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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이븐바투타 여행기에 대한 축약본을 읽은 적이 있다. 축약본임에도 불구하고 낯선 용어와 지명들이 그대로 사용됨으로써 이해하기 쉽지 않아서 어려움을 겪었기에 이븐바투타 여행기에 대하여 한동안 관심을 끊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두레 출판사에서 [10대를 위한 이븐바투타 여행기]라는 책이 출간되어 그 관심을 되살릴 수 있게 되었다. 10대를 위한 책이라고 하지만, 적어도 내 기준에서는 원전 자체가 이슬람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면 낯선 풍습과 지명으로 인하여 쉽게 이해할 수 없었기에 이 책은 나를 비롯한 성인이 읽더라도 무방하다고 생각된다. 오히려 용어에 대한 해설과 일단 충분히 관심을 갖고 이해할 수 있는 대목들 위주로 실려 있기 때문에 이 책을 통하여 원전에 대한 관심을 가져볼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 책은 1325년부터 1354년까지의 이븐바투타의 여행 기록을 정리한 책이기 때문에 1271년부터 1295년까지 동방 여행을 체험한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과 비교하면서 읽어봄으로써 이븐바투타 여행기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 할 수 있을 것이다.
1325년 7월에 퇀자(오늘날 모르코의 탕헤르)를 시작으로 한 이븐바투타의 여행은 애초에 성지 순례로부터 비롯된다. 마르코 폴로는 상인으로서 실크로드와 중국, 바닷길을 통한 여행을 하였으나, 이븐바투타는 이슬람의 법관 출신으로서 무슬림으로서는 일생에서 꼭 해야 할 메카로의 성지 순례를 목적으로 여정을 시작한 것이다. 실제 이 책에서 첫번째로 등장하는 여정은 바로 1326년 12월까지 약 1년 6개월 간의 메카로 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이러한 성지 순례의 과정은 확실히 마르코 폴로의 여행 목적과 시작부터 다름을 알 수 있는데, [동방견문록]보다 더 자세하고 사실적인 기록임에도 불구하고 [이븐바투타 여행기]가 오늘날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를 이 부분에서 우리는 유추할 수 있게 된다. 마르코 폴로는 상인이었던 아버지와 숙부를 따라서 당시 제국을 형성한 원나라로의 여정을 다루고 있는데, 이는 오늘날에도 실크로드로 잘 알려진 익숙한 경로이기 때문에 [동방견문록]은 낯설지 않다. 더구나 오늘날 그 진위마저 의심될 정도로 다소 기상천외한 이야기들도 가미되어 있기에 확실히 흥미를 갖고 읽을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오히려 사실적인 설명을 토대로 한 [이븐바투타 여행기]는 잘 알려지지 않았을까? 개인적으로 이슬람 문화와 종교를 알지 못한다면 쉽게 이해되지 않는 항목들이 다수 존재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승자의 기록이라는 관점에서 오늘날의 역사는 서구의 시선에 따라 기술된 부분이 많기 때문에 이슬람이라는 종교적인 느낌이 강한 [이븐바투타 여행기]보다는 그래도 [동방견문록]이 더욱 부각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따라서 이러한 편견은 두 작품을 직접 읽어봄으로써 극복할 수 밖에 없다. 또한 그 편견은 이 책을 읽으면서 이내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바뀌게 된다. 당시 이집트는 비가 없어도 나일 강에만 의존해 농사를 지을 수 있었다. 오로지 나일 강에서만 이런 것이 가능했지 다른 곳에서는 강물에만 의존해 농사짓는 곳을 보지 못했다. 미스르(카이로)를 마주한 나일 강가에는 마을과 도시가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라우돠(꽃동산이라는 뜻)라고 부르는 이곳은 유람지로 수려한 화원들이 많았다. 그래서 미르스의 나일 강은 지상의 그 어느 강보다도 감미롭고, 연안 지역이 넓으며, 주는 헤택도 많았다. - p. 38 中에서 -
이집트의 나일강에 대한 이븐바투타의 묘사만 보더라도 이 작품이 기행문의 필수 요소라 할 수 있는 사실적인 관점에서 충실하게 쓰여져 있음을 느끼게 된다. 더군다나 이러한 묘사는 오늘날의 나일강과 이집트의 모습과 연관지어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를 갖게 된다. 심지어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이집트의 '파로스 등대'에 대한 상세한 묘사는 그 묘사를 통해서 등대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븐바투타의 묘사가 얼마나 꼼꼼한지를 보여준다. 여기에 더하여 우리에게는 낯선 이슬람의 풍습을 설명하는 부분도 이슬람 문화에 대한 이해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다마수쿠스에서 그가 목격한 아래의 이야기는 오늘날 일상 피해 보험과 유사한 이슬람의 보조기금 운영에 대한 내용인데, 이를 통하여 당시 이슬람 문명이 유럽보다 더 선진적이었음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어느 날 골목에서 남자아이를 만났는데, 그 아이는 귀한 자기접시를 들고 가다 그만 떨어뜨려 깨뜨리고 말았다. (중략) 그중 한 사람이 이 아이에게 "깨진 조각을 주워 보조기금 관리인에게 가지고 가라"고 타일렀다. 그리곤 그 아이와 함께 관리인에게 가서 접시 조각들을 보여 주었더니 그 관리인은 별 군말 없이 그만한 접시를 살 돈을 선뜻 내주는 것이었다. - p. 56 中에서 -
또한 이븐바투타는 각각의 도시에 대한 사람들을 자세히 묘사함으로써 당시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여행기는 학술적으로도 가치가 있음을 알게 된다. 메카 사람들의 의상은 우아하고 깨끗하며, 늘 푸른 아라크 나뭇가지로 이를 닦는다. 메카 여인들이야말로 이를 데 없이 조촐하고 곱고 아름다우며 청렴정결하다. 그녀들은 향수를 몹시 즐기는데, 심지어 하룻밤을 굶고 지내는 한이 있더라도 향수만은 꼭 사서 쓴다. - p. 67 中에서 - 흥미로운 부분은 이븐바투타의 인물 묘사에서 여성들이 빠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실 그는 이슬람 법관 출신이기 때문에 이슬람 문화권에 해당하는 지역에서는 환영과 대우를 받으면서 여행을 하였다. 심지어 그는 각 지역에서 결혼과 이혼을 반복하면서 곳곳에 자식들을 만들기도 한다. 이슬람 특유의 가부장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있지만, 당시 유목 또는 무역으로 인하여 잦은 이동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여성들이 자손을 얻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든다. 왜냐하면 여성들은 이븐바투타와 함께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살던 지역에 그대로 남아서 생을 마감하였으니 말이다.
마르코 폴로가 베네치아에서 원의 수도인 대도(오늘날 북경)로 향하려는 뚜렷한 목적이 있던 반면, 이븐 바투타의 여행은 처음부터 정해진 목적지가 없었다는 점에서 오히려 다양한 여행이 가능하지 않았나 생각된다. 원래 성지 순례를 위하여 출발한 여정이었지만, 메카에 도착한 이후에는 각종 정보를 활용하여 다양한 지역으로의 여행을 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르코 폴로가 이전에 가보지 않은 소아시아 지역을 비롯하여 비잔틴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로, 아프리카 및 스페인의 안달루스, 인도에 대한 기록은 오직 이븐바투타의 여행기에서만 만나볼 수 있게 된다. 또한 마르코 폴로와 겹치는 경로에 대해서는 두 여행기를 비교할 수 있기 때문에 각각의 관점의 차이를 마주하게 된다. 비록 마르코 폴로가 이븐 바투타보다 먼저 여정에 올랐지만, 50년의 차이는 역사에서 그리 큰 시간차라 볼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한 비교는 무척 흥미롭다. 가령 중앙아시아 지역과 중국은 둘의 여정에서 겹치는 부분인데, 그 시선의 차이는 극명하게 드러난다.
