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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인은 평등하다’ 학창시절 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을 받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이렇게 배웠다. 머리가 크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이 ‘선언’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인류가 군집 생활을 하는 그 때부터 계급은 이미 존재했다. 지배자와 피지배자, 또는 태어난 출신에 따라 태생적으로 자신의 신분이 결정되었다. 그 결정으로 삶의 많은 부분들이 바뀌었다. 우리의 경우 고려와 조선시대의 왕조시대에의 신분에 따른 계급사회를 지나 해방 후 자유 민주주의를 받아들이면서 ‘만인은 평등하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이상에 불과 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인 돈이 곧 계급을 상징하는 도구였다. 누군가는 입에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고 누군가는 가난을 양막처럼 뒤집어쓰고 태어난다. 우리는 IMF를 지나면서 가진자와 못가진자로 극단적으로 나뉜 계급은 그 간극은 더 심해졌다. 그리고 그 간극의 격차는 갈수록 더 벌어져 이제는 그 간극으로 인하여 자신의 계급 사다리가 고정되어 버렸고, 일부는 최근의 경제 사태로 인해 현 단계에서 아래 등급으로의 추락도 일상적인 일들이 되어버렸다. 이 책 『당신의 계급 사다리는 안전합니까 』는 미국을 대표하는 언론사인 『뉴욕타임스』가 1년의 취재기간을 거쳐 ‘계급이 문제다(Class Matters)’라는 제목으로 게재된 기획기사를 모은 책이다. 계급의 초상을 제대로 담기 위해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하층계급부터 상층계급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자료를 수집했다. 또한 개개의 삶을 뛰어넘어 ‘구조화되어 있는 계급’을 보여주기 위해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미국 국세청과 통계청의 방대한 자료 또한 분석해 미국사회의 계급을 분석했다. 우리는 미국을 기회의 나라라고 부른다. 초기에 수많은 이민자들이 미국에서 부를 거머쥐었지만 이러한 성공 신화는 현대에 와서는 과거의 전설이 되어버렸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아메리칸드림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던 상층계급으로의 이동은 점차 둔화되거나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렸다. 이제 계급은 그 어느 때보다도 미국인의 일상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신분 세습을 대체했다고 믿어져왔던 ‘능력에 의한 성공’ 또한 계급에 기반 한다. 재산과 교육, 연줄을 가진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는 기반과 능력을 물려준다. 습성, 기술, 유전자, 연줄, 돈 등 아이들이 부모에게서 무엇을 물려받았든지 간에 그 대물림이 오늘날 자신의 계급을 결정하는데 더 중요해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 책 『당신의 계급 사다리는 안전합니까 』는 미국사회를 대표하는 4단계(하층, 노동, 중간, 상층)계급의 예를 통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소득과 부의 차이로 인하여 건강, 수명, 결혼, 교육과 더불어 그들의 삶의 질과 수준이 어떻게 달라지는 가를 보여준다. 최근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전 세계적인 금융공항이 닥쳤고 그로인해 계급간의 격차는 더 심해졌다. 1971년과 2001년 사이 미국 상위 1퍼센트의 소득은 139퍼센트 올랐다. 반면 소득 상위 40~60퍼센트는 17퍼센트 상승했고, 최하위 20퍼센트는 겨우 9퍼센트만 상승하는 데 그쳤다. 불행하게도, 불평등은 점점 심각해져가고 있다. 2011년 월가를 점령한 시위대의 등장은 미국의 불평등 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다다랐음을 말해주는 증거이다. 미국의 상위 1퍼센트는 전체 소득의 17.7퍼센트를 독차지한다. 상층계급의 소득은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중간계급과 하층계급의 소득은 거의 제자리걸음 수준이다. 더 심각한 것은 이러한 현상이 갈수록 심해진다는 점이다. 시간이 갈수록 상위 1퍼센트와 하위 99퍼센트의 소득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사회 불평등은 손을 댈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해질 것이다. 이러한 양극화는 최근 미국 월가의 “점령하라”라는 시위를 유발시킨 계기가 되었다. 상위 1%에 해당하는 부자들의 소득 증대는 무분별한 소비 행태로 나타난다. 부자들의 휴양지인 낸터컷 섬에는 매년 누가 얼마나 더 비싼 땅을 구입해 초호화 주택을 세우는지가 관심거리가 된다. 과거에 비해 부자들은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쓴다. 계급 사다리의 최상층에 있는 초부자들뿐 아니라 연소득 10~30만 달러 정도를 버는 젊은 부유층들도 외부인의 침입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자신들만의 마을을 만들고 그 속에서 생활한다. 상층계급의 이러한 구별 짓기는 계급 간 장벽이 점점 더 강고해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10대 때 이미 아버지가 서로 다른 다섯 아이를 낳은 흑인 여성 앤절라 휘티커의 인생 역정은 미국 계급의 현실을 보여주는 지표이자 쉽게 일어나지 않는 계급 상승을 이룬 영웅담으로 소개되고 있다. 아버지 얼굴도 보지 못한 채 하층계급의 어머니 밑에서 자란 앤절라 휘티커는 10대 때 첫 아이를 낳은 후 시카고 빈민가의 위험하고 불안한 삶에 내동댕이쳐져 살아가고 있었다. 그녀의 아이들은 10대 때 벌써 마약거래에 뛰어들어 다리에 총을 맞기도 하고 물건을 훔치기도 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하층계급에서 탈출하겠다고 마음먹은 앤절라 휘티커는 10년 동안 초인 같은 노력 끝에 결국 중간계급으로 올라서는 데 성공한다. 생계를 위해 일과 학업을 병행하면서 힘들게 간호사 자격증을 따낸 앤절라 휘티커는 그야말로 현대판 계급 상승의 영웅담을 보여준다. 『뉴욕타임스』는 앤절라 휘티커의 신분 상승기를 행운과 초인적인 노력이 결합된 현대판 영웅담으로 묘사하며 역설적이게도 계급 사회의 현실에 대해 냉혹한 진단을 내렸다 우리가 인생에서 성공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명석한 두뇌? 피나는 노력? 