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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은유 작가가 쓴 [글쓰기의 최전선]을 읽은 적이 있다. 자기계발서류를 별로 좋아하지 않음에도 우연히 그 책을 읽었고, 저자에게 반했다. 그의 글쓰기에 반한 것인지, 그가 말하는 글쓰기에 대한 생각에 반한 것인지는 헷갈리지만 아무튼 당시 정신없이 책 속에 빠져들었던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그 책을 읽고서 저자의 다른 책을 찾아서 읽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그것은 마음뿐, 차일피일하다가 새로운 책이 나왔다고 해서 선뜻 구매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나와 당신을 연결하는 이해와 공감의 말들’이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이 책은 우리가 삶속에서 부딪치고 아옹다옹하면서 만나는 타인들에 대한 이해를 돕는 책이다. 내가 아니라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일 때 내가 가지고 있던 그들에 대한 편견과 무지에서 벗어나 비로소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는, 어찌 보면 당연하고도 흔한 말이지만 우리가 쉽게 간과하는 것들을 저자는 들려주고 있다. 일상에서 우리는 많은 타인들과 함께 살아간다. 부부와 자식처럼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연결된 사람들, 친구나 지인처럼 사회적으로 관계된 사람들, 그리고 상대방에 대해 잘 모르지만 살아가면서 만날 수밖에 없는 많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과 만나면서 우리는 은연중 자신의 속성을 드러낸다. 때로는 격려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훈계와 충고라는 이름으로 타인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말 만을 쏟아 놓는다.
글을 쓰면서, 또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확신에 찬 사람이 되지 않는 게 목표라고 말하는 저자, 확실함으로 자기 안에 갇히고 타인을 억압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싶다는 저자. 그럼에도 의심하기보다 주장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 서글프다고 말한다. 나 또한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지난날 거침없이 쏟아 내기만 했던 내 주장들을 생각해본다. 타인의 말, 타인의 생각보다는 내 주장이 그저 옳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저자의 글을 읽어가면서 비로소 일상에서 관계했던 사람들에게 마음이 간다. ‘편견, 무지, 둔감함은 지식이 부족해서 생기는 건 아니었다. 결핍보다 과잉이 늘 문제다. 타인의 말은 내 판단을 내려 놓아야 온전히 들리기 때문이다.’(8쪽) 머리로는 역지사지를 이해하면서도 말은, 몸은 따라주지를 않는다. 그만큼 공감 혹은 이해의 감수성이 떨어졌던 것이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책에는 이 땅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 우리가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알지 못하고 지나치게 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성폭력피해자, 세월호 유가족, 삼성직업병 피해자, 비정규직 노동자, 출산과 육아에 멍드는 여성, 그리고 어머니의 노동까지... 저자는 그들을 공부하며 그들의 아픔에 공감하려 애쓴다. 그들의 말을 듣기 위해서 자신의 판단을 내려놓는 저자의 글을 읽어가며 ‘다가오는 말들’이란 책의 제목을 다시금 생각해본다.
글을 쓰는 것이 그런 자신의 판단을 보류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는 저자.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읽고 쓰고 말하고 고치기의 반복. 이 고된 노역을 우리는 왜 자처하는가. 글쓰기의 목적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이렇게 정리해본다. 삶이 고차함수인 데 글이 쉽게 써지면 반칙이다. 정확한 단어와 표현을 고심하다 보면 자신을 스스로 속일 가능성이 줄어들고 몸을 숙여 한 사람의 내면의 갱도에 들어가는 훈련으로 남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을 수 있다고.’(149쪽) 나 역시 그런 글을 쓰고 싶다. 살아온 삶의 무게에 지레 지쳐 잃어버린 감수성을 되찾고, 타인을 공부하면서 일상에서 만나는 타인들의 아픔을 공감하는 그런 글쓰기를 하고 싶다. 생각난 김에 그녀의 전작 [글쓰기의 최전선]을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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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반 아이 중에 말을 잘하는 친구가 있었다. 답변할 때 꽤 논리적이었는데, 보통은 잘게 나눠 얘기해서 더 그럴듯해 보였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계절 중에 겨울이 좋은 이유가 뭐지?" 하고 물으면, "저는 겨울이 좋은 이유가 세 가지 있어요."라고 한 뒤, 첫째, 둘째, 셋째 이런 식으로 이어붙였다. 그 친구처럼 말해보려고 답변을 미리 외워 흉내 내보기도 했는데 잘 되지 않았다.
