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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을 뒤적이다 매력적인 물건을 만났다. 출시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전자제품인데 가격이 상당하다. 하지만 당장 내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후회할 것만 같은 기분에 나도 모르게 지갑을 열고야 말았다. 한동안은 만족감에 들뜬 상태로 생활을 했지만 이내 나는 일상으로 되돌아가고야 말았다. 또다시 새로운 물건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이번에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돈을 꺼내든다. 많은 이들이 이와 같은 패턴에서 자유로워지길 꿈꾼다. 카드결제일이 돌아올 때마다 느끼는 압박감이 그리 유쾌하지 않기 때문이고, 한 편으로는 물건을 구입하는 행위를 통해서만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이 비참하게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의지를 뒤흔드는 일은 하루에도 수차례 발생한다. 일단 광고가 너무 많다. 주변 사람들의 거침없는 소비 행각 역시 나에게는 쥐약과도 같다. 얼추 비슷하게는 살아야만 한다는 식의 강박관념에 취해 지갑이 나날이 얇아진다. 무언가 많이 소유하면 할수록 영혼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듯하다는 점 역시 문제다. 소비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사회에 대해 많은 이들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 즈음에서 지독히도 서구적인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 자본주의가 만약 이 땅에 도입되지 않았더라면 어떠했을까에 대해 조심스레 상상해 보게 된다. 일단 화폐가 없을 것이다. 누군가에게 고용을 가장한 속박을 당하는 일도 없을 것이다. 하루하루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만을 생산할 것이며, 자신이 생산할 수 없는 것은 다른 이와의 교환을 통해 얻을 것이다. 조금은 삶의 속도가 더뎌질지도 모르겠다. 괜찮을 거 같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갑갑할 것만 같다. 원하는 것을 마음껏 구입할 수 없다는 것이 그러하고, 일단 내가 원할 만한 물건이 생산되긴 할 것인가 하는 의구심도 드는 것이다. 다시 한 번 물건에 대한 맹신에 빠진 나를 발견한다. 아,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아담 스미스를 미친 척 욕하면 마음이 후련해질까? 아니다, 그에게도 항변하고픈 욕망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그가 원하던 모양새를 띠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은 그가 저술한 ‘도덕감정론’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그저 ‘국부론’의, 그것도 명제만을 읊으며 경쟁 일변도의 현 질서를 옹호하는 데에만 힘을 들이고 있다. 하지만 스미스는 인간의 이기심이 성장의 원동력임을 파악하기에 앞서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이타심에 주목했다. 공공선을 지향하는 위대한 정신, 착한 본성이야말로 인간 사회를 지속적으로 존재케 만드는 요인이라고 파악한 것이다. 그렇기에 아담 스미스만큼 오해를 사고 있는 인물도 없다 하겠다. 일종의 결자해지. 잘못된 해석이 낳은 오늘날의 자본주의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아담 스미스에게로 회귀해 올바로 그를 읽어야만 한다. 이와 같은 결론에 도달하기 위해 참으로 먼 길을 돌아왔다. 그런데 그 우회로가 참으로 흥미로웠다. 서로 담을 쌓고 소통이라고는 불가능할 것만 같아 보이는 동양과 서양의 조류가 어느 순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항로라는 인물을 기억하는가. 위정척사파라고 하면 아마도 많은 이들이 무릎을 ‘딱’ 칠 것이다. 무조건적인 개항 반대는 결과적으로 국권의 상실로 이어졌다며, 많은 이들이 위정척사파에 대해 시대착오적이라는 평을 내린다. 결과론적으로 보자면 어느 정도는 맞는 이야기인데, 그럼에도 놓쳐서는 안 되는 중요한 부분이 하나 있다. 저자는 이항로에 대해 ‘서양인들이 통상을 함에 있어서 인간의 가장 절실한 욕망인 재화와 성의 상품화를 앞세움으로써 윤리를 크게 어지럽힐 것이라고 내다봤다’고 말했다. 인간보다 물질이 앞서는 서양인들의 사고에는 도저히 동의를 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 후에 저자는 많은 내용을 덧붙인다. 처음부터 유럽이 물질주의를 지향하지는 않았음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고대 그리스 철학과 기독교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이기심에 대해 이야기를 털어놓은 동, 서양의 학자 어느 누구도 그것이 오늘날과 같은 물질만능주의를, 조금 포장을 해 보기 좋게 한다면 자본주의를 잘 굴러가게 만드는 원천이 되어줄 것이라는 식의 사고는 하지 않았다. ‘리바이어던’을 통해 오로지 투쟁만이 존재하는 악한 인간의 본성을 떠올리게 만들었던 홉스조차도 극도의 이기주의가 발현되지 않도록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법률에 의거해서 각자의 이익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던가! 