두 가지 모두 아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가장 결정적인 것은 ‘부모를 고르는 능력’이다.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나느냐는 인생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부자 부모를 둔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자신의 계급적 특권을 지킬 수 있도록 좋은 교육을 받고 인맥과 노하우를 물려받는다. 반면 가난한 집 아이들은 맨몸으로 노력하다 결국 현실에 좌절하고 만다. 개인이나 가족의 선택에 기초하여 자녀들의 학업 성취와 직업 획득이 이루어지고, 그에 따라서 임금이나 소득의 격차가 발생한다. 이 책은 구체적으로 교육, 소득, 직업, 재산이라는 카드 4장의 차원에 의해서, 또 네 차원의 결합을 통해서 계급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를 경험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한국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동국대 김낙년 교수는 2012년 5월, 한국의 상위 1퍼센트가 총 개인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998년의 6.97퍼센트에서 2010년 11.5퍼센트로 65퍼센트나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불과 10년 사이에 한국의 소득불평등이 가파르게 악화되었음을 의미한다. 게다가 같은 기간 중 상위 0.1퍼센트의 소득은 130퍼센트, 최상위 0.01퍼센트는 182퍼센트나 증가했다. 즉 부자일수록 더 빨리, 더 큰 부자가 되었다는 말이다. 불평등한 사회일수록 자살과 정신질환, 범죄가 증대한다. 한국의 불평등 수준은 OECD국가 중 가장 불평등이 심한 국가인 미국에 이어 2위 국가다. 저임금 근로자의 비중도 25.6%로 최고수준을 보였다. 우리는 이러한 수치를 통해서 한국의 사회양극화를 파악할 수 있지만 『당신의 계급 사다리는 안전합니까 』는 한걸음 더 나아가 숫자에 가려진 생생한 계급 불평등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책『당신의 계급 사다리는 안전합니까 』은 미국에 대한 예를 통해 간접적으로 한국의 소득불균형에 대해 애기하고 있다. 미국의 예를 통해 옮긴이는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고 애기한다. 하지만 이 책이 주는 메시지는 여기까지이다. 옮긴이는 이 책을 통해 첫째, 이 책은 미국의 계급 불평등을 다루고 있지만, 한국의 계급 불평등 자체에 대해서 직시할 수 있게 한다. 둘째, 미국 사회에 대한 막연한 환상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셋째, 불평등의 정도나 빈곤율에서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한국의 계급 불평등을 새롭게 인식하게 한다. 고 애기하고 있다. 여기까지 이다. 우리의 소득 불균형으로 인해 계급간 이동이 갈수록 불가능해지고, 계속되는 경제 사태로 인해 중산층이 무너지고 있는 현실에서 자신의 계급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해야 되는지, 계급의 상승을 위해 어떻게 해야 되는지 어떤 대안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그저 미국의 현실을 통해 우리의 실상을 들여다보는 것까지가 이 책의 역할이다. 오늘 자 신문기사에 갈수록 문제가 되어가고 있는 “하우스 푸어”와 ‘유럽발 경제위기’로 인해 대기업들이 허리띠를 둘러매고 희망퇴직과 구조조정에 돌입한다는 기사가 나와 있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시작으로 한국 산업계 전반에 불어 닥친 구조조정의 여파는 2008년 미국 등에서 발생한 금융위기로 2차 구조조정을, 2012년 유로존 위기와 함께 3차 구조조정의 시기가 도래하고 있다. IMF로 인해 기업체에서 밀려나온 많은 중산층들이 하층민으로 전락했고, 2008년, 그리고 이어지는 2012년의 글로벌 경제위기를 계기로 많은 중산층들이 하층민으로 전락하고 있다. 이런 작금의 실정은 우리가 딛고 있는 계급의 사다리는 언제든 그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럼 우린 현재의 계급 사다리에서 버텨내기 위해 무엇을 해야 되는가? 상층 계급으로의 신분상승은 둘째 치고라도 더 이상 하락하지 않기 위해 우리가 취해야 할 방법은 무엇일까?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 책은 계급간 불균형이 심화되고 있음을 여러 예와 통계수치를 들어 설명하고 있지만, 자신의 계급을 유지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되는지에 대해서는 어떠한 대한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단순히 엔젤라 휘티거의 예에서 보듯 그저 모든 것을 자신의 노력과 의지 탓으로만 돌리고 있는 것이다. IMF를 비롯하여 세계적인 금융위기를 우리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부담은 우리가 져야 되는 그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그리고 부자들은 위기를 기회로 삼아 그들의 부를 더 키우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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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 가난하지도 부자도 아닌 평범한 집안, 물질이나 돈에 부족함이 없었던 그런 집안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먼가에 부족함을 잘 모르는 것 같다. 어릴 때 많은 이야기 중에 공과금 낼 돈이 없어서 학교를 못 간다는 말들이 많았는데 우리 집은 어릴 때부터 특용 작물을 재배해서 그런지 부족함이 없이 그렇게 자란 것 같다. 부자에 대한 동경이야 남들만큼 있지만 그래도 크게 내 인생을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점점 커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다 보니 정신없다. 우리 부모님들이 참 존경스럽기 까지 하다. 아이들에게 머 이리 들어가는 돈이 많은지 참 할 일도 많고 들어갈 일도 많고 정신없는 그런 나날이다. <당신의 계급 사다리는 안전합니까?>를 읽는 내낸 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 책은 뉴욕 타임스의 기획물이다. 뉴욕타임스의 기자들이 미국 사회 전역으로 흩어져 하층계급에서 상층계급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수많은 자료들을 검토했다. 교육, 의료, 소비, 주거, 결혼 등 인간 생애의 다양한 측면에 나타나는 문제를 발견하며 우리 사회에 대한 새롭고도 놀라운 이야기들을 전한다. 이런 이야기들의 모음이다 보니 우리 실생활에서 경험하는 그런 이야기 들인 것이다. 