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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머 소설이라는 소개를 보고 오쿠다 히데오스러운 웃음 폭탄을 기대했건만. 예상 밖의 무거운 분위기와 소재의 난해함에 몸이 움츠러들고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그래서 이게 대체 유머 소설이 맞는지 궁금해서 유머 소설의 사전적 의미를 뒤적였다.
생활이나 인간성에서의 부정적 측면을 가볍고 악의없는 웃음으로 그려 낸 소설. 곰곰이 생각해보니 에피소드 여러 부분을 가볍고 악의없이 서술하려고 노력한다는 모습이 보인다는 점에서 이 책을 유머 소설로 부르는 것은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도 간혹 웃음도 터져 나오긴 했다. 쓴웃음.
어떤 장면에서 웃음을 유발할 수 있었는지 되짚어보자면 개인적으로는 ① 바르셀로나 점쟁이가 점지해준 인연. ② 여자에게 습격당해 빈털터리가 되는 줄리언 트레스러브. ③ 유대인을 저주하기 위해 걸어놓은 베이컨을 맛있게 구워먹은 헤프지바. ④ 가루지기도 아니면서 남성의 회복이 단순한 성기의 비교로 이루어진다는 것들이다.
2. 영국의 주류사회. 메타포스러운 BBC로 통칭하여 묘사되는 곳에서 뛰쳐나와 영화배우 몇몇을 닮은 얼굴로 대역모델이라는 직업으로 근근이 삶을 이어가는. 직업까지도 은유적인 설정. 즉, 잉글랜드 국적의 백인이라는 정체성을 순순히 포기했음을 의미하는 경계인. 주변인. 아웃사이더로 불릴만한 줄리언 트레스러브는 명실공히 영국사회에서 소외된 영국인이다.
애초에 가족이 없었던. 그래서 자신의 가정을 만드는 것에도 익숙하지 않은. 그렇게 두 이복형제를 자식으로 두었음에도 묵묵히 나홀로 사는 그에게 작가는 의지할 조그마한 작은 방을 딱 한 군데 지어준다. 그것이 다름 아닌 유대인계 영국인 사회였다는 점에서 작가는 주변인의 시선을 온전히 유대인들의 문제에 쏠리게 한다.
나 역시 유대인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서, 그들의 문제(Finkler Question)를 바라보고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따른다. 다만 이스라엘의 역사와 현재도 발생하는 하늘만 열린 감옥. 가자 지구에서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뿌리 깊은 갈등과 몇 년 전 이 지역에 전쟁이 발생했었던 기억들을 유추해 볼 때, 이 소설은 아마도 이스라엘에서 발생하고 있는 지역·문화·인종 간의 갈등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한 비 이스라엘계의 유대인들의 하나의 관점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3. 소설 속으로 좀 더 들어가보면, 의지할 곳 없던 줄리언을 유일하게 받아주었던(친구. 샘 핑클러,그리고 친구이자 멘토. 리보르 세프치크 , 그리고 애인 헤프지바) 영국 유대계의 작은 사회에 편입되어 유대인들의 소속감을 느끼며 안정을 찾으려 한다.
그리고 줄리언이 유대인을 통칭하여 일컫는 단어. 이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핑클러는 줄리언과 반대로 유대인 사회를 탐탁치않게 여긴다. 불륜을 저지르며, 부끄러운 유대인 모임을 만들어 활동한다. ‘부끄러운 유대인’은 이스라엘 인들이 팔레스타인 지방을 소유했던 아랍인을 무자비하게 공격한 것에 대한 사죄의 의미로 결성된 단체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이 두 사람의 문제(물론, 리보르 헤프지바의 여정도 포함)를 함께하는 소설의 결말은 다소 보수적인 쪽으로 기운다. 작가는 자신에게 지워진 한계를 초월하려는 유·무형의 노력을 무참히 짓밟는다. “당신은 어쩔 수 없는 영국인이고, 유대인에 불과해!”라고 말이다. 그들에게 진보는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사건은 이스라엘 그들만이 풀 수 있는 숙제라고 엄숙히 경고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멘토 리보르가 느꼈을 실망감이 더욱 크게 느껴진다.
