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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남면에서 시작, 여수,광양,보성의 수많은 섬들을 여행한다. 수천명이 살고 잇는 금오도 등부터 할머니 한분이 잇는 수항도까지... 아주 작은 섬의 역사도 상세하게 설명해 준다. 섬이름 다 적을 수도 없다. 조발도/횡간도/자봉도/백야도/여자도/초도/부도/화태도/나발도/개도/적금도..... 일제시대 일본사람들 거주기록까지.. 신라와 조선시대의 기록. 수많은 생선과 갮벌의 싱싱한 해산물들이 생생하게 소개된다.
각 섬마다 살아가는 방식과 주수입이 다르다. 제일 돈되는 것들은, 김양식, 문어잡이, 역시 멸치.가마솥에 쪄서 말리고, 바지락, 글구 전어...요것들이 돈 된다. 가두리 양식은 요즘 힘들단다. 사료값이 kg당 만원인 데 우럭 1kg 도매가 2,000원.. 인건비는 빼고. 최소 수온이 8~9도는 되야하는 데 6~7도가 지속. 아까운 참돔,줄돔,감성돔 다죽고..
해삼은 입으로 꽁지를 따서 쭉 내장을 훓어내고 한 입에 짭조름하게.. 사도와 추도는 본업은 어디가고 모두 3546개의 공룡발자욱사업을 관광자원화 기대에 베풀고 과거 , 1억년이상 전이지만, 한반도는 중국과 연결되 잇엇고 섬들은 호수엿고.. 지질학까지 등장한다.
거문도의 성대로 끓인 닥대매운탕. 군침이 돌고. 참기름에 흰쌀밥에 꼬막을 넣은 꼬막비빔밥 정점을 찍는다. 참꼬막,새꼬막..헤모글로빈,똥꼬막... 벌교 꼬막 연간 3000톤, 천억의 수입을 준다. 바지락의 수요를 못맞춰 연간 10여만톤 중국과 북한에서 ㄱ수입하구. 갯지렁이 종류도 많다. 돔낚시는 반드시 홍무시, 무시 충 , 일본말일 것이다. 붉은 갯지렁이 피를 좋아하고, 전문적인 예기들. 여수 갓김치에 막걸리, 삼치 와 학꽁치회에 바다를 바라보면 마시는 소주 한잔 정말 죽인다..... 생선에 미친 일본사람들이 타을 냇던 해양자원 고양이섬 묘도에는 서씨는 살수 없다는 우수운 예기도 있고.
거기다가 말로만 듣던 방법, 안강망, 저인망, 결국 일본에서 배운 거지만, 그림을 통해 상세히 어떤 어업인가도 설명해 준다. 나병의 소록도..
그 와중에 개발과 보존에 대한 갈등, 광양제철소. 이순신대교.육지와 연결되면서 야박해져 가고 세속화되가는 섬마을... 전체 섬의 60%는 무인도...
