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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을 위한 성에서 쾌락을 위한 성이라는 성 관념의 변화, 노동 인구 가운데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의 증가가 ‘새로운 아내’의 탄생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532쪽) 20세기 하반기 인류 역사에 커다란 혁명이 일어났다. 이 새로운 혁명은 1만 년 전의 신석기혁명과 18세기의 산업혁명에 이어 우리네 삶을 근본부터 흔들었다. 여성의 경제적 독립으로 인해 아내는 더 이상 남편의 소유물이 아니었다. 전통적으로 여자의 가치는 결혼해서 아기를 낳고 가사일을 전담하고 남편 내조를 위해 자신만의 삶을 포기하는 데 있었다. 그런데 그녀들은 이 모든 것을 벗어 던져버렸다. 그녀들은 인류 역사이래 전개되어 왔던 전통적인 여성상을 바꾸길 원해고, 나아가 이를 실현했다. 새로운 역사가 전개되고 있다. 그녀들이 쓰는 역사는 History가 아니라 Herstory였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스탠퍼드 대학의 매일린 앨롬은 이를 규명하기 위해 성경에서 시작해 그리스 로마시대의 아내상 그리고 서구의 과거 문서를 통해 이 변화를 살펴보았다. <아내의 역사, A History of The Wife>가 바로 그 결과물이다. 서구 문명에서 최초의 여성이라고 생각하는 이브는 아담의 협력자로 태어났다.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어진 이브는 여성이 본질적으로 남성보다 열등하며 남성에게 의존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성경에 등장하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경우를 보면 여자는 결혼해 남성을 위해 아이를 낳아야만 했다. 특히 사내 아이를 낳아야 했다. 아이를 낳을 수 없으면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런 여성상은 그대로 서구인의 문화 속에 살아남아 전해졌다. 어쩌면 집단 무의식 속에 남아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처럼 서구 여성들은 20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 남성 기득권 사회가 자신들에게 원하는 모습으로 살았다. 과연 이런 삶이 그녀들을 행복하게 했을까? 그녀들은 결코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들은 자신의 남편의 종속물이 아니라 삶의 주체가 되길 원했다. 그녀들은 사회가 요구하는 집단무의식에서 탈출했다. 성혁명과 경제적 독립이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그 변화는 서구사회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 까지 밀려들었다. 미혼(未婚)이란 단어는 결혼을 중심으로 생겨난 단어다. 즉 결혼을 해야 하지만 ‘아직 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요컨대 결혼이 필수적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요즘은 비혼(非婚)이 미혼을 대신하고 있다. 결혼은 해야만 하는 상황이 아니라 선택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비혼이란 단어는 특히나 여성들이 즐겨 사용하고 있다. 결혼이란 굴레를 벗어 던지고 싶은 그녀들의 욕망이 이 안에 묻어 있다. 바야흐로 여성 상위시대가 되었다. 남성들이 어떻게 하려해도 이 도도한 변화의 물줄기를 막을 수는 없다. 여자가 변했고 아내가 달라졌다. 남성도 변해야 하건만 이 도도한 물결에 그대로 합류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이 시대 남성의 딜레마다. 남성들이여! 아내의 변화를 그대로 받아들여라. 