유대인의 사회로 편입하고자 했던 줄리언에게서 반유대주의자의 전형적인 특성이 나타나고, ‘부끄러운 유대인’의 단체를 이끄는 샘 핑클러의 의도가 순수한 것이 아닌 단순히 자신의 인지도를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서 사용되는 것도 모자라 본질적으로 핑클러는 ‘부끄러운 유대인’이 비난하고자 했던 바로 그 부끄러움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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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글이든 읽는 사람에 따라 아주 좋은 작품이 될수도 있고, 그렇고 그런 작품이나 뭐 이런책이 다 있어 하는 작품이 될수도 있다. 이책은 제목과 표지그림이 참 코믹스러웠다. 이세상은 남녀 두성으로 나뉜다. 그중에서 남자, 또 영국 남자의 문제라고 명명지어진 책이다. 영국남자는 다 신사로 규정되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었건만, 그들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충분히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목이었다. 거기다 쟁쟁한 작가들의 작품과 함께 영국내 최고권위의 문학상이라 일컬어지는 맨부커상 수상작에 올랐다가 한시간도 채 안걸려 수상작으로 결정되었다는 소개글은 무슨일이 있더라도, 이 책은 꼭 읽고야 말리라 하는 욕심까지 내게 하기 충분했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이 책을 너무 높은 기대치로 읽었나 보다. 그렇기에 글쎄~라는 느낌을 갖게 했다. 문화적차이때문인지 몰라도 어떤부분때문에 유머러스한 소설이라 했는지를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설정과 소재는 참 마음에 들었다. 항상 소설의 주인공이나 화자가 되는 경우는 여자가 태반인 경우가 많았는데, 이 책은 런던에서 사는 3명의 남자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줄리언이 샘과 리보르에게서 진정 부러워했던 것은 어떤것일까? 그 둘을 질투하고 또 그들의 삶을 소망했을지 모르겠으나, 그들같은 삶이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게 미연에 방지했던 것은 그 자신이 아닐까 싶었다. 책의 서론부분에 나오는 행복을 아예 몰랐던 쪽과 나중의 상실감은 차치하고 행복하려 노력하며 사는 쪽이 좋았을까에 대한 질문을 나자신에게 던져봤다. 상실감은 아마도 행복했던 감정에 비례하여 더 크고 높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해야 할 권리가 우리에게 있고, 행복한 삶을 누려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줄리언은 상실에 대한 두려움을 너무 크게 부각시킨채 살았기에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랑도, 또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호의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기에 그는 또다른 상실감을 느낄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인생말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리보르는 아내 말키의 죽음을 항상 초월하지 못한채 그녀와의 삶을 추억하고 그녀를 잃은 상실감을 계속 끌어안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줄리언에게는 무한한 질투의 원인을 제공했다. 줄리언이 되고자 했던, 그리고 갈망했던 '핑클러', 정작 줄리언의 질투이자 이상을 제시했던 샘과 리보르는 '핑클러다움'에 대한 회의와 반감과 증오를 가지고 있었으니, 참 아이러니컬 하기도 하다. 난 이 책을 읽으면서 유대인에 대해 더 많은 궁금증을 갖게 되었다. 유대인의 교육방침과 탈무드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숱하게 들었던 유대인부모처럼 교육하라, 탈무드를 몇번이고 읽어라를 기억하기에, 과연 그들의 삶과 사고방식이 어떠했기에 라는 의문부호가 계속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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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만큼 다른 나라의 것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없는 것 같다. 인간의 감정이야 만국 공통의 것이긴 하지만 보다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감정인 슬픔과는 달리 유머의 방식은 그렇게 단순한 것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식 유머, 영국식 유머라는 말을 흔히 하는 것만 보아도 나라마다 웃음에 대한 포인트를 잡아내기가 쉽지는 않아 보인다. 어디 이뿐이랴. 문화, 성별, 인종, 나이에 따라 받아들이는 유머는 모두 다 다르다. 요새 개그 프로를 보며 시끄럽다고만 하시는 부모님들을 떠올린다면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결국은 이런 것이다. 외국 영화관의 한 장면을 상상해 보자. 분명 영화는 슬픈 장면인 것 같은데 관객들은 그걸 보며 웃고 있는 것이다. 하워드 제이콥슨의 『영국 남자의 문제』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43년 부커상 사상 최초의 유머 소설!”이라는 띠지의 글귀가 무색할 정도로 책을 읽다가 웃게 되는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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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부커상 수상작들에 대한 사랑은 이언 매큐언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악마적인 글쓰기로 유명한 그의 작품(은 또 언제 출간되는 걸까요. 흑흑) 은 평소 저의 어두운 기운을 싫어하는 성향과 잘 맞지 않았어야 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한 후 바로, -이건 운명이야!-를 느꼈다고 할까요. 그 후 이언 매큐언에 대한 애정이 깊어짐은 물론 부커상 수상작이라 하면 무조건 찾아 읽고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얼마 전에 읽은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도 결코 쉽게 읽어내거나 숨겨져 있는 의미를 단박에 알아차릴 수 있는 작품은 아니었지만 무척 인상적이었고 여전히 제 가슴 한 구석에 남아있습니다. 비록 이언 매큐언의 애정선에 이르지는 못했지만요. 때문에 [영국 남자의 문제]를 선택한 이유도 작가의 이름을 오래전부터 알았(을리 없습니다;;)다거나, 작품이 재미있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었다거나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부커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 때문이었답니다.
