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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제자백가 시리즈 중 1편인<철학의 시대>에는 춘추전국시대 이전의 시대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노자, 정치를 깨우다』에서는 삼황오제가 통치하던 시대로 복귀해야 한다는 주장에 따라 노자의 사상을 정치적인 이념으로 풀어놓았다. 삼황은 일반적으로 복희씨(伏羲氏) ·신농씨(神農氏) ·여와씨(女媧氏)를 말하며 이를 천황(天皇) ·지황(地皇) ·인황(人皇 또는 泰皇)으로 기록하기도 한다. 복희씨는 사람들에게 물고기 잡는 법을 전수해 주었으며, 신농씨는 농사법을 전해주었다. 여와씨는 인간을 창조하였다고 한다. 사마 천(司馬遷)은 삼황의 전설을 믿을 수 없는 것으로 생각했는지, 《사기(史記)》의 기술을 오제본기(五帝本紀)에서부터 시작한다. 《철학의 시대》에서는 조금 더 자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사마 천이 오제로 든 것은 황제헌원(黃帝軒轅) ·전욱고양(顓頊高陽) ·제곡고신(帝嚳高辛) ·제요방훈(帝堯放勳:陶唐氏) ·제순중화(帝舜重華:有虞氏)이다. 원래 이 전설은 다양한 신화 ·전설이 혼합된 것이며, 도덕적 ·정치적으로 억지로 끌어들인 것이어서 그 기원은 애매하다고 한다. 이 삼황오제가 통치하던 시기를 일컬어 대동사회라고 하는데 이때는 지도자를 백성들의 뜻을 따라 받들어 통치하였으며, 중국에서 이 시기를 가장 이상적인 태평성대라고 하여 진나라를 세워 중국을 통일한 시황제의 황제(皇帝)라는 호칭은 여기서 따온 것이라고 한다. 삼황오제의 기운과 그들 이후 최초의 황제를 의미하는 시(始)를 넣어 작명하였을 정도로 대동사회는 가장 이상적이고도 완벽한 사회를 말한다.
노자는 도가(道家)의 시조이다. 초(楚)나라에서 태어나 주(周)왕실의 신하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실재의 인물은 아니라고 하는 견해도 있다. 노자 역시 대동으로서의 복귀를 주장하는 이상주의자였고 그의「도덕경」은 이러한 가치관을 반영한 이상주의적 정치이념서적이다. 공자와 동시대를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노자는 공자의 중심사상인 인의(仁義)보다도 더 앞선 것으로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최고의 덕으로 보았다. 따라서 이 책은 이상적인 정치를 하는 대동사회란 어떤 사회인지를 살펴보는 동시에 대동사회로의 복귀를 주장하는 노자의 사상에도 한 발 더 다가간다.
책은 미언대의(美言大義 : 짧은 말 속에 심오한 의미가 담겨져 있음) 로 미언과 대의, 해설 부분으로 나누어 풀이되어 있는데, 각 문장의 의미를 역사적 사실과 함께 기록하여 노자가 말하고자 하는 진의를 파악하기 쉽도록 해놓았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주장하였듯이 ‘대동사회’의 천성에 따라 나라를 다스리며 인위적으로 제도를 통제하지 않는 통치이념’을 실천해야 만이 변치 않고 오랫동안 나라를 안정되게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주된 사상이다. 이러한 사상은 도덕경 전반에 잘 나타나 있는데 가장 잘 나타나 있는 장이 2장과 7장으로 보여진다. 〔도덕경 2장 〕고유무상생 난이상성 장단상교 고하상경 음성상화 전후상수 故有無相生 難易相成 長短相較 高下相傾 音聲相和 前後相隨 대동사회의 이치는 있음과 없음이 함께 조화를 이루는 것이고, 어려움과 쉬움이 함께 조화를 이루는 것이며, 길고 짧음이 함께 조화를 이루는 것이고, 높고 낮음이 함께 조화를 이루는 것이며, 소리와 음률이 함께 조화를 이루는 것이고, 앞과 뒤가 함께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이것은 노자가 말하는 정치이념이 잘 드러나 있는 장이다. 바로 ‘상생의 도리' , 즉 ’화(和)이다.
이것은 〔도덕경7장〕의 천장지구 천지소이능장차구자 天長地久 天地所以能長且久 에서도 볼 수 있는데 하늘과 땅이 변치 않고 오랫동안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하늘과 땅만이 살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있는 세상의 모든 존재들 즉 자연의 모든 생물 및 무생물들과 어우러져 함께 살려고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라가 변치 않고 오래 유지되려면 이처럼 좋은 것만 취하고 나쁜 것은 버리는 것이 아니라, 어느 누구 하나 버리지 않고 어우러져 살아야하는 것이다.