이것이 당신들이 사는 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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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은퇴자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의하면 남성의 여가의 대부분을 TV 시청을 하는 반면 여성은 가사활동에 가장 많은 시간을 사용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많은 여성들이 결혼과 출산 후에도 직장생활을 지속하고 있지만, 여전히 가사의 1차적인 책임자는 여성인 게 현실이다. 그래서 결혼하면 여자가 손해라는 말이 심심찮게 들려오는 모양이다. 사랑해서, 본인이 선택해서 하는 오늘날의 결혼에서도 누가 더 손해니 덜 손해니 등의 말이 떠돈다. 하물며 사랑보다 다른 조건이 앞섰던 과거의 결혼은 더더욱, 평등한 무언가와는 거리가 멀었을 것이란 생각이 앞선다. 실제로 지난날의 결혼은 많은 부분 여성의 희생이 전제된 것이었다. 가부장적인 질서가 확고했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갈수록 이는 보다 명확해진다. ‘아내의 역사’라는 제목의 이 책으로부터 내가 엿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여성해방의 역사였다. 본인이 믿는 종교가 기독교가 아닐지라도 아담과 이브에 얽힌 이야기는 아마 대다수가 알고 있을 것이다. 금지된 열매인 선악과를 베어 먹었다는 이유로 인류는 땀 흘려 노동하고 아이를 낳는 고통을 짊어지게 되었다. 특히 뱀의 유혹에 빠져들었으며 아담에게 선악과를 권한 것으로 되어 있는 이브, 즉 여성에 대해서는 온갖 부정적인 평가가 더해졌다.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의 그리고 결혼 후에는 남편과 아들을 통해서만 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여성의 위치가 변화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여전히 몇몇 이슬람 국가들을 비롯하여 많은 곳에서 여성은 교환의 대상이자 지배의 대상이다. 이러한 현실에 분노를 표출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과거 인류가 향유했던 대다수의 문명에서 여성은 제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만족스러운 결혼생활을 고백한 극소수의 여성들도 물론 있기는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성은 남성에 의해 제 모든 것이 결정 지워진 존재였다. 중세의 경우엔 구타도 널리 용인되었다. 여성은 철저히 집안일을 하고 대를 잇는 역할을 담당할 뿐이었다. 시대를 지배한 종교 역시 철저히 남성의 시각에서 여성의 역할을 규정짓기에 바빴다. 수도원에서의 생활이 더 이상 보편적인 게 아닌 것이 되어감에 따라 종교는 결혼하지 않은 이들의 삶까지 침범하기에 이르렀다. 과거처럼 아내를 때리는 것을 당연시하진 않았으나, 남성은 모든 면에서 우월하다는 시각에 입각해 이상적인 부부관계 역시 그려졌다. 여성이 남성에게서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게 된 데에는 정치적인 이유가 컸다. 18세기 프랑스 혁명으로 인하여 사회질서가 요동칠 때, 독립전쟁으로 인하여 모두가 정치를 논하기 시작했을 때 여성들은 이제까지의 은둔 생활로부터 한 걸음 나아가는 모습을 선보였다. 그리고 이는 세계대전으로 남자들이 전쟁터를 누비게 됨으로써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때 폭발하고야 말았다. 사회의 필요에 의해 노동시장으로 내몰린 여성들은 국가 경제를 책임지는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가정을 등한시했다는 비난받았다. 하지만 이는 분명 진일보한 변화를 이끌어냈다. 이제까지는 전적으로 남성에 의존했던 여성들에게 경제적인 지위 향상을 가져다준 것이다. 