이 책 한권이면 끝난다. 여행가이드북+ 섬의 역사, 관광 point, 먹거리추천 가득하다. 역사와 일제시대 발전된 일본의 수준등 가득하다. 재미만점. 바다는 요술주머니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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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썩철썩. 소리만 놓고 보면 걱정할 건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어마어마한 인파가 몰려 하선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됨에 따라 멀쩡하던 나의 속은 서서히 뒤집히기 시작했다. 이게 그 말로만 듣던 뱃멀미인지, 결국에는 반 즈음 탈진한 상태가 될 무렵 겨우겨우 육지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고작 30분의 항해였다. 그 날 이후로 배에 오르는 게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최근에야 대부분 다리가 놓였으니 차를 타고 들어가면 된다. 몇몇 큰 섬의 경우 꾸벅꾸벅 졸다 보면 여기가 섬인지 육지인지 헷갈리기조차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섬이라 하면 느낄 수 있는 이유 모를 낭만은 여전하다. 우리나라에는 참으로 많은 섬이 있다. 그냥 넋을 놓고 지도를 바라만 보아도 어마어마한 수의 섬이 눈에 들어오는데, 지도에 등장할 만큼의 크기를 자랑치 못하는 섬도 참 많을 것이다. 사람이 사는 섬과 그렇지 않은 섬까지. 비슷한 듯하면서도 서로 다른 모양새를 하고 있는 게 바로 섬의 태생적 매력이다. 저자는 많고 많은 섬들 중 일부를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지역을 보니 여수시 광양시 보성군 고흥군 장흥군 강진군 그리고 해남군. 전라남도 일대라고 할 수 있었다. 무려 20년에 걸쳐 460여 개의 유인도를 오고 간 기록이라 한다. 호기심에 발을 디뎠다 순간 사라지기 바쁜 뜨내기 여행객들과는 차원이 다른 방문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띤 것은 한때 화려했을지라도 지금은 한산하기 짝이 없는 경기였다. 도시로 자꾸만 사람이 몰리는 건 최근의 일이 아니다. 그 많은 사람들 중 일부는 섬에서도 왔을 것이다. 각종 인프라 면에서 부실할 수밖에 없는 섬 지역은 젊은이들의 발을 묶어둘 유인책이 많이 부족했다. 자녀 교육 등을 이유로 젊은이들이 빠져나가니 섬은 활력을 잃었다. 묵묵히 고향을 지키는 어르신들의 그림자만으로는 떠난 자의 빈자리를 채우기에 역부족이었다. 한때 백여 명이 넘는 아이들이 재잘거렸다는 학교는 분교를 거쳐 폐교가 되기도 했다. 마을 사람들의 공동 창고로 전락해버린 그 공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이 있다면 가슴을 쥐어뜯을 일이다. 하지만 시간을 거스르는 일은 그리 쉽지가 않다. 또 한 가지 생각난 단어가 있었으니 바로 ‘소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섬들이 개발의 수순을 밟고 있는 듯했다. 개발에 있어 가장 보편적인 것은 바로 다리의 건설이었다. 아무래도 배를 타고 움직일 때보다는 이동의 편리성 부분에 있어 어마어마한 개선을 다리는 가능케 한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주민들이 겪는 소외에 있다. 생긴 다리를 건너 들어온 것은 타지의 자본이었다.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주민들의 생활을 파헤쳤고 파괴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관광객이 많아진다 하여도 주민들이 부유해지진 못했다. 실제를 알지 못한 채 탁상공론을 펴니 그와 같은 정책이 나오는 것이라며 입을 내밀어보아도 소용이 없었다. 품었던 기대감이 실망을 넘어 절망으로 뒤바뀌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차라리 그냥 살던 방식대로 살 수만 있게 해주었더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섬에는 희망이 있었다. 한때는 서로 경쟁했을지 모르지만 결국 믿을 사람은 함께 부대낀 이웃이었다. 그들은 협동조합을 결성해 공동어업을 실시했다. 그로부터 발생하는 수익은 온전히 주민들의 몫으로 떨어졌다. 