이는 상생의 도리가 대동사회의 주된 특징이기 때문이다. 고유지이위리,무지이위용故有之以爲利,無之以爲用에서 강조하는 것 역시 세상의 모든 이치는 ‘있음’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로움을 주는 것이고, ‘없음’이 존재하기 때문에 세상에 쓰임이 있게 되는 것이니, 어느 한 쪽만 존재해서는 안 되고 ‘좋음’과 ‘나쁨’ ‘긍정’과 ‘부정’이 모두 공존해야 한다.
이렇게 노자는 14장까지 ‘대동의 통치이념’을 이해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특히 그 중요한 특징으로서 신중함과 정중함, 화해, 순박함, 자애로움 그리고 모호함 등을 부각시키고 있다. 81장을 통틀어 노자가 강조하고 있는 사상 또한 이런 상생의 도리 즉 ‘화和’를 말한다. 더불어 노자에게 있어서 최상의 가치관은 바로 ‘자연’이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자연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알고 있는 자연이 아니라 ‘스스로 그러함(존재하는)’이라는 ‘무위’라는 것이며 , ‘무위’ 즉 억지로 작위하지 않고 천성에 따르는 것을 최상의 가치로 여겼다. 게다가 노자는 공자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도리를 강조하는데 공자와 노자의 도리이전에 이것은 태평성대의 치세라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는 노자의 ‘도’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져 왔던 형이상학적 ‘무위자연의 도’를 지칭하는 것이 아님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음이다. 만일 노자가 주장하는 바가 ‘형이상학적 개념의 무위자연의 도’라면 오늘날까지도 일반인들의 상식으로 노자의 가치관을 이해할 수 없어야 한다. 왜냐하면 노자의 사상과 당시 사상가들의 사상적 괴리감을 피력하는 장이 여러군데 에서 보여지기 때문이다. 노자의 무위를 기존에 형이상학적인 관점으로만 보아왔는데 보편적인 개념의 무위로 보는 시각으로 노자의 사상은 조금 현실감 있게는 다가오지만, 이 모든 것이 행하는 바가 없으면 무의미한 사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나 마음을 비워야 채울 수 있으며, 넘치면 화가 된다는 말을 알고 있다. 그러나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다르다. 정치인들이 도덕경을 읽는다고 해서 행함이 없으면 이롭지 않듯이 무엇이든 행함이 있어야 우리에게도 대동사회를 꿈꿀 수 있는 이상이 생길 것 같다. 도덕경 44장에는 만족할 줄 알면 수치를 당하지 않으며, 멈출 줄 알면 위험에 처하지 않고, 오래 복을 누릴 수 있다.(지족불욕, 지지불태, 가이장구) 는 말이 있다. 2012년을 너나없이 정치의 해라고 떠들썩하지만, 지난 선거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올바른 정치이념을 지닌 정치지도자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 국민들을 더욱 피폐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한다. 무엇이든지 적당 선 에서 멈출 줄 안다는 것은 분명 쉽지는 않지만, 권력이든, 명예도 쾌락도 지나치면 땅을 치고 후회하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으면서도 더 가지지 못해 안달하는 것이 작금의 정치의 모습이다. 도덕경을 읽으면서 반신반의하는 것은 대동사회의 복귀이념자체가 그저 이상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 때문이다. 우리가 꿈꾸는 지도자가 《도덕경》을 읽는 지도자라면 모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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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노자를 돌아보는 이유 한 시대를 결정지을 지도자를 뽑는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불과 10여일 앞으로 다가온 선거에 후보자들은 너나없이 자신만이 이 나라의 총체적 난국을 헤쳐 갈 적임자임을 피력하고 있다. 하지만 현명한 유권자의 눈에는 두 사람의 차이는 극명하게 드러나며 어떤 지도자를 선택할지는 그 두 사람이 보여주는 차이에 의해 결정되어질 것이다. 누구를 선택해 미래 한국사회의 변화된 다른 모습을 기대하는 것은 이제 국민의 몫이다.
