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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에 이어 발표된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품이다. 그가 이 작품을 그렇게 애지중지했다는 것은 작품에 대한 그의 혼신의 노력 때문이다. 그가 만났던 실제 인물 슈사이 명인은 맑고 장대한 혼을 가진 자였다. 그것을 반 년 동안이나 옆에서 보면서 표현해 나가는 동안에 가진 사랑이리라. 이 작품은 저자도 말하고 있지만 실제의 이야기를 소설화한 것이다. 명인 슈사이의 은퇴기로 당시 후세대 중의 선두 주자라 할 수 있는 기타니 미노루의 대국이 소재가 되어 있다. 그리고 이 대국은 신문사의 주최로 이루어졌고, 신문에 그 대국의 모든 과정들이 연재되었다. 당시 이 기사는 인구에 회자되었고, 숱한 화제를 낳았으며, 인기리에 읽혀졌다. 명인의 마지막 대국, 사람들에게 충분한 이슈가 되었으리라. 그것을 가와바타가 기록을 하고 묘사를 했으니.
그런데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사실을 기록했지만 소설적 요소가 많다. 저자도 말한다. 이것은 나의 소설이라고. 우선 상대역이었던 기타니 미노루를 오오다케 7단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리고 모든 심리 묘사들은 저자가 상상력을 동원해 나타낸 것이다. 대국하는 장소 주위의 배경 묘사 등도 저자의 눈에 비친 주관적인 요소들이다. 이들을 통해 인물들의 성격 묘사는 물론 상황 및 일의 과정들이 손에 잡힐 듯이 우리들에게 전달된다. 심지어 바둑판 앞의 숨소리까지 느껴지는 듯하다. 마음이 많이 빼앗는 글이다.
글의 배경과 과정 등이 그려지고 있는 부분이다. 명인의 은퇴기로 신문에 연재를 하기 위해 신문사가 주선하여 이루어진 대국이다. 이 대국을 위해 대국자를 물색하기 위해 1년여에 걸친 대국자 선정을 위한 대회를 했다. 그 대회에서 오오다케 7단이 뽑힌 것으로 되어 있다. 그렇게 대국은 이루어졌고, 신문사에 의해 바둑 룰도 정해 졌다. 각자 40시간, 80시간을 소요할 수 있는 경기로 했다. 하루 5-6시간 정도 대국을 하고 봉수하면서 5일 쉬고 다시 시작하는 조건으로 진행이 되었다. 65세가 명인이 대국을 해나가기엔 조금은 무리가 되는 대회 조건이었다. 하지만 바둑 앞에선 항상 꼿꼿한 명인의 성품은 귀기어릴 정도로 나타났다. 아무리 아파도 바둑판 앞에만 서면 굳건한 자세가 되곤 한다. 옆에서 보는 사람들이 안쓰러워 힘들어 하고, 어려워하는 장면들이 많이 연출된다.
중간에 명인이 아파 일어날 수도, 생각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된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명인 측에서 대국 조건을 바꾸자는 제안을 한다. 빨리 끝낼 수 있는 방안을 찾자는 것이다. 그런데 오오다케 도전자는 완강하게 대국조건을 바꾸는 것은 안 된다고 한다. 몰론 선의에 의해 이루어진 일이다. 병색이 짙은 분과 대국하는 부담이 그렇게 만들었다. 하지만 대국조건이 변경되지 않으면 경기를 마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고, 신문사도, 대국자의 주변에서도 경기는 마쳐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들이 오오다케를 설득하게 한다. 우여곡절 끝에 경기가 속개되고 진행되어 나간다. 그러는 가운데 나는 의연하게, 올곧은 정신으로 바둑만을 생각하는 명인을 본다. 그 명인의 자세에 감복하게 된다.
그리고 그를 위해 써내려가는 언어는 예도에 입각한 흐름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올곧은 정신을 만나는 일이다. 후 세대가 어떻게 하든 승부를 하려는 마당에, 승부에 덧입혀 정신을 지키고자 하는 명인의 고고한 세계를 만나는 것이다. 그것이 저자는 자신을 지움으로 가능해 졌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이런 정신들이 바둑판을 통해서도 그대로 전해진다.
이 바둑의 121수는 오늘날 승부사들이 즐겨 사용하는 자극하는 수다. 이 수로 인해서 명인은 도가 아니라는 생각에 바둑 두는 것까지 힘겨워 한다. 바둑이란 것이 우선은 예를 다하고, 덕스러움을 갖춘 후에 승부를 논해야 할 것으로 지녀온 세계가 무너지는 듯함을 느끼며 명인은 130 수의 무리수를 둔다. 이 수가 나오고 난 뒤 승부는 한 쪽으로 기우는 형상으로 나타난다. 몰론 흑은 도전자의 몫이다. 흑이 나은 국면으로 이루어져 간다는 말이다. 하지만 명인이 끝까지 고군분투하여 바둑을 만들어 가고 결국은 5집이 모자라는 결과를 만들어 낸다. 오늘날 덤이 있다면 명인이 이긴 명국이다. 하지만 그 당시엔 흑을 가지고 두면 유리하다 하는 것들은 계산되기 전의 일이다. 나은 사람이 백을 쥐고 도전하는 사람이 흑을 쥐고 두는 것은 당연하다고 느끼던 시대다. 그런 상황에서 도전자의 승리로 나타난, 희대의 명국이 된 셈이다.
이 글을 통해 저자가 그려내려고 하는 것은 승부가 아니다. 그 승부가 이루어지기까지의 과정이다. 그리고 이 승부에 임하는 명인의 마음 자세다. <바둑은 무가치라고 하면 절대 무가치고, 가치라고 하면 절대 가치다.> 라고 저자는 인용하여 말하고 있다. 바둑의 세계를 잘 말해주고 있는 것이리라. 그 세계에 침잠하는 사람에게는 절대적으로 다가오는 기예다. 바둑은 예술이다. 마음과 마음이 대화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손으로 돌을 놓으면서 대화를 한다고 해 수담이라고 까지 한다. 이런 바둑의 도, 예 이것들이 명인의 마지막 대국을 통해 우리들에게 전달된다. 너무나 절절하게, 목숨을 다해 자신이 가진 세계를 품어나가는 명인의 정신은 고결하다 못해 빛이 난다. 그 아름다운 바둑의 세계를 위대한 문학가의 손을 빌려 우리는 느끼고, 바라보고 있다. 감사한 글이었다. 바둑을 잘 두지는 못하지만 뒤에 실린 기보를 복기해 보는 마음엔 절절함이 묻어나는 소리가 들리고, 내 기억 속에도 많이 남는다. 행복한 소설이다.
* 덧붙이기: 지난 우리나라에서도 신문사에서 기전을 만들고, 이끌었던 적이 있다. 지금도 있으리라. 그것은 지면을 활용하기도 좋고, 구독률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바둑이 보편화 되어 놀이가 된 지금의 시점에서 신문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이 신문사의 의견을 내놓는데도 좋기 때문이다. 이제 한풀 꺾였지만. 많은 돈을 들여가면서 기전을 확보하고 대회를 하는 데는 그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 아니랴. 일본의 어려웠던 시기에 이런 문화적 활동을 통해, 위안과 기쁨을 찾으면서 그래도 버티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이젠 기업 쪽으로 많이 넘어 갔다. 하지만 신문사에 의한 대회가 아직도 많고, 바둑계에선 신문사 대회가 비중이 높다. 신문이 이렇게 바둑에 관심을 가져주고, 지면이 주어진다면 바둑은 즐기는 문화가 되리라 생각해 본다. 행복한 하루가 됨을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