세 명의 영국남자들이 있습니다. 나이가 무척무척 많아요. 90대인 리보르, 유대인 핑클러, 여자들과의 관계가 잘 진행되지 않는 트레스러브. 핑클러는 영국 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유대인이고 리보르는 90대에 최근 아내를 잃었으며 트레스러브는 얼마 전 강도를 당했습니다. 그런 그들의 공통점은 아내가 없다는 것. 그들은 서로 모여서 지난 날을 떠올리며 인생에 대해 생각하고 과거의 씁쓸한 추억에 잠겨 살아가죠. 그런 트레스러브의 일상에 여자라고 생각되는 강도가 등장합니다. 강도가 자신을 폭행하고 물건을 강탈해가며 내뱉은 말,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집착하며 알아내려 애쓰는 그의 모습과 유대인들에 대한 이야기가 심도있게 진행됩니다.
이 작품의 띠지에는 -43년 부커상 사상 최초의 유머 소설-이라는 선전문구가 쓰여 있어요. 그래서 '어디 얼마나 웃긴가 보자! 마음껏 하하호호 웃어주겠어!' 결심했는데, 저와 같은 생각으로 책을 펼쳐드신 분이라면 아마 다 아실 겁니다. 이 작품이 우리의 예상만큼 그리 코믹하지는 않다는 것을요. 오히려 굉장히 철학적이고 생각지 못했던 부분까지 세심함을 발휘한 작가님 덕분에 책의 내용에 집중해야 할 정신이 가끔 안드로메다로 날아가곤 했다는 것을 고백하렵니다. 재미,도 잘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 동안 제가 읽은 책들이 너무 쉬웠거나, 서양의 유머코드와 우리의 유머코드가 그리 맞지 않는 것일지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끝까지 이 책에 묶어놓은 요인 또한 이 책이 부커상 수장작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조만간 이 작가의 새로운 작품이 출간된다고 하는데, 그 책을 읽고나면 이 작가님에 대해 좀 더 이해하게 될 수 있으려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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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해하다. 스토리가 소설을 이끄는 게 아니라 세 남자의 심리가 서로 엮여가면서 소설이 전개된다. 그런데 그 심리가 일목요연한 게 아니라 매우 복잡하게 엉켜 있다. 그
심리를 정밀하게 따라가는 것은 그냥 간단히 소설을 읽는 수준을 넘어선다. 문장도 결코 쉽지 않다. 대화가 누구의 것인지 다시 돌아가 읽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 과정을 통해서 소설을 더 면밀하게 읽을 수 있다. 또 그게 등장인물의 특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나의 능력 부족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쉽지 않다는 판단이 삭제되지는 않는다.
세 영국 남자가 주인공이다. 가장 중심인물이랄 수 있는 트레스러브는
마흔아홉 살의 중년이다. 변변찮은 직업을 전전하고, 여자도
전전한다. 결혼은 한번도 하지 않았지만, 아들은 둘이다. 그 두 아들은 거의 나이가 엇비슷하지만 엄마가 다르다(상황을 짐작할
수 있지 않은가). 핑클러는 트레스러브의 학교시절부터의 친구다. 미디어의
철학자로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유대인이지만 유대인이라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리보르는 트레스러브와 핑클러의 학교 시절 선생이었고, 지금은 친구다. 체코에서 망명한 유대인이고 할리우드 스타를 비롯해 유명인들을 많이 알고 지냈다.