비록 활발히 노동에 관여하던 여성들이 전쟁이 종료되고 나서는 남성들에게 일자리를 내어주고 도로 누군가의 아내, 엄마로서의 역할로 돌아와야만 했지만 말이다. 임신과 출산 그 자체는 그저 중립적인 행위에 불과하다. 대다수는 이를 본인이 원해서 택한 행위로 해석하며, 그에 따라 원치 않음에도 복무해야만 하는 군 문제와 비교하는 유치찬란함을 선보이는 이들도 몇몇 존재한다. 그렇지만 사회가 이를 바라보는 시선은 결코 중립적이지가 못하다. 새 생명을 잉태하는 일은 축복일지 모르지만, 그로 인해 여성들은 노동시장에서 밀려난다. 아이를 가진 여성은 그로 인해 직장에서의 생산성이 떨어질 것으로 여겨지고, 상대적인 저임금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어야만 한다. 아이를 낳고 말고가 개인의 선택이듯 내 몸을 통제하는 것은 철저히 나에게 귀속되어야 할 텐데 꼭 그렇지만도 않다. 많은 나라들은 정책적으로 산아제한을 합법/불법으로 치부해왔으며 장려하기까지 해왔다. 출산 이후의 양육에 대해서는 전혀 책임지는 태도를 보이지 않은 체 말이다. 이와 같은 무책임으로 인해 여성들은 다시 한 번 ‘아내’라는 단어에 갇히거나 아니면 그 전보다 좀더 활발하게 노동시장에 진출하거나를 반복해왔다. 아마도 이와 같은 경향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그렇지만 지난 역사는 분명 더디나마 나은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다. 저자는 전통적인 아내상이 더 이상 이상적인 아내상을 대표하지는 않는다며, 보다 평등한 부부관계의 창조를 위해 여성들이 큰 용기를 내어주길 바라는 것으로 책을 마무리 짓고 있었다. 텔레비전을 틀 때마다 왜곡된 남녀 관계가 등장하는 요즘이다. 가장 평온해야 할 가정의 영역도 자극으로 물이 든다. 과거와는 달리 드세진 여성들이 그와 같은 바탕을 마련했다는 비난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하지만 오래도록 ‘아내’였던 이들이 비로소 ‘여성’으로 다시금 태어나려는 진통을 한껏 비틀어가며 그려내기에 바쁜 몇몇 프로그램들을 통해 사회가 바라는 여성(아내)상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이 또한 하나의 역사가 될 것이다. 그땐 그랬지라며 웃어 넘길 수 있는 과거가 되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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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역사라는 제목에서 흥미가 확 밀어 닥쳐 올라왔다. 과연 아내는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을까.. 아내라는 사회적 지위는 언제부터 고정화됐고, 어떤 변화를 거쳤을까 궁금하던 차에 찾아 읽어본 이 책은 독서라는 체험에서 얼마나 책 속에 빨려들어갈 수 있는지를 증명해준 책이다. 남자로서,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반드시 읽어봐야 할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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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삶읽기, 인문책 162 ‘집일’ 하는 몸종인가 ‘곁님’ 같은 사랑인가 ― 아내의 역사 매릴린 옐롬 글 이호영 옮김 책과함께 펴냄, 2012.5.11. 28000원 아무리 더운 여름이어도 밥을 짓고 빨래를 합니다. 아무리 추운 겨울이어도 밥을 하고 청소를 합니다. 아무리 힘든 하루여도 아이들을 돌보고 씻기고 먹이고 재웁니다. 아주 자그마한 말 한 마디여도 아이들이 고스란히 받아들여서 배우니, 어버이로서 아주 짤막한 말 한 마디라 하더라도 더 마음을 기울여서 쓰려고 합니다. 더운 날씨이기에 밭일을 안 해도 되지 않습니다. 바쁜 하루이기에 아이들을 돌보지 않아도 되지 않아요. 밥을 먹으려면 밥을 차려야지요. 