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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에 의한 파장의 크기는 과연 얼마나 될까. 기록에 의해서 내가 몰랐던 내 가족의 가장 은밀하고도 비밀스러운 사실을 훔쳐보거나 알게 되는 그 순간은 내 심장을 간질여오는 묘한 긴장감과 재미를 자아낸다. 어릴 때 이모의 일기장을 훔쳐봤던 기억이 있다. 별 대단한 내용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한번 몰래 훔쳐보니 그건 습관이 되고 주기적으로 슬쩍 곁눈질하는 어린 나를 보게 됐었다. 그것도 들키는 순간 깔끔하게 끝이 났지만, 사람의 심리는 드러나지 않은 그 무엇에 호기심을 갖고 궁금증을 가질 수밖에 없는거 같다. 하지만 이렇게 나의 경우처럼 별 심각한 내용이 없다면 그건 그냥 재미로 끝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기록에 의한 사실이 너무나 감당하기 버거울 때는 놀람 이전에 감추고 싶은 욕망 또한 산재하기 마련이다.
누군가의 일기장 같은 건 어디까지나 자신의-상대방- 관점에서 서술된 것이기에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 살인의 기록, 심경의 기록, 변화의 기록, 어쩌면 이 노트는 자신을 유리고코로 속에서 꺼내어 새로운 유리도코로가 되어달라는 무언의 속삭임이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렇게 믿고 싶어 했던 안식처가 관심을 주고 아끼던 대상이었다면 더더욱. -물론 충동에 사로잡혀 일을 저지른 적도 분명 있지만- 이는 자신의 세계를 무참히 깨버리려는 특정 대상을 향한 역시 무언의 해방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한 청년이 어머니-진짜, 또는 미지의-의 4권의 노트를 보는 것을 시작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속에는 감히 상상하지 못했던 살인의 기록이 담담히 담겨있고 기록자의 심경 또한 참 무던하게도 서술되어 있다. 이를 의문을 가지고 파헤쳐가면서 작중 화자-아들-의 심리적인 동요가 주를 이루는 소설이다. 자신의 주변에 일어나는 다양한 변화가 모두 이 노트의 기록에 의해서 파생되어 하나하나 잔가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성이 있고, 한 사람의 살인기록과 그에 따른 심경이 이렇게도 건조하게 나열될 수 있구나 하는 심정에서 오는 두려움이 나에게는 더 크게 다가왔다. 앞에 읽었던 『좀비』와는 조금 다르다. 살인자의 기록이라는 점은 비슷하지만 『유리고코로』에는 자신이 왜 그런 일을 저지르는지 무척이나 담담하게, 심리적인 과정까지 함께 그려내고 있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심리를 뭐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좋아하는 마음 이면에 잠재해 있는 죽이고 싶은 충동적이고도 아이러니한 심리를. 쉽게 이해가 가능하지는 않다. 자신에게 방해 되는 존재를 살해하는 것과 애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죽이는 것과 나를 잘 알고 있기에 죽이는 것과 내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상대를 좋아하기에 죽이는 것... 이 모두가 어차피 '살인자'라는 한마디로 정리된다. 이러나저러나 결국은 살인자다. 어떤 동기, 어떤 이유가 있다 한들 이는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이렇듯 살인자의 아들로, 이미 일어난 모든 일의 관조자밖에 될 수 없는 핏줄인 화자. 살인자의 생물학적 피붙이는 감당하기 어려운 사실 앞에서 본인의 생활마저 송두리째 무너지는 경험을 한다. 엄마라고 믿었던 사람이 사실은 엄마가 아니었고 가족이라고 믿었던 사람들이 엄마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심판자들이자 협력자들이었다는 끔찍한 사실은 한 사람의 정신을 미치도록 좀먹는다. 인간인 우리가 과연 누가 누구를 심판할 수 있는가? 살인을 저질렀다고 똑같은 수법으로, 아들에게까지 그 화가 미칠까 봐 미연에 방지코자 숨통을 끊은 이들의 심판은 정당하다 할 수 있는 것인가. 하나를 지키고자 또 하나를 끊어버리는 이들의 가족애가 몸서리치도록 무섭게 다가왔다. 물론 이는 작품의 반전을 통해 더 확실하게 나를 비웃는다. 그리고 사실의 기록을 담담히 쏟아내는 고백 역시도 단지 정신이상을 앓고 있는 살인자의 고백이라지만 이 속에는 자신도 어쩌지 못한 사랑을 갈구하는 대상이 생겨남과 동시에 혼란을 겪고, 일상적인 행복이 깨지는 데 대한 두려움은 자신의 소멸로 메꿔버리려고 하는 이 지독히도 무섭고 불쌍한 한 인간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겠는가.
'살인자니까 어쩔 수 없지' 살인자를 죽이는 일은 살인이 아니라고. - 244페이지
과연 무엇이 맞는 걸까. 나 역시 누군가의 목숨을 해한 존재는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하나지만, 이 활자의 나열 앞에서는 순간 생각의 끈이 뚝 끊어져 버린다. 과연 우리 개인은 목숨을 가지고 섣불리 심판할 자격이 있는가. 없다. 그 누구에게도. 이 역시도 또 다른 살인이다. 하지만 이렇게 얘기하는 와중에도 내 마음 한편에서는 살인자는 죽어 마땅하다는 나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속삭인다. 사실 어쩌면 이들의 행위를 두고 정당한지 아닌지 왈가왈부하는 그 자체가 모순일지도 모른다. 가족이라는 피로 맺어진 공동체가 모순의 굴레에 있지 않던가. 가족이라서 용서가 되고 가족이라서 이해가 되는 일면의 무수한 일들. 그러니 이를 두고 심판이니, 잣대를 두르는 것 자체가 모순의 극치다. 한 가정에서 일어난-정확히는 한 가정의 딸이자 부인 엄마- 한 사람의 심리적인 상처와 행동때문에 그 가족이 겪게 되는 아픔과 그에 따른 심리 묘사가 참으로 탁월한 소설이다. 끔찍한데, 정말이지 끔찍한데, 이들의 사연을 구구절절 알고 나면 눈물이 날 것만 같은 심경의 변화가 찾아온다. 동정은 아니다. 다만 이들의 모순적이나 맹목적인 가족의 사랑 앞에서 흔들리는 마음이다.