“여자들이 떠나버리자 그들은 다시 젊은 남자들이 되었다.” (38쪽) 핑클러와 리보르는 상처(喪妻)하고, 트레스러브는
늘 여자가 떠나가는 형편이었다. 그런 상실감이 소설 전편에 바탕에 깔린다. 그런 배경에 소설 전편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는 유대인과 시오니즘, 이스라엘에
관한 것이다(홍익희의 『세 종교
이야기』를 읽은 게 무척 도움이 된다). 유대인인
핑클러는 ‘부끄러워하는 유대인’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고, 유대인이 아닌 트레스러브는 유대인이고자 한다(“세상은 유대인을 죽이고
싶어하는 살마과 유대인이 되고 싶은 사람으로 나뉘었다.”, 331쪽).
이 기묘한 엇갈림이 서로 충돌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양산한다.
피해자인 유대인이 가해가가 되어 있는 상황이 이 기묘한 엇갈림 속 충돌을 만든다.
개인적 상실감과 역사적 이질감이 서로 엉켜 이 세 등장인물은 흔들린다. 그 흔들림을 끝까지
붙잡고 다루고 있다는 점이, 아마도 이 소설에 ‘부커상’이라는 영예가 주어진 게 아닌가 싶다. 또한 유대인에 관한 문제만도
아니라 더 확장되어 인류 보편적인 문제 문제로 이어지기도 한다. 당연히 영국 남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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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로그에 글을 올린지 한 달 여, 이 책을 집어들고 읽기 시작한 지 두 달 여가 지나갔다. 집안 여기저기, 직장의 여기저기 책을 던져두고 잡히는 대로 읽어서 이리 오래 걸렸을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내가 게으르기 때문이다. 뭐, 특별한 사건도, 특별한 결심도 없이 사는데다 한 달 가까이 허리가 아프다는 핑계로 집에서는 마냥 누워있다보니 또 그러다 잠이 들어 책 읽는 데 시간을 많이 쓰지 않았으니 꽤 재미있는 책이 진도가 나가지 않았던 것이다. 읽어보면 정말 재미있다. 물론, 나와 같은 집에 사시는 분은 이런 말에 혹해서 가방 안에 넣어 갔다가 바로 근무 끝나고 돌아와 책을 내놓으며 "이게 뭐 재미있어? 이번에도 또 속았네"할 그런 재미 말이다. 어디까지나 나의 주관적인 재미.
중년의 남자 두 명과 노년의 남자 1명이 주축이 되어가며 소설은 진행되고 그 중 유일한 비유대인인 줄리언 트레스러브라는 남자는 늘 자신이 유대인이 되기를 갈망해왔다. 그건 유대인이라는 것은 그에게있어 잘나가는 친구에 대한 선망을 포함하기도 하고 자신의 별 특징없는-심지어 그의 직업은 대역배우다- 삶에서 벗어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두 여자에게서 아이들을 낳고도 속박이 싫다며 결혼하지 않았던 사람이 정작 유대인이 되고 싶어하다니. 유대인 흉내를 내고 유대인이 되기위한 책을 읽고 유대인 여자를 사귀지만 그들속에 편입되지 못하는 자신을 알아채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그가 유대인으로 오인받아-아니, 오인받았다고 그가 오인한- 공격당한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한편 그가 그리도 선망하는 유대인으로 살아가는 그의 친구 핑클러는 책 쓰고 TV에 패널로 나가 현학적인 말투로 상대방을 눌러버리면서 돈도 잘 벌면서도 지식인으로서의 자신의 입지를 단단히 하는 차원에서 자기는 결코 팔레스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이스라엘에 동조하지는 않는 사람이라는 걸 내세우기 위해 '부끄러운 유대인들'이라는 단체를 만든다. 하, '는 유대인이지만 그냥 그런 유대인이 아니란말야!'하는 식이다. 그도 잘난척하며 보통의 유대인이 아니라고 자부하는 남편을 비웃으며 친구인 트레스러브와 불륜(?)관계였던 부인과 사별했다.