마르코 폴로는 중앙아시아 지역을 지나면서 당시 몽골 제국이 이룬 역참 제도와 더불어 사라만다와 같은 다소 기상 천외한 이야기를 배치함으로써 흥미를 배가 시켰다면, 이븐 바투타는 '틴키즈 법규'를 언급하면서 파괴된 도시에 대한 향수와 함께 몽골 제국의 무자비한 처사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틴키즈 법규'는 몽골에 협력하면 자치권을 포함하여 많은 배려를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풀 한 포기 남기지 않고 모조리 황폐화시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로 인하여 칭기스칸의 사절을 처형함으로써 완전히 초토화된 호라즘 제국의 도시들을 언급하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마르코 폴로는 중국에서 오래 머물면서 그 엄청난 부귀영화를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면서 유럽의 동방에 대한 환상을 불러 일으켰지만, 이븐 바투타는 인도왕의 사절로 방문한 중국을 부에 있어서는 세계 최고라는 점을 인정하였지만, 그들의 풍습에 대하여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는 뉘앙스를 풍기면서 다른 지역과 비교했을 때, 상세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이는 마르코 폴로가 방문한 시기는 원의 전성기인 세조(쿠빌라이 칸)가 통치하던 시기였고, 이븐 바투타는 명에 밀려 쇠락하는 순제 시절임을 감안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더군다나 중국에 대한 기록은 이븐바투타 역시 시대를 혼동한 부분이 있어서 좀 더 연구가 필요하다는 생각도 든다.(이븐바투타가 방문한 시기에는 여전히 원의 순제가 살아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죽어서 순장하는 것을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븐바투타의 여행기는 마르코 폴로보다는 확실히 자세하면서 사실적인 기록을 남겼다는 점에서 역사적인 가치가 더 높아 보인다. 특히 자신이 속한 이슬람 문화권은 물론 이교도에 대한 묘사 역시 객관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힌두교의 사티(남편이 죽으면 아내를 함께 태워 죽이던 의식)에 대한 그의 설명을 보자. 이곳에서는 남편이 죽으면 그 주검에 불을 지르고 미망인은 죽은 이와 함께 분신한다고 한다. 다만 남편 사후에 분신하는 것은 자의적인 것이지 결코 의무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분신을 하면 그녀의 가족은 명예를 얻고 수절자의 반열에 속하게 되고, 분신을 안 한 미망인은 천박한 옷을 입고 친정에서 가엾게 수모를 받으며 평생을 살아야 한다. - p. 188 中에서 - 사티에 대한 이러한 사실적인 묘사와 더불어 그 장면을 직접 목격한 이븐바투타는 말에서 떨어질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러한 힌두교 의식은 이슬람의 술탄이 관장하는 지역에서는 술탄의 허락을 맡아야 할 정도로 강제적으로 성행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1829년 영국 식민지 시절에 금지령이 내려서 줄고 있지만, 여전히 인도에서는 사티가 일어나고 있으며 대부분 미망인이 아닌 주위의 강요에 의하여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이와 더불어 갠지스 강에서의 힌두교 의식인 수장에 대한 설명도 객관적으로 잘 기록되어 있어서 확실히 사료로서 가치가 있다.
현지인들은 성당을 아야 수피아라고 부른다. 룸 인들의 가장 큰 성당으로,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마치 하나의 도시를 방물케 한다. 성당에는 문이 모두 13개가 있으며, 길이가 1.6킬로미터쯤 되는 정원이 있다. 정원에는 누구나 들어갈 수 있다. - p. 160 中에서 - 당시 이슬람 문화권이 곳곳에 전파된 상황에서 거꾸로 그가 이교도가 되어 콘스탄티노플에서 마주한 성 소피아 성당에 대한 묘사도 흥미롭다. 이슬람교도이기에 성당에 직접 들어갈 수 없어서 외부만을 묘사한 그의 처지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말년에는 그는 스페인의 안달루시아의 그라나다는 물론 아프리카의 내륙까지도 여행을 하지만, 비이슬람권에서는 그가 큰 환대를 받지 못한 채 고생스럽게 여행을 한 부분을 보게 된다. 이 대목은 거꾸로 이븐바투타가 무려 29년간 4개 대륙을 무사히 여행을 할 수 있었던 점은 당시 이슬람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이었기에 곳곳에 포교를 위한 '자위야'가 있어서 숙박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고, 이슬람교 특유의 형제애와 더불어 그의 법관이라는 신분은 환대를 이끌어낼 수 있었으며, 기존의 무슬림들의 각종 여행 관련 기록을 참조하였기에 가능함을 보여주기도 한다.
[10대를 위한 이븐바투타 여행기]는 이처럼 여행지에 대한 모든 것은 물론 당시 사회상을 그대로 충분히 고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동방견문록]보다 오히려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된다. 인도에서 마법사라 몰린 여자를 물주머니와 함께 물에 던져서 뜨는 것의 여부를 살펴보는 것은 결코 마녀 사냥이 유럽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님을 보여주며, 중국의 큰 배가 무려 1천 명이나 탈 수 있었다는 점은 시간이 흘러 이루어진 명나라 정화의 함대 규모를 가늠할 수 있다는 점에서 확실히 이 책의 내용은 곳곳에서 다양한 의미를 찾을 수 있어서 읽어 볼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정리되어 작성된 것이 이정도라면 실제 원전을 읽는다면 보다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누구라도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해 보고 싶다. 이슬람 문화권에 낯선 우리에게는 어렵지 않게 이븐바투타의 여행기에 대한 매력을 알게 해주고 있으니 말이다.
( 이 리뷰는 출판사 두레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글입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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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자신의 일상을 떠나 색다른 세계를 경험하는 일이다. 때문에 여행을 다니면서 만났던 사람이나 풍물들에 대해 새롭게 자각하고, 그에 대한 기록을 남기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여행기 혹은 기행문이라 하겠다. 보통 사람들은 불과 며칠 동안의 짧은 여행만으로도 특별한 경험이라 생각하는데, 30여 년 동안 여행을 다녔던 이븐 바투타에게는 아마도 여행이 그의 인생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여겨진다. 한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떠도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일컬어 ‘역마살’이 끼었다고 표현한다. 그렇다면 이 책의 주인공인 이븐 바투타 역시 그의 삶에 역마살이 끼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븐 바투타(1304~1368)는 모로코 출신의 아랍인으로서, 14세기 전반 약 30여 년간 아랍과 인도 그리고 중국 등을 여행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세계 4대 여행기 중의 하나로 꼽히는 이 책은 아랍어 완역본을 ‘10대를 위한’ 문체와 내용으로 가다듬어 쉽게 정리한 발췌본이라고 할 수 있다. 완역본은 이슬람 문화를 전공하거나 특별히 그에 흥미가 있는 사람들이라면 도전해 볼 수도 있겠지만, 일반인들로서는 읽기 시작하는 것조차 엄두를 내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 여겨진다. 저자는 이 책의 독자들을 10대를 상정하고 있지만, 그 내용이나 문체는 일반 성인 독자들도 손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서술되었다. 나 역시 이 책을 통해서 그동안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던 이슬람 문화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아랍을 여행하거나 그곳의 지리를 깊이 있게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가 아니라면, 저자의 여정을 하나하나 따지고 확인하면서 읽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만 14세기 전반의 아랍은 다수의 부족들이 존재했고, 각 부족의 수장을 술탄이라고 불렀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슬람 문화에서 메카와 메디나로 상징되는 성지순례는 일생을 두고 꼭 한번이라도 거쳐야만 할 과정이라는 사실도 중요하다. 특히 당시의 이슬람 부족들이 성지순례자와 방문객들에 대해 매우 관대했다는 것, 그리고 법률가에 대한 대접이 아주 깎듯했다고 한다. 법률가인 이븐 바투타가 이슬람 각국을 여행하면서 큰 어려움 없이 지낼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런 문화를 고려하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듯하다.
이슬람에서는 일부다처제가 용인된다고 알고 있는데, 이븐 바투타 역시 이슬람 각국을 여행하면서 곳곳에서 적지 않은 여성들과 결혼을 하고 때로는 그들 중 일부와는 이혼을 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이 ‘가는 곳마다 현지 여인과 결혼하여 수많은 자녀를 두었다’고 거리낌 없이 밝히고 있는데, 그 자녀들을 모두 양육했던 것 같지는 않다. 문득 이 시점에서 곳곳에서 그와 결혼한 부인들은 자신의 뜻에 따라 결정한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남성들의 권위가 절대적이었던 아랍권에서 결혼조차 여성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남성들에 의해 쉽게 결정되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날 여성들의 인권이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당시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겠다.