유리고코로는 료스케의 엄마에게만은 요리도코로より-どころ(안식처)다. 본인의 안식처만은 요리도코로가 아닌 유리고코로라고 명명되어진, 어릴 때부터 굳어진 비록 문법에는 어긋나는 단어이지만, 그녀만의 고유의 언어. 이 유리고코로가 훗날 아들의 유리고코로가 되고, 사람들 마음 속에는 누구나 이런 유리고코로가 잠재해 있다는 걸 작가는 은연중에 비춰준다. 내가 편히 쉴 수 있는 곳, 내가 편히 기댈 수 있는 상대.... 유일하게 내가 숨통을 트일 수 있는 것..... 비록 미쓰코의 유리고코로(살인을 통한 희열)는 끔찍하게 그 모습을 드러내 버렸지만......무섭도록 슬픈 사실(결말)이 기다리고 있는 이 두려운 공포 속에서 나는 과연 내 가족의 어떤 것까지 끌어안을 수 있을지 되물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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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기이한 이야기로 섬뜩함을 주는 미스터리 스릴러다. 특이한 점은 미스터리 스릴러답지 않게 따뜻한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순수한 악의가 표현된 부분이나 죄의식 없이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통해선 공포감과 차가운 느낌을 주지만 전반적인 내용을 통해선 가슴 뭉클하고 따뜻한 감동을 주기 때문에 장르 파괴적인 소설이라 하겠다. 매끄러운 내용 전개와 짜임새 있는 구성 그리고 궁금증을 유발하는 퍼즐 구조는 독자의 몰입도를 높이는 동시에 호기심을 자극해 읽는 재미를 주고 있다. 흔치 않은 소재를 가지고 저자의 생각과 사상을 내용에 녹여 극적인 효과를 거둔 점은 이 책의 장점이라 하겠다. 이 책은 총 19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부터 난 내가 주목한 것들 위주로 그 내용을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묘한 설득력이 있다는 점’이다. 저자는 시종일관 이 책의 등장인물인 살인자를 따스한 시선으로 묘사하고 바라본다. 이 살인자가 순수한 악의로 죄의식 없이 사람들을 죽여도 저자는 그녀를 심하게 탓하거나 욕하지 않는다. 오히려 저자는 살인자인 그녀를 두둔하려 하고 변호하려 한다. 처음 저자가 살인자를 두둔한다는 느낌을 받았을 땐 난 저자에게 반감이 들었다. 그냥 살인도 나쁜데 죄의식 없이 사람을 죽이는 등장인물을 너무 감싸고도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점점 이 살인자의 인생을 들여다보고 우여곡절을 지켜보다 보니 처음에 가졌던 내 감정은 시나브로 누그러지기 시작했고 결국엔 저자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저자의 묘사와 설명대로라면 이 살인자는 충분히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고 살인을 저지를 수밖에 없었다. 시대를 잘못 태어난 것도 한몫했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었기에 수긍이 되었다. 사람을 한 가지 잣대로만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이런 저자의 암시적인 태도는 은근히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중반과 종장부분에서 보여준 이 살인자의 변화와 변모(퍼즐 구조라 얘기하면 스포일러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내용은 생략함)를 보면서 난 인간의 특정 행동을 두고 한 가지 잣대로만 판단하는 건 확실히 무리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이런 생각을 어떻게 이렇게 자연스럽게 소설 속에 잘 스며들게 했는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두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은근히 사회를 비판한 점’이다. 일반적으로 미스터리 스릴러는 독자들에게 공포감을 주기 바쁘다. 그래서 사회를 비판하는 데까지 신경을 쓰거나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특이하게도 죄의식 없는 자의 살인에 대한 공포감을 심어주는 동시에 편견으로 충만한 사회까지도 비판하고 있다. 액자식 구성으로 저자는 등장인물의 수기를 통해 평소 자신의 사상을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펼치고 있는데 저자의 주장이 나름 일리가 있어 고개가 끄덕여진다. 저자는 살인자의 수기에서 창녀나 샐러리맨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주장을 한다. 샐러리맨 입장에선 입에 거품을 물고 부정할 일이겠지만 자신을 돈으로 파는 측면에선 창녀나 샐러리맨이나 그렇게 다를 것이 없다고 보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저자의 주장은 꼭 틀리지 만은 않은 것 같다. 창녀도 일반 직장인도 돈을 받고 자신의 몸이나 노동력을 파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창녀를 천하게 여기는 사회 인식과 분위기를 제거하고 보면 저자의 이런 주장은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하지만 현실에선 돈을 받고 몸을 팔아도 샐러리맨은 대우를 받고 매춘은 천대를 받는다. 저자는 둘을 다르게 보지 않기 때문에 이런 시각이 별로 탐탁지 않은 것 같다. 아무리 성이 개방된 일본이라 하더라도 아무거리낌 없이 창녀와 결혼하긴 무리일 것이다. 저자는 이런 사회적 편견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소설을 통해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 것이 아닌가 싶다. 마지막 세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한 부분까지 조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족 구성원은 인연과 운명으로 엮인 관계다. 