글 잘 쓰는 사람이 말을 잘 할 확률이 높긴 하겠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말과 글 모두 생각을 재료로 하지만, 말은 퇴고와 지연을 허락하지 않는다. 발화 중에도 다음에 내보낼 이야기를 구성해야 하고, 여러 단어 중에 잘 맞는 단어를 골라야 하며, 청중과 분위기에 맞춰 어조와 톤을 조절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 모두를 순간적으로 지연 없이 해내야 한다는 것이다. 말 잘하는 사람은 대개 이런 과정을 의식하지 않으니, 어느 정도는 타고나는 능력임에 분명하다.
글은 좀 다르다. 행동경제학자인 대니얼 카너먼의 시스템이론을 대입해 보자면, 말은 '자동시스템'이고 글은 '숙고시스템'에 가깝다. 말은 날아오는 공을 피하거나 1+1을 계산할 때처럼 직관적이지만, 글은 생각하고 따져보고 계산해야 하는 숙고 과정이 필요하다. 34x289를 계산할 때처럼 말이다. 오랜 경험과 훈련을 통해서 말이 글과 차이 나지 않는 사람도 있다. 말을 그대로 옮겨 적어 한 편의 멋진 글이 되고, 시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글을 잘 쓰는 사람을 나는 좋아한다. 말은 부러움의 대상이고, 글은 존경의 대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키 크고 잘생긴 타고난 외모는 샘이 날지언정 마음 깊이 경모하게 되지는 않는다. 문학에는 천재가 없다는 말이 있듯, 좋은 글을 쓰는 사람은 '타인의 삶을 섬세하게 살피는 관찰자'가 된다. 마지막까지 남아서 한 인간의 개별적인 사연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는다.
잘 쓴 글에는 '인격의 최상의 측면이 발휘'되기도 하지만, 글이 나의 생각과 행동을 잡아주기도 한다. 내가 경험하고 생각한 최상의 것을 쓰려 하고, 또 글이 나를 이끌어 더 좋은 삶을 살도록 독려한다. 짧은 몇 줄의 글을 쓰는 것도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다 보면 글쓰기처럼 어려운 것도 없다 생각하지만, 쉽게 써지지 않으니 지적 욕심을 자극해서 평생 해도 질리지 않는 취미로도 삼을 수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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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기가 아는 만큼, 경험하는 만큼 세상을 본다. 어려서는 모든 것을 호기심으로 대하며 열심히 배워 가지만 어른이 된 후 배움을 멈춘다. 자신의 세계를 규정하며 '나 때는 말이야'라는 '라떼'형을 들먹이며 타인을 쉽게 판단하며 꼰대가 되곤 한다. 은유 작가의 《다가오는 말들》은 작가가 읽은 책과 글 속에 그리고 저자가 만난 수많은 만남들 속에 저자에게 다가온 말들에 대한 단상을 적은 에세이다. 알지 못했던 말들이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 들어오며 그 말이 주는 의미를 되새기며 이 세상을 더 좋게 만들 수 있는 말들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책이다. "존은 내가 실제로 얼마나 고통을 겪는지 알지 못한다. 그가 알고 있는 것은 고통을 겪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며, 그걸로 그는 만족이다." 위 구절은 저자가 인용한 소설 <누런 벽지>의 인용 구절이다. 저자가 인용한 소설의 배경은 아내가 출산과 병으로 몸이 아프자 내과 의사인 남편 존이 아내의 병을 의사인 자신이 잘 안다며 함부로 진단하는 모습이다. 작가 은유는 이 소설 속의 남편이 '전문가'라는 이유만으로 타인의 사정을 헤아려고도 하지 않고 자기 지식으로 성급히 단순화 한다고 강조한다. 나는 이 문장을 보며 남편을 떠올렸다. 남편은 집안일을 여자인 나보다 훨씬 잘 한다. 설거지도 잘 하고 청소도 도맡아한다. 육아도 잘 도와준다. 그래서 남편은 내가 힘들다고 하는 울부짖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더 이상 내가 어떻게 해야 하냐?" "내가 이만큼 하는데 그 정도로 부족하냐?" "모든 엄마 다 그렇게 사는데 넌 왜 그렇게 힘들다고 불평하냐."라며 나를 몰아세웠다. 남편이 아무리 가사를 잘 도와준다해도 기본적인 육아 책임권, 워킹파파로 일하는 것보다 워킹맘으로 일하는 현실이 더 불안정하고 잔혹함을 남편은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소설 속 남편처럼 내가 고통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고 단정짓고 내 힘듬을 들어주지 않았다. 