밥을 먹은 뒤에는 밥상을 치워야지요. 밥을 차리려면 먹을거리를 장만해야 하고, 먹을거리는 손수 밭에서 기르거나 저잣거리에서 사들여야 합니다. 밥상맡에 앉아서 수저만 드는 사람이라면 ‘제때에 밥이 오르기를 바랄’ 테지만, 밥상을 차리는 사람으로서는 밭짓기랑 저자마실을 비롯해서 철이나 날을 따라 다 다른 밥차림을 올리려고 온힘을 쏟기 마련입니다. 돈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었다면, 잘생긴 외모나 훌륭한 인품은 여기에 날개를 달아 주는 것이었다. 여성에게는 처녀성이 요구되었고, 남성에게는 예의 바르고 믿음직하며 활력이 넘칠 것이 요구되었다. (58쪽)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남편과 아내의 역할은 안정적인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데 기여하는 것이었다. (82쪽) 요새는 옷 한 벌을 퍽 손쉽게 가게에서 돈을 치러서 살 수 있습니다. 신이나 모자도 손쉽게 살 수 있어요. 이불이나 담요도 돈으로 쉽게 장만할 만합니다. 그런데 옛날에는 이 모두를 집집마다 손수 바느질을 하거나 뜨개질을 해서 지어야 했어요. 옷도 이불도 손수 지었고, 버선도 갓도 손수 지었지요. 짚신이든 미투리이든 모두 손수 삼습니다. 더구나 바느질이나 뜨개질을 하려면 실하고 바늘도 손수 지어야 하지요. 물레를 잣고 베틀을 밟습니다. 풀줄기에서 실을 얻기까지 길고 고된 나날을 거쳐야 하고요. 그런데 말이지요, 가만히 살피면, 옷짓기나 밥짓기하고 얽힌 일은 으레 가시내가 도맡았습니다.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여러 나라도, 유럽이나 미국도 모두 매한가지예요. 힘을 무척 많이 써야 하는 일일 텐데 뜻밖에도 이런 일을 사내가 좀처럼 안 하려고 했습니다. 도시 바깥에 사는 농부의 아내들은 식사를 준비하고 집을 청소하며, 소젖을 짜고 닭과 돼지에게 먹이를 주고 채마밭을 가꾸고 우물이나 개울에 가서 물을 길어 오고 집 근처의 연못이나 개울가에 나가 빨래를 하고, 물레로 실을 잣고 바느질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게다가 강보에 싸인 갓난아기를 기르는 한편 좀 더 큰 아이들을 보살피고 아픈 이들과 노인들까지 돌보아야 했다. 또한 밭에 나가 괭이질, 제초, 추수, 그리고 추수 후의 이삭줍기를 도왔다. 이 모든 일을 하는 데 자식 이외에는 그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124쪽) 매릴린 옐롬 님이 쓴 《아내의 역사》(책과함께,2012)라는 책을 읽으며 ‘아내’가 어떤 사람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이 책 《아내의 역사》는 고대와 근대와 현대를 가로지르면서 유럽과 미국에서 ‘아내’라는 자리에 있던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했는가를 짚습니다. 서양도 동양(또는 한국)하고 엇비슷하게 ‘아내’는 집안에서 온갖 집일을 도맡으면서 쉴 겨를이 거의 없다시피 한 나날을 보냈다고 해요. 이러면서 아이들을 보살피는 몫에다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몫까지 온통 가시내가 도맡았다고 합니다. 더 헤아려 본다면, ‘아내’인 가시내는 아이도 낳지요. 아이를 낳는대서 집일을 쉬거나 걸러도 되지 않아요. ‘아내를 둔’ 사내는 어떤 바깥일을 하면서 살았을까요? 집일을 온통 가시내한테 맡기면서 수천 해를 살았다는 사내는 집 바깥에서 어떤 살림을 지었을까요? 왜 서양이나 동양(또는 한국)에서 사내는 집일을 등지고 집살림을 안 맡으며 아이키우기에 손을 놓았을까요? 여자 노예들은 농장에서 이 일 저 일 닥치는 대로 했다. 들판에서 일하는 여자 노예들은 쟁기질과 괭이질에다 목화 따기, 심지어 장작을 패는 일까지 했다. 집 안에서 일하는 여자 노예들은 요리, 바느질, 빨래, 다림질, 젖 주기, 아이들 보살피기, 나아가 안주인과 주인의 개인적인 요구까지 일일이 챙겨야 했다. 그들은 비누를 만들고 염색을 했으며 바구니를 짰고 심부름을 했다. 