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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해도 괜찮아>의 저자인 김두식은 그동안 <불멸의 신성가족/ 김두식 ㅣ 창비 ㅣ 2009>,<불편해도 괜찮아/ 김두식 ㅣ 창비 ㅣ2010>로 많은 독자들에게 잘 알려진 대학교수이다. 그의 저서로는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 < 헌법의 풍경>과 같은 책들이 있지만,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그의 저서를 단 한 권도 읽지를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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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는 것은 어쩌면 이 책을 읽고서 그의 저서들을 골라 가면서 읽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책을 몇 페이지 읽지도 않았는데, '이렇게 솔직하게 써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저자의 글솜씨는 누군가의 이목을 의식하지 않는 거침없는 이야기들이기도 하고, 자신의 속내를 그대로 드러내는 이야기들이기도 했다. 혹시, 거침없는 글이라고 해서 '막말'을 떠 올릴 수도 있는데, 그렇지는 않다. 자신의 내면, 그리고 사회적 현상들을 분석하는데 있어서 자신의 생각을 모두 까발리듯이(?) 털어 놓는다. '까발린다'는 표현이 좀 거칠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의 책을 읽으면 그런 느낌이 든다.
<욕망해도 괜찮아>는 2011년 10월부터 6개월에 걸쳐서<색, 계>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 연재되었던 글들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제목 그리고 부제인 "나와 세상을 바꾸는유쾌한 탈선 프로젝트'라는 글에서부터 의문이 들게 된다. '욕망', '탈선' 이란 단어는 긍정적 의미 보다는 부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욕망'이란 사전적 의미는 ' 무엇을 가지거나 하고자 간절하게 바람, 가지거나 누리고자 간절하게 바라다'라는 뜻이지만, 언제부턴가 부정적인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멘토가 아닌 여전히 자라는 과정에 있는 40대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 책 속의 글 중에서) 고 말한다. 우리들의 내면에는 남들에게 보이고 싶은 과시 욕구가 존재하고 있기도 하고, 지금까지 가정에서, 학교에서 배운 상식들로는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욕구가 존재하기도 한다. 사람들의 마음 한 구석에는 이런 저런 욕구들이 담겨 있고, 그런 욕구는 옳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되기에 자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남들을 의식하는 상황 속에서만 숨겨져 있는 것이지, 호시탐탐 남들이 보지 않는 이면에서는 탈선으로 이어져 오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 이야기들을 저자는 이 책에서 9 개의 주제로 나누어서 솔직하고 명쾌하게 분석한다.
계(戒) 와 색(色)의 세계에서, 즉 규범과 욕망 사이에서 계의 테무리를 벗어나지 못하면서 색을 훔쳐 보거나 살짝 그 속으로 들어 갔다가 나오는 사람들의 심리분석이나 사회적 배경 분석을 저자는 자신의 생각과 일상, 체험을 바탕으로 흥미롭게 분석해 나간다.