특별한 손님을 모시는 것을 영광으로 알고 있었던 듯, 소아시아의 라지크라는 도시에서는 바투타 일행을 서로 모시기 위해 다투다가 결국 제비뽑기로 결정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한다. 그리고 바투타는 가는 곳마다 각 부족들의 수장인 술탄을 만나 자신의 여행 경험과 지식을 펼치기도 한다. 아마도 당시 아랍에서 바투타와 같은 지적인 여행들을 통해서 자신이 가보지 못했던 곳에 대한 정보나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이려고 했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술탄들은 돈과 음식으로 바투타 일행들을 대접하였다. 인도에서는 사신단의 일행으로 중국을 방문할 기회를 갖고, 여러 해 동안 당시 원나라의 상황을 목격하기도 하였다. 바투타 일행에 대한 이러한 환대가 오랜 기간 동안 여행을 할 수 있게 하였던 중요한 원인이었음은 물론이다.
1325년에 20대 초반의 나이로 성지순례를 떠났던 바투타는 1349년 40대 중반의 나이로 긴 여행을 마치고 고향에 돌아왔으며, 이후 다시 3년 동안 아프리카로의 여행 기록을 남겨 거의 30여 년간을 여행으로 소일했던 것이다.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바투타는 고국인 모로코의 술탄의 명령에 의해 여행기의 쓰기 시작하여 2년이 되지 않아 집필을 마쳤다고 한다. 현재 바투타의 원본은 사라지고, 당대의 문장가인 ‘이븐 주아이 알 칼비’에 의해 매끄럽게 다듬어진 판본이 현재 전하고 있다고 한다. 원래 제목은 ‘여러 지방의 기이한 일과 여행 일정의 특별한 행적을 목격한 자의 보물 같은 기록’이었는데, 일반적으로 <이븐 바투타 여행기>라고 불린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바투타의 행적을 좇아 아랍 지역을 비롯한 다양한 나라의 풍속을 접하였고, 그것을 통해서 이슬람 문화에 대한 이해가 조금은 더 깊어졌다고 생각된다.(차니)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제공한 책을 바탕으로 작성된 것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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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사라졌을지도 모를 여행기
원래 제목이 <여러 지방의 기사(奇事)와 여러 여로(旅路)의 이적(異蹟)을 목격한 자의 보록(寶錄)>인 <이븐 바투타 여행기>는 마르코 폴로(Marco Polo, 1254~1324)가 구술(口述)한 <동방견문록>, 혜초(慧超, 704~787)의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 오드릭(Odoric of Pordenone, 1265~1331)이 구술한 <동방기행>과 더불어 세계 4대 여행기1)라고 한다. 이중 가장 낯선 것은 오드릭의 <동방기행>이지만, <이븐 바투타 여행기>도 만만찮게 생소하다. 아마도 이 글이 독실한 무슬림에 의해 쓰였기에 낯설고 긴 사람 이름과 지명, 단어들이 지뢰처럼 튀어나오고, 축약본의 저자가 언급한 것처럼 “완역본은 이 책[축약본]이 미처 다루지 못한 이븐 바투타의 신앙심이 잘 나타나 있다. 예를 들면, 성인의 이름을 호명한 뒤에는 반드시 ? 그에게 평화를 ? 같이 축복을 비는 형식”[p. 8]으로 되어 있다는 점도 그 원인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불행히도 그가 쓴 원본은 사라져 전해지지 않지만, 14세기의 시인이자 명문장가인 이븐 주자이 알 칼비(Ibn al-Juzayi al-Kalbi, 1321~1357)에 의해 정리된 것이 400여 년의 공백을 거쳐 현재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
<이븐 바투타 여행기>의 특징
비슷한 시기의 여행기인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과 달리 이 책은 사실적이고 세세한 기록이 특징이다.
예를 들면, 인도 이교도[힌두교도]의 순장(殉葬)인 사티(Sati)2)에 대해 “이곳에서는 남편이 죽으면 그 주검에 불을 지르고 미망인은 죽은 이와 함께 분신한다고 한다. 다만 남편 사후에 분신하는 것은 자의적인 것이지 결코 의무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분신을 하면 그녀의 가족은 명예를 얻고 수절자의 반열에 속하게 되고, 분신을 안 한 미망인은 천박한 옷을 입고 친정에서 가엾게 수모를 받으며 평생을 살아야 한다. ~ 중략 ~ 미망인은 분신하기 전 3일 동안은 종일 노래를 부르고 즐기며 먹고 마신다. 나흘째인 분신하는 날엔 향수를 뿌리며 얼굴과 몸을 화려하게 꾸민 뒤 브라만에게 에워싸여 취타대(吹打隊) 뒤를 따른다. ~ 중략 ~ 곧이어 불에 경의를 표하고선 분연히 불 속으로 뛰어들었다.”[pp. 188~189]고 서술하였다.
신앙심이 깊고 진실한 무슬림이 사는 지바툴 마할 제도[몰디브 제도]의 풍습은 “섬의 여인들은 머리를 가리지 않는다. 그녀들은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빗어 넘긴다. 여성들은 대부분 타월 한 장으로 배꼽부터 하체까지만 가릴 뿐이다. 내가 현지에서 법관으로 일할 때 이를 바로잡으려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 중략 ~ 지바툴 마할 제도에 배가 들어오면 배에 탄 사람들은 이곳 여성과 결혼을 했다가, 떠날 때는 이혼을 한다. 일종의 임시결혼이다. 하지만 이혼을 해도 이곳 여성들은 절대로 고향을 떠나지 않는다. 또한 부인은 다른 사람이 남편의 시중을 들지 못하도록 본인이 모든 시중을 든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남편과 한자리에 앉아서 식사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남편은 부인이 무엇을 먹는지도 모른다.”[p. 229]고 옮겼다.
축약본의 저자에 따르면, 이는 저자인 이븐 바투타(Ibn Batutah, 1304~1368?)가 샤이흐(shaykh)3) 이자 법관의 신분이었기에 한 나라의 위정자를 바로 곁에서 만날 수 있었고, 호기심 많아 알려지지 않은 마을 구석구석까지 탐험했기에 가능했다고 한다. 어쨌든 덕분에 우리는 14세기의 크고 작은 44개 도시들의 풍경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생생하게 엿볼 수 있게 되었다.
10대가 아닌 이슬람 문화에 무지한 이를 위한 책
비록 책 제목은 <‘10대를 위한’ 이븐 바투타 여행기>라고 되어 있지만, 이슬람 문화에 무지한 우리의 눈 높이에 어울리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우리에게 무슬림은 ‘알라’라는 신을 모시는 잠재적인 테러리스트 정도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여기에는 ‘무슬림=근본주의=테러’로 연결되는 이미지를 확대, 재생산하는 서구 언론의 영향도 있다. 물론 반대로 자비와 관용의 종교를 일부 무슬림 때문에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본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이 모든 것이 근본적으로 우리가 이슬람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알라’가 유대교의 ‘야훼’, 기독교(천주교, 개신교, 동방 정교회)의 ‘하나님[The God]’과 동일한 대상을 가리키는 대명사라는 사실을 아는 한국인이 얼마나 될까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이슬람에 대해 무지한 이에게 적합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축약본이 아닌 완역본을 읽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외국어를 처음 배우는 이에게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이나 만화가 아닌 대학교재를 읽으라는 말과 비슷하다. 물론 무함마드 깐수로 알려진 정수일이 완역한 2권짜리 <이븐 바투타 이야기>가 있으니 읽을 수는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읽는 것도 쉽지 않겠지만, 다 읽었더라도 이해하지 못하면 지나가는 그림을 보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븐 바투타가 겪을 기이한 경험을 우리에게 익숙한 지역을 중심으로 쉽게 풀어 쓴 이 축약본이 소중하다. 세계 3대 종교 가운데 하나인 이슬람교에 대해, 또 이를 믿는 무슬림에 대해 우리의 눈과 귀로 바라보고 들을 수 있는 나침반이 되기 때문이다.