그러고 나면 정작 자기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쓸 시간이 없었다. (322쪽) 문득 드는 생각인데, 동양이든 서양이든 ‘혼인 제도’에서 가시내는 ‘아내’라는 이름을 받으면서 거의 ‘몸종’처럼 살아야 한 셈이었구나 하고 느낍니다. 이름은 아내이지만 막상 도맡아야 하는 수많은 일은 거의 ‘종’을 부리는 모습이라고 할 만합니다. 가시내(아내)는 사내바라지(남편바라지)를 해야 하는 정치·사회·문화·교육 얼거리인 셈이라고도 할 만하지 싶어요. 오늘날에는 이 틀이 많이 깨지거나 바뀌었다고 할 텐데, 그래도 제법 많은 여느 집이나 사회에서도 ‘가시내’ 자리는 ‘아내’여야 한다고 여긴다고 느껴요. 바깥일을 하는 가시내라 하더라도 집으로 돌아오면 집일을 거의 도맡아야 하는 얼거리는 좀처럼 안 깨지는구나 싶어요. 이 대목을 더 따져 본다면, 오늘날 학교교육에서는 아이들(사내와 가시내 모두)한테 집일을 가르치지 않아요. 학교에서는 아이들한테 밥짓기나 옷짓기나 집짓기를 가르치지 않아요. 학교에서는 아이들이 직업인이 되어 돈을 잘 버는 길만 가르쳐요. 아이들이 스스로 살림을 짓거나 꾸리도록 이끌거나 북돋우지 못하는 학교예요. 대공황 때는 일하는 아내가 “남자의 직업을 뺏는다”는 이유로 공공연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면, 이제는 노동력 부족으로 인해 일하는 아내가 칭송되었다. (483쪽) 직장 여성이 남자 아내를 가진다는 것은 여전히 매우 드문 일이다. 대부분의 아내들은 힘겹게 두 개의 장소에서 두 개의 ‘교대 근무’를 그때그때 적당히 해 나가면서 살아가고 있다. (574쪽) 기혼 여성들이 일을 하고 싶어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제일 큰 이유는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579쪽) 시골집에서 모든 집안일을 도맡으면서 바깥일까지 하는 아버지(사내)로서 《아내의 역사》라는 책을 찬찬히 읽습니다. 이러면서 우리 사회 모습을 가만히 헤아립니다. 집안일하고 바깥일을 함께 하자면 그야말로 등허리가 휘어요. 새벽부터 밤까지 살짝이나마 쉴 겨를을 내기란 몹시 어렵습니다. 여기에 아이들을 돌보거나 가르치는 몫도 맡으니 ‘내 한 몸으로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가’ 하고 놀라기도 합니다. 그런데 말이지요, 나는 옛사람이 아니라서 물레잣기나 베틀밟기를 하지는 않습니다. 손빨래가 고되면 기계(세탁기)가 도와줄 수 있습니다. 정 고단해서 밥상을 차리기 어렵다면 읍내에 가서 한끼를 사다가 먹을 수 있습니다. 요새는 고기 한 점 먹기도 수월해서 읍내 가게에서 고기 한 점을 사서 집에서 쉽게 구워먹을 수 있기도 해요. 옛날처럼 소나 돼지나 개나 닭을 집에서 손수 잡아서 손질해야 비로소 얻는 고기가 아닌 흐름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기계가 있고 시설을 갖추었어도, 기계나 시설을 다루는 몫은 사람이 합니다. 세탁기이든 청소기이든 사람이 다루어야지요. 아이들을 마주할 적에도 사람이 마주해요. 세탁기가 빨래를 해 주어도, 널고 말리고 개고 건사하는 몫은 오로지 사람이 맡습니다. 그러니까 이러한 하루살림을 고된 일거리로 바라본다면 집안일은 언제나 고될밖에 없구나 싶어요. 우리 보금자리를 즐겁게 가꾸자는 마음이 되어 아이한테 심부름도 시키고, 이모저모 가르치고 나 스스로도 새롭게 배우면서 건사한다면 재미난 집안살림(집안‘일’이 아닌 집안‘살림’)으로 거듭날 만하지 싶어요. 많은 여성들이 지난 이삼십 년 동안 배운 것이 있다면 아내가 되는 것이 유일한 선택지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593쪽) 집안일은 가시내만 해야 하지 않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집안일은 사내가 더 해야 한다고도 느끼지 않습니다. 집안일을 일보다 살림으로 느껴서 집안살림을 함께 꾸리고 가꾸며 돌볼 수 있어야지 싶습니다. 사내도 가시내도 ‘아내’나 ‘남편’이라는 이름에서 한 걸음 나아가 ‘살림꾼’이 되거나 ‘살림지기’가 되거나 ‘살림님’이 될 수 있으면 즐거울 만하리라 생각해요. 