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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철학자.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나 고등사범학교 졸업 후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쳤다. 사회주의와 노동운동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졌기에 공장과 농장의 임금노동자로 취업하였고, 스페인 내란에도 참전했다. 2차 세계대전 중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망명했던 베유는 프랑스의 레지스탕스에 합류하고자 귀국을 시도하던 중 런던에서 객사하였다. 그녀에 관한 짤막한 소개 글을 읽고 났을 때 내 머릿속에 ‘치열함’이란 단어가 하나 떠올랐다. 1909년생. 1943년 사망하기까지 주어진 시간은 35년이 채 되질 않는다. 게다가 시대가 암울했다. 합법적인 선거 과정을 거쳐 당선된 히틀러는 위대한 독일을 이루기 위한 한 가지의 조치로 유대인 대학살을 계획하게 된다. 그녀는 유대인이었다. 히틀러는 국가사회주의를 주창했지만 역설적이게도 사회주의자를 탄압했다. 그녀는 좌익잡지에 기고를 하고 노동운동에 많은 관심을 가진 인물이기도 했다. 모든 조건이 그녀에게 불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시도했다. 이는 건강이 허락되지 아니 한 시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공장에 위장 취업해 노동자로서의 계급성을 체득하고, 나중에는 아예 레지스탕스가 되길 자처했다. 이름은 얼핏 들어본 듯도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내겐 너무도 낯설었다. 그래서 난 한참을 물어야만 했다. 대체 이 인물을 어찌 받아들여야 좋단 말인가. 굳이 정의를 내리다면 나는 그녀를 ‘변증법적 인물’이라 칭하고 싶다. 그녀는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을 거부함으로써 앞으로 나아가길 꿈꿨다. 우선 그녀는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거부했다. 유대인이 지닌 선민의식을 거부했고, 나아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인정치 않았다. 대다수의 유대인들에게 이는 불온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기독교의 순수한 신앙만큼은 간직하면서 그에 덧입혀진 것들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심지어 자신이 기독교 신앙에 기초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다른 종교로부터 계시를 얻는 것에 대해서도 문제로 여기지 않았다. 그녀는 세상 사람들이 논하는 것처럼 이단이던 걸까. 그녀는 철저히 사회주의적이었는데, 이 지점에서도 다른 지식인들과는 다른 면모를 보였다. 지식인. 이 단어가 주는 위압감은 얼마나 큰가. 많은 이들이 지식인이어서 그런지 머리로는 알되 실천을 않는다. 숱한 이론을 내뱉으면서도 자신의 이론과 현실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에 대해서는 말을 아낀다. 하지만 시몬 베유는 자신을 아예 내려놓는다. 그녀의 실천은 현실을 익히기 위한 형태가 아닌 스스로의 정체성을 획득하기 위한 수준이었다. 가난이 착취로부터 비롯됐다는 결론에는 누구나 도달 가능할 텐데, 그녀는 착취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는 부를 누리길 거부한다. 개인의 실천은 미약하다. 보다 큰 힘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되었건 조직적으로 행동할 필요가 있다. 완성을 논하기에는 너무도 짧았던 그녀의 생애를 고려했을 때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한 게 그녀의 한계일지도 모르겠다. 허나 자신의 생명을 갉아먹으면서까지 그녀가 보여주었던, 이를 테면 가난한 사람보다 많이 먹지 않으려는 그녀의 결벽에 가까운 실천 등은 아무나 행할 수 있는 게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결핵과 영양실조. 이는 그녀를 사망으로 몰고 간 원인이라고 했다. 아마 그녀는 자신에게 닥칠 결과를 어느 정도는 예감하지 않았을까 싶다. ‘어느 여학생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비교적 책의 앞부분에 수록된 글을 읽으며 나는 어쩌면 이 편지가 제 자신에게 보내는 편지일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노동에 스스로의 몸을 맡겼음에도 ‘지금 내가 여기 있다는 사실이 말할 수 없이 기쁘’다고 말하는 그녀. ‘내게 내포되어 있는 모든 것들을 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인 지금을 놓치지 않겠다는 다짐을 어쩌면 그녀는 편지를 쓰며 스스로의 마음에 새겼던 게 아닐까란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넌 스스로를 몹시 괴롭히는 성격이로구나. 사실 넌 지금의 사회생활에 적응하기에는 너무 열정적이고 과격해. 넌 홀로 사는 게 아니거든. 하지만 고통이란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란다. 격렬한 기쁨도 경험할 테니까. 중요한 것은 자기의 듯을 이루는 거야.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단련시키지 않으면 안 되지. 모든 고통과 기쁨을 위해 그녀는 성공적으로 자신을 단련시켰던가. 누구보다도 삶을 진지하게 대했던 그녀의 이른 죽음이 의미하는 바가 무언지... 아직 난 잘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