이는 동양의 대표적인 성악설 추종자(?)인 순자에게도 동일하게 발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는 가정으로부터 국가질서와 사회질서의 정당성을 발견했다. 그런데 이들의 가정보다 현실은 희망적인 듯하다. 오히려 현실에서는 최후통첩 게임Ultimatum Game에 임했을 때 많은 이들이 경제이론의 예측과는 다르게 공평성을 좇아 행동했다. 그렇게까지 사악하지만은 않은 게 인간이다. 그런데 왜 막무가내로 타인을 외면한 채 제 이익만을 추구해야 한다고 사회는 부르짖는단 말인가. 그렇다면 우린 어떻게 해야 하는가. 사회적 자본과 민주적 행정, 인권 등 이제까지 오로지 화폐에 입각해 평가해오던 사회를 바라보는 기준을 다양화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다시 고전으로 돌아가서, 지난날 많은 동, 서양의 학자들이 주장한 바대로 행해야 한다고 말이다. 어느 누구도 ‘돈이 최고’라 부르짖지 않았고, ‘돈을 위해 네 이웃을 배반하라’ 가르치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너무도 간단한 진리를 망각한 채 속도 내어 달리는 데 급급하다 보니 그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조차도 잊고 살았다. 하지만 이제까지 그러했다 하여 앞으로도 계속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세상을 살다간 많은 이들이 남긴 이야기로부터 교훈을 발견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역사를 그리고 철학을 공부하는 이유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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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월 (2) 1. 사회진화론(social darwinism)은 다윈의 생물학적 진화론에서 발전했다. 능력자는 경쟁에서 살아남고 무능력자는 밀려난다는 생각이다. 근대적 합리성이라는 표현으로 치장된다. 2. 나만 잘 되고 잘 살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참으로 위험하다. 그러기 위해서 타인의 삶이 그만큼 궁핍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살아가는 삶. 동서고금의 수많은 사상가들은 모든 개인과 공동체가 어떻게 하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는지 많은 사색과 고민을 했다. 그것이 바로 각종 경전, 철학, 사상으로 전해 내려오는 인류의 지혜다. 이를 고전이라 부른다. 3. 지은이는 이 책에서 자본주의가 탄생한 배경을 시작으로 개인과 공동체가 더불어 행복해지는 세상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4. 푸코는 근대사회에 들어서면서 하나의 담론이 권력이 되는 사회적 현상을 ‘진리의 레짐’이라고 명명했다. ‘진리의 레짐’이란 무엇인가? 시대정신을 담은 새로운 진리가 권력을 만들어 내기도 하지만, 거꾸로 권력이 진리라는 명목 아래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시키는 기능을 한다는 것이다. 이런 지식과 권력의 관계를 진리의 레짐이라고 한다. 5. 성장과 분배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 깊이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나라가 부유해지면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높아질까? 경제적 성장과 관계없이 정치적 분열과 전쟁 위협, 재해로부터의 불안감등은 경제성장과는 별개로 인간의 마음에 불안감으로 자리 잡는다. 빈부의 격차 역시 행복지수가 편중되는 경향을 보여준다. 6.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과 비판이 인간의 보편적 행복을 위한 첫걸음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을 통해 자본주의가 갈 길을 제시하는 존재는 누구인가? 지은이는 ‘지식인’이라 답한다. 문제는 이 지식인 그룹이 자본주의의 단점을 지적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자본주의를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체제로 다져 놓았다는 것이다. 7. 그렇다면 고전을 통해 본 지식인, 사상가들의 생각은 어떤가? 서양철학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철학자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칸트는 도덕적으로 옳다면 반드시 실천해야 한다는 실천철학으로 유명하다. ‘인간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성을 사용할 용기를 갖는 것이 계몽”이라는 말도 했다. 8. 이외에도 지은이는 동양사상(고전)을 통해 ‘행복한 사회를 위한’ 다양한 사상들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가 고전을 읽어야하는 당위성이기도 하다. 한비자는 무사임법(無私任法)을 강조하여 통치자가 사적인 감정을 배제하고 엄정하게 법을 집행하는 것을 이상적으로 생각했다. 