사람은 그 입장이 되어 보지 않으면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당사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내가 안다라며 당사자가 되기 거부하며 듣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역지사지의 노력 없이 하는 말들이 상대방을 얼마나 힘들게 하는 지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다. 우리 일상이 시를 낳는 공간이 되려면 똥물 같은 언사를 휘두르는 현실로부터 눈 돌리지 않고 같이 뒹굴고 치워야 할 것이다. 이제는 나도 '반격하는 몸'이 되고 싶다. 시 쓰는 운전기사를 위해. 저자는 버스 안에서 기사에게 함부로 대하는 승객의 무례함을 묵인하는 다른 승객들의 태도에 주목한다. 저자 역시 그 중 한 명이었음을 반성하며 무시 당하는 기사를 모른체하는 승객들을 보며 이 사회에 만연한 공동체의 무신경을 이야기한다. 어린 시절, 어른들은 학생들이 잘못 된 행동을 하면 훈계를 하곤 했다. 폭력을 당하는 아이를 보면 막아주기도 하였다. 남의 일처럼 여기지 않았다. 물론 지나친 간섭은 있었지만 공동체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돌보았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사람들은 이웃이 누구인지도 모른다. 주변의 누가 부당한 취급을 받아도 내가 피해볼까봐 모른체한다. 사람들의 무신경과 무관심 속에 누군가가 폭행을 당하고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우리가 조금만 더 주위에 관심을 가진다면 이 사회는 운전기사가 시를 쓰는 일상을 줄 수 있다. 그 힘은 바로 우리에게서 나온다. 생각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생각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누구나 기성세대가 된다. 저자는 기성세대라고 말했지만 실생활에서 우리는 '꼰대'라는 말을 쓴다. 어른들이 하는 말들을 돌아보자. 먼저 시어머니들의 단골 대사 "내가 다 키워봤다"라며 다 안다며 가정한다. 자신의 지식으로 다 알고 있다고 말하며 그 판단하에 아이 엄마의 힘듬을 단정짓는다. 이런 현상은 매우 흔하다.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고통을 다 안다고 말하면서 쉽게 생각하고 충고한다. 당사자의 입장에서 보지 않으면서 말하는 건 때론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알지 못한다. 꼰대가 되는 길은 쉽다. 바로 당사자의 입장이 되지 않으면 자연스레 기성세대, 즉 꼰대가 된다. 《다가오는 말들》 은 그동안 우리가 너무 쉽게 접했기에 그 안에 숨겨져있던 폭력과 상처를 잘 몰랐던 말들을 이젠 다른 언어로 불릴 것을 제안한다. 말은 힘을 갖는다. 우리가 말을 할 때 그 대상은 실재성을 띄며 생생하게 다가온다. 그러함으로 우리는 잘못된 말들을 희망의 말로 바꿔나가야 한다. 가령 잘못된 말의 기원인 '며느라기' 또한 다른 말로 바꿀 것을 제안하듯이 이 사회 속의 잘못된 말들을 다른 말로 대체해야 한다. 그 작업은 쉽게 되지 않지만 말을 바꾸는 것으로부터 변화는 시작된다. 내 주위의 말들 중 잘못된 말들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본다. 그리고 내게 다가오는 말들 또한 진지하게 들어야겠다. 잘 듣고 생각하며 내 주위의 말들이 희망의 언어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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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제주여행에서 북카페에 간적이 있다. 휴가의 마지막 날이라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선택한 곳.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풍경 좋은 창가에 자리를 잡은 후,카페 서가에서 읽고 싶은 책을 찾기 위해 섰다. 그 때 내 눈에 들어온 책. '은유'라는 작가는 그 전에 들어봤었고, 마침 그 날 그 시간에 그 자리에 있었고, 읽고 싶었다. 그 외에도 두어 권 더 골라서 자리에 와서 읽기 시작했지만, 제일 처음 잡은 이 책에 빠져 다른 책들은 들춰보지도 않았다. 가끔 울컥울컥 하기도 하고, 따라 쓰고 싶은 문장들도 있고, 그녀가 추천하는 책들이나 영화는 꼭 보고 싶었다. 그렇게 읽다가 못 다 읽고 떠났다.
