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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은 인문학 서적이었다. 작가의 집필의도에서부터 인물 연혁까지 평소라면 읽지않고 그냥 넘겼을 부분까지 빠짐없이 읽으면서.....많은 생각이 들었다. 지도자로서의 이순신! 그는 정말 완벽에 가까운 인물이 아니었을까. 누구나 알고는 있지만 행동으로 옮기기에는 귀찮고 피곤한 것들까지 철저히 지켜가는 지도자. 타인에게 적용하는 엄격한 기준과 잣대를 자신에게까지 들이대고 완벽에 가깝게 지켜가는 지도자. 아랫사람들의 사정을 놓치지 않고 살피며 아랫사람들의 전공을 빼놓지 않고 보고하는 지도자. 윗사람들의 농간에도 좌절하거나 분노하지 않고 맡은 바 소임에 최선을 다하는 지도자. 지금 우리 시대의 지도자들을 생각해봤다. 국민의 세금을 갖은 명목으로 빼돌려 말도 안 되는 곳에 펑펑 써대는 사람들, 국민의 세금으로 월급받으면서 제대로 일하지 않고 책임을 회피하는 사람들, 국민을 대표하라고 뽑아놓았더니 지들끼리의 이익을 위해서 싸우느라 국민이 요구하는 것들을 나몰라라하는 사람들.... 지금 우리의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온갖 매체에서 보여주는 모습들이 이렇다. 저자를 검색해보니 국회윤리위원회 소속이라 되어있었다. 국회의원의 절반만이라도 이순신 같은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공무원의 절반만이라도 이순신 같은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 우리나라에거 대기업이라 손꼽히는 회사들의 간부 절반만이라도 이순신 같은 사람이었다면 어깼을까? 이순신처럼 완벽하게는 힘들지라도 닮아가려 노력하는 사람이기만 했어도 지금 우리나라는 많이 달라졌을 것 같다. 이순신이라는 걸출한 한 사람이 바꿔놓은 조선 전쟁사. 2명의 이순신, 10명의 이순신, 100명의 이순신이 바꿀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지도자로서의 이순신..... 그와 같은 사람이 너무 필요하다 느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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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역사 책을 읽고, 사회를 살다보니 내가 모셔야할 선임으로 절대 만나기 싫은 두 사람이 있다. 하나는 세종이다. 워낙 왕 자체가 뛰어나기도 하지만, 그가 부렸던 수많은 사람이 본인의 목숨을 걸고 일할 정도로 사람의 마음을 샀다는 것이 무섭기까지 하다. 물론 성군이고 그를 위해 일하는 것이 큰 영광이겠으나, 나 개인적으로는 과로사로 죽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또 한명이 있다면, 바로 이순신이다. 세종은 그래도 고기도 좋아하고 장난도 치는 기록들이 많아 인간적인 면모도 많다. 반면 이순신은 바늘로 찔러도 피 한방울 안나올 것 같은 완벽함을 보여준다. 정말 신이라 해도 믿길 정도의 숨막힘이랄까. 세종의 과로사가 무섭다면 이순신은 완벽함이 무섭다. 간혹 이런저런 역사적 상상을 해보며, 내가 만약 이순신과 함께 싸우던 장수(병사)였다면, 그의 매력에 빠져서 목숨을 초개 같이 버리며 싸우지 않았을까. (사실 겁이 많았기에 이미 도망치다가 잡혀서 참수당할 확률이 더 크겠지만, 어디까지나 개인적 상상이니 나를 조금 멋지게 포장해보았다) 사실 잊고 지냈던 이순신이란 키워드는 우연한 기회로 떠올랐다. 방송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의 강연을 보고나서 (감히?) 또 한번 그런 상사를 만난다면, 참으로 괴롭겠다는 생각을 하며 책을 샀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같이 근무하기 싫은 상사 1. 세종, 2. 이순신이건만 내가 만약 리더가 된다고 한다면 되고싶은 상사도 그와 같다고 생각하니 문득 웃음이 났다. 나 역시 이순신 김종대 재판관처럼 이순신 빠돌이였다. 재판관님 처럼 학술적으로 전문적으로 파지는 않았지만, 이순신과 관련한 드라마, 소설, 영화, 사소한 글도 가능하면 닥치는 대로 보고 읽고 듣던 때가 있었다. 작은 것이나마 따라해보려 애썼지만, 보면 볼 수록 그의 완벽함에 질리기 시작했다. 나는 절대 저렇게 하지 못해. 고난의 삶을 겪어오는 과정에서도 굳건한 신념을 가지고 바른 길로만 갔던 그의 삶은 어떻게 보면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징표 였다. 조금이나마 따라해보고자 군 복무시절 매일, 최소한 글 한줄을 남겨보자는 신념으로 병영수첩에 빼곡히 일기를 써보기도 했으나, 상병 무렵 헤이해진 마음때문에 접고 말았다. 이처럼 스스로와의 약속, 스스로에 대한 작은 정성도 다하지 못하다 보니 아무래도 멀리 멀리 두고 싶은 마음이었나보다. 김종대 헌법재판관이 쓴 <이순신, 신은 이미 준비를 마치었나이다>는 이런 이순신을 가장 객관적으로 하지만 쉽게 볼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거듭 개정판이 나올 정도라면 그 사실은 시장에서도 증명되었다고 믿는다. 다만 오랜만에 이순신의 이야기를 다시금 접하며, '정성'에 대해 생각해본다. 어쩌면 나는 해보지도 않고, 정성을 들이지도 않고, 결과만 바랬는지 모른다. 원균마냥, 눈에 보이는 숫자와 실적과 평판과 결과에 집착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 결과는 뻔히 알면서도 당장에 급급하여. "성공과 실패, 이는 신이 미리 헤아릴 바가 아닙니다. p.234"라고 말하는 그의 말에 고개를 숙인다. 나 스스로가 부끄러워 지는 또 하루다. 분명히 나는 알고 있다. 왜 내가 무기력하고 고통스러워하는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고자, 분에 넘치는 짐을 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극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되 결과는 당신의 뜻에 달려있텐데. ------------------------------------------------------------------------------- 이순신을 공부함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은,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역사적 가정이나 타고난 운명, 좋은 꿈이나 예언이 아니라 역사를 통해 실증할 수 있는 그가 산 삶, 그 자체여야 한다. p.27 '창의성은 사랑과 정성의 깊이만큼 발휘된다.' p.91 '난리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고 오직 사람이 부르는 것이다.' p.99 공로를 세우더라도 이익을 탐내어 죽은 적의 머리를 베려 하다가는 도리어 우리가 해를 입거나 죽고 다칠 수 있고, 적의 머리 하나를 베느라 더 많은 적을 쏠 수가 없다. 나는 적을 죽이기만 하면 비록 목을 베지 못하더라도 힘써 싸운 자를 제일의 공로자로 정하겠다. 너희들의 용전 여부는 내가 직접 보고 있지 않은가. p.145 대체로 사람의 인품은 그를 시험할 만한 특별히 어려운 상황이 발생했을 때 명료하게 나타난다. p.210 성공과 실패, 이는 신이 미리 헤아릴 바가 아닙니다. p.234 이순신에게는 '적당히'가 없었다. 그는 적당히 남에게 기대고, 적당히 정성스럽고, 적당히 바르고, 적당히 애국한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p.38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