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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독립 만세! "
일제 탄압에 맞서 싸우던 우리 민족들의 외침 그 대표적인 날은 3.1절이였다. 그 외에도 보이지 않는 많은 항쟁이 존재하는데 그 중에 한 노인이 한 소년의 원동력이 된 날이 있었다.
1910년부터 일제에 지배를 받던 시대 덕산리 장터에서 대한독립을 외치는 사람들과 그 것을 억압시키는 일본경찰들의 실랑이를 보게 된 우의는 일본이 조선 땅에서 왜 사람들을 괴롭히고 지배하는지 점점 궁금해하고 의문을 품는 호기심 있고 동네에서 가장 똑똑한 12살 아이였다.
< 조선 고위 귀족 중 76명 중 8명이 일본의 작위와 돈을 거절한 내용 >
그런 호기심 많은 우의는 보통 학교에 다녔지만 칼을 차고 돌아다니는 선생님과 일본어와 일본 정신만을 가르치는 곳에선 배울 게 없다 생각한 우의는 개량 서당과 '오치서숙'이라는 전통식 서당에서 공부를 하게 된다.
많은 일본의 시야 속에서도 성주록 선생의 전통 서당은 예외가 됐던 곳은 지금으로 치면 대학생들이 다닐만한 수준의 서당이였지만 우의에겐 실제로 나라가 돌아가고 독립군들의 이야기들을 더 알 수 있는 곳이였다.
가장 확실한 건 매달 1일에 발간되는 천도교청년회가 발간하는 <개벽>을 보게 되면서 우의는 확실한 이야기를 알 수 있게 된다.
우의가 본 그날에 <개벽>의 이슈는 '강우규 예심 종결'사건이였다.
"(11월) 29일에 작년 8월 1일에 새로 부임 하는 사이토 총독 일행을 남대문역 앞에서 폭탄으로 공격해 20여 명을 다치게 함으로써 세상을 놀라게 한 강우규와 그 협조자 세 사람에 대한 예심이 끝나고 경성지방법원으로부터 유죄 판결이 내려졌는데, 여러 신문들이 앞 다투어 그것을 보도하자 많은 사람들이 그 범인의 대담함과 용감함에 벌벌 떨었다." . . (중략)
일본 통치에 의해 기사들은 대부분 나가지 못하게 금지되였지만, 강우규의 이야기는 우의의 작은 동네까지도 퍼졌다.
강우규는 65세 노인동맹단 소속으로 독립활동을 하는 노인이다. 그런 그가 총독을 죽이게 된 건 민족자결주의를 반하고 사람의 도리를 무시하며 2천만 민족을 궁지로 빠뜨리는 원흉을 제거해 독립에 도모하는 것이였다.
때는 총독의 부임식 날 9월 2일 서울역 광장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산 50루블 수류탄 흰 백발의 두루마기를 입은 노인 모든 것은 준비되었고 총독이 탄 마차를 경찰들 사이를 뚫고 던지기만 하면 되는 것이였다. 던지는 그 순간 폭탄의 위력은 대단했지만 사이토 총독 마차가 아닌 그 뒤쪽의 미즈노 렌타로 탄 마차가 터지게 됐다.
그렇게 첫 암살은 실패로 돌아가고 또 한 번의 암살을 시도했지만 일본의 수사망을 피하지 못해 잡히고 사형을 받게 된다.
정말 괘씸한 건 그 사형 이후로 강우규의 흔적을 은폐하려는 일본의 태도였다.
그 뒤로 우의는 <개벽>을 통해 강우규의 사형소식까지 듣고 유명인사의 독립군이 활동한 임시정부라는 것을 알게 된다.
우의는 23살의 나이로 드디어 결심했던 독립을 위해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김구선생을 우여곡절 만나게 된다.
4월 29일 드디어 우의에게도 독립을 위한 날이 왔다. 홍커우 공원에서 물통과 도시락 폭탁을 준비을 마침 그는 김구선생과 최후의 만찬을 하고 낡은 시계2원과 새 시계 6원을 바꾸게 된다. " 선생님, 저의 시간은 한 시간 밖에 안 남았습니다. 저랑 시계를 바꿉시다 " 그렇게 각오를 다지고 그는 홍커우 공원에서 시라카와 대장을 죽이고 일본 관료들에게 피해를 크게 주게 된다. 이미 우의는 폭탄을 던지고 총을 쏘는 등 많은 독립군들이 암살에 성공을 한 선배들이 많이 있었다. 그 뒤로 우의가 또 한번의 계획에 성공하면서 중국과 조선전역에도 그의 용감한 행동에 감동을 안 할 수 없었다. 우의 그는 윤봉길의 또 다른 이름이였던 독립군이자 두 아이의 아버지이자 애국자였다.