뿐만 아니라 무분별한 어획활동으로부터 어장을 확실히 보호할 수도 있었다. 다리가 놓이지 않은 경우 육지와의 유일한 교통편일 배의 운영 등도 함께 했다. 물론 그럼으로써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의 부유한 위치에 오르지는 못한다. 하지만 모든 것이 파괴되어 버린 지금에서야 뒤늦게 인위적으로 공동체를 되찾겠다며 투쟁과도 같은 행보를 보이고 있는 도시 사람들의 생활 방식에 비한다면 한 수 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쉽사리 무너지지 않을 견고한 신뢰가 섬에는 있었다. 가보지 못한 섬이 대다수였다. 아니, 이름조차도 낯설어 그 위치가 어딜지 가늠조차 쉽지가 않았다. 하지만 막연히 지녀온 낭만감은 이 책을 읽는 내내 더욱 짙어졌다. 마음은 이미 섬 어딘가를 향했다. 일상에 얽매인 몸도 조만간 떠날 날이 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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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외딴 섬은 주로 유배지로 많이 이용되었다. 제주도가 그랬으며 흑산도 등등이 그랬다. 이건 어디까지나 과거 얘기다. 지금은 섬이 가지고 있는 무한한 매력들이 많기에 여행을 떠나는 관광객도 많고 또 그곳에서 삶을 터전 삼아서 열심히 살아가는 섬사람들도 많다. 육지처럼 쭈욱 이어져 있지 않은 외딴 섬이기에 자연스럽게 그곳 섬만의 독특한 문화가 존재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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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남면 부도 주사청루 : 아가씨를 두고 술도 팔고 정도 파는 술집이다 신윤복의 <청루소일>이라는 그림이 있다. 청루에서 하루를 보내다는 의미이다. 18세기 후반 단원과 혜원은 우물가, 주막, 부엌, 행상 등 일하는 여성들을 즐겨 그렸다. 조선시대 혜민서에서 의술을 돕던 의녀가 뒤에 기생과 같은 취급을 받아 의기녀라 불렸다. 결국 약방기생이 청루기생이 된 셈이다. 대낮에 탕건을 쓰고 앉아 청루에서 술을 마실 만큼 한가한 어부가 있겠냐마는 물때가 좋지 않거나 바람이 불면 달리 할 일이 없는 어부들에게 청루는 향수병과 열병을 치료하는 약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청루에서 술과 정을 파는 아가씨들은 의녀이자 기녀가 아니었을까.
여수 남면 대횡간도 관왕묘를 못 찾았어요. 할머니들도 알려주지 않던데요 산중턱쯤에 올라가 뒤를 돌아보니 섬마을이 한눈에 들어왔다. 건물처럼 보여던 것은 산비탕을 일군 밭 가운에 세워 둔 부표였다. 숲에서 희끗하게 보여 관왕묘 사당 용머리쯤으로 착각되었다. 뱃시간이 10분남짓이라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려 내려오는데 담쟁이, 마삭줄 등 덩굴로 덮인 무너진 벽돌 건물이 눈에 띄었다. 관왕묘였다. 세 살에 이 곳을 몇 번이고 지나쳤는데 저렇게 위장을 하고 있으니 발견하지 못할 수밖에. 할머니들은 왜 관왕묘를 숨겼을까? 알듯말 듯...
여수 남면 소횡간도 “머지 않아 무인도로 변할 작은 섬에 큰 철탑을 세우기 위해 환경을 파괴하고 예산을 낭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며 여러차례 민원을 내었지만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다시 소횡간도를 찾았을 때 철탑을 하늘 높이 우뚝 솟았고 이번에는 송전이 되고 있다. 그때 철탑 대신 태양광을 권했을 때 주민들은 전기가 약해 양식장에 사용하기 어렵다면 철탑을 원했다. 하지만 내가 만난 전문가들은 소횡간도보다 훨씬 큰 규모의 섬에서도 태양광을 활용해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우리나 전체 섬 중 84%가 무인도다. 정부에서는 무인도서 보전 및 관리를 위한 조사를 시작했다.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개발할 섬과 보전할 섬을 나누어 도서정책을 수립하겠다는 것이다. 늦긴 했지만 어쨌든 바람직한일이다. 더불어 몇 가구밖에 살지 않는 작은 섬의 주민들을 위한 상하수도, 전기 쓰레게 등 정주 대책을 표함한 SOC전략도 수립되어야 할 것이다.
여수 화정면 하화도(아랫꽃섬) 나도 이 섬에 가봤지. 아름다운 풍광에 빨간 피아노, 에머랄드 빛 바다, 출렁다리..