자식은 자신의 의지에 의해 아버지가 결정되는 것도 아니고 본인의 선택에 의해 어머니를 고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부모도 자식도 보이지 않는 어떤 인연과 운명에 의해 한 가족이 되는 것이고 함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숙명적인 관계가 가족이라는 걸 보여주면서 혈연으로 묶였든 인연으로 묶였든 가족이기 때문에 가족 중 살인자가 있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고 감싸줄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소설을 통해 말하고 있다. 보통 사람들에게 있어서 살인자는 제거 대상이고 사회격리 대상이다. 하지만 그 살인자의 가족에게 있어서 그 살인자는 보호하고 감싸주어야 할 대상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인연과 운명으로 묶인 가족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아무리 악독한 살인자라 해도 그 사람은 누군가의 자식이고 누군가의 부모다. 그렇기 때문에 그 가족들은 그 숙명을 떠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 대개 사람들은 살인자는 보면서 그 살인자의 가족은 보지 못하는 경향이 없지 않아 있는데 저자는 살인자의 가족이 어떤 심정으로 세상을 살아가는지 조명해주어 우리가 평소에 보지 못한 어두운 구석이 있음을 일깨워주면서 독자의 시야를 넓혀주고 있다. 이런 면이 이 책을 평범한 책과 구별 짓게 하는 점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은 전에 보지 못한 면을 보여주고 전에 갖지 못한 생각을 갖게 해주는 묘한 매력을 지닌 책이다. 살인자, 창녀, 인연과 악연 그리고 가족과 숙명에 대해 기존 소설에선 보여주지 못한 면을 다각도로 보여주면서 독자에게 신선함을 제공해주고 있다. 좁은 시야를 넓히는데 이보다 더 좋은 소설은 없다고 생각한다. 좀 더 다양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기 바란다. 인상적인 글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아마도 혼란을 혼란 그대로 안고 살아간다는 게 아닐까. 인간의 마음 그 자체가 영원히 풀 수 없는 하나의 혼란이라는 것을 깨닫는 게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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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어릴 때부터 정신질환을 앓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어느 날, 어머니와 함께 간 병원에서 의사와 어머니가 나누는 대화를 듣게 된다. 사람이라면 있어야 할 '유리고코로'가 소녀에겐 없다는 것이다. 나중엔 그 말이 '요리도코로', 즉 감각, 인식 혹은 마음의 안식처를 지칭하는 말을 잘못 들었다는 걸 알게 되지만 소녀는 계속 그것을 '유리고코로'라 칭한다.
유리고코로... 소녀는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그리고 유리고코로에 대해 제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리곤 그 '유리고코로'가 될 수 있는 것들을 하나씩 만들어간다.
인형인 '유리코', 같은 반 친구인 '미치루', 우연히 알게 된 자신과 비슷한 면이 있는 '미쓰코'를 유리고코로로 삼아 감정없는 인형과도 같이 몹쓸 행동을 하며 살아간다. 그렇게 사람이되 사람이길 포기한 듯한 소녀는 어른이 되고 어릴 때 저질렀던 '사건'과 관련이 있으며 그 사건으로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처음으로 유리고코로가 긍정적인 작용을 하였던 것인지, 아님 잠시 만들기를 멈추었던 건지 그 남자와 가정을 꾸리며 아이를 낳고 여자로서 평범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데 예전에 있었던 직장 동료를 우연히 만나게 되고 그녀가 저질렀던 또다른 몹쓸 일을 추궁당하자 그녀는 아이와 함께 사라진다...!
이 사실들은 그녀가 '남편'에게 써놓은 고백과도 같은 노트를 그녀의 아들이 아버지를 만나러 집에 들렀다가 우연히 발견하게되고 한 권씩 읽어나가면서 조금씩 밝혀지게 되는데... 아들, 료스케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이야기에 읽어나가면 나갈수록 의문점만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난다.
몹쓸 일들을 한 사람은 아버지인가? 어머니인가?
료스케는 아버지 몰래 동생, 요헤이의 도움을 받아 노트를 읽어나가다 자신이 읽고 있는 걸 들키자 아버지에게 마저 보기를 청한다. 과연 그 속엔 어떤 진실이 담겨있는 걸까? 아버지는 료스케의 의문들에 답을 줄 수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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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감정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섬뜩한 '고백'을 읽고 있자니 점점 더 다음이야기가 궁금해졌고 나 역시 료스케처럼 다음권 노트를 찾아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재미나 흥미, 마무리가 그닥 나빴던 것은 아니다. 다만, 노트의 고백 이후, 뭔가 맥이 살짝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료스케의 의문들이 하나, 둘 풀리는 건 좋았으나 너무 쉽게 스르르 풀려버린 듯 했고 예기치 못한 인물이 되어야했던 이가 너무 쉽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어 버린 것이다. '설마...?'가 아닌 '아, 그럴 수도 있겠다'는 확신으로 바뀌고 너무도 쉽게 빨리 알아차려버린 것이다. 그리고 가족이란 이름아래 행해진 일들과 마찬가지로 가족이니까...받아들여지는 것 같은 분위기와 일들은 왠지 모르게 많이 씁쓸했다.
