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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부는 미국 인턴십의 열악함을 보여주는 현장 사례에 대부분 할애된다. '미국은 달라도 뭔가 다를거야'라는 막연한 믿음이 환멸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다. 미국의 사악한 관행들이 굉장히 단시간내 한국에 그대로 수입되었음을 매 챕터마다 확인하며 충격받게 될 것이다. 무보수 인턴십이 노동시장의 빈익빈 부익부를 초래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8장부터가 특히 흥미롭다. 단순히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가진 평등과 공정의 감각에 호소하는데 그치지 않고, 노동시장의 빈익빈 부익부가 실제로 공동체에 얼마만한 해악을 주고 사회의 미래를 시들게 하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논변이 펼쳐진다. 결론은 인턴만이 사회인으로 자립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라는 것은 이해관계자들이 유포한 신화에 불과하니, '두려움을 버리고 단결하라'이다. 조금 진부할 수 있지만 이게 최선일 것이다. 삶의 안정성에 대한 감각이 유달리 뚜렷한 서구 유럽 국가들에서 미국식 관행의 침범에 어떤 식으로 대항하고 어떻게 몇개의 승리를 거두었는지의 예시는 좋은 참고가 된다. 이 책은 내 오래된 상처를 달랬다. 연줄도 재력도 정보도 깜깜했던 대학 4학년, 취업실 담당자가 "인턴 경력만 있었어도"라고 읊조린 말은 오랫동안 내게 상흔으로 남았다. 그건 내게 인생의 첫 단추를 잘못 끼웠고 다시는 그 실수를 만회할 수 없으리라는 선고로 들렸고, 졸업 후 이어진 방황의 고비마다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면 꼭 그 말이 도사리고 있었다. 인턴 경력만 있었어도, 대기업에 들어갈 수 있었을텐데, 첫 직장을 대기업으로 잡았으면, 이직이나 경력관리도 수월했을텐데, 그럼 지금쯤 부담없이 연애도 하고 짝짓고 애 낳아 기르면서 주류가 되어 살 수 있었을텐데. 지금은 이 사회에서 내 역할이 그게 아니라는 것을 대충 안다. 아직 어리고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 따위의 비전 제시가 얼마나 끔찍한 폭력인지도. 내게 가장 가증스럽게 느껴지는 것은, 그런 식의 비전은 어차피 소수의 운좋은 이들에게만 진정한 해답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미국 대학을 졸업하고 연줄로 유수의 명문 인턴십을 두루 이수한 강남거주 26세 여성이 취업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글을 본 이후론 내 확신이 더욱 굳어졌다) 그래서라도 청년실업 공포에 볼모로 잡혀있는 대학생들에게 더 널리 읽혔으면 하는 책이다. 자원봉사자들의 노도역 기부는 '봉사의 소명에 대한 화답'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숭고한 행위가 오용되어 결국 다른 사람들의 삶에 피해를 주고 있다는데 있다.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며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수 있는 급여와 근로 조건을 위해 투쟁하는 정규직들의 입지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 177p 사회학자 마크 그래노베터는 인턴십을 취업을 위한 최선의 통로로 간주하고 올인하는 것은 실리콘밸리의 신생기술 기업에서 주식 지분을 약속받고 무보수로 일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한다. "휴지조각이 될지도 모르는 주식 5~6만주를 약속받고 기꺼이 무보수로 노동력을 제공하려는 사람들이 놀라울 정도로 많다. 그들의 모험의 동기는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회사가 대박이 날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거나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 201p 무보수 인턴 학점인정제에 의해 학생들이 별도로 부담해야 하는 수업료가 대학 등록금과 분명하게 구분이 되지 않는 형태로 고지되는 시스템은 아무래도 석연치 않다. 무엇보다도 인턴십을 규제해는 법률이 부재하는 현실과 노동 당국의 부실한 관리 감독 실태는 무보수 인턴십에 건강한 시장의 원칙이 적용될 여지를 허락하지 않고 있다. - 215p 즉 인턴십 시장은 정상적인 시장이 아닌 기형 시장, '과잉 공급이 강제되는' 시장이다. 과잉 공급을 강제하거나 기형적인 상황을 즐기며 방조하는 주체는 1) 싼맛에 사람을 부리고 싶은 기업주들과 2) 앉아서 버는 돈에 중독된 대학당국이다. 보수가 없는 인턴십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건 누가 뭐래도 배경이 탄탄한 젊은이들뿐이다. 