* 이 글은 도서출판 두레로부터 제공받은 책에 대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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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 유럽인들에게 '오리엔트의 동쪽끝'을 더 동쪽으로 확장시킨 공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으로 보면 된다. 이 책을 마르코 폴로가 직접 썼느냐 하는 '진위논란'은 중요하지 않고 말이다. 암튼 이 책에서 언급한 '황금으로 가득한 지팡구'라는 표현이 당시 유럽인들에게 목숨을 건 모험과 부를 약속하는 듯한 탐험을 부추겼으니 말이다. 일설에는 동쪽 끝에 있다는 '지팡구'가 지금의 일본이 아니라 '신라'라고도 한다. 물론 이런 내용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은 아니다. <동방견문록>의 여정을 보아도 마르코 폴로가 직접 고려(당시 한반도 국가)와 일본을 다녀갔다는 증거는 없고, '그런 말을 들었다'고 쓰였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실을 확인할 수 없는 이 말의 파장은 엄청났다. 그러나 이븐 바투타는 달랐다. 그의 여정은 마르코 폴로보다 훨씬 더 멀었으나 견문의 사실성은 훨씬훨씬 더 정확하고 사실적이다. 그래서 <동방견문록>보다 <이븐 바투타 여행기>가 더 가치가 있는데도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대중들의 관심이 '좋은 소문'보다는 '나쁜 소문'에 더 민감하기 때문일까? 이와 같은 사실을 보여주는 실험이 있다. 유명강사의 강의가 한창인 교실에 '의도된 실험자'를 투입한다. 그 실험자는 교실에서 '소문'을 퍼트리는 역할을 한다. 첫 번째 교실에서는 강사에 대한 '긍정적인 소문'을 학생들에게 퍼트렸다. 온 교실의 학생들에게 그 소식이 다 퍼지는데 걸린 시간은 무려 3시간이 넘은 반면, 두 번째 교실에서 강사에 대한 '부정적인 소문'은 30분도 채 지나기 전에 모든 학생들에게 다 퍼지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이 실험이 보여주는 의미 있는 결과는 평범한 사람들은 '나쁜 소문'에 더 크게 관심을 보인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나쁜 소문은 '선정적'인 내용이거나, '돈'과 관련이 있거나, '자신과 자신을 포함한 집단'에 관련된 내용일수록 더 빨리 소문이 퍼지는 결과를 보였단다. 아마도 <이븐 바투타 여행기>가 <동방견문록>보다 덜 알려진 까닭은 여기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여행기의 가치'는 거짓말을 늘어놓은 책보다는 사실적이고 편견없이 공정한 내용을 담은 책이 더 크지 않을까. 먼 길을 떠난 여행자들에게 훌륭한 '가이드' 역할을 해야 하는 책이 '여행기'일 것이니 말이다. 다행히 <이븐 바투타 여행기>는 오늘날에 보아도 '사실적'이어서 더 가치가 크다고들 말한다. 그런 탓일까? 솔직히 너무 정확한 내용을 담고 있어서 살짝 지루하다. 더구나 여행지 곳곳에서 만나는 '이슬람'과 '무슬림'에 대한 우리의 상식과 인식이 그닥 폭넓지 않은 탓에 술술 읽히지 않는 면이 있다. 더구나 여행지조차 우리에게 낯선 지명이 더 많은 것은 두 말 할 것도 없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을 읽기에 앞서서 '이슬람 상식'을 쌓을 수 있는 책을 먼저 읽으면 효과적일 듯 싶다.
그런 의미에서 이슬람 상식을 몇 가지만 소개한다. 먼저, 이슬람은 유일신 종교다. 이슬람에서 말하는 알라는 유대교의 신과 그리스도교의 하나님과 같다. 모두 유대교에서 파생한 종교이기 때문이다. 유일한 절대자를 신으로 섬기는 것은 조로아스터교에 영향을 받았다는 점도 똑같다. 그런데도 오직 하나의 신만을 각자 믿고 따르려는 배타적 경향 때문에 유대교도와 그리스도교, 그리고 이슬람교는 현재까지도 예루살렘이라는 공동의 성지조차 함께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암튼, '알라 이외에 다른 신은 없다'는 '하나님 이외에 다른 신은 없다'로 읽어도 같은 의미다.
다음은, 이슬람을 믿는 사람을 '무슬림'이라고 부른다. 무슬림은 '기도하는 사람'이란 뜻으로 하루에 다섯 번의 기도를 꼭 지키는 신앙심 깊은 종교인이다. 그리고 같은 신앙을 믿는이를 '형제'로 일컬으며 허물없이 지내며 설령 믿음이 다를지라도 '다름'을 인정하는 순박한 사람들이기도 하다. 실제 이슬람 역사에서도 타종교를 믿는 백성에게 '믿음'을 강요한 적은 없었단다. 대신 '세금'만 내면 믿음의 자유는 보장되었기에 관대한 종교이었으며 정복된 주민이라도 '무슬림'이 되면 세금도 없고 형제로 받아주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오늘날에 '테러'를 행하는 무시무시한 이미지를 주는 까닭은 '유럽인들이 느끼는 거부감과 공포심'에서 기인한 것을 우리가 비판없이 바라본 탓이 크다고 본다. 십자군까지 동원하여 '이교도'를 정벌하러 보낸 이들이 만들어낸 오해에서 비롯된 시선은 걸러내야 진면목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슬림이라면 꼭 지켜야 하는 '다섯 계율'에서 비롯된 생활모습은 '이슬람 문화'를 이해하는데 기본이 될 것이니 꼭 알아두면 좋다. 그중에서 '성지순례'와 '자카트'는 <이븐 바투타 여행기>의 중요 배경이 되니 꼭 이해해야 할 것이다. 성지순례는 이슬람 뿐만 아니라 모든 종교가 권장하는 것이라 생소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도 '중심지'라는 뜻으로 곧잘 쓰는 '메카'라는 표현은 무슬림들의 성지를 가리키는 말이며, 이슬람의 선지자인 '무함마드(영어식 표현, 마호메트)'가 예언을 듣고 깨달음을 얻은 '카바 신전'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무슬림은 일생의 한 번은 반드시 이곳을 방문해야 하는 탓에 '이븐 바투타'도 이 여행기의 여정을 메카로 이끌었다.
그러나 이븐 바투타의 여정은 메카에서 멈추지 않았다. 무슬림의 삶을 관통하는 '자카트'로 인해서 이븐 바투타를 더 먼 곳으로 가게 만들었다. 비유적인 표현이 맞을지는 몰라도, '신들의 장난'으로 인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오딧세이'처럼 이븐 바투타도 '자카트'로 인해 끝나지 않은 여행을 하게 된 느낌이 들었다. '자카트'란 종교세다. 무슬림이라면 연수입의 2%를 자카트로 납부를 한다는데, 그 세금으로 빈곤층과 공공복지를 위해 쓰인다고 한다. 이븐 바투타가 여행을 하던 시기에는 '이슬람'이 번성하던 시기였다. 이 말은 달리 말하면, 이븐 바투타가 내딛은 걸음걸음마다 '이슬람에 의한 번영과 혜택'을 받았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오늘날에도 '경제적인 부'와 더불어 '복지정책'이 잘된 국가의 국민들은 세계 어디든 여행을 다니고 있다.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한 국가의 국민들은 평생 여행을 꿈도 꾸지 못하는 것이 단순히 '우연의 일치'로 엿보이지 않은 까닭이다.
암튼, <이븐 바투타 여행기>를 읽고 '본받아야 할 업적'이나 '교훈적인 내용'을 찾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데도 '10대 어린이'들에게 필독서처럼 권하는 까닭은 '여행'이 주는 묘한 감흥을 경험해볼 수 있기 때문인 듯 싶다. 여행은 '낯선 곳에서 낯선 이들을 만남'이라고 설명한 책들이 많다. 그리고 '길에서 배우는 인생의 지혜'라고 설명한 책들도 참 많다. 이븐 바투타가 800여 년전에 떠난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은 참 순박하였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여행을 떠나서 만나는 이들치고 나쁜 사람은 드물다. 여담이지만, 오히려 유명한 여행지에 도착해서 불쾌한 경험을 한 적이 더 많을 것이다. 반면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길'에서 만난 이들은 마치 날 도와주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처럼 도와주려고 해서 기뻤던 적이 참 많다. <이븐 바투타 여행기>에서 보이는 수많은 그의 여정에서도 그랬던 것 같다.