휴가를 마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도 이 책이 계속 생각났고, 다시 이어서 읽고 싶었다. 보통 책들은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데, 이 책은 구입했다. 그녀의 글들을 오래 계속해서 보고 싶기도 했고, 그녀가 읽고 인용하거나 추천한 책들을 따로 메모하기에는 너무 많아서 레퍼런스로 이 책을 갖고 싶었기 때문.
다른 각도에서 보는 법, 다르게 생각하는 법, 나아가 새로운 방법으로 살아보는 법을 제시하는 책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면서 여성 작가라 더 공감하고, 또 끌리고, 더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 책 말고도 여러 책들을 썼던데, 다 읽어보고 싶다. |
![]() 은유 작가님의 책은 <글쓰기의 최전선>을 시작으로 <쓰기의 말들>,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를 줄줄이 읽었다. 신간이 나왔다는 소식에 읽어야지 하며 미뤄뒀다가도 금세 또 읽었다. 여성으로서 엄마로서 시민으로서 작가로서 쓴 글들이었다. 살아오며 미처 폭력이라 생각지 못했던 폭력들을 발견하는 놀라움과 부끄러움. 내가 겪었던 폭력들에도 나만의 언어가 없어 꿀먹은 듯 입을 다물었던 경험 때문일까. 은유 작가님의 글은 빌려서 읽다가도 자꾸 사서 읽고, 밑줄을 긋게 된다. 어려운 글이 아닌데도 자꾸 곱씹고 또 곱씹는다. 겉멋들지 않은 글 특유의 편안함과 약자성을 껴안는 따뜻함을 겸비한 글이었다. 좋은 문장을 사랑하는 작가님답게 다양한 책들에서 직접 수집해온 문장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문장수집가이자 문장을 적재적소에 배치해 자신의 글의 설득력을 높이는 데 일가견이 있으신 것 같다. 은유 작가님의 책들을 읽고 나도 독서할 때마다 하나 둘씩 문장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이번 책에서도 내것으로 만들고 싶은 문장들이 너무 많았다. 책 한 권으로 공감받고 연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 상처받지 않은 사람은 없고, 치유를 위해선 그 상처를 대면할 용기가 필요하다. 아픔과 고통에 용감하게 대면한 사람이 아니면 쓸 수 없는 글들이라 은유작가님의 글을 좋아하는 것 같다. 감상문을 쓰며 생각이 정리가 되네. 올해 가장 좋았던 책은 <실격당한 자들을 위한 변론>을 꼽았었는데, 오늘부로 <다가오는 말들>이 추가됐다. 편견과 공감의 부재, 혐오가 만연한 사회에 숨구멍같은 책이었다. 최근 이슈가 되었던 노키즈존 문제에 대한 작가님의 견해에 깊이 공감한다. ‘노키즈존’이라는 말을 보고 철렁했다. 개인의 시간과 공간이 침해당하지 않을 권리를 내세우며 식당이나 카페에서 아이들 출입을 금한다는데 그 논리가 옹색하다. 우리는 누군가의 시공간을 침해하면서 어른이 됐다. 여전히 힘 있는 어른들은 자기보다 약한 자의 시공간을 임의로 강탈하면서 자기를 유지한다. 왜 아이들을 대상으로만 권리를 주장하는 걸까? 그래도 되니까 그럴 것이다. 나 역시 양육의 책임을 나누지 않는 어른(배우자)에게 가야 할 원망이 애꿎은 아이에 대한 부정으로 나타나곤 했으니까. 인간 사회는 민폐 사슬이다. 인간은 나약하기에 사회성을 갖는다. 살자면 기대지 않을 수도 기댐을 안 받을 수도 없다. 아기를 안고 공부에 나선 엄마처럼 폐 끼치는 상황을 두려워 말아야 하고 공동체는 아이들을 군말 없이 품어야 한다. 배제를 당하면서 자란 ‘키즈’들이 타자를 배제하는 어른이 되리란 건 자명하다. 건강한 의존성을 확장해나가는 과정을 통해서만 우리는 관계에 눈뜨고 삶을 배우는 어른이 될 수 있다. p.100 우리가 무서워해야 할 건 페미니스트가 아니라 페미니스트가 가리키는 여성이 처한 현실의 참담함이다. p.134 “나라 구하다 죽은 위인도 이렇게 길게 추모하지 않는다. 이제 그만하라.” 이제 그만하라고 해야 할 것은 무고한 죽음을 양산하는 이 잔인한 체제다. 