미국의 예지만 우리현실에서도 절실하게 들어나는 그런 일들인 것이다. 상층이어서 누리는 혜택과 하층계급이기에 이렇게 밖에 살지 못하는 그런 아픔이 절실하게 나타난다. 우리는 누구를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가족이에요. 가족 없이는 내 삶에 어떤 의미도 없어요.”이 말이 참 가슴에 와 닿는다. 우리는 정말 가족을 위해서 가족의 행복을 위해서 사는 것 같다. 나또한 가족을 위해서 산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아마도 별로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책의 소중함이 더 전해져 온다. 가족을 위해서 살다보면 자기 꿈도 버리고 사는 경우들이 참 많다. 그리고 가족을 위해서 억척스럽게 사는 사람들도 참 많다. 가족의 신분 상승을 위해 우리 부모들은 더욱더 노력하고 사는 것 같다. 그렇기에 우리 삶은 살아볼 만 한 세상이다. 책을 읽다보니 가족을 생각하면 특히나 떠오르는 게 건강이다. 책에서 건강에 대해 다룬 내용이 있다. 그런대 건강이 상류사회하고 하류사회의 대처가 저리 틀릴까? 너무나 화가 났다. 일단은 정말 잘 살고 보아야겠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떠나질 않는다. 같은 종류의 아픈 환자를 똑같은 조건이 아닌 상, 중, 하로 구분해서 조사를 한 것이다. 그런대 상류사회의 환자는 빠른 대처로 병도 오래가지 않고 고친다는 점이다. 하류사회 환자는 같은 병인대도 오래 가고 다른 합병증도 나타난다. 화가 났다. 잘살자. 같은 조건인대 돈이 없어서 대처 수준도 떨어지고 돈이 없어서 다른 합병증도 생기고 하는 것이 너무나 가슴 아팠다. 아이들 학교 문제도 나타난다. 부유한 가정의 아이는 환경도 좋고 그 만큼 받아들이는 속도도 빠르고 살아가면서 누리는 생활 습관과 잘 사는 사람들의 태도나 습성을 잘 안다. 그런대 못사는 사람이 신분 상승하여 배우는 과정들도 보인다. 그 사람들이 고민하고 겁내하고 잘사는 사람에 속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들이 안쓰럽다. 인간은 누구나 다 평등하다고 하는데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일단은 있어야 하고 잘 살아야 한다. 그래야 많은 환경과 많은 경험을 하는 것 같다. 언젠가는 잘 산다는 희망을 가지고 살지만 특별한 직업이나 성공을 하지 않는 한 그 것을 뛰어 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살아보고 싶다. 으 책은 뉴욕타임스가 조사에 의해 쓴 책이란 점에서 더욱 앞이 어둡다. 가난이 대물림되고 부자는 더 부유해지는 사회 이런 사회가 언제까지 갈지 너무나 걱정된다. 잘살기 위해서 많은 노력과 공부가 필요한 것 같다. 물론 잘 살고 못 살고가 무슨 문제인가? 그저 가족 건강하고 행복하면 되는 것 아닌가? 이런 생각들을 많이 하고 산다.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살지만 이왕이면 잘살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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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진보 정당 내 종북 세력 문제로 한참 동안 떠들썩했다. 분단국가의 특성 상 이데올로기는 첨예한 갈등을 일으키는 주요 소재로 활용되기 마련이다. 정치적 민주주의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 있다고 판단되는 지금에도 여전히 친북·종북의 탈은 토끼사냥을 가장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 도구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에는 친미·종미·숭미를 표방하는 집단과 조직, 사람들이 많다. 다들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있을 뿐이지 그렇게 살고 있다. 여전히 아내와 아이들을 머나먼 미국에 보내고 자신은 끼니도 챙기지 못하고 살아가는 기러기 아빠들이 무수하고 영어 하나면 뭐라고 하고 산다는 우스개는 정설이 되었다. 법체계에서부터 행정·사회구조·경제체제 등 거의 모든 면에서 미국식을 표방한다. 어쨌든 미국이 세계 1등이기 때문이다. 힘도 제일 세고 돈도 제일 많으니까.
2005년 뉴욕타임스에서 기획 취재한 기사를 번역한 「당신의 계급사다리는 안전합니까?」는 이런 기존의 ‘아메리칸 드림’이 이미 붕괴되기 시작했고 이제는 급속도로 불평등한 구조의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책이다. “누구나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상승 이동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이민자들이 몰려드는 미국은 계급과는 거리가 먼 사회로 대중들에게 각인되어 있었다. 이 책에서는 이러한 인식이 환상에 불과하며, 현실은 계급 불평등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계급사회라는 것을 대중매체 기자들이 밝히고 있다는 점” (p.349)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최고라고 엄지를 치켜세우던 미국의 속살을 그것도 대형 신문사에서 들추어냈다는 것에 일단 놀랐다. 한국의 언론 현실에서는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현재 전 세계 어디에도 계급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도의 카스트도 이미 공식적으로는 없는 제도이다. 그러나 ‘1%의 초부유층, 0.001%의 재벌’ 이런 뉴스를 접하면 욕지거리를 내뱉음과 동시에 ‘아~! 부럽다. 도저히 올라갈 수 없는’이라는 탄식을 하게 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계급 사다리는 분명히 존재하는 것이다. “릴로는 한창때의 연봉이 최하 10만 달러인 경제적으로 동질한 소집단이다. 그들은 대부분 백인이다.” (p.212) “무엇보다 그들은 모든 권력을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거미줄에 연결되어 있었다. 그녀는 말했다. 여하튼 그들은 모두 서로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p.104)
