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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석 류영모의 저작은 소장 가치가 충분하다. 특히 그가 완역한 <노자>와 <중용>은 반드시 읽어야 하는 수작이다. 사서오경의 수많은 국내 번역서 가운데 대중들에게 추천해 줄만한 작품은 그리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노자와 중용에 대해서라면 다석의 번역을 추천하고 싶다. 아직까지 다석의 해석과 풀이에 버금갈만한 깊이와 수양의 번역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다석의 번역은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기에 단지 유가경전의 철학적인 접근법만을 강조하는 학구라면 오히려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논어, 맹자, 대학, 중용에 대한 철학적인 해석이 여전히 학계의 주류지만, 유가 경전에 대한 종교적인 접근법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본다. 물론 유교는 종교가 아니다. 유가 경전에 친숙한 중국인이나 경전을 전공한 중문학자라면 유교가 종교라는 데 콧방귀를 뀔 것이다. 하지만 사적인 심신수양과 사회적인 인문정신의 고취 차원에서 보자면 대학의 격물, 치지,성의, 정심,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나 중용의 신독에 대한 종교적인 혹은 영적인 접근법도 나름 유용하지 않을까 싶다. 곰곰이 다석의 번역과 박영호의 풀이를 읽어보면 종교적인 접근법으로 사서오경을 해독하는 것도 나름 훌륭한 접근법이라는 느낌이 든다. 다만 도와 덕과 같은 세부적인 철학적 차이와 관련 논쟁을 얼나와 하느님으로 단순화시킨다는 단점도 존재하지만 개인적인 수양의 차원에선 이보다 더 나은 해석도 솔직히 없다고 본다.
일반적인 철학적 접근법으로 중용을 읽는다면 대개 이런 해석이 나온다. 즉 중용은 성선설에 바탕한 천인합일을 주제로 하고, 내용적으로 크게 천인론天人論, 중용론中庸論, 성론誠論, 성론聖論으로 개괄할 수 있다. 인간을 최고 가치의 실체인 '하늘'로 근거짓고, 도가 비롯되는 원천을 하늘에 귀속시키며, 성을 종합적이고 완벽하게 체인하여 천명에 도달하는 것, 아울러 성을 체인하는 길로서 내면에의 성찰과 엄숙을 의미하는 신독을 강조한다. 그런데 다석처럼 종교적인 접근법으로 중용의 형이상학적 진리를 읽는다면 거짓나에서 참나를 깨닫고, 멸망의 생명인 제나에서 영원한 생명인 얼나로 솟나는 것으로 해석된다. 중용은 희로애락이라는 제나의 감정이 일어나도 얼나(中)의 절제를 받으면 인격이 부드러워진다는 것을 강조한다.
"우리는 이미 정신세계에서 하느님과 연락이 끊어진 지 오래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이승의 짐승이 되었다. 우리들이 산다고 하는 몸뚱이는 혈육의 짐승이다. 하느님으로부터 얼을 받아서 몸나에서 얼나로 솟날 때 비로소 사람이 회복된다."(36-7쪽)
天命之謂性,率性之謂道,修道之謂教。道也者,不可須臾離也,可離非道也。是故君子戒慎乎其所不睹,恐懼乎其所不聞。莫見乎隱,莫顯乎微。故君子慎其獨也。
다석의 번역은 이러하다.
"하늘 뚫린 줄을 바탈이라 하고, 바탈 타고난 대로 살 것을 길이라 하고, 디디는 길 사모칠 것을 일러 가르치는 것이니라. 길이란 눈 깜짝할 동안도 여의진 못하나니, 여읠 수 있다면 길은 아니니라. 그러므로 그이 아무도 보지 못하는 데서 삼가 살피며 아무도 듣지 못하는 데서 저어하는 듯하구나. 싸고 싼 것이 내보이며 작고 작은 일이 드러나니 그래 그이 제 혼자부터 삼가는구나."
다음은 일반적인 번역이다. 현암사에서 펴낸 중용의 역자인 이동환의 번역을 옮겼다.
"하늘이 내려준 것이 성이요, 성에 따르는 것이 도요, 도를 마름하는 것이 교다. 도는 잠시도 떠날 수 없으니, 떠날 수 있으면 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군자는 남에게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곳을 삼가고 두려워하는 것이다. 은밀하고 깊숙한 곳보다 더 잘 드러나는 곳은 없고, 미세한 일보다 더 뚜렷해지는 일은 없다. 때문에 군자는 깊고 은밀한 곳을 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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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중용은 노자나 석가의 이야기와 참 닮아 있다. 참 나를 찾는 것 , 그것이 하늘의 뜻을 알아서 따르는 것이다. 탐욕 이나 치우침과 같은 감정을 다 벗어버린 본래의 나 얼나 를 찾아야 한단다 경상도 사투리로 아기를 얼라라 한다 .참나가 얼나이니 세속에 물들지않은 모습이리라 이건 하늘과 통하는 것이리라 .예수와 석가와 공자가 만나 중용을 이야기하다 라는 책의 부제처럼 이책에선 어떤 종교이건 궁극적으로는 하늘의뜻을 알고 찾아가는 것이라 말한다. 서로 다른 종교가 북한산 어느자락에서 올라가건 같은 정상을 향해서 가는 것으로 비유를 해도 될까. 그의글에서 존경하는 함석헌 선생님의 체취가 느껴지니, 역시 스승과 제자인가 보다. 그리고 풍성한 한글의 어휘가 한글에 대한 그의 애정을 느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