한국말사전에서 ‘아내’라는 낱말을 찾아보면 “혼인하여 남자의 짝이 된 여자”로 풀이합니다. 이와 맞서는 낱말로는 한자말 ‘남편(男便)’이 있습니다. 사내한테는 한자말로 이름을 붙여 준다면, 가시내한테도 한자말로 이름을 붙여서 ‘여편(女便)’을 쓸 듯하지만, 정작 ‘남편·여편’처럼 쓰는 일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여편 + 네’ 꼴인 ‘여편네’는 혼인한 가시내를 낮잡을 적에 쓰는 낱말이 되어요. 이밖에 한국말로는 ‘안사람·바깥사람’이라는 낱말이 있어요. 이는 가시내를 ‘집 안쪽’에 머물면서 일하는 사람으로 바라보고, 사내를 ‘집 바깥쪽’으로 나돌면서 일하는 사람으로 바라봅니다. 이 같은 ‘안팎’을 놓고 한자말로 ‘내외(內外)’를 쓰기도 해요. 혼인을 해서 두 아이를 낳아 돌보는 어버이로서 부름말을 살피니 어느 하나도 내키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 나름대로 새로운 말을 짓기로 합니다. 가시내하고 사내를 따로 가르기보다는 서로 스스럼없이 어깨동무하는 삶벗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곁님’이라는 이름을 지어 봅니다. 곁에 있는 님, 곁에서 돌보는 님, 곁에서 서로 어깨동무하는 님, 곁에서 즐겁게 살림을 함께 짓는 님, 이런 여러 가지 뜻을 실어서 ‘곁님’이라는 이름으로 ‘아이 어머니’를 부릅니다. 그러면 ‘아이 어머니’도 나(아이 아버지)를 곁님으로 부를 수 있어요. 아내가 된다는 것은 명예의 배지를 다는 일이 아니지만 불행의 배지를 다는 일도 아니다. (17쪽) 새로운 이름을 지어 보는 까닭은 앞으로 집살림도 새로운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성평등이라는 틀에서도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즐거운 살림’과 ‘기쁜 보금자리’로 거듭날 때에 아름다운 삶이 되리라 생각해요. 이럴 때에 우리는 비로소 “아내의 역사”가 아니라 “함께 짓는 살림”을 누릴 테고, 지난 수천 해에 걸쳐서 동양과 서양 모두 ‘아내’를 ‘몸종’처럼 부리던 굴레를 씩씩하게 떨쳐내면서 ‘사랑하는 두 사람’이라고 하는 새로운 길로 노래하며 걸어갈 만하리라 봅니다. 가시내도 ‘살림님’이 되고, 사내도 ‘살림지기’가 될 수 있기를 꿈꾸어요. 너랑 나랑 다 같이 ‘살림벗’이 되어, 우리 보금자리를 우리가 스스로 사랑할 수 있기를 꿈꾸어요. 2016.7.31.해.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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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전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중매결혼이 대세였다. 연애결혼은 근대 이후의 일인 셈이다. 어찌된 영문인지 21세기의 한국은 다시 중매결혼이 유행하고 있다. 결혼에 사랑이 충분조건이 되지 않는다는 씁쓸한 자각과 성찰이 깃들인 현상이다. 따지고 보면 사랑으로 인한 결혼의 역사는 단지 200여년에 불과하다. 사랑이 결혼을 결정하는 요소에 포함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영국 빅토리아 여왕 시대부터였다. 이런 결혼관은 청교도들이 미국에 이주하면서 전파되었고 미국 중류층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 귀족과 상류층의 경우에는 20세기까지도 배우자를 선택하는 데 여전히 부와 가문, 지위를 중요하게 고려했다.
옛날 여성들은 경제적 지원을 받기 위해서, 가족 간의 유대를 강화하기 위해서, 아이를 낳기 위해서, 외로워서, 다른 여자들처럼 평범하게 살기 위해서 등의 이유로 결혼했다. 대부분 중류층 여성들은 집에 머물렀고, 남성들은 바깥에 나가 일을 했다. 남편의 노동으로 살아가는 중류층 아내들의 주된 임무는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을 만족시키는 것, 자녀들을 건강하게 키우는 것, 그리고 집안을 관리하는 것 이 세 가지였다.
