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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의 역사
이 책은 자크 데리다의 1997년 4월 파리 국제철학학교 강연을 토대로 한다. 이 강연은 1994~95년 사회과학 고등연구원에서 열린 데리다 세미나 “책임의 문제 4 증언”의 축약본이라 할 수 있다.
데리다는 누군가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더라도 엄밀한 의미에서 누군가가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증명한다는 것은 구조적인 이유로 언제나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내가 말한 것은 참이 아니다. 분명히 내가 틀렸지만, 나는 속이려고 하지 않았다. 선의였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상대로 우리는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다. 말을 그렇게 했지만, 내심의 의도는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말하기-원하는 것, 언어와 수사학 그리고 맥락의 차이를 강조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여러 가지 결론을 도출해야 하는데, 이런 결론은 결코 심상치 않고 한계도 없다.
그렇다면, 거짓말의 역사는 매우 상대적이다. 상대를 배려, 관용, 호의의 거짓말, 안과 밖의 거짓말은 거짓말 일반론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다.
직업정치가나 선동가뿐 아니라 정부 인사에게도 거짓말은 항상 필요하고 정당한 도구로 간주했다. 왜 그런가? 한편으로 정치 영역의 본성과 존엄성과 관련해서, 다른 한편으로 진실과 진심의 존엄성과 본성과 관련해서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전 시대에 알려지지 않았던 완전하고 결정적인 거짓말의 가능성은 현대적 사실 조작에서 발생한 위험이다. 심지어 정부가 사실에 근거를 두고 그런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정하고 그것을 말하는 권력을 독점하지 않는 자유 세계에서조차도 거대한 이익 집단은 예전에는 외국 관련 일들을 다루는 데 한정됐거나, 극단적인 남용의 경우 분명하고 현재적 위험에만 한정됐던 일종의 ‘국가 이성’의 사고 구조를 일반화했다.
2016년 미국의 트럼프 이후, 대안적 사실이라는 개념으로 가짜뉴스와 거짓말을 양산, 이를 사실인 양 유포시키는 노골적인 거짓말….
거짓말에 배려를 위한 거짓말과 악의적인 거짓말의 구분이 가능한 것일까?, 전자는 애초부터 거짓말이 아니라고 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거짓을 논리적으로 보자면, 참과 거짓, 즉 참이 아닌 것은 모두 거짓인가, 꼭 그렇지마는 않다는 점에서 어려운 점이 있다.
적어도 악의에 찬 거짓말과 그렇지 않은 거짓말의 경계 구분은 어디서부터 어디서일까, 여전히 고민스럽다. 가짜뉴스와 개소리, 거짓말이 완벽하게 구분된다면 어렵지 않겠지만, 그 회색지대에 놓일 경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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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푸코나 질 들뢰즈와 더불어 소위 포스트구조주의를 이끌었던 프랑스의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거짓말의 역사" 번역서는 데리다의 사망이후 무렵부터 데리다를 비롯한 푸코, 들뢰즈류의 책들을 멀리하고 있던 나에게는 우연히 길거리에서 수년만에 만난 옛 친구같은 느낌이다. 특히 그 제목 "거짓말의 역사"는 마치 "웃음의 역사"같은 제목처럼 어떤 분야의 학자든 너무 일상적이고, 만연하기에 이론화하거나 철학화하기 난해한 주제를 '논문형식'이 아니 '대담형식' '강연형식'을 빌어 스크립트로 작성된 불어원서를 한글로 번역한 책이라 호기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했고 그래서 몇페이지 읽어보니 데리다 특유의 문제가 강연말투에도 그대로 녹아있었다. 쉬운 말인 듯 하나 많은 컨텍스를 숨기고 있거나, 많은 화두를 던지고 있는 철학자들 특유의 복잡한 사고방식의 글쓰기! 그런 책들은 사실 일반독자들에게는 거부감이 들거나, 읽기가 어렵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 책은 거의 한 페이지 건너마다 우리말 번역자인 배지선이 첫 페이지부터 fabula가 무엇이며 phantasma, mimetologie가 무엇인지 과도하게 친밀하고, 과도하게 자주 주석을 넣어 해설해주는 친절을 베풀어 책 본문 위아래를 훓어가며 읽으면 충분히 이 짧은 분량의 강연에서 데리다가 재현, 진정성, 판타지, 등등의 이슈들에 대해 플라토, 니체, 후설 등등의 선배철학자들을 들먹이며 주장하고자 하는 이슈들에 좀 더 가까이 다가설수 있다. 한글번역자가 마지막 서너쪽을 할애해서 넣은 해설은 사실 철학전공자들 보다는 일반독자들이 데리다에 대해 알아두면 독서에 도움이 될 만한 평범한 해설도 첨부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