정신분열증, 강박장애... 여러가지 요소가 복잡하게 결합된 유리고코로는 노트 속의 고백에서만 강하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었고 노트 밖에서 재등장했을 때 료스케와 관련된 '일'로 모종의 여운만 남겼을 뿐이다. 섬뜩한 고백과 함께 다루어졌어야할 '유리고코로'에 대한 본질을 조금 더 깊이있게 파고들지 못한 느낌이 들어 못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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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고코로.. 이 말의 뜻은 무엇일까? 책을 읽으면서 말뜻을 알고 싶었다. 요리도코로(안식처) 감각적인 안식처 또는 인식의 안식처 혹은 마음의 안식처. 하지만 그 단어를 아이는 자기만의 언어로 만들어 버렸다. 유리고코로.. 평소 내게 부족한 것, 말로는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모든 것을 나타내는 단어. 누군가의 목숨이 사라질 때 생기는 그 믿을 수 없는 현상을 나타내는데 그보다 더 좋은 단어는 없다.
개를 돌보는 가게를 운영하는 주인공 료스케. 그에게 어느 날부터 불행이 닥쳐온다. 약혼자 치에가 실종되고, 아버지는 췌장암 말기 판정을 받고,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그 자리에서 사망한다. 갑자기 밀어 닥친 불행 안에서 료스케는 무기력해지고, 병색이 짙어가는 아버지를 만나러 본가에 갔다가 서재에서 우연히.... 검은 머리카락과 노트 네 권을 발견한다. 오래된 노트를 읽어 내려가는 료스케는 그 내용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그 노트에 적힌 내용은 살인을 고백하는 이야기이다. 도대체 이런 글을 쓴 사람은 누구일까? 또한 검은 머리털의 정체는 무엇일까? 4권의 노트를 읽으면서 료스케는 점점 더.... 의문점이 늘어가고, 새로운 진실들과 마주하게 되는데....
세상이 이상해지는 걸까? 아님 예전에도 분명 살인은 있었지만 그 당시엔 매스컴이란 매체가 없었고, 오로지 입에서 입으로 회자되었기에 살인이 많은 것처럼 보이지 않을 뿐, 그 옛날에도 살인은 많았어. 이렇게 이야기해도 되는 것일까? 경악을 금치 못하는 살인 사건들이 일어나면 늘 생각하게 되는 것. 살인을 살인이라 생각하지 않는 그런 호르몬이 흐르는 사람이 있는 것일까? 아님... 뇌 구조가... 평범한 사람들과 달라... 살인을 하고도 죄를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들이 머릿속에 맴돈다. 우리보다 좀 더 나은 삶을 산다는 일본에서 이런 소설들이 많다는 건 섬나라 사람들의 특성 때문일까? 아님... 잘 사는 것과는 다르게 동양에서 근대화를 가장 성공적으로 이뤄냈지만, 단 시간 안에 문화시민이라는 이름으로 하지 말아야 하는 억압들이 늘어서 일까? 사람들의 내면 안에서 체면과 본능 사이에 충돌이 많아서 일까? 살인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상상하지 못할 다양한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처음엔 그런 사람이 존재 하기는 하는 걸까? 라는 것이 의문의 시작이라면 그런 사람도 자식 앞에선 또 어쩔 도리가 없는 건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낳은 아이의 손에 피를 묻게 하고 싶진 않았겠지... 살인 앞에서도 부모의 사랑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가족의 슬픈 인생사가 안타깝고 아프다. 그렇다고 살인이 정당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최근엔... 제대로 처벌 받지 않은 가해자들 때문에 복수를 꿈꾼다. 복수를 꿈꾸는 것. 만약 제대로 가해자들이 처벌을 받았다면 눈물을 흘리며 복수를 꿈꾸게 될까?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얼마 전에 읽은 이재익의 41이라는 책과 함께...
이유 불문하고 살인... 살인은 안 된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사람이 사람을 평가하고 죄를 내릴 수 없다고들 한다. 하지만 왜 사회는 억울함을 만들어 또 다른 살인을 만들게 할까?
책을 덮고도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인물들의 깊고 깊은 관계, 아프고도 아픈 관계... 그냥 많이... 마음 안에서 찬바람이 분다... 서걱 서걱.... 그렇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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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의 어떤 작품이든 지지해주고픈 심정이 든다. 늦깎이가 주는 선입견을 일거에 차버리는 공력(功力)을 쌓아온 지난한 노력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고, 도덕적 혐오의 행위가 대체 어떻게 따뜻한 온기와 사랑을 지닐 수 있는지를 알려주고 있기에 그러할 것이다. 인간에 대한 이 낯선 이해와 발견에 도덕적 이성이 당혹스러워하면서도 매혹되는 것은 가히 작가의 역량이라 말할 밖에 도리가 없다.
한편 무엇을 훔쳐보는 관음증적 욕구에 내재된 비틀린 부정(不正)에도 불구하고 이 욕망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무엇이 분명 있다. 그래서 남의 일기를 보거나 누군가의 고백을 듣는 것은 알지 못할 쾌락을 준다. 아마 그것은 당초에 자신이 아닌 누군가를 위한 행위가 아니라 자신만을 위한 것이기에 거짓이 개입할 까닭이 없어, 진실이거나 진실에 가까우리라는, 신뢰할 수 있다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진실의 장에서 살인과 같은 뒤틀린 정서를 발견하게 된다면 그 두려움과 일시에 깨져버리는 안녕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 가능치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결혼을 약속한 여자가 어느 날 감쪽같이 사라져 실의에 잠긴 청년에게 아버지는 말기 암 진단을 받고, 곧 이어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숨지는 가슴 아픈 사건이 연잇는다. 수술을 거부한 채 묵묵히 죽음의 시간을 기다리는 아버지를 뵈러간 어느 날, 청년은 낯익은 가방과 자른 머리카락 뭉치를 발견하게 되고, 이것은 어린 시절 입원치료 후 집에 돌아왔을 때 낯설기만 했던 엄마의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이어 발견된 노란 봉투 속 4권의 일기장을 넘기기 시작한다. 성별조차 구분할 수 없는 아이의 음울하고 표정 없는 살의와 살인이 여과 없이 기록된 일기, 아니 애써 소설이라 부르고 싶을 살인록(殺人錄)을 마주한다.
