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콧대를 높일만한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자주 내한한 편인 바이올리니스트 힐러리 한이 독일의 괴짜 피아니스트 하우쉬카와 함께 녹음한 실프라를 구입했다. 악기뿐만 아니라 스타일이 전혀 다른 두 음악가의 협업이라니 도대체 어떤 소리가 들어있을 지 꽤나 궁금했다.
외모만큼이나 차분하고 정돈된 분위기로 어떻게 보면 딱딱해 보일 정도로 기본기 탄탄하게 정통 클래식 레퍼터리를 연주하는 힐러리 한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데뷔 이후 정통 클래식을 벗어난 연주를 한 것이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는 다양한 연주를 시도해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앨범은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그녀를 옥죄왔던 고전음악 바이올리니스트라는 껍질을 과감하게 깨려고 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그동안의 행보에 따른 고정관념때문일까? 두 사람이 맞닿아 추구하는 아티스트로서의 방향성은 이해가 되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하우쉬카의 세계 속으로 힐러리 한이 빨려들어갔고 실제 음악의 지휘를 하우쉬카가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진지한 연주따위는 벗어 내던지고 한없이 가볍게 보잉을 하는 힐러리를 떠받치며 끌고가는 하우쉬카의 피아노가 더 매력적으로 들리는데 철저한 연습을 바탕으로 정제된 음반 작업을 거쳤다고 보기엔 즉흥적인 사운드가 많아서 현장음의 매력 자체를 피아노가 살리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얼마 전 시애틀 노드스톰 백화점 구두샵에서 연주하는 듀오의 모습이 이 음반에서 느껴지는 음색과 리듬을 잘 나타내고 있다. 실프라는 엄숙한 뮤직홀이 아닌 일상 생활의 서정성과 즉흥성, 번잡함을 동시에 그린 현대적인 앨범이다.
사실 앨범 타이틀의 실프라는 북미판과 유라시아판이 갈라지는 지점으로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크캬비크에서 가까운 곳이란다. 화산활동과 빙하가 만나 수질이 깨끗하고 다른 어떤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신비로운 풍경이 펼쳐진다고 한다. 독일과 미국에서 활동하며 서로 다른 길을 갔던 두 사람이 어느 한 곳에서 만나 신비로운 음을 만들어내 본인들도 틀에 박힌 음악에서 벗어나고 도심에 지친 사람들에게 신선한 공기를 불어 넣으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
실프라는 앨범 2번 곡인 바운스 바운스(bounce, bounce)의 뮤직비디오만큼이나 음악과 자연의 순간적이고 순수한 아름다움을 느끼기엔 나쁘지 않다. 다만 사이키델릭한 코드가 보여 깔끔하게 다듬어진 정통 클래식의 우아함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힐러리 한을 떠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길지 않은 경력을 쌓아온 만큼 콘서트홀 바이올리니스트를 벗어나고 한 힐러리 한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살짝 꼬인 고전 음악도 좋아하는 편인 나도 그녀의 곱게 화장하고 멋진 드레스를 입은 모습에 감탄을 보내다가 오버한 민낯에 다소 놀랐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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