여수 화정면 적금도 어촌계장이 좋은 바지락밭을 망쳐 먹는다고 동네 부녀회에서 들고 일어났다. 이 일로 박씨는 사표를 내기도 했다. 적금도는 2006년 360헥타아르 마을 어장 어업권을 어촌계에 귀속시키고 58명이 같은 지분으로 출자해 전국 최초로 어민주식회사를 여기세무서에 사업자로 등록했다. 여기까지 오는데 우여곡절이 많았다. 황금어장이었던 적금도 주변밭은 면허만 마을에서 가지고 있었지 실제로 돈을 버는 사람들을 외지인었다. 각종 권력(돈, 폭력, 언론, 정치)과 밀착된 어장권을 마을에서 되찾는 데 박씨가 앞장을 섰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황금어장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빼앗긴 마을어장을 찾는 일은 외부와의 싸움보다는 마을 주민 사이의 싸움이 더 어려웠다. 2005년 마을공동체 전체 순소득 1억 7천2백만원에서 2009년 32억1천 2백만원으로 증가했다. 총자산금만 해도 같은 해 58억9천8백만원이며, 1인당 소득분배액은 4천5백만원이다. 어업자원은 관리가 되고 분쟁은 없어지고 소득을 올리고 마을어장을 지켜주니 안심하고 조업을 할 수 있다. 처음에는 반대를 했지만 이를 통해 조업 분쟁 해결, 선원난해소, 자원해소, 자원고갈 방지 등 삼중효과를 얻었다. 결과적으로 상생효과를 가져왔다. 마을 규약을 강화하고 어촌계 구성원을 재정비하면서 기업형 책임운영제를 도입했다. 어촌계 수익금의 30%를 재투자했다. 최근 적금도의 모델을 배우기 위해 어민들은 물론 학교와 기업에서도 찾고 있다.
여수 삼산면 거문도- 동도, 서도, 고도 사실 닥대매운탕이 먹고 싶었다. 7년 전 거문도 여행을 왔다가 맛 본 생선이였다. 호주머니가 변변치 않더 시절 섬에 미쳐 다니면서 경비도 아낄 생각으로 가장 흔하면서 맛있고 값이 싼 것만 찾던 시절이였다. 늘 맛은 혀가 아니라 문화로 맛보는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지역음식, 로컬푸드는 지역에서 가장 많이 생산되는 식재료를 이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언제부턴가 섬사람들은 어장일은 하지 않고 밭에 쑥을 심었다. 어장일에 힘에 부친 섬사람들은 묵정밭에 주인도 없이 자란 쑥을 발견했다. 1년 내내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일이 거의 없는 섬, 뭍에서는 아직 싹고 나지 않을 터인데 나물로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자랐다. 쑥은 겨울 가뭄과 여름장마에도 쑥쑥 자라 섬사람들에게 희망이 되고 있다. 쑥만 캐서 팔던 것을 작목반을 만들고 가공공장을 세워서 쑥차, 쑥떡 등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다.
끼니도 굶고서 물애질하여, 못된 낭군 술값으로 다 들어간다. 나로도 판장에는 전깃불이 반짝, 우리 오빠 팔뚝에 금시계가 반짝 이 아래 갱번에 꿀까는 처녀야, 언제나 다 깨고 내 사랑이 될래 저기 가는 저 큰 애기 엎으러나 지거라, 일으켜 준채 하고 보듬어나 보자 남남이 만나서 부부라치고, 수십년 뱃삯 없이 내 배를 탓네 뱅어배 선장아 돈자랑 말아라, 우리 낭군 내일모레 중선배 간단다.
여수 율촌면 장도 코끼리 귀양 보낸 섬. 작은 섬 장도가 코끼리 먹성을 해결할 수 없었다. 코끼리에게 밟여 죽은 사복시나 굶어 죽은 코끼리나 참 불쌍한 섬이다.
강진 가우도 출렁다리는 중저와 가우도를 연결했지만 가우도 사람들은 다리보다는 뱃길을 더 많이 이용한다. 주민 13가구 중 10가구가 배를 가지고 있다, 다리를 이용해 마을로 들어오려면 산을 넘어야 하지만 배를 이용하면 마을 앞까지 들어올 수 있다. 게다가 뭍에서 가져오는 여러 가지 샐필품이나 물품을 가지고 산길을 넘어 오가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여전히 배를 이용하고 있다. 또 섬사람들 중에는 노인들이 많아 무시로 병원을 드나들어야 하기 때문에 출렁다리는 주민들에게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다. 섬을 찾는 관광객들에게나 인기가 있을지 모르겠다. 다리가 놓이고 나서 변한 것이 있다면 땅값이 올랐다는 것이다. 간혹 땅을 사달라는 사람은 있지만 팔려는 사람은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