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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사회학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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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본 순간부터 자꾸 귓가에 맴돌던 책이다.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후회한다는 뜻 아니면, 재치가 있거나, 둘 중 하나로 생각했었다. 물론 후회하지 않았으니까, 사회학과 관련된 책을 냈겠지. 했는데 역시 작가의 재치와 유머가 곳곳에 넘쳐난다. 사회학에 대한 애정이 넘치기도 한 학자이기도 하고, 사회 탐구에 관련하여 수많은 저작을 출간한 다작가로 미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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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본 순간부터 자꾸 귓가에 맴돌던 책이다.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후회한다는 뜻 아니면, 재치가 있거나, 둘 중 하나로 생각했었다. 물론 후회하지 않았으니까, 사회학과 관련된 책을 냈겠지. 했는데 역시 작가의 재치와 유머가 곳곳에 넘쳐난다. 사회학에 대한 애정이 넘치기도 한 학자이기도 하고, 사회 탐구에 관련하여 수많은 저작을 출간한 다작가로 미국에서는 가장 명망있는 사회사상가이다. 이런 학자들의 단점은 자신들의 이론에 갇혀 책을 재미없게 쓴다는 것이 단점이라 하면 단점인데 피터 버거는 자신의 학력이나 지위에 갇히지 않고 매우 위트 있게 사회학을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 장점인 것 같다.

 

나의 지적 이력은 착각에서 시작됐다.

 

 

사회학을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사회학의 대상에 따라 어떠한 방법으로 연구하는 가에 따라 학문의 정의가 달라지기도 하고 학자들의 주장에 따라 의견이 분분한 학문이기 때문이다. 피터 버거가 군대에 가서 사회학자라고 하자 상관이 그게 뭔데?” 라고 묻는 걸 보고 웃음이 터져 나왔는데 대부분이 사회학자에 대한 반응이지 싶다.  피터 버거는 그런 사회학에 대한 모든 것을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를 통해 아주 유쾌하게 설명해주고 있는데 그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사회학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감이 조금 온다. ^^

 

좋은 사회학은 좋은 소설과 유사하다. 좋은 소설을 읽으면 사회에 관해 많이 알 수 있으니까.

 

저자는 뉴욕의 뉴스쿨에서 대학원을 다니면서 만난 세 명의 은사가  그에게 미친 영향으로 사회학자로서의 영구적인 영향을 주었으며 세 은사에게 배운  사회학의 이론이 그의 기초 이론을 확립해주었다고 한다. 세 명의 은사( 잘로몬, 쉬츠,마이어) 중 한명인 잘몬에게서는 관념사에서 사회학이 차지하는 위치를 이해하게 되었고, 쉬츠에게서는 현상학을 마이어에게서는 종교사회학과 베버에 관하여 철저하게 배웠다고 한다. 이런 이론을 통해 탄생한 책이 현재의 사회적 구성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사회학을 두가지 의미를 내포하여 저술했다고 하는데

첫째가 사회학이 학대와 억압을 정당화하는 신화들의 정체를 폭로함으로써 인간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고,

둘째가 사회학은 곧 인문학의 하나로 역사와 철학과 가까울 뿐 아니라 문학적 상상력이 갖는 직관적 통찰과도 밀접하다는 것이다.

 

불완전한 비전을 저술하면서는 종교인이었던 저자가 종교와 사회와의 관계를 가치 중립적으로 저술한 다음 다시 종교적인 관점으로 두 가지 관점으로 설명해야 했던 이유를 저자는 사회학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허구에 부여되는 종교적 정당성의 정체를 폭로하지 않으면 안되기때문이라며 , 종교가 가지고 있는 자기기만의 정체를 폭로하게 해야 하는 것이 사회학이라고 한다.

 

사회에 종교가 필요한 것은 인간에게 자기기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회학은 사회적 허구의 실체를 폭로하기 때문에 코미디와 유사하다. 그래서 우리를 해방할 수도 있다.

 

사회학에의 초대에서는 사회학을 하나의 학문이라기보다는 의식의 한 형태, 즉 인간 조건을 바라보는 하나의 독특한 관점이라고 밝히는데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 즉, 사회적 역할 바깥에 설 수 있게 해줌으로써 우리가 자유를 깨닫게 해주는 것, 이 발견이 자유를 향한 첫걸음이라고 한다 미국에서 뉴욕으로 독일로 다시 뉴욕으로 뉴스쿨 대학원의 정교수가 되었을 때, 저자는 다작의 책을 내고 그 사이 사회학에 대한 특정한 접근 방식의 토대를 탄탄히 하게 되었으며, 이론적 토대 또한 장족의 발전을 한 상태였다. 사회적으로나 지위면으로 보나, 평온하기 그지 없는 삶에서 그는 모든 지루함은 악마를 불러들이는 법이라며 소설 엔클레이브스를 집필한다. 모든 첫 소설은 자전적이라고 했듯이 그는 이 소설에 자신의 사회상을 투영해 넣었다고 하는데 뭐. 쉽게 절판되어 아쉽다고 하는 거 보니 , 피터 버거는 작가로도 꽤 성공을 이룬 듯 하다. ^^

