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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러울 것 없는 이야기지만, 과거를 알면 현재의 상황을 이해하게 되고, 막연하지만 미래를 예측하게 된다. 소설의 배경은 이미 30여년의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린 197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간다. 나의 기억을 되살려본다. 70년대 초반 무엇인가 볼일이 있어서 말죽거리에 서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닐하우스와 남루한 가옥들은 간간히 차가 지나갈 때마다 연막 같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비가 오면 마눌 없인 살아도 장화 없인 못산다는 말이 생각나는 비포장도로가 구불구불 이어지고 있었다. 흙냄새를 맡으며 하늘을 바라보며 계절의 변화를 느끼던 땅들이 개발의 바람이 불어 닥치면 자연만 변하는 것뿐 아니라 사람까지 변하게 만든다. 처음에는 사람이 돈을 벌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돈이 돈을 번다. 돈이 사람의 겉뿐 아니라 속까지 뒤집어 놓는다. 소설 속으로 들어가 본다. 순박한 농촌이다. 사람들은 더 없이 착하다. 남에게 해를 끼칠 줄 모르고 싫은 소리 할 줄도 모른다. 평온한 마을 갈마지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온다. 그 바람은 아래 위 정장을 빼입고 검은색 세단을 타고 나타난다. 이른바 투기꾼이고 사기꾼들이다. 도회 사람들도 당하는 사기꾼들에게 흙냄새만 맡고 자란 시골 사람들은 차려놓은 밥상이다. 돈이 많은 이들은 정보가 빠르다. 아니, 돈과 권력은 같이 간다. 권력 가진 자들은 그 힘을 그리 쓰라고 준 것 아니건만, 돈 많은 이들과 참으로 사이가 너무 좋다. 이미 사돈의 팔촌까지 동원해서 노른자위는 다 차지하고 정작 조상대대로 대지를 물려받은 원주민들은 겨우 막차를 얻어 탄다. 부동산 투기 현장의 변함없는 그림이다. 돈 냄새가 나면 온갖 날파리가 다 덤벼든다. 명퇴 붐이 일던 여러해 전, 친구가 30년 가까이 다니던 회사를 퇴직하면서 몇 억을 손에 쥐고 백수가 되었다. 무엇을 할까 고민하고 있던 중 하루에도 몇 통씩 전화가 온단다. 좋은 몫의 사업이 있다. 투자해라. 동업하자. 귀찮기도 하지만 화가 난 친구가 다니던 회사의 총무과, 경리과에 전화를 걸어 도대체 누가 내 정보를 흘린 거냐고 따졌지만 아무도 모른단다. 갈마지도 예외가 아니다. 온갖 잡새가 날아들며 결국 농민 하나는 대대로 물려오는 전답을 눈 깜빡할 새에 사기를 당한다. 그러나 절망 뒤에는 안에서만 열수 있는 희망의 문이 있기 마련이다. 용서와 화해와 희망이 뒤를 이어준다. 더 크나큰 받아들임도 있다. 사랑하던 여인이 밤길 동네 껄떡쇠한테 강간을 당하고 임신을 했으나 그녀를 품어준다. 그 바람에 여러 사람이 살아나게 된다. 소설의 후반부엔 참으로 가슴이 먹먹해지는 이야기가 있다. 사회 정화란 타이틀을 내건 ‘삼청교육대’이야기다. 아마 젊은 세대들은 이해를 못할지도 모르겠다. 그럴 만하니까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완전 권력의 남용이었다. 아니 횡포였다. 그 이상이었다. 나는 소설에서 그려내고 있는 모습 그 이상으로 삼청교육대를 알지는 못한다. 그렇지만, 이 소설 덕분에 그 피해자가 한 사람 떠오른다. 지금 아직도 살아 계신지 모르겠다. 아마 고인이 되셨을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80년대 초에 이미 60대 중반이셨다. 삼청교육대에서 뇌손상을 입으셨다. 그 후유증으로 내게 오랫동안 치료를 받아서 어느 정도 몸의 거동이 수월해지자 치료가 종료되었다. 그분이 왜 삼청교육대를 가시게 되었는지 자세한 이야기는 삼가고 싶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일(사람들을 선별하고 모이게 하는 일)에 모 기관원의 개인적인 감정이 개입되었다고 굳게 믿고 있던 것이었다. 그 이야기를 전하면서 분함으로 몸서리쳤던 그분의 모습이 떠오른다. 잊어야 할 과거가 있고, 잊지 말아야 할 일들이 있다. 이 소설이 그것을 상기시켜주고 있다.여전히 반복되는 속고 속이는 일들, 인권을 짓밟고 타인의 생명을 낚아채는 일을 마치 믹스커피 한잔 타마시듯 하던 일들이 결코 픽션이 아니라는 것이다. 가슴 아프지만 잊지 말아야할 일들을 기록으로 남겨 준 작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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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윤명 작가의 [갈마지 워쩌!]는 충청도 예산의 갈마지라는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혼란과 고통으로 점철되었던 우리 역사의 뒤안길을 뒤돌아보고자 그려낸 것이다.