일기는 죽음이란 평온의 매혹을 떨치지 못하는 애초에 심리적 안정 기제를 지니지 않은 아이의 살인 고백이 이어지고 있다. 아이는 자신에게 결여된 이 정신의 안정 기제를‘유리고코로’라 명명한다. 유년 시절 마음의 위로와 친구가 되어준 인형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아이는 죽음의 안락과 평온에서 유리고코로를 느끼게 되고, 살인을 하기 시작한다. 타인의 죽음이 만들어내는 고요가 결핍된 안정을 가져다주는 것. 일기의 의도를 가늠할 수 없는 청년은 일기 속 아이의 실체에 멈출 수 없는 무엇, 자신과의 희미한 관련을 지각한다. 이 인물은 아버지인가? 어머니인가? 아님 어린 시절 바뀌었다고 생각한 또 다른 어머니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누군가의 소설 습작에 불과한 것인가?
소설은 이처럼 이 흐릿하고 음침한 고백에도 모순되게 살인자에 연민을 보내게 되는 당혹의 이야기인 일기를 통해 기록자의 살인 행적과 그 사유들, 혹독한 삶의 시련과 사랑을 알게 된 이후의 절절한 자기성찰, 죽음을 통한 재생의 애절함이 쉬이 외면할 수 없는 동정과 공감의 유혹으로 끌어들인다. 여기에 과거의 기록인 일기와 병행하여 현실의 청년과 아버지, 형제, 사라진 연인, 재정적 압박을 겪으며 교외에 운영하는 청년의 애견 카페와 종업원을 중심으로 기록을 보충하고 가족의 사랑과 유대를 견고하게 드러낸다.
네 권의 일기가 읽혀지는 과정에서 마주하게 되는 몇 차례의 전환적 사건들 - 어린 시절의 살인행위의 간접적 희생자와의 우연한 조우, 온전히 진실한 배려의 만남과 결혼, 사랑을 알게 되고 그 행복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죽음이 요구되는 불안한 현실 등 - 과, 이에 못지않은 청년의 현실적 삶에서 벌어지는 불가피한 살의와 미지의 살인까지 더해져 소설은 사건들로 풍부해지고 그 이면의 진실을 쫓는데 더욱 안달을 부추긴다. 사라진 연인과의 재결합은 이루어질까? 일기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청년의 어머니는 그의 기억처럼 바뀐 것일까? 그것은 어떤 의미가 되는 것일까? 와 같은 구조적 매혹과 더불어 손상된 정신에 희생된 인간에게 마음의 평화와 인간에 대한 온기를 돌려줄 수 있는 것은 정말 무엇인지, 사랑이 왜 고귀한 것인지, 가족의 유대란 살아가는 데 무엇인지를 느끼게 해주는 내용적 매력까지 치밀하고 안정된 조화를 보여준다. 꽤 오래 기억될 것 같은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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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이런 표지를 싫어한다. 벗겨내 버리고 싶을 정도로 부담스럽다고나 할까? 정면을 응시하는 소녀의 표정이 지나치게 차갑고도, 무기질 적이다. 나름 책 내용을 암시하려는 듯 고심해서 표현한 그림이겠지만, 시선처리 등등 맘에 안드는건 어쩔수 없음..... 하지만, 생소한 작가의 참신한 작품을 접하고자하는 목마름으로 선택을 하였고, 정말 대박이었다. 치밀한 심리묘사는 숨을 죽이게 했고, 톱니바퀴의 톱날이 서로 들어맞듯 맞물리는 스토리의 단단함이랄지 정교함은 놀라울 따름이었다. 난 정말 이런 미스터리 소설을 원하는 것이었다. 사실 잔인하기만하고, 뒷맛이 쓴 순전히 오락을 위한 살인행위가 묘사되는 작품은 싫을 따름이다. 하지만, 결국 결말은 끝까지 책장을 넘겨야만 알수 있기에 최면에 걸린듯 활자를 쉼없이 따라가다 보면 결국 서글픈 아쉬움, 진한 감동, 뭉클한 애잔함 등등을 그때그때 달리 느낄수 밖에 없다. 저자가 앞으로도 이런 작품을 선보인다면 기꺼이 열혈 독자가 될 의향이 있다. 한마디로 대단한 작품....... 보통의 사람들이 갖고있는 상식과 도덕률을 일시에 뒤집어 버리는 위험한 작품이지만, 그만큼 작가의 표현력과 설득력이 압도적인 작품이니 푹 빠져서 즐겁게 감상들 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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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불가사의한 이야기가 전개되는, 섬뜩하면서도 은은한 이야기가 공존하면서 우리에게 다가오는 글이다. 죽임에 대한 희열을 느끼는 자의 살인, 그 충동적인 행위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스스로도 제어되지 않는 모습의 인물을 그려나가는 필자의 체취가 신기하게 느껴진다. 이러한 사고를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의 괴기한 스토리를 치밀한 구조 속에 담아 독자들과 함께 호흡하고자 하고 있다. 독자들은 글을 읽으면서 내내 호기심과 전율 그리고 따뜻함까지 이율배반적으로 느껴야 한다.