당연한 것인데 그렇게 하지 못하는 통치자가 많이 있으니 이런 말도 나오리라 생각한다. 9. “주권을 가진 시민들이 평소에는 아무 말도 없이 그들의 공복인 정치인들을 주시하고 있다가, 선거 때마다 투표로써 가차 없이 포폄(褒貶)한다면, 정치인들이 주권자인 시민들을 얼마나 두렵게 여길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유위통치의 극대화를 통한 무위통치의 실현이 아니겠는가.” 10. 지은이 박성순은 단국대 역사학과 및 고려대대학원 사학과를 졸업했고(문학박사)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연구원,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연구교수, 고려대 사범대 외래교수, UCLA 한국학연구소 객원연구원 등을 역임하고 현재 단국대 교양기초교육원 교수로 있다. 박사학위 논문은 「화서 이항로의 심주리설과 척사론 연구」이고, 저서로는 『선비의 배반』. 『박제가와 젊은 그들』, 『조선유학과 서양과학의 만남』, 『한국사상사 입문』(공저), 『충남의 독립운동가․』(공저) 등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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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공부하는 인간, 호모아카데미쿠스.' 한국과 중국의 아이들을 보며 무한 경쟁에 청소년기를 보내는 것에 대해 답답함마저 들었다. 나의 학창 시절은 지금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나보다. 공부에 대한 진정한 흥미가 아니라 그렇게 하면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되어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을 것이다. 어쨌든 우리 사회에서는 공부를 해야 적어도 사람 구실을 하고 살 수 있을 거라고 하며 경쟁을 붙여 삶의 무게에 허덕이게 된다.
이번에 읽은 책은 <호모 클래식스, 고전으로 자본주의를 넘다>이다. 어제 그 다큐멘터리를 본 후라서 그런지 무언가 연결이 되는 느낌이 든다. 인간이 공부를 하는 것도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일 것이다. 자본주의의 폐단을 뛰어넘는 해법은 '고전'에 있다고 하며 고전을 공부하는 것도 연관이 있을테니 말이다. 흥미로운 마음으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이 책에서는 먼저 자본주의를 둘러싼 사상사적 배경을 소개하고 자본주의의 탄생과 현상, 성장론에 대한 검토를 논한다. 거기까지 읽다보면 자본주의 사회라는 것이 좋게만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인간'에 대한 이해도 함께 할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이타적 유전자에 대한 언급이라든지 호혜적 인간 부분에 이르러서는 전통적 경제이론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불가능한 면이 있다.
다음 문장이 인상적으로 마음에 남는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고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인간의 욕구 속에서 참 욕구를 숨겨버리지 말고, 허위 욕구를 인식하고 줄여나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참 욕구가 지배하는 체제에서 경제적 자유란 경제로부터의 자유, 즉 경제 세력들과 관계들에 의해 통제당하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매일의 생존 투쟁으로부터의 자유, 생계를 꾸려야 하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그와 반대로 허위 욕구는 억압 속에서 특수한 사회적 이해들에 의해 무겁게 짐 지워진 것들이다. 즉 경쟁, 공격성, 비참함, 불의를 영속화시키는 욕구이다.
제리 멀러, 서찬주 김청환 옮김, <자본주의의 매혹> 휴먼앤북스, 2006년 493-494쪽
(호모 클래식스, 고전으로 자본주의를 넘다 69쪽)
이 책의 결론에서도 그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처음으로 돌아가는 일은 '자본주의 레짐'에 대한 각성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하루하루를 적당히 살아가는 데 필요한 허위 욕구 속에 안주하지 말고, 인간으로서 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묻는 참 욕구에 대한 해답을 스스로 구해야 한다. 그 출발점에는 항상 인성론에 대한 깊은 성찰이 기다리고 있다. 인성론에 깊은 통찰과 영감을 제공하는 역사학과 고전 학습의 부활이 더욱 절실한 이유이기도 하다.
(호모 클래식스, 고전으로 자본주의를 넘다 176-177쪽)
세상의 한 면을 부각시켜 보지 않으려고 하지만, 너무 물질만능으로 흘러가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하지만 인간의 기본적인 이타심이나 호혜성 부분에서는 충분히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우리는 누구나 보다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 싶어하고, 보다 인간적으로 살고 싶어한다. 허위 욕구만이 세상의 전부라 여기지 말고, 인성론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기 위해 고전 학습에 좀더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이 책의 결론을 나 자신부터 실천에 옮기고 싶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