" 인간은 강렬하게 욕망하면서도, 무엇을 욕망하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존재" (p.22)라는 르네 지라르의 말을 인용한다. 계 속에 갇혀 있는 욕망에 대한 분석은 마치 개콘의 <용감한 녀석들>처럼 용감하고 통쾌하기도 하다. " 자신이 욕망의 덩어리임을 인정하고 나면, 남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길은 한결 따뜻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 (p. 42) 특히, 이 책의 2장 - 욕망을 통해 스캔들이 왔다 : 학벌문제와 희생양 사냥 3장 -사랑에 빠진 아저씨 : 제 때 불태우지 못한 소년의 열정 은,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신정아와 변양균'의 이야기에서 그 핵심을 찾고 있다. 신정아의 책< 4001>의 내용을 인용하면서, 그 책을 분석하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 사회의 학벌문제와 엘리뜨 (책에 나온 창비의 표기법을 따른 것임) 계층의 탈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 우리 내면의 욕망을 조금만 솔직하게 인정한다면, 변실장은 그저 우리 주변에 있는 흔한 중년의 초상일 뿐입니다. 겉은 어른이지만, 속은 여전히 충분히 불태우지 못한 '소년'의 열정이 남아 있는 사람이죠. 바로 저처럼 말입니다. " (p. 71)
계 (戒)에 갇혀서 공부만 하고, 출세를 하기 위해서 인생의 대부분을 지내왔던 엘리뜨 계층의 탈선이었던 <4001> 속의 '똥아저씨'는 변실장이 아닌 현실의 인물이 아닌 중년 남성들의 욕망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상하이 스캔들', 최영미 시인의 시 <돼지들에게>의 일탈하는 아저씨들을 '계'와 '색'이란 관점에서 분석하여 본다. 그리고 여기에 '사냥꾼이 된 아저씨들'이 마치 자신이 정의로운 사람인 것처럼 남의 행동을 감시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진다. "표면적으로 보면 '계'의 사람들이지만, 숨겨진 '색'의 농도만큼 더 맹렬하게 돌을 던진다는 점에서 사실은 '색'의 사람들이라 할 수 있죠" (p. 94) 욕망과 규범 사이에 놓인 사람들에, 사회에 대한 분석은 예리하다.
6장 - 색의 인간, 계의 인간 : 성북동과 형 에서는 형과 자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경제적 계층과 사회적 계층의 욕망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이어 나간다. 형이 일탈자였다면, 자신은 도덕적 감시자였다는 것이다. 같은 환경에서 자랐지만,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당위성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 책의 주제 중에 7장 - 플레이 보이 : 몸과 살이 소통 이 섣불리 이야기하기에는 껄끄러운 이야기가 아닐까 한다. 성과 순결 등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을 빌리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수단으로 말과 글과 살이 있다고 한다. 말과 글의 소통이 살의 소통보다 중요하고 고상하다고 믿는 분위기이지만, 실상은 인생을 뒤흔든 것은 살의 소통이란다. 우리는 그만큼 살을 중요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사랑에는 여러 유형이 있지만, 그 모든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기에 살의 소통을 즐기라 고 말한다.
세상이 많이 변했으니, 사랑과 성, 순결에 대한 이야기가 전보다는 많이 유연해 졌다고는 하지만, 자칫 이성적 판단을 할 능력을 갖추지 못한 독자들에게는 역효과를 가져다 줄 수도 있는 내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저자는 이어서 색의 선을 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색을 넘어간 사람들의 행동들에 대해서 남이 어떻게 즐기는지에 레이더를 꺼야 한다고 덧붙인다.'
기독교 집안에서, 교장인 아버지에, 교사인 어머니, 학교에서는 최상위권의 성적, 24살에 사법고시 합격, 검사출신, 대학교수, 형과 누나도 대학교수이니..
그래서, 저자는 그동안에 만날 수 있었고, 들을 수 있었던 계층에 한정된 이야기들을 이 책 속에 담고 있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된다. 그리고 저자 역시도 자라면서 일탈자인 형과는 달리 도덕적 감시자 로 살아 왔기에, 계의 테두리에서 벗어나지는 못한 삶을 살아 왔고, 살고 있으며, 선의 테두리를 넘어 가고 싶은 욕망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물론, 그는 계와 색의 구분을 짓지 않으면서, 생각의 폭을 넓히려는 태도를 가지고 살고 있다는 것은 책 속의 내용들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사실들이다.
