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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장마철에 읽는 게 아니었다. 아니, 그럼 언제 읽어야 하나? 더울 때? 추울 때? 시원할 때? 따뜻할 때? 딱히 없구나. 그래도 그렇지, 이 지독한 습기 속에서 더 지독한 이야기라니, 남의 생이라니. 읽는 내도록 마음을 앓았다.
2012년에 발간된 책이다. 작품 속 1차 배경은 1979년 서울이고, 1980년 봄의 광주도 있고. 2차 배경은 그로부터 30년이 지났다고 하니 2010년 정도이고.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의 시대상을 떠올려 본다. 당시 대통령이...... 지난 시절을 돌아본다는 건 이런 건가 보다. 정치가, 정치적 상황이 결코 개개인의 삶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 게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는 일. 정치가 퍼뜨리는 어떤 조각들은 개인의 삶을 완전히 지배하고 바꾸고 망가뜨리기도 한다는 것까지.
소설은 재미있고 불편했고 유익했고 가슴아팠다. 나는 정말 이 시대 배경의 글을 읽기가 싫다(어디 이 시대의 이야기뿐이랴만). 왜 나를 역사의 죄인으로, 뻔뻔한 방관자로, 비겁한 소시민으로, 진실을 회피하는 겁쟁이로 만드는가 말이다. 나는 아무 잘못을 저지른 게 없는데, 같은 시대에 떨어진 곳에서 살고 있었을 뿐인데, 그 아픈 역사를 되짚을 때마다 마음이 무너진다. 소설은 나를 하염없이 무너지게 했다. 작가의 멋진 글솜씨까지 힘을 보태어서. 어쩌라고, 나더러 어쩌라고, 글만 읽고 있는 나에게 어떻게 하라고.
1960년대에 태어나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세대는(나를 포함하여), 지금의 우리나라 현실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이 말에 완전히 동의한다. 어떻게 책임을 져야 하는지는 하나도 모르면서. 그저 빚진 마음만 안고 있으면서.
그때 그시절, 뭘 좀 안다고 여겼던 이들, 뭘 좀 가졌다고 여겼던 이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세상을 바꿔야 한다고 외쳤던가. 소설은 이들을 차근차근 그려 낸다. 그리고는 30년을 보내면서 누구는 정치가로 누구는 교수로 누구는 출판사 사장으로 누구는 영화감독으로 누구는 교사로 만들어 주었는데, 세상을 그들이 원했던 곳으로 바꾸어 놓았는지에 대해서는 말이 적었다. 세상이라는 게 그리 빨리 바뀔 수 없는 곳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또는 그들의 힘만으로는 바꿀 수 없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이들, 무언가가 된 사람들 말고, 아무것도 되지 못한 채 상처만 받고 끝내 잊힌 자가 되고 만 정연 때문에 속상하고 또 속상했다. 어이하여 어떤 개인은 이렇게 헛되이 희생되고 마는 것인지. 나는 왜 늘 개인의 허무한 운명에 매달리곤 하는지. 소설인지 현실인지 구분도 안 한 채로.
에필로그는 내게 위로가 못되었다. 또 인하의 폭력성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나쁜 놈이니까.
책 제목으로 잡은 레가토라는 말이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낯선 모양이다. 그렇지만 소설 밖에서까지 설명을 보태었어야 할까? 그냥 독자로서 말뜻을 한 차례 더 찾아 보면 안 되나 싶었다. 말뜻 찾는 일이 소설의 남은 향기를 더 찾는 일이 되는 셈일 텐데. 나는 좋았었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