이야기는 섬뜩함의 연속이다.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그것이 별로 죄책감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하나의 일상인 양 그려져 나가면서 특별한 인간의 한 단면을 제시하고 있는 듯하다. 알게 모르게 생명을 죽이는데 마력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런 일을 하면서 희열을 느끼고, 그것을 당연시 한다. 보편적인 인간들의 사회에서 공존할 수 없는 인간이다. 그러한 인간이 주인공이 되어 있다. 사람을 죽이고자 하는 마음을 늘 가까이 지니고 있는 존재, 그러면서 희열을 느끼는 마음을 가진 존재가 등장인물의 성격을 이루고 있다. 글 부분 부분이 현대인들의 섬뜩한 이기주의를 보는 듯해서 안타까웠다.
이야기는 외부 이야기와 내부 이야기로 되어 있다. 외부 이야기의 출발이 주인공의 여자 친구가 실종되면서부터이다. 애완용 짐승들을 돌봐 주는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는 주인공은 몇 명의 종업원들과 무리 없는 삶을 살아간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종업원이자 여자 친구인 지에가 실종된다. 그 흔적을 따라 노심초사 마음을 쓰는 주인공의 모습이 그려진다. 또 그는 몇 년 전에 죽은 어머니의 기억을 가지고 있고, 최근에 췌장암 선고를 받은 아버지를 자주 돌보아야 하는 책임의식도 느낀다. 그러는 와중에 아버지가 살고 있는 집을 방문하게 되고 그는 그곳에서 상자를 하나 발견한다. 그 상자에는 머리칼과 신비로운 노트 4권이 들어 있다. 그는 아버지의 눈을 피해 그 4권으로 된 노트를 읽어나가게 된다. 그 노트는 살인 기록이 들어있다. 그 이야기는 내부 이야기로 그려진다.
어릴 적 마음이 끌린 살인에서부터 성장하면서 살인하게 된 기록들이 차근차근 기록되고 있다. 처음엔 누구의 노트인지? 누가 기록을 했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읽어나가다 보면 그 궁금증이 양파껍질 벗기듯이 밝혀진다. 결론적으로 내부 이야기는 주인공의 어머니가 기록한 글이다. 이 내부 이야기는 작은 글씨로 구분해서 표현된다. 그녀는 알게 모르게 살인에의 마력에 이끌려 사람을 죽인다. 그런데 전혀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그러다 한 아이를 죽이는 현장에서 어떤 청년이 그 아이를 죽이게 만드는 듯 위장을 하게 되고 성장하면서 그 청년과 자연스럽게 만나는 설정을 한다. 살기 위해서 죄의식 없이 창녀처럼 살다가 아이를 가지게 되고 그 후 그를 만나게 된다. 아이는 결국 낳게 되고, 그 청년과 함께 아이를 키워나가게 된다. 그러다 여자의 부모님을 찾게 되고, 여자의 부모들은 죄 많은 여자가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 죄라는 의식을 가지고, 또 자꾸 손목을 긋는 일을 저지르는 자녀를 먼저 보내는 것이 좋다는 결론으로 그를 물에 넣어 죽인다. 그리고 그 언니의 동생이 청년과 같이 살면서 아이를 키우게 된다. 그리고 둘은 결혼하여 또 생명을 가지게 되고 그 아이의 동생이 태어난다.
아이는 기억 속에 어머니가 바뀌었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동생과 연계하여 아버지를 따돌리고 책을 읽어 나가면서 차츰 그 관계가 밝혀진다. 그 아이는 주인공이고, 그는 살인의 피가 흐르는 어머니를 갖고 있다. 이러한 사실이 하나하나 밝혀지면서 주인공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다. 그리고 죽은 친어머니에 대한 기록은 그를 혼란스럽게, 아프게 만들어 간다. 3권을 다 읽었을 때, 아버지에게 들키게 되고(아버지는 옛날의 청년이다.) 아버지에게 그 전말을 듣게 된다. 친어머니를 죽게 만든 일과 이모를 어머니로 여기면서 살게 된 사실을 그가 온전히 알 수 있도록 전해 준다.