   

저자는 베버에 많은 영향을 받았고 베버에 대한 충심이 대단하다. 그러나 사회학자로서 그동안 사회현상을 연구하다보니 베버에 대한 충심을 거스르게 되는 반대되는 이론을 내놓게 되는데 ( 마음아파도 어쩔 수 없다나) 베버의 세계의 탈주술화라는 이론이다. 주술은 사라지고 근대인은 만연한 합리성의 철창에 갇혀버렸다는 것인데 거기에 저자는 근대 세계의 특징은 세속화가 아니라 다원성이라고 한다. 따라서 베버의 세속화 이론은 유지할 수 없다고 한다. 이 다원성에 대해서는 저자가 온몸으로 부딪혀 얻은 경험 때문이었는데 그는 제 3세계와 반체제 문화, 그리고 복음주의와의 만남으로 인해 더 확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가 이런 사회를 연구하기 위해서 다닌 나라만해도 수십 군데이다. 온몸으로 체험하고 느끼며, 사회학과 연결지어서 자신의 책에서 주장한 이론을 설명해주는데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저자는 사회학자로서 중국에 갔을 때 중국 경제의 급부상한 이유를 유학에서 찾아보고자 하는 의도를 조금 내비치기도 한다. 인상적인 것은 저자의 눈에 비친 한국의 모습이었는데 학생들이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그것을 한국 경제 기적의 비결로 보고 우스개 소리로 독일 백 년전 모습이라고 한다. (한국이 아무리 경제 성장을 했다 해도 독일과는 한참 뒤떨어진다고 보는 것이다.) 이어서 베버의 현세적 금욕주의로 이 현상을 설명해준다. 그러면서 부유한 나라는 버릇없는 아이들을 낳는다나.... ....

 

그러고 보니 며칠 전에 읽은 필 주커먼의 신 없는 사회에 피터 버거의 말이 인용이 많았던 것이 기억이 난다. 신 없는 사회는 듣기 나름이겠지만. 덴마크와 스웨덴을 무척 살기 좋은 나라로 보며  종교라는 틀에 갇히지 않은 유일한 사회로서 두 나라를 사회학 관점에서 연구한 책이다.필 주커먼은 종교에  의지하는 것보다는 이성적이고도 합리적인 사고가 사회를 더 살기 좋게 한다는 주장을 하였다. 『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에서 저자 피터 버거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회학이란 학문과 더불어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데  미국이란 사회에서 종교는 워낙 밀접한 관계라 그가 저술한 책과 사상의 바탕은 거의 신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이어서 앞서 말한 필 주커먼의 주장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마지막 에필로그에 고백처럼 실려 있는 말은 저자의 인간적인 면모가 느껴져 가장 인상 깊게 읽었는데, 저자는   자신을 처음 가슴 뛰게 만들었던 사회학과 현재  전문분야로서 사회학을 연구하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기에 전문분야를 의식적으로 멀리하고 있다고 고백한다.  (사회학이 이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한다.) 그래도 자신이 하고자 했던 사회학에 대한 첫마음은 아직도 자신의 가슴을 뛰게 한다는 고백을 통해 사회학에 대한 깊은 애정과 열정이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인생을 아주 재미있었다라고 표현하는 부분에 대해서 내 인생 마지막에  내 인생을 돌아보며 아주 재미있었어... 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하는 부러움으로 책을 덮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k********2 2012.07.11. 신고 공감 12 댓글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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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파 보수 종교사회학자의 인생 편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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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자신들과 상호성의 관계에 있지 않은 사람들을 부정하거나 억압하기 위하여 악랄하게 자신들이 내면화한 사회이미지의 수준으로 도덕적 정의를 강요하는 정치와 종교 권력에 대한 의심의 정당성을 말한 『의심에 대한 옹호』에 이어‘피터 버거’의 책은 이로써 두 번째의 접촉이다. 그러나 시종 중용의 사회학을 선언했음에도 근대성에 대한 서구의 일방적 시각, 푸코나 들뢰즈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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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자신들과 상호성의 관계에 있지 않은 사람들을 부정하거나 억압하기 위하여 악랄하게 자신들이 내면화한 사회이미지의 수준으로 도덕적 정의를 강요하는 정치와 종교 권력에 대한 의심의 정당성을 말한 『의심에 대한 옹호』에 이어‘피터 버거’의 책은 이로써 두 번째의 접촉이다. 그러나 시종 중용의 사회학을 선언했음에도 근대성에 대한 서구의 일방적 시각, 푸코나 들뢰즈 등 일련의 비판 철학에 대한 비하와 극단적 보수주의의 가치관은 저자의 중용을 의심하기에 충분한 인상을 주었기에 이 선입견이 무너지기를 기대하면서 읽었다. 선입견이 확신으로 확인되었지만.