현대사회는 개인이 아무리 다른 삶을 산다고 하더라도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생활의 모든 부분에서 정치는 사람들의 삶을 도와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때론 그 삶을 억압하는 도구로 전락하기도 한다. 하여 눈 밝은 선각자들은 이 장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내 놓았다. 그 중에서도 동양사상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공자와 맹자의 논어와 맹자가 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 들어 공자와 맹자의 사상보다는 앞 시대를 살았던 노자의 사상인 도덕경에 주목하는 경향이 두드러져 보인다. 노자의 부각,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안성재의 노자에 관한 두 권의 책을 통해 노자사상의 핵심이 현대사회의 정치와 사람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알아보자. 먼저 정치이념으로 본 도덕경이라는 ‘노자의 재구성’은 도덕경을 해석해 놓은 기존의 책이 가지는 한계를 바로잡고 도덕경 본래의 뜻을 직역하여 근 근본 사상에 접근해 보고자 저자가 전문을 재해석한 것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한자 하나하나를 다시 살피고 노자가 살았던 시대를 반영하는 다른 여타의 저작물을 적극적으로 참고하여 도덕경을 다시 해석한 것이라고 한다. 학문을 하는 학자의 입장에 서서 한 연구의 성과물이고 여타 분명한 자기 시각을 드러낸 해석이기에 다른 학자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가의 문제가 제기되기도 하는 책이다.
‘노자의 재구성’은 그렇기에 일반인이 이를 통해 도덕경을 읽어가는 데에는 나름의 어려움이 있다. 원문과 번역 그리고 해설로 이뤄진 이 내용을 따라가다 보면 수없이 많은 부분에서 뒤편에 자세한 설명이 나온다고 명시하고 있어 그 뒤편을 찾아보고 다시 앞으로 돌아와 내용의 이해와 흐름을 쫒아가기에는 버거움이 느껴지는 부분이 그것이다. 학자로써 학문하는 자신의 연구 성과를 고스란히 담아놓은 것으로 이해하면 될 듯싶다.
저자의 노자 연구에 대한 후속 작인 ‘노자, 정치를 깨우다’는 그런 면에서 일반 독자들이 도덕경의 내용에 훨씬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어 두 권의 책 발간 목적이 따로 있음을 확인할 수 있게 한다.
‘노자, 정치를 깨우다’는 저자가 도덕경을 이해하는 시각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밝히고 있는 점이 돋보인다. ‘대동의 정치는 백성의 뜻을 지도자의 뜻으로 삼는 것이다’라고 하면서 ‘지도자의 지침서’로써 도덕경을 바라보고 있다. 즉, 노자가 살았던 당시 상황이 태평성대가 아니었고 춘추전국시대 전기에 해당하기에 그 혼란스러운 상황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노자 나름대로의 소견을 밝힌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하여, 도덕경의 해석에서도 지도자가 백성들과 더불어 어떤 내용과 방법으로 정치를 실천해야 백성과 더불어 나라를 굳건히 세우고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노자, 정치를 깨우다’는 지도자가 어떤 가치관과 자세로 백성을 다스리면 나라가 평화롭고 오랫동안 행복한 삶을 유지할 수 있는가라는 시각을 중심으로 본문을 해석하고 이를 해설하고 있다. 바로 “노자의 ‘도’는 ‘형이상학적 개념의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도’가 아니라, ‘대동’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통치이념이다.”라고 밝힌다.
저자 안성재의 ‘노자의 재구성’와 ‘노자, 정치를 깨우다’두 권 모두 원문을 번역하고 저자의 시각이 들어간 해설이 있으며 사마천의 사기나 상서, 예기, 십팔사략 등 각종 문헌을 참고자료로 제시하여 그 내용의 이해를 더 풍부하게 돕고 있다. 한자에 익숙하지 못하고 또한 춘추전국시대의 상황을 이해하기에도 벅찬 일반인이 노자의 도덕경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노자의 재구성’ 보다 짜임새가 훨씬 간결하지만 내용을 이해하는 데에는 보다 쉬운 ‘노자, 정치를 깨우다’가 더 용이하다고 볼 수 있다.