우의와 우규 이 두 사람은 실제로 만난 적도 아는 사이도 아니였다. 하지만 그 둘은 임시정부에서도 투쟁하는 서울 한복판에서도 그 하늘 아래 '대한독립'을 꿈꾸는 노인과 소년이라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한 건 실존인물일까였다. 하지만 그들은 내가 역사책에서 보던 윤봉길 의사, 강우규 선생이였다. 늘 역사시간마다 되면 그저 외워야하고 알아야하는 생각이 전부 이 책을 통해 역사책 그 이상으로 알지 못한 그 시대의 정책부터 인물까지 더 알 수 있어서 정말 유익했고 오늘 날의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이 생기기까지 얼마나 많은 희생과 노력이 있는지 더 알게 된 계기가 되였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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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침탈의 시대 1920년, 서로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열세 살의 충청도 예산 소년 우의와 서울 한복판에서 조선 총독에게 폭탄을 던졌던 65세 독립투사 강우규의 삶은 어떻게 이어지는가?
청산되지 못한 친일파와 그 잔재로 인해 3.1 만세운동 100년이 흐른 지금도 고통받는 이들이 있습니다. 강제 징용자들, 위안부 피해자들, 유해조차 찾지 못하고 있는 안중근 의사, 친일 앞잡이 노덕술에게 독립된 조국에서 고문 받아야 했던 김원봉, 청산리에서 봉오동에서 이름 없이 쓰러져간 독립군들....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70여 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일본 앞잡이 노릇을 하고 있는 2019년 판 토착 왜구들이 여의도 국회에 득실대고 있는 현실을 우의와 강우규 의사가 안다면 무덤을 뚫고 뛰쳐나올 일 아닌가요? 부끄럽습니다. 일본이 기어이 자국 초등학교 교과서에 독도가 자신들의 고유의 영토라고 기록했다지요. 그런데도 언론도, 정치권도, 역사학자들도 조용합니다.
김동성 작가의 그림도 멋집니다. 꼭 다문 입술과 상대방의 영혼마저 꿰뚫어 볼 듯한 눈망울, 굳게 쥔 주먹의 소년 우의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수류탄을 쥐고 흰 수염을 휘날리는 할아버지의 결기가 책을 금방이라도 책을 뚫고 뛰쳐나올 듯이 생생합니다.
소년 우의는 『개벽』을 통해 강우규 의사의 의거와 서대문 형무소에서 사형집행을 당한 소식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이름 세 글자를 가슴에 새겨둡니다. 자, 이제 이 소년은 자라 강우규의 길을 걷게 되는데요. 상해 임시정부를 찾아가 그 한 몸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하지요. 그리하여 길고 긴 기다림 끝에 도시락을 품에 안고 홍커우 공원으로 향합니다. 네 맞습니다. 이 소년은 훗날 윤봉길로 불리는 독립투사입니다.
팩션이라고 하지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이끌어내는. 강우규, 김상옥, 백정기, 안중근, 이봉창, 김원봉 들을 보면서 만주로 향했을 수많은 윤봉길 들을 이야기 속에서 만나게 한 소설입니다. 그러나 소설의 후반부 윤봉길의 의거 이후 가족들이 겪었던 온갖 고초는 사실 그대로입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는 역사 소설들이 더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땅에서 우리 이름으로 우리 말을 쓰며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이런 분들 때문임을 늘 되새겨야겠습니다. 역사를 왜곡하며 국민들 눈과 귀를 가리려고 하는 친일의 후손들에게 속지 않으려면 어려서부터 제대로 역사를 배워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소년 영웅과 할아버지 독립군』은 초등 아이들과 함께 읽기 좋은 책입니다.
리뷰어클럽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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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없는 사람들을 당장 풀어 줘라. 조선 독립 만세! 대한 독립 만세!"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우의는 길 건너편 경찰서 앞 소동을 구경하다가 헌병대장의 '발사' 명령에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저.... 엄마, 독립이 뭐야?" 우의는 엄마에게 낮에 본 일들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엄마는 주저주저하면서도 하나씩 차근차근 설명했습니다. 사람들이 왜 경찰서 앞에서 독립을 외쳤는지, 또 경찰들은 왜 총을 쏘았고, 사람들은 두려워하면서도 왜 마지막까지 도망치치 않으려고 했는지.
바로 한 달쯤 전인 3월 1일에 서울 종로 거리에서 '독립선언'을 했는데 며칠 전에는 우의가 살던 충청도 예산의 덕산 마을에도 드디어 그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래서 오늘 4월 4일에 7백 명쯤 되는 동네 어른들이 장터에 모여 '독립 만세'를 외쳤던 것입니다.