 

이 책은 일종의 지적 자서전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학문적 편력 - 대학원 공부, 연구와 논문 출간, 대학 강의 등을 중심으로 하여 종교 사회학자로서의 인생 전반에 대한 소소한 기억을 더듬고 있다. 이들 얘기 속에 자신의 주요 저작물들의 학문적 배경과 의도했던 주장들을 통해 사회학자로서 지향했던 인간적인 의지를 말하고 있다. 그런데 자기변호와 주장은 있지만 반성은 어디에도 없다. 사람이 일생을 살면서 반성과 용서를 빌 것이 없을 수 있을까? 아마 지극히 자기도취적이고 이기심으로 뭉쳐지지 않고서는 가능치 않을 것이다. 결국 저자의 ‘인간주의적 사회학’이란 것에서 진정성을 발견 할 수 없다는 것이고, 많은 모순으로 가득하다는 얘기가 된다.

 

사회학자로의 길에 들어서게 한 뉴욕의‘사회조사 뉴스쿨’에서의 학업으로부터 자신의 사회학 방법론의 이론적 기반들과 특히 종교사회학자로서 베버에 대한 영향을 말한다. 그리고 뉴스쿨 쉬츠교수의 지식 사회학을 계승함으로써 인간주의적 인문학과 철학에 방법론상 가깝다고 학문적 배경을 정의하고 있다. 또한 루터의 광신자에서 온화한 개신교도로, 중도 우파 보수주의자라고 자신의 이념적 가치관을 선언하기도 한다. 물론 자신의 평가이고 주장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사실 앞선 그의 저술의 논지들조차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본의를 의심하게 될 정도였으니 ‘중도’니, ‘중용’이니 하는 수식어들이 이 사람으로부터 한없이 초라한 말이 되어버린다.

 

다만 그의 저서에서 반복되는 얘기지만 현대사회에 대한 정의에서‘다원성(Plurality)’에 대한 지적이나 ‘제한된 책임성’을 통해 근본주의의 해악을 주장하는 부분만큼에서는 사회학자로서의 일면을 볼 수 있다. 일례로 런던탑에 전시된 사형 집행인의 칼에 새겨진“‘내가 너의 목을 베는 것이 아니요, 예수께서 하심이라.’라고, 그 일을 하는 사람은 자신이 아니며, 단지 신의 도구일 따름이다.”라는 자기기만성이 바로 종교라는 폭로처럼 사악한 이데올로기를 폭로하는 것이 사회학이라는 주장은 저자의 사회학이 어떤 부류인지를 충분히 짐작케 한다. 나아가서 개인이 자기 역할 뒤에 숨을 수 있게 해주는 자기기만의 정체를 폭로하는 것이 그가 말하는 인간주의적 사회학이란 것이고, 이것이 인간을 환상에서 해방시킴으로써 좀 더 인간적인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한다는 신념을 보여준다.

 

한편 근대성은 세속화하지 않는다는 저자의 주장은 다원성과 연결되는데, 오히려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는 신들이 늘어난 것이 그 예라고 하는 것이다. 다분히 서양인의 관점이다. 자신이 무지했던 영역을 뒤늦게 알게 됨으로써 본래부터 있었던 것이, 마치 없었던 것이 새롭게 발생한 것처럼 얘기되는 것인데, 이러한 오만의 논리는 한국 등 동아시아의 경제발전을 후기유교주의문화의 발현이라고 단정하면서 급기야는 자본주의의 도덕적 선과 지고의 가치라고 선언하는 식이다. 현장을 직접 체험하는 사회학적 방법론이 자신의 학문적 무기라고 과시하며, ‘사회학적 관광’이라고 자부하는 그 겉핥기의 관광이 어떤 문화적이고 사회적인 현상을 단정케 하는데 이르는 것을 보면 그저 실소밖에 나오지 않는다. 더욱 가소로운 것은 이렇게 신들이 늘어났으니 다원화된 것이고, 곧 세상은 세속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과연 이 논리가 타당한 것일까?

 

여전히 계몽주의 이성에 뿌리를 내린 수구적 사유의 종교 사회학자의 아전인수식 관점을 지켜보는 것은 힘겨운 일이다. 푸코의 성 혁명에 대한 이론에서 영성이 넘쳐난다고 왜곡하고, “고대의 음탕한 비밀 주신제를 희한하게 재현”한 것에 불과하다고 비아냥거리는 것은 그의 무지라고 넘어가더라도, 한국, 대만, 싱가폴의 물질적 발전을 귀동냥하곤 바로 사회주의 사례는 유토피아적 상상 바깥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리는 비약에는 그저 혀를 내두를 밖에 없어진다. 학문적 양심이나 사회학이 오물에 처박힌 느낌이다.