정치는 지도자의 몫만이 아니다. 지도자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함은 있지만 이를 선택하고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국민들의 몫이 아닐까 싶다. 그 첫 번째 의무가 올바른 지도자를 선택하는 안목을 기르는 것이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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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재구성도 알차고 재밌었는데~ 정치를 깨우는 노자의 책은 반가움이 두배 깨달음이 두배였다. 언뜻 이해 안가는 말들이 있어 두세번 소리내어 읽기도 했지만 짤막한 글들에 너무나 많은 뜻이 담겨있어서 놀라울 따름이었다. p22 미언 : 만물을 만들지만 간섭하지 않고, 낳아 기르지만 소유하지 않으며, 행하지만 의지하지 않고, 공적을 이루지만 머무르지 않는다. 무릇 머무르지 않기에, 이 때문에 사라지지 않는다. 대의 : 대동사회를 이끌었던 지도자들은 만물을 만들지만 백성들의 천성을 따르지 않거나 간섭하지 않았고 그들을 낳아 기르지만 자신의 것으로 여겨 소유하려 들지 않았으며, 통치하지만 통치를 잘하고 있다고 자부하지 않았고 공로를 세우지만 그 공로가 자신의 것이라고 집착하지 않았다. 무릇 그 공로가 자신의 것이라고 집착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의 공로는 영원히 잊히지 않고 지금까지 내려오게 되었던 것이다. 이 부분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대동사회의 지도자들이 보여주는 올바름과 덕에 대해 가르쳐주고 있다. p438 미언 : 첫 번째는 자애로움을 말하고, 두 번째는 검소함을 말하며, 세 번째는 감히 세상의 앞에 서지 않음을 말한다. 대의 : 그 첫 번째는 지도자가 선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모두 포용하는 자애로운 태도이고, 두 번째는 사치와 향락에 빠지지 않고 검소한 태도이며, 세 번째는 백성들의 뜻을 자신의 뜻보다 앞에 놓는 겸손한 태도이다. 지도자들은 백성들을 바른길로 이끌고 백성들보다 더 도덕적이며 항상 모범이 되어야하는것인데 우리나라 지도자들을 보면, 전부다 어찌 그렇게 똑같은지.. 그렇게 이기적이기도 힘들것이다. 꼭 정치인들 뿐만 아니라 회사만 보아도 그렇다. 오너라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직원들에게 적은 임금을 주며 최대한의 노동력을 뽑아내려한다. 어딜가나 리더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그 리더들이 한명씩이라도 정신을 차린다면 무지하고 가난한 백성들은 좀 더 나은 사람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을거 같다. 이 책은 리더들이라면 꼭 읽어야하는 필독서이자, 리더를 준비하는 사람들은 한번쯤은 거쳐가야 할 소중하고 값진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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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노자의 '도덕경' 전문, 81장 모두를 아주 디테일하게 풀이한 책이다.
노자가 우리에게 가르치고자 하였던 것은 '무위'가 아니라 '순리'였다. 이런 사상서는 무엇이 진리다라고 딱히 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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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도덕경을 다시 읽어보니 그것을 그 책을 읽는 사람에 따라 달리 해석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사람들이 도덕경을 만경지왕 또는 백과사전으로 부르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노자의 도덕경은 무위자연에 대한 것으로 어찌 보면 허무주의 같은 것으로 많이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도교와 연관하여 충분히 그렇게 해석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이 책을 인간이 세상을 살아가는 처세의 지혜를 알려주는 것으로 이야기를 풀어간 책도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은 어떠한가? 저자는 기본적으로 이 책을 공자와 맹자에서 기인한 유가 철학과 마찬가지고 노자의 정치철학으로 풀어가고 있다. 참 재미있는 발상이다. 기본적으로 정치철학의 책으로는 거리가 먼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것을 역발상으로 우리생활과 밀접한 정치철학으로 이해하게 해준다니 참 멋진 책이 아닌가? 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 책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도덕경의 한자가 나오고 이를 간략하게 이야기하는 미언, 그리고 저자의 의도와 부합하도록 정치철학이 될 수 있는 대의, 그리고 이러한 대의 부분을 뒷받침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기존의 역사적인 사실의 인용인 해설이다. 저자가 생각하는 노자의 도덕경의 핵심은 바로 대동의 정치철학으로 가자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노자가 주장하는 바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그렇다면 대동은 무엇인가? 대동은 바로 삼황오제가 통치한 시대의 사회에서 주장되는 정치철학으로, 이 때의 시절은 태평성대의 시기로 지도자가 백성을 뜻을 삼가 받들어 통치하여 어느 누구도 버려짐이 없이 모두가 조화롭게 살던 시기이다. 