성실하게 일하다가 죽는 청년이 더는 없도록 하는 게 나라를 구하는 일이다. p.212 좋았던 문장을 꼽을 수 없이 많아서 오래 걸렸지만 모두 메모했다. 상처 받은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지금 이 순간 어떤 문제로든 힘들어하고 있는 사람들이 이 책을 읽게 되길 바라며 글을 끝마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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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페이스북에 올린 내 글에 달린 댓글 때문에 전 직장 상사를 페친에서 삭제한 일이 있었다. 지하철에서 직접 목격한 화장술의 놀랄만한 기적을 행한 아가씨들에 대한 글이었다. 웃기려는 목적으로 심하게 과장해서 묘사했던 걸로 기억한다. 문제는 그 글에 옛 직장 상사와 그 분의 친구 분이 '지하철에서 화장하는 민폐녀'를 조롱하는 글을 연달아 올려버린 것.
재밌게 웃자고 쓴 글이었는데 본의 아니게 '여성 혐오'를 조장하는 글이 되버린 것이다. 아뿔싸, 같이 독서모임하는 동료가 그글을 지적했고,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글 자체를 삭제하고 그 분들을 페친에서 삭제하였으나 이미 모든 사람이 글을 본 다음이었다.
은유의 <다가오는 말들>의 '화장하는 아이들'을 읽다가 그때의 내가 생각나 얼굴이 화끈거렸다. 웃기려는 목적이었다고 회피했지만, 실은 그분들처럼 나도 '공공장소에서 화장하는 여자들은 민폐녀'라는 생각을 암묵적으로 하고 있었다.(남들의 행위를 소재로 웃기려는 생각자체가 잘못이었다) 그분들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지하철에서 화장을 했을 것이다. 어차피 그들의 화장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무슨 근거로 민폐녀라고 칭할 수 있었을까. 도대체 무슨 근거로 '나의 생각이 옳고, 당신들은 웃음거리가 되어야 한다'고 여겼던 걸까.
그 부분은 <다가오는 말들> '이분법의 유혹'이라는 장에서도 해석이 된다. '내면과 외면의 아름다움을 분류하는 자체가 기성세대의 문법이다. 특히 이분법은 사유의 적이다. 생각하지 않으면서 스스로 생각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누구나 기성세대가 된다. "선입관이 현실을 만나 깨지는 쾌감"(고레에다 히로카즈)은 세상에 자기를 개방할 때만 누리는 복락이다.'
나는 나도 모르게 '화장은 집에서 하는 것이니 밖에서 하는 것은 민폐'라는 이분법의 잣대로 비웃고 힐난하는 권력을 스스로 부여했다. 꼰대이면서 꼰대가 아닌 척 행동하는게 꼰대들의 특징이라더니, 내가 딱 그꼴이었다. ㅠㅠ 일베들이랑 별반 다를 것 없는 나의 어리석은 시선에 상처입었을 그분들께 진심으로 죄송하다.
<다가오는 말들>을 읽다보면 찔리는 부분이 하나 둘이 아니다. 예컨데 이런 대사... "남자 너무 미워하지 마세요. 우리 남자들도 알고 보면 돈 버느라 불쌍하거든요."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으로서 겪는 곤란과 불편, 작가가 만난 여성들이 당한 폭력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했을 뿐인데, 남자들은 그것을 남자에 대한 미움, 투정, 원망으로 받아들이고 동정과 배려를 당부한다. 또, 여성들이 살면서 억울했던 일, 분했던 일, 기가 막혔던 일을 쏟아내는데 "나는 집에서 설거지도 잘하는데 왜 그러느냐" 항변하는 남성들이 꼭 있다. 실제로 나도 내입으로 저런 말들을 꺼내본 적은 없지만, 솔직히 저런 마음을 품고 대화를 들었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지 모른다....
그 문제에 대해 은유 작가는 리베카 솔닛의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를 인용하여 설명한다.