"구약 시대부터 1950년대에 이르기까지 아내를 먹여 살리는 것은 남편의 의무였다. 여자는 그 대가로 섹스, 아이, 그리고 가사 노동을 제공했다. 그것은 쌍방이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일 뿐만 아니라 종교법과 민법에 성문화되어 있었다."(13쪽)
삼강오륜과 칠거지악으로 여성을 억압한 조선시대나 청교도적 도덕이 맹위를 떨친 초기 미국사회에서나 아내의 삶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가령 미국에서 간통을 저지른 이는 벌금을 물거나 공개된 장소에서 채찍질을 당했다고 한다. 오늘날도 그렇지만 예전에도 독신모는 아이를 낳은 사실을 숨기려고 영아를 살해하기도 했다.
대다수의 사회학자들은 서구에서 근대적인 결혼관이 미국 독립전쟁과 1830년 사이에 등장했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재산, 가족, 사회적 지위가 여전히 결혼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였지만 사랑이 배우자를 택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되었다. 또한 19세기 후반에 결혼을 했건 안 했건 자립을 추구하는 이른바 '신여성'들이 대두되었다. 가령 1874년 개혁주의자 애바 굴드 울슨은 "나는 아내, 어머니, 교사이기 이전에 먼저 나 자신을 위해 존재할 권리를 가진 여성이다."라고 선포했다. 이들은 교육받기를 원했고 경제적 자립을 원했고 강요된 결혼을 거부했으며 산아제한을 원했다. 이들 신여성 가운데는 오늘날 말하는 비혼족도 있었다. 20세기 후반 60년대의 '성혁명'을 거치면서 성의 자유, 피임약, 낙태의 합법화를 옹호하는 새로운 성문화가 유행했다. 결혼과 비혼이 선택사항이 되었으며 현재 미국의 아이들 가운데 40퍼센트는 혼외관계에서 태어나고 있다.
이 책을 펼치면 이런 말이 나온다. "나의 여자 친구들에게. 한 때 아내였거나 지금도 아내인 세상의 모든 아내들에게 바친다. " 아하, 이 책은 세상의 모든 아내들에게 바치는 그런 책이구나. 그런데 인터넷 서점의 베스트셀러 명단에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아내들은 서양의 아내의 역사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반응이 너무 냉랭한데. 아무리 극동의 예의지국의 아내들이라고 하지만 지구편 반대쪽에서 살아가고 있는 아내들, 가령 니콜 키드만, 나탈리 포트만 등에게도 관심을 가져보는 것이 어떠한가. 왜, 연예인 남친에게 얻어맞는 여배우나 여가수 이야기에나 관심을 기울이지 말고 세상의 모든 아내들과 언젠가 아내가 될 그런 동생들을 위해서 이런 두툼한 인문교양서를 한번 읽어두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이다. 신사임당, 허난설헌, 한석봉 어머니만 생각하지 말고 여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아내의 역할과 그 역사에 대해 진지한 성찰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어떠할지. 언젠가 이 책이 베스트셀러 선반에 오르는 그런 미래사회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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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은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를 한다고 하지만 개인의 삶에 있어 결혼은 정말 중대차한 일인 것은 사실이다. 사회적인 동물로서 인간은 타인으로부터 지대한 영향을 받게 되는데 부부만큼 큰 영향을 주는 인간관계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안네카레리나의 법칙이라고 말하는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는 말처럼 행복은 건강, 자녀, 가정 경제, 부부간의 가치관 및 사고 방식 등등 모든 것들이 균형이 맞아야 행복을 느끼지 하나라도 부족하게 되면 그 자체가 다른 모든 것을 누르고 불행의 씨앗이 되는 듯 하다. 스스로가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 듯 하다. 그리고 양성평등에 대해서는 원론적으로는 옳은 사상이라고 생각하지만 각론에 있어서는 보편성이 떨어질지도 모르겠다. 평등이라는 것이 물리량처럼 길이나 무게로 잴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보니 주관적인 부분도 있겠지만 인간 역사가 남자는 바깥에서 주로 사냥이나 경쟁을 하고 여자는 안에서 육아위주로 살아온 유전자가 남아있기에 다른 예들도 분명있지만 크게 일반화해서는 그런 역할이 주어진 성에 맞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이런 부분이 현시점의 페미니스트들에게는 봉건주의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역사는 과거부터 남성위주의 사회였고 아내는 재산과 같은 존재였던 적도 있다. 