그리고 늙은 리보르가 있다. 동구권에서 유대인에 대한 나치의 광기를 보았고 '공산주의자의 탄압'을 피해 영국으로 이주한 리보르. 피아노를 치는 부인 말키의 죽음 이후 그녀에 대한 그리움으로 살아간다.
마지막에 유대문화박물관을 개장한 유대인 헤프지바라는 여자가 나온다. 트레스러브와 잠깐 살다가 헤어지는. 그녀의 박물관 개장을 둘러싸고 여전히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놀림받고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영국과 세계의 분위기, 그리고 특히 팔레스타인 문제를 둘러싼 유대인과의 대립과 갈등이 섞여있는 이야기. 그녀는 이렇게 생각한다. "어떻게 증오에 대한 두려움이 증오를 만들어내지?". 여기에 대한 해석으로 그녀가 내놓는 이 답은 인간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보여준다. "하지만 '포에토르 유다이코스'의 기원이 전혀 불길한 것이 아니라면? 둥세 기독교도가 뿔이 나고 덥수룩한 유대인의 몸에서 맡은 냄새가 그저 공포의 냄새라면? 만인 그렇다면-당신에게서 나는 공포의 냄새에 자극받아 당신을 죽일 사람들이 있다면-반유대주의라는 개념 자체는 혐오를 유발하는 최음제, 다시 말해 성적 자극제일까?" 아, 강자가 약자를 밟고 괴롭히는 것을 보며 어찌 인간이 저럴까 생각했었는데, 어쩌면 이것이 답일 것 같다. 괴롭힘에 대한 두려움을 즐기는 것은 아닌가. 학교에서 아이들의 괴롭힘이 작고 가난한 아이들에게 집중되는 것은 지레 겁먹은 그들의 고통스런 모습에 자극받은 것은 아닌가. 그렇다면 인간은 진짜 원래 그런 존재인가. 아마 그럴지도.
멋진 문장이 많이 나온다. 39쪽 - 전화로만 그의 나이가 느껴졌다. 마치 전화가 목소리와 관련이 없는 모든 것-코미디, 허세, 춤추는 손-을 걸러내듯이. 남은 것은 낡고 찢긴 티슈페이퍼 같은 후두뿐이었다. 73쪽-포커 판에서 그는 비탄으로도 해내지 못했던 일을 할 수 있었다. 자신을 잊어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206쪽-마치 다른 그 무럿도 아닌 유대적인 수치심 안에 더 높은 가치가 자리잡은 것처럼 그 안에 인종주의도 내포되어 있음을 한두 회원이 알아차렸지만, 257쪽-심장이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어는 인위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결국 말할 것이 아무것도, 전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343쪽-그는 신이 다른 민족과는 달리 유대 민족만을 보호하고 어떤 창조물보다 가혹하게 유대 민족을 벌주면서 여전히 유대 민족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졌다는 믿음에 수반되는 경험 없는 순진함과 더불어 세속적인 눈빛을 가졌었다. 유대인의 공통된 유아론. 그들은 유리하게 흥정을 하면서도 계속되는 경이에 눈을 깜빡인다. 그런 사람들. 345쪽-낯선 사람을 기억했다가 물을 주고 스스로에게 행하는 대로 다른 사람에게 행하는 것을 최고의 미덕으로여겼던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말만 듣는 민족이 되었다. 399쪽- 그는 철학자였다. 명칭이 그에게는 중요했다. 그래서 그의 무관심에는 동기가 없었다.
이 책으로 새롭게 알게된 사실들이 많다. 프라하에서 '1차 창문 투척 사건(얀 휴스가 화형당한 후 그의 추종자들이 지방의회 의원 일곱 명을 창 밖으로 던져 죽게 한 사건)-과 ..2차 창문 투척 사건(신교 박해에 항의하던 신교도들이 구교도들을 창밖으로 던져버린 사건으로 30년 전쟁의 원인이 되었다) === 놀랍다. 32쪽이다. 크리스탈나흐트(1938년 11월9일 나치 대원들이 수만 개의 유대인 가게들을 약탈하고 250여 개의 유대교 사원들을 방화한 '수정의 밤'사건. 유대인 대학살의 전주곡 같은 사건 ==125쪽
도서관에서 전화통화하는 여자의 목소리가 왜 이리 거슬리지? 허리가 낫지 않으니 나의 인내심도 줄어들고 있다. 허리도 아프고 어깨도 아프다. 이 책의 진짜 중요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402쪽부터 403쪽으로 이어지는 핑클러의 부인인 타일러의 생각을 들어볼 일이다.