예스24를 통해 두레 서평단의 자격으로 쓴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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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븐 바투타 여행기(Rihlatu Ibn Batutah)>는 모로코 인이던 이븐 바투타가 1325년부터 1354년까지 30여 년간 서남아시아, 유럽, 동아프리카, 중국 등 오늘날의 국경을 기준으로 44개국 약 12만 킬로미터를 여행한 기록을 적어놓은 것이다. 1325년은 고려 충숙왕 때로 그야말로 Long time ago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는 <왕오천축국전>을 저술한 혜초는 그보다 더 오래전에 우리 땅에서 인도까지(당시로는 엄청난 거리의 여행이었을 것이다)가서 여행기를 남기기는 했지만, 이븐 바투타 여행기 또한 매우 오래 전의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에 사는 사람, 문화를 기록한 의미있는 책이다. ![]() 이븐 바투타는 1325년 메카 성지순례를 위해 길을 나선 뒤 곧바로 고국에 돌아가지 않고 아시아와 유럽 지역을 여행했다. 용기가 있다. 이렇게 훌쩍 떠나고 싶을 때가 많은 요즘이다. 30여 년간 긴 여행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온 그가 모로코 술탄의 명령에 따라 여행기를 쓰기 시작해서 2년도 되지 않은 1355년 12월에 집필을 마쳐 완성한 것이 <이븐 바투타 여행기>이다.
하지만 오늘날 이븐 바투타가 직접 쓴 원본은 사라져 전해지지 않는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책은 ‘가급적 언어를 다듬고 윤색하여 그 뜻을 명확히 살리라’는 술탄의 명령을 받은 당대 시인이자 명문장가인 이븐 주자이 알 칼비가 이븐 바투타의 원문을 정리하여 엮은 것이다. 그래서 책의 원래 제목도 <여러 지방의 기이한 일과 여러 여행길의 다른 문화를 목격한 자의 보배로운 기록>으로 되어 있지만, 일반적으로 이 책을 <이븐 바투타 여행기>라 부른다.
이 책은 깐수 정수일 교수님의 이븐 바투타 여행기 완역본을 10대나 바쁜 현대인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간추린 책이다. 서평을 해야하는데 깐수 정수일 교수님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면 그의 인생이 이븐 바투타보다 더욱 파란만장하고, 그 역시 언제나 이방인이었기 때문이다. 정수일 교수님은 1934년 중국에서 태어났다. 북경대 아랍어과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중국 국비 장학생 제 1호로 이집트 카이로대학 인문학붸 유학한 뒤 중국 외교부 및 중국의 모로코 대사관에서 근무한다. 정수일 교수님은 12개 국어를 하고, 아랍의 역사와 학문에 타의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해박한 지식과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가 그를 중국사람으로 살아가길 원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다. 하지만 그는 조국을 생각한 민족주의자였고, 일제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에 그는 조선인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정 교수님은 그의 원적이라고 할 수 있는 북한으로 들어갔고, 북한에서 김일성 통역을 맡을 정도로 인정받는다. 물론 북한에서는 정 교수님을 단순한 어학교수 정도로 생각해 크게 대우를 하지 않았다고도 한다. 북한이든 한국이든 당시에는 먼 아랍의 인문학자가 무슨 의미가 있었겠는가... 이후 북한에서는 평양외국어대 교수로 지내던 그를 이국적 외모와 해박한 언어 구사능력을 보고 남한으로 간첩 파견을 한다. 정교수는 아랍인으로 신분 세탁을 해 '무함마드 깐수'로 이름을 바꾸고 레바논, 튀니지 등에서 학위를 받고 한국으로 온다. 일부러 위장을 위해 연세대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단파 라디오를 이용해 북한의 지령을 수신해 북한에 첩보를 보낸다(물론 별 의미없는 학문적 첩보를 자주 보내서 북한으로부터 많이 혼났다고 한다) 북한으로 정보를 보내다 결국 체포되어 간첩인 것이 판명되고 사형을 선고받았다가 다시 12년향으로 감형 받는다. 정수일 교수님은 북한에도 식구가 있었으나, 철저히 위장해 남한에서 결혼도 하고 심지어 남한의 아내는 체포되는 순간까지 그가 간첩인 줄 몰랐다고 한다. 감옥에서 아주 적은 기록과 자신의 암기를 이용해 여러 저술을 했고, 특히 남한 아내와 주고 받은 편지를 묶은 책이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다>로 나도 읽고 감명을 받았다. 한국 최고의 천재중 한 명일 수도 있는 대학자를 우리는 이념에 갇혀 간첩으로, 감옥에서 허송세월을 하게 만들었다. 시대의 아픔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14세기 이탈리아 수도사 오도릭이 남긴 <동방기행>,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 그리고 바로 <이븐 바투타 여행기>가 세계 4대 여행기로 불리고 있다.
그렇다면 이븐 바투타는 누구인가? 이븐 바투타는 1304년 아프리카 서북부 모로코의 퇀자(오늘의 탕헤르)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정은 베르베르 계(나일 계곡 서쪽 북아프리카의 토착 민족)의 라와타 부족 가문으로, 본인은 물론 사촌도 법관을 지냈다는 사실이 남아있어 법조계 집안이라 할 수 있다. 과거에는 집안의 일을 같이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는 결국 조금은 지체가 높은 집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아주 엄격한 이슬람 문화 속에서 교육받은 샤이흐(아랍 어로 ‘노인’ 또는 ‘늙은 장로’라는 뜻)이자 법관으로, 30여 년간 여행하면서 네 차례나 성지 메카를 순례했다. 독실한 이슬람 신자라고 할 수 있다. 여행 내내 샤이흐의 신분으로 예우를 받으며 다른 이슬람 국가들의 명사들을 만났다. 법관이자 샤이흐의 신분이었기에 인도의 델리와 지바툴 마 할(오늘날 몰디브)에서 법관을 지냈고, 인도 델리 술탄의 특사로 중국 원나라 순제(1320~1370)에게 파견되기도 했다. 동서양을 누비면서 역사에 등장한다. 대단한 인물이다.
여행기를 보다보면 대부분 다른 지역의 샤이흐에게 융숭히 대접받은 이야기도 나오고 몽골의 일한국에서의 생활, 저자의 주로 당시의 역사를 알려주기도 한다.
대단하다. 요즘 같은 시기도 여행을 다니기 힘든데, 이븐 바투타는 그야말로 그 당시에 있었던 세계 모두를 땅을 밟으며 돌아다녔다.
당시의 세계는 몽골의 징키스 칸 휴예들이 지배했다. 동유럽 일부, 아프리카만 빼놓고는 몽골의 4한국 체제로 중앙, 서아시아, 유럽 일부까지 미치는 대제국이었다. 하지만 기마병으로 지역을 훑듯이 지나가서 많은 원주민 문화가 많이 남아 있었고, 일부 자치의 성격도 많이 보인다.
마자르 사람들은 여성들을 존대했는데, 여성의 지위가 남성보다 확실히 높았다. 내가 본 첫 아미르의 부인은 카람을 출발할 때 수레를 타고 갔다. ----146P
이렇듯이 1300년대 중반 아시아와 유럽의 많은 풍습과 사람들이 기록되어 있다.
또한 책에 중간중간 나오는 사진과 장소에 대한 설명은 평소 힘든 여행은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나에게도 인도나, 중동아시아를 여행해보고 싶은 충동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 책에는 해당 지역의 사진이 꽤 많이 나온다. 그 사진만 보는 걸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책이었고, 이 점이 이븐 바투타 여행기를 더욱 생생하게 살아있는 책으로 만들었다. ![]()
부하라의 청렴한 성군의 이야기도 감명깊었다.
하지만 이 청렴 경건한 술탄은 나중에 그의 사촌에 의해 폐위된다. 역사의 아이러니함이란...