 

그리고 자신의 반 페미니즘적 언어 사용의 지적에 대해 ‘right of man'처럼 인권을 표현할 때 남성 명사인 man을 사용하는 것은 인간이라는 총칭어로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고 항변하면서 페미니즘 수사학을 공박하는 것이나, 담배회사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받은 것에 대한 비난에 대해서는 금연운동의 정치적 오용이라고 말하면서 성공한 운동이란 이데올로기와 이권이 결합하는 것이고, 곧 “사회학은 분석해서 폭로한다!”라며 본질을 학문적 결실로 회피하는 모습은 지식이 얼마나 파렴치하게 동원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라 할 만하지 않을까? 소위 지식사회학이라 명명하거나 종교사회학에 관심을 가진 이들에겐 어떤 참고가 될지 모르겠으나 내겐 기독교 극우 보수주의자의 탐욕스런 인생 편력이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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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회학자의 역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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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 기독교인이자 심지어 공화당원으로 등록까지 한 사회학자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특히 사회학을 공부하고 그를 직업으로 삼고 살아온 삶의 궤적을 중점적으로 보여주는 자서전을 읽으며 나의 첫번째 선택이자 지금도 정체성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회학에 대한 열정과 믿음이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때때로 뉴라이트와 보수주의자의 모습이 어른거리긴 하지만, 그럼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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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 기독교인이자 심지어 공화당원으로 등록까지 한 사회학자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특히 사회학을 공부하고 그를 직업으로 삼고 살아온 삶의 궤적을 중점적으로 보여주는 자서전을 읽으며 나의 첫번째 선택이자 지금도 정체성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회학에 대한 열정과 믿음이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때때로 뉴라이트와 보수주의자의 모습이 어른거리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학문을 자신의 출세와 주장을 위한 도구로 삼지는 않겠다는, 학자로서의 양심을 지킨 사람이라는 면에서 그냥 질시할 수만은 없는 사람이어서 어떤 정치적 입장에 서있더라도 한 번 읽어볼만한 책이다.

무엇보다도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왔던 종교사회학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학자라서 더 재미있었다. 특히 20여년을 공부하고 고민하여 무신론의 길로 접어든 내가 보기엔 종교의 의미와 폐해 등을 잘 아는 사회학자가 어찌하여 기독교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계속 갖고 있는지 생각하며 보는 의미가 있었다.

그런데, 세속화되어가는 세상 속에서 어찌하여 종교인의 수가 계속 줄지 않고 있는지와 관련하여 "종교신자는 '인지적 소수'"라고 하면서 세속화된 세상 속에서의 종교를 선택의 문제로 돌리고 있지만, 내가 보기에 피터 버거와 같은 사람은 사실 그리 많지않다. 즉, 비판적 인식 속에서 종교를 선택한 사람은 소수지만, 깊은 고민 없이, 객관적 이해 없이 신자가 된 사람의 분포도는 크다. 여전히. 내가 주변에서 본 많은 사람들은 종교를 갖느냐 그렇지 않느냐, 그리고 종교를 갖는다면 어느 종교가 어떤 주장을 펼치고 있으며 그에 자기 자신이 얼마나 공감하는지 그리 고민하지 않는다. 그저 믿을 뿐이다. 그것은 한국이라는 특정한 장소에서 그 비율이 커질 수 밖에 없는데, 특히 개신교의 경우에는 믿음이라는 것에 대한 최소한의 회의나 비판 조차 불신앙의 죄로 몰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 개신교의 영향을 많이 받은 한국이 그러하다는 면에서, 그리고 여러 자료를 통해서 볼 때 미국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심지어 저자 자신도 "복음주의자들이 미국인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사회과학자로서 중립을 지키려 노력한 피터 버거지만 종교 문제에서 철저한 객관성을 유지하기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건 담배와 관련하여 교묘하게 흡연을 감싸는 태도에서도 볼 수 있었다.

베트남전에 반대하지만 "반전 운동이 점차 신경질적인 반미주의와 친사회주의로 기우는 데에는 동조할 수 없었"던 저자는 소위 "중도 우파 단체가" "자금을 대"는 잡지를 발행하고 스스로 "정치적 입장을 '보수주의'로 규정"하며 "자본주의 발전모델만이 수많은 이들의 물질적 생활 조건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고 믿는 버거는 한편으로는 철저한 베버주의자면서도 베버의 모든 주장에 찬성하지는 않는다.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자본주의의 발흥기에서 나타난 건전한 면이 체제가 자리를 잡고 부르조아가 부를 얻으면 초기의 그 금욕적이고 성실한 역할을 더이상 할 수 없다고 한다.

우리가 외국의 사례를 볼 때 자신이 본 것만으로 전체를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기 쉽듯이, 저자도 그런 모습을 보이곤 한다. 서울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석했다가 예의바른 어린이들을 보고 감명 받으며 한국의 경제기적 이유를 거기서 찾았는데, 내가 보기에는 미국이나 유럽의 어린이들이 훨씬 더 예의 바랐다.  뭐가 맞는 걸까?

책을 읽으면서 한국의 상황에 비추어가며 여러 가지를 생각했다. 통일이나 민주화의 문제 모두 사회가 변해가는 과정이고 그 모든 것이 사회과학자의 연구 대상이다. 사회학에 대한 애정이 사라지지 않는 나에게 "변덕스러운 인간 세상에 대한, 또 그걸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에 대한 끊임없는 매혹"인 사회학이라는 학문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그런데, 농담을 좋아하고 심지어 명랑사회학을 제창한 사람치고 그가 얘기하는 농담은 사실 그리 재미있지는 않다!

