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6)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67%
  • 리뷰 총점8 33%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10.0
  • 30대 0.0
  • 40대 10.0
  • 50대 8.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45] 묵묵하게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었다..
"[45] 묵묵하게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었다.." 내용보기
[ 그 ]   우연찮게 그 길을 지나치게 되었다 우연찮다는 것은 꼭 우연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의도한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길 한복판에 그가 서 있었다 필연적인 자세로 반드시의 직립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는 눈빛으로 사람들은 길가로만 걸았다 자신이 있을 곳은 귀퉁이라는 듯이 언저리에서 맴돌다 사라지겠다는 듯이 하나같이 표정이 없었다   무표정
"[45] 묵묵하게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었다.." 내용보기

[ 그 ]

 

우연찮게 그 길을 지나치게 되었다

우연찮다는 것은

꼭 우연한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의도한 것도 아니라는 말이다

 

길 한복판에 그가 서 있었다

필연적인 자세로

반드시의 직립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는 눈빛으로

사람들은 길가로만 걸았다

자신이 있을 곳은 귀퉁이라는 듯이

언저리에서 맴돌다 사라지겠다는 듯이

하나같이 표정이 없었다

 

무표정도 표정이다

침묵이 말이듯이

어느 때는 가장 강력한 말이 되기도 하듯이

끈질기게 묵묵했다

묵묵하게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었다

 

보도블록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그림자 하나도 빠질 수 없을 만큼 틈이 없었다

견고했다
 

블록을 들어내면 암호가 있을 것 같았다

해독될 수 없는 암호

마침 아무도 신경을 기울이지 않는 암호

마침내 해독되지 않는 암호

 

때마침 칼바람이 불어왔다

길 한복판에서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거기에 그가 서 있었다

예외처럼

맥없이 풀려버린 암호처럼

 

종이 인형처럼

나풀거리며

비틀거리며

입체가 되지 않기로 결심한 평면처럼

고개를 수그려

맨홀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맨홀에 빨려 들어갈 듯

지나칠 정도로 위태로웠다

 

그러나 나는 길로 나아갔다

길 한복판으로

공사 현장으로

전속력으로

흔들리는 사람이 여기에도 있다고

리듬을 잃어버린 사람에게도 구두는 필요하다고

 

함구한 채로 포효했다

지나칠 수도 있었지만

붙들어 맨 풍경이 있었다

 

지나치되

지나치지만은 않아서 기억이 되었다

 

[ 빈집에 갇혀 나는 쓰네 ]

 

빈집에 초대되었습니다

헐겁게 잠겨 있던 문을 열고 들어와

스스로를 가두고 나는 씁니다

주인을 기다리는 검은 개처럼

허옇게 변해가는 빨래처럼

 

이곳에서 나는 무엇을 찾고 있습니까

길고 축축한 혓바닥이 되어 온종일 벽을 핥아대도

반쯤 잘린 귀가 되어 천장을 훑고 다녀도

비어있는

비어있어

유지되는 모두의 가여운 집

인사는 말자

저녁마다 산책을 떠났다가

돌아와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빈집에 갇혀

돌아와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빈집에 갇혀

나는 쓰고 있습니다

친애하는

초대하는

 

[ 역 ]

밤이 있고

한 사람이 있다 아무도 그를 모른다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려 하는지

손에 쥔 것이 승차권인지 쓰다 만 엽서인지

아니면 그냥 휴지 조각인지

버릴 수 없는지

 

버린 지 오래인지

 

아무런 기색이 없다 말이 없고 슬픔이 없다

아니면 그냥 잠깐 잠이 든 건지

눈을 감지도 않은 채로

어떤 꿈속을 걷고 있는지 밤의 한 점을 행해

 

그가 무엇을 보는지 그것은 정말 밤인지

밤 너머 또 다른 종착역인지, 철골이 비어진 건물들 사이

고요한 폭설은 쏟아지고

 

길을 떠올릴 수 없어 불현듯

멈춰 선 건지 고장 난 가등 아래 셔터를 내린 철문은 불현듯

어떤 빛을 읊조리는지

 

문을 두드리는지 다만 문 앞에 서성이는지

바닥에 질퍽이는 낙서 같은 표정을 세차게 문지르면서


떠나는 중인지 돌아오는 중인지

그를 기다리는 누군가 있는 지 아직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사람들이 오고 또 가는 사이 흐느끼며 가서는 다시 오지 않는 사이

 

한 사람이 있다

밤이 있고

 

벗지 못한 외투가 있다 무거워진 가방이

있다 불현듯

기적이 울고,

감춰 쥔 무언가를 꾸깃대며 떠는 손

 그 곁의 누구든 불러 세우려는지

저기요,

 

아니면 그냥 잠깐 잠이 든 건지

 

저기요,

 

 

...  소/라/향/기  ...

s******8 2021.02.12. 신고 공감 12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오랜만에 리뷰를 연속으로 달려고 달려온 연속입니다 :)
"오랜만에 리뷰를 연속으로 달려고 달려온 연속입니다 :)" 내용보기
기형도 시인... 정말이지 이름만 들어도 짠해지는. 어쩐 일인지 평소에 그를 많이 생각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종종 생각이 드는 시인이십니다만은 아까 전에 빈집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다가 문득 그의 시, 그가 떠올랐었는데요. 아무튼 시인들이 기형도 시인의 시를 참고해 쓴 시라는 것이 되게 특별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괜찮았던 시집이었습니다.
"오랜만에 리뷰를 연속으로 달려고 달려온 연속입니다 :)" 내용보기

기형도 시인... 정말이지 이름만 들어도 짠해지는. 어쩐 일인지 평소에 그를 많이 생각하는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종종 생각이 드는 시인이십니다만은 아까 전에 빈집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다가 문득 그의 시, 그가 떠올랐었는데요. 아무튼 시인들이 기형도 시인의 시를 참고해 쓴 시라는 것이 되게 특별하게 느껴지기도 했고 괜찮았던 시집이었습니다.