하지만 당시에도 법관의 지위가 존경을 받아서인지 가는 곳마다 많은 대접을 받고, 또 그를 존경한다. 또한 언어가 안 통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대부분 통했다. 심지어 그의 고향에서 어마어마한 거리의 중국까지 가서 중국에서도 대접을 받고, 중국 여러 도시를 구경한다. 그는 중국을 마지막으로 발길을 돌려 고향으로 돌아간다. ![]() 가끔씩 지도로 그의 여행루트나 돌아오는 길 등을 보여준다. 실로 어마어마한 거리다. 그 때 당시에 어떻게 가능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풍토병 등으로 고생했을텐데(실제 열병 걸렸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건강이 뒷받침 해 준 것 같기도 하다.
여행기를 남긴 저자답게 매우 뛰어는 관찰력과 친화력으로 지역별 풍습과 문화, 사람들에 대한 분석이 탁월했다.
사실 나는 완역본을 좋아한다. 왠만한 책은 원전 완역본을 많이 사서 읽는 편인데, 이 책은 이 책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다소 장황한 설명에 오늘날 필요없는 지식들을 과감히 걸러 낸 것 같고(사실 1350년대 중앙아시아의 풍습 하나하나가 나한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완역본 번역가인 정수일 교수님의 감수와 중간중간 해당 역사나 문화 지식을 알려주어서 청소년과 나같은 중앙아시아, 중세 이슬람에 무지한 일반 성인에게도 매우 적합한 책이었다.
좋은 독서를 하게 해준 두레에 감사드립니다. 컬러 인쇄에 비교적 깊이가 있고, 얇지 않음에도 저렴한 가격도 청소년에게 딱이다. 요즘 너무 비싼 책이 많이 나와서 부담스러운데 책값도 매우 마음에 들었다. * 이 책은 두레출판사의 제공으로 책을 제공받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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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이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게 다시 쓴 이븐 바투타 여행기 세계 4대 여행기 중 하나이자 가장 위대한 여행가의 탁월한 여행기! 라는 책 소개,
더하기 이븐 바투타는 꼼꼼한 기록자다. 세계 곳곳을 누비며 방문지의 특이한 풍습을 상세히 적어 놓았다. 가장 놀라운 점은 그 시대 종교의 벽을 넘어선 교류다. 현재도 첨예한 문제 로 남아 있는 종교 간의 갈등이 14세기엔 어떤 모습이었는지 여행기에서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다 -지은의 말 중에서-
여행 경로를 시간 순으로 따라가보면 성지순례를 떠나다, 마그리브에서 이집트까지 1325-1326 성지에 도착하다 : 샴과 히자즈 유프라테스 강을 따라서, 이라크와 페스시아 1327 아프리타 동부를 가다, 홍해 연안과 아프리카 동부 1331 룸지역을 돌아보다, 소아시아 1333 킵차크 칸국과 콘스탄티노플에서의 색다른 경험, 술탄 우즈베크 지방과 동유럽 동서문화의 요충지를 지나다, 중앙아시아 인도 법관에서 묘역 관리인, 그리고 중국 사신이 되다, 인도에서의 8년 1342년 중국으로 가는 험난한 길, 델리에서 물루크까지 1344 바닷길을 따라 중국으로 가다, 실란에서 중국까지 1344년부터 세게에서 가장 풍족한 나라, 중국 1345-1347 마르리브로 동아오다, 중국에서 모로코까지 귀향길 1347-1349 스페인과 아프리카로 떠난 마지막 여행, 안달루스와 수단 1351-1354
이븐 바투타는 누구인가? 이븐 바투타는 1304년 2월 아프리카 서북부 모로코의 퇀자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정은 베르베르계의 리와타 부족 가문으로, 본인은 물론 사촌도 법관을 지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법조계 집안이라 할 수 있다. 30여 년 동안의 여행 과정을 제외하고 이븐 바투타의 생애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유년기에 전통적인 이슬람 교육을 받아 독실한 무슬림으로 성장했고, 20살의 젊은 나이에 혈혈단신으로 성지순례와 이슬람 동방세계 탐구의 대장정에 나섰다. 철두철미하게 이슬람 문화 속에서 교육받은 샤이흐이자 법관으로, 30여 년간 여행하면서 네 차레나 성지 메카를 순례했고, 여행 내내 샤이흐의 신분으로 예우를 받으며 다른 이슬람 국가들의 명사 들을 만났다. 법관이자 샤이흐의 신분이었기에 인도의 델리와지바툴 마할에서 법관을 지냈고, 인도 델리 술탄의 특사로 중국 원나라 순제에게 파견되기도 했다. 오랫동안 여행하고 귀향해서 여행기들 쓴 뒤의 행적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모로코에 있 는 한 마을에서 재판관으로 활동하타가 1368년경 사망하여 그의 고향인 탕헤르에 묻혔다 고 전해진다. 13쪽
이븐 바투타 여행기의 원제목은 [여러 지방의 기사와 여러 여로의 이적을 목격한 자의 보록] 이며 동방견문록은 [세계에 관한 서술]이다. 13세기 동방견문록은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힌 베스트셀러라고 한다. 그러나 당시 유럽 사람들은 마르코 폴로를 두고 밀리오네라고 불렀다. 그가 입만 열면 백만, 백만이라 말햇기 때문에 일종의 허품선이라는 뜻으로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마르코 폴로는 중국 항저우는 세상에서 가장 세련되 고 찬란한 도시이며, 양쯔 강의 통행량은 유럽의 모든 강과 바다를 합친 통행량보다 많다고 말했 다. 마르코 폴로가 17년간 쿠빌라이 칸의 궁전에서 일하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허풍쟁이로 본 유럽 사람들은 그가 말한 몽골제국의 규모와 풍요로운 경제 상황을 반신반의하며 막연한 동경을만 받아블였다. 그러나 14세기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를 접하면서 이븐 바투타가 다녀온 길과 동방의 풍족함을 어느 정도 확신하면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리하여 몽골제국이 버틱 있던 육로가 아닌 해로를 통해 아프리카 희망봉과 인도 항로 개척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이다. 234쪽
본문을 보면 이븐 바투타 여행기의 진면목이 보일 겁니다. 1. 왕도 무트라의 거리는 넓었다. 이 도시는 델리와 비교되며 건설되었는데 건물은 오히려 델리보다 더 좋았다. 내가 그곳에 갔을 때는 전염병이 들끓어 많은 사람이 비참하게 떼죽음을 당하고 있었다. 이 전염병에 일단 걸리기만 하면 하루 이틀 만에 목숨을 잃기 일쑤이고, 기껏해야 나흘을 넘기지 못했다. 밖에 나가면 눈에 띄는 것은 환자나 시체뿐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술탄의 아들에 이어 숲탄의 어머니까지 죽었고, 끝내 술탄도 승하했다. 혹시 반란이 ㅇ리어나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술 탄의 조차 나쉬룻 딘이 뒤를 이었다. 나쉬룻 딘은 전 술탄이 결정한 대로 지바툴 마할 제도로 갈 선박들을 다시 챙기라고 지시했다. 그런데 그때 나는 치명적인 열병에 걸려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다행히도 사흘 동안 설사가 난 뒤에 병은 완쾌되었다. 한번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나니 갑자기 그곳이 싫어진 나는 마침 예멘을 떠나는 선박이 있어 그 배에 올라탔다. 그 배를 타고 도착한 곳은 카울람이다. 병이 완전히 낫지 않은 상태여서 나는 이곳에서 3개월 정도 더 머물렀다. 244쪽
2. 중국은 물자가 풍족하고 아름다웠지만 내 마음에는 들지 않았다. 이교도의 풍조가 어찌나 강한지 집만 나서면 비행이 눈에 띄어 나를 불안하게 했다. 그래서 나는 필요한 일이 있을 때를 빼고는 집 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그렇게 칸잔푸에서 15일을 머문 뒤 다시 배를 타고 17일 걸려 한사에 도착 했다. 한사는 내가 본 도시 중에 가장 큰 도시였다. 길이만도 3일 거리로 시내 관광을 하려면 도중에 숙 박을 해야 할 정도 였다. 도시에는 중국식 건축양식의 건물들이 서 있었다. 한사는 6개 소도시로 이 루어졌는데, 도시마다 담장이 쳐져 있고 전 도시를 하나로 에워싼 성벽도 있었다. 첫 도시엔 위수병과 위수사령관이 거주한다. 유대 인의 문이라는 성문을 통과하면 제2도시가 나 오는데, 이곳에는 유대 인, 기독교인, 그리고 태양을 숭배하는 투르크 인들이 살았다. 단, 수장은 중국인이다. 제3의 도시엔 무슬림이 살았다. 이곳은 다른 무슬림 지역처럼 잘 정돈되었고, 사 원이 많았으며 예배시간을 알리는 사람들이 살았다. 나와 일행은 이곳에서 15일을 머문 뒤 제4도시 로 들어섰다. 264쪽