"사회적 약자(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남자도 힘들다고 말하는 것은, 남성이 지배자의 위치에 있기에 자신만을 볼 뿐 남들은 보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한번도 다른 젠더와 자신을 동일시해보라는 요구를 받지 않으며 자라다보니, 공감 능력을 영원히 상실해 버린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침묵하는 걸 배우는 여자와 감정을 도려내는 법을 배운 남자는 이렇게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로 살게 된다.
<다가오는 말들>은 이외에도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있던 것들이 실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내게 주워진 것인지 깨닫게 하는 순간, 무비판적 습관으로 타인을 단순하게 나쁜 사람으로 별점 매기던 반성의 시간, 고양이 한 마리를 대하더라도 고양이의 관점에서 생각해야 하는 작은 깨달음의 순간들로 점철되어 있다. 읽을 때마다 밑줄을 긋게 되어 결국 모든 페이지를 밑줄 긋게 되지만, 밑줄 긋는 것만으로 온전히 내것이 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 그저 안타까운 그런 책이다.
작은 소원이 생겼다. 이 책 <다가오는 말들>이 청소년 필독서로 선정되어 자라나는 아이들이 읽게 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 같이 읽고, 느끼고, 말하면서 '다가오는 말들'에 영롱하게 반응할 아이들의 눈망울이 선하게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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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매한지 제법 되었는데, 천천히 곱씹고 오랜시간 아끼며 읽고, 읽고 난 뒤에 그 부분들에 대해 다시 한번씩 생각하고, 여운이 남다보니 읽느라 제법 시간이 소요되었다. 사회문제들과 사회약자들을 바라보는 은유작가님만의 시선, 인식, 관점 모두가 감동인 책. 누구보다 공감하고, 이해하고, 돕고자 하는 마음과 한 인간이자 작가인 그녀가 자신의 글로 조금이나마 변화시키고자 하는 노력에서 진정성이 느껴진다.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사회적 시선과 편견에 대해, 노동의 고귀함에 대해, 인간의 권리, 곳곳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폭력들과 사회 비리, 고통받는 모든 이들에 대해 소신있고, 강하게 의견들을 피력한다. 지금처럼 늘 우리 사회의 어두운 부분들과 약자들 편에 서서 글을 써주기를... 글쓰기가 고된 노동일지라도 가능한 그녀는 오래오래 글을 써주었으면 좋겠다. 많은 이들이 읽고 그리고 나 역시도 인식의 변화가 이루어지길 바라며, 단 한번이라도 사회 곳곳에서 벌어지는 많은 사회문제들에 관심가져주기를 소망해본다. 어떤 특정 문장들을 추릴수 없을 정도로 한장한장 모두가 소중하고 귀해서 요 근래에 읽은 책중에 단연 최고의 책이라 해도 아깝지 않을 책이다! 천천히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다^^ 역시 은유작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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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정쩡한 게 좋아
글쓰기 강좌를 개당했다. 첫날 자기소개 시간에는 '왜 글쓰기를 배우는지' '무슨 글을 쓰고 싪은지' 스물 다섯 명이 돌아가면서 이야기한다.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모이다 보니 그 내용도 제각각이다. 올해는 꼭 책을 내고 싶다. 남에게 관심 받는 게 좋아서 쓴다. 몸이 아팠던 경험을 정리해보고 싶다. 글 쓰는 게 제일 돈이 안 들고 재밌다 등등 새학기를 맞는 신입생처럼. 다 큰 어른들은 결의 찬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던 중 한 명이 유독 더듬더듬 입을 똈다. "제가 돈 욕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고 사회문제 관심이 없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 글은 뭘 쓰고 싶은지 잘 모르겠어요. 사는 게 그냥 다 어정쩡해요." - 본문 중에서 -
잠까 보았지만 이 에세이산문은 너무나 좋다. 그래서 이건 완전체리뷰가 탄생할 것 같다. 다만, 언제 탄생할지는 나도 모른다. 헐! 내게 다가오는 말들을 잡으려 애써 보지만, 그것은 언제나 허공에 떠서 어디론가 달아나 버린다. 그래서 잡으려 하기보다는 그것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내 삶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모든 게 기적! 그 기적의 틈에 새 소망을 가져보기로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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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어쩜 저렇게 이쁘게 할까 저렇게 아름다운 단어만 골라서 말할까 싶은 사람이 책을 읽다가 책의 어떤 한 문장을 쓰윽 내어주길래 어떤 책인가 궁금해서 사봤다. 다가오는 말들, 아름다운 말들 말들이 주는 힘과 따뜻함을 느낄 수 있는 책. 소중한 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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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을 마무리 하면서 올해의 책 결산인가...어쨌든 그 해에 읽었던 책 중 인상 깊은 책이나 마음에 들었던 책을 대답하는 문답이 돌았는데 작년 말에는 특별히 좋았던 책도, 인상깊게 읽었던 책도 말할 수 없었다. 책을 읽지 않았던 것도 아닌데 왜 그랬을까 생각해보면 당시에 마음이 닫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타인의 생각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그런 의미에서 2023년의 첫 리뷰로 다가오는 말들을 쓰게 된 건, 타인의 말을 듣기 위한 연습으로는 좋은 경험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제목부터 "다가오는 말들"이지 않나. 나는 어떤 말들이 쏟아지든 내 생각이나 경험으로 판단하지 않고 가만히 말들이 다가오도록 내버려 두기로 했다.