내가 사는 대구에도 강남 같은 곳이 있다. 대구에 살지 않는 사람도 ‘수성구’는 들어 봤으리라 생각한다. 예전에 한창 ‘강남8학군’으로 시끄러웠을 때 ‘강남8학군’을 제외하고 전국에서 가장 학구열이 높은 곳이 대구의 ‘수성구’라고 했었다. 예전의 명성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여전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수성구’의 프리미엄을 맛보기 위해 타 구에 살고 있는 부모들은 고등학생 자녀들을 위장전입 시키면서까지 ‘수성구’에 있는 고등학교로 입학시키거나 전학시킨다. 고등학교 때부터 불법과 탈법을 몸소 가르치는 것이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수성구’에는 책에서 소개하나 ‘릴로’처럼 전문직 직업을 가진 고소득 계층이 많이 살고 있다. 내가 다니는 교회에도 이런 아이들이 많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포장해서 아이들을 설득하는 것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솔직하게 ‘더 좋은 학교를 위해 이 정도는 괜찮아’ 라고 말하며 설득하는지 알 수는 없지만 그 아이들은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지옥 같은 등·하교를 1시간 반 동안 해야 한다. “평등을 크게 촉진하는 것으로 이상화되었던 시스템이 오히려 태어날 때의 기득권을 강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p.14)
“결국 체제의 문제다.” 슬라보예 지젝 결국은 체제의 문제이다. ‘수성구’에 있는 고등학교에 보내기 위해 위장전입을 불사하는 학부모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까? 나는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본다. ‘수성구’가 아닌 타구에 있는 학교에서 빼어나게 공부를 잘했다면 굳이 불법을 자행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교육을 공공의 영역에서 완전히 포기하다 보니 사적인 시장영역에 맡겨져 버렸다. 한 시간에 수십만 원씩 하는 과외를 받는 아이들은 바보가 아닌 이상 아무리 위장전입을 불사하는 아이들이라 해도 따라가지 못한다. 처음부터 올라갈 수 없는 저 높은 곳의 사다리 위에 있었던 것이다. “더욱 글로벌화한 시장의 탄생, 신기술, 감세로 인해 가속화한 투자 등으로 특징지어진다. 주가는 급등했고 그만큼 가장 높은 순위에 있는 업종들이 이익을 보았다.” (p.265) “이 책이 다룬 양극화, 중간계급 붕괴, 초부유층의 독식 같은 문제는 진행형이거나 더 악화되었다.” (p.364) 신자유주의가 가속화 되면서 모든 것은 시장권력으로 기울어 졌다. ‘있는 놈은 더 부자가 되고 없는 놈은 더 가난해 지는’ 형국이 공고화 된 것이다. ‘중산층 붕괴’라는 말이 나온 지는 어림잡아도 십여 년은 지난 것 같다. ‘중산층 붕괴’는 더 가속화 되고 격렬해 졌을 뿐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모든 권력이 시장에 쏠리다 보니 국가의 모든 힘(공권력을 포함한)도 시장으로 쏠렸다. 수백, 수천억을 개인의 잘못으로 기업에 피해를 줬다 해도 어차피 재벌가 소유의 기업이기에 처벌 받지 않는다. 법·언론·학계를 아우르는 모든 분야가 시장 권력을 적극적으로 서포팅 한다. 도쿄에서 벌어지는 한·일전 축구를 응원하는 붉은 악마의 서포팅, 그것보다 더 적극적이고 현란하게 말이다.
이런 과정을 반복적으로 학습한 0.1%의 재벌이거나, 1%초부유층이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은 욕은 하면서도 속으로는 ‘역시~ 돈이 최고야~ 재벌은 아무도 못 건드리는구먼~ 내 아들놈은 꼭 세 개의 별에 입사시켜야지~!’ 생각한다. “[뉴욕타임스]는 2008년 4월 시급 20달러가 노동계급이 중간계급으로 진입할 수 있느냐를 가르는 기준이라고, 시급 20달러는 연봉 4만 1600달러에 해당한다. 이는 ‘미국적인 삶’ 즉 자동차와 집을 갖고 대학 교육을 시킬 수 있는 최소 연봉이다.” (p.368)
연봉 4만 달러면 우리 돈 4천만원대 중반이다. 결코 적지 않은 연봉이다. 며칠 전 뉴스에서 아이 한명을 낳아 기르는데 최소한 필요한 비용이 월300만원이라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역시 미국의 따라 쟁이다. 모든 것을 따라간다. “2009년 미국과 한국에서 상위 10퍼센트의 임금과 하위 10퍼센트의 임금 비율은 각각 4.86퍼센트와 4.74퍼센트로,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불평등이 심한 1위와 2위 국가였다.” (p.361) 상위 10퍼센트의 임금과 하위 10퍼센트의 임금 비율은 물론 부의 독점 현상도 한국은 미국에 이은 OECD2위 국가이다. 미국의 계층 구조는 계급 사다리 구조로 확고해졌다. 중산층은 붕괴하고 초부유층의 독식은 심화되고 있다.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안정된 삶을 구가하고 보장보험의 혜택을 누렸으나 지금은 흔한 대학 졸업장이 없으면 꿈도 꾸지 못한다고 한다.
무너져가는 ‘아메리칸 드림’의 끝자락을 아직도 붙잡고 있는 한국의 현실이 서글프다. 전 세계를 공황에 빠뜨렸던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 사태에도 우리 경제 수장이라는 사람은 ‘다른 나라보다 피해가 적습니다.’ 라는 바보 같은 논평을 내놓기도 했다. 그들에게는 전부였던 미국의 경제체제가 모래위의 성처럼 부실 그 자체였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한다. 유럽을 비롯한 많은 국가는 나름대로 경제구조를 개선하고 미국식을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는데 한국의 현실은 그대로다. 숭미를 버릴 수 없는 것이다. 파멸로 갈수도 있는 미국의 초상을 그대로 답습하는 꼴이 될 까 걱정된다. 체제가 양극화를 심화 시키고 중간계급을 붕괴시키고 초부유층의 독식을 지원했다면 체제가 그것을 해결해야 한다. 그러면 어떤 체제를? 책에서는 그것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심층 취재까지가 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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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급'은 미국에서도 금기어에 속한다는데 건강한 남자는 다 군대에 가야하고, 사회주의라면 과민반응을 일으키는 우리나라에서는 더 여러가지 의미를 내포하는 말이다. 상명하복의 군사문화에서의 계급과는 달리 일반사회에서 사회계급이 있느냐 하는 문제는 명확하지 않지만 양반과 상민의 계급이 없어진 지금 사회적 계급은 경제적, 직업적 위치에 따라 나누어질 것이다. 그래서인지 계급이라는 말보다는 계층이라는 말이 많이 쓰이고 소득에 따라 부유층, 중산층, 빈곤층 등으로 나누곤 한다. 2011년 옥스포드 영어사전에서 올해의 단어로 선정한 것이 '쥐어짜인 중산층(squeezed middle)'이듯 우리나라에서도 소득의 양극화와 극빈층의 증가가 심각한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에서 삶의 기본조건의 하나인 식료품을 사는데 돈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미국인의 16%로 우리나라와 함께 OECD 20개국 중에서 가장 높은 비율을 보인다니 세계 최대부국이라는 미국의 신화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미국에서 노동자로서 중간계급으로 살 수 있는 기준이 시급 20달러인데 우리나라에서 지금 최저임금 결정을 놓고 양대노총과 정부가 충돌하며 국제노동기구에 제소까지 하는 기준이 시급 5달러 정도인 것을 생각하면 물가를 고려한다해도 우리나라의 참담한 상황이 분명히 보인다.
