이 팽팽하게 갈리고 있다. <왜 흥선 대원군은 쇄국 정책을 펼쳤을까?>에서는 흥선 대원군 시대에 평안 감사, 우의정등을 지냈던 박규수가 흥선 대원군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이제 그들이 이야기하는 변을 들어보자.
박규수(1807년~1876년)는 조선 후기의 개화사상가이다. 실학자 박지원의 손자로서 개화파 형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으며, 청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눈을 떴다. 흥선 대원군의 고집이 조선에 암울한 미래에 일조했다는 것을 밝히고 싶어서 재판을 열었다고 한다. 흥선 대원군(1820년~1898년)은 고종의 아버지로 대원군에 봉해진 사람이다. 역사공화국 법정에서 대원군은 세도 정치로 피폐해진 조선의 기강을 바로잡고 나라를 굳건하게 지켜 내야만 했기 때문에 쇄국 정책을 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과연 어떤 이야기가 옳은 것일까?
19세기 말, 세계는 큰 변화를 겪었다. 제 2차 산업 혁명을 거치면서 자본주의가 발달함에 따라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은 상품의 원료를 얻고, 상품을 팔고, 자본을 투자할 새로운 시장이 필요하게 되면서,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약소국을 지배하고자 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이것을 '제국주의'라고 하는데, 영국, 독일, 포르투갈 등 유럽 강대국들은 경쟁적으로 해외에 자국의 식민지를 만들기 위해 혈안이 되었고, 아시아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본은 네델란드로부터 서구 문물을 받아들여 19세기 후반 메이지 유신이 성공하게 되면서 '정한론'을 들고 일어났고, 청나라는 영국과의 아편 전쟁에서 폐하면서 청나라를 받들었던 조선은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조선입장에서 청나라는 세상의 중심이었으니 말이다.
조선은 고종이 열두살에 즉위하면서 그의 아버지 흥선 대원군이 섭정을 펼치게 된다. 세도정치의 주력 세력들이었던 안동 김씨를 몰아내고, 쇄국정책으로 조선을 지키려고 했던 인물이 흥선 대원군이다. 이를 혼란스러운 조선 후기에 자주적인 민족 사상을 체계화시킨 최익현은 흥선 대원군은 상황에 따라 정치적인 입장을 취한 것 뿐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오직 왕권을 강화하고 반대 세력을 탄압하는 데 골몰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한때는 서양 세력이 조선에 밀려들어 올 것을 걱정하여 천주교를 용인하려고 했다가 유림의 압력이 두려워 억지로 쇄국정책을 펼쳤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흥선대원군은 처음부터 쇄국 정책을 펼치려고 했던게 아니란 말인가?
유림 세력들이 신념에 따라 위정척사를 주장한 것과는 다르게 흥선 대원군은 위태한 정권을 유지하기 위 해서 쇄국정치를 펼쳤다고 이야기를 한다. 척주교를 박해한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 였다는 것이다. 흥선 대원군의 부인인 여흥부대부인 민씨가 일찍이 천주교에 귀의한 신자였고, 그 때문에 흥선 대원군이 처음엔 천주교에 호감을 갖고, 천주교 신부들을 통해서 서양세력을 막으려 했다는 것은 역사적으로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천주교 4대 박해 사건이라는 신유박해, 기해박해, 병오박해와 병인박해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대원군이 집권하는 동안 조선은 제너럴셔먼호 침략 사건, 병인양요, 신미양요와 같은 서양 세력의 무력 도발을 계속 겪었다. 그뿐인가? 독일의 상인 오페르트가 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려 했던 사건은 충효를 강조하는 조선에서 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충격적으로 생각한 만행이었다. 게다가 프랑스군은 병인양요를 일이키고, 강화도에 침입하여 강화산성을 점령하였다. 그리고 강화도에 보관 중이던 각종 서적과 문화재를 약탈해 갔는데 외규장각에 보관되었던 조선의 문화재 3000여점은 지금까지 반환하지 않고 있다. 이랬기에 대원군이 그들을 오랑캐라고 한것도 과장은 아니다.