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인간의 탐욕, 권력에 대한 욕망, 돈과 여자에 대한 갈망, 그리고 혹독한 현실 속에서도 살아나고자 하는 인간의 삶에 대한 의지, 이러한 것들로 욕망을 그려내고 있다. 라고 일단은 소개되어 있다. 문고판의 구분을 어떤 기준으로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작고 아담한 사이즈로 서문이나 추천평등의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본편의 소설만 들어있어 들고 다니면서 읽기에 좋다. 처음에는 70년대 급변하던 시기 우리 아버지 세대의 혼란스럽고 신산스러운 삶을 잘 그려냈을 거라는 기대에 읽게 되었는데 결과만 얘기하면 기대만은 못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다소 [전원일기] 풍이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에 구두쇠 땅 부자와 대학까지 나온 성실한 농꾼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아가씨에 겉바람만 들어서 기타만 퉁기는 청년까지, 농촌 드라마에 나올법한 인물들이 다양하게 등장하여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문제는 전체적인 이야기도 [전원일기]같은 옴니버스 드라마처럼 전개된다는 것이다. 단편 모음이나 시리즈라면 이게 별 문제가 안 되겠는데 이게 전체 한 편의 소설이라는 것이 문제다. 하나의 줄기로 이야기가 쭈욱 흐르지 못하고 뜬금없이 몇 달을 훌쩍 넘어 이야기가 진행되기도 하고 어떤 배경이나 복선도 없이 뜬금없이 큰 사건이 뿅 하고 튀어나오기도 하는 식이다. 대체로 이런 식이다 보니 주인공이 누구인지도 모르겠고 대체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인물 군상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해 자연스럽지 못하고 어색해 집중도가 떨어진다. 작품의 큰 줄기는 이른바 '떴다방'이라는 당시의 부동산 투기에 당하는 이야기와 그나마 주연급으로 봐 줄 수 있는 성실한 청년 '경민'의 삼청교육대 사건이 가장 큰 줄기인 것 같은데, 부동산 이야기는 유야무야 대충대충 어떻게 된 것인지도 모르게 임팩트 없이 대충 처리되어 버리고 아무런 복선도 없이 뜬금없이 튀어나온 '경민'의 삼청교육대 이야기도 별다른 충격이나 감동도 없는 앞서 다른 작품들에서 많이 소개된 삼청교육대 이야기의 재판일 뿐이다. 게다가 좀 어이없는게 등장인물들 중 서울서 내려온 '신상무'나 복덕방 사장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충청도 토박이라 아주 진한 충청도 사투리를 사용하는데 유독 '경민'과 그의 연인 '은히'만은 또박또박 서울말을 쓰고 있다. 주연급인데다 둘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가 충청도 사투리로 전개되면 맥이 빠질 것 같아서 그랬을까? 작가만이 알 일이겠으나 결국 마무리는 두 사람의 결혼으로 끝을 맺게 되는데, 어려운 가운데도 희망이 있다는 종류의 메시지를 보여주려는 결말이 아닐까 하는데 이마저도 그저 상투적이고 어설픈 느낌일 뿐이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오락물이라면 별 상관이 없겠으나 [갈마지 워쩌!]에서 이야기 하는 문제는 그렇게 가볍게 다룰만한 문제가 아니라는 게 문제다. 작가가 어떤 의도로 이 작품을 내놓았는지는 모르겠으나 깊은 성찰과 고민 없이 준비가 부족한 상태로 써내려 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이력이 그리 가볍지는 않은데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다. 앞으로는 좀 더 완성된 작품이 나와 주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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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하암리에 서울에서 신씨라는 건설사 근무하던 사람이 귀농차 내려온다. 석만이가 땅을 팔게 하기 위해 학다방 미스조로 하여금 유혹시키지만 수차례 기회에도 석만이는 발기가 되지 않아 실패하고. 느닷없이 고개에서 은희를 겁탈한 경만이가 삼청교육대 갔다오고 결혼한다는 데...
1970년대 부동산개발과 사회정화운동을 묘사한다는 데.. 울나라 부동산 피크는 경제성장이 본격화한 1980년대에서 88올림픽을 전후로 무역흑자가 크게 발생하면서 부터이고 삼청교육대는 1980년대 초 전두환이 사회 범법자, 불량배들을 붙잡아다가 육체적 훈련을 시킨건데 1970's라니 시점 핀트가 맞지 않는다..
에산인데 충청도사투리,서울말, 전라도 말이 뒤엉켜잇고 느닷없이 은희예기로 넘어 가고.. 뭐가 뭔지 알 수 없이 산만한고 핀트가 맞지 않는 넋두리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