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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 인간의 다양한 면을 해석하다.
“1952년, 미국의 유명한 심리학자 고든 엑스너는 자신의 가장 유명했던 논문을 이렇게 시작했다. “이 지구상에 사람들이 60억 명 있다면 그들의 심리상태와 기질, 성격은 전부 달라서 전부 60억 가지의 심리와 성격, 기질이 있는 것이다. 인간은 모두 특별하다.”
하지만, 고든 엑스너는 죽기 직전에 남긴 마지막 논문에서 말을 바꿔 이렇게 끝맺었다. “그건 사실, ‘한 사람’ 에 대한 60억 가지 표현일 뿐이다. 인간은 누구나 똑같다.” [pp. 13~15]” 결국 개개의 인간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종 자체가 가진 다양한 모습 가운데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다를 뿐이라는 것이다. 장님이 코끼리 만지는 격이라는 말처럼.
어떻게 보면 심리학은 이렇게 거의 비슷한 인간이 드러내는 다양한 모습의 원인을 해석하는 것일 수도 있다.
닥터 프로스트, 추리와 심리의 사이에서
‘Mirror’이라는 바(Bar)에서 바텐더로 일하는 백발의 젊은 남자가 손님으로 온 커플 중 여자가 사라지자 남자에게 조언을 던지는 것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백발 남자는 아서 코난 도일(Arthur Conan Doyle, 1859~1930)이 쓴 셜록 홈즈 시리즈의 주인공처럼, 여자가 사라지기 전까지 그녀가 보냈던 무의식중의 수많은 신호들을 해석해서 남자에게 툭툭 말을 던진다. 물론 이 부분은 추리의 영역으로, 뒤에 이어지는 심리사례분석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다. 하지만 이 글의 메인 디쉬인 ‘자기애성 성격장애’에 대한 전문적인 설명으로 넘어가기 전의 전채(前菜)요리로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본격적인 분석으로 들어가자. 이번 사례의 대상자인 오정혁은 소위 ‘엄친아’에 해당한다. 33세의 나이에 대기업인 상동제약 영업1팀의 팀장으로 승진했다는 점이나 청담동에 살며 외제차를 몰고 다닌다는 점, 그리고 괜찮은 외모 등을 고려하면 1등 신랑감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바람둥이도 아닌데 여자들과의 교제가 오래가지 않는다. 무엇이 문제일까
백발의 젊은 남자, 프로스트 교수는 오장혁의 자아를 파악하고자 진행한 20답 법과 MMPI(다면적 인성검사)의 결과를 근거로 그를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 ‘텅 빈 남자’로 추정한다. 그리고 그가 보여준 모습에서 드러난 자기애성 성격장애 증상을 치료하기 위해, 프로스트 교수는 불법적인 일도 서슴지 않고 저질렀다. 바로 오정혁의 오피스텔로 불법 잠입한 것이다. (탐정도 아닌데 왜?) 이곳에서 프로스트 교수는 오정혁의 내면세계를 파악하고, 자기애적 성격장애를 치료할 수 있는 방법을 발견했다.
자기애적 성격장애, 사회가 만든 병(病)
자기애적 성격장애는 어린 시절 부모가 아이를 제멋대로 하게 했거나 아이가 부모로부터 지속적으로 이해와 공감을 받지 못하고 무시당하거나 학대당하는 경우에 발생한다고 한다. 어느 쪽이든 부모와 아이가 공감하지 못하고 비정상적인 애착관계를 형성한 경우에 해당한다. ‘자기 심리학(Self psychology)’을 창시한 “하인즈 코헛(Heinz Kohut, 1923~1981)은 “어린 시절 부모의 공감을 받지 못한 사람은 그 공허함을 해소하기 위해 스스로를 사랑하는 자기애적 성격을 갖게 되지만 근본적인 해소가 되지 못했기에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을 찾아 다닌다”고 했다.” [p. 231]” 묘한 것은 이런 증상을 가진 사람은 겉으로는 자기에 대한 애정이 지나쳐 자기중심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자기 자신조차 혐오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지속적으로 칭찬하고 관심을 가져주기를 원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에 타인을 향해 연기를 하게 되고, 그 결과 Case #1의 제목처럼 ‘텅 빈 남자’가 되어 버리기 쉽다. 아이러니 하게도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겉으로는 매우 사교적이고 매력적이며 유능한 사람처럼 보인다. Case #1의 대상자 오정혁처럼.
어쩌면 자기애적 성격장애는 핵가족화되고 맞벌이 부부가 늘어나면서, 경쟁에 치인 부모가 자식에게 공부를 강요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예기치 못한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많은 만화를 읽어보지 않았지만 <닥터 프로스트>는 오래 전에 읽었던 <여의사 레이가의 싸이코 파일>을 연상시키는 작품이다. 전문적인 심리학 지식을 지루함 없이 따라가게 할 수 있도록 과장과 각색을 동원하면서도 좀 더 정확한 설명이 필요한 것은 중간 중간에 요약되어 있는 점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 물론 닥터 프로스트라는 캐릭터 자체는 셜록 홈즈와 같은 탐정의 냄새도 풍기고 있지만. 다른 점도 있다. <여의사 레이가의 싸이코 파일>에는 다양한 심리테스트가 실려 있지만, <닥터 프로스트>는 테스트의 오염을 피하기 위해 최소한도로 노출하고, 노출된 것도 변형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저자가 심리학을 전공해서 그런지 상업적인 것 이외의 요소도 신경 쓰는 듯해서 마음이 기꺼웠다.
책 소개를 뒤져보니 각 권이 하나의 완결된 Case를 다루고 있기에 순서대로 구입할 필요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덕분에 어떤 권을 다음에 살까 하는 즐거운 고민을 하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