" 선, 넘을 수 없으면 넓혀라." (p. 291)고 말하니까. 저자는 '자신과 다른 세계를 접하게 되면 그들에게 돌을 던지기 보다는 경계선을 넓혀라' 그리고 '너무 규범에 갇히지 말고, 살살 놀면서 살라'고 말한다. 이 책은 남의 시선에 신경을 쓰면서 겉으로는 계에 얽매여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색에 빠져 사는 사람들을 예리하게 분석하는 거침없는 이야기가 신선하기도 하다. 그러나, 아무래도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이 '계'를 중시하였기에, '색'에는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이 많을 것이다. 나 역시, 이 책의 내용에 모두 공감하는 것은 아니다. 나와는 다른 생각들도 있기는 하지만, 그의 말처럼 " 선, 넘을 수 없으면 넓혀" 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욕망을 부인하고 억압하기 보다는 욕망을 분출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되도록이면, 건전한 방법으로...
남에게 들키기 싫은 자신의 속마음까지 훌훌 털어 놓는 저자의 글들이 신선해서 그의 다른 책들을 곧 읽게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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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서점에 블로그를 만들면서 '욕망'같은 것이 숨어 있을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자신이 읽은 책을 기록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거라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서평도서라는 것을 한 두권 받기 시작하면서,가끔 이벤트에 당첨이 되는 과정을 겪으면서 내 숨겨진 욕망이 꿈틀거리는 것을 알았다. 저자의 표현대로라면 아마도 이것은 은근한 욕망이였을 것이다. 왠지 드러내 놓은 욕망은 무언가 탐욕스러워 보일지도 모른다는 일종의 '선'을 넘을면 안될 것 같은 그런 경계... 그리고 알았다. 이런 경계의 '선'에 있는 욕망들이 수없이 많았다는 것을.
'괜찮아'라는 어휘가 주는 긍정의 기운 때문이였을까? 색과 계, 그 경계선의 호기심때문이였을까? 가제본으로 만날수 있는 기회가 온 것에 감사하며 냉큼 읽기 시작했다. 결코 재미(?)있다고 할 수 없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는 기분으로 읽었다. 자신의 욕망을 확인하는 것이 결코 신나는 일은 아닐텐데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적나라하게 나의 욕망을 들춰내 보여주는데도 불구하고 불편하지가 않았다. 역시 ~'괜찮아',의 힘이였을까?(물론 아니다..) <욕망해도 괜찮아>는 일종의 커밍아웃같은 책일지도 모르겠다. 당신 먼저가 아니라,내가 먼저 욕망을 고백해 볼테니,당신들도 해 보시라.. 그러니까 저자는 세상 살아가는 여러 뉴스와 자신의 가족 관계 속에서의 욕망을 고백하고 분석했다면 독자들은 <욕망해도 괜찮아>라는 거울을 통해 스스로의 욕망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셈인거다. 우리 속에 감춰진 욕망들은 때로 은근히,또 때로는 굴절된 욕망으로 표출되어지기 때문에 누군가를 끝임없이 희생하게 만들고,스캔들에 열광하는 상황들.. 저자는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욕망에 대한 드러냄에 있어 당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타인을 통한 모망욕망 속에서 허우적 대고 있다고 말해주고 있다. 서문에서 이 책은 어떤 특별한 답을 주기 위한 책은 아니라고 했다. 그러나 이미 자신의 욕망들을 마주하는 것부터 이 책은 큰 도움이 되였다고 본다.
그리고 보너스처럼... "경계선을 넓히는 쪽이 가지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훨씬 좋습니다."
<욕망해도 괜찮아>, 이 책은 나에게 거울 같은 책이 되어 주었다. 자신의 욕망을 여과없이 볼 수 있게 해 준.. 나 역시 색과 계의 그 경계선에서 여전히 머물고 있지만,가끔은 그 선을 넘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듬과 동시에,책을 읽으며 떠오른 지인들에게도 이 책을 선물해 볼까 생각중이다^^
가제본으로 읽었으므로 구성까지는 잘 모르겠지만,가제본 속에 그려진 일러스트가 마음에 들었으므로 완성된 책의 구성도 왠지 마음에 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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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루이스 스티븐슨의 <지킬박사와 하이드>의 지킬박사의 경우엔 사회적 지위의 '계' 때문에 포기했었던 색의 욕망이 괴이한 형상을 한 하이드로 분리되었고, 내적 억압이 탄생시킨 선과 악의 분열과 곧이어 나타나는 ‘악의 지배’를 통해 스티븐슨은 색과 계는 결국 양립할 수 없는가? 라는 어두운 탄식을 우리에게 던져줬었다.