사람은 교육, 소득, 직업, 재산이라는 네 장의 패를 쥐고 있으며 그 결합으로 나타나는 계급은 일차적으로 부모의 계급에 의해 영향을 받는 것을 보면 임금과 소득의 격차를 개인의 노력과 의지의 부족의 탓으로 돌릴 수 만은 없을 것이다. 성공의 사다리를 타고 자신이 속한 계급보다 상층계급으로 이동하는 것을 막는 장벽들이 점점 높아지고 양극화의 심화, 초부유층의 독식, 중산층의 붕괴로 사회의 통합을 보장하던 아메리칸 드림, 개천에서 용이 나는 자수성가의 신화는 점점 드문 일이 되고 있다.
이 책은 2005년 뉴욕타임스가 '문제는 계급이다'라는 심층보도 기획시리즈를 단행본으로 냈던 것인데, 단지 미국에서 일어나는 딴나라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에서도 벌어지고 있는 현실적인 이야기이다. 사변적인 논쟁에 머무르지 않고 각 계층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사례보고 형식으로 세밀히 보여주고 있다. 빈곤층이 계급상승을 이루기 위해 절박하게 노력하며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과 부유층과 초부유층의 신계급갈등을 생생하게 묘사해서 계급문제에 대해 더욱 민감해지게 만든다. 중산층이 빈곤층으로 몰락하기는 쉽지만 빈곤층이 중산층으로 올라서는 상승이동이 점점 어려워지는 우리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많으며, 빈곤층의 차세대에도 빈곤이 대물림되지 않도록 사회적 배려가 늘어나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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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계급'이 폐지된 사회에 살고있다. 18세기부터 20세기 까지, 약 두세기에 걸쳐서 전 지구적으로 인간을 차별하는 계급은 폐지되고 있다. 물론, 아직 그렇지 않은 사회도 존재하지만, 경향적으로 보았을 때 분명 이 지구상에 명시적 계급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계급하면 회자되곤 했던 인도 역시 명시적인 계급을 폐지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우리는 신분적인 계급이 폐지된 그 자리에 다른 의미에 계급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것은 바로 경제력에 의한 계급이다. 이런 계급은 신분적 계급과는 조금 다르다. 그리고 복잡하다. 이유는 신분적 계급이 선천적인 낙인으로써 차별이라고 할 수 있고 또한 신분상승의 기회가 거의 불가능한 반면, 경제적인 계급은 후천적이면서도, 선천적이다. 자본주의, 자유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재산을 자녀에게 물려줄 자유가 있다. 경제적 계급이 선천적이라는 이유는 부자아빠는 부자아들로 연결된다는 의미에서 그렇다. 또한, 가난한 아빠 밑에서 자란 가난한 자녀는 자신의 노력으로 부자 아들이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후천적인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차제가 발달해달수록, 가난한 아들이 부자 아들이 될 가능성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열심히 노력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가치가 실현되는 체제이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계급이동이 가능한, '계급 사다리'가 튼튼한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사다리는 점점 부식되어가면서 계급이동을 가로막고 있다. 바로 '당신의 계급 사다리는 안전합니까?' 라는 책은 계급사다리가 부식되어가고 있는 다양한 '징후'들을 보여준다. 뉴욕타임즈는 미국 전역의 상층계급, 하층계급을 취재하면서 미국에서 얼마나 계급이동이 어려워지고 있는지를 보도해왔다. 그들은 또한 미국의 고질적인 인종문제가 계급이동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심층보도해왔다. 그들이 보도한 계급간의 차이는 교육, 의료, 소비, 주거와 같은 삶에 있어서 필수적인 부분에 영향을 미친다. 계급이 낮은 사람들이 계급이 높은 사람들보다 고등교육을 받을 확률은 낮다. 이와 같은 현상은 의료부분에서도 나타난다. 심장마비에 걸린 계급이 낮은 이는 생존확률이 높은 계급의 심장마비 환자보다 떨어지는 것이다. 인간의 행복은 소득의 절대적 수치보다는, 소득의 평등성에서 나타난다. 소득이 보다 평등한 사회의 구성원의 행복지수가 더 높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았을 때, 미국사회는 부유하지만 행복하지는 않은 사회인 것 같다. 오직 소비와 물신주의가 팽배한 사회는 부유하지만, 건강하지 않고 행복하지 않은 사회일 것이다. 한국 사회도 이런 날카로운 시선을 가진 언론의 심층보도를 통해, 한국사회의 건강성을 확인할 수 있는 보도를 기대하면서 리뷰를 마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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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에서 압도적 다수가 자신을 ‘중간계급’이라고 답해서 계급이 중요한지 아닌지는 고사하고 계급이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해 일치된 의견조차 없는 것처럼 보이는 나라의 저명한 언론기관인 뉴욕타임즈에서 ‘계급’에 관한 특별 기사를 단행본으로 엮었습니다. 뉴욕타임즈, 특별 기사 등에서 풍기듯이 글은 대다수 인터뷰로 이루어 있습니다. 저자들은 구체적으로 교육, 소득 직업, 재산의해서, 또 네 가지의 결합을 통해서 계급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교육은 무학에서 박사까지, 소득은 1만 달러 이하에서 20만 달러 이상까지, 직업은 청소부에서 법률가까지, 재산은 5000달러 이하에서 4000만 달러 이상까지로 구분하고 각 계급에 해당하는 이들을 인터뷰해 나갑니다. 계급이라고 하면 대게 군대 계급을 떠올리지만, 엄연하게 현실에서도 층층이 계급이 있으며 올라 갈수도 내려 갈수도 있고 각 계급에 따라 어떻게 대우를 받는지에 대해 다양한 사례들이 제시되어 각 계급이 더욱 실감나게 다가왔습니다.