그 상황에서 인턴십을 사업 아이템으로 삼는 기업들이 시장을 장악하게 되면 그 시장의 하늘에는 인턴십의 새로운 개념을 굵게 적은 플래카드만이 펄럭이게 될 것이다. "인턴십은 특권 계층의 전유물이다!" - 245p 즉 고등교육을 받지 않거나 부유한 집안 출신이 아닌 젊은이들은 인턴십에 참가할 기회조차 찾기 힘든 현실인 것이다. 결국 그들이 인턴 경력을 필수로 요구하는 직장을 잡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 251p 고용시장 전체적으로 괜찮은 일자리가 하도 없으니 무보수 인턴십이 하나의 필터로 작동하는 건 아닐까 의심. 결국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 계층만 고소득 직종에 입문할 수 있는 아이러니. "교육자나 예술가, 혹은 공공 부문 중간관리자 등을 비롯해서 즐기면서 일하는 중산 계층의 모든 직종들이 갈수록 생계 수단으로서의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 당사자에게 즐거움이나 충일감을 안겨주는 일은 보수가 적거나 아예 없는 관행이 보편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즐거움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이 된다는 관념이 사회적으로 뿌리내리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런 직종들은 '피상적인 가치관은 원대하고 현실적인 시야는 편협하며 경제적으로는 무능력한 변종 인류', 즉 부모를 잘 만난 덕에 교양과 즐거움만을 추구하며 일생을 살아갈 수 있는 특권층 자제들의 전유물이 되고 말았다." - 255p (강조는 내가) 연예나 언론, 정치 분야의 인턴십이 특권층의 전유물이 된다면 세상이 뒤바뀐다. - 255p 유지와 운영에 엄청난 자금이 소요되는 일류 경매장이나 고급 화랑, 혹은 유서 깊은 박물관은 그 속성상 부유층의 독무대가 될 수밖에 없다. - 261p 맞다. 그 속성상 부유층에 호소할 수 밖에 없는 산업들이 있다. 애당초 부유층에 한정된 관심사를 부유층만이 지불할 수 있는 가격에 파는 산업들이 있다. 보그체의 세계, 하이패션 같은게 그렇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들의 뒤틀리고 쓸데없이 섬세한 감성과 그들이 지면을 낭비하며 열을 올리는 문제들에 공감은 커녕 거들떠볼 수고조차 아까워 할 것이다. 진짜 문제는 언론, 정치, 예술 분야가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는 데 있다. 언론, 정치, 예술은 본디 공동체의 소유여야 맞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고도화됨에 따라 그 분야들은 속속 개인의 손에 넘어가 영리를 추구하게 되었다. (사실 그 분야가 고소득 직종에 속한다는 현실도 내게는 왠지 사리에 맞지 않게 느껴진다.) 경제 논리와 가장 멀리 있어야 할 분야들이 가장 유망한 산업을 서로 자처하고 나서니 일이 꼬인다. 언론은 광고에, 정치는 로비에, 예술은 후원에 종속된다. 부유층의 지갑에서 찔끔찔끔 흘러나오는 단물에 다투어 빨대를 꽃는 처지니, 돈있는 소수에게 관대하고 돈없는 다수에게 배타적인 태도는 자연스러울 밖에. 그 알량한 일자리가 부유층 자제에게만 몰래 열리는 것도 이해할 만 하다. 특히 영화와 TV를 비롯한 연예오락 부문의 경우 돈과 연줄의 힘은 절대적이다. 현재 그 부문의 인턴십은 거의 부유층의 자제들이 독점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들이 영화감독, PD, 혹은 극작가가 되고 나면 영화와 TV작품들 속에 그들의 배경이 반영되지 않을 수 없다. - 264p 예술가들은 정치적, 사회적 현안보다는 탐미적인 요소에 집착하게 되고, 변호사들은 구미에 맞는 소송만 수임하려 할 것이며, 정치가들은 빈부 갈등의 기본적인 원인을 이해하지 못한 나머지 비현실적인 해결책만을 끝없이 제시하게 된다. - 275p 아시아와 중동,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지역의 개발도상국에서는 인턴십이 더욱 집중적인 형태로 확산되고 있다. 다시 말해 거의 모든 인사 체계가 네트워크로 엮인 정부기관과 국제적 트렌드를 일단 따르고 보는 대기업의 사무실들이 몰려 있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인턴십 제도가 활성화되고 있는 것이다. 인턴십이 종종 조직 문화의 세계화를 가늠하는 하나의 지표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그런 나라들에서는 장래가 촉망받는 일자리는 대부분 특권층 자제에게 돌아간다. - 287p '모든 인턴에게 반드시 임금을 지급해야 하는가? 부유한 배경을 지닌 인턴들에게까지 굳이 보수를 지급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얼핏 듣자면 합리적인 지적인 것 같지만 실상은 본말이 전도된 발상이다. 인턴들의 임금은 그들의 노동에 대한 응분의 대가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배경을 고려한 보수 체계는 그 자체로 차별 행위에 해당하며 인간적이라는 미명 아래 사사로운 감정이 개입될 소지를 남기게 된다. - 324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