그리고, 내가 발견한 오자는 한 개. 314쪽.

 

재미있는 글귀들.

"사회학의 분석적인 부분은 당연히 '가치중립'적이어야 하지만, 그 실제 적용은 좀 더 인간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해야 도덕적으로 정당하다." - 85쪽

"'사회에 종교가 필요한 것은 인간에게 자기기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회학은 사회적 허구의 실체를 폭로하기 때문에 코미디와 유사하다. 그래서 우리를 해방할 수도 있다. 그것은 개인이 자기 역할 뒤에 숨을 수 있게 해주는 그 '자기기만'의 정체를 폭료함으로써 개인이 자유라는 현실에 직면하게 한다....그러나 신은 '글을 모른다'. 신은 법전을 읽지 않는다.....오로지 한 인간이 다른 인간에게 어떻게 하는 지를 지켜볼 뿐이다." - 97쪽

"사회학이 인간해방을 목적으로 ......사회학은 우리가 사회의 꼭두각시임을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는 그냥 꼭두각시와는 달리 고개를 들어 우리가 매달린 줄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발견이 자유를 향한 첫걸음이다." - 100쪽

"나는 이제 그 어떤 설명도 광적으로 믿지 않게 된 것이다. 내가 계속 고수한 정통파적 신념이라면 사회과학을 소명으로 보는 베버의 입장뿐이었다." - 101쪽

"사회학은 분석해서 폭로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급진적이지만, 현실 함축이라는 차원에서는 보수적이라는 원칙을 계속해서 믿고 있다." -241쪽

"객관성이란 사회과학자가 세상을 이해하고자 할 때 지향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 사람의 전 존재를 말하는 게 아니다. 베버의 용어로 말하자면, 과학이라면 모름지기 '가치 중립적'이어야만 한다. 하지만 '가치 중립적' 과학자라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도덕적으로는 괴물일 것이다. .... 특정 진술을 할 때는 어떤 모자를 쓰고 했는지 분명히 밝혀서 정직하게 알려줘야 한다." - 281쪽

"지식인들은 도처에서 가난한 자 편에 서서 혁명적 변화에 찬성하는 추세지만, 정작 가난한 이들은 이런 혁명을 좋아하지 않는다." - 308쪽

"도덕적 판단은 명령이 아니라 보고 깨닫는 데에 기초한다" -346쪽

"중용의 정치는 폭넓은 의심과 (어쩔 수 없이 극히 드문) 도덕적 확신 사이의 균형에 기초하지 않으면 안 된다. -347쪽

j***1 2013.01.01.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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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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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정말 내가 어쩌다 알게 되어 어쩌다 읽게 된 책이다. 그런데 그런 것 치고는 제법 재밌게 읽었다. 미국 학자 특유의 유머감각과 위트가 책을 읽으면서 간혹 나를 웃겼고 (언어적 문화적인 장벽을 뛰어 넘어 전달되는 것이 제법 있었다.)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의 자서전적인 책임에도(책을 읽으면서 알고보니 유명한 사회학자인 것 같다.ㅎㅎㅎ) 불구하고 끝까지 읽도록 만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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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정말 내가 어쩌다 알게 되어 어쩌다 읽게 된 책이다.

그런데 그런 것 치고는 제법 재밌게 읽었다.

미국 학자 특유의 유머감각과 위트가 책을 읽으면서 간혹 나를 웃겼고 (언어적 문화적인 장벽을 뛰어 넘어 전달되는 것이 제법 있었다.) 내가 전혀 모르는 사람의 자서전적인 책임에도(책을 읽으면서 알고보니 유명한 사회학자인 것 같다.ㅎㅎㅎ) 불구하고 끝까지 읽도록 만든 뭔가가 있었다.

 

원래는 신학을 하려다가 사회학을 전공하고 교수가 된 사람이라 끝까지 신학적인 관심을 놓지 않았고, 그래서 현재 신학을 공부하는 나에게도 관심을 끌만한 주제들이 계속해서 나왔다. 이번 학기에 수업시간에 교수님들한테 들은 내용과 책에서 읽은 내용들도 계속 나와서 신기해하면서 읽었다.

 

쉬운 듯 하면서도 중간중간에 사회학적으로 전문적인 용어들이나 내용들이 나와서 솔직히 그렇게 쉽게 읽히지만은 않았다. 사회학에 관심이 있거나 공부하고 있는 사람들은 한번 읽어볼 만한 책인 것 같다.

 

저자는 사회학을 '사회적 허구의 실체를 폭로하기 때문에 코미디와 유사하다.' 라고 정의한다. 그것이 개인의 '자기기만'의 정체를 폭로하기 때문에 개인이 자유라는 현실에 직면하게 만든다고... 이 과정에서 사회학은 사회적 허구에 부여되는 종교적 정당성의 정체도 폭로하게 된다고 말한다. (p.97) 이것은 신학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리고 저자도 그렇게 말했다.)