230. 건강한 몸의 욕망을 계속 억누르다 보면 그 욕망이 뇌로 역류되어 '멘탈붕괴'를 불러온다.
경북대에서 법학을 가르치는 김두식 교수의 <욕망해도 괜찮아>는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색과 계. 욕망과 규범은 양립할 수 없는가? 양립할 수 없다면 과연 이 두 극단 사이에서 우리의 위치는 어디쯤인가? 라는 질문으로부터 논의를 시작한다.
<욕망해도 괜찮아>에서는 규범(사회적 지위)에 갇혀 살았던 고위 공무원과 가짜 규범(우수한 학벌 위조)을 누렸던 ‘신정아 · 변양균’의 욕망(섹스 스캔들 사건)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면서 사회적 지위와 불륜. 양쪽 모두에게 절대적인 수준으로는 절대로 양립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스캔들의 두 주인공을 향해 죽일 것처럼 달려드는 익명의 네티즌. 스스럼없이 가십거리로 안주 삼는 일반인들의 대응은 과연 정당한가? 에 대한 질문을 함께하고 있다.
264.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이 섹스, 스크린, 스포츠, 스피드 따위로 시민을 우민으로 만들려 했던 것처럼, 돈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언제나 스캔들을 통해 사람들의 관심을 분산시킵니다.
2. 이 질문에 대한 결론은 단순했다. 저자가 지어낸 지랄 총량의 법칙에 따르면 당신네도 어차피 다 같은 욕망 덩어리일 뿐이다. 따라서 언론이 만들어 낸 희생양 스테이크에 칼날을 들이대기보다는 인간 내면의 욕망의 어두운 부분을 인정하고 조금 더 솔직한 마음으로 욕망과 규범 사이에서 길을 잃어버린 이를 바라보는 것이 어떨까? 라는 제안을 건넨다.
동시에 지랄 총량의 총량은 날 때부터 이미 정해져 있으므로 나이가 들어 욕망을 주체하지 못해 신정아 · 변양균의 사건처럼 변태적으로 폭발하여 남들의 입방아에 꾸준히 오르내리는 참사를 막기 위해서는 규칙적으로 지랄을 배출하는 운동(?)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지랄을 꾸준히 배출했던 사람들이 훨씬 더 잘 산다고 설명한다. 그의 형을 예로 들면서 말이다.
3. 따라서 지랄을 배출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니다. 어차피 이 규범이라는 것이 절대적 진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규범은 남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 한도에서 행동을 결정하게 하여 ‘죄’를 짓지 않도록 하는 방어적 행위이다. 그런데 남에게 전혀 피해를 주지 않는 행동(특히, 도덕성에 관련된)에 관해서도 우리들은 ‘죄’를 적용하여 처벌하고 있으므로, ‘죄’를 결정하는 방식에 대한 논란의 여지가 있다고 한다.
261.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권력과 돈을 가진 사람들의 로비력을 이겨내지 못합니다. 국회의원은 물론이고 그 친구들도 모두 화이트칼라이다보니, 일상에서 보고 듣는 게 '기업하는 어려움'입니다. 눈 씻고 찾아봐도 노조운동 하다가 쫓겨난 블루칼라 친구가 주변에 없으니 그런 목소리는 입법에 반영되지 않습니다.