'학교는 우리나라 사람을 일본 사람으로 바꾸는 곳이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자 우의는 보통학교를 그만두고 최은구라는 분이 혼자서 가르치는 사립학교로 가게 됩니다. 최은구 선생은 수천 년 전 중국에서 지어진 책의 내용을 가르치면서도 지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빠트리지 않았습니다. 2년 뒤 일제의 '서당규칙'에 의해 최은구 선생는 서당 문을 닫아야 했고 우의는 성주록 선생이 가르치는 오치서숙으로 가게 됩니다.
우의는 <개벽>의 열혈 독자였습니다. <개벽>은 종교단테에서 발간하는 잡지였지만 사회적인 관심을 다루는 내용이 훨씬 많았고 대부분의 지면이 총독부의 실정을 고발하거나 비판하고 나라의 안과 밖 곳곳에서 이루어지던 독립운동의 동향을 소개하는 글로 가득 채워지곤 했습니다. 1920년 12월에 발간된 6호에서도 우의의 눈길을 유난히 끌어당기는 기사가 하나 실렸습니다. '강우규 사전 예심 종결' 1910년 10월 7일 오전 11시, 조선충독부 관저에서 데라우치 총독이 일본 천황을 대신해서 작위와 은사금을 내리는 '수작식'이 치러졌는데 나라를 망하게 한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귀족들이 호히려 일본의 천황으로부터 작위와 돈을 받고 기뻐 춤을 추었다는 소식을 들은 강우규는 역겨움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평화롭게 독립 만세를 외치던 수많은 사람들을 향해 일본 헌병들이 무차별적인 폭력을 가했고 수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고 잡혀가고 말았다는 소식은 또다시 강우규를 분노하게 했습니다. 결국 3.1 운동이 일어난 뒤 우리나라를 통치하던 조선총독이 바뀌었는데 부임 첫날 그 신임 총독을 향해 강우규는 폭탄을 던졌고, 비록 총독을 죽이지는 못했지만 그 폭탄이 터져 수십 명을 다치게 했습니다. 그러나 친일 경찰 김태석에 의해 강우규는 고문을 당하고 재판에 넘겨져 사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1919년 3월 1일의 독립선언과 만세 운동은 온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두 달여 만에 만세 시위는 거의 진압되어 버리고 말았지만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상하이에 임시정부가 수립되어 '대한민국'이라는 새 나라의 이름과 모습이 정해졌고, 많은 뜻있는 사람들이 임시정부를 비롯한 독립운동 단체를 향해 밀려들었습니다.
3.1 운동 직후 빠르게 성장한 독립군부대들의 힘을 보여 준 사건이 바로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전투였습니다. 두 전투의 승전 소식은 또다시 느리지만 끈질기게 국내로 전해져서 번져 갔고 더욱 많은 젊은이들의 가슴에 불을 붙였습니다.
"대장부가 집을 나서면 살아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1930년, 스물세 살이 된 우의는 이렇게 쓴 글씨 한장을 남기고 집과 고향을 떠났습니다. 열두 살이 되던 해부터 늘 가슴에 풀어왔던 두 글자, '독립'을 위해 이젠 뭔가 해야 할 때가 되었다는 결심을 굳혔던 것입니다. 집을 떠날 때만 해도 우의는 십여 년 전 청산리와 봉오동에서 일본군을 무찔렀던 독립군 부대에 들어가 싸울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미 그곳의 상황은 예전과는 많이 달려져 대부분의 독립군 부대들은 이미 사라졌거나 더 멀고 깊숙한 곳으로 숨어 버린 뒤였습니다. 1년 뒤 임시정부에 들어가게 된 우의는 1932년 4월 29일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서 열린 천장절 행사에 물병 폭탄을 던지게 됩니다.
윤봉길은 백범 김구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 시계는 어제 선서식 후에 선생님 말씀대로 6원을 주고 산 시계인데 선생님 시계는 2원짜리니 제 것하고 바꿉시다. 제 시계는 앞으로 한 시간밖에는 쓸 데가 없으니까요." 이에 김구는 "후일 지하에서 만납시다"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또한 중국 국민당 정부를 이끌고 있던 총통 장제스는 윤봉길의 의거 소식을 듣고 깜짝 놀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 4억의 중국인이 하지 못한 일을 한 사람의 조선 청년이 해냈다." 이처럼 윤봉길의 의거는 한동안 침체에 빠져 있던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에 다시금 희망을 되찾아 주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중국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을 이끌어 냄으로써 임시정부와 광복군, 의열단을 비롯한 여러 조직들의 항일운동에도 커다란 힘을 불어 넣어 주었다.