 

제일 뒤에 나와 있는 저자의 에필로그에 보면, 어릴 때 저자의 부모님이 전기 기관차를 선물했는데 저자는 기차 보다는 기차 안에 타고 있는 상상의 승객들과의 대화를 더 즐겼다고 한다. 나는 학부 때 행정학을 전공했지만, 아마 다시 대학에 간다면 사회학을 선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신학의 세계에서 약간은 일탈을 하여 사회학의 세계를 맛보는 것도 참 재미있는 경험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을 읽는 동안....ㅎㅎ

h********9 2012.07.1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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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사회학자의 유쾌발랄한 지적모험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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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버거는 지식사회학과 종교사회학에서 남다른 재능과 업적을 보여준 학자다. 현실의 사회적 구성, 외재화·객관화·내재화의 변증법적 과정, 인식론적 엘리트, 전환, 오케이세계 등과 같은 개념과 이론들이 그러하다. 그 아무리 훌륭한 대가라도 스승은 있는 법이다. 1949년부터 1954년까지 뉴욕의 사회조사 뉴스쿨에서 대학원을 다니면서 그에게 학술적 영향을 끼친 유럽 난민학자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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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버거는 지식사회학과 종교사회학에서 남다른 재능과 업적을 보여준 학자다. 현실의 사회적 구성, 외재화·객관화·내재화의 변증법적 과정, 인식론적 엘리트, 전환, 오케이세계 등과 같은 개념과 이론들이 그러하다. 그 아무리 훌륭한 대가라도 스승은 있는 법이다. 1949년부터 1954년까지 뉴욕의 사회조사 뉴스쿨에서 대학원을 다니면서 그에게 학술적 영향을 끼친 유럽 난민학자 출신의 세 은사들을 소개하고 있다. '사회학자 발자크'를 강의한 알베르트 잘로몬, 현상학의 대가 알프레드 쉬츠, 베버 방법론의 열혈추종자 카를 마이어가 그렇다. 

 

"나는 잘로몬 덕분에 관념사에서 사회학이 차지하는 위치를 이해하게 됐고 또 그 학문의 프랑스 전통에 대해 충분한 지식을 쌓게 됐다. 쉬츠에게서는 현상학이 사회학 이론, 특히 지식사회학을 얼마나 풍요롭게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감각과 더불어 조지 허버트 미드에게서 시작된 미국 사회심리학의 전통에 대해 배웠다. 그리고 마이어에게서는 종교사회학에 대한 기본적인 접근방식과 베버의 저작에 대해 아주 철저하게 배웠다. 나를 가르쳐주고 내 박사논문을 지도하기도 했던 마이어가 내 초기 연구에는 제일 중요했다. 하지만 이 세 사람 모두 내 사고에 영구적인 영향을 미쳤다."(32쪽)

 

사회학자로서 피터 버거의 활동은 크게 네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첫번째 시기는 1958년부터 1963년까지 하트퍼드 신학대학원의 사회윤리학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이다. 이 때 그의 초기 삼부작이 출간되는데 《엄숙한 집회의 소음》《불안정한 비전》《사회학에의 초대》(1963)이다. 두번째 시기는 1963년부터 1970년까지 뉴스쿨 대학원의 정교수로 재직하던 시기로 그의 생애에서 가장 생산적이던 시기다. 대표작은 '구성주의' 고전의 반열에 오른《현실의 사회적 구성》(1966)과《성스러운 천개》(1967)《천사들의 소문》(1969)이다. 이 때 대중들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소설도 두 권 출간되는데 《엔클레이브스》(1965)와 《천벌의 규약》이 그런 비운의 책이다.

 

세번째 시기는 1970년부터 1979년까지 러트거스 대학에서 가르치던 때로 그의 지적 궤적에 직접적인 영향은 미치지 못했다. 이 시기의 대표작은《고향을 잃은 사람들》(1973)과 《희생의 피라미드》(1974)이다. 당시 근대성에 관심을 가진 이반 일리히와의 교류가 이들 책에 녹아 있다고 생각된다. 물론 버거의 눈에 비친 일리히는 중세를 사랑한 철학적 보수주의자였고 그 자신은 근대성을 사랑한 정치적 보수주의자였다. 네번째 시기는 1979년부터 지금까지 장장 30여년에 걸친 보스턴 시기다. 2년간 예수회 기관인 보스턴 칼리지에서 근무하다 1981년부터 보스턴 대학으로 옮겨 가 사회학·종교학·신학을 아우르는 UNI 교수로 재직하면서 줄곧 보스턴에 머물게 된다. 이 때의 대표작은 《의심에 대한 옹호》(2009)와 의심의 여지도 없이 이 책《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2011)가 된다.

 

피터 버거는 종교학에 관한 관심을 평생 유지한 루터파 신학자이기도 하다. 또한 나처럼 신정론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한 학자였다. 하트퍼드 시절, 저자는 신정통주의 신학에서 벗어나 스스로를 자유 루터주의자로 규정한다. 많은 이들이 저자의 처녀작을《엄숙한 집회의 소음》으로 알고 있는데 기실 진정한 처녀작은 《불안정한 비전》이라고 한다. 전자가 먼저 출판되었지만 집필시기는 후자보다 더 늦었다. 《불안정한 비전》의 한 가지 논지를 요약하면, "사회에 종교가 필요한 것은 인간에게 자기기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이다.   