기본적으로 계급은 한 집단이 자신을 구분해내는 방법이며 계급을 타파하기 위해 만들어진 집단조차 서열이 있다고 보는 저자들은 계급은 비슷한 경제적·사회적 지위를 가진 사람들의 그룹으로 그들은 정치적 견해, 생활방식, 소비 패턴 문화적 관심, 출세의 기회를 공유한다고 분석합니다. 하지만 모순적으로 계급을 나타내주는 풍경은 흐릿해졌지만 또 한편으로는 어떤 계급들 사이의 경계는 굳어져 있으며 사람들 대부분이 자신들의 상대적 위치에 묶여 있는 동안 일반적인 생활수준은 높아졌다(p. 26)고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자각하지 못한 많은 이들은 인터뷰를 끝내고 한 부동산 업자처럼 삶이 늘 공정한 건 아니지만 열심히 일하려는 의지만 있다면 참고 버텨 역경을 극복할 수 있다고 믿으며 삶이란 건 항상 그래왔다고 생각하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특히나 제2장 “병은 평등하게, 회복은 불평등하게”의 내용은 생각해볼 문제가 많았습니다. 병(사례에서는 심장마비였습니다)은 건축가, 공기업 사무직원, 가사 도우미에게 평등하게 찾아 왔지만, 회복의 과정은 몇 주에서부터 몇 년까지 그것도 완전히 호전되었고 다른 병이 찾아오는 등 평등하지 않았습니다. 지구 반대편 미국의 사례이지만 점차 의료비가 높아져만 가는 우리네 사정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러 도표와 자료들이 나타내고 있는 부의 불균형은 더욱 그러했습니다.
또한 지금 아이들은 그들의 부모가 그랬던 것보다 더 부모들의 경로를 따라가고 있는 것처럼 보여. 성공은 대부분 한 세대에서 다름 세대로 이전되고 있는 경향이 있어 이제는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가장 미국적인 언론기관에서 가장 미국적인 계급 분류며 분석한 자료이어서 많은 자료들이 첨부되어 있지만 우리의 현실과는 동떨어져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많은 부분이 닮아만 가고 있고 더군다나 노엄 촘스키의 “미국의 지배계급은 세상은 원래 그런 것이다. 갈등은 불필요한 것이다. 인간을 그 이상으로 구분할 필요도 없다. 현재의 체제보다 나은 구조는 없다. 물론 계급 차별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믿게끔 세뇌한다(p. 371)"고 한 언급은 어긋남이 없이 우리 사정과도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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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계급 사다리는 안전합니까?/뉴욕타임스/김종목,김재중,손제민/사계절 이제는 일반화되었지만, 계급을 사다리에 비유한 표현은 절묘하다. 양 손으로 꼭 잡고 밟는 부분을 거듭 확인하지 않으면 떨어질 위험이 항상 존재하는 사다리야말로 계급의 속성과 딱 맞아 떨어진다. 미국 사회 전반의 트렌드를 선도하는 메이저 언론인 뉴욕 타임스에서 “계급”이라는 민감한 주제를 취급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미국인들의 의식 속에는 아직도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존재한다. 자신은 부모 세대보다 잘 살고 있으며 자식들은 더욱 안락한 삶을 영위할 것이라는 믿는다. 그러한 낙관적인 의식은 최근 실시한 뉴욕타임스의 여론조사에서도 나타난다. 응답자 중 40퍼센트는 지난 30년간 미국에서 더 높은 계급으로 올라갈 기회가 있었다고 믿는 것으로 나타난 결과가 그것을 대변한다. 하지만 ‘아메리칸드림’은 문자 그대로 “꿈”에 불과하다. 다른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이 기간에 계급 상승 기회가 없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사람들은 미국에서 계급 갈등이나 계급에 의한 사회적인 분류 등은 오래전에 없어졌으며 이미 계급 없는 사회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피부색깔이나 옷, 차, 종교 등을 가지고는 지위 등을 알아내기 힘들어진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면으로 한발자국만 옮기면 미국 내에서 “계급”은 여전히 강력한 힘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계급간의 격차는 더 커지고 있는 것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부유층은 자신들만의 성을 더 높이 쌓아 올려서 아래에서 올라오려는 사람들의 진입을 더 강하게 막고 최하층으로 떨어진 사람들은 위로 올라가려는 희망마저 포기한지 오래이다. 자신이 속한 계층에 따라 사회적 성공과 부의 취득은 물론 종교가 달라지며 심지어는 건강과 수명에까지 강력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교육, 소득, 직업, 부였다. 그러한 상황은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미국 문화를 여과 없이 받아들이는 미국 만능주의는 그것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개천에서 용 나던 일은 신화 속에 굳어진 화석이 되어 버렸고 은숟가락을 물고 태어난 소수층만이 부와 권력을 독점해서 세습하는 현상은 당연하게 생각되고 있다. 책의 내용 중에 미국이라는 단어를 한국으로 고치면 그대로 딱 들어맞는 우리 현실에 놀라게 된다. 이제 사람들은 점점 꿈을 꾸지 않는다. 로또복권에 매달리는 시류는 특정인들의 습성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현상이 되어 버렸다. 청소년들마저 연예인의 화려한 모습에 자신의 장래를 맡기고자 한다. 통로는 보이지 않는다. 하긴 지금 누가 꿈이나 희망에 대해 말해줄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아직 사다리는 걷히지 않았다. 그 믿음마저 흔들리면 출발점부터 불공정한 이 게임을 무슨 기대로 완주할 수 있을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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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性)에 따라 투표권에 제약을 받는다거나 고등교육의 기회를 놓치는 등의 차별은 사라졌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평등한가를 돌이켜 볼 때마다 여전히 ‘그렇지 않다’는 답변을 듣게 된다. 소위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이 있어 조직 내에서 특정 지위 이상을 올라가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이는 여성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은연중의 차별은 굳이 성(性)을 기준으로 하지 않아도 도처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된 듯하다. 과거 같았으면 공고하기 짝이 없는 신분제가 존재해 이를 거스를 수가 없었다.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은 ‘기회는 균등’하고 ‘개천에서 용’이 탄생하는 것도 가능하니 많은 부분 진보했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개개인이 제 출신 성분을 뛰어 넘는 일이 ‘가뭄에 콩 나듯’ 일어나다가 이젠 그마저도 여의치 않게 사회가 변질되어 버렸다는 점이다. 장하준은 저서 ‘사다리 걷어차기’를 통해 이를 비판한 바 있다. 뉴욕타임스에서 저술한 ‘CLASS MATTERS’가 지난 5월 ‘당신의 계급 사다리는 안전합니까?’