책의 서문에서 저자의 말에는 "서툴더라도 자기 말로 고통을 써본다면 일상을 중단시키는 고통이 다스릴 만한 고통이 될 수는 있다. 그러므로 우리 뭐든 써보자고 하면 저마다 무언가를 쓰기 시작한다."라고 적혀 있다. 글을 쓰는 것이 고통을 다스리는 행위가 된다면, 글을 읽는 행위는 타인의 고통을 알게 되는 행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읽기 시작했다.
물론 인간의 이해는 자신의 경험 범위 이상을 벗어나기가 힘들다. (리뷰를 쓰기 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쓰는가 궁금해서 검색해보곤 하는데-컨닝을 하기 위해서- 이 책을 읽긴 한건가 싶을 정도로.....자기 생각에 꽉 잠긴 리뷰를 읽고 조금 허망해졌다. 이 책에 나온 내용이 잘못되었다는 지적을 한 리뷰였는데... <울더라도 정확하게 말하기>파트에서 강연에 반박하는 중년 남성을 보는 기분이었다. 강연을 듣고, 인문학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것까지만 해도 그 사람에게는 큰 노력일 수 있겠다. 하지만 나 자신이 옳다는 생각으로 꽉 찬 사람에게는 어떤 이야기를 해도 와 닿지 않겠구나 하는 허망함이 든 것도 사실이다.)
기쁘고 즐거운 얘기도 반복해서 들으면 지친다는데, 심지어 타인의 고통을 읽는 행위이다. 어렵게 쓰이지 않았지만(쓰는 이가 쉽게 썼다는 말이 아니라 어려운 어휘나 이해하지 못할 문장으로 쓰이지 않았다는 = 잘 쓰인 문장이라는 의미다) 어려울 수밖에 없는 소재들이다. 이 책 한 권으로 타인의 삶을 알게 되었다거나, 인문학적 견해가 넓어졌다는 말은 할 수 없다. 내 상상력과 공감능력이 이렇게 얄팍했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을 뿐.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황정은 작가님의 <계속해보겠습니다>를 생각했다. 타인의 고통을 생각하지 않을때, 사람은 괴물이 되는 거라는 나기의 대사가 인상깊었기 때문에 계속 떠오른 것 같다.
사람의 이해범위는 자신의 경험 이상을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고통에는 공감하지 못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고통에는 한없이 잔인해진다. 그런 의미에서 괴물이 된다는 말은 전혀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겪지 않은 세계를 상상하기 위해, 타인의 생각을 알 수 있는 가장 간단한 행위는 역시 독서이지 않을까. (초능력이 생겨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능력이 생기지 않는 한 말이다.)
오늘 완독을 했는데 시간이 지나서 잊혀질때쯤, 다시 꺼내서 읽어보고 싶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첫 리뷰로 남기는 책이라고 쓴 이유는 이 책이 처음 읽은 책이 아니기 때문인데...어쨌든 순서가 중요한 건 아니니까. 이 책에 나오는 말들이 내게 얼마나 가까워졌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곱씹다보면 하루하루 더 가까워 지지 않을까. 그래서 제 별점은요...다섯개 중에 다섯개 만점 드립니다. 좋은 책이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