올해는 3.1운동이 100주년 되는 해 입니다. 그리고 4월 11일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얼마전 TV에서 마지막 광복군 김우전님을 보았습니다. 마지막 광복군으로서 끝까지 나라의 통일을 걱정하셨는데 얼마전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기념하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처음 이 책을 읽으며 우의가 누구지? 하고 궁금했습니다. "처음 보는 인물인데... 참 곧고 강직한 사람이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책을 절반쯤 읽으며 우의에 대해 더 알고 싶어 검색을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럴수가! "우의가 윤봉길이었다니..." 정말 충격이었습니다. 이 책은 처음부터 윤봉길을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우의의 어릴적 모습과 성장배경 그의 생각들을 조금씩 소개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의 죽음에 대해서도 한마디 표현하지 않습니다. 폭탄을 던진 것으로 그에 대한 이야기가 끝이 납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가족과 주변인들로 계속 됩니다. 어릴적 <개벽>에서 만났던 강우규 처럼 그의 독립의지와 정신은 이제 민족의 희망이 되었습니다.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며 독립운동의 불을 피운 강우규와 불씨를 되살린 윤봉길의 이야기가 더욱 감명깊게 다가옵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지 않을까요? 꼭 쥔 두 손과 다문 입술로 미래의 윤봉길이 될 우의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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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영웅과 독립군이란 책을 받았을 때 누구나 다 짐작했으라. 3.1운동을 전후하여 대한독립을 위해 애쓰셨던 분들의 이야기가 아닐까하고... 짐작한 것을 벗어나지 않았지만 우리가 흔히 안다고 하는, 하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야기가 담겼다. 소년영웅 윤우의가 우리가 다 아는 윤봉길의사로 기억되는 그 순간이면에 감추어진 윤우의의 국가에 대한 열망과 노력이 부족하게나마 이 책에 담겨 있다.
이 책에는 윤우의 모델이 되는 강우규선생님의 삶과 윤우의의 삶이 함께 그려진다. 열두살 어린 윤우의가 본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이야기는 전개되고 <개벽>이라는 잡지를 통해 강우규선생님의 삶을 추적해 간다. 소년 윤우의가 도시락폭탄을 던지던 그 순간과 광복후 그의 유해가 효창원에 안치되던 순간, 윤우의 가족의 삶까지 일부 다뤄진다.
윤우의를 보면 나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지금 현재 평탄한 내 삶, 내 나라에 대한 고마움? 나는 국가라는 것에대해 진정으로 생각해 보았던 적이 있었던가? 물음을 던진다.
안일하고 편안한 내 삶에 대해 내가 바라는 국가의 이상에 대해 생각했지 내가 국가를 위해 우엇을 할 수 있는지는 생각조차하지 않았던 나의 부끄러움에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윤우의가 우리가 다 아는 도시락폭탄을 던진 윤봉길의사라서가 아니라 어릴 적부터 가졌던 그 마인드가 마음에 콕!하고 박힌다.
'대한민국'이라는 우리나라의 이름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나라를 빼앗길 때의 나라 이름인 '대한제국'에서 우리 민족을 가리키는 '대한'이라는 이름은 이어받되 '황제가 다스리는 나라'라는 뜻의 '제국'을 지워버리고, '국민들이 스스로 다스리는 민주공화국'이라는 뜻의 '민국'이라는 단어를 붙여 넣은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대한민국'이라는 이름 속에는 그렇게 나라를 잃고, 독립을 선언하고 , 그것을 실제로 이루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러가며 싸우는 과정에서 얻은 아픈 깨달음이 녹아들어 있다.
우리나라를 '대한민국'이라고 하는데 거기에 담긴 뜻을 모르고 있었다. 단지 한문으로 풀이해서 기본적으로 아는 뜻 말고. 어찌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국가에 대한 무지가 아니겠는가. 위의 문장이 가슴을 뭉클하게 하면서도 나의 무지에 부끄러움에 얼굴이 붉어졌다.
결국 소년 윤우의는 자신의 뜻대로 고향을 떠나 상하이를 거쳐 임시정부에 들어가게 된다. 4.29 도시락폭탄을 던지기 전 김구선생과의 식사를 끝으로 거사는 시행되었다.
시간이 흐름 지금, 지난 3월1일이 3.1운동의 100주년이 되는 해이고 곧 4월11일은 대한민국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다. 4. 29일 역시 윤봉길의사가 도시락 폭탄을 던졌던 날이다.
대한민국은 이 책에 드러나지 않은 많은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위에 지어진 나라다. 그 시대 견디며 핍박과 조롱을 견뎌온 독립운동가들의 가족들 그들의 숨은 노력이 이제는 빛을 발하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그들의 고마움은 물론 우리가 지켜고 사랑해야 되는 나라에 대한 의미를 다시 새겨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