논란이 제기되는 이유는 다수결로 정한 법전에서의 ‘죄’라는 의미로 봤을 때, 죄를 판단하는 이들은 모두 ‘화이트칼라’ 계급의 사람들이고, 그들과 관계된 인물. 예를 들어 고학력 경제사범이나 대기업 임원진이나 정치인들의 범죄에 관대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까놓고 말해서 무전유죄 유전무죄의 한국사회라서 규범(계)에 딱 맞춘 근본주의자의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것도 상당히 피곤한 작업일 것이다.
268. 운전을 하다 보면 상황에 따라 제한 속도를 10킬로미터쯤 초과해서 추월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인생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규범은 목적이라기 보다는 수단입니다.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 규범이 존재하는 것이지, 우리가 규범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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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유명해지기 위해서는 자기 의지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의 어느 누구도 그 눈덩이를 자기가 굴리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자기는 가만히 있는데 다른 누군가 자기 안의 보석을 발견하고 눈덩이를 굴려주길 바랍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의 보석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그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습니다.
55. 공항에 나가 유학생을 태우고 숙소로 향할 때 선배 유학생이 가장 먼저 묻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요. 출신대학입니다. 체면 차리고 망설이다 그걸 묻지 못하면 이후 몇달 동안 찝찝한 느낌이 듭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바람결에 그의 출신대학을 듣게 되지요. 그 순간 머리가 환하게 밝아오면서 눈앞에 마법처럼 대학입시 배치표가 쫙 펼쳐집니다.
100. 세상은 날로 정글로 변합니다. 젊은 세대 사이에는 서로 공격하고 상처 주고 웃음거리로 만드는 문화가 확고하게 자리잡았습니다. 누군가 상대방의 장점을 이야기하고 칭찬하면 모두들 어색해서 견디지 못하고, 농담처럼 서로 씹고 비판하면 다 함께 웃고 즐깁니다.
120. '헤어질 수 있는 용기'를 갖는 다는 것은 상대방과 독립된 인격체로서 자기 위치를 확보한다는 의미를 지닙니다. 그런 용기 또는 에너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상대방에게 전달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우습게도 그런 용기를 가진 사람만이 관계를 유연하게 지속시킬 수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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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참 발칙(?)하다. 욕망해도 괜찮아~ 선을 한번 넘어보라니까 아마 우리가 이러한 제목에 호기심을 가지고 자극을 받는 것도 규제된 테두리에서 남의 이야기를 훔쳐보고 싶은 욕망이 작용했을지 모른다. 사회적 욕망, 문화적욕망등 다양한 욕망들이 끊임없이 생겨나는데도 불구하고 욕망을 극복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끝없이 통제하는 문화속에 길들여져 있다. 오히려 색(色)과 계(戒) 그 사이의 선을 넘기 두려워하며 자신의 욕망을 가두어 두려만 하다보니 오히려 뒤틀린 형태의 욕망으로 분출되는 것을 보게 된다.
자 그럼 이 욕망이란 무엇일까요? 르네 지라르의 희생양 메커니즘에서 몇부분 발췌해보았다. 르네 지라르가 볼 때 타고난 본능이나 충동이 아닙니다. 자연적인 욕구가 충족된 후에도 인간은 늘 뭔가를 강렬하게 욕망하는데 그 욕망은 자기 고유의 것이 아닙니다. 우리 욕망은 다른 사람(모델)의 욕망을 흉내낸 것입니다. - 중략 - 이같은 모방욕망은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짓는 결정적 요인입니다. 본질적으로 모방욕망은 자유와 발전을 만들어내는 좋은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를 동물보다 못한 존재로 만드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욕망과 현실의 불일치가 경쟁과 폭력을 낳는 까닭입니다.
신정아사건, 중국 영사관 사건을 보며 뒤늦게 일탈에 빠진 사람들의 특징은 대개 40대 이후 삶의 안정기에 들어서기위해 20-30대를 정신없이 달려온 즉 규범, 계의 세계에서 평생을 보낸 사람들이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너무 훌륭한 어른들일수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신정아사건의 똥아저씨나 중국영사관의 허영사관등은 순수한 축에 속하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더 문제는 언론의 낚시대에 입을 꿰인것도 모른 체 돌팔매질에 여념이 없는 뒤틀린 사냥꾼욕망에 사로잡힌 우리들일지도 모른다...