대원군과 박규수에 주장을 들으면서 누가 옳고 그르다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개화만이 조선에 살길이라고 여겼던 사람들과 개화가 조선을 망친다고 생각했던 사람 모두 조선을 위한 마음이었으니 말이다. 초등학생이 대학생과 똑같은 수학 문제를 푼다면 정신력만 강하다고 이길 수는 없다. 기본적으로 실력이 있어야지, 정신력 가지고 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아무리 쇄국을 강조해도 개항을 요구하는 외국의 무력을 막을 수 없는 상항에 이르러 대원군은 천주교를 허용하고 쇄국정책을 풀기 시작한다. 역사의 흐름은 막을 수가 없다. 졸졸던 흐르던 산골짜기 물이 바다에 이르면 누구도 그 길을 막을 수 없는 것 처럼 말이다. 두 사람에 주장에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전에 현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그들이 살었던 시대를 알아야하고 역사를 돌아봐야만 한다. 역사는 돌고 돌아 어떤 모습으로 우리앞에 나타날지 알수 없으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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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개화 사상가 박규수가 고종 황제의 생부인 흥선대원군 이하응을 역사공화국 영혼법정에 고발했다. 무엇때문일까? 박슈수는 살아 생전 흥선대원군에게 개화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무시당했고 조선이 망한 이유가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 탓이라는 이유로 그를 법정에 세운 것이다. <역사공화국 한구사법정> 시리즈를 읽어가다 보면 자연스레 역사에 대한 지식을 습득해 갈수있다. 나의 안전이 보장된다면 다른 이들의 싸움은 대단한 구경거리, 그런 고로 역사 속 인물들이 법정에 나와 자신의 정당성에 대해 변호를 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역사공화국 영혼의 마을에는 승자의 마을과 패자의 마을이 있어 법정에서의 결과에 따라 승자의 마을에 살거나 패자의 마을로 이사가야 하는 일도 발생한다. 그러니 그들에게 있어 역사법정은 살아 생전의 명예를 지키는 길임과 동시에 영혼이 편안히 쉴 안식처를 구할 중요한 기회이기도 하다. 박규수 vs 흥선대원군,
요즘 한창 드라마에 빠져 사는데 <신의>, <아랑사또전>, <대왕의 꿈>이 그것이다. '신의'는 고려의 최영 장군이 주인공이고, '아랑사또전'은 밀양지방의 아랑전설을 각색하여 만들 것이며, '대왕의 꿈'은 신라시대의 김춘추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만약 <역사공화국 한국사법정· 세계사법정>을 드라마로 만든다면? 다양한 인물들의 출연으로 심심할 겨를은 없을테고 책을 읽기 싫어하는 아이들이라도 드라마를 통해 역사에 쉽게 접근할수 있다는 장점을 심어줄수 있다. |
![]() 이 책은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에 대하여 박규수가 소송을 제기한다는 형식으로 개화와 쇄국 진영의 논리를 이야기로 전개하고 있습니다. 법정에서는 철저하게 논리에 기반해서 결론을 향해 공방이 오가죠. 이 책은 그러한 점을 잘 살려서, 양 측의 논리를 깔끔하고 명료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다양한 일러스트를 도입하여 읽는 자가 지루하지 않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단순하게 소송의 테두리만 빌린 것이 아니라, 소송이기에 가능한 공방기술을 쇄국정책과 개화정책의 장단점을 보여주는데 활용하여 시종일관 흥미로운 학습을 가능하게 합니다. 아울러, 관련된 개념을 여백의 박스를 통하여 정리함으로써 학습효과를 배가시키고 있으며 중학교 / 고등학교 교과서의 관련 범위를 기재하여 학생들의 교과연계학습에도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이 책은 역사에 관심을 가지는 아이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것입니다. 단순하게 지식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사실의 진위를 판단하고 자신의 입장을 가지는 데에도 도움을 줍니다. 이는 곧 논술에 있어 창의적인 답변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주겠지요. 이 시리즈를 기획한 출판사 측에 감사합니다. 정말 간만에 본, 재미있고 멋진 시리즈였습니다. 구성면에서 5점을 준 이유가 그래서 입니다. 혹여 절판될 우려가 있으니, 미리 구입하시는 게 좋을것 같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부분을 인용해봅니다. 박규수 - 그게 정신력만으로 될 일입니까? 나는 강화도 조약 때의 조선의 상황이 병자호란을 맞았을 때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때도 척화파와 주화파가 심한 갈등을 빚었다가 척화파의 주장대로 전쟁을 선택했지만 그 결과가 어땠습니까? 인조임금이 삼전도에서 치욕적인 항복을 하고서야 전쟁이 끝났고, 그 일로 조선은 청나라로부터 더욱 굴욕적인 지배를 당한 것을 잊으셨습니까? (방청객들이 박규수의 말에 박수를 친다. 흥선대원군이 투덜거린다. '이대로 변호사 왜 저래? 여태 잘 싸우다가 막판에 무너지는거야?') 이대로변호사 - 강화도 조약을 삼전도의 굴욕과 비교하는 건 무리가 있군요. ... 원고는 아까 실력 운운했는데, 대원군이 물러난 뒤에도 고종과 명성 왕후는 물론 통상 개화를 주장하던 원고조차 수교 회담을 위해 제대로 공부한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외교 지식은 말할 것도 없고 외교 용어조차 한마디도 모르던 신헌 대감을 통해 구로다와 회담하게 했으니 불평등한 조약을 맺게 된 것은 당연한 일 아닙니까? 줄기차게 개화를 주장했던 대감은 왜 그런 준비를 안 하고 지내셨습니까? 박규수 - 그러니까 그건... (이마의 땀을 닦으며 대답을 못하는 박규수. 흥선대원군이 벌떡 일어나 소리친다 '박대감 어서 대답해 보시오. 그래도 쇄국정책이 잘못이었다고 나를 모함하려는가?') 판사 - 피고는 조용히 하세요! 과연 판결은 어떻게 났을까요? 그것은 책에서 확인해보시기 바라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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