외부 이야기에 후반으로 가면서 그의 사랑했던 여자 지에가 돌아온다. 그리고 그녀가 어떻게 실종이 되었는가가 밝혀진다. 그녀는 전 남편이 있었고 그 남편 시오미가 데리고 간 것이다. 그런데 그 남편이 돈만 밝히는 사람이고 사랑의 감정 등은 거의 없다. 그래서 지에는 다시 가게로 돌아오게 되고 시오미는 주인공의 가게까지 알아 그에게 돈도 요구한다. 헌데 같은 가게에 있는 호소야라는 사람이 결국 시오미를 죽이게 된다. 그리고 주인공을 지켜주는 결과가 된다. 그런 상황 속에서 반전이 일어난다. 주인공의 어머니가 물에 빠져 죽을 때 그 부모님들이 아무리 살인자고 죄가 가득한 사람이지만 차마 죽이지 못하고 살려 멀리 가서 살라고 하면서 내친 것으로 그린다. 그런데 최근에 아버지와 그 여자가 만나고, 주인공과 다른 아들에게 그 여자를 소개시켜 주겠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이 만난 사람은, 바로 호소야였다. 호소야가 죽은 줄 알고 있었던 주인공의 본어머니였던 것이다. 그 후 아버지와 호소야씨(주인공의 친어머니: 유리 고코로를 가까이 지닌 사람)은 그들 곁에서 떠나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신비한 이야기를 쉽게 풀어서 보여주고 있는 글이다. 흥미진진한 스토리 전개가 읽는 사람들의 눈을 때지 못하게 한다. 글의 소개에는 불가사의한 소설, 공포와 슬픔이 어느 새 행복으로 변한다는 글귀로 이루어져 있다. 살인에서 행복을 느끼기는 이상할 듯하나, 그래도 그렇게 무겁게 느껴지는 글은 분명 아니다. 따뜻한 인간미가 살인의 언저리에 녹아 있다. 이것은 작가가 이 글을 통해서 인간미를 그려내려고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 추리와 미스터리, 그리고 살인과 사랑 등이 함께 녹아있는 다양한 시각으로 읽어야할 듯한 글이다. 분명 재미있게, 그리고 치밀한 구조 속에 글의 묘미를 만끽하면서 읽었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기회가 닿으면 시간이 알게 모르게 흘러가는 상황이 되지 않을까 여겨지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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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혼녀의 실종, 아버지의 암 선고에 이어 어머니마저 교통사고로 잃은 '료스케'. 애완동물 카페를 운영하며 평온하게 살아가던 그에게 잇달아 불행이 닥쳐들고... 아버지를 뵙기 위해 짬을 내어 들른 어느 날 서재에서 우연히 발견한 한 묶음의 머리털과 네 권의 노트. 네 권의 노트에 적혀있는 살인자의 이야기. 이 의문의 이야기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수기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어린 시절 어머니가 뒤바뀐 기억을 갖고 있던 '료스케'는 이 이야기가 결코 허구가 아니며 자신과 무관하지 않음을 직감적으로 느끼며 진실을 파헤치게 되는데... [크리미널 마인드]라는 미드가 있다. 연쇄 살인범을 잡는 프로파일링 팀의 이야기로 아무래도 사이코패스의 심리를 파고 들어가는 것이 주가 되다보니 재미는 있어도 보다보면 왠지 어둠에 빠져드는 기분이 드는 그런 드라마다. 처음 [유리고코로]의 소개를 봤을 때 이런 종류의 소설이 아닐까 싶었다. 예상대로 초반 수기의 내용은 담담하게 살인자의 심리를 중심으로 그려 나가는 듯 하지만 중후반 부에는 예상치 못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 수수께끼와 트릭, 그리고 그 수수께끼를 멋지게 풀어내는 해결사가 등장하는 본격 추리 소설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담백한 일본 분위기를 담담한 필치로 그려내는 작가 '누마타 마호카루'의 솜씨에 이끌려 아주 재미있게 몰입해서 읽었다. 300여 페이지의 비교적 적은 분량이지만 보슬보슬한 표지의 양장으로 꽤 아담하게 나온 데다 무표정한 단발머리 소녀의 표지 디자인도 꽤나 마음에 든다. 아쉬운 점이라면 양장인데도 책갈피 끈이 없다는 정도^^; 얼마 전에 처음으로 읽은 일본 추리소설이 '히가시노 게이코'의 [명탐정의 규칙]이었다. 이렇게 저렇게 읽은 단편 중에 일본 작가의 작품도 있었던 것 같지만 한 권 통째로 읽기는 그때가 처음이었는데, 이 [명탐정의 규칙]이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의 수상 경력이 있었다. 그때는 그냥 일본에는 그런 상도 있는가보다 하고 넘어갔었는데 이번에 읽은 [유리고코로]또한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에 이력이 있었다. [명탐정의 규칙]을 재미있게 읽은 탓에 같은 이력을 가진 [유리고코로] 또한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하는 게 맞을 텐데 역시 실망시키지 않는걸 보면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 쪽은 신뢰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트릭의 고갈이라는 추리소설계의 어려움에도 이런 좋은 작품들을 배출하는 것은 이러한 상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부럽기도 하고 그렇다. 왜 일본 추리소설이 자주 회자되는지 이해가 되는 느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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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엄마가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너희들이 천인공노할 짓을 저질러 세상 모든 사람들이 너희들을 손가락질하고 미워하더라도, 엄마 아빠는 끝까지 너희를 편이고 변함없이 사랑할 거라고. 나는 이제까지 살면서 그 말처럼 가슴을 울리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때 느꼈던 커다란 감동과 미묘한 공포를 잊지 못한다. 아마 그런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말을 다시는 들어보지 못하리라. 무모할 정도의 절대적인 신뢰와 사랑을 나는 자식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받고 있구나. 아마 나는 죽었다 깨어나는 일이 있더라도 그런 마음을 그 분들께 고스란히 되돌릴 수 없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의 사랑은, 특히나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맹목적이고 절대적이다. 혈연이라는 강력한 이끌림 때문이라고는 차마 다 설명하지 못할 무언가가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데, 그것은 일반적인 세상의 도덕과 상식과 가치판단을 뒤엎을 정도로 강력한 것이다.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그렇게 강력한 무언가를 가슴에 품고 자식을 사랑한다.
그리고 좀도둑도, 강도도, 인질범도, 살인마도 자식 앞에서는 부모가 된다.
4권의 살인수기. 나를 낳아준 부모님 가운데 살인마가 있다?!
한꺼번에 말도 안 되는 불행을 겪게 된 남자가 있다. 애견 카페를 운영하며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던 료스케는 결혼을 약속한 약혼녀가 갑자기 실종되어 버리고, 정신없는 와중에 아버지마저 췌장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는다. 아버지 보다는 오래 사실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어머니는 교통사고로 어이없게 생을 마감한다. 정신없게 몰아치는 불행 속에 힘없이 휘둘리던 료스케는 아버지의 모습을 살피고자 찾은 집에서 우연히 머리카락이 들어있는 가방과 무언가가 빼곡하게 적혀있는 공책 4권을 발견한다. 공책에 적혀 있는 것은 놀랍게도 살인을 고백하는 수기였다.