 

"사회학은 사회적 허구의 실체를 폭로하기 때문에 코미디와 유사하다. 그래서 우리를 해방할 수도 있다. 그것은 개인이 자기 역할 뒤에 숨을 수 있게 해주는 그 '자기기만'의 정체를 폭로함으로써 개인이 자유라는 현실에 직면하게 한다. 이 과정에서 사회학은 사회적 허구에 부여하는 종교적 정당성의 정체도 폭로하지 않으면 안 된다."(97쪽)

 

z***a 2012.05.2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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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주의 다양성 이데올로기의 힘을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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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집필증'을 앓고 있는 늙은이라 스스로를 칭하는 저자 피터 버거의 학문인생 자서전이라고 해야 할라나? 만약 이정도 업적(일단 그 분량만을 기준으로 한다 하더라도)을 쌓은 학자가 국내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참 다양한 경험을 가진 인물이라 느껴졌다. 흔히 우리나라 학계(그것이 꼭 인문사회계가 아닌 자연계, 공학계라 하더라도)는 대체로 그 분야의 인력풀이 취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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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집필증'을 앓고 있는 늙은이라 스스로를 칭하는 저자 피터 버거의 학문인생 자서전이라고 해야 할라나? 만약 이정도 업적(일단 그 분량만을 기준으로 한다 하더라도)을 쌓은 학자가 국내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참 다양한 경험을 가진 인물이라 느껴졌다. 흔히 우리나라 학계(그것이 꼭 인문사회계가 아닌 자연계, 공학계라 하더라도)는 대체로 그 분야의 인력풀이 취약하기 때문에 몇몇 저명하다는(학술적으로든 사회정치적으로든) 학자의 경력을 파고들면, 여러개 학회의 학회장, 이사들에서부터 다양한 정부 위원회의 회원이나 위원장, 그리고 다양한 공공기관 및 기업의 자문위원을 겸임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시니컬하면서도 완곡하게 표현하면, 한국의 학자는 만능 제너럴리스트라고 말하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러한 '명목상'의 풍부한 경력과는 차원이 다른 경력을 피터버거는 쌓았다고 보여진다. 그 저술의 양이 방대하며, 종교사회학, 지식사회학, 비교사회학(이런 용어는 저자가 스스로 쓰지는 않았지만... 지식사회학 빼곤) 등등의 분야에서 저처럼 다양한 프로젝트(주제를 문서화하고, 관련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사람을 모으고, 만나고 현장을 가보고, 자료들을 검토하고, 그것을 정리하여 보고서와 출판으로 연결시키는 진짜 문서작업이 포함된)를 직접수행하거나 관련지을 수 있다는 것이 그저 신기했을 뿐이다. 한국에서의 그 무수한 직함들은 90% 이상이 이러한 작업과는 별개의 명함과 말빨, 그리고 한두페이지 정도의 평가의견으로 쫑나는게 대부분임에 반해서 말이다.


그러면서 느껴지는게... 저 정도 경험을 다양하게 축적하게 되면, 어찌보면 자연스럽게 특정 정치이데올로기를 표방하는 파토스의 허무함을 느끼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더라. 그런 파토스와는 배치되는 그 주창자들의 모순 또한 너무나도 많이 볼 수 밖에 없는 시간일테니까. 중간중간 스스로 보수주의자라고 말하고 있고, 일반적인 사회진보 주장들에 대해 부질없다는 판단을 드러내놓고 있는 부분들이 많은데, 그에 대한 반감이나 동의를 떠나서 저자의 판단이 정리된 문장에 대부분 일견 수긍이 가는 경우가 많았다. 보수주의적인 주장에 대한 거부 부분에서도 그랬고. 어찌보면 학자로서의 아이덴티티를 표방하는 자서전에서 스스로 객관적, 중용적인 입장을 다듬어온 인물로 그리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대표적으로 레이건 정부를 위한 위원회 활동과 남아프리카의 미래를 준비하는 활동을 한 사람이 같이 했었다는, 그것도 학술적인 기반에서였다는 설명에 '변절'이나 '박쥐'와 같은 단어를 떠올리지 않고 수긍하다보면 저정도 선언에 대한 수긍은 별게 아닌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노익장... 다양한 저자의 사상의 궤적을 설명하는 글들을 보면서 다시금 서구에서 교육받은 학자들의 글쓰기 능력에 대해 놀라움을 가지게 된다. 어쩜 이렇게 다작일 수 있을지 말이다.