여기서 우리는 소강을 또한 이해해야 한다. 소강을 바로 실제 역사라고 인정되는 하나라, 상나라에서 주나라 주왕이 통치하는 시기로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예약제도를 설치하여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고, 엄격한 형벌을 통해 백성을 통제한 시대의 정치철학이다. 여기서 대동과 소강이 있다면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인가? 아마 물을 필요 없이 대동의 시대를 원할 것이다. 그래서 노자는 도덕경에서 이러한 대동의 시대로 돌아가자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통치 이념으로 나라가 다스리게 되면 백성들이 무위의 경지에 이른다는 것이다. 아 정말 이러한 시대로 가고 싶다. 그렇다면 노자의 가치관은 어떤 것인가? 그것은 위에서 이야기 된 것 같이 무위인 것이다. 무위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그 유명한 ‘도’ 라는 것이다. ‘도’는 무언인가? 이것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면 도덕경을 다 이해하는 것이다. 물론 나는 잘 모르지만, 저자에게 도는 어떤 대동으로 가는 통치의 개념인 것이다. 이러한 노자의 정치 철학이자 통치의 개념은 공자와 맹자가 주장한 덕을 통한 통치의 개념보다 한 수 위의 개념이라는 것이다. 즉, 덕을 통한 통치의 개념은 백성들을 끊임없이 인, 의, 예로 가르쳐야 하는 통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천성에 의해서 된 것이 아닌 타율적으로 된 것이다. 저자의 개념에는 100% 동의 하지는 않지만, 노자의 도덕경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이 책을 환영한다. 현대의 사회는 다양성을 인정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저자처럼 이 책을 통치와 같은 정치철학으로 이해할 수 있으려면(한 줄기를 잡으려면) 정말 도덕경을 닳도록 읽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자신만의 줄기가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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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참 오랫동안 붙잡고 있었다. 처음 생각과는 달리. 이 책의 제재인 '도덕경'에 처음 들어 본 것은 아니다. 김용옥의 EBS 강의를 통해서 대중들에게 유명해져서 일까. 도덕경을 주제로 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던 시절이 있었다. 개성있는 해석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보려던 사람들도 있었고. 도덕경에 대한 일반적인 관심은 어디까지일까. 도덕 교과서에서 우리는 '노자 = 무위자연 = 인위와 반대되는 것으로, '자연'을 따르라는 것'을 암기한다. 그 지식을 바탕으로 시험을 치르고, 노자는 다시 잊혀진다. 도덕경은 그의 유일한 저서다.(라고 알려져 있는데, 실제로 역사적인물인 '노자'가 지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책날개를 통해서 이 책의 의미를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 '만약 필자의 노자에 대한 결론이 받아들여진다면' 이라는 구절은 이 책의 '도덕경' 해석이 아직 학계에서 제대로 인정받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이 책을 쓰기에 앞서서 동 출판사에서 '노자의 재구성'이라는 책을 냈다. 저자를 직접 만나본 것은 아니지만, 왠지 모습이 상상이 된다. 들어가는 글과 본문 내내 저자의 열정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비주류는 대개 두 종류가 있다. 1. 주류에 낄 수 없는 스스로의 위치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삐딱하게 나아가는 경우. 2. 위험부담을 지고서라도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증명하기 위해 주류에 대항하는 경우 이 책은 후자에 가깝지 않나 생각한다. 이 책을 쓰기 위해서 저자는 여러 세월을 고민과 자료수집으로 보냈다고 한다. 이 책을 쓰기 위해서 그는 십삼경과 사기, 십팔사략을 섭렵했다고 한다. 노자에 대한 희미한 흔적까지도 샅샅히 찾아보려 한 듯하다. 그 결과 저자는 '미언대의'라는 해석방침 아래 이 책을 썼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道可道非常名可名非常名' 라는 구절을 '도라는 것은 말할 수 있으면, 영원한 도가 아니고 ; 이름이라는 것은 부를 수 있으면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 라는 미언 해석과 저자 고유의 '대동' '소강' 이론 틀에 따른 대의 해석으로 풀어내고 있다. 때로, 이런 대의 해석에는 관련되거나 근거가 되는 다른 사서의 자료들이 인용되기도 한다. 이 서평은, 책의 소개를 염두에 두고 씌어졌다. 자세한 내용을 쓰기 위해선 시일이 오래 걸릴 것 같아서이다. 이 책은 쉬이 그리고 빠른 호흡으로 읽고 싶지 않다. 천천히 사색하며 읽고 싶다. 저자의 논의는 아직 정론이라 하기 어려우므로, 나는 이 책을 하나의 이상사회론 내지 정치론으로 읽어보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책이 과연 도덕경의 제대로된 해석인가를 가리는 소모적인 논쟁틀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테니. 독자들에게도 그런 해석을 권하고 싶지만, 그것은 역시 읽는 자의 자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