3. 룸인과 내가 황급히 말에서 내려 인사를 건냈다. 그러자 술탄의 아버지는 "나는 예루살렘에 들어가 본 손과 현석전과 쿠야마라는 대성당, 그리고 바이트 라함을 밟아 본 발을 한번 잡아 보 고 싶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손을 나의 발 위에 놓았다가는 그 손으로 얼 굴을 문질렀다. 이교도인 내가 그런 곳에 들른 것을 그토록 존중해 준 것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 었다. 162쪽 캅차크 칸국과 콘스타티노플에서의 색다른 경험 중에서
4. 바그다드는 이미 그 부음이 전해졌으니 세월의 풍상에 허물어진 그 참경 슬피 우노라 티그리스 강은 전화에 휩싸여도, 불길만 잡히면 곳곳이 우아했건만 이제 그 찬란했던 과거로 돌아가려 한들, 바라는 그 마음엔 실망만이 자리하네. 마냥 일찌감치 청춘을 보내어 천부의 아름다움 날려 보낸 노구처럼. 도시의 변모에 관해, 시인 아부 타맘 하비브 본 아우스가 92쪽 유프라테스 강을 따라서 중에서
5. 이른 아침 출발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우리는 반나절이나 늦게 아부 하르를 떠났다. 일행 22명은 모두 말을 탔는데 그중엔 아랍 인도 있고 외국인도 있었다. 그런데 일행이 사막에 이르 렀을 때 난데없이 이교도 80명과 기병 2명이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나의 동료들은 모두가 용감 무쌍하여 그들과 한판 격전을 벌였다. 일행은 기병 중 한 놈을 사살하고 그의 말을 빼앗았으며 이교도 약 12명을 죽였다. 나는 어쩌다 화살 한 발을 맞았지만 다행히 무사했다. 하지만 내가 탄 말에 화살이 꽃혀 결국 빼앗을 말로 바궈탈 수밖에 없었다. 부상당한 내 말은 투르크 친구들이 먹어 버렸다. 도적들의 잘린 머리들은 아부 하르 성벽 위에 걸어 놓았다. 187쪽 인도 법관에서 묘역 관리인, 그리고 중국 사신이 되다 중에서
6. 나는 나를 목에 태워 준 이방인을 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언젠가 알라의 현인 아부 압둘라 알 무르쉬드가 내게 한 말이 떠올랐다. 그는 내게 인도 땅에서 곤경에 처했을 때 그의 형제인 달샤드 가 구출해 줄것이라고 했다. 그제야 나는 이방인의 이름 깔불 파리흐가 페르시아 어로 달샤드 인 것을 깨닫고, 그가 현인이었던 아부 압둘라 알 무르쉬드의 동생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216쪽 중국으로 가는 험난한 길 중에서
기적과 이적도 많았지만 열병과 전쟁, 강도와 풍랑을 겪으면서 여행을 한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 를 읽으면서 그가 여행을 한 이유가 계속 궁금했습니다. 모르코 출신 무슬림인 이븐 바투타의 여 행은 시간을 내서 다시 찬찬히 읽을 만한 글이자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여행기였습니다.
리뷰어클럽을 통해 두레도서에서 책을 증정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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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그 어느 지역과도 비교할 수 없이 넓고 모든 것이 풍족한 곳. 그러나 위대한 여행가 이븐 바투타(Ibn Battuta, 1304~1368)에게는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으며, 다소 생소한 이교도들의 삶이 존재하던 이곳은 어디일까. 바로 중국에 대한 그의 총평이다. 이븐 바투타 여행기는 단지 무슬림의 성지순례에 대한 기록만이 아니다. 중국 고유의 문화와 산업, 지리적 특성, 역사와 풍습까지 이븐 바투타는 꼼꼼히 기록했다. 역병을 딛고 말레이 반도와 인도네시아를 지나 도달한 중국에서 그는 약 3년 간 머물렀다. "중국 사람들은 솜씨가 섬세하고 정교하다"거나 "중국은 여행자들이 가장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는 곳" 등 14세기 여행자의 눈에 비친 현재와는 또 다른 중국이 그려졌다.
<10대를 위한 이븐 바투타 여행기>는 이븐 바투타의 사반세기(1325~1354)에 걸친 여정을 다뤘다. 독실한 무슬림으로 성장한 그의 성지순례와 이슬람 동방세계 탐구의 대장정이다. <이븐 바투타 여행기>는 30여 년의 여행을 마친 그가 고향으로 돌아온 뒤 모로코 술탄의 명령에 따라 집필했다. 그러나 현재의 여행기는 사라진 원본이 아니라 당대 명문가인 이븐 주자이 알 칼비가 정리해 엮은 책만이 존재한다고 한다. 특히 출판사 두레의 <이븐 바투타 여행기>에는 '10대를 위한'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다. 아마도 여행기를 처음 대하는 독자를 위한 지침과 부연 자료-예를 들면 무슬림의 다섯 가지 종교적 의무, 중국 속의 무슬림 등 상세한 설명-가 친절한 안내자가 되어주기 때문일 듯하다. 이해를 돕는 자료사진과 지도역시 많은 도움을 준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여행가인 마르코 폴로와 이븐 바투타를 함께 풀이한 대목은 이 책의 가치를 충분히 알려 준다. <이븐 바투타 여행기> ,<동방견문록> 모두 그들이 직접 쓴 책이 아니라는 것, 원래의 제목과는 다른 현재의 제목-원제는 각각 '여러 지방의 기사와 여러 여로의 이적을 목격한 자의 보록(이븐 바투타 여행기)', '세계에 관한 서술(동방견문록)'-을 갖고 있다는 공통점이 먼저 시선을 끈다. 그러나 30여 년 간 아프리카, 유럽, 아시아를 거치며 다양한 모습을 기록으로 남긴 이븐 바투타와 달리 마르코 폴로는 24년 간의 동방 여행 중 중국에서 머문 17년의 경험을 주로 다뤘다는 점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보름달 옆의 뭇별'이라는 예처럼 각자의 여행길이 전하는 업적은 비할 바가 안된다는 뜻이겠다.
아부 압둘라 무함마드 이븐 압둘라 이븐 무함마드 이븐 이브라힘 알 라와티. 이븐 바투타의 본명이라고 한다. 이름만큼 길었던 그의 여행기가 무척이나 흥미로운 것은 "지바툴 마할 섬에 머무는 동안 여자 4명과 결혼했으나, 섬을 떠날 때는 모두 이혼했다."거나 "물루크 섬에서 70여 일을 머물며 두 여자와 결혼했다"는 등 당시 상황에 따른 가감없는 표현도 한몫한다. 지금과는 다른 낯선 지명으로 인해 검색창을 수없이 열어봐야 하는 수고를 감내한다면 14세기 세계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느껴보는 즐거움이 <이븐 바투타 여행기>에 있다. 저자 김승신의 말대로 "지금 당장 사용할 쓸모 있는 정보를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여행기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고 미래를 상상하게 한다."는 설명처럼.(*) * 이 글은 YES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 두레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쓴 서평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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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4대 여행기라 불리는 책들이 있습니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오도릭의 <동방기행>과 더불어 오늘 소개해 드릴 <이븐 바투타 여행기>입니다. 이 여행기들은 어떻게해서 수많은 여행책들을 제치고 손가락에 꼽을 수 있을정도로 유명한 책이 됐을까요? 그 이유를 알기 위해 책의 첫 페이지를 넘겼습니다.