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다. 다시 한 번 ‘사다리’를 쳐다보게 된 것이다. 책은 오늘날 미국 사회에는 네 개의 계급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상층계급과 중간계급, 노동계급 그리고 하층계급이 바로 그것이다. 각 계급 간 교류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것이 아니며 누구든 계급을 거스르는 것도 가능하다. 이론적으로는 태어나자마자 버려서 시설에서 성장했을지라도 자신이 열심히 노력해 좋은 대학에 들어감으로써 인생 역전에 성공하는 일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과연 그와 같은 일이 실제로도 일어날 수 있을까? 신기하게도 많은 미국인들은 여전히 미국을 꿈의 국가로 여기고 있었다. 한때 이민 열풍을 조장했던 단어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은 적어도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만큼은 유효했다. 대개가 고달픈 삶을 살고 있는 이민자들 역시 그와 같은 사고를 고수하고 있었다.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일, 불안한 고용 상태, 저임금 등의 악조건에 놓인 그들은 “그래도 고국에서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버리려 들지 않았다. 자국에 머물고 있는 식구들의 시선 역시 마찬가지여서 식구 중 누군가가 미국에 있다면 그 사람이 조만간 부유해질 것이고, 곧 자신들의 삶도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다. 하지만 같은 질병을 앓는 사람들을 대하는 사회의 태도는 계급에 따라 현격히 달랐다. 병원에 몇 차례 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건강을 급속히 회복해 이제는 정상에 가까운 삶을 사는 이가 있는 반면, 다른 이는 의사로부터 “이대로 가다가는 몸에 성한 곳이 없겠어요.”라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의료비를 감당할 여력이 닿지 않고, 병원에 자신의 딱한 처지를 호소할 인맥을 지니지 않은 사람들이 보통 후자의 길을 걸었다. 불평등이 분명하지만 체제전복이라는 과격함(!)에 기대지 않는다면 아마도 이와 같은 질서에의 수정은 어려울 것이다. 사람들 역시 자포자기의 심정인건지 내심 불만을 갖고는 있을지라도 이를 표출하는 데엔 인색하다. 학벌에 따른 계급 갈림 역시 과거보다 명확해졌다. 이전에는 대학을 중퇴하거나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취업전선에 뛰어들어도 꽤 벌이가 괜찮고 안정적이기까지 한 곳에 소속될 수 있었다. 그렇다 보니 굳이 4년간 대학에서 썩을(?) 필요가 없다는 판단에서 젊은이들 스스로가 대학 문을 박차고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부모 세대와 달리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 대학 졸업장은 필수가 되어버렸다. 우리나라만 하여도 학부는 기본이요, 발에 수시로 차이는 게 석․박사급일 정도로 학벌 인플레가 심하다. 가방끈이 길다 하여 무조건 취업이 잘 되는 건 물론 아니지만, 모두가 대학 졸업장을 가진 상황이다 보니 고등학교만 졸업한 이들은 설 자리 자체가 없다. 부모가 중간계급에 속했을지라도 고졸 출신들은 제 부모의 계급에도 속하지 못한다. 남들 공부할 때 성실히 공부하지 않았으니 그 정도는 감수해야 된다는 게 사회의 목소리인데, 오늘날의 성적과 진학은 곧 부모의 자금력에 의해 많은 부분 좌우되고 있어 결국 계급의 고착화로 이어지고야 많다. 한 번 형성된 계급에의 변화는 좀체 일어나지 않는다. 특히 상류층은 ‘소비’라는 자기들에게만 허락된 특권을 백분 활용해 타 계급에게 경고장을 날린다. 베블런이 일찍이 주장한 남에게 보이기 위한 ‘과시적 소비’이자, 부르디외가 주창한 ‘구분짓기’와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는 이와 같은 행동들은 사회 전반의 통합에 역행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 중 몇몇은 그와 같은 소비를 감당할 여력이 닿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를 파산에 몰아넣을 정도의 소비를 유지한다. 이는 계급 사다리로부터 미끌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 심리에 따른 것인데, 안타깝게도 그리하다 파산해도 제 지위를 잃게 된다. 공포의 외줄타기와도 같은 상황이라 할 만하다. 오늘날 하층계급이 1달러를 벌어들이는 동안 최상위층 사람들은 헤아리다 지쳐 쓰러질 정도의 금액을 벌어들인다. 앨절라 휘티커의 사례는 그래도 우리 사회에 일말의 희망이 존재함을 보여주는 예일지 모르겠다. 앨절라 휘티커는 총알 자국이 그득한 집에서 성장했고, 그의 두 아들은 혼란을 일상으로 알고 자랐다. 그녀는 몸부림쳤고, 마침내 간호사 자격증을 취득함으로써 신분 상승을 이루었다. 아직 어린 나머지 자녀들은 가정용 컴퓨터에서 3D 체스 게임을 즐기며 영재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등 중간계급에 근접한 삶을 살고 있다. 하지만 이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걷고 뛰면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는 사람을 앞지르려 드는 게 바로 오늘날의 계급 역전이다. 혹 그리하여 제 삶을 나아지게 만들더라도, 그때부턴 계급에 따른 문화적인 차이를 극복하기 위한 또 다른 투쟁이 돌입하여야만 한다. 하지만 계급은 ‘사다리’다. 사다리는 오르고 내릴 때 사용하는 물건이지 매달려 있기 위한 물건이 아니다. 땅에서 두 발이 떨어졌다면 움직여야 한다. 방향은 위, 아래 두 방향인데, 이왕이면 위쪽을 택해보자. 단, 누군가가 이미 지붕 위에 올라앉은 누군가가 힘써 오르는 당신을 발견하곤 매몰차게 사다리를 발로 차버릴 수 있음도 기억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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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계급 사다리는 안전합니까?' 책을 읽고 나면 나는 생각이 딱 하나. 그들은 모국이 갖고 있는 치명적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교육, 의료, 소비, 주거 등 4개 항목으로 분류해서 조목조목 계급별 인생지도를 담담하게 말한다. 적어도 약점을 알고 있는 자들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할 발판이라도 마련할 수 있으니 말이다. 읽고 난 후 깊은 한숨이 나온다. 책에서 확실하게 말하는 건, 신분상승은 어렵다. 남자나 여자나 신분상승을 하려면 한 계급을 뛰어 넘으려면 상위계급에 있는 이가 내밀어 주는 결혼이라는 사랑이라는 거대한 봉사활동을 기대하거나 하는 말도 안되는 것밖엔 없다. 어이구 답답해.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리 없다. 개천에서 용 난다고 말하지 않는가? 열심히 노력하면 왜 안되겠냐고 사람들은 말한다. 그러나 책은 물론 용감한 녀석들이 말하듯, 안될 놈은 안된다. 왜냐고 묻지 마라. 태생적으로 그 이상 올라갈 수 없는 사회적 구조 때문이다. 책처럼 조사자료가 일목요연하게 나온 게 없으니, 그저 내 주변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하나(필명)와 두나(필명)는 시골에서 서로 같은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녔다.