아 참, 오자는 하나도 찾지 못했다. 고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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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올해 최고의 소설', '2010년 부커상 수상작'에서 알아봤어야 했다. '43년 부커상 사상 최초의 유머 소설'에서의 유머가 우리가 흔히 개그 콘서트에서 기대하는 그것과는 오히려 정반대의 지점에 있는 것일수도 있다고 미리 눈치라도 챘어야 했다. 책을 읽으며 '하하' 웃을 수 있는 부분을 기대했다면 애초에 책을 덮는 편이 나을 수도 있겠다. 더욱더 즐겁게 시간을 때우려는 소설로 이 책을 선택했다면 '즐거운' 지점을 찾다가 책을 끝낼 수도 있을 것같다.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부커상'에서 알아봤어야 했던 것이다. 이 책에서 세 명의 영국 남자가 나온다. 정확하게 말하면 2명의 유대인과 1명의 비유대인이다. 줄리언 트레스러브와 샘 핑클러는 친구이고 리보르 세프치크는 이들이 그래머 스쿨에 다닐 때의 유럽 역사 선생님이었다. 졸업 후에도 꾸준히 연락하던 이 세 남자들은 리보르와 샘이 각자의 부인과 사별하면서 자주 만나 대화를 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샘과 리보르는 유대인인데 이스라엘과 유대인에 대한 의견이 서로 달라 논쟁을 벌이곤한다. 그러나 줄리언은 그 대화에 낄 수가 없다. 유대인이 아닌 그가 할 수 있는 답변이라곤 얼버무리는 것 밖에 없다. 그리고 살면서 유대인을 만난 것은 샘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유대인은 핑클러같다고 생각해서 유대인을 핑클러들이라고 부른다. 물론 혼자서... 잘나가는 철학자이자 저술가인 샘과 경쟁관계-그러나 그 상대는 될 수 없는-에 있는 줄리언은 항상 어떤 결핍을 느끼지만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날 줄리언이 길을 가다 '여자'에게 자신의 물건들을 '털리고' 그 여자가 자신에게 했던 말들을 계속 곱씹던 과정에서 자신이 '유대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시작하는데... 역시 이 세 남자들의 대화와 생각이 주를 이룬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1장을 세 번은 읽은 것같다. 그리고 나서 저자와 번역가의 문장에 익숙해지면서 책이 좀 쉽게 읽혀졌다. 이 세 남자의 대화나 생각이나 책 전체를 아우르는 문장들이 쉬운 편이라고는 장담하지 못하겠다. 오히려 곱씹어 읽으면서 그 안에서 영국인들의 유머와 '위트'를 찾아낼 수 있다고 할까. 책이 전해주는 위트는 결국 위 세 남자의 인생을 들여다보며 우리가 느낄 수 있는 다양한 감정들에게 대한 단어가 아닐까 싶다. 40년 가까이 살면서 경쟁 상대에 대한 묘한 감정 때문에 오히려 자신의 정체성을 찾지 못한 남자. 타인에게는 잘 나가고 자신감 넘쳐보이는 사람이지만 사실 공허한 인생에 힘들어하는 남자. 결국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어떻게 살아가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을 이 책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일까?! 처음에 예상했던 그런 재미는 아니었지만 책을 읽으며 꼭꼭 씹어먹는다는 느낌을 오랜만에 가져본 책이었다. '지적이고 위트있는' 책에서 유머는 기대하지 말고 생각하는 힘을 기대하고 읽어보자. 나도 그들 중 한 명에 감정이입하고 책에 몰입해볼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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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읽히는 소설들을 좋아하지만, 저명한 권위의 상을 수상한 수상작들을 만나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다. 술술 읽히는 장르소설과 작품성, 문학성까지 추구하는 수상작들은 아무래도 거리감이 있기 마련인데, 요즘에는 재미난 작품들도 제법 있어서 수상작이라고 해서 거부감을 가질 일은 많지 않았다. 영국 최고의 권위있는 상이라는 부커상 수상작, 영국 남자의 문제, 이 작품은 살만 루시디, 이완 맥큐언, 마틴 에이미스와 같은 쟁쟁한 작가들의 작품이 올라 있었지만 이 책이 수상작으로 결정되는 데에는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라는 출판사 소개글과 43년 부커상 최초의 유머 소설이라는 띠지의 멘트가 나를 더욱 이끌었는지 모르겠다. 작품성과 유머까지 겸비한다면 읽는 재미까지 쏠쏠하겠구나.