과연 그럼 우리가 알고 있는 규범(戒)은 아무런 의심없이 무조건 믿고 따라야만 하는것인가? 먼저 저자가 소개하는 '몰락'이라는 영화를 한번 살펴보자. 이 영화는 세계2차대전 막바지 연합군에 고립된 히틀러와 그의 측근 참모들에 대한 스토리이다. 독일군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에 하나가 잘 정돈되고 다려진 군복이다. 독일병정이라는 말이 나올정도로 군율이 엄격한 그들은 영화 후반으로 갈수록 그러한 군기나 규범 따위는 찾아볼 수 없어진다. 마지막이라는 것을 안 장교들은 하나씩 술에 취해 정신을 잃는다. 그런데 이렇게 핵심지도부가 아노미상태에 무너질 때 한 뼘도 채 남지 않은 베를린을 지키며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서너명씩 패거리를 지은 그들은 판사,정당대표, 국방부 장교나 친위대원으로 구성된 특별재판부이다. 바로 완장을 찬 남자들은 숨어있는 남자들을 찾아 바로 즉결처분했다.
규범이라는 것은 그 유해성의 양과질을 측정하는 것도 기준선을 긋는 것도 불가능하다. 영화에서처럼 완장을 찬 그들은 자신들의 질서를 위해 타인을 유해하는 '정의'라는 진짜 규범에 반하는 행위를 하게된다. 여기서 우리는 규범이 '왜'가 아닌 '누가'라는 문제로 접근해 볼 필요를 느끼게 된다. 또한 누가 그걸 정하느냐의 문제가 되면 논리가 아닌 권력의 문제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지금 당신이 믿고 따르는 규범에 대해서 의심하라 그리고 또 의심하라.
요즘은 멘토라는 단어가 정말 많이 쓰이는 사회이다.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또한 20대와 마찬가지로 힘들다. 이런 우리들에게 저자 김두식교수의 재미난 이야기와 함께 자신을 커밍아웃(?)하는 글들로 이어진 책은 색,계에 대해서 또다른 생각을 가지게 한다. 저자의 전작인 '불량해도괜찮아'도 궁금해진다.
끝으로 이책을 읽으며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한 기준이 마음이라는 것에 공감이 가는글이 있어 몇 자 적었다. 남의 말이나 판단이 아니라 나만이 알고 있는 진짜 나는 누구인지, 내 마음은 어떤 것에 흔들리는지, 나를 긴장시키고 두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것은 무엇인지 등에 질문에 정직하게 대답하다보면 진짜 자신을 알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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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사회적 이슈가 되는 책을 좋아하는 편이다.