료스케는 노트에 적힌 내용이 소설이 아닌 실화이며, 노트의 주인공이 부모님 중 한분 이라는 사실을 직감한다. 아버지는 인자하고 성실한 사람이며 어머니 또한 따뜻하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평범하고 화목했던 가족들과의 지난날을 생각하면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료스케는 큰 충격에 휩싸인다. 노트를 읽어가는 와중에 료스케는 어릴 적 어머니가 뒤바뀐 사실을 홀로 알아차렸던 기억을 떠올리며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해 의심을 품게 되고 숨겨졌던 가족사를 조사하기 시작한다.
수기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어머니가 뒤바뀐 기억의 진실은 무엇일까? 숨겨졌던 가족의 비밀에 다가갈수록, 잔혹하고 슬픈 가족사가 서서히 드러날수록 료스케는 혼란스러울 뿐이다. 하지만 어떠한 사실을 밝혀내더라도 절대 변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료스케를 사랑으로 보살피고 보듬어준 부모라는 점이다.
너무나도 끔찍하고 애잔한 사랑 이야기
가족에 대해서는 냉정한 판단을 내리기가 어렵다. 은연중에 서로를 자신의 분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는 부모가 자식에게만 갖는 감정이 아니다. 자식 또한 그렇다.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가 현재의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사람’이 될지 판단하는데 큰 부분을 차지한다. 피를 이었다는 것은 그렇게 정신적인 부분 까지도 이어졌다는 착각 아닌 착각을 하게 만든다.
자식은 부모를 닮고 싶어 하기도 하고, 닮고 싶어 하지 않기도 하지만 결국은 그들과 내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내 부모 중 누군가가 인면수심의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 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아 버린 료스케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덩달아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되는 것이다. 사실 누가 살인마일까 하는 의문은 료스케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 더욱 괴로운 것은 그가 알지 못하는 부모의 추악한 다른 얼굴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이 료스케의 부모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료스케가 4권의 노트를 읽고 노트의 주인을 추적하는 것은 살인마를 잡아내기 위함이 아니다. 잘못을 비난하고 원망하기 위해서가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 료스케를 사랑했던 부모의 민낯을 대면하기 위해서다. 그런 과정이기 때문에 더욱 안타깝고 가슴이 떨린다.
여러 건의 끔찍한 살인 장면이 묘사되고 이해할 수 없는 살인자의 내면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이야기이지만 결국에는 사랑 이야기이다. 본능처럼 살인욕구를 품고 살아가는 어떤 이의 절절한 연애담이고,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고 잇달아 살인을 저지르는 인간이지만 자식을 사랑하고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진정한 행복을 알아가는 ‘평범한 부모’의 이야기이다. 살인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래서 인상적이다. 모든 미스터리가 풀려도 무거운 마음이 찌꺼기처럼 남아서 길게 여운을 끈다. 어쩌면 예측할 수 있는 반전일 테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후일담이 이어질지도 모른다. 그런 것과는 별개로 오랫동안 마음에 남는 이야기다. 기리노 나쓰오 여사의 평처럼 공포와 슬픔이 어느새 행복으로 변해간다. 이 책 자체가 참 미스터리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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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있습니다. 원하던 직업에, 상냥하고 자신이 꿈꾸던 일을 함께해줄 약혼녀. 두사람을 따스한 눈으로 지켜봐주는 부모님... 그런데 어느날 약혼녀가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아버지는 대장암 진단을 받고...넋이 나간듯하던 어머니는 차가 오는지도 모르고 차도로 내려서다 사망. 난데없이 휘몰아치는 불행에 지쳐가는 나날. 아버지 상태를 살피려 들린 집. 아버지는 외출 하셨는지 안보이는 사이 벽장에서 찾아낸 여자 핸드백과 그 안에 들어있는 머리카락 다발. 그리고 수기. 의아한 마음에 수기를 읽기 시작한 남자는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여자가 쓴건지 남자가 쓴건지 모를 그 안의 내용은 어릴때부터 저질러온 충동에 의한 살인기록.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저질러온 죄의 기록에 남자는 끝간데 없는 공포를 느끼면서도 정신없이 빠져들게 됩니다.
무더운 여름과 어울리는 소설 유리고코로입니다. 굉장한 흡입력을 가진 문체에 비해 작가 이름이 낯설어 찾아보니 '유리고코로'가 두번째 소설인 신예작가. 하지만 쉰이 넘어 등단 했다고 하니 문체에 녹아있는 원숙해 보이는 느낌은 제 착각이 아닌가 봅니다. 사실 이 미스터리가 대단하다상을 수상한 작품이기에 실망 안하리라는 기대는 했었습니다. 미스터리 자체는 사실 약하지만 수상작들 대부분이 몰입도 만큼은 실망 안 시키기에 말이죠. 표지 그림도 으스스한 분위기에 한몫 합니다. 정면을 빤히 쳐다보는 여자애...그리고 입을 가릴 정도로 물고 있는 하얀꽃...마치 죽음 자체를 물고 있듯~ 얼굴에 비해 가늘고 위태롭게 보이는 긴 목. 비가 퍼붓는 며칠간 슬프도록 담담한 살인의 추억을 읽다보니 비가오면 나오는 달팽이 처럼 누군가 에게 잡혀 길고 긴 어둠 속으로 던져질지도 모르겠다는 느낌까지 들더군요... |