그런데, 이 책을 펼쳐들고 다 읽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내게는 그 영국인들의 유머 코드가 공감이 되지 않았나보다. 어디에서 어떻게 웃어야할지를 몰라 난감했달까.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었던, 그러나 책 중간에 보니 거의 쉰 무렵이 되어가는 줄리언 트렌스러브와 성공적인 삶으로 정착했다는 샘 핑클러, 그들의 은사였던 리보르 셰프치크, 이 세 사람의 이야기가 진행이 된다. 주로 줄리언 트레스러브의 시선에서 진행이 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남은 두 사람은 유대인이지만, 트레스러브는 비유대인이다. 그는 샘이 가진 능수능란한 말재주서부터 다른 사람 (특히 자신)을 홀리는, 또는 압도하는 샘 핑클러의 삶을 동경한다. 그리고 급기야 스스로 유대인이 되고 싶어하고 유대인 여자와 관계를 맺고 싶어한다.
어려서부터 유대인이 무엇인지 궁금해했었다. 그냥 특정 민족이라 하기엔 너무나 민족 색깔이 강하다고 해야할까. 특정 민족에 대한 테러와 억압이 이토록 지나칠 수 있을까. 유대인이 머리가 좋고 돈이 많다는 일반적인 통설조차 이 책 속에도 그대로 나타났다. 트레스러브의 두 아들들이 아버지의 우유부단하면서 유대인 동경하는 삶을 비웃으며 하는 이야기였다. 그럼 우리도 유대인일까?
외모는 유명 연예인들을 닮은 듯한, 그러면서 어느 누구도 닮지 않은 모호하지만 잘생긴 얼굴의 트레스러브, 그는 어느 여자와도 정착을 하고 싶어하나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여인들 말고, 자기 생각에 동정할 수 있을, ( 나 아니면 누가 데려갈까 싶은) 그런 여자들만 골라 사랑을 하고 결혼하고 싶어하였다. 그러나 여자들은 그런 트레스러브에세 넌덜머리를 내고 떠나간다. 다만 그의 아이는 임신하여 혼자 힘으로만 키운다. 그런 여성이 두명이나 있었다. 한번도 결혼을 하지 못한 트레스러브에게는 자신을 비웃는, 두 명의 전 여자친구와 두 명의 배다른 아이들이 있었던 것이다.
죽은 아내를 잊지 못하고, 고령의 나이에도 끝없이 아내를 갈망하고 그리워하는 리보르. 그리고 정원에서 퇴비를 주다가도 바로 디너파티에 가도 될만큼 눈부시게 치장하고 집안일을 하던 아내 타일러를 두었던 샘 핑클러, 핑클러 역시 아내를 앞서 보내고 말았다. 아내를 잃은 두 남자와 그런 경험조차 해보지 못한 트레스러브.
트레스러브는 심지어 여자 강도에게 당신, 주 라는 말을 들으며 강도를 당했다. 혼자서 그로 인해 열등감과 유대인이 아닌 자신을 유대인으로 착각한 것 같은 강도의 발언에 무수한 의미를 부여하며 심오한 사색에 빠져든다. 그래, 이 남자 도저히 사랑할 수 없을 것 같다. 도대체가 자신의 삶이란게 있어야지 말이다. 전 여자친구들의 신랄한 비난을 들으면 그가 불쌍해지기도 했지만 맥을 못 추는 병자같은 환상에 빠져있는 그를 들여다보고 있는 내내 우울한 기분마저 들었다. 회색 영국인, 비가 많이 와 늘 우울한 그들의 분위기를 그냥 그대로 읽은 느낌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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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한번도 하워드 제이콥슨의 책을 만나본적이 없었다. 세명의 영국남자가 주인공이다. 그런 어느날 트레스러브가 유일하게 자신의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들린 바이올린 가게에서 사건을 겪게 된다. 작가 하워드 제이콥슨은 분명 상실감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했던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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