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들이 자라면서 소망했던 것이 있었다. 아이들과 여행을 다녀오면 그곳의 풍경을 그림으로 남겨두는 것을 어떨까? 하지만 소망은 소망일뿐 몇 번 실천하다가 엄마의 성질(?) 머리와 점점 개판 5분전으로 치닫는 그림 솜씨 때문에 포기하고 말았다. 멋진 풍경을 사진으로 찍고 스케치 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이상하게 아이들은 색칠하는 걸 싫어했다. 각자의 스타일대로 색칠하면 좋은데 큰 아이는 건성으로 칠하면서 힘들다고 난리고, 작은 아이는 너무 꼼꼼하게 칠하다보니 힘들다고 난리다. 역시.. 아이를 키우는 것은 내 소망대로, 내 바람대로 되는 건 아니군. 그렇다면 그냥 우리는 즐기도록 하자. 그렇게 깨끗하게 포기했던 기억이 있다.
근데 참 아름답고 귀여운 책을 발견했다. 아빠와 아이가 섬진강변을 여행하면서 그 주변을 그림으로 그렸다. 이렇게 멋진 그림을 완성한 아빠도 대단하지만 낙서 같은 아이의 귀여운 그림도 참 보기 좋다. 내가 좀 더 멋진 그림 솜씨를 가지고 있었다면 나도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을까? 아님 색칠에 지나치게 목숨(?) 걸지 않았다면 나도 그림으로 추억을 만들 수 있었을까?
작가는 섬진강 여행 지도를 간단명료하게 그려 놓았다. 섬진강의 발원지를 찾아 그곳에서부터 여행을 시작했다. 전북 진안군 백운면 신암리 원신암 마을 위에 있는 섬진강의 발원지. 데미 샘. 데미라는 말은 더미(봉우리)의 전라도 사투리라고 한다. 데미 샘을 시작으로 하는 섬진강은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는 것일까? 아빠와 아이의 시선으로 쉽고 재미있게 이야기를 끌어간다. 한겨울 섬진강에서의 고기잡이, 신선과 선녀가 노닐던 곳 사선대, 댐 공사로 인해 물속에 잠겨 버린 운암제라는 저수지, 노래 나의 살던 고향 같은 꽃 피는 산골 마을, 순창 동계면의 장구목, 섬진강이 보내준 선물 산딸기와 오디, 일제 상처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만들다 만 다리, 섬진강의 달그림자와 달맞이 꽃, 섬진강의 도깨비 설화, 섬진강 지킴이 수달씨, 화개장터의 나루터, 섬진강의 봄 축제 등 물줄기를 따라 나름의 이야기를 야기자기하게 꾸몄다.
강을 따라 여행하는 아이디어도 좋고, 아이와 함께 그림여행을 하는 아이디어도 좋다. 그곳에서 사람을 만나고 동물을 만나고 식물을 만나며 교감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이 그려져서 더 좋았던 그림책이다. 하지만 아빠의 눈에서, 아이의 눈에서 그곳도 개발이라는 이름이 어느새 들어와 앉은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팝콘처럼 터지는 매화와 다른 꽃들을 구경하기 위해 강변도로에 차들이 꽉 들어찬다. 그리고 그 엄청난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 도로를 시멘트로 넓히기도 한다. 하지만 그곳엔 정작 주인이 없다. 바로 벌과 나비가 보이지 않는 다는 것. 꽃 잔치의 주인이었던 벌과 나비는 사라져 가는데 객들이 와서 환경을 오염시키고 있으니 안타깝다.
섬진강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다. 그곳에서 아주 오랜 시간 자연과 함께 했던 동물과 식물들이 진짜 주인은 아닐까? 진정 소중한 것들이 무엇이고, 아름다운 것들을 어떻게 지켜 가야 하는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섬진강 봄 축제 중에서)
|
|
책으로 삶읽기 375 《아빠랑 은별이랑 섬진강 그림여행》 오치근·오은별 글·그림 소년한길 2012.5.5. “아빠, 섬진강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거예요?” 섬진강변으로 이사온 지 6년이 넘었건만 제대로 섬진강 여행을 하지 못했다. 은별이의 질문 덕에 섬진강 그림여행이 시작되었다. (4쪽) 《아빠랑 은별이랑 섬진강 그림여행》(오치근·오은별, 소년한길, 2012)은 아이가 어버이한테 묻는 한 마디로 실마리를 푼다. 그림책을 빚은 어버이는 아이가 묻기 앞서까지 여섯 해 내내 섬진강을 두루 돌아볼 생각을 못했다고 한다. 어느 모로 본다면 이제 아이는 어버이랑 섬진강을 두루 돌아보고픈 생각을 했다고 할 만하고, 서로 아끼고 헤아리는 마실길을 나설 때에 이른 셈이다. 섬진강으로 옮겼기에 곧장 섬진강을 돌아보아야 하지 않는다. 아이도 어버이도 마음이며 몸이며 생각이며 붓이며 손길이며 눈빛이 무르익을 즈음 비로소 마실길에 나서서 기쁜 이야기를 온몸으로 맞아들일 만하다. 물줄기가 어디에서 비롯했는가를 궁금하게 여기는 마음에서 새롭게 길을 찾는 몸짓이 태어난다. 그림마실이란, 붓을 쥐고 느긋하게 이웃을 사귀려는 발걸음이다. ㅅㄴㄹ (숲노래/최종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