YES마니아 : 골드 e****s 2015.08.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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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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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피터 버거는 미국의 사회학자로, 올해 여든 셋의 그야말로 노학자다. 보통 대가라 불릴 정도로 학문적 성과를 이룩한 노학자가 쓴, 그것도 그가 사회학자로서 '극단의 시대'라 불리는 20세기 초중반과 격변의 시대인 20세기 후반의 한 세기를 살았던 인물이 쓴 자서전이라면 아무래도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을 텐데, 이러한 편견이 무색할 정도로 이 책은 오히려 경쾌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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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피터 버거는 미국의 사회학자로, 올해 여든 셋의 그야말로 노학자다. 보통 대가라 불릴 정도로 학문적 성과를 이룩한 노학자가 쓴, 그것도 그가 사회학자로서 '극단의 시대'라 불리는 20세기 초중반과 격변의 시대인 20세기 후반의 한 세기를 살았던 인물이 쓴 자서전이라면 아무래도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질 수밖에 없을 텐데, 이러한 편견이 무색할 정도로 이 책은 오히려 경쾌함과 재기발랄함이 곳곳에 묻어나고 있다. 배우고 싶어 하지 않으면 최소한 재미있게라도 해 주자. 저자가 좋아하는 금언이라고 하는데, 아마 이 금언만으로도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또 이 책이 어떤 책인지 알 수 있을 듯.

 

2.

저자는 자서전 곳곳에서 자신의 신념인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적 기독교인'임을 고백하고 있는데, 그것이 위압적이라거나 소위 말하는 '꼰대질'로 보이지는 않는다. 오히려 여든이 넘게 자신의 신념을 굳건히 지키면서도, 문제를 보다 조심스럽게 하지만 단호하게 자신의 신념을 고백하는 저자의 모습은 인간적으로 존경심이 들 정도다. 깜냥이 되랴마는, (또 언어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한번 차라도 한 잔 마시면서 깊게 대화를 나누고 싶은, 그런 말 잘 통하는 세련된 '할아버지' 같은 느낌이랄까. 뭐 사실 말을 꺼낸다면 논쟁의 여지가 될 '거리'들은 많지만...어쨌든 적어도 그 '거리'들이 이 책의 장점을 퇴색시키는 것은 아니다. 또 저자가 취하고 있는 어떤 일관된 '신중함'은 정치적 입장차를 떠나 꾹꾹 머릿속에 새겨야 할 점이기도 하다. 뻔한 금언이지만 그래도 언제나 진리인 것.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3.

개인적으로 자기 자서전의 마무리를 농담으로 하고 있는 것이 뭔가 더 웃겼다. 간만에 편하게 일독한 책.

j******n 2012.05.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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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사회학자가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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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떤 사람이 의사한테서 아무래도 앞으로 일 년밖에 못 살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단다. 그 사람은 그 끔찍한 소식을 듣고 한참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의사한테 어찌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의사가 말했단다.“사회학자와 결혼해서 노스다코타로 가세요.”“그럼 낫나요?”“아니요 일 년이 아주 길게 느껴질 겁니다.>>위의 농담이 농담이나 과장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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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떤 사람이 의사한테서 아무래도 앞으로 일 년밖에 못 살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단다. 그 사람은 그 끔찍한 소식을 듣고 한참을 곰곰이 생각하다가 의사한테 어찌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그러자 의사가 말했단다.

“사회학자와 결혼해서 노스다코타로 가세요.”

“그럼 낫나요?”

“아니요 일 년이 아주 길게 느껴질 겁니다.>>


위의 농담이 농담이나 과장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던 책이다. 진짜로 기일~~~게 느껴지게 해 줄거라는걸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혹시 사회학 공부를 한 사람이라면 재밌게 읽으실 수 있을지도 모르나, 그렇지 못한 나로써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이 책을 설명하면서 종종 언급되는 " 유쾌하면서 유머러스한" 혹은" 발랄한 문장들 " 을 기대했건만, 그것 역시 그다지 눈에 뜨이지 않았다. 그것만 기대하면서 읽어내려 간 사람이 나이니, 내가 못 찾았다면 아마 없는게 맞을 것이다. 지루하지 않게 세상을 설명하는 법! 이라고 이 책을 설명하고 있던데, 세상을 설명하고 있었던 것 같긴 하지만서도, 절대 절대 절대!  지루했다. 오히려 지루하게 세상을 사회학을 설명하는 법이라고 했다면 정직한 발언이었다고 아낌없이 칭찬을 해줬을 것이다. 정직함에 토를 달게 되는 일은 없으니 말이다.


그나저나 이 양반의 강연은 진짜로 한없이 지루하겠다 싶은데, 과연 누가 이 양반의 강연을 듣고 좋아한다는 것인지 살짝 의문이 든다. 혹시 그건 그만의 착각이 아닐까?  아니면 내가 대학을 졸업한지 너무 오래되서 강의가 얼마나 지루한 지를 기억 못하는 것일지도.  하여간 법학보다 더 지루한 학문을 만나게 될 줄이야~~~ 진짜 놀랐다. 이 책을 보면서 순진한 생각으로 사회학을 전공하겠다고 나서지 않은 것에 얼마나 감사드렸던지... 그런 점에서 작가에게 감솨를~~~

a*******0 2012.07.12.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