첫번째 관문 교육=대학진학
두나는 하나보단 좀 나중에 취업을 하게 됐다. 하나가 취업한 곳보다 못한 곳의 근로직이였다.
두번째 관문 결혼
두나는 골드미스로 아직은 결혼할 때가 아니라고 극구부인하지만, 내심 초조한 게 사실이다.
세번째 관문 의료, 소비, 주거 딱히 연금을 든다거나 할 여력은 되지 않으니, 국민연금으로 노후보장을 한 셈 치는 것이다. 더 다행스러운 점은 남편의 직장은 학자금 지원대상이 되는 곳이다. 무상교육이라지만, 고등학교는 무상교육이 아니다. 분기마다 내야 할 돈도 많고 곧 대학등록금도 생각해야 하는데, 정말 다행스럽게도 학자금 지원이 되니 한숨이라도 돌리게 될 것이다. 문제는 아이들이 대학에 갈 때까지 남편이 근무를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내 집은 아니지만, 회사에서 주는 사택이 있어 다행이고, 텔레비젼이나 신문에 나오는 것처럼 몇십만원짜리 과외가 판치는 그런 소득수준이 높은 곳이 아닌 평준화가 이뤄진 고향이라 그나마 교육비에 대한 부담이라든가 하는 것이 덜하다는 것.
두나는 4대 보험은 기본이고, 노후보장용 연금은 물론 자신 명의로 된 작은 아파트를 마련하고 한숨 돌렸다. 하나와 비교하면 확실히 경제적 걱정 없고, 자신이 결혼해도 살 곳은 지금 생활하고 있는 대도시라는 걸 안다.
단지 두 사람의 일로 일반화 시키냐 울컥하는 사람도 있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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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지 못하지만 떨어지지 않으려는 계급 사다리 위에서… 계급과 계층, 흔히들 오를 수 없는 나무는 쳐다보지도 말라고 했던가. 우리는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오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누구나 더 나은 환경에서, 좋은 옷을 입고 맛있는 것을 먹으며 부유하게 살고 싶어 할 것이다. 적어도 자본주의 시장에서만큼은 말이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은 위로 오르기는커녕 지금의 자리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이나 치고 있다. <‘당신의 계급 사다리는 안전합니까?’> 이 책에서 보여주는 계급 사회의 실상은 자본주의의 중심인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한국 사회도 이와 다를 바 없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하나의 계급에서 그 위에 계급으로 올라가는 신분 이동의 비율은 점차 줄어들고, 경제적 양극화 현상은 그 간극이 지속적으로 벌어지게끔 만들고 있다. 아메리칸 드림(American Dream)은 다 옛말이다. 현실에서의 아메리칸 드림은 정말 꿈에 불과하다. 보이지 않는 계급 사이의 절벽은 높고 깊다. 상층, 중층, 노동, 하층 계급으로 나뉘어 있는 미국 사회의 속면을 탐사보도 형식으로 깊이 파고들어간 뉴욕타임스의 보도는 그들의 취재력을 바탕으로 보이지 않는 계급 사다리의 이면을 보여준다. 심장마비라는 같은 병을 얻었더라도 그것을 치료하고 회복하기 위해서 벌이는 사투에서 볼 수 있는 각 계급의 차이에서는 의료 민영화의 병폐를 확인할 수 있다. 대학 졸업장을 얻지 못해 여전히 노동계급에 머무르며 이마저도 언제 아래 계급으로 떨어질지 모르는 불안감을 갖고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에서는 대학 진학률은 세계 어느 국가보다 뒤지지 않지만 입학 가능 학생 수보다 대학 정원수가 많은 대한민국의 불편한 진실을 감출 수 없다. 이렇게 계급의 사다리가 보여주는 사회는 미국에서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에서도 일어나고 있으며 그 정도는 더 심해질 것이다. ‘Occupy Wall st.’ 운동에서도 볼 수 있었듯이 1%의 부유층과 99%의 가난한 빈곤층이 생겨나고 있다. 1%는 그 안에서도 0.1%로 나뉘기까지 한다. 그래도 아직까지 대한민국에서는 20:80의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서 미국보다는 나은 상황이구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계층 혹은 계급 간에 간극을 줄이고 계급의 사다리를 타고 올라갈 수 있게끔 하는 소망의 발현체가 과연 경제 민주화, 복지일 수 있을까. 동일선상에서 출발하게끔 해달라는 외침은 어느새 경기장 안에라도 들어가게끔 해달라는 요구로 바뀌어 있다. 어떤 가정, 부모 밑에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계급이 결정되고 앞으로의 운명이 결정되는 사회인 것이다. 고등학교 때 까지만 하더라도 주변 친구들과의 계급차를 느낄 새는 없었다. 다 비슷한 가정형편에 비슷한 동네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하지만 대학에 와서 느낀 실제 계급 간의 차이는 너무나도 컸다. 누구는 대학 등록금 낼 형편이 안 되어서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학자금 대출, 장학금을 받아가며 학교를 다니는 한편, 누구는 강남의 부유한 환경에서 모자랄 것 없이 그동안 살아와서 그들만의 현실에 갇혀있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다행히도 이러한 사회를 바꾸고자 미국 오바마 정부에서는 부자증세를 결정하고, 차기 한국 박근혜 정부에서도 복지를 우선순위로 두고 있다. 이 책에서 전하고자 하는 내용은 단순하다. 현실에 존재하는 계급의 사다리를 보여주고자 한 것이다. ‘불평등이 만들어낸 우리 시대의 초상’이라는 부제처럼 양극화, 불평등이 판을 치는 세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직시하고자 하였다. 드라마나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들이 현실인 요즘, 이 책은 대한민국의 현실인 계급 사다리를 조금이나마 유추할 수 있게끔 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