아마 그만큼 자극에 둔감함 편이자 민감한 편이다. 자극적인걸 보며 피식 웃을 때가 있고, 그보다 더 자극적인걸 보면서도 왜 이게 자극적인지 모를때가 있기 때문이다. 김두식님의 욕망해도 괜찮아-라는 책은 나에게 그랬다. 내 욕망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마 자기 자신 스스로에게 말하기도 부끄러워 혼자 몰래 말하고도 부끄러워하는 사람들도 많을찌 모른다.(나처럼-) 하지만 가끔은 쏟아내고 싶은게 내면속에 있다는걸 부정할 수는 없는 것. 그게 숨쉬고 살아감에 있어 현실이 아닐까- 총 9장으로 이뤄져있는 책은 모두 미묘하게 연결이 되어있는 느낌이다. 아예 동떨어진 느낌 같기도 하지만 잎에 장을 읽었으면 좀 더 이해가 가는 그런 느낌.-아마 그러니까 한권의 책을 읽어야하는데 아닐까 싶긴 하지만- 아침에 식탁에서 책을 편 나에게 엄마가 "창작과 비평 옛날에는 좋은 책 많았는데-"라고 말씀하시는데 난 다시 되물었다. "창비- 창작과 비평 아냐?" 라고 말씀하시는데 그제서야 출판사 말씀이셨구 나-란걸 알았었다. 책을 펴고 읽으면서 -물론 출판사별로 책을 즐겨 찾거나 그런 편이 아니라 잘 모를수도 있지만- 책 겉에 써있는 창비라는 출판사만 알았던 모습이 왠지 우스운 느낌이였다. 뭐, 어쩌겠는가. 유명한 책들을 대면 그제서야 '아, 그게 그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였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일 독자인걸. 그런 독자인 나에게 책에서 말하던 듣보잡-은 어떤 걸 중요하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다른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사실 작가가 말한 유명한 '급'의 등극한 작가들 중 공지영, 이외수, 안철수, 진중권을 제외한 조국, 박경철 은 나에게는 듣보답이기 때문이다. 난 작가가 반 기독교적인 사람인줄 알았었다. 다른 책 쓴 제목-교회속의 세상, 세상속의 교회-에서 느껴졌던 느낌 때문이였다. 근데 의외로 작가는 매우 성실하고 신실한-최소한 교인들이 보기에는-기독교인이였다. 그게 참 오묘했던 것 같다. 반 기독교적인 성향으로 기독교를 비판하기 위해 성경을 인용하는 느낌을 받았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되려 내가 더 비판적인 시선으로 기독교를 보는 날라리 기독교 신자가 아닌가 싶긴 하다. 책을 읽다보면 중간중간 '나는 어떻게 살았었지?'라고 느끼는 부분들이 있었다. 작가가 말하는 '넘지 않는 선'에 대한 부분에서도 세상에 선을 긋고 안전한 한도 내에서만 여지까지 살아온 내 자신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했었고, 사랑한다는 걸 부부간 뿐만 아니라 불륜의 개념인 사회적 이슈 문제를 다루기도 한 작가의 말에서도 생각할 점이 참 많았던 것 같다. 책 중 나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장은 1장 '거울부터 들여다보기-욕망의 인정- 이였다. 작자가 말하는 오바하는 아저씨의 모습, 은근슬쩍 나를 드러내려는 내면속의 욕망 부분이 내 모습과 비춰져서 인상 깊었기때문이다. 남들에게 말할때 가끔 아무렇지 않게 내 자랑을 하려 들때가 많지 않았나-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학교때는 친구들과 정말 말도 안되고 쓸데도 없었던 연애담을 무용담처럼 말하려도 일과 사건을 만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성인이 되서는 대학에 진학하고 진로와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되었을 때 사람들에게 별로 논리적이지도 않고 설득도 안되는 말로 내가 지금 다니는 직장이 더 낫다는 식의 자기위안을 삼으며-자기 방어를 하며- '내가 너보다 나아'라는걸 말하려고 애썼던 것 같다. 뭐, 지금이래봤자 다를건 없긴 하지만 이런 점이 꼭 나쁜것 만은 아니라는걸 책에서 배울 수 있는 것 같다. 사실 난 책을 처음 받았을때 '색 계''욕망' 이라는 단어 등등 때문에 야한 책-이라고 기대를 한걸까ㅋ-이라고 생각을 했었다. 펼쳐보니 실망이였다. 야한 책은 무슨. 결국 김두식 작가의 자랑이 잔뜩 있는 책이였기때문이다. 하지만 남의 자랑을 보고 있는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아마 작가의 욕망을 풀어내고 있었듯이 나 역시 내 욕망을 풀며 '너만 잘난게 아냐'라는 심리가 있었기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누군가의 자랑을 들으며 내면의 나를 자랑해보고 싶다면 읽어봐도 괜찮을 책. 자서전 같은 느낌의 책이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