 

 
i***3 2021.09.07.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어느 푸른 저녁
"어느 푸른 저녁" 내용보기
시인들의 단독 시집은 좋아하지만 여러 시인들의 시를 모아놓은 선집 종류의 시집을 싫어한다. <어느 푸른 저녁>은 기형도 시인의 <입 속의 검은 잎> 발간 30주년 기념 출간작이다. 젊은 시인 88인이 쓴 88편의 시, 기형도 시인을 모티프로 쓴 88편의 시가 수록된 시집이다.시집 제목이 푸른 저녁이라 그런지 책 표지도 블랙과 블루를 써서 너무 예쁘다. 양장본으로 고급스러운 느낌
"어느 푸른 저녁" 내용보기

시인들의 단독 시집은 좋아하지만 여러 시인들의 시를 모아놓은 선집 종류의 시집을 싫어한다. 

<어느 푸른 저녁>은 기형도 시인의 <입 속의 검은 잎> 발간 30주년 기념 출간작이다. 

젊은 시인 88인이 쓴 88편의 시, 기형도 시인을 모티프로 쓴 88편의 시가 수록된 시집이다.

시집 제목이 푸른 저녁이라 그런지 책 표지도 블랙과 블루를 써서 너무 예쁘다. 

양장본으로 고급스러운 느낌이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곽은영, 김상혁, 김이강, 김중일, 서효인, 박상수, 손미, 신용목, 유형진, 오은, 장이지, 진은영 등 좋아하는 시인들의 시가 너무 많아서 너무너무 좋아하는 책이다. 

e*****e 2020.10.05.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매일 매일 꺼내보는 시집
"매일 매일 꺼내보는 시집" 내용보기
다른 시집들보다 비싼 가격때문에 조금 망설이다 구매했는데 작년에 산 책들 중 제일 좋았어요기형도 시인을 추모하는 의도의 시집이자 시 앞에서는 우열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집으로 본문에 작가의 이름이 쓰여있지 않아서 색달랐어요제목처럼 푸른 시들이 가득 실려있어요88명의 시인들이 쓴 시가 담겨있는만큼 한장 한장 새롭게 읽을 수 있어요이 책을 읽으며 여러 시인분들을 알
"매일 매일 꺼내보는 시집" 내용보기
다른 시집들보다 비싼 가격때문에 조금 망설이다 구매했는데 작년에 산 책들 중 제일 좋았어요
기형도 시인을 추모하는 의도의 시집이자 시 앞에서는 우열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시집으로 본문에 작가의 이름이 쓰여있지 않아서 색달랐어요
제목처럼 푸른 시들이 가득 실려있어요
88명의 시인들이 쓴 시가 담겨있는만큼 한장 한장 새롭게 읽을 수 있어요
이 책을 읽으며 여러 시인분들을 알게되었고 개인 시집까지 사게되었는데 큰 수확을 얻은 것 같아 기뻐요
시를 읽어보려는 사람과 시를 오래 읽은 사람 모두에게 추천할 수 있는 책인 것 같아요
s*****v 2020.01.24.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구매
가슴 떨리는 기억들
"가슴 떨리는 기억들" 내용보기
현대 한국 시를 조금이라도 읽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 봤을 이름, 기형도.그의 첫 시집이자 유고 시집인 입 속의 검은 입이 초판 발행 된지 벌써 30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꾸준히 사랑받는 시인으로서 30만부라는 대단한 판매 부수를 기록하고 있고 앞으로도 더 그 수치를 늘릴 것이라 확신 합니다.어느 푸른 저녁은 이런 시인의 기억을 재해석하여 지금 여기에 다
"가슴 떨리는 기억들" 내용보기

현대 한국 시를 조금이라도 읽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들어 봤을 이름, 기형도.

그의 첫 시집이자 유고 시집인 입 속의 검은 입이 초판 발행 된지 벌써 30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꾸준히 사랑받는 시인으로서 30만부라는 대단한 판매 부수를 기록하고 있고 앞으로도 더 그 수치를 늘릴 것이라 확신 합니다.

어느 푸른 저녁은 이런 시인의 기억을 재해석하여 지금 여기에 다시 태어나게 만든 젊은 작가들의 단편들입니다.

이렇게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여러 작가들이 모여 한 권을 책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쉽지 않고 기형도 라는 시인을 위한 책이라는 점에서 더욱 놀라움을 가지게 만듭니다. 일반적으로 여러 작가들의 작품을 모은 책은 기존을 작품들을 끌어 모아 만드는데 어느 푸른 저녁은 이 책을 위해 88명의 시인들이 작품을 써 나아갔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어느 푸른 저녁을 읽으며 느낀 것은 역시 기형도 라는 시인은 우리 시단에 상당한 영향력을 남긴 시인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의 죽음이 너무나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렇게 좋은 시인이 단 한권의 시집만을 남긴 채 우리 곁을 떠났다는 것에서 슬픔과 아쉬움만이 남습니다.

그래도 어느 푸른 저녁과 같은 작업들로 그를 기억하고 계승해 나갈 수 있다는 것에 위안을 느끼며 어느 푸른 저녁은 무척 좋은 작품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p*****9 2019.04.24.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