현대에 이르기까지 양성평등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한 여자들의 이야기이다. 서양 사상의 근간을 이루는 성경 자체가 양성불평등을 담고 있기에 그 잔재는 오랜 세월 지속되었고, 성경이 미치지 않은 지역조차도 거친 야생에서의 생존은 약자인 여성들에게는 불평등을 초래할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다. 시쳇말로 배가 불러야 예술도 찾게 되는 것처럼 기본적인 생활이 잉여의 상태로 발전된 이후에 평등에 대한 개념도 고민하게 된 것은 아닐까 싶다. 세상이 변화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지만 연애나 결혼의 풍속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부모님 세대의 중매부터 자유 연애, 경제력에 대한 평가, 사랑에 대한 평가 등등. 이런 것들이 한편 새롭기도 하지만 서구사회가 먼저 겪었기에 그 역사를 쫓아가는 재미를 준다. 역사이면서도 사생활의 역사를 품고 있으니 시시콜콜, 신변잡기의 이야기들도 많이 포함되어 있다. 이 부분이 재미를 주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긴 호흡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큰 주제를 놓치게 하기도 한다. 개인에 따라서는 재미있을 수도 지루할 수도 있을 듯 하다. 모든 것이 현재 기준으로 보면 당연해 보이지만 그 과정까지 얼마나 복잡 다단한 일들이 발생했는지 이해하고 그 가치를 알게하는 것이 역사책의 재미인 듯도 하다. 구약의 이야기부터 그리스 로마, 유럽, 전쟁, 현대에 이르기까지 연대기를 따라 그 시대의 아내들의 위상과 그들이 겪었을 애환이나 생각등을 폭 넓게 다루고 있다. 마지막에는 향후는 어떻게 될까를 논하고 있는데 정말 앞으로 한세기 동안에는 어떻게 변해갈까도 궁금해 진다. 1/8/20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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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서 <아내의 역사>는 고대 세계의 이브에서 시작하여 21세기의 힐러리 클린턴까지 '아내'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의 변천을 많은 사료를 동원해서 기술한 책이다.
저자가 많은 문헌을 참조해서 종합한 덕에 읽는이는 편하게 그 모든 내용을 파악할 수 있지만, 방대한 사료를 연대기순으로 나열하는 구성은 영미계 인문사회서적에서 너무도 흔히 볼 수 있는 구태의연한 스타일이다. 일, 이십년 전에야 이런 책들도 그럭저럭 읽을만 했을지 모르지만, 독자들의 흥미를 잃지 않게 주제를 전달하는 필력을 가진 빌 브라이슨과 같은 저자들의 책들과 비교하면 더욱 지루하게 느껴진다.
단순히 구성만이 아니라 본서에서는 저자가 '아내'라는 의미의 변화과정에 대해 피상적으로만 파악했을뿐, 저자 자신의 새로운 해석이나 가설이 제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신선함도 덜하다. 저자가 본서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핵심 주제가 끝까지 모호하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지만, 본서 말미의 한 대목은 마치 에세이처럼 여운을 준다는 점이 특이하다.
결혼 생활을 시작하는 누군가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할 것을 서약할 때, 그 사람은 '슬플 때'를 거의 상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의 슬픔과 비극, 질병, 그리고 죽음은 결혼의 일부로서 특히 말년에는 늘 따라붙게 되어 있다. 그러고 나면 그는 당신이 옛날에 어땠는지를 기억해주는 사람, 그리고 지금 있는 그대로의 당신을 변함없이 돌보는 사람으로서 일생을 함께하는 반려자의 지지와 사랑에 특별한 고마움을 느끼게 된다. 타인의 가장 친밀한 증인이 된다는 것은 오직 시간이 흐른 후에야 그 가치를 완전히 인정할 수 있게 되는 특권이다. 아이들과의 씨름, 한쪽 혹은 양쪽의 부정, 한쪽 부모의 죽음, 자식들이 어른이 되기 위해 겪는 고통의 시간 등 결혼 초기와 중기의 폭풍우에 맞서 싸우는 것을 통해 당신은 그 세월을 함께한 사람에 대해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애착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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