이븐 바투타는 1304년 모로코의 퇀자라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퇀자는 지금의 탕헤르라고해서 아프리카 최북단에 위치한 항구도시입니다. 배를 타고 나가면 유럽의 스페인이 제일 먼저 반겨주는 곳이죠. 이 여행기는 이렇듯 이븐 바투타가 살았던 당시의 지역명을 그대로 쓰고, 괄호표시의 현재의 지역명을 표기하고 있습니다. 이븐 바투타가 아주 오랜동안 여러 도시를 돌아다녔기 때문에 읽는데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븐 바투타는 약관을 막 넘긴 21살 청년 시절에 혈혈단신으로 성지순례와 이슬람 동방세계를 탐구할 목적으로 대장정에 나섰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에 받은 이슬람 교육은 그를 독실한 신자로 만들기 충분했는데, 그의 신앙심은 그를 '샤이흐'의 위치까지 올려줬습니다. 샤이흐란 쉽게 말해서 장로나 종교적인 스승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동시에 법관이기도 했던 이븐 바투타. 이 때문에 다른 나라들의 명사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고 다른 나라에서는 법관으로도 지내고 또 다른 곳에서는 특사로 파견을 가기도 합니다.
책에는 마르코 폴로의 여행 경로를 이븐 바투타와 비교할 수 있게 부록식으로 실려 있는데, 마르코 폴로도 대단하지만 이븐 바투타의 여행 경로가 압도적으로 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말 구석구석 가보지 않은 곳이 없을정도록 경로 표시가 빼곡히 차 있더군요. 큰 대륙을(지금보다 치안 상태가 좋지않았음에도) 별탈 없이 여행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이 책의 100쪽에서 설명하고 있네요. 찡긋~
풍부한 사진 자료와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춘 쉽고 편한 문장들이 읽기에 불편함에 없어서 좋습니다. 둥글고 귀여운 지붕의 사원이라든가 뾰족한 기둥의 사원들의 이색적인 모습은 여행하고픈 마음을 동하게 만들고요 메카의 금사에 장사진을 친 이슬람교도들의 신실한 모습은 정말 대단하다고 밖에는 생각나지 않네요. 알라를 섬기는 마음으로 위험을 감수하고 성지 순례를 떠난 이븐 바투타! 그 기나긴 여정을 책으로 만나볼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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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이븐 바투타처럼 여행을 무척 좋아한다. 처음 갔던 자유여행은 일본이었다. 내 몸을 실은 비행기가 일본이라는 옆나라에 나를 내려준 뒤, 그곳의 공항에서 입국심사를 기다리는데 기분이 정말 묘했던게 지금 생각해도 생생하게 느껴진다. 특히 표지판과 각종 안내판에서 이질감이 확 느껴졌다. 우리나라에서도 쉽게 볼 수 있는 표지판과 안내판이 모국어가 아닌 다른 나라 글이 적혀 있는게 너무나 이상한 실감이었다.
어쩌면 여행의 진면목은 이런것이리라. 한정되고 제약적인 나의 공간에서 훌쩍 떠나, 처음보는 낯선 곳에서 그들의 문화양식을 온몸으로 느끼는 일. 나는 여행의 참맛을 그렇게 생각한다. 그로 인해 성장하든 제자리걸음이듯 말이다. 그런데 이런 여행을 이븐 바투타라는 사람은 1325년부터 1354년까지 44개국을 여행하는 진기록을 보여줬다. 지금처럼 교통수단도 열악한 상태에서 낙타를 바꿔 타며 대륙과 대륙간의 이동을 한 것이다.
오랜 시간의 여행만큼 이 책은 세계 4대 여행기에 속한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오도릭의 <동방기행>과 어깨를 나란히 겨룬다. 책을 읽기 전에는 모험심이 가득한 일반인의 우여곡절많은 여행기라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그는 독실한 이슬람 신자였다. 처음에는 메카 성지순례를 목적으로 길을 나섰다가 목표를 완수한 후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여러 대륙을 누비며 다녔다. 정든 곳에서 과감히 발을 빼고 의지할 곳이 별로 없는 낯선 곳에 몸을 맡기는 용기가 무척 부럽다. 나는 그보다 여행이 훨씬 더 용이한 발전된 세상에 살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은 여행기답게 수십장의 생생한 컬러 사진도 담고 있다. 이로 인해 손에서 책을 떼지 못할 만큼 가독이 좋다. 여러 사원들이나 각 지방의 대표 이미지들이 이미 이븐 바투타가 다녀간 행적이라니, 몇백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어쩐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과거의 일처럼 낯설지 않은 느낌이다. 또한 주석과, 보다 상세한 부연 설명 자료가 풍부하게 있어 오래되고 까다로운 책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원문의 어렵고 까다로움을 10대의 눈높이에 맞춰 재미있고 쉽게 풀이한 <10대를 위한 이븐 바투타 여행기>. 믿기지 않는 광활한 대륙 횡단의 본모습을 보고 싶은 사람에게 강추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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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와 자동차가 발명되기 전까지 사람들은 걷거나 말과 같은 동물을 이용해 이동했을테지요. 지금은 자동차로 1시간 거리지만 옛날에는 하루를 꼬박 걸어가야했을 거고요. 까마득한 1300년대에 무려 44개국 12만 킬로미터를 여행한 사람이 있다는 것도 놀라운데 그 사람이 30여 년간 여행 기록을 적었다는 건 더 신기하네요. 세계 4대 여행기 중 하나라는 이븐바투타 여행기를 10대의 눈높이에 맞춰 정리한 내용이라니 이해가 쉽고 재미난 내용이 기대되었습니다. 이븐바투타는 모로코 법관으로 1325년 메카 성지순례를 위해 길을 떠나 성지 순례를 마친 후 아시아와 유럽을 여행했다고 해요. 여행기는 첫 번째로 모로코에서 성지를 들러 서아시아와 중앙아시아를 거쳐 인도와 중국 베이징까지 갔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25년간의 여정, 두 번째는 모로코에서 스페인 그라나다까지 2년, 세 번째는 스페인에서 귀향 후 3년간 아프리카 서부를 여행한 기록입니다. 술탄의 명령에 따라 여행기를 쓰게 되었다는데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죠. 그가 여행한 경로와 범위는 마르코폴로보다 훨씬 방대합니다. 이 책에는 이슬람 문화나 원문의 내용에 대한 설명이 첨부되어 있어요. 아랍인의 이름이 긴 이유는 아버지, 할아버지, 부족, 출신 지역 이름 순으로 이름을 짓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 무슬림의 다섯 가지 의무에 대한 내용도 이슬람 문화의 독특함을 아는데 도움이 되네요.
그가 아름답고 훌륭하다고 극찬한 다마스쿠스의 바니 우마야 대사원은 아직도 현존합니다. 당시에 가장 선진국이었다는 이집트의 피라미드를 비롯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장소를 7백년이 지난 지금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합니다. p.54
바그다드에 공중 목욕탕이 많았고 개인 목욕 칸이 있었으며 따뜻한 물과 찬물이 나오는 관이 있었답니다. 상당히 현대적 방식이었어요. 14세기에 황금이 길거리에 굴러다닐 정도로 풍요로웠다는 인도 델리의 이야기도 흥미로웠어요. 남편이 세상을 떠나면 그 시신을 화장할 때 아내가 불 속에 몸을 던져 죽으면 가족이 명예를 얻었다는 풍습은 조선시대 열녀문을 연상시켰어요.
1인칭 시점이어서 몇 번 결혼하고 이혼했다든가 아이를 잃었다는 개인적인 이야기도 있고 의외로 소박하고 겸손한 생각을 알 수 있어요. 의상, 음식, 건물 등을 우아한 표현으로 묘사하여 더욱 멋지게 느껴져요. 법관이라는 그의 지위가 과거에도 존경을 받았기에 어느 나라에서든 대접을 받았어요. 사신으로 중국에 파견되어 번영했던 중국을 경험할 정도였죠. 관찰력이 뛰어나고 나라별 풍습이나 사람들에 대한 의견도 논리적이라 저자의 지식이 깊이가 있음을 느낄 수 있어요. 그가 여행한 나라들의 과거와 현재